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9
『세아야... 어디까지 가는거야...? 』
어느 늦은 밤....
지아의 방으로 세아가 불쑥 찿아왔다. 지아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아의 존재가 부담스럽거나 껄끄러워서가 아니었다. 어렸을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아를 찿아온 세아는 지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지아와 함께 부락에서 상당히 떨어진 숲속까지 나왔다.
『난 네가 싫어... 』
구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지아뿐만이 아니었다. 세아가 지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신녀들 사이에서도 알게모르게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지아에게 말을 한 경우는 지금이 처음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세아에게서 직접 들으니 지아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어머니가 너를 제사장으로 추천할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어 』
지아는 지금 세아가 하고있는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세아는 고집도 자존심도 센 아이였다. 이번 제사장 후임으로 세아가 아닌 지아가 선출된 것은 지아나 세아뿐만이 아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세아가 느낀 허탈감이나 굴욕감은 세아의 자존심을 크게 상처입혔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아의 그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세아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아는 세아가 조금은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세아에게 다가가 살며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아를 안아주었다. 평소 세아는 지아와 같이 있는 것조차 달갑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아이기에 조금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의외로 지아가 세아를 안아주고 있음에도 세아는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신.... 한가지 부탁이 있어... 』
이렇게 세아를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이런 날이... 비록 한 배에서 나온 자매는 아니지만 세아와 친자매처럼 지낼 수 있을 날을 얼마나 바래왔는지.. 지아가 할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뭐든지 들어주고 싶었다.
『그럼... 죽어.... 』
하지만 세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꿈을 꾸는듯한 지아의 기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말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을 울리듯 전해져오는 다급한 목소리..
『지아야!! 위험해!! 물러낫!!! 』
치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지아는 본능적으로 빠르게 세아에게서 멀어졌다. 귀들과의 싸움에서 가끔씩 위기에 몰리거나 위험한 상황을 지아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 이런식으로 치우가 내부에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기에 치우의 목소리에 지아는 무의식에 가깝게 세아에게서 멀어진 것이었다.
지아는 자신의 복부 부분을 내려다 보았다.
허리부분에서 날카롭게 그어올려져 찢어져있는 의복...
지아가 놀란 눈으로 세아를 바라보았다. 지아가 바라보고 있는 세아의 손에는 은은한 달빛을 반사해내고 있는 작은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세...세아야.. 너... 너.. 지금.... 』
『세아 너.. 너.. 설마... 』
지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얼마전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지아에게 말했었다. 세아가 대군장쪽 사람들과 어울리는것 같다고.... 만약 대군장쪽 사람들이 세아에게 무슨 수를 썼다면 그리고 그 무슨 수가 남자와 관련이 된거라면.....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제사장휘하의 신녀들은 절대적으로 금남의 조건을 지켜야했다. 신녀들은 신의 여자들이었다. 신의 여자가 신이아닌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난다는 것은 곧 신의 노여움을 산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기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녀인 세아가 지금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이것이 그쪽 사람들의 노림수라면 세아는 이미 헤어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늪에 빠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
지금 눈앞에 있는 세아의 위협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세아의 실력은 충분히 알고 있었고 세아 하나정도는 구지 치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지아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지아의 생각대로라면.. 정작 지금 가장 큰 곤경에 처한 사람은 지아가 아닌 세아였다.
제사장을 물려받는 날은 몇 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군장쪽 사람들이 세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분명 제사장의 자리때문일 것이었다. 그렇다는건 그들이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세아는 버려질 수 있을것이고 만약 그들이 세아가 금남의 규율을 어겼다는 것을 공개하는 쪽으로 세아를 버린다면 세아는 처형당해야만 할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이건 나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세아를 제압한다..
그리고 어머니께 데리고 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방법을 찿아봐야한다...
지아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빠르고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들이 한 방향으로 정리가 되자 세아를 바라보고 있던 지아의 눈이 날카롭게 변해갔다.
