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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 20.1

짜악~! 짜악~! 짜악~!




살을 파고들어갈것만 같은 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유연하게 구부러져 허공에 떠오른 길다란 채찍이 그 타겟을 향해 내리쳐졌다. 지아는 쉴새없이 몰아쳐대는 채직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찢겨져나가 찢어진 옷의 틈사이로 채찍에의해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있는 피부가 엿보여지고 있었다.



결국, 세아를 어머니께 데리고 가는 일은 실패했다. 지난 밤 세아도 정신이 없었지만 지아 역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만큼 지아는 엉망인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고 치우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아가 생기를 잃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세아를 본지 꼬박 하루가 지난 시간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지아는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에 실패한 대군장쪽에서 세아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어머니조차 만나 볼 수 없었다. 지아가 어머니를 만나기위해 방을 나서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병사들이 지아의 방으로 들이닥쳐 다짜고짜 지아를 데리고 이곳으로 끌고온 것이었다.



『독한 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을정도라니... 』

 


한참동안 실내를 울리던 채찍질 소리가 멈추고 한 남자의 굵은 음성이 들려왔다.
지아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대군장..... 』


 


지아를 이곳으로 붙잡아 온 것은 지아의 추측대로 대군장이었다. 지난 밤 세아와 암살자들까지 동원해 지아를 없애려는 계획에 실패한 대군장의 마음은 다급할 것이었다. 한번 덫에 빠진 자는 최소한 한동안은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아가 제사장이 되는 의식이 치뤄지는 날이 몇 일 남지 않은 이 상황에서 다른 기회를 노려보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했을 것이었고 그 사실이 대군장 자신이 드러날수도 있다는 것까지 감수하고 병사들을 시켜 지아를 잡아오게 하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는 것이리라...




대군장쪽에서 무슨 수를 쓸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상황은 지아에게도 의외였다. 군부는 신녀와 제사장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었다. 제사장의 신변에 무슨 일이 발생했을경우 제사장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군부는 그 책임을 져야했고 신녀정도라면 몰라도 그 대상이 제사장급이라면 그것은 곧 군부의 수장인 대군장의 지위박탈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결국,.. 이 자리에서 지아를 죽여 지아가 제사장이 되는 것을 막는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지아를 해친것이 대군장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차기 제사장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대군장의 수는 상당히 무리가 있는 수였고 스스로 자멸할 수도 있는 자충수일 수도 있었다.



다만.. 한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지아가 보아왔던 대군장은 이렇듯 감정적으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을 처리할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비록 나쁜쪽으로 더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합리적이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졌다고해도 대군장 같은 사람이 이런 무리수를 두었다는 점이 조금은 석연치 않은 생각도 들었다.



『뭐.. 좋아..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해왔는데 너무 쉽게 꺾여져버리는 것도 재미가 없겠지... 』



멀찌감치 떨어진 의자에 앉아있던 대군장이 자리에서 일어서 지아쪽으로 다가왔다.

지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대군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아십니까?? 』

 


짜악~!!!




또다시 살이 찢어질것만 같은 예리한 소리와 함께 지아의 고개가 힘껏 한쪽으로 돌아갔다. 대군장이 대답대신 지아의 뺨을 힘껏 내리친 것이었다. 비록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치 않는 인간이기는 했어도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뤄온 군부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자였다. 단순히 뺨을 한번 친것에 불과했지만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그것도 어젯밤부터 시달려온 지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순간적으로 시야의 사물이 몇 겹으로 겹쳐보이고 한순간 정신이 아득히 날아가버릴것만 같은 강렬한 고통이 지아에게로 전해져왔다.



『당신이라고?? 건방진 년... 태생도 모르는 미천한 년이 감히... 』

 


대군장의 말이 귀를 타고 흘러들어오기는 했지만 아직 뺨을 맞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아에게는 한쪽귀로 흘러들어온 그 말소리가 다른 쪽 귀를 타고 흘러나가버리는듯한 느낌이었다.




사아악!!!

 


의식을 잃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있는 지아의 귀로 이번에는 얇으면서도 거친 마찰음이 들려왔다. 고통에 잔뜩 찌푸려져 있던 지아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커져버렸다. 지아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대군장이 지아의 상의를 힘껏 허리쪽으로 벗겨내버렸기 때문이었다.




