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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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설민정 part.1
수혁은 한참이나 차를 몰고 다시 올라가야만했다.물론 오다가 살고 있는 경기도쪽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야야.휴게소 한번을 한들리냐?"
옆에서 상철이 계속해서 투덜거렸지만 수혁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상철의 요구대로 휴게소에 들려야만 했다.중간에 상철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마땅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휴게소에서는 호두과자를 먹어줘야 한다니까."
상철은 연신 쩝쩝거리며 호두과자를 입에 쓸어넣었다.전체적으로 깔끔한 세미정장 차림의 수혁은 품안을 뒤져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뭔가 전체적으로 외모적인 면에서 확 튀는 수혁을 주위사람들은 한번씩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설민정이라....올해 서른이라고 했지?"
수혁은 연신 사진속의 미녀를 들여다보았다.간만에 일할 맛 나는 오다였다.한달전쯤에 사천만원 정도의 중급오다와의 공사를 끝낸이후 전혀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제비답지 않게 비쥬얼을 보다보니 상철이 가져다 주는 일수는 적었지만,A급오다는 모두 수혁이 싹쓸이 하기 때문에 조직내에서 공공연히 그를 향한 불만을 표하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어.무슨 컴페니인가 하는 회사 오너인데...아씨발...회사 이름을 까먹었네.암튼 꽤 잘나가는 냄비야.차도 아우디 끌고 다니더라고.무엇보다 남편이 없는 여자니까 공사치기는 더 편하지."
"아니.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
확실히 말해 남편이 없는 미망인이나 처녀같은 경우엔 만남의 기회가 많고 편할지 모르지만 결혼하겠다고 달려드는 단점이 있었다.결혼을 약속하지 않는것은 공사의 철칙이다.결혼을 약속하고 나서 돈을 뜯어내고 잠적하면 그것은 바로 혼인빙자가 되기 때문이었다.결론적으로 돈을 받는것보다 인연을 끊는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접근을 해야하나..."
접근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언뜻봐도 깐깐해 보이는 여자인지라 그냥 가서 껄떡대는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고민하는 수혁을 보며 마지막 한개남은 호도과자를 입에 털어넣은 상철이 품안에서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이게뭐야?"
"뭐긴뭐야.뒷조사한거지."
상철이 건내준 서류에는 여자의 거주지를 비롯,자동차 넘버에서부터 자주 다니는 골프연습장까지 모든것이 적혀있었다.
"도대체 이런건 어디서 구하는거야?"
"새끼...그정도 정보력아니고서야 제비 중개인 해먹겠냐?"
"뭐...그도 그렇군."
담배를 두가피째 피워 물었을때 수혁의 머릿속에 공사와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어차피 모 아니면 도인것이 제비생활이다.수혁은 결심을 굳힌듯 입을 열었다.
"카 키스로 하자."
"야 씨발...그런 존나 고전적인 걸로?"
카 키스.말그대로 자동차 접속사고를 위장해서 접근하는 제비용어였다.한때 100프로 에 가까운 오더채집률을 가진 방법이라 여러 사람들에게 애용되었지만 요새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잘 안쓰는 방법이었다.
"이 여자는 고전적인게 먹힐 스타일이야."
"풋...관상보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내가 누구 손자인지 잊었냐?"
무당할머니 밑에서 자란 수혁이었다.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수혁도 어느정도 얼굴로 사람됨정도는 판단할수 있었다.물론 설민정이라는 여자의 모든것을 파악할순 없겠지만 왠지모를 확신이 섰다.
"니 꼴리는 대로 해라 그럼.나야 중개인이지 선수가 아니니까.바람잡이 필요하냐?"
"장난하냐.당연히 필요하지.운전기사 역할좀 부탁한다."
상철은 수혁보다 무려 4살이나 위였지만 이바닥에서 유경을 제외하고는 수혁이 존대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물론 상철의 능글능글한 성격상 문제삼은적도 없었고, 다른사람들은 수혁의 지랄맞은 성격을 잘 아는지라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게다가 오다 많이 따는 놈이 왕인 사회에서 수혁은 나름 높은 위치에 속한다는 명분이 있기도 하다.
"오랜만에 이 몸이 도와줘야 겠구만.그래.언제 시행할래?"
수혁은 상철이 준 서류안에서 그녀의 대략적인 스케줄을 알수 있었다.목요일마다 그녀는 무슨일인지는 알수 없지만 서울로 향한다.그녀가 살고 있는곳이 경기도쪽 전원주택이라는것을 감안하면 딱 그날이 최적격이었다.그리고 오늘은 수요일이었다.
"딱 나오네.내일."
-
"야야야.나온다."
상철의 말에 잠시 눈을 붙이던 수혁은 뒷자석에서 몸을 일으켰다.상철이 가리킨 곳에서 부터 하얀 자동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나왔다.앞좌석에는 사진속의 그녀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기사는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자.가자고."
가볍게 화이팅을 외친 상철이 천천히 백색 아우디의 뒤를 쫒았다.수혁은 뒷자석에서 연신 좌우를 둘러보았다.최대한 한적한 곳에서 카 키스를 할수록 효율이 높은 법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다,갖다 꼴아박어."
수혁의 말에 상철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천천히 떼기 시작했다.이것도 나름 기술이 있어야 했다.카 키스라고 해서 얼토당토 않게 꼴아박으면 오다를 따기는 커녕 욕먹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쿵!
다행히 나름 이바닥에서 상철도 꽤나 굴러먹던 터라 별 무리없이 뒷범퍼를 박았다.잠시후 문이 열리며 약간 찡그린 표정의 민정이 나왔다.
"작전대로 시작하자."
수혁의 말에 상철이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갔다.작전상 바로 수혁이 나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는 천천히 창문유리쪽으로 바깥을 살폈다.
"죄송합니다...어디..다치신데는 없으신지..."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거에요..."
"아이쿠..정말 죄송합니다.괜찮으신지요?"
민정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상철과 수혁이 타고있는 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다행히 자신의 차의 뒷범퍼는 소리만 요란했지 멀쩡했다.물론 차를 빼보면 희미하게 기스는 나있을테지만.
