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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륜 - 2

3.


다행히 그 날 이후로는 그런 요상한 꿈은 꾸지 않았다.


아마도 항상 함께하던 남편이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는 것이 불안해서 그런 꿈을 꾼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과거 민재가 군대에 갔을 때도 종종 무서운 악몽에 시달렸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함이 평소의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꿈을 꾸게 한 것 같았다.


희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이 지났다.


민재의 빈자리가 크긴 했지만, 희진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오전엔 집안 일을 하고 오후부터는 무용실도 다니고 여가시간도 즐겼다.


민재가 보고 싶긴 했으나 처음처럼 불안하거나 하진 않았다.


소영과 수빈 역시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소영이 때때로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여 걱정되긴 했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함을 되찾았다.


민재 역시 가족이 보고 싶어서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했고, 전화비가 부담 될 정도의 긴 내용은 편지로 써서 보내왔다.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대로면 여섯달도 크게 무리 없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는 이렇게 떨어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민재가 부장으로 승진만 되면 생활도 한결 여유로워 진다.


"그이 월급 오르면 소영이하고 수빈이 과외부터 시켜야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건만, 그동안 남들 다 한다는 과외 한 번 시켜 보지 못했었다.


물론 굳이 무리해서까지 과외가 필요한 아이들은 아니다.


소영이는 원래부터 공부보다는 미술쪽에 더 관심이 많았고, 수빈이는 과외 같은 것을 시키지 않아도 워낙 학업이 우수했다.


다만 부모 입장에서 다른 아이들 다 하는 거, 없어서 못했다는 소리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빈이는 일반 과외 시키고, 소영이는 미술 학원에 보내야지."


희진은 벌써부터 민재가 부장이 된 것 같이 뿌듯해졌다.


밝은 앞날을 그리며 무용실을 찾았다.


무용실이라곤 하지만 사실은 대학 후배가 운영하는 무용학원이었다.


아직 정오밖에 되지 않았기에 수강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은 늘씬한 미녀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현주야. 나 왔어-"


희진의 인사에 몸을 풀던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언니 왔어요? 오늘은 일찍 왔네요?"


그녀는 희진의 대학 1년 후배였다.


학교 다닐 때는 둘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단짝이었다.


워낙 친한 사이라서, 희진이 대학을 그만두고 나서도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현주가 졸업 후에 희진의 동네 근처에 무용학원을 열어서 이렇게 거의 매일 보고 있었다.


희진은 옷을 갈아 입으며 말했다.


"어. 내일 애들 수련회 간데. 그래서 일찍 몸 좀 풀고 들어가서 준비 좀 해주려고."


"언니도 참. 애들한텐 지극정성이라니까. 가족이 그렇게 좋아요?"


"그럼. 너도 결혼 해보면 알아. 가족밖에 없다니까."


희진의 대답에 현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칫. 난 평생 혼자 살테니 죽을 때 까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는 희진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게. 대체 너처럼 예쁜 애가 왜 혼자 사려고 그러니?"


현주는 동그스름한 얼굴에 눈이 커서 매우 귀여운 얼굴이었다.


거기에 머리는 남자처럼 짧은 숏컷이었는데, 동안인 얼굴과 잘 어울려서 매우 보이쉬한 매력이 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그 매력에 빠진 많은 학우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고백을 해오곤 했었다.


물론 그 학우들 중의 과반수는 여성이었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매우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그런 현주가 지금껏 연애다운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가 없어서 그러니? 언니가 괜찮은 남자 소개 좀 시켜 줘? 우리 그이 회사에 젊고 잘 생긴 남자들 많다던데."


희진이 슬쩍 떠보자 현주는 질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됐네요. 그렇게 소개 받아서 등 떠밀려 결혼 할 바에 그냥 혼자 늙어 죽고 말지. 그보다 언니 내가 한 말은 생각해 봤어요?"


희진은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핏. 얘는. 내가 무슨 재주로 사람들을 가리키니? 예전에 배운 것도 가물가물 한데."


"그래도 왕년에 날렸던 실력이 어디 가나요?"


"됐어 얘. 난 그냥 이렇게 가끔 와서 몸 풀고 가는 정도가 딱 좋아."


현주는 간간히 희진에게 자신을 도와 수강생들을 지도해 보자고 권하곤 했다.


정식으로 무용을 배우는 것을 그만둔 지가 이십년 가까이 되는 희진이었지만, 현주는 그녀의 실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과거에 희진이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희진의 부모님 보다 더욱 기를 쓰고 말렸던 것도 현주였다.