『무..무슨 짓을..!!! 』



갑작스런 대군장의 행동에 지아는 당황스러워하며 항의하는 듯한 눈빛으로 대군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군장의 시선은 이미 지아의 얼굴이 아닌 가슴쪽에 못박히듯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아는 대군장의 얼굴에서 음흉하고도 사악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비쩍 말라서 별로 일거라 생각했거늘... 이건 상당히 의외로군 크크킄 탐스러워 』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


 

 


짜악~!!



또다시 지아의 고개가 급격히 한쪽으로 휘어졌다. 강한 일격에의한 압력으로 눈이 튀어나올것만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쪽으로 돌아간 지아의 뺨에 대군장의 손이 와 닿았다. 대군자으이 손이 닿는 순간 지아는 흠짓하고 놀랐지만 조금 전 뺨을 때릴때의 거친 손길이 아닌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손길이었다.



마치 자식을 때린 부모가 맞은곳을 어루만져주듯이 대군장은 자신이 때린 지아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뺨을 어루만지던 손이 지아의 가는 목선을 타고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햇볕에 그을린듯 어두운 대군장의 손이 마치 처음 세상에 나온 새하얀 첫눈처럼 뽀얀 지아의 피부와는 두드러지게 대비되고 있었다.



『흐윽... 』

 


대군장의 손이 목선과 쇄골아래로 내려와 도톰하게 튀어나와있는 지아의 가슴을 움켜쥐자 지아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조금전까지 모질게 채찍질을 당할때까지만해도 낮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않았던 지아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자 대군장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흐흐흐... 역시 아무리 독해보여도 어쩔수 없는 여자라는 것인가? 』



너무 지치쳐서 힘이 빠진탓일까?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소리에 놀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치 아끼는 보물을 다루기라도 하는듯이 지아의 유방을 조심스럽게 감싸쥐고 있던 대군장의 손이 또다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가슴을 지난 대군장의 손이 이번에는 평평하게 펼쳐진 새하얀 대지위를 스치듯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릴때부터 허약했던 탓인지 보통의 여자보다도 훨씬 말라보이는 그래서 더 가냘퍼 보이는 얇은 허리를 지나자 허리에 걸쳐진 허리끈이 더이상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지아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터져버릴듯이 마구잡이로 뛰는 심장의 박동이 지아의 얼굴마저도 붉게 달구고 있는듯 했다. 거대하고도 거친 느낌의 애벌레가 배위를 간지럽히듯 기어가고있었다. 아직은 배꼽아래부분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앞으로 그것이 향할 방향이 어딘지는 지아도 알고있었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난생 처음당해보는 지독한 수치심때문일까?



지금껏 수많은 귀들과 상대하면서 수도없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봤던 지아였지만 그런때에조차도 이렇게 진정시키기 어려울정도로 심장이 뛰었던 기억은 없었다. 귀들과의 싸움에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을때도 들지 않았던 두려움이 지아의 온 몸을 지배해가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지아의 심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로 몸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떨고 있는건가? 크크크.. 역시 천상 계집은 계집일 뿐이군그래.. 』



주체하기 어려울만큼 몸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을만큼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의 반응에 온 몸이 동조하는듯 아무리 떨리는 몸을 진정하려 애를써도 그 떨림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아...안돼!!! 』



지아에게서 절규하는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꼽과 허리띠 사이를 움직이고 있던 대군장의 손이 지아의 하리띠 안쪽을 파고들며 더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그만둬!! 머..멈춰!! 』

 


다급한 외침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대군장의 손은 다리사이의 더욱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갔다. 지아는 있는 힘껏 다리를 오므리며 대군장의 손이 파고들어올 공간을 주지 않으려고 다리를 꼬아대고 있었다.




즐기듯이 그런 지아의 얼굴을 바라보던 대군장의 얼굴표정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꿈틀대듯 다리사이를 파고들던 대군장의 손도 잠시 멈춰섰다.

 


『이건...?? 설마 무모(無毛)란 말인가..?? 』




놀란듯한 얼굴로 지아를 바라보는 대군장의 얼굴...
대군장뿐만이 아니었다. 무모라는 말에 대군장과 같이 있던 그의 부하들 역시 꽤나 놀라는듯한 눈으로 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치스러움에 지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갔다.