"일단 바쁘니까 빨리 해결하죠.저 서울로 1시까지 가봐야만 하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보험처리하기에는 미미하니 바로 처리해 드릴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아...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상철은 최대한 공손하고 매너있게 민정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뒷좌석 창문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사장님."
"무슨일이야 도대체?"
각본대로 수혁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창문을 내렸다.상철은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합니다.깜박 조는 바람에...일단 사고가 나서 처리를 해드려야 할거 같습니다."
수혁은 상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민정은 수혁을 한껏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수혁은 민정쪽은 처다보지도 않고는 상철을 조용히 나무랐다.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김기사 아무리 요새 피곤해도 그렇지..."
"죄송합니다 사장님.면목없습니다.그보다 저쪽에 계신 여자분께서.."
깊게 고개를 숙이는 상철의 말을 듣고서야 수혁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지금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온정신을 집중했다.그의 눈이 살짝 푸른빛이 스쳐지나간듯 싶더니 이내 본래의 검은 눈동자로 되돌아왔다.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민정의 얼굴에서 짜증이 달아나고 이내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좋아...일단 1단계 통과."
순식간에 매료안을 걸어버린 수혁은 점잖은 걸음걸이로 민정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다친곳은 없으신지요."
"아...괘...괜찮아요."
"죄송합니다.저희 김기사가 잠깐 졸음운전을 한거 같네요.면목없습니다."
매너있게 인사하는 수혁을 보고 민정은 되려 어쩔줄을 몰라하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 크게 파손된 곳은 없으니 보험처리보다는 제가 직접 처리해드리는것이 나을거 같습니다.혹시나 귀가하셔서 아픈곳이 있으시면 바로 연락주시구요.차량범퍼는 제가 갈아 드리겠습니다.저도 지금 중요한 회의 때문에 올라가는 중이라...명함을 드려도 될까요?"
"네...네..."
자신에게 눈을 맞추지 못하는 민정을 앞에두고 수혁은 품안을 뒤져 명합지갑을 꺼내들었다.온통 자신의 이름으로 된 각자 다른 명함들이 수없이 꽂혀 있었지만 민정에게 그게 보일리 만무했다.수혁은 미리 정해둔 명함을 뽑아 들었다.보석수입회사의 대표로 되어 있는 명함이었다.
"윤수혁이라고 합니다.꼭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성만 살짝 바꾼 가명이었다.명함을 전달하는 그 순간에도 수혁은 살짝 자신의 손이 민정의 손에 닿게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예상대로 민정의 몸이 움찔했다.
"아..그리고 실례가 안된다면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서...설민정이라고 합니다."
"민정씨군요. 이렇게 급하게 명함만 드리고 가서 죄송합니다.꼭 연락주십시오.기다리겠습니다.뭐해?김기사도 와서 사과해."
"아...죄송합니다 사모님."
"아..아니에요.운전하다보면 그럴수도..."
수혁의 말에 뛰어와 꾸벅 인사를 하는 상철에게 민정은 자신역시 고개를 숙였다.아까 짜증에 물들었던 얼굴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럼.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민정씨."
마지막으로 살짝 인사를 한 수혁이 뒷좌석으로 향하자 상철이 쪼르르 뛰어와서는 뒷문을 열어주었다.목례를 한 상철이 차를 뒤로 빼서 민정의 곁을 스쳐지나갔다.그 순간까지도 민정은 바쁜 스케쥴도 잊은채 멀어저가는 수혁의 차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에 비친 수혁은 이미 부하직원에게 카리스마 넘치고 타인에게 매너있는 한 회사의 오너로 비춰지고 있었다.
"여어~대충 먹힌거 같은데?"
"내가 뭐랬어.카 키스로 된다고 그랬잖아."
"이햐...야 강수혁.어떻게 여자들마다 너 한번보면 표정이 바뀌는거냐?"
"몰라서 묻냐.당연히 이 몸의 얼굴에 반한거지."
"지랄하고 있네."
상철은 낄낄거리며 차를 몰았고 수혁은 창밖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녀석한테 매료안의 심오한 세계를 가르쳐줄거 같냐..."
간만의 연기라 살짝 땀이 흘렀다.그렇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 형님이 이런 기사 연기까지 해야겠냐?중개료는 이자쳐서 듬뿍 받아내 주마"
"흥.고작 뒷조사 몇개하고 30프로씩 꼬박꼬박 받아먹는 주제에."
"얌마.이 엉아가 공사 못쳐서 중개하는거 같냐?이 엉아도 한때는 말야.."
"알았어.알았어.그만하자고.중개료는 30프로에 로열티 얹어서 줄테니까."
"그렇게 나오셔야지."
수혁을 태운차는 천천히 상철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로 향했다.일단 첫단추가 꿰어졌으니 술을 한잔 하려는 이유에서였다.물론 대낮이라 아가씨들없는 빈가게에서 둘이 마셔야 겠지만.
"자...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려 보실까."
-
오다가 생긴 수혁은 나름 느긋하게 공사를 준비했다.물론 조직내의 물건을 만들어주는 김노인을 찾아가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받아놓은 상태였다.보석류를 취급하는 무역회사 오너로 분장해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관련지식을 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면세점과 연이 닿아있는 다른 제비에게 부탁해서 아름답게 세공된 귀걸이도 하나 구입해 두었다.모든 공사준비가 완벽하게 갖추어 놓은 수혁은 느긋하게 오피스텔 침대에 누워 어제 빌려온 DVD를 감상하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예상대로 바로 전화는 오지 않는군."
어떠한 경우에도 카 키스를 한경우 바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보통 1주일정도 텀을 두기 마련이었다.자세한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이 바닥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우우웅.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한다.수혁은 다시 정지버튼을 누르고 액정을 바라보았다.예상대로 설민정이라는 이름이 떴다.그녀의 전화번호 따윈 이미 작업전부터 저장되어 있었다. 수혁은 바로 받지 않고 꽤나 전화기가 울린 이후에 폴더를 열었다.
"네 윤수혁입니다."
-여보세요?저..저기..-
긴장한 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수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막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어디십니까?"
