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밑구멍은 시숙님만 기다려요.
제 밑구멍은 시숙님만 기다려요.
후후후 내 나이 40살 이 나이면 아마 좆 맛을 제대로 느끼고 알 나이 아닌가요?
그런데 문제는 남편입니다.
전기 배선 기술자인 남편은 주로 지방의 새로운 공장이나 큰 건물을 신축하는 곳에서 일을 하기에 한 달이면 2/3이상을 집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지방의 여관에서 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도 제수가 좋을 경우 주말에 집으로 와 토요일 일요일을 저와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보내지만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경우 주말에 쉬기는커녕 밤을 새워가며 공기를 맞추느라 일을 하였답니다.
이러니 저의 갈증은 정말이지 밥보다 남편의 물건이 그리울 때가 더 많았답니다.
하자만 어쩝니까?
먹고 살자면 남편이 벌어야 하고 또 기술이라고 가진 것이 신축공장이나 건물의 전기 배선 기술이고 그런 일은 주로 지방의 논공단지에 많이 있다 보니 본의 아닌 외박이 잦은 것을 가지고 시비를 할 수는 없잖아요.
애의 머리가 조금 크니 따로 놀려고 하지 어미인 저와 같이 있기를 싫어하면 친구들과 어울리니 남편이 그리워지는 것 이상의 소외감까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 재작년부터 심심풀이 소일 감을 찾던 중에 한 가지 소일 감을 찾았고 그 것을 작년부터 실행을 하였답니다.
플라스틱 빵 통 하면 아시나요.
그 것으로 뭘 하느냐고요.
그 소일거리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파트 옥상에 그 빵 통을 구하여서 거기에다가 모종을 파는 곳에서 산 화분 흙 갈이용 흙을 사서 채워 넣고는 역시 같은 곳에서 파는 고추 모종이며 상추 모종 쑥갓 모종 등의 각종 모종을 사서 심었죠.
어떻게 그런 소일거리를 만들 수 있었느냐면 우리 아파트가 15층 건물인데 제가 사는 층이 15층이라 현관문만 열고 한 층만 올라가면 되기에 긴 호스도 아닌 짧은 호수를 연결하며 모종에 물을 주면 되기에 아주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시작을 하였답니다.
정말이지 남편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현관을 마주 한 집의 아주머니에게 상추와 풋고추를 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오면 무 농약에 무 비료의 완전 자연식품이라고 자랑까지 하며 주기도 하였고 아예 조금만 달라고 오는 경우가지 생기니 그 재미가ㅣ 얼마나 쏠쏠하였겠습니까.
이 모종에서는 몇 개가 열었고 또 열고 있으며 얼마 있으면 따도 되겠는지 아예 일기처럼 작성을 해 가며 키우는 재미에 혼이 빠져 남편을 잊기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어느 날인가부터 고추가 몇 개씩 없어지기 시작하였고 상추며 기타 푸성귀도 제가 해 놓은 것과는 달리 누군가가 손을 대는 것이 확실하였습니다.
처음엔 앞집 아주머니를 의심을 하였죠.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저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 따 갔다면 저에게 달라고 하겠어요?
아니잖아요.
또 어쩌다 보면 누런 것이 묻은 화장지가 뒹굴기도 한 것으로 봐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는 학생 또래의 남녀 애들이 와서 빠구리를 하고 가지 않았나 하여 반상회를 하면서 경비 아저씨에게 단속을 강화하여 달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말을 하기라도 일층에 사는 젊은 새댁이 번번이 나서서 경비아저씨를 두둔하였으나 전 젊은 새댁의 기새에 눌러 항상 끝을 보지 못 하고 참아야 하였습니다.
“!”밤 늦은 시각 승강기가 우리 층에서 멈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5층 꼭대기인지라 조금만 주의하여 들으면 승강기가 도착을 한 소리는 그대로 들려요.
그런데 앞집의 연세가 저 보다 훨씬 많으신 내외는 이미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을 시간인데 누구인가 하고 인터폰 화면을 켜고 봤습니다.
왠 여자가 치마차림으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전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14층의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놀랐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경비를 서는 60대 초반의 아저씨였고 그 아저씨는 치마차림의 여자가 올라가던 계단을 오르면서 앞집과 우리 집을 번갈아 봤습니다.
모습이 인터폰 화면에서 사라지자 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그들이 사라진 옥상으로 향하였습니다.
“새댁 이러다가 발각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자꾸 불러”경비 아저씨의 목소리였습니다.
