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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협야화(情俠冶話) 10 회


▣ ▣  정협야화(情俠冶話)  ▣ ▣


 
▣ 제 10 회  광란(狂亂)의 최후(最後)


두려운 마음, 분명 그 느낌이었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 이 어수선한 틈을 타 태연함을 가장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는 또 한사람의 인물, 몽아는 자신의 짐작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랬다.
아니다. 아닐 게야!
깊이 부정을 해봐도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밤을 도와 단걸음에 언사로 달려온 몽아의 일행이 언사분원으로 뛰어들자 무정랑이 온몸에 선혈을 뒤집어쓰고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 대사형, 어찌된 일이오? ”


무정랑은 몽아를 보자 이제는 안심이 된다는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난 괜찮다. 내궁으로 들어가 사부님을 살펴보아라. ”


“ 알았소. 대형수와 효정사저는 대사형의 부상을 살펴주시오. 소제는 사부에게 가리다. ”


내궁을 급히 찾은 몽아의 눈앞에 만여궁주가 야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사부, 무슨 일이 있었어? ”


예의 그 멍청한 표정으로 만여궁주에게 다가가는 순간,


- 휘이잉! 퍽!


궁주의 손에서 뻗어난 한줄기 경풍(勁風)이 가차없이 날아와 몽아의 복부를 강타했다.


“ 억! 사부, 왜 이러는 거야! ”


몽아가 두 손으로 복부를 감싸며 내궁의 바닥에 뒹굴었다.


“ 시끄럽다, 이놈. 어서 네 몸이 지닌 그 비록의 구결을 모두 쏟아내지 못할까! ”


이제는 눈에 뵈는 것도 없는 듯했다.
사십 여년 쌓아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처절함이었다. 중원 천지에 아무도 자신을 넘보지 못할 무공이라 자부해 왔다. 또한 강호무림인이 떼거리로 몰려와 달려들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생명부지의 복면인에게 참혹하게 당했다. 대제자 무정랑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복면인이 급히 도주를 하지 않았다면 목숨조차 보존치 못할 급박한 순간이었다.
도주하는 복면인을 추격한 무정랑조차도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졌다. 그 같은 수모를 견디다 못해, 실내로 들어서는 몽아를 불문곡직 다그친 것이다.


“ 사부... 무, 무슨? ”


“ 시끄럽다, 이놈아. 내, 네놈이 지닌 그 비급의 무공을 터득하기 위해 품어주고 아껴주었건만 이젠 그조차 귀찮다. 죽기 싫으면 어서 발설하라! ”


더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몽아도 만여궁주가 이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그 어떤 상황을 인지하였는지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또 다른 초조함이 묻어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만여궁주의 얼굴, 무언가 당황해 하는 그 몸가짐, 몽아를 바라보는 그 표정 속에는 무언가 쫓기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 으음, 아무래도 전과는 다르다. 내 짐작이 분명하다면 사부도 누군가에 의해 섭혼들 당했다. 그리고 사부를 이용해 나의 무공을 들여다 보려한다. 누굴까? 이 중원에 사부를 위협 할 만한 인물이 과연 누굴까? ’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던 몽아의 얼굴에 결심의 표정이 떠올랐다.


‘ 우선 사부의 정신을 바르게 돌려놓자. 그리고 다음을 대비해야겠다. ’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죄어드는 보이지 않는 손, 만여궁주를 통해 그 정체를 밝히려는 생각이었다.


“ 정신 차리시오 사부, 비록을 모두 보여드리리까? ”


갑자기 몽아의 어투가 달라졌다.


“ 어어? 이놈이? ”


눈앞의 제가가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어수룩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당당한 장부가 눈앞에 버티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제정신이 아닌 만여궁주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 사부, 이리로 오십시오. 사부가 그토록 원하던 무공을 알려드리리다. ”


손을 들어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니 만여궁주의 신형이 속절없이 이끌려 왔다.


“ 이놈! 지금껏 이 사부를 기망(欺罔)해 왔구나! 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


다리에 힘을 가해, 끌려가던 신형을 단단히 바닥에 멈추어 서며 두 손을 번개같이 앞으로 내밀었다.


- 번쩍! 그으응!