-저..설민정이라고 합니다.-
"설...민정씨요?"
수혁은 잘 모른다는 듯한 뉘앙스로 되물었다.절대 전화를 기다렸다는 인상을 주어선 안되기 때문이었다.
-아..저번에 접촉사고 났던...-
"접촉사고라....아...기억납니다! 갑작스럽게 말씀하셔서 한번에 생각을 못했네요.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아..네...그다지 아픈곳은 없어요..-
"음...다행이네요! 차 범퍼 문제도 있고 하니...혹시 견적서는 뽑아두셨나요?"
-겨..견적서요?아뇨 그런건 안뽑았는데..-
"음..그럼 저번에 진 신세도 있고하니...수리비도 물어드릴겸 해서 만나뵈었으면 하는데...언제 시간괜찮으세요?"
-네?시간요?-
역시나 덥썩 만나자고 하니 당황하기 시작했다.깐깐해 보이는 그녀가 당황하는 것은 이미 매료안에 걸린 순간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매료안을 써서 절대적으로 사랑하게 만들수는 없지만 호감을 주는것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네.음....가만있자...금요일날 시간괜찮으신가요?"
이미 수혁은 상철이 뽑아준 그녀의 스케쥴표를 훤히 들어다 보고 있었다.금요일은 그녀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당연히 그녀가 시간이 날리가 없었다.
-어쩌죠...금요일은 제가 너무 바쁜데.,,,-
"이런...큰일이네요.제가 금요일빼면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는데...아..그럼 차라리 오늘 저녁을 같이 하실래요?"
-오..오늘요?-
그녀가 개인적인 약속이 없는이상 오늘은 별 스케쥴이 없을 터였다.이미 오다의 모든것을 파악한 뒤였기에 계획의 오차란 없었다.
"너무..갑작스럽나요?하지만 너무 시간이 지나면 좀 그러니까...오늘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될거 같은데."
-네...좋아요.오늘 저녁에 뵈요.-
"아..그럼 혹시 서울쪽은 괜찮으신가요?제가 잘 아는 일식집이 있는데...."
수혁은 미리 생각해 둔 일식집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꽤나 고급스럽고 커서 유명한 식당이었기에 민정은 금방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그럼...-
마지막에 끊는 민정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에서 수혁은 그녀가 설레여 한다는것을 금새 캐치할수 있었다.프로필을 보아하니 사업때문에 남자만나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던 그녀다.분명 낮선 남자와의 갑작스런 만남에 어느정도 설레고 있을지 모른다.
수혁은 옷장을 열어 한참이나 옷을 골랐다.첫 만남이 중요한 법이다.게다가 자신은 젊고 능력있는 한 회사의 오너로 분해있다.후줄근하게 입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이 녀석으로 해야겠군."
수혁은 약간 블루블랙톤을 띄는 고급정장을 골랐다.한참 더운 날씨여서 얇은 정장이긴 했지만 수혁의 몸에 잘 맞는 녀석이었다.대충 옷을 고른 수혁은 다시 플레이버튼을 누르고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막상 보려고 틀어놓긴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민정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 펼쳐지고 있었다.차를 몰아 가면 지금 출발해야 약속시간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수혁은 최대한 여유를 부렸다.우습지만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이상 첫만남에서는 약간 늦어야만한다.이미 애가 타고 있는것은 민정의 쪽일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정도 회사면...족히 3억은 뽑을수 있겠는데..."
간만에 온 특급오다였다.상철에게 중개료를 주고도 티가 안날만큼 괜찮은 액수였다.물론 유경의 몫도 떼어주어야 한다.조직에 있는 이상 보스에게 그 정도의 예의는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그런것이 아니면 이바닥이 조직화 되어 상부상조할 이유는 없다.
한참을 늑장을 부린 수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옷을 갖춰입고는 머리를 매만졌다.주차장에 내려가 시동을 거는 모든과정도 너무나 느긋했다.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는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이제 갖 1년차가된 수혁이지만 누구보다도 노련했고 전략을 짜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치밀했다.하기야 그런것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바닥에서 그렇게 빨리 떳는지도 몰랐다.유경은 수혁에게 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조직내 동료들에게 약간의 시기와 질투어린 시선도 많이 받았다.그도 그럴것이 1년만에 이 정도로 큰 케이스는 수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먼저 와 계시구만.."
일식집의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뒷범퍼가 살짝 긁힌 그녀의 흰색 아우디가 보였다.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터였다.수혁이 미리 가게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둔 데다가 그녀가 오면 자리로 미리 안내하라고 직원에게 귀띔까지 해두었기 때문이었다.대충 주차를 마친 수혁은 들어가자마자 직원에게 민정의 위치를 물었고,직원은 다다미 방으로 된 별실로 수혁을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민정씨.늦어서 죄송합니다.바이어가 예상보다 너무 오래 회사에 있어서.."
민정은 화사한 흰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긴 생머리에 약간은 짙은 화장위로 붉게 물든 볼이 보였다.서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정갈한 모습의 미인이었다.
"아뇨..저도 지금 막 왔는걸요."
수혁은 얼굴가득 미소를 띄우며 민정의 맞은 편에 앉았다.
"뭐 드실래요?여기 코스요리가 괜찮은데....그걸로 주문해도 되죠?"
"그럼요.저는 잘 모르니까.."
"여기..코스 2인분으로 주세요."
"네.알겠습니다."
직원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가자 수혁은 웃는 얼굴로 민정을 바라보았다.
"다치신곳이 없으셔서 다행이네요.빨리 연락을 주셨으면 더 신속하게 해결해 드렸을텐데.."
"아...저도 좀 바빠서요.사실...저 나름대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오...정말요?진짜 의외네요.사업가 이실줄은 몰랐는데."
"여자가 사업하는 경우는 아직까지는 흔치 않으니까요."
약간 수줍은 듯 입을 가리고 웃는 민정의 모습에 수혁도 덩달아 웃었다.
"어떤 사업을 하세요?"
"아...무역회사에요.섬유 원단쪽을 하고 있어요."
"우와...이거 신기한데요.저도 무역쪽을 하고 있거든요.보석류쪽."