“아이 아저씨도 좋으면서 왜 그래요”누구인지 모르지만 젊은 여자였습니다.
“그야 맞는 말이지만 이러다가 해고당하면 큰일인데 어서 엎드려요”하고 말하자
“호호호 저도 아저씨 맛 보곤 우리 집 그이하고 하면 재미가 없어요.”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 팬티를 벗은 것 같았습니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이어 펌프질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학, 아 여보 더세게, 더깊이 나 죽엇, 아학, 어서,아윽,”여자의 신음소리도 들렸고요.
그 소리만으로도 이미 저는 흥분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퍽-----윽! 억,퍽 퍽 퍽”경비 아저씨는 용을 써가며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아아........좋아....미칠 것만 같애......흐윽.....!”여자의 신음이 절 더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경비 아저씨의 떡 치는 소리는 제 손으로 치마를 들어 올리게 만들었고
“아아흑.......깊이......아아....내 자기야....아흐윽....좋아!”누구인지 모르는 젊은 여자의 신음은 그 손을 팬티 안까지 넣게 만들었으며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연이어 들리는 경비 아저씨의 펌프질 소리는 제 손바닥을 보지둔덕에 가게 만들었고
“악…아…아…..악….악………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여자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은 손바닥으로 보지둔덕을 문지르게 만들기에 충분한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
“아~흑”저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고 놀란 나머지 다른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하였습니다.
“악…악…….아….악…음……그래….거기…..거기야…..악..악……아….미치겠어….아……악…”그런 전후의 사정을 모르는 젊은 여자의 신음은 저를 더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경비 아저씨도 늙어서 별 수가 없이 보였기에 평소에 보고도 남자란 생각은 안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아...자기야...조금만..빨리...해줘....으응....그..그래..아아..좋아...”졂은 년이 60이 넘은 경비에게 자기야 라고 부르는 것이 듣기 싫었습니다.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젊은이 못잖은 힘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악...여보...아아...너무...너무...좋아...최고야...자기야...”아예 자기야 보다 더 한 여보라고 부르는 데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펌프질의 속도에 비례하여 팬티 안에 든 제 손놀림도 빨라졌습니다.
“더 먹어...버려...아아...”젊은 여자의 말에는 제 마음의 말도 포함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옥상으로 나가 그 젊은 여자와 나란히 엎드려 교대로 쑤셔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우리 남편과 할 때보다 더 힘찬 소리는 저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하앙...아아..여보...여보...나...몸이..타는..거..같아...아앙...여보...”전의 경우 40이 다 되어서 참 다운 남편 맛을 알게 되었는데 경비 아저씨와 떡을 치고 있는 젊은 년은 일찍 남자의 맛을 안 모양이었습니다.
“퍽퍽퍽,퍽-억-억, 퍽퍽퍽, 푸-욱, 퍽-으-억”경비아저씨의 기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습니다.
“하앙...몰라아....아아..여보...나...이상해....하악...조금만...빠르게...으응...여보....”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대단한 경비아저씨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나도...나올..거...같아...아아...여보...”발각이 되면 모두가 곤란하겠기에 실제 모습은 보질 못 하지만 rm 모습은 눈앞에 선 하였습니다.
“그래요...하앙....싸...싸..줘.....아앙...”제 손바닥은 아주 흥건하였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으~~~~~~”경비아저씨의 신음소리가 게임의 아웃을 알게 하였습니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내려와 집안에서 인터폰 화면을 켜고 눈을 때지 아니하였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먼저 바지춤을 치켜 올리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잠시 후 내려온 여자가 저에게 두 번을 놀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보인 손에 쥔 고추와 푸성귀가 저를 놀라게 만들었고 연이어 보인 그 젊은 여자의 정체가 더 놀라게 만들었는데 반상회를 하면서 제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던 일층의 젊은 새댁이라고 부르던 년이었습니다.
“이봐! 남의 것 마구 뜯어 가면 어쩌자는 거야?”현관 문을 활짝 열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이 심야에 옥상에 뭐 하러 올라갔지? 같이 가 봐 어서”덜미를 잡은 김에 완전히 제압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팔목을 잡자
“미....미안해요. 남편하고 다투고는 밖에 나가면 술이나 마시겠기에 옥상에서 바람이나 쐬다가 자....... 죄송해요”젊은 새댁이 얼버무렸습니다.
