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륜 - 11
15.
희진이 복잡한 심경으로 며칠을 보냈을 때.
잠시 뜸하던 28번이 찾아왔다.
"썅년아. 나 안 보고 싶었어?"
문을 벌컥 열어 젖히자 마자 외치는 말에 희진은 보지에 손을 집어 넣다 말고 후다닥 일어났다.
"어린 주인님!"
희진이 반갑게 외치자 28번이 눈매를 좁히며 희진의 보지를 바라 보았다.
"씨발년. 그새를 못 참고 씹질을 하고 있냐?"
희진은 침대에 걸터 앉는 28번의 목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아잉. 주인님이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
"깔깔깔. 개보지가 그렇게 고팠어?"
"네. 너무 고파서 혼자 막 쑤시고 있었어요."
희진의 말에 28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고팠는지 한 번 보여 줘봐. 진짜 간절히 고팠다는 걸 보여주면 내가 오늘 아주 죽여주지."
그 말에 희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정말요?"
28번에게 죽을 정도로 당하는 것은 그야 말로 천당에 갈 정도로 행복한 일이었다.
희진은 생각만 해도 보지가 흥건히 젖어 들었다.
"한 번 해봐. 난 구경 할게."
28번의 말에 희진은 침대 위에 누워 다리를 벌렸다.
"하아앙."
입에서 벌써부터 비음 섞인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희진은 손으로 부드럽게 보지를 매만졌다.
반대 손으로는 가슴을 주물럭 거렸다.
잠시 동안 털을 쓰다듬기만 하던 손가락이 서서히 보지 속으로 들어갔다.
중지와 약지를 보지에 집어 넣고 엄지로는 클리토리스에 꽂힌 피어싱을 통통 튕긴다.
"흐으으응."
피어싱이 튕겨질 때 마다 희진은 신음을 흘렸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의 엄지와 새끼로 양쪽 유두에 걸린 피어싱을 걸어 잡아 당겼다.
"하아악."
피어싱에 당겨진 유두가 빳빳하게 곤두 섰다.
피어싱에 잡아 당겨진 가슴이 얼굴을 향해 모아졌다.
희진은 얼굴에 닿을락 말락한 가슴을 스스로 핥았다.
자신이 빨고 자신이 신음을 흘리는 모습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희진은 손에 걸린 두개의 피어싱을 이용해 가슴을 위아래 좌우로 이러저리 돌렸다.
유두에 가해지는 압력은 그녀에게 고통과 쾌감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그러는 동안 보지를 쑤시던 손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쑤욱쑤욱.
소리 없이 부드럽던 손동작이 조금씩 격해지며 살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딸깡딸깡.
보지에 넣지 않은 검지와 새끼가 대음순에 걸린 피어싱에 걸리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었다.
희진은 아예 검지와 새끼에 피어싱을 걸어 버렸다.
이젠 보지를 쑤실 때 마다 대음순이 당겨졌다 벌어졌다 한다.
가슴과 보지를 동시에 자국시키자 희진의 얼굴에 진한 쾌감이 떠올랐다.
희진은 그 상태로 몸을 뒤집었다.
얼굴을 베개에 대고 엉덩이는 28번을 향해서다.
손으로는 여전히 가슴과 보지를 만지고 있었다.
보지를 쑤시던 희진이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흐하아아앙. 주인님. 주인님이 필요 해요. 저 혼자는 아무리 해도 후장을 채울 수가 없어요. 주인님의 굵고 우람한 자지로 항문, 아니 똥구멍을 틀어 막아 주세요."
희진은 간절히 애원했다.
그의 마음이 전해졌음인지 보고 있던 28번이 움직였다.
"개년. 주인을 귀찮게 하다니. 벌 받을 준비는 되었지?"
28번의 한 마디에 희진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하아앙. 부디 음란한 노예년에게 벌을 주세요."
"씨발년. 아주 죽여주지."
28번은 얼굴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희진의 엉덩이를 쎄게 내리쳤다.
철썩.
"끼야아앙."
오랜만에 엉덩이를 얻어 맞자 희진은 비명 섞인 신음을 토했다.
28번은 멈추지 않고 손바닥을 내리쳤다.
찰싹찰싹찰싹.
연달아 터져 나오는 소리.
희진의 엉덩이가 금새 붉게 달아 올랐다.
그럼에도 28번은 계속해서 엉덩이를 내리쳤다.
"끼아아아앙"
희진은 연신 괴성을 질러대며 더욱 세게 보지와 유두를 문질렀다.