"아..네.명함에서 봤어요."
민정은 금새 매너있으면서도 자연스레 리드하는 수혁과의 대화에 푹 빠져든듯 연신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이 나왔지만 둘은 여전히 이야기 하기 바빴다.누가봐도 교통사고 당사자들의 합의 현장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레가 안된다면....나이를 여쭤봐도 되나요?"
"아...올해 서른이에요.수혁씨는,,,?"
"저는 올해 서른둘됐네요,."
"어머...진짜요?딱 보면 절대 그렇게 안보이는데.."
"하하하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민정씨야 말로 20대 얼굴이신데요."
"어머...농담두.."
"진짜에요.솔직히 처음에 자동차 보고나서 부자집 따님인가 보다 했다니까요."
수혁의 말에 민정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너무나 소녀같은 모습에 누구라도 두근거릴만했지만 수혁의 눈에는 그저 보기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우우웅...
"아차...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약속한 타이밍에 전화가 울렸다."상철"이라고 씌여져있는 액정이 수혁의 눈에 들어왔다.수혁은 살짝 민정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아...김사장님."
-김사장은 니미...야..오다 만났냐?-
"네..네..덕분에 이번 수입건은 잘 해결됐습니다.매번 신세를 지네요."
-너야 매번 신세지지 임마.야...어떻게...오늘 깃발꽂을거냐?-
"글쎄요....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갑작스럽게는 힘들거 같은데..."
-야 뭐가 힘들어 그냥 오늘 확 침대에 눕혀버려.질질 끌어봐야 소용없다니깐?-
"아무튼 김사장님 부탁이니까 고려해 보겠습니다.지금 제가 중요한 손님 만나뵙고 있으니까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지랄하네.끊어 미친년아.-
상철과의 대화가 그녀에게 들릴리 만무했다.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민정의 귀는 수혁이 하는 말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전화를 끊은 수혁은 웃는 얼굴로 민정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죄송합니다.이번에 수입건 도와준 사장님인데...자꾸 무리한 부탁을 하셔서.."
"아니에요.그래도 요새같은 불경기에 잘 되시는 모양이에요.저희 회사도 사실 예전같지 않아서..."
"하하하...무역이라는게 다 그렇죠.특히 보석쪽은 경기를 많이 타니까...아차,.,,보석하니까 생각났는데...잠시만요."
수혁은 뭔가 생각났다는듯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그가 꺼낸것은 작은 보석함이었다.
"급하게 오느라 포장을 못했네요.이거..."
"어머...이게 뭐에요?"
"작은 성의입니다.열어보세요."
민정은 의아해 하면서도 수혁이 내민 작은 상자를 열었다.귀걸이 박힌 보석알들이 형광등 빛을 난반사하며 민정의 눈을 자극한다.
"어머...너무 이뻐요!"
"제가 이번에 수입하는 라인이 그쪽이라...마음에 드실지.."
"그래도 첫만남에 이렇게 큰걸 받을순 없죠."
"아닙니다.일부러 산것도 아니고...제가 하는일이 그쪽이라 급하게 드릴게 그거 밖에 없네요..그때 민정씨 바쁘셨던거 같은데...제가 많이 방해가 됐을겁니다.부담갖지 마시고 받으세요."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그녀였지만 싫을리가 없다.호감을 가진 남자가 건내는 아름다운 보석을 마다할 여자가 존재할리 없었다.수혁의 권유에 민정은 그 자리에서 수혁이 선물한 귀걸이를 착용했다.가지고 있는 손거울에 연신 자신을 비춰보이는 그녀의 표정에는 이미 행복이 가득했다.
"자자...식사도 했겠다...혹시 약속있으세요?"
"아뇨,,,"
"그럼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실래요?"
"시간요?"
수혁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아닌 뮤지컬 극장이었다.역시나 계획에 있는 행동이었기에 수혁은 능숙하게 그녀를 안내하며 리드했다.이미 민정의 머리속에는 긁혀있는 뒷범퍼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영국에서 첫 공연하고 평론가들의 엄청난 호평을 받은 작품이에요.한국에서도 공연을 한다 한다 하더니 드디어 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같이갈 여자가 없어서 못갔거든요."
"어머....여자친구 없으세요?"
이미 서로 미혼이라는 이야기는 일식집에서 밝힌 뒤였다.하지만 애인이 없다는 말에 민정의 가슴은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 설레는 오늘밤은 뮤지컬이 시작되는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수혁은 살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오늘 계획의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결국 민정은 밥만 먹자고 약속을 해놓고 뮤지컬에 이제는 바에 와서 그와 함께 칵테일을 기울이고 있었다.
"살짝 범퍼 긁힌 거뿐인데...오늘 너무 많이 얻어먹네요."
"무슨 말씀이세요.더 해드려도 부족한데.아참..그리고 대충 수리비는 100정도 드리면 될까요?"
"아니에요...그러지 마세요.귀걸이로 대신할게요."
"에이...무슨소리에요.그거 물어드리려고 만난거잖아요."
"그러지 마세요.너무 부담되는것도 싫어요.충분히 그정도는 쓰신걸요. 게다가...저 범퍼 고칠 돈도 없는 그런 무능력자 아니에요."
민정의 말에 수혁은 마지못해 하는 척하며 웃음을 지었다.이미 그녀는 자신에게 빠져있었다.바의 조명에 반짝이는 눈망울만봐도 그녀가 얼마나 설레여 하는지 알수 있을 정도였다.
"저기....민정씨."
"네?"
한참이나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수혁이 갑자기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범퍼문제 해결해 드리려고 만난거긴 하지만요.."
수혁의 말에 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계속 연락하고 싶은데...괜찮으신가요?"
"네?"
민정의 볼이 빨개지기 시작했다.회사내에선 깐깐한 여사장인 그녀도 남자앞에서는 소녀가 되어버리는 여자에 불과했다.그런 여심을 교묘히 이용하는것이 바로 수혁의 직업이자 특기이기도 하지만.