『미안해.. 세아야.. 이럴수 밖에 없을것 같아... 』
지아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지아를 향해 한 발 내딛었을 때 주위가 산만한 느낌과 함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몇개의 인영들이 지아와 세아를 둘러싸듯이 주위로 나타났다. 그들을 보자 지아는 조금씩 아니길 바랬던 자신의 추측이 맞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지아는 더 이상 세아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포위하듯 둘러싼 인영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씩 다가오며 지아와의 거리를 좁혀들어오고 있었고 어느새 세아는 그들의 포위망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지아가 두 주먹을 꼭 쥐고 자세를 잡았다.
조금씩 좁아지던 지아와 인영들간의 거리가 어느정도에 이르자 포위망은 더이상 좁혀지지 않고 서로 상대를 경계하는 눈빛만을 주고받고 있을 때 치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 너... 설마.. 싸우려는거야? 숫자가 너무 많아.. 게다가 넌 무기도 없잖아 구지 싸울필요 없잖아 도망가자.. 』
순간 지아의 뒤쪽에서 누군가 움직이는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 숲속에서의 일대 다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귀들을 상대하다보면 수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그 경우중의 하나가 바로 육박전이었다. 귀에 빙의된 인간과 싸워야한다거나 사귀 그 존재들 자체와도 육탄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대부분의 신녀들은 제나 주술에 관한 것 이외에 무술에 관한 훈련도 같이 받았고 지아는 신녀들 중에서도 그 능력이 뛰어났다.
커헉.....!!
어둠속에서 수많은 공방이 오고가는 도중에 낮은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그 소리와 함께 몇 미터나 뒤쪽으로 나가떨어져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와함께 어둠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춰섰다. 치우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그들이 예상치 못한 지아의 힘에 당황한듯한 기색이었다.
『하아... 하아.... 』
이제 하나 쓰러졌을 뿐인데 지아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지아가 신녀들중에서 무술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는 해도 매일같이 훈련으로 단련된 전문적인 병사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 지아가 치우의 힘을 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아가 상대하고 있는 이들.. 그냥 보통 싸움 좀 하는 그런 놈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유지하는 대형이나 움직임 분명 전문적인 훈련을 그것도 상당히 오랜시간동안 그런 훈련에 단련이 된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지아를 죽이기위해 힘으로 또는 기술로 무작정 덤벼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수적인 우세를 믿고 한꺼번에 덤벼드는 것이 아닌 한쪽에서 지아의 시선을 교란하고 그 사이의 빈 틈을 교묘하게 노려왔고 그 빈 틈을 방어하려하면 또다시 다른쪽에서 틈을 노린 공격이 들어왔다. 누구 하나를 제대로 상대해 볼 상황이 오면 그들은 지아와 상대하지않고 뒤쪽으로 물러나 다시 기회를 엿보았다.
『이 놈들... 암살훈련을 받은 놈들같아.. 』
치우의 말이었다. 치우의 말과 함께 잠시 중단되었던 공격이 또다시 시작이 되었다. 6명중 남은 건 5명...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지아였다. 지아는 치우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 그만큼 파워나 스피드는 평상시에 비해 월등했지만 치우가 내부에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지 않았으면 벌써 오래전에 죽었어야할만큼 천성적으로 몸이 약한 지아이기에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지금 지아를 공격하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육체가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올테고 그건 몸이 허약한 지아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만큼 위험할 수도 있었다.
또다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또 한명의 남자가 뒤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등을 부딪치고 바닥으로 스러져 내렸다. 묘하게 서로의 위치를 바꾸며 지아가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날 틈을 보이지 않던 그들의 대형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건 4명이었다. 지아의 몸은 빠르게 지쳐갔지만 진을 이루고 무섭고 집요하게 빈 틈만을 노려오던 그들의 공격형태로 보아 2명이 빠진것은 그만큼 그들의 공격이 무뎌졌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빨리 이들의 숫자를 줄여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이제 남은건 4명.... 시간을 끌면 안돼.."