28번의 손바닥이 서른대째 내리쳐졌을 때.
움찔.
희진의 보지가 한 차례 꿈틀거리더니 이내 뜨거운 물을 쏟아냈다.
쏴아아아.
오줌과 보짓물이 뒤섞인 액체가 침대를 적셨다.
28번이 오줌에 젖은 손을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썅년이 애도 아니고 허구헌 날 오줌을 싸. 안 되겠어. 벌을 더 줘야겠어."
그녀는 오줌으로 범벅이 된 손을 희진의 항문에 밀어 넣었다.
"아앗!"
희진은 놀라서 반사적으로 항문을 오므리려 했다.
그러나 28번이 엉덩이를 내리치며 명령했다.
"썅년아. 힘 안 빼?"
그 한 마디에 희진은 괄약근에서 모든 힘을 빼 버렸다.
28번은 느슨해진 항문에 손가락 두개를 집어 넣었다.
희진의 항문은 상당히 개발되어 있었기에 두개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갔다.
28번은 이번엔 네개를 집어 넣었다.
네개를 넣자 매우 뻑뻑해서 손가락을 필수조차 없었다.
"개걸레년이 그렇게 박히고도 졸라 조이네. 어디 다 넣고도 조일 수 있나 보자."
28번은 아예 손을 통채로 밀어 넣었다.
"끼야아아앙!"
희진은 비명을 지르며 보지를 쑤시던 손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천천히 들어가던 28번의 손은 희진의 엉덩이에 손목까지 삼켜졌다.
28번은 그 상태에서 손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28번의 손은 어지간한 자지 두개 굵기의 크기였다.
그런 손으로 왕복운동을 하자 희진은 항문이 찢어 질 듯 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고통 뒤에 28번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열기가 피어 올랐다.
"하아아아아. 주인님. 더 쑤셔 주세요. 제 걸레 같은 후장을 씹창 내 주세요!"
"오냐.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다."
28번은 손을 더욱 빠르게 왕복 시켰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연신 희진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두 가지 고통이 더해지자 희진은 거의 실신 직진이었다.
엄청난 고통과 그보다 더한 쾌락으로 입에 거품이 일어났다.
"크허헝. 내 똥구멍! 내 똥구멍이... 으허허헝. 주인님! 살려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아니 죽여 주세요! 더 망가뜨려 주세요!"
희진은 울부짖으며 정신 없이 소리쳤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희진의 외침에 28번도 흥분이 극도에 달한 듯 붉어진 눈으로 손을 뺐다.
뽀옹.
그녀가 손을 빼자 희진의 항문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비어버린 희진의 항문은 활짝 벌어져 있었다.
희진은 항문이 허전해지자 갈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아. 주인님. 왜 멈추세요. 이 천한 노예를 죽여 주셔야죠. 개년의 후장을 찢어주세요!"
28번은 충혈 된 눈으로 고무 딜도를 꺼내 들었다.
"기다려라. 자지로 죽여 줄게."
그녀는 허리에 딜도를 부착했다.
평소와 달리 2개를 동시에 붙였다.
그리고 보지를 쑤시고 있는 희진의 손을 빼버리고, 딜도를 보지에 밀어 넣었다.
2개의 딜도가 동시에 희진의 보지로 밀고 들어갔다.
일반 성인 자지보다 훨씬 큰 딜도가 두개씩이나 들어가자 희진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흐허허헉. 주, 주인님. 너무 커요! 빼주세요."
희진의 말에 28번은 버럭 화를 냈다.
"썅년아. 엄살 부리지 마. 찢어 달라며? 죽여 달라며?"
28번이 화를 내자 희진은 움찔 하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알았어요. 죽여 주세요! 노예년은 얌전히 받아 들일게요."
희진이 다리를 더욱 벌리며 보지를 벌렸다.
2개의 딜도가 쑤욱 소리와 함께 보지속으로 파고 들었다.
"꺄아아아앙! 들어 왔어요! 주인님의 것이 두개나 들어왔어요!"
희진은 실성한 사람처럼 부르짖으며 유두의 피어싱을 더욱 세게 잡아 당겼다.
그녀의 유두가 마치 떨어져 나갈 것 처럼 길게 늘어났다.
하지만 희진은 그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주, 주인님의 것이 다 들어 왔어요. 박아 주세요. 주인님의 것으로 싸고 싶어요."
28번이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철퍽철퍽철퍽.