옥상에 데리고 가서 증거를 찾아 끝장을 내려고 하였으나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기에 주는 푸성귀들을 받고는 보냈고 얼마 안 가서 그 젊은 새댁이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감으로서 저의 고추나 푸성귀는 온전하게 가꾼 수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재미를 봤던 저는 올해도 작년에 흙을 담아 둔 빵 통에다가 고추며 상추 등등의 푸성귀 모종을 사 와 심자 앞의 형님은 어디서 구하였는지 콩나물시루 몇 개와 길 다란 상추 밭이란 이름의 상표를 가진 화분 비슷한 것을 구입해서는 저처럼 고추 상추 등의 푸성귀를 심었습니다.
이웃 간에 옥상을 이용한 농사 놀이는 친목을 더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달에 몇 번 집에 들르는 남편과도 그 아주머니 부부와는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을 하였고 그 발전은 농도를 더 하여 남자의 경우 남편보다(남편47세)16살 많고 저보다는(전 남편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 금년 40살임) 무려 분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23살이나 많은 아버지 같은 분을 감히 시숙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오면 아무 문제도 아니었지만 긴 기간 동안 지방에서 올라오지 못 할 경우 힘든 일이나 무거운 것을 움직여야 할 경우에는 항상 시숙님에게 부탁을 하고 시숙님과 형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나고 만 것입니다.
시골의 논공단지 근처의 병원으로 급히 이송을 하면서 저에게 그런 끔직한 소식을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전하여 주었습니다.
놀란 나머지 마침 하던 가게의(동네 미용실을 미용사 고용하고 운영함. 미용 기술은 있지만 자기는 직접 안 하고)휴일이라 집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앞집 형님에게 말을 하였더니 그 형님이 전화를 하였고 그리고 승강이를 타고 형님하고 급히 아파트 밑으로 갔더니 언제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시숙님이 자동차 시동을 켜 놓고 있다가는 형님과 제가 내려가서는 타자마자 차를 출발시켜 병원으로 갔고 응급 처리만 한 후에 저는 구급차에 남편과 함께 큰 병원으로 이송을 하였고 시숙님 내외분은 승용차로 뒤따랐습니다.
집과 가까운 병원이라 시숙님 내외분은 수시로 병원에 왔습니다만 중환자실에 있었기에 변변히 뵙지 못 하고 유리창 너머로 손만 흔들어주거나 잠시 나와 상태를 이야기 하는 정도였지만 제가 아는 남편의 상태도 그저 안 좋고 그러나 생명의 위험에서는 벗어났다는 정도가 전부였기에 형님 내외분도 한 숨만 쉬며 저에게 위로를 할 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다가 전년 퇴임을 하고 집에서 노시면서 운동이나 다니시던 시숙님에게 남편의 병문안은 소일거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혼수상태로 검사만 계속 받아야 하였습니다.
응급실을 통하여 입원을 하였고 중환자실에서 있으며 온갖 검사를 받고 3일 후 의사가 저에게 면담을 요구하였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일어나지 못 하면 어떻게 될 지 말입니다.
그래서 형님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의 면담을 함께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형님은 결혼을 할 신혼부부의 웨딩 촬영이 있는 날이라 자기는 갈 수가 없다면서 시숙님에게 가라고 해서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안 가서 시숙님이 거친 호흡과 함게 나타나셨습니다.
담당 교수님께 시숙님과 함께 갔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남자 구실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앞에는 정말이지 너무나 좋은 소식이었지만 뒤에 나온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시숙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에 남편이 형님이라도 불렀고 저 역시 시숙님이라고 부르던 분 앞에서 들은 그 말에는 어떤 감정의 표현도 할 수가 없었기에 말 그대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으로만 쓰린 가슴을 달래야 하였지만 겉으로는 저도 모르게 닭 똥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흐름을 볼이 뜨거워지는 감촉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시숙님은 그런 저를 보시고는 아무 말도 못 하시면서 휴지를 슬며시 건네었습니다.
“아마 정신은 오늘 저녁이면 들어올 것이고 별 다른 외상이 크게 없기에 한두 달 입원을 하고 안정을 취하면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지만 무리한 일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담당 교수님이 계속하여 말하자
“일상생활이라 하셨는데 어디까지 가능할까요?”시숙님이 차분하게 물었습니다.
“뭐 가벼운 조깅이나 산책 정도로 보면 되겠죠.”교수님이 말하자
“발기가 안 되나요? 그럼 척추에 손상이 있단 말인가요?”다시 묻자
“예.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떨어지며 척추에 많은 무리가 갔습니다.”하고 말하는 동안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눈물만 흘려야 하였습니다.