『산개!!! 』
남은 네명의 인물들중 한 명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들은 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을 풀어버리고 각 방향으로 흩어져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지아의 주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수풀들만이 남아 있었다.
『이런...!! 』
낭패였다. 이들은 남은 4명으로는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판단하고 각자 몸을 숨기고 기습의 기회를 잡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안그래도 이미 상당히 지쳐있는데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지아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세아를 찿아..!! 어차피 이 놈들을 쓰러트리는게 목적이 아니잖아.. 포위망은 풀어졌으니 세아를 찿아 제압하고 이 자리를 피하자!! 』
치우의 말이 들려왔다. 이들을 상대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치우가 그걸 일깨워 주었다. 처음부터 이들을 상대한 이유도 세아를 데리고 가기위함이었다. 치우의 힘이 있는 이상 세아의 제압은 문제될 것이 없었고 포위망도 풀어져있으니 잘하면 최악이라 생각한 이 상황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슈슈슉~~!!
지아가 세아를 확인하고 세아쪽으로 다가가려 할 때..
무엇인가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지아를 향해 날라왔다. 지아는 순간적으로 허리를 최대한 뒤로 꺾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피하고 뒤쪽으로 몇번 구르며 땅으로 떨어지는 충격을 흡수했다.
"암기....??"
어둠속에서 어딘지 모르는 방향에서 날아오는 암기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이 상황이라면 세아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는 않을것 같았다.
『지아야.. 조심해.. 이 놈들 암살훈련을 받은 놈들인만큼 암기에 독같은 것이 묻어있을거야.. 스치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질 수도 있어.. 』
치우믜 말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지아가 세아쪽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기라도 하듯 교묘하게 암기는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고 있었고 지아는 생각처럼 쉽게 세아쪽으로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제기랄.. 성가신 놈들이네 정말.. 』
이렇게 조금씩 흘러가는 시간이 지아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때문인지 치우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짜증섞인 말투에 지아가 치우에게 말했다.
『모험을 하다니...? 』
지아는 온 신경을 세아쪽에 집중하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세아까지의 거리가 꽤 되긴 했지만 치우의 힘을 빌리면 최대한으로 그 힘을 끌어올리면 한번의 발돋음으로 도착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속도로 세아와 충돌하면 그 충격으로 세아도 최소한 잠시동안은 저항하지 못할것이고 그 사이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힘이 닿는데까지 멀리 도망간다. 그것이 지아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끄아아아악!!!!!
지아가 세아를 향해 튀어나가려 하는 찰나 숲 어딘가에서 커다란 비명이 들려왔다. 뛰어나가려던 지아가 소리가나는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두둑...
무엇인가 땅바닥으로 떨어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형의 물체인지 땅바닥에 떨어져 내린 그 무엇인가가 데구르르 땅바닥위를 구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바닥을 뒹굴고 있는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이 되자 지아는 경악했다.
사람의 얼굴....
땅바닥에서 커다란 돌맹이처럼 굴러다니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조금전까지 지아를 공격했던 복면에 의해 얼굴이 가려진 사람의 얼굴... 그것이 몸체와 붙어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구우우우우우...
짐승의 울음소리...??
아니 짐승의 울음소리치고는 너무 음습하고 낮은 소리가 숲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함께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 화살처럼 지아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설마..??"
지아가 뒤쪽을 돌아보았다.
으...으.. 으아아아아악!!!!
아까의 둔탁한 비명소리와 달리 찢어질듯이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숲 전체에 퍼져나감과 동시에 귀의 손에 들어올려졌던 남자의 몸이 몇개의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버렸다.
지아는 넋이 나가버린듯 그 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세아의 일과 자신을 공격한 인물들과의 싸움으로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 정도의 귀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까??