"네....얼마든지."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웃으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수혁은 과도하게 좋아하는 리액션을 보여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속으로는 다른종류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좋아....오늘은...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수혁은 한참이나 차를 몰고 다시 올라가야만했다.물론 오다가 살고 있는 경기도쪽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야야.휴게소 한번을 한들리냐?"
옆에서 상철이 계속해서 투덜거렸지만 수혁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상철의 요구대로 휴게소에 들려야만 했다.중간에 상철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마땅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휴게소에서는 호두과자를 먹어줘야 한다니까."
상철은 연신 쩝쩝거리며 호두과자를 입에 쓸어넣었다.전체적으로 깔끔한 세미정장 차림의 수혁은 품안을 뒤져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뭔가 전체적으로 외모적인 면에서 확 튀는 수혁을 주위사람들은 한번씩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설민정이라....올해 서른이라고 했지?"
수혁은 연신 사진속의 미녀를 들여다보았다.간만에 일할 맛 나는 오다였다.한달전쯤에 사천만원 정도의 중급오다와의 공사를 끝낸이후 전혀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제비답지 않게 비쥬얼을 보다보니 상철이 가져다 주는 일수는 적었지만,A급오다는 모두 수혁이 싹쓸이 하기 때문에 조직내에서 공공연히 그를 향한 불만을 표하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어.무슨 컴페니인가 하는 회사 오너인데...아씨발...회사 이름을 까먹었네.암튼 꽤 잘나가는 냄비야.차도 아우디 끌고 다니더라고.무엇보다 남편이 없는 여자니까 공사치기는 더 편하지."
"아니.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
확실히 말해 남편이 없는 미망인이나 처녀같은 경우엔 만남의 기회가 많고 편할지 모르지만 결혼하겠다고 달려드는 단점이 있었다.결혼을 약속하지 않는것은 공사의 철칙이다.결혼을 약속하고 나서 돈을 뜯어내고 잠적하면 그것은 바로 혼인빙자가 되기 때문이었다.결론적으로 돈을 받는것보다 인연을 끊는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접근을 해야하나..."
접근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언뜻봐도 깐깐해 보이는 여자인지라 그냥 가서 껄떡대는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고민하는 수혁을 보며 마지막 한개남은 호도과자를 입에 털어넣은 상철이 품안에서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이게뭐야?"
"뭐긴뭐야.뒷조사한거지."
상철이 건내준 서류에는 여자의 거주지를 비롯,자동차 넘버에서부터 자주 다니는 골프연습장까지 모든것이 적혀있었다.
"도대체 이런건 어디서 구하는거야?"
"새끼...그정도 정보력아니고서야 제비 중개인 해먹겠냐?"
"뭐...그도 그렇군."
담배를 두가피째 피워 물었을때 수혁의 머릿속에 공사와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어차피 모 아니면 도인것이 제비생활이다.수혁은 결심을 굳힌듯 입을 열었다.
"카 키스로 하자."
"야 씨발...그런 존나 고전적인 걸로?"
카 키스.말그대로 자동차 접속사고를 위장해서 접근하는 제비용어였다.한때 100프로 에 가까운 오더채집률을 가진 방법이라 여러 사람들에게 애용되었지만 요새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잘 안쓰는 방법이었다.
"이 여자는 고전적인게 먹힐 스타일이야."
"풋...관상보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내가 누구 손자인지 잊었냐?"
무당할머니 밑에서 자란 수혁이었다.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수혁도 어느정도 얼굴로 사람됨정도는 판단할수 있었다.물론 설민정이라는 여자의 모든것을 파악할순 없겠지만 왠지모를 확신이 섰다.
"니 꼴리는 대로 해라 그럼.나야 중개인이지 선수가 아니니까.바람잡이 필요하냐?"
"장난하냐.당연히 필요하지.운전기사 역할좀 부탁한다."
상철은 수혁보다 무려 4살이나 위였지만 이바닥에서 유경을 제외하고는 수혁이 존대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물론 상철의 능글능글한 성격상 문제삼은적도 없었고, 다른사람들은 수혁의 지랄맞은 성격을 잘 아는지라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게다가 오다 많이 따는 놈이 왕인 사회에서 수혁은 나름 높은 위치에 속한다는 명분이 있기도 하다.
"오랜만에 이 몸이 도와줘야 겠구만.그래.언제 시행할래?"
수혁은 상철이 준 서류안에서 그녀의 대략적인 스케줄을 알수 있었다.목요일마다 그녀는 무슨일인지는 알수 없지만 서울로 향한다.그녀가 살고 있는곳이 경기도쪽 전원주택이라는것을 감안하면 딱 그날이 최적격이었다.그리고 오늘은 수요일이었다.
"딱 나오네.내일."
-
"야야야.나온다."
상철의 말에 잠시 눈을 붙이던 수혁은 뒷자석에서 몸을 일으켰다.상철이 가리킨 곳에서 부터 하얀 자동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나왔다.앞좌석에는 사진속의 그녀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기사는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자.가자고."
가볍게 화이팅을 외친 상철이 천천히 백색 아우디의 뒤를 쫒았다.수혁은 뒷자석에서 연신 좌우를 둘러보았다.최대한 한적한 곳에서 카 키스를 할수록 효율이 높은 법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다,갖다 꼴아박어."
수혁의 말에 상철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천천히 떼기 시작했다.이것도 나름 기술이 있어야 했다.카 키스라고 해서 얼토당토 않게 꼴아박으면 오다를 따기는 커녕 욕먹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쿵!
다행히 나름 이바닥에서 상철도 꽤나 굴러먹던 터라 별 무리없이 뒷범퍼를 박았다.잠시후 문이 열리며 약간 찡그린 표정의 민정이 나왔다.
"작전대로 시작하자."
수혁의 말에 상철이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갔다.작전상 바로 수혁이 나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는 천천히 창문유리쪽으로 바깥을 살폈다.
"죄송합니다...어디..다치신데는 없으신지..."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거에요..."
"아이쿠..정말 죄송합니다.괜찮으신지요?"
민정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상철과 수혁이 타고있는 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다행히 자신의 차의 뒷범퍼는 소리만 요란했지 멀쩡했다.물론 차를 빼보면 희미하게 기스는 나있을테지만.