붉은 빛이 내궁의 살내에 가득 퍼졌다.
그 홍광(紅光)속에 숨겨진 가공할 진기 홍연수뢰장(紅煙遂雷掌)의 장풍이 몽아의 요혈을 노리고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 엇! 사부, 공력을 운용하지 마시오. 아차, 늦었다! ”


지금껏 이 어린놈에게 속아왔다는 마음에 울화가 치밀어 한순간에 펼쳐낸 절공, 그러나 그 후의 상황을 미리 짐작해 사부를 살며시 끌어당기려 했던 몽아였다.
누군가에 의해 지극한 음독(淫毒)에 중독된 만여궁주, 그 상태를 이미 파악한 몽아가 궁주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암암리 해독을 하려 시도했던 일이 무산되고 말았다. 마음이 급해지는 그 순간,


- 쿵! 털썩!


단 한번 손을 내밀어 공격을 가한 만여궁주의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 되며 꼿꼿한 자세 그대로 선 자리에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 어허, 이런! ”


넘어진 만여궁주를 살피던 몽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여궁주의 옷차림에 놀란 것이다.
넘어져 휘말려 놀라간 옷 사이로 드러난 모습, 아예 속옷조차 없는 무방비의 나신, 사지를 쭉 뻗고 널브러진 하복부 아래는 거뭇한 거웃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헐떡거리는 숨결, 당장이라도 색화를 제거하지 않으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 치밀한 놈이다. 내가 사부와 어울려 욕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내 머릿속의 무공구결이 한순간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조차도 사부를 겁박해 알아내었을 것! 사부의 지근(至近) 인물임이 분명하다. ’


뭔가가 있다.
도원궁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나 그 실체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는 흘러가는 대로 맡겨 두는 것이 상책이다.
실체의 확인보다 지금 더욱 급한 일은 만여궁주의 육신을 달래 주화입마에 빠져드는 일을 방지하는 일이 다급한 순간이었다.


“ 허흑, 얘야! ”


궁주는 이미 발광 작전에 놓였다. 그대로 두면 정신도 몸도 황폐해 지고 말 것이다. 참다 견디지 못한 궁주의 두 무릎은 살며시 벌어지고 있었다.


‘ 이상하다. 사부의 행동이 오늘은 분명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지금 막 이곳에 다가온 누군가의 시선이 주시하고 있다. ’


이왕 벌어진 일,
몽아는 스스로 전과 꼭 같은 행동을 이루어, 실내를 살피는 의문의 인물을 끌어들이려 작정했다. 마음을 다잡고 만여궁주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실로 너무나 고혹스러운 자태다.
똑바로 누워 미미하게 꿈틀거리는 움직임, 그 조그만 움직임이 몽아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 하학, 하하학! ”


참고 있던 신음이 입술을 열고 새어 나온다. 그 신음 소리를 신호삼아 바닥에 뉘여 진 만여궁주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 잠깐만. 얘야... 잠깐만. 가슴이 답답하구나. 엎드려야겠다. ”


깜짝 놀랐다.
아무리 흥분에 겨워 이성을 잃어가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사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치밀어 오르는 관능에 못 이겨 어쩌면 스스로 자학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 사부, 왜 그러시오? ”


“ 아니다. 이렇게 엎드려 네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뿐이다. ”


단단히 세뇌(洗腦)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몽아의 음심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의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 아닌데? 사부가 이런 자세를 취하려는 데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요! ”


“ 호호... 이유는 무슨. 내가 내 자신을 견디지 못해 네놈에게 달려든 것, 누굴 탓할 것 없이 오늘은 이 사부가 하고픈 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야! ”


손과 무릎을 바닥에 짚고 허리를 들어 올렸다.