『나도 지금에서야 알았는데.. 이 장소.. 상당히 음기가 강한 지역인것 같아... 저 놈.. 아무래도 이 지역의 강한 음기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녀석인것 같아.. 』
치우의 말대로라면 왜 갑자기 지금 이 시점에서 저 녀석이 우릴 공격하는거지?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모습을 드러내려하지 않아야 할것인데 왜 갑자기...
『아무래도.. 지아 네가 내 힘을 사용하는 바람에 그 기운을 느낀것 같아.. 네가 내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광포해진 것일거야.. 이거 진짜 성가시게 됐는데.. 이렇게 되면 저 놈도 잡아야하잖아... 』
『꺄아아아악!!!! 』
또다른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낮은 남자의 비명소리가 아닌 대기를 찢을듯이 날카로운 여자의 음성이었다. 갑작스러운 귀의 등장에 치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지아가 익숙한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세아쪽을 바라보았다. 온 몸을 벌벌 떨며 주저앉아 있는 세아의 앞으로 어느새 이동했는지 그 거대한 귀가 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돼!! 』
지아가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강하게 깨물고 있는 힘껏 세아를 향해 발돋움했다. 다행히 조금 전 세아를 향해 뛰어오를 힘을 끌어올렸던 탓에 거대한 귀의 손이 세아의 몸을 몇조각으로 분리시키기전에 귀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지아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손가락으로 검을 휘두르듯이 아래에서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거대한 귀의 몸을 향해 그어올렸다.
지아의 손가락에서 나온 붉은 선혈의 흔적이 거대한 귀의 몸에 길게 묻어나며 어둠속에서 형광물질이 빛을 발하듯 밝게 빛을 발하였다.
구우우우우우우...!!
괴로운듯한 귀의 낮은 울음소리가 더욱 거세게 숲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치우야!! 』
지아가 다음 공격을 위해 치우가 봉인이 되어있는 문신이 새겨져있는 팔쪽으로 치우의 기운을 모으고 문신을 가리고 있는 천을 풀어내려할 때 거대한 귀의 손이 지아의 몸을 강하게 강타했다.
『아악..!! 』
귀에게 강타당한 지아의 몸이 십여미터 이상 날아가 땅에 길게 몸을 끌린 흔적을 남기며 나가떨어져버렸다.
『쿨럭... 』
안그래도 지친 몸에 아무런 방어없이 귀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서인지 쓰러진 지아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지아야!! 너 괜찮아!! 』
지아는 입에서 쏟아져나온 선혈만큼 의식도 빠져나가버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그래도 금방이라도 쓰러질것만 같이 힘겨웠는데 강한 공격을 받고나니 의식이 날아가버릴것같았다. 지아는 세아쪽을 바라보았지만 의식만큼이나 눈 앞도 흐려져 있어 거대한 귀의 형체만이 어렴풋이 보일뿐이었다. 지아가 힘겹게 한 팔을 들어올리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 나의 의... 의지로.. 봉인된 네게 자유를 허락하노라.. 』
치우가 봉인이 되어있는 팔을 들어올린 지아가 중얼거린 것은 다름아닌 치우의 봉인을 해제하는 주문이었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지아는 상당히 위험한 지경이었다. 이 상황에서 치우의 봉인을 해제하고 그 몸으로 치우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죽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치우가 놀란듯 말했지만 지아는 치우의 말이 들리지 않는듯 그대로 주문을 이어갔다.
『네 거대한.. 히.. 힘을 빌어 』
치우의 다급함과는 달리 지아는 봉인해제의 주문을 끝마치고 말았다. 봉인은 해제되었지만 치우는 지아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다. 봉인해제의 주문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치우가 아무리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었지만 해제 주문이 발동된 이후에는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것은 치우의 마음이었다. 물론.. 그 상황에서 다시 봉인의 주문을 외워버린다면 그때는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겠지만...