그녀는 희진이 한 남자에 묶여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기엔 희진의 실력과 외모가 너무도 아깝다고 여겼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진에게 무용가로서의 인생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희진의 전례를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자기애가 강한 현주였기에, 희진의 선택이 한 가정에 몸이 묶여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희진은 그런 점이 안타까워 그녀에게 남자를 소개시켜 주려 했다.


하지만 희진이 가정을 가장 중요시 여기듯, 현주 역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 보다는 무용을 더욱 중요시 여겼다.


결국 두 사람의 조언은 서로의 벽에 부딪쳐 상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희진은 현주와 함께 여러가지 안무를 연습해 본 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수련회는 3박 4일 간이었다.


보통 수련회를 그렇게 길게 가는 경우는 드문데, 올해는 산교육 실천의 해라면서 이례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공고문이 보내져 왔다.


수련회는 수학여행과는 또 다른 개념이었기에 준비물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옷가지들과 세면도구, 비상구급 약과 간단한 군것질거리 정도면 충분했다.


다른 집 같았으면 첫째 둘째 각각 챙겨야 했겠지만, 소영과 수빈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이었기에 준비하기도 간편했다.


다음 날 아침.


수빈이 먼저 준비를 마치고 내려왔다.


"누나! 이러다 늦겠어! 빨리 나와!"


쿵쾅거리며 뛰어 내려온 수빈이 위를 보며 쾌활하게 소리쳤다.


보통 그런 행동은 소영의 몫이었다.


수빈은 근래 들어  그렇게 밝고 자신감에 찬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아마도 민재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그 나름대로의 시도일 것이다.


희진은 그런 수빈의 속깊음이 고맙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내려갈게."


반면에 소영은 평소와 다르게 우울한 모습으로 조용하게 내려왔다.


소영 역시 민재가 떠난 이후로 종종 이렇게 풀죽은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아빠를 보고 싶어서 일터였다.


동생과 달리 속내를 숨길 줄 모르는 솔직함이었지만, 희진은 그런 소영도 사랑스럽기만 했다.


"늦겠다. 둘 다 어서 가거라. 도착해서 집에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


"네엡!"


희진의 당부에 수빈이 힘차게 대답하며 앞장서서 집을 나선다.


짐짓 과장되고 자신감 넘치게 행동하는 수빈의 뒤로 축 쳐진 소영이 따라나갔다.


두 아이의 상반 된 모습에 희진은 짐작되는 바가 있어 빙그시 미소지었다.


"애들도 이제 사춘기가 올 나이구나."


그녀가 알기로 사춘기란 어른이 되기 전의 문턱과도 같다.


사춘기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어엿한 성인이 될 것이다.


희진은 아이들이 그만큼 컸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해졌다.


대문 밖까지 나가서 아이들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희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며칠동안 집 안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자 약간 외로워졌다.


"현주 불러서 수다나 떨까?"


희진이 집으로 들어가며 핸드폰을 꺼내려는 찰나.


끼이이익!


차가 급하게 멈춰서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드르륵 소리와 함께 차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뒤디어 그녀가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세게 잡아 당겼다.


"아악!"


놀란 희진이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축축한 천이 입과 코를 막아 버렸다.


희진은 순식간에 눈 앞이 흐릿해져옴을 느꼈다.


"안 돼......"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희진은 천천히 의식을 잃었다.


뒤에서 잡아 당겼던 인물이 쓰러지는 희진을 부축하여 끌어 당겼다.


창문을 온통 검게 칠한 벤이 급하게 그곳을 떠나갔다.


벤이 나타나서 희진을 태우고 가기까진 채 10초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던 흔적도, 또한 목격자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시간은 흘러갔다.


4.


희진은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부신 조명을 보자 머리가 더욱 아파왔다.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어보려 했다.


하지만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뭔가 단단한 것이 팔을 꽉 묶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내려 팔을 보려 했으나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목을 움직여보자 차가운 감촉이 전해진다.


두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희진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손가락과 발가락 같이 작은 부위들 뿐이었다.


눈동자를 굴려 전면을 살펴 보았다.


검게 선팅된 커다란 유리가 보인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간혹 나오는 취조실의 유리처럼 생겼다.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고, 밖에서는 안이 보이는 그런 특수 유리 말이다.


어쩌면 유리 밖에서 누군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


구조를 청하려던 그녀는 깜짝 놀라 말을 맺지 못했다.