『크크크 특이하군.. 특이하고도 놀라워... 』

 

 

『원래부터 무모증인것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깎기라도 한 것일까? 흐흐흐 』


대군장은 자신의 얼굴을 지아의 얼굴에 바짝 밀착시키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와함께 잠시 멈춰섰던 대군장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응...읍... 』

 


아찔한 기분과 함께 또다시 원치않는 소리가 지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간지럽히듯 꿈틀대며 하체에서 움직여대고 있는 대군장의 손이 숨겨진 비소를 열고 지아의 내부로 들어오려 그 입구를 자극해대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묘하게 들끓어오르는듯한 아찔한 느낌... 대군장의 손이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미묘한 느낌이 하체로부터 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거야??!! 정신차려!! 』

 


온 몸의 감각을 지배해나가기 시작하는 미묘한 감정의 사이로 치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치우.."


서서히 늪에 빠져가고 있는 사람에게 던져진 하나의 끈처럼 치우의 목소리가 전신을 지배해나가는 감정선 사이를 뚫고 지아에게로 전해졌다.


『정신 좀 차려봐!!! 너답지 않게 왜그래?? 』

 

『나..나도 잘 모르겠어.. 이상한 느낌이..... 』

 

『아마.. 처음이라서 그럴거야... 그런것에 정신 빼앗기지마.. 』


여전히 찌릿한 느낌은 계속해서 전달되어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치우덕분에 조금은 정신을 차릴수 있게되자 지아는 조금씩 힘이 풀려가는 다리에 힘을주고 다시한번 이를 악물고 대군장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정신을 잃을듯 열뜬듯한 표정을 즐기듯 바라보던 대군장은 생각처럼 쉽게 지아의 비소를 열지못하는데다 지아의 표정이 다시 노려보는듯이 적대적으로 바뀌자 지아의 다리사이에서 손을 떼었다.



『크크.. 역시 만만한 계집은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언제까지 내게 그런 눈빛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데려와!! 』



의외로 쉽게 포기한 대군장이 한쪽에 놓여있는 자신의 의자쪽으로 다가가 앉으며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대군장의 지시를 받은 부하들이 밖으로 나가고 잠시후... 밖으로 나갔던 부하들이 한 노부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지아는 경악을 금치못했다.



『어머니!! 』

 


병사들에게 끌려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지아의 어머니지이자 부족의 제사장이었던 것이었다. 이미 이곳으로 오기전에 모진 고초를 당한듯 온 몸이 밧줄로 묶여있는데다 머리는 헝클어져 산발이 되어있었고 입에는 재갈까지 물려있었지만 그 모습은 분명 지아의 어머니였다.


『대군장!! 네 놈!!!!! 네 놈이 감히!!! 』


퍼억!!!!




실내로 끌려들어온 제사장의 몸이 크게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아가 발악하듯 소리치자 대군장이 제사장의 몸을 힘껏 발로 차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슨짓이야!! 그만둬!!! 』

 


금방이라도 몸을 묶고있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대군장에게 달려들 기세로 소리치는 지아와는 반대로 대군장이 낮은 음성으로 지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랬지? 』

 


대군장이 쓰러져있는 제사장의 얼굴위로 커다란 발을 들어올렸다. 그대로 제사장의 얼굴을 밟아버릴듯한 모습에 지아는 또다시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그만두란말야!! 』



하지만 대군장은 발을 들어올린채로 지아를 바라보며 비웃는듯 비열한 웃음을 흘려내었다. 그 모습에 지아가 당황하며 다시 하지만 이번에는 외치는듯한 소리가 아닌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알았어요.. 그...그만.. 제발.. 그만두세요.. 』

 

 

『크크크.. 그래야지... 이제 조금 나아졌군... 』


대군장은 흡족한듯한 얼굴로 들어올렸던 발을 내리고 다시 자신의 의자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지아는 애처로운 얼굴로 병사들의 손에의해 다시 일으켜지는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대군장이 어머니에게까지 이렇게 직접 손을 쓸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대군장이 제사장을 임의로 잡아 저런 식으로 대하다니... 이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제사장의 영향력이 전무하다 할만한 때에도 이런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 일을 지금 대군장이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일이 이정도 되면 아무리 대군장쪽 사람들이라해도 대군장에게 등을 돌리고 오히려 대군장의 자리를 노리는 자도 나타날 것이었다. 이 상황은 누가봐도 명백히 대군장이 자멸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최소한 지아가 아는 대군장은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그 점이 계속해서 지아에게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더구나 이정도까지 벌였다면 지아는 물론 어머니나 세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도 있었다.



