도깨비 - 17
『그게.. 사실이야? 』
현지는 지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지후의 옆에 앉아 미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지후는 약속장소에 나온 현지를 차에 태우고 어느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별장으로 생각되어지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현지를 옆좌석에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는 지후의 모습은 통화를 하고 있을때 느껴졌던 조금은 다급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고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통화할때 이야기했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지만 가보면 알거라는 말 이외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전원주택처럼 외진곳에 홀로 세워진 잘 꾸며진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뜻밖에 지후이외에 다른 남자가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장소에서 차를 타고 이런곳까지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병실에 혼자 두고온 선영이 마음에 걸려 조급한 현지와는 달리 그들은 현지가 마실 차를 내어주고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기숙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고 현지는 지후와 또다른 남자를 바라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현지가 기숙사에 있었던 것을 알고있는데다 지금까지 현지가 알고있던 지후를 믿고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그 이후에는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거야? 』
재차 묻는 지후의 질문에 현지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현지는 기숙사내에서 은경이를 보았다는 이야기와 수많은 귀신들이 달려들어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만 간단하게만 이야기했다.
지후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현지가 꺼낸 말들은 보통 사람이 들었다면 분명 백이면 백 모두 현지에게 미쳤다고 할 만한 이야기인데다 이 자리에 지후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문인지 말을 마치고도 현지는 지후보다는 지후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더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후의 옆에있던 남자가 닫고있던 입을 열었다.
지후가 현지를 도와줄 사람이라고 소개한 남자...
자신을 "아베노 후카츠"라고 소개한 이 남자...
왜인지 모르게 이 남자를 만나는 순간부터 현지는 남자로부터 묘한 적개심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숙사의 일과 치우의 일로 스스로 조금 예민해있는 상태라는 것을 감안해도 최소한 이 남자.. 현지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지의 생각대로 현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긴.. 지금 자신이 한 말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믿을 수 없으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
조금은 의외의 말이었다. 세상에 귀신따위가 어디있느냐는등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후카츠라는 남자는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일까?
『그럼..?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현지는 후카츠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현지의 이야기는 믿을 수 있다. 하지만 현지는 믿을 수 없다??
더군다나 후카츠라는 인물은 현지로서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다.
현지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신뢰를 운운하다니??
『좋습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지요.. 현지씨눈에는 귀신이 보입니까? 』
후카츠의 말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치우가 도움을 줄때만 그럴 수 있는 것이었고 지금은 아니었다.
『전 귀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씨에게는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
『어떻게 아냐구요? 아무도 없는 공간에 누군가 있으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누군가가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죠.. 그렇게 무언가에 신경이 쓰이면 아무리 감추려해도 조금은 신경쓰이는게 티가 나게 마련입니다.. 귀를 볼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집안으로 들어올때부터 현지씨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지만 현지씨는 이곳에 있는 귀들을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으니까요.. 』
후카츠의 말에 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귀..귀들이 이곳에 있다고..??"
그 날밤 기숙사에 가는 길에도 여기저기서 많은 귀들을 보았었고 귀들은 어디든 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이곳에도 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워낙 큰 공포감을 맛본 탓에 귀들이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현지를 놀라게 하기는 충분했다.
『그리 놀라실것은 없습니다.. 이곳에 있는 귀들은 사람을 해치는 그런 종류의 귀는 아니니까요.. 귀들은 어디에도 존재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런 모든 귀들이 사람을 해치거나 하는건 아니니까요.. 』
후카츠의 말에 현지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치우도 없는 이 상황에서 불안함까지 모두 가시지는 않았다. 아직도 놀라움에 두근거리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는듯 현지는 거의 입만대고 있던 차를 단번에 들이켰다. 지후가 다시 현지의 잔에 새로운 차를 따라내고 있는동안 후카츠의 말이 이어졌다.
『현지씨가 방금 한 이야기가 특별히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분명 현지씨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숨기기위해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거짓이지요.. 지금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현지씨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숨기려한다면 이후의 우리의 대화에는 분명 거짓이 필연적으로 섞이게 될겁니다... 제가 현지씨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한 부분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습니다. 』
구지 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상식선에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였고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선영도 무엇인가 연루되어 있는것 같고 미이라같은 것과 죽은것같은 남자까지 봤던 터라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 옳을지 판단하기가 어려웠기에 최소한의 이야기만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후카츠란 인물은 그것을 바로 간파해버리고 말았다.
현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말 없이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후카츠의 표정은 처음 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듯 보였다. 현지는 지후를 바라보았다. 지후 역시 현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듯이 보였다.
"지후선배도 있으니까...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던 사실을 지후가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호의적이지 않은듯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같은 처음 보는 사람에 경계심이 생긴건 사실이었지만 현지가 알고있는 지후가 나쁜 사람도 아니었고 치우가 더이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셈이었다. 어쩌면 현지를 도와주려고하는 지후의 호의를 치우때처럼 곡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지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모든것을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봉인계약을 위해 치우와 치뤘던 의식같은 일을 현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처음 현지의 이야기를 들을때와는 달리 무표정한듯 하던 후카츠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갔다.