흘러 나오는 목소리가 매우 낯설었기 때문이다.


꾀꼬리처럼 아름답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목이 쉬었을 때 처럼 잔득 긁혀서 나오는 목소리는 매우 허스키했다.


마치 성전환자의 목소리 같았다.


희진은 자신의 목소리에 거북함을 느꼈다.


그러나 우선은 풀려나는 것이 먼저임을 깨닫고 다시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 좀 구해 주세요!"


희진은 목이 쉴 때까지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아......인신매매범들한테 납치 당했나 봐. 어떻게 하지? 민재씨. 도와줘."


심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낯선 환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공포가 찾아들었다.


희진은 두려움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러나 인신매매범들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마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억누른 채 흐느껴야만 했다.


"흐흐흑."


눈물은 끝없이 흘러 나왔다.


이제 두번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


납치된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진 않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흐흐흑. 민재씨! 소영아! 수빈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떠오르자 슬픔과 두려움을 몇 곱절이 되었다.


참고 참았던 감정이 거센 강물이 되어 둑을 무너뜨렸다.


희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녀의 울음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울렸다.


그 소리를 들었음일까?


덜컹.


문 소리가 났다.


문소리는 그녀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누군가 들어섰는지 나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와 함께 등뒤로 감당하기 힘든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 긴장감에 희진은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울음을 그쳤다는 사실조차도 인지 하지 못했다.


그저 등 뒤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가득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등 뒤에서 걸음 소리가 멈췄을 때.


희진은 목덜미로 싸늘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 상상할 수 없는, 얼음장 같은 숨결이었다.


희진은 공포심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대로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먹을 꽉 쥐고 사력을 다해 물었다.


"누, 누구세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그러나 그녀의 용기있는 질문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팔 상박부에 두꺼운 바늘로 찌르는 듯 한 통증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아악!"


희진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팠던 것은 아니었다.


뜻밖의 통증과 피부안에서 느껴지는 이물질의 느낌에 놀라서 소리 친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그가 자신의 팔에 뭔가 주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뭐한 거에요?"


그러나 상대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말 없이 뚜벅뚜벅 멀어져 갈 뿐이었다.


털컹.


문이 닫히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납치 된 이후로 유일하게 본 사람이 나가 버린 것이다.


"대체 왜......"


희진은 자신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납치를 당하긴 했는데, 납치범들은 몇시간이 지나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희진은 침착함을 찾으려 애썼다.


이런 상황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이성을 잃으면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이성을 되찾으며 납치범들의 정체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그 중에서 제일 가능성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일단, 돈을 노리는 단순 납치범들이라면, 죽지만 않으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을 노리는 인신매매범들이라면 죽진 않더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일전에 테레비전에서 보았던 시사 프로에서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 된 여성은 어딘지도 모르는 외지에서 이리저리 팔려 다니게 된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한 번 팔려 나간 여인들이 원래의 가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희진은 선택지가 그 두가지 밖에 없다면, 첫번째이기를 바랬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평생 가족도 보지 못하고 창녀가 되어 전전하긴 싫었다.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공포의 시간이 지나갔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으나 대략 하루 정도가 지난 듯 했다.


이제 희진은 공포와 더불어 굶주림이라는 생리현상과도 싸워야만 했다.


그동안 그녀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십자가 형태의 커다란 형틀 같은 것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형틀은 바닥에 고정 된 채 서있었고, 그녀는 거기에 매달려 타의로 서있는 형태였다.


그녀를 고정하고 있는 것은 폭이 넓은 수갑 같은 것이었다.


팔과 손목, 허벅지와 발목 등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아 그녀가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체 일부분에 의지하여 오랫동안 매달려 있노라니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아파왔다.


나중에는 버티는데도 이를 악물어야 할 정도였다.


십자가 형틀은 중심이 비어 있어, 그녀의 등과 엉덩이는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녀가 지금 속옥 바람이라는 것이었다.


방 안이 따뜻하여 추위를 느끼진 않았지만, 간혹 어깨와 등 부분이 쇠에 닿으면 그 차가움에 소름이 돋았다.


"으으으......"


형틀에 매달린 채 힘겹게 버티고 버티던 희진의 입에서 괴로움의 신음이 흘러 나올 무렵.


덜컹.


다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칠대로 지쳐있던 희진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여보세요! 대체 왜 이러는 거에요? 원하는 게 뭐에요? 사람을 어떻게......"


희진은 서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들어온 인물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뒤로 다가왔다.


스윽.