“흑흑흑 시숙님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교수님 방에서 나오자마자 앞에 있던 의자에 주저앉으며 흐느꼈습니다.
“제수씨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으로 나갑시다.”하며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부축을 하였습니다.
대학병원이라 조용한 곳은 대단히 많았습니다.
시숙님을 다라 나온 곳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잠시 시숙님이 어디론가 갔습니다.
안 그래도 40살 나이로 좆 맛을 제대로 느끼는 저인데 그런 저에게 남편의 좆 맛을 보지 못 한다는 말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시숙님을 따라 한적한 병원의 정원 구석에 혼자 있자니 슬픔은 더 하였고 기어이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통곡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수씨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일단 동생을 안정을 시켜야 하고요. 짜 이 뜨거운 커피 마시면서 안정을 취해요”언제 뽑아왔던지 제가 밥처럼 먹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이 시숙님 손에 쥐어져 있고 그 중에 한잔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인간이라 묘하데요.
그런 절박하고 비통한 순간에도 시숙님이 커피를 건네자 훌쩍거리며 마시는 저를 발견 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숙님이 빼 온 커피 한잔에 남편이 성불구자가 된 사실도 뒷전으로 되어버린 더러운 년의 속내를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더러운 인간의 양면성을 저란 년도 그렇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옆에 나란히 앉아 한 손에 든 커피를 들이키면서 다른 한 손으로 저를 위로하면서 어루만지는 시숙님의 손길의 따스함을 느꼈고 또 남편을 아주 좋은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던 시숙님의 손에서 저도 모르게 남자의 숨결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시숙님 이젠 어쩌죠?”저도 모르게 고개를 시숙님 어깨에 의지하며 물었습니다.
“휴~글쎄요 동생이 깨어나서 알게 되면 큰일인데......”저와 달리 시숙님은 친동생도 아닌 의동생인 제 남편의 염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맙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섭섭하였습니다.
고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사고에 의한 성불구자가 된 남편이지만 힘든 일이 아닌 일상생활은 할 수다 있다지만 성불구자가 아닌 제가 성에 대항 욕구를 참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형벌 중에서도 아주 혹독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인데 저를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욕이 있다고 하여도 발기가 안 되는 남편 걱정만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나 섭섭하고 야속하였습니다.
“제수씨야 정 궁하면 밖에다 남자 하나 만들면 그만이지만 동생은 어쩌지 휴~~~~”
“!”예상도 하지 못 한 말이 시숙님 입에서 나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기다렸던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죠?”시숙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의 속내를 들킨 것처럼 생각이 되어 말을 하지 못 하였습니다.
“정 급하면 늙었지만..........”하고 말을 흐리더니 제 손을 잡았습니다.
“시......시숙님”제 몸이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일단 중환자실에 가서 동생 상태부터 보고 옵시다.”하며 시숙님에 제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말의 뜻을 모르고 저는 시숙님에게 손이 잡힌 체 일어났고 그리고 시숙님과 함께 남편이 누워있는 중환자실로 갔습니다.
담당 간호사 말에 따르면 각종 힘든 검사 관계로 마취 상태인데 마취가 깨어나려면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있어야 한다면 그 동안 나가서 쉬었다 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수씨 그럼 쉬었다가 다시 오죠”시숙님이 말하였습니다.
“...........”전 묵묵히 남편의 모습을 보다가는 시숙님과 함께 중환자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묵묵히 시숙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시숙님의 발걸음만 보고 따르던 제가 시숙님의 발걸음이 멈추자 고개를 들었더니 거긴 바로 여관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곳의 입구였습니다.
“내가 동생 옆에 가 지킬 것이니 동생 간병 때문에 피곤 할 것인데 들어가서 발 뻗고 쉬었다 나와요”하며 제의 등을 밀더니 마지 못 해 들어가자 카운터에 계산을 하고는 키를 주려고 하고는 그냥 나가려 들지 뭐예요.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성불구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은 직후에 말입니다.
사람이라면 옆에 있으면서 위로를 해 주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저 보고만 발 뻗고 쉬라고 한다고 해서 쉬겠어요?
“............같이 들어가요”힘들게 말을 하자
“!”시숙님이 대답을 하지 않고 저를 빤히 봤습니다.
“혼자 있기 무서워요”용기가 생겼습니다.
시숙님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계단을 올랐습니다.
저도 묵묵히 시숙님 뒤를 따랐습니다.
시숙님이 키에 붙은 방의 번호를 보더니 그 방 앞에서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