"일단 바쁘니까 빨리 해결하죠.저 서울로 1시까지 가봐야만 하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보험처리하기에는 미미하니 바로 처리해 드릴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아...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상철은 최대한 공손하고 매너있게 민정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뒷좌석 창문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사장님."
"무슨일이야 도대체?"
각본대로 수혁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창문을 내렸다.상철은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합니다.깜박 조는 바람에...일단 사고가 나서 처리를 해드려야 할거 같습니다."
수혁은 상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민정은 수혁을 한껏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수혁은 민정쪽은 처다보지도 않고는 상철을 조용히 나무랐다.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김기사 아무리 요새 피곤해도 그렇지..."
"죄송합니다 사장님.면목없습니다.그보다 저쪽에 계신 여자분께서.."
깊게 고개를 숙이는 상철의 말을 듣고서야 수혁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지금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온정신을 집중했다.그의 눈이 살짝 푸른빛이 스쳐지나간듯 싶더니 이내 본래의 검은 눈동자로 되돌아왔다.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민정의 얼굴에서 짜증이 달아나고 이내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좋아...일단 1단계 통과."
순식간에 매료안을 걸어버린 수혁은 점잖은 걸음걸이로 민정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다친곳은 없으신지요."
"아...괘...괜찮아요."
"죄송합니다.저희 김기사가 잠깐 졸음운전을 한거 같네요.면목없습니다."
매너있게 인사하는 수혁을 보고 민정은 되려 어쩔줄을 몰라하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 크게 파손된 곳은 없으니 보험처리보다는 제가 직접 처리해드리는것이 나을거 같습니다.혹시나 귀가하셔서 아픈곳이 있으시면 바로 연락주시구요.차량범퍼는 제가 갈아 드리겠습니다.저도 지금 중요한 회의 때문에 올라가는 중이라...명함을 드려도 될까요?"
"네...네..."
자신에게 눈을 맞추지 못하는 민정을 앞에두고 수혁은 품안을 뒤져 명합지갑을 꺼내들었다.온통 자신의 이름으로 된 각자 다른 명함들이 수없이 꽂혀 있었지만 민정에게 그게 보일리 만무했다.수혁은 미리 정해둔 명함을 뽑아 들었다.보석수입회사의 대표로 되어 있는 명함이었다.
"윤수혁이라고 합니다.꼭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성만 살짝 바꾼 가명이었다.명함을 전달하는 그 순간에도 수혁은 살짝 자신의 손이 민정의 손에 닿게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예상대로 민정의 몸이 움찔했다.
"아..그리고 실례가 안된다면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서...설민정이라고 합니다."
"민정씨군요. 이렇게 급하게 명함만 드리고 가서 죄송합니다.꼭 연락주십시오.기다리겠습니다.뭐해?김기사도 와서 사과해."
"아...죄송합니다 사모님."
"아..아니에요.운전하다보면 그럴수도..."
수혁의 말에 뛰어와 꾸벅 인사를 하는 상철에게 민정은 자신역시 고개를 숙였다.아까 짜증에 물들었던 얼굴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럼.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민정씨."
마지막으로 살짝 인사를 한 수혁이 뒷좌석으로 향하자 상철이 쪼르르 뛰어와서는 뒷문을 열어주었다.목례를 한 상철이 차를 뒤로 빼서 민정의 곁을 스쳐지나갔다.그 순간까지도 민정은 바쁜 스케쥴도 잊은채 멀어저가는 수혁의 차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에 비친 수혁은 이미 부하직원에게 카리스마 넘치고 타인에게 매너있는 한 회사의 오너로 비춰지고 있었다.
"여어~대충 먹힌거 같은데?"
"내가 뭐랬어.카 키스로 된다고 그랬잖아."
"이햐...야 강수혁.어떻게 여자들마다 너 한번보면 표정이 바뀌는거냐?"
"몰라서 묻냐.당연히 이 몸의 얼굴에 반한거지."
"지랄하고 있네."
상철은 낄낄거리며 차를 몰았고 수혁은 창밖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녀석한테 매료안의 심오한 세계를 가르쳐줄거 같냐..."
간만의 연기라 살짝 땀이 흘렀다.그렇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 형님이 이런 기사 연기까지 해야겠냐?중개료는 이자쳐서 듬뿍 받아내 주마"
"흥.고작 뒷조사 몇개하고 30프로씩 꼬박꼬박 받아먹는 주제에."
"얌마.이 엉아가 공사 못쳐서 중개하는거 같냐?이 엉아도 한때는 말야.."
"알았어.알았어.그만하자고.중개료는 30프로에 로열티 얹어서 줄테니까."
"그렇게 나오셔야지."
수혁을 태운차는 천천히 상철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로 향했다.일단 첫단추가 꿰어졌으니 술을 한잔 하려는 이유에서였다.물론 대낮이라 아가씨들없는 빈가게에서 둘이 마셔야 겠지만.
"자...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려 보실까."
-
오다가 생긴 수혁은 나름 느긋하게 공사를 준비했다.물론 조직내의 물건을 만들어주는 김노인을 찾아가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받아놓은 상태였다.보석류를 취급하는 무역회사 오너로 분장해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관련지식을 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면세점과 연이 닿아있는 다른 제비에게 부탁해서 아름답게 세공된 귀걸이도 하나 구입해 두었다.모든 공사준비가 완벽하게 갖추어 놓은 수혁은 느긋하게 오피스텔 침대에 누워 어제 빌려온 DVD를 감상하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예상대로 바로 전화는 오지 않는군."
어떠한 경우에도 카 키스를 한경우 바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보통 1주일정도 텀을 두기 마련이었다.자세한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이 바닥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우우웅.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한다.수혁은 다시 정지버튼을 누르고 액정을 바라보았다.예상대로 설민정이라는 이름이 떴다.그녀의 전화번호 따윈 이미 작업전부터 저장되어 있었다. 수혁은 바로 받지 않고 꽤나 전화기가 울린 이후에 폴더를 열었다.
"네 윤수혁입니다."
-여보세요?저..저기..-
긴장한 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수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막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어디십니까?"