보짓물로 흥건히 젖은 희진의 엉덩이와 28번의 보지가 부딪치며 물 튀기는 소리가 나왔다.
28번은 희진의 보지를 쑤시면서 왼손을 다시 벌어져 있는 항문에 집어 넣었다.
"끄으으으응."
희진은 보지는 2개의 딜도로 터져 나갈 듯이 가득 찼고, 항문에는 28번의 주먹이 통째로 쑤셔댔다.
희진은 극도의 흥분감에 입만 쩍 벌리고 꺽꺽 거렸다.
그녀의 눈은 쾌락에 잠겨 완전히 까뒤집어져서 흰자위만 번들거리고 있었다.
28번 역시 흥분이 극에 달해 자신의 행동을 돌아 볼 사이도 없이 딜도와 주먹을 쑤시는 데만 열중했다.
딜도의 옆으로 그녀의 보짓물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내렸다.
이미 몇 차례나 절정에 도달했음에도 두 사람은 전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정말 희진이 죽어야만 끝이 날 것 같았다.
희진의 눈은 검은 자위가 돌아왔다 나갔다하며, 손으로는 유두를 힘껏 잡아 당겼다 놓았다만 반복했다.
28번의 행위도 한층 과격해졌다.
엉덩이를 때리던 손을 아래로 해서 희진의 클리토리스에 꽂힌 피어싱을 쥐고 흔들었다.
피어싱이 위아래로 흔들릴 때 마다 클리토리스가 찢어질 듯 늘어났다.
"흐어어어어어엉. 주인님. 너무 좋아요."
희진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울부 짖었다.
28번 역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피어싱을 놓고, 희진의 개줄을 낚아내서 힘껏 잡아 당겼다.
"씨발 개년아. 짖어라! 개처럼 짖어!"
28번의 명령에 희진은 얼굴이 하늘로 향한 채로 짖어댔다.
"멍멍멍멍!"
28번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보지를 쑤시는 딜도에 피가 묻어났다.
대음순의 피어싱이 찢어지며 난 것이다.
희진의 항문에도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28번은 멈추지 않았다.
"넌 누구거냐?"
28번의 질문에 희진은 곧바로 대답했다.
"주인님 거에요!"
"네 보지는 누구 거냐?"
"주인님 겁니다!"
"네년 몸뚱아리는 누구 거냐?"
"주인님 겁니다!"
28번과 희진은 거의 울부짖으며 질문하고 답했다.
두 사람은 극도의 쾌락에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네년 영혼은 누구 거냐?"
"주인님! 전 주인님 없으면 못 살아요. 절 완전히 주인님의 것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래. 씨발년아. 넌 영원히 내 노예야. 평생 내 오물이나 받아 먹고 살아야 돼."
"네. 전 영원히 어린 주인님의 성노예에요."
"썅년아. 맹세 해라. 내 말은 뭐든 듣겠다고!"
"흐허어어엉. 개년은 주인님의 명령이면 뭐든 할 거에요. 개하고 씹질을 하라고 하면 씹질을 하고, 가족을 버리라고 하시면 버릴게요. 절 버리지만 말아 주세요."
희진의 각인을 끝나는 순간.
거침 없이 움직이던 28번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와 동시에 미친듯이 몸부림 치던 희진 역시 멈췄다.
잠시 적막함이 흘렀다.
그리고 28번이 조금씩 허리를 뒤로 뺐다.
항문을 쑤시던 주먹이 빠져 나가자 뽕 소리와 함께 벌어진 항문으 움찔 거린다.
보지에서 딜도가 빠지자 핏물이 보짓물에 섞여 흘러 나왔다.
그렇게 격했던 시간들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한 끝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터져 나오는 소리.
쏴아아아아아. 뿌지지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28번에게서 거센 보짓물이 오줌과 뒤섞여 흘러 나왔다.
그녀의 앞에 엉덩이를 들이 밀고 있던 희진 역시 오줌을 쌌다.
그리고 희진의 항문에서는 굵은 대변이 밀려 나왔다.
희진은 자신이 지금 배변을 하고 있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대로 드러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으흐흐흥."
격한 절정의 쾌감 속에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그저 이 쾌감에 묻혀 그대로 죽고 싶었다.
28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희진의 똥과 오줌이 몸에 묻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희열에 가득 찬 눈으로 허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희진의 항문에서는 계속해서 똥이 흘러 나왔다.
어느 정도 여운이 사라지자 28번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희진이 싸놓은 똥을 푹 푸더니 그것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똥으로 범벅이 된 입으로 희진의 몸을 핥았다.