차가운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희진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녀의 애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는 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세게 밀었다.


"아악."


희진은 어깨에 가해지는 압력에 비명을 질렀다.


뒤이어 쇠끼리 긁히는 소리가 그녀의 비명을 집어 삼켰다.


끼리리리릭.


그와 함께 희진은 자신의 상체가 천천히 앞으로 기울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구십도로 인사라도 하듯 굽혀진 상체.


"뭐, 뭣?"


희진은 놀라서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엉덩이에 와닿는 차가운 손길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가게 만들었다.


주물주물.


그는 희진의 엉덩이를 반죽 빗듯 주물럭거렸다.


그녀는 그제야 상체를 숙임으로써 자신의 엉덩이가 등 뒤의 인물에게 그대로 노출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치스러움도 잠시.


팬티가 내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치심보다 더한 불길함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희진은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하, 하지 마세요. 하지 말아요.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해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뜨거운 막대기가 찔러왔다.


"허억!"


희진의 입에서 숨막힐 듯 한 고통의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상대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삽입을 한 것이다.


그녀의 성기는 마를대로 말라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삽입을 하자 살이 찢어 지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아악!"


희진은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상대는 멈추지 않고 허리를 흔들었다.


철썩. 퍼억. 철썩 퍼억.


희진은 의식이 아득해져 갔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살소리가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쑤욱. 철썩.


상대는 규칙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꽂아 넣었다.


그가 움직일 때 마다 허리 숙인 희진의 풍문한 가슴이 앞뒤로 덜렁거렸다.


쉬익. 쉬익.


상대는 휘파람을 부는 듯 한 낮은 숨소리를 흘리며 그녀를 범했다.


희진은 고통과 수치심으로 죽고만 싶었다.


"민재씨. 미안해......"


희진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글픔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눈을 뜨면 이 악몽이 끝나기라도 할 것 처럼.


상대는 희진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신의 행위에만 집중 할 뿐.


한참동안 삽입질을 하던 상대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상대의 성기가 울끈불끈 거린다 싶은 순간.


퓨퓨퓩.


뜨거운 액체가 그녀의 질과 자궁을 가득 채웠다.


사내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엉덩이를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왔다.


희진은 그 불쾌함을 참아 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녀의 눈물이 땅에 떨어질 즈음에 사내의 성기가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희진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이제 끝났으면 풀어줘요! 절대 신고 같은거 안 할 게요. 전 당신 얼굴도 못 봤어요."


그녀는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사내에 대한 증오 같은 것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풀려날 수만 있다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 없었다.


정말 이곳에서의 일을 잊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상대는 그녀의 엉덩이를 다시 한 번 잡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희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으로선 사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난 후에 애원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내는 다시 그녀의 구멍을 찾았다.


이미 한 번 당한 행위. 적응은 무리지만 어떻게든 참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에 불과했다.


이번에 사내의 성기가 향한 곳은 조금 전의 구멍이 아니었다.


"아아아악!"


희진은 엉덩이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질렀다.


사내가 성기를 들이민 곳은 그녀의 항문이었다.


희진은 항문을 이용한 성행위가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항문은 오직 배출을 위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곳에 사내의 성기가 침입할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다.


그 고통은 조금 전에 당한 강간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의 강간으로 사내의 성기는 꽤나 번들거리고 미끈 거렸지만, 그것이 항문에 삽입 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거친 마찰을 그대호 힘으로 밀쳐내 버렸다.


살이 비틀리고 말려들어가는 통증은 도저히 참기 힘든 것이었다.


맨살이 생으로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에 그녀는 잠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몇분이 지나서였다.


퍼억. 퍼억. 퍼억.


사내의 하복부와 그녀의 엉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벅지를 타고 정액과 피가 뒤섞여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끄으윽."


희진은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녀의 숨넘어가는 소리에도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잠시후 첫번째 강간때처럼 사내의 성기가 불끈 거리더니 정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미끈거리는 정액이 항문을 넘어 장으로 파고들자 뱃속이 울렁거려왔다.


일을 마친 사내는 성기를 빼내며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나게 내리쳤다.


눈물이 잔득 고인 희진의 눈에는 이미 촛점이 흐릿해져 있었다.


희진은 그저 한 마디만을 할 수 있었다.


"이......악마."


그녀의 말에 사내가 멈칫하더니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숨결이 희진의 귓전으로 밀려왔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직하면서도 머리속을 울리는 한 마디였다.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다시 나가 버렸다.
희진은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어 다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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