『자.. 이제 협상을 시작해 볼까? 』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놓고..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딴에는 그렇군..... 풀어줘라 』




병사들이 지아에게로 다가와 묶여있던 지아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밧줄에서 자유로워진 지아는 애써 대군장에 의해 벗겨져내린 옷을 추스렸지만 체력이 거의 바닥난 탓인지 금방이라도 털썩 쓰러질듯이 몸을 지탱하고 서있기도 힘겨웠다.



『허튼짓하면 네 어미가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겠지? 』

 

 

『제사장...입니까...? 원하는 것이...? 』

 

『처음에는 그랬지... 』

 

『처음에..는?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

 

『크크크 너도 알겠지? 이 상황에서 네 스스로 제사장자리에서 물러나는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걸... 』


대군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지아가 스스로 제사장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대군장은 책임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그 책임에 대한 대가는 죽음... 죽은자에게는 그 어떤 권력도 필요치 않으니까...




『제사장과 차기 제사장을 씨족회의의 승인도 없이 이렇게 잡아가뒀으니 나 역시 온전히 살아남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

 

 

『이제 내일모레면 열릴 의식에서 네가 스스로 제사장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한다해도 사람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것이야.. 아마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오늘 내일 이틀동안 너희들의 모습이 보이지않는걸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마도 사람들은 네 어미를 찿을것이야.. 너와 네 어미가 사라지지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설령 너와 네 어미를 죽여 없앤다고 할지라도 그 책임 역시 내게 있으니..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지... 』

 

『하지만... 만약... 이틀후 제사장이 될 네가 제사장이 될 자격이 없는... 지금껏 아무도 모르게 신녀로서 신성한 규율을 어긴 여자라면 어떨까? 』

 

『그..그게 무슨...??!! 』

 

『흐흐흐..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군... 내가 원하는 것은 이틀 후 의식에서 네 스스로 사람들앞에서 증명해보이라는 거야... 네가 신따위와는 관계없이 색을 밝히는 음란한 계집이라는 사실을 네 스스로 사람들앞에서 밝히라는 거야.. 물론.. 나는 우연치않게 그 사실을 알아내 잠시 너를 조사한 것 뿐이고 말이야..』

 

『그런 말도 안되는...!! 그런다고 사람들이 믿을 것... 』

 

『말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지.. 사람들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중요한 거야...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믿는것... 그것이 바로 진실이니까... 아무리 거짓이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그건 진실이지... 사람들이 네 말을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네가 해야할 일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




대군장의 말대로 된다면 확실히 대군장은 이 일에대해 면책할 길이 생기는 것이고 지아는 자연스럽게 차기 제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사형을 당하거나 아니면 부족에서 쫓겨나는 일을 당해야할 것이었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대군장은 지금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있었고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복잡하게 생각이 엃혀가고 있는 지아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재갈이 물려 말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아를 향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어차피 의식에는 지아뿐만이 아닌 현 제사장인 어머니도 같이 참여를 해야만 했다. 제사장을 물려주는 자리에 현재의 제사장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고 그렇게 보면 이 제안을 수락한다고하고 의식이 있는날 대군장의 제안대로 하지 않아도 그 상황에서 대군장이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은 없을것이었다. 하지만 대군장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을리는 만무했기에 지아는 대군장의 마음을 떠보는 의미에서 대군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거절한다면.....? 』

 

 

『아니.. 넌 거절할 수 없어... 』


대군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아쪽으로 다가왔다. 지아에게 다가온 대군장이 갑작스럽게 지아의 손을 잡는가 싶더니 지아의 손을 거칠게 자신쪽으로 낚아챘다. 하지만 대군장의 손에 끌려간것은 지아의 손이 아닌 지아의 손에 둘러싸여있던 새하얀 천이었다. 손을 보호하는 것처럼 언제나 손에 두르고 다니던... 하지만 정작 목적은 손의 보호가 아닌 치우의 존재를 가리기위했던 그 천이 대군장의 손에의해 벗겨져 나가버렸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황급히 다른 손으로 치우의 문양을 덮으며 손을 가렸다.