-저..설민정이라고 합니다.-
"설...민정씨요?"
수혁은 잘 모른다는 듯한 뉘앙스로 되물었다.절대 전화를 기다렸다는 인상을 주어선 안되기 때문이었다.
-아..저번에 접촉사고 났던...-
"접촉사고라....아...기억납니다! 갑작스럽게 말씀하셔서 한번에 생각을 못했네요.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아..네...그다지 아픈곳은 없어요..-
"음...다행이네요! 차 범퍼 문제도 있고 하니...혹시 견적서는 뽑아두셨나요?"
-겨..견적서요?아뇨 그런건 안뽑았는데..-
"음..그럼 저번에 진 신세도 있고하니...수리비도 물어드릴겸 해서 만나뵈었으면 하는데...언제 시간괜찮으세요?"
-네?시간요?-
역시나 덥썩 만나자고 하니 당황하기 시작했다.깐깐해 보이는 그녀가 당황하는 것은 이미 매료안에 걸린 순간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매료안을 써서 절대적으로 사랑하게 만들수는 없지만 호감을 주는것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네.음....가만있자...금요일날 시간괜찮으신가요?"
이미 수혁은 상철이 뽑아준 그녀의 스케쥴표를 훤히 들어다 보고 있었다.금요일은 그녀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당연히 그녀가 시간이 날리가 없었다.
-어쩌죠...금요일은 제가 너무 바쁜데.,,,-
"이런...큰일이네요.제가 금요일빼면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는데...아..그럼 차라리 오늘 저녁을 같이 하실래요?"
-오..오늘요?-
그녀가 개인적인 약속이 없는이상 오늘은 별 스케쥴이 없을 터였다.이미 오다의 모든것을 파악한 뒤였기에 계획의 오차란 없었다.
"너무..갑작스럽나요?하지만 너무 시간이 지나면 좀 그러니까...오늘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될거 같은데."
-네...좋아요.오늘 저녁에 뵈요.-
"아..그럼 혹시 서울쪽은 괜찮으신가요?제가 잘 아는 일식집이 있는데...."
수혁은 미리 생각해 둔 일식집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꽤나 고급스럽고 커서 유명한 식당이었기에 민정은 금방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그럼...-
마지막에 끊는 민정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에서 수혁은 그녀가 설레여 한다는것을 금새 캐치할수 있었다.프로필을 보아하니 사업때문에 남자만나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던 그녀다.분명 낮선 남자와의 갑작스런 만남에 어느정도 설레고 있을지 모른다.
수혁은 옷장을 열어 한참이나 옷을 골랐다.첫 만남이 중요한 법이다.게다가 자신은 젊고 능력있는 한 회사의 오너로 분해있다.후줄근하게 입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이 녀석으로 해야겠군."
수혁은 약간 블루블랙톤을 띄는 고급정장을 골랐다.한참 더운 날씨여서 얇은 정장이긴 했지만 수혁의 몸에 잘 맞는 녀석이었다.대충 옷을 고른 수혁은 다시 플레이버튼을 누르고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막상 보려고 틀어놓긴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민정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 펼쳐지고 있었다.차를 몰아 가면 지금 출발해야 약속시간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수혁은 최대한 여유를 부렸다.우습지만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이상 첫만남에서는 약간 늦어야만한다.이미 애가 타고 있는것은 민정의 쪽일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정도 회사면...족히 3억은 뽑을수 있겠는데..."
간만에 온 특급오다였다.상철에게 중개료를 주고도 티가 안날만큼 괜찮은 액수였다.물론 유경의 몫도 떼어주어야 한다.조직에 있는 이상 보스에게 그 정도의 예의는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그런것이 아니면 이바닥이 조직화 되어 상부상조할 이유는 없다.
한참을 늑장을 부린 수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옷을 갖춰입고는 머리를 매만졌다.주차장에 내려가 시동을 거는 모든과정도 너무나 느긋했다.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는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이제 갖 1년차가된 수혁이지만 누구보다도 노련했고 전략을 짜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치밀했다.하기야 그런것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바닥에서 그렇게 빨리 떳는지도 몰랐다.유경은 수혁에게 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조직내 동료들에게 약간의 시기와 질투어린 시선도 많이 받았다.그도 그럴것이 1년만에 이 정도로 큰 케이스는 수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먼저 와 계시구만.."
일식집의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뒷범퍼가 살짝 긁힌 그녀의 흰색 아우디가 보였다.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터였다.수혁이 미리 가게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둔 데다가 그녀가 오면 자리로 미리 안내하라고 직원에게 귀띔까지 해두었기 때문이었다.대충 주차를 마친 수혁은 들어가자마자 직원에게 민정의 위치를 물었고,직원은 다다미 방으로 된 별실로 수혁을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민정씨.늦어서 죄송합니다.바이어가 예상보다 너무 오래 회사에 있어서.."
민정은 화사한 흰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긴 생머리에 약간은 짙은 화장위로 붉게 물든 볼이 보였다.서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정갈한 모습의 미인이었다.
"아뇨..저도 지금 막 왔는걸요."
수혁은 얼굴가득 미소를 띄우며 민정의 맞은 편에 앉았다.
"뭐 드실래요?여기 코스요리가 괜찮은데....그걸로 주문해도 되죠?"
"그럼요.저는 잘 모르니까.."
"여기..코스 2인분으로 주세요."
"네.알겠습니다."
직원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가자 수혁은 웃는 얼굴로 민정을 바라보았다.
"다치신곳이 없으셔서 다행이네요.빨리 연락을 주셨으면 더 신속하게 해결해 드렸을텐데.."
"아...저도 좀 바빠서요.사실...저 나름대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오...정말요?진짜 의외네요.사업가 이실줄은 몰랐는데."
"여자가 사업하는 경우는 아직까지는 흔치 않으니까요."
약간 수줍은 듯 입을 가리고 웃는 민정의 모습에 수혁도 덩달아 웃었다.
"어떤 사업을 하세요?"
"아...무역회사에요.섬유 원단쪽을 하고 있어요."
"우와...이거 신기한데요.저도 무역쪽을 하고 있거든요.보석류쪽."