『부..부탁해... 제발.. 세..세아를.. 구해줘... 』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지아는 힘겹게 치우에게 말했다. 지아의 힘겨운 부탁이 들리고 나서야 지아의 손을 감싸고 있는 천이 스르르 풀리면서 붉은 기운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그 기운은 지아의 몸을 감싸는 것이 아닌 새로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신에 피를 칠하기라도 한듯 시뻘겋고 세아의 앞에있는 귀만큼이나 거대한 형태가 빠르게 모습을 갖추어갔다.
『치..치우야.. 왜... 왜? 』
평소와 달리 지아의 몸에 자신을 숨기지 안않고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치우를 보던 지아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더이상.. 네 몸을 사용하면.. 넌 정말 죽을거야... 』
이번에도 평상시의 치우에게서는 찿아보기 힘든 아주 낮고 진중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이런식으로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않고 지아의 몸을 사용한 이유는 치우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기위해서였다.
치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방법 역시 조금씩 지아의 수명을 갉아먹는 꼴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절대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치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부족이 모시는 수호신이 따로 있는 이상 치우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신에대한 모독이었고 제정이 완벽히 분리되어 제사장이 대군장만큼이나 힘이 있는 그런 시대에 그것은 아주 큰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죽을것만 같은 상황에서 치우의 모습을 드러내지않기위해 지아의 신체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된다면 지아는 분명 살기어려울것이 확실했다.
구우우우우우우..!!!
완전히 해방되어 버린데다 지아에게 몸을 숨기지않고 직접 모습을 드러낸 치우의 기운에 거대한 귀의 울음이 더욱 거세어졌다. 그 울음에 반응하듯 어느새 치우의 주위에 전쟁터처럼 꽂혀있던 무기들이 일제히 반응을 보이며 흔들리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치우는 무서운 눈으로 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의 이 답답한 상황을 눈에 보이는 귀를 향해 모두 풀어버리겠다는듯이....
위협하듯 커다란 울음소리를 토해내던 귀가 갑자기 치우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치우는 그 모습을 보고도 피하거나 방어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한 팔을 들어올리며 낮게 소리쳤다.
『가라!! 』
그 순간 땅에 꽂혀 요동을 치던 수많은 병기들이 일제히 땅에서부터 떠오르며 무서운 속도로 거대한 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순간 수많은 병기들에의해 난도질당한 거대한 귀가 그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치우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쓰러져있는 귀를 향해 다가갔다. 잠시 귀를 내려다보는듯하던 치우는 그대로 발을 들어올려 그대로 쓰러져있는 귀를 짓뭉개버렸다.
순식간에 거대한 귀를 쓰러트리고 짓눌러버린 치우는 그대로 세아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꺄아아악!! 오..오지마!! 』
세아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치우의 모습이 무서운지 주저앉은채로 뒤쪽으로 조금씩 물러나며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치우가 세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우뚝 서자 더이상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채 겁에 질린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떨고있는 것은 세아만이 아니었다.
세아를 바라보고 있는 치우의 몸도 부들부들 떨려오는듯 보였다.
세아처럼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는듯이 몸을 부르르 떨던 치우가 한쪽팔을 들어올렸다.
『안돼.. 하..하지마... 치..치우야.. 하지마... 』
뒤쪽에서부터 지아의 목소리가 들릴듯말듯 애절하게 들려왔다.
들려져있는 치우의 손이 더욱 심하게 부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아의 말에 멈춰선듯이 보이던 치우의 손이 그대로 세아를 향해 내리쳐졌다.
『꺄아아악!!! 』
또다시 세아의 비명소리가 정적을 찢어놓으며 조용한 숲을 뒤흔들었다.
치우가 내리쳤던 손을 들어올렸다. 치우가 손을 들어올린 그 자리에는 땅이 움푹 패여진채로 치우의 거대한 힘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지아때문에 차마 세아를 내리칠수 없었던 치우는 세아의 다리사이에 있는 땅을 거세게 내리친 것이었다.
세아는 그 공포감에 거의 정신을 잃을듯이 혼비백산해 있었고 다리사이에서는 소변인듯 보이는 액체가 세아의 옷에 진한 얼룩을 그리며 베어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