“ 허헉! ”


만여궁주의 둔부가 몽아의 눈앞에 훤히 드러났다.
어쩌면 모든 걸 짐작 하고 있는 사부의 심중(心中)이 아닌가? 어쩌면 만여궁주는 모든 사태를 파악하고 마음속으로 모진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 누구를 탓해요? ”  


“ 아니... 혼자 소리다. 나이든 나조차 욕망이 물들어 이토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후후후, 젊디젊은 애들이 오죽 하겠는가! ”


“ 사... 사부! ”


“ 아니다. 어서 이 나이든 몸을 달래주지 않고 무얼 하느냐? 내, 네놈의 모든 걸 받을 게야. 지금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어서 나를 유린하지 못하느냐! 내가 욕정에 못 견뎌 고함을 지를 때까지 네놈이 나를 울려야 한다! ”


자조 섞인 말이었다.
무언가 남을 탓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원초적인 욕정 또한 몸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 알았소이다, 사부! ”


만여궁주는 이 순간만큼은 잊고 싶은 거다.
지금의 상황을 열정 속에 묻어, 타오르는 육체의 광란에 파묻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은 갈망인 것이었다.


“ 어서, 이놈아! ”


유난히 더 몸을 뒤틀며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한번으로 들뜬 육신을 전부 불사르려는 듯 몸 구석구석 모공 하나까지 관능의 열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우우욱... 으윽! ”


온몸이 활처럼 뒤로 휘어졌다. 그리고 그 중년의 나신은 전율을 일으키고 있었다.


‘ 흐흑, 내가 뭐하는 짓이지? 내가 왜 이렇게 못 견뎌 하는 게지? ’


스스로의 행위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그만 두지를 못하는 만여궁주의 마음이었다.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환락의 열정, 꼬여드는 허벅지의 감각, 저절로 움직이는 하문속의 살점들, 꽉 다문 입속에서 광란의 신음이 터져 나오려했다.


“ 으흐흑! ”


참을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비음에 스스로 놀라, 혹시 들리지나 않았을까 방문 밖 동정에 귀를 기울이는 사부의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 안돼! 가까이들 오지마! ”


아차,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우르르르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 그들이 누군가 짐작하고 있는 그녀였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만여궁주, 독공을 당해 오직 스스로를 자신의 의지로 가늠하지 못할 뿐 오감(五感)은 멀쩡했다.


“ 휴우,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


몽아의 가슴에 기대어 왔다. 뜨거운 열기가 몽아의 가슴속 깊이 전해진다. 몽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만여궁주의 한숨소리가 몽아의 귀를 적셨다.


“ 사부, 염려마세요. 짐작한 일이외다. ”


“ 그런가? ”


만여궁주가 곤혹스러운 듯 실눈을 뜨고 몽아를 바라보았다.


 * * * * * * * * * * * * * * * * * *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들더니 노기가 가득한 호통소리가 몽아의 귀를 울렸다.


“ 이 황음무도한 놈, 과연 듣던 대로구나! 스승을 겁박해 간(姦)하다니 진정 쳐 죽일 놈이로다! ”


수많은 강호 무림인들이 모두 내궁으로 모여들었다. 헌데 이상하게도 여천을 비롯한 언사분원의 제자들도 내궁까지 침입한 무림인들을 제지 않고 함께 어울려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는 몽아를 향해 손을 들어 일시에 내려칠 자세였다. 바로그때,


“ 아니오. 오해외다. 잠시만 멈추시오! ”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비틀거리며 무림인들의 곁으로 혼신을 다해 다가온 무정랑이 그게 아니라는 듯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무정랑이 힘겹게 손을 휘두르는 그 광경이 눈 속에 또렷이 들어오는 순간 몽아의 눈에 번쩍 기광이 흘렀다. 그리고,


“ 억! 으윽! ”


만여궁주가 비명을 내지르며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더 이상 한마디 말도 없이 고개가 옆으로 툭 꺾였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보는 앞에서 이리도 쉬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 사... 사제! 사제가 암경을 가해 사부의 목숨을 끊다니? 꼭 그리 해야만 했었나? ”


무정랑의 입에서 비통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저 패륜아를 그냥 두면 안 된다. 죽여라! ”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아닌가? 무정랑의 외침소리를 들으니 몽아가 사부를 암암리 살해한 것이 분명하다. 무림인들이 모두 나섰다. 그들을 바라보는 몽아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났다.


“ 하하하... 으하하하! 대사형, 내가 사부를 죽였단 말인가? 크하하... 크하하하! ”


내궁의 실내에 몽아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어느새 그의 신형은 그림자로 변해 군웅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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