피가 베여나는 보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배꼽과 유두. 그리고 그녀의 입까지.
입과 입이 맞닿았다.
희진은 자신의 똥이 잔득 묻어 있음에도 28번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28번의 입술에 묻은 똥을 핥아 먹기까지 했다.
입과 입 사이에는 추악한 똥냄새가 가득했지만,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 만큼은 순수했다.
"사랑해."
28번은 이전의 거친 모습과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희진은 눈물을 흘리며 28번의 품에 안겼다.
"저도 사랑해요. 주인님."
두 사람은 똥오줌으로 범벅이 된 채 몇 시간이나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16.
영원을 약속했던 두 사람의 이별은 생각지도 못하게 빨리 다가왔다.
어느날 갑자기 28번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희진은 처음에는 그저 막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28번은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니도 찾아오지 않았다.
희진은 미친 듯이 돌아 다니며 28번을 찾아 헤맸다.
마치 실성한 것 처럼 돌아 다니는 그녀의 모습에 많은 사내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희진은 그들의 정액을 받아 들이는 그 순간에도 오직 28번만을 생각했다.
28번의 거친 욕설을 듣고 싶었다.
28번의 격한 자지에 박히고 싶었다.
28번의 입술을 빨고 싶었다.
28번에게 보지를 빨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8번의 작은 가슴에 안겨 잠들고 싶었다.
희진은 28번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희진은 하루 하루를 망연자실하게 보냈다.
사내들에게 보지를 잔뜩 박히고도 욕망이 채워지지가 않았다.
28번이 쓰던 것과 같은 딜도로 미친 듯이 보지와 항문을 쑤셔 보아도 갈증만 가득찼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났다.
희진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녀에겐 더 이상 쾌락이 찾아 오지 않았다.
분명 28번과 만나기 전에도 느꼈었던 쾌락이었는데, 이제는 느낄 수가 없었다.
28번과 함께 했던 섹스만이 머리속에 가득 할 뿐이었다.
희진은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맞았고 매일 밤 슬픔에 잠겨 울면서 잠이 들었다.
그날도 희진은 여느 때와 같이 훌쩍이며 잠이 들었다.
그녀는 꿈 속에서 낯익은 존재를 만났다.
언젠가 그녀를 삼켰었던 어둠이라는 존재였다.
꿈에서 그녀는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헤메던 끝에 마침내 빛이 보이는 출구를 찾았다.
희지는 빛을 향해 걸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에서 벗어나는 첫발을 내딛었을 때.
어둠이 속삭였다.
"지옥은 끝났다. 현실에서 지옥 보다 더한 지옥을 보여 주길 바라마. 내가...지켜보겠다."
목소리는 마치 텅빈 방 안에서 말하듯 이리저리 울려왔다.
희진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저 빛을 향해 발을 내딛을 뿐.
빛을 향해 나가는 순간.
그녀는 너무도 환한 빛에 얼굴을 가렸다.
그 빛은 너무도 강렬하여 그녀의 손을 뚫고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희진은 잠에서 깼다.
간밤의 알 수 없는 꿈을 생각하다 기운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몸에 옷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회의 노예들은 옷을 입지 못했다.
희진 역시 거의 모든 시간을 나체로 지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예쁜 잠옷을.
그것은 5년 전에 민재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주었던 잠옷이었다.
비싸진 않았지만, 민재가 정성들여 골랐던 옷이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희진은 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로 맞은 편에 낯익은 화장대가 보였다.
그녀가 시집 올 때 부터 가져왔던 오래 된 화장대였다.
희진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지금 있는 곳은 확실히 그녀의 집 안방이었다.
민재와 오랜 세월을 함께 했었던 방.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 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아아..."
자신도 모르게 감동의 탄성을 내던 희진은 다시 한 번 놀랐다.
항상 거칠게만 들려왔던 목소리가 원래의 꾀꼬리 같은 소리로 돌아온 것이다.
희진은 비로소 자신이 집에 돌아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침대에 주저 앉았다.
"흐흐흐흑."
참으려고 해도 울음이 터졌다.
희진은 한참을 울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기억에 남은 전날밤은 여러 사내의 정액을 받아 준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눈을 떴더니 집이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를 알 수 없었다.
잠시 궁리해보던 희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좋아. 어쨌든 난 집에 왔잖아?"
희진은 오랜만에 마쉬는 집안 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자, 익숙한 거실이 나타났다.