『도깨비라고 부른다고 했지 아마..? 』

 

『어..어떻게 그걸...? 』

 

『어젯밤... 세아 혼자서 돌아왔을때는 절망적이었다... 성공한다해도 그 뒷수습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는데 실패까지 했으니... 하지만 세아 그 계집애는 널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을 가지고 왔더군... 덕분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 』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난 이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다.. 』


지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세아에게까지 비밀로 했던 치우에 관한 일을 대군장이 알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수호신을 모셔야할 신녀가 수호신이 아닌 다른 귀를 몸안에 품고 있는다는건 엄연히 신녀의 규율을 위반한 것이고 그것은 상당히 중한 죄였다.




문제는 그것이 지아에게만 처벌이 내려지는 것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미 지아는 차기 제사장으로 씨족회의에서 승인까지 받은 몸이었고 그런 지아를 추천한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결국 어머니는 귀와 내통하고있는 불결한 자를 제사장으로 내세우려 한 것이 되는 셈이었다. 더구나 이번 경우는 보편적으로 혈통으로 이어지는 제사장의 후임을 비록 딸이기는 하지만 비혈통으로 승계시킨 경우였으니 더욱 더 의심을 살 수 있을만한 일이었다.



『자.. 이제 결정을 내려야겠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너 하나로 끝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너는 물론 네 어미까지 화를 면치 못하게 되겠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되도록.. 네가 죽지는 않도록 선처해주지... 추방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어차피 넌 우리부족 사람도 아니었잖나? 』



지아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지아가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설사 지아가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어머니를 희생 시킬수는 없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라고는 하지만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아는 아주 오래전 어렸을때 그 생을 다했을 것이었다.

 


"어머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지아가 두 눈을 감았다. 이미 마음속에 결정은 내려졌다.
하지만 선듯 입에서 말이 나오지가 않고 있었다.




『지아.. 너 설마...?? 』

 


또다시 들려오는 치우의 목소리....
지아는 왠지 치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오고 있었다.


『미안해... 치우야... 』

 

『그런 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

 

『어쩔수 없어... 이 방법밖에는... 』

 

『차라리... 다 죽여버리자...!! 지아야.. 봉인을 풀어.. 지금 네 몸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직접 나서면 돼.. 다 죽여버리면 아무도 모를거아냐.. 그럼 끝나는 일이야.. 네가 그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어!! 』

 

『그러지마.. 네가 더구나 네 본모습을 보이면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야... 수치스럽고 분하지만... 어머니가 무사할 수 있으면.. 그럼 됐어.. 난... 참을 수 있어... 』

 

『난 못 참아!! 네가 그 꼴을 당하는걸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난 절대 그렇게 못해!! 』

 

『치우야... 난 네가 좋아.. 언제나 고맙고 항상 갇혀있는 네게 미안했어...  』

 

『나도 내가 좋아서 한 일이야!! 지금 그런은 말할때가 아니잖아!! 』

 

『차라리 잘 됐어.. 저 사람말처럼... 어차피 난 이 부족사람도 아닌걸.. 살아남는다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가서.. 같이.. 살자.. 그러니까.. 날 생각한다면 그냥.. 잠자코 있어줘... 난 괜찮아.... 네가.. 같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난.. 괜찮아...  』

 

『지아야!! 』

 

『어머니나 세아때문이기도 하지만 난.. 네가 사람을 해치는게 싫어.. 그런 네 모습을 보면.. 자꾸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단 말야... 약속해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나서지 않겠다고...  』

 

『 ..... 』

 

『치우야.. 넌.. 언제나 내 부탁을 들어줬지?... 부탁할게.. 』

 

『알았...어... 네가 원하는거라면... 』

 

『고마워..  』




지아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대군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더이상 어머니에게 해를 가하지 마세요.. 그리고 대군장으로서 어머니와 세아의 안전은 어떤일이 있어도 보장하셔야합니다... 』

 

 

『흐흐흐 결정을 했나보군... 물론이지.. 그건 걱정하지 말라구.. 』

 

『 .....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하하하하핫.. 그래.. 그래야지.. 좋은 결정이야 크하하핫 』


말을 마친 지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고개를 떨군 지아의 귀에 떠나갈듯한 대군장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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