"아..네.명함에서 봤어요."
민정은 금새 매너있으면서도 자연스레 리드하는 수혁과의 대화에 푹 빠져든듯 연신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이 나왔지만 둘은 여전히 이야기 하기 바빴다.누가봐도 교통사고 당사자들의 합의 현장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레가 안된다면....나이를 여쭤봐도 되나요?"
"아...올해 서른이에요.수혁씨는,,,?"
"저는 올해 서른둘됐네요,."
"어머...진짜요?딱 보면 절대 그렇게 안보이는데.."
"하하하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민정씨야 말로 20대 얼굴이신데요."
"어머...농담두.."
"진짜에요.솔직히 처음에 자동차 보고나서 부자집 따님인가 보다 했다니까요."
수혁의 말에 민정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너무나 소녀같은 모습에 누구라도 두근거릴만했지만 수혁의 눈에는 그저 보기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우우웅...
"아차...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약속한 타이밍에 전화가 울렸다."상철"이라고 씌여져있는 액정이 수혁의 눈에 들어왔다.수혁은 살짝 민정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아...김사장님."
-김사장은 니미...야..오다 만났냐?-
"네..네..덕분에 이번 수입건은 잘 해결됐습니다.매번 신세를 지네요."
-너야 매번 신세지지 임마.야...어떻게...오늘 깃발꽂을거냐?-
"글쎄요....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갑작스럽게는 힘들거 같은데..."
-야 뭐가 힘들어 그냥 오늘 확 침대에 눕혀버려.질질 끌어봐야 소용없다니깐?-
"아무튼 김사장님 부탁이니까 고려해 보겠습니다.지금 제가 중요한 손님 만나뵙고 있으니까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지랄하네.끊어 미친년아.-
상철과의 대화가 그녀에게 들릴리 만무했다.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민정의 귀는 수혁이 하는 말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전화를 끊은 수혁은 웃는 얼굴로 민정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죄송합니다.이번에 수입건 도와준 사장님인데...자꾸 무리한 부탁을 하셔서.."
"아니에요.그래도 요새같은 불경기에 잘 되시는 모양이에요.저희 회사도 사실 예전같지 않아서..."
"하하하...무역이라는게 다 그렇죠.특히 보석쪽은 경기를 많이 타니까...아차,.,,보석하니까 생각났는데...잠시만요."
수혁은 뭔가 생각났다는듯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그가 꺼낸것은 작은 보석함이었다.
"급하게 오느라 포장을 못했네요.이거..."
"어머...이게 뭐에요?"
"작은 성의입니다.열어보세요."
민정은 의아해 하면서도 수혁이 내민 작은 상자를 열었다.귀걸이 박힌 보석알들이 형광등 빛을 난반사하며 민정의 눈을 자극한다.
"어머...너무 이뻐요!"
"제가 이번에 수입하는 라인이 그쪽이라...마음에 드실지.."
"그래도 첫만남에 이렇게 큰걸 받을순 없죠."
"아닙니다.일부러 산것도 아니고...제가 하는일이 그쪽이라 급하게 드릴게 그거 밖에 없네요..그때 민정씨 바쁘셨던거 같은데...제가 많이 방해가 됐을겁니다.부담갖지 마시고 받으세요."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그녀였지만 싫을리가 없다.호감을 가진 남자가 건내는 아름다운 보석을 마다할 여자가 존재할리 없었다.수혁의 권유에 민정은 그 자리에서 수혁이 선물한 귀걸이를 착용했다.가지고 있는 손거울에 연신 자신을 비춰보이는 그녀의 표정에는 이미 행복이 가득했다.
"자자...식사도 했겠다...혹시 약속있으세요?"
"아뇨,,,"
"그럼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실래요?"
"시간요?"
수혁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아닌 뮤지컬 극장이었다.역시나 계획에 있는 행동이었기에 수혁은 능숙하게 그녀를 안내하며 리드했다.이미 민정의 머리속에는 긁혀있는 뒷범퍼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영국에서 첫 공연하고 평론가들의 엄청난 호평을 받은 작품이에요.한국에서도 공연을 한다 한다 하더니 드디어 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같이갈 여자가 없어서 못갔거든요."
"어머....여자친구 없으세요?"
이미 서로 미혼이라는 이야기는 일식집에서 밝힌 뒤였다.하지만 애인이 없다는 말에 민정의 가슴은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 설레는 오늘밤은 뮤지컬이 시작되는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수혁은 살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오늘 계획의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결국 민정은 밥만 먹자고 약속을 해놓고 뮤지컬에 이제는 바에 와서 그와 함께 칵테일을 기울이고 있었다.
"살짝 범퍼 긁힌 거뿐인데...오늘 너무 많이 얻어먹네요."
"무슨 말씀이세요.더 해드려도 부족한데.아참..그리고 대충 수리비는 100정도 드리면 될까요?"
"아니에요...그러지 마세요.귀걸이로 대신할게요."
"에이...무슨소리에요.그거 물어드리려고 만난거잖아요."
"그러지 마세요.너무 부담되는것도 싫어요.충분히 그정도는 쓰신걸요. 게다가...저 범퍼 고칠 돈도 없는 그런 무능력자 아니에요."
민정의 말에 수혁은 마지못해 하는 척하며 웃음을 지었다.이미 그녀는 자신에게 빠져있었다.바의 조명에 반짝이는 눈망울만봐도 그녀가 얼마나 설레여 하는지 알수 있을 정도였다.
"저기....민정씨."
"네?"
한참이나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수혁이 갑자기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범퍼문제 해결해 드리려고 만난거긴 하지만요.."
수혁의 말에 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계속 연락하고 싶은데...괜찮으신가요?"
"네?"
민정의 볼이 빨개지기 시작했다.회사내에선 깐깐한 여사장인 그녀도 남자앞에서는 소녀가 되어버리는 여자에 불과했다.그런 여심을 교묘히 이용하는것이 바로 수혁의 직업이자 특기이기도 하지만.
"네....얼마든지."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웃으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수혁은 과도하게 좋아하는 리액션을 보여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속으로는 다른종류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좋아....오늘은...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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