"아아. 정말로 집에 왔구나."
희진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동안 얼마나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그때 문득 아이들에 생각이 미치자 희진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지옥회에 있던 기간은 어림잡아도 다섯개월이 넘었다.
그 기간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됐을 지는 알 수 없었다.
희진은 급히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작은 방 2개가 마주보고 있다.
왼쪽 방이 소영이 방이었고, 오른 쪽 방이 수빈이 방이었다.
희진은 소영이 방문 부터 열어 보았다.
끼이익.
나무끼리 마찰을 일이크며 문이 열렸다.
희진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췄다.
문을 열자 마자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커어엉. 쿠울."
여자 아이 답지 않은 기운 찬 코골이.
바로 익숙한 소영의 것이었다.
희진은 조심스레 문을 닫고 수빈의 방문을 열었다.
어슴프레 들어오는 여명 아래 볼록하게 이불을 덮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희진은 조용히 다가가서 이불을 살짝 들쳐 보았다.
보고 싶었던 수빈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아......"
희진은 하늘에 감사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에도 아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희진은 수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방을 나왔다.
"된장찌개를 끓여야지!"
아이들과 마주하고 식사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한시간 가량이 지난 후.
희진이 막 깨우러 올라가기도 전에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희진은 긴장하여 몸을 돌렸다.
눈을 부비며 부엌으로 들어서던 수빈이 그녀를 보고 멈춰섰다.
"어? 어머니. 일찍 일어나셨네요?"
수빈의 인사에 희진은 반가우면서도 의아했다.
수빈이 자신을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어, 어. 그냥 일찍 일어나져서......"
희진은 말을 흐리며 수빈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수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더니 식탁에 앉는다.
"아함. 누나는 어제도 늦게 자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지금부터 깨워야 지각 안 하겠구나."
희진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네? 지각이라뇨? 지금 방학이잖아요."
희진은 당황하여 되물었다.
"방학? 지금이 벌써 방학 기간이니?"
"어머니도 참. 방학 한지 벌써 한달이 넘었는 걸요."
희진이 잡혀가기 전에는 분명 새학기에 접어 들 때였다.
그간의 공백기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녀가 이곳에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수빈은 그런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희진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때 이층에서 쿵쾅 소리를 내며 소영이 내려왔다.
"엄마! 요즘 우리한테 너무 무신경한거 아냐?"
소영 특유의 기운 찬 목소리에 희진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무신경하다니? 내가 그랬었니?"
소영은 허리에 손을 턱하니 올리고는 소리쳤다.
"당연히 그랬지. 우리 방학한 지가 한 달이 넘었는데 그걸 몰랐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나 오늘 클럽활동 있다고 일찍 깨워 달라고 했었잖아!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안 깨웠어? 어휴. 나 늦으면 다 엄마 탓이야!"
소영의 말에 희진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자신이 대체 언제 그런 소리를 들었단 말인가?
또 자신은 분명히 이곳에 없었는데 아이들은 어째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건가?
희진은 도저히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확실히 어머니 요 몇 달간 너무 바쁘시긴 했어요. 이렇게 얼굴 본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는 걸요."
희진은 그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 내가 그랬니?"
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엄마 요즘 진짜 이상해! 맨날 우리한테 아침도 안해주고. 아침 일찍 부터 무용한다고 나가서는 밤 늦게서야 들어오고. 들어 와서는 우리 얼굴도 안 보고 그냥 바로 자버리고. 꼭 다른 사람 같이 굴었잖아."
"내가 진짜 그랬니?"
"그렇다니까! 엄마 설마......"
소영이 말끝을 흐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 보았다.
딸의 눈빛에 희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뭔가 알아 챈 것인가?"
희진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어 올랐다.
그러나 소영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진짜 바람 난거 아냐?"
그 말에 희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그녀의 기억으로 완전히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수빈이 그녀를 옹호해 주었다.
"에이. 누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머니 같은 분이 바람을 어떻게 펴?"
그 말에 소영이도 한 풀 꺾인 어투로 수긍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진짜 의심했데? 근데 이상하잖아. 생전 화장이라곤 안하던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얼굴을 엄청 꾸미고 다니고. 옷도 화려하고 야시시한 것만 입고 다니고. 맨날 밖에 나돌아 다니기만 하고. 아빠가 있었어도 의심했을 걸?"
소영의 말을 듣는 순간.
희진은 뭔가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누가 나로 변장해서 집에 있었던 게 아닐까?"