이야기를 마친 현지는 또다시 지후와 후카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놀라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던 후카츠는 막상 현지의 이야기가끝나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현지씨가 기숙사에서 기억이 없는 동안 그 치우라는 귀신이 공격하던 귀들에게서 현지씨를 구해냈다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
『그건.... 』
생각지도 않게 아직 확실히 끝나지 않은 치우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은경의 말에의해 잠시 치우의 존재에 대해 갈등했었지만 치우가 그렇게 떠나고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왜그런지 처음봤을때부터 치우에게 끌리고 그의 말에 믿음이 갔었고 현지에게 도움이 되려고 했던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을 제쳐놓고서라도 현지는 치우가 좋았고 믿고 싶었다.
『치우를.. 믿으니까요... 』
후카츠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현지가 다시 고개를 들어 후카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목소리지만 확신이 들어있는 목소리였다. 만약 현지가 딱 하루만 먼저 후카츠를 만났다면 아마도 지금 현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달랐을지도 몰랐다.
『사람을 속이는데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네?? 』
현지의 이야기를 들은 후카츠가 다시 현지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후카츠의 질문은 현지에게는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믿음... 바로 속여야할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지요... 그 과정만 충분히 잘 된다면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쉽게 속여버릴 수 있지요... 』
그제서야 현지는 후카츠의 질문의 의미를 알았다.
『치우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치우는 그런 애가 아니... 』
치우를 사기꾼과도 같이 비유하는 후카츠의 말에 현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울컥하는 마음에 치우를 변호하고 있었다.
『믿음을 심어주는 그 작업이 아주 치밀하게 되면 이런 일도 벌어지죠.. 속는 사람이 속이는 사람을 변호하고 보호하려는 상황 말이죠.. 그런의미에서 치우라는 그 귀신은 상당히 영악한 녀석인가 보군요... 』
『귀들은 인간만큼이나 가지각색으로 다양합니다.. 거의 동물적인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지능이 없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희대의 사기꾼 뺨칠정도로 교활하고 똑똑한 녀석들도 있지요...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세상에 오랫동안 머무른 귀들일수록 더욱 교활합니다... 아마도 치우라는 귀신은 상당히 오랫동안 세상에 머무른 녀석인가보군요.. 수백년?? 아니.. 어쩌면 수천년 이상일지도 모르겠군요.. 』
치우는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온 세월을 대략 8000년 가까이 될거라 말했었다. 그런 부분은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후카츠라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토대로 조금씩 치우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치우는... 』
후카츠의 말에 현지는 온 몸이 굳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후카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커다란 비수가 되어 현지의 심장에 강하게 틀어박혀버렸다. 예전같으면 귀찮을 정도로 현지를 쪼르르 쫓아다녔지만 지금은... 현지가 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다. 이미 치우는 현지를 떠났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럴수는..... 없어요..... 』
현지의 눈에 눈물이 고여들기 시작했다. "저를 떠났으니까요.." 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떠났다는 이야기가 입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말이 입밖으로 새어나가면 정말로 다시는 치우가 돌아오지 않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떠났... 으니까요... 』
한참을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맴돌기만 하던 그 말이 현지의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현지의 눈에서도 작은 물방울이 현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카츠도 현지의 눈물을 보았는지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시의 정적이 이어진 후....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
후카츠의 말에 현지는 고개를 들어 후카츠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지금 후카츠는 치우가 완전히 현지를 떠나지는 않았을거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어왔다.
『귀들이 인간에게 접근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원한에 관계된 일일수도 있고 은혜에 관계된 일일수도 있으며 세상에 남은 미련이나 집착등에 관한 것등 여러가지 이유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과 달리 귀들은 포기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
후카츠는 치우가 아직 현지에게 접근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다시 돌아올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현지에게는 후카츠의 말은 치우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만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이유라도... 다시 돌아와 준다면... "
현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치우가 현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전해지던 그 감정... 그 느낌... 진심은 그런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지가 말해주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그런 이유로... 제가 내린 결론은 현지씨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
지금껏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믿는것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지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후카츠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현지씨는 무당이나 주술사같은 부류의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귀들이 그런 보통의 인간에게 이끌리듯 움직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오래된.. 그리고 강한 귀들일수록 그 자존심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니까요... 』
"복종...시켜...? 치우..를??"
점점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변해가는 것은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후카츠를 바라보고 있는 현지의 눈에 보이는 후카츠의 모습도 지후의 모습도 그리고 주위의 모습도 일그러지는듯한 느낌과 함께 후카츠의 말이 조금씩 잘 들리지 않고 집중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치우라는 그 녀석이 도깨비든 아니든 현지씨가 한 말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분명 현지씨는 어떤 녀석과 함께 있었고 그 녀석은 보기드물게 상당한 녀석인것 같은데 왜 그 녀석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현지씨에게 접근했을까요? 』
어지러움이 극에 달해갔다. 후카츠의 말이 귀에 들어오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있는 말이 아닌 그저 소음과도 같은 소리로 현지의 한쪽귀로 들어와 다른쪽귀로 흘러나가버리는것만 같았다. 그와함께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워져만 가는 기분이었다.
『그건 아마도 현지씨에게 보통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현지씨의 몸.. 한번 조사해볼만한 가치가 있겠지요... 』
후카츠가 말을 하며 현지쪽으로 천천히 걸어와 현지의 턱에 손을대고 얼굴을 들어올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현지의 얼굴에 바짝 밀착시켰다. 현지는 거의 감겨 게슴츠레한 눈으로 후카츠를 바라보았다. 어지러움에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후카츠의 얼굴이 기묘하게 비틀려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쁘군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조사하는 시간이 상당히 즐거울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후카츠의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현지의 눈은 그 기능을 정지하고 TV가 꺼짓듯 의식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