영화 같은데 보면 많이 나오지 않던가?
그러나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
아무리 변장을 잘 한다 하더라도 가족까지 속일 수가 있을까?
또 그녀를 그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있을까?
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내가 그곳에도 있었고 집에도 있었다는 걸까?"
인격이 나누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뭔가 최면 같은 것으로 인격을 나눈 후, 이곳에서의 삶과 그곳에서의 삶을 함께 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옥회에서의 하루가 너무도 빡빡했다.
하루를 거의 꼬박 지샜던 적도 수없이 많았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다는 말인가?
최면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지옥회가 지닌 힘이 떠올랐다.
지옥회의 옥주는 못할 일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권력자라고 했다.
그 정도 권력자라면 아이들에게 최면 같은 것을 걸어서 지난 기억을 억지로 꾸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희진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기자 투덜거리던 소영은 클럽 활동을 간다며 후다닥 나가 버렸고, 수빈은 도서관을 가겠다며 나갔다.
희진은 아이들을 배웅한 후, 방에 들어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희진은 잠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안방의 욕실로 가서 옷을 하나씩 벗었다.
상의를 조금씩 벗자 가슴에서 찰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브래지어를 벗자 유두 양쪽에 꽂혀 있는 피어싱이 보인다.
배꼽 아래에는 보지 문신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흐흑. 역시 꿈이 아니었군."
희진은 울먹이며 다시 옷을 입었다.
한참 동안 머리를 써서 그녀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답은 결국 두 가지였다.
누군가 그녀로 변신했던지, 아니면 아이들의 기억이 조작 되었던지.
둘 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도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희진은 민재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그러나 민재가 알려주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몇번 더 걸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희진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민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안절부절 못하던 희진은 뭔가 생각 나서 안방 화장대 서랍을 열어 보았다.
민재에게 받은 편지를 넣어 두었던 곳이었다.
다행히 안에는 편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양으로 봐서는 민재가 꾸준히 편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희진은 허겁지겁 자신이 사라진 후의 편지를 찾아 열어 보았다.
편지에는 출장이 반년 더 연기 되었고, 이번에는 전화도 걸 수 없을 만큼 오지로 가게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희진은 힘 없이 편지지를 떨어 드렸다.
만약 그녀가 이 편지를 받았다면 절대 이렇게 고이 접어 넣어 놓았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게 서랍장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노릇이었다.
희진은 다른 편지를 차례대로 읽어 보았다.
잡혀가기 전에 읽었던 것들부터 하나씩 천천히 읽어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잡혀간 후에도 민재는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투였다.
잡혀갔던 그녀가 편지를 썼을 리는 없었으니, 누군가 그녀 대신 편지를 썼다는 결론이다.
결국 누군가 그녀로 변장해서 이곳에 있었다는 추측이 가장 들어 맞는 것이다.
편지를 가만히 읽어보던 희진은 그녀가 잡혀 간지 두달 째부터 민재의 편지에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했다.
그 전까지는 항상 희진에 대한 그리움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열하고,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구구절절하게 써왔었다.
그런데 그녀가 잡혀가고 두달 후, 민재가 출장을 떠난지는 세달 정도가 지났을 때 부터는 그의 편지에 사랑한다던가 보고싶다라는 등의 말이 전혀 없었다.
그저 건성으로 자신의 상황과 그 지역에 대한 설명만을 열거 할 뿐이었다.
희진은 연애 시절에도 민재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었기에, 그의 문체나 습관 같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민재는 같은 이야기를 이전에 몇천번 썼더라도, 이번에 쓸 때는 또 쓰는 사람이었다.
절대 사랑한다는 말을 빼놓을리가 없었다.
희진은 민재가 걱정이 되었다.
민재가 지옥회에 의해 해를 당한것이나 아닐까 염려 되었다.
하지만 편지를 모두 읽어 보아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희진은 불안했다.
꼭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녀가 어쩌지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따르르르릉.
갑자기 전화 벨이 울렸다.
희진은 한 걸음에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다급함이 묻어난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에서 더욱 다급 한 소리가 들렸다.
"왜그래? 무슨 일 있어?"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
바로 민재였다.
"흐흐흑. 민재씨......"
희진은 울음을 터트렸다.
긴장이 풀리자 일시에 터져 나온 울음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여보. 울지만 말고 말 좀 해봐."
그녀가 다짜고짜 울자 민재는 더욱 걱정하며 물었다.
그렇게 희진은 전화기를 부여잡고 한참동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