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7부
7부-해변으로!
"야...역시 이 형님의 판단대로 오니까 안막히게 가잖냐?"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상철이 수다떠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수혁은 뒷좌석의 시트에 더욱 깊숙히 몸을 기댔다.바다
에 가자고 한 상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야야 수혁아.어제 잠 안잤어?"
앞좌석에 있던 조직내에 동료인 상준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뿐 감은 눈을 뜨
지 않았다.
"야야.됐어.저새끼 원래 까칠한거 알잖냐."
상철의 말에 상준은 사람좋은 미소를 씩 지어 보이더니 이내 다시 몸을 틀어 앞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겉멋든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상철이 새로 뽑은 차는 외제세단이었다.때문에 뒷좌석은 꽤나 넓었고, 자신의 옆에 준영이 앉아 있음에도 불구
하고 수혁은 편하게 누워서 갈수 있었다.
"내가 왜 남자새끼들이랑 바다를 가고 있는거지."
분명 이해할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나름 큰 건 두개를 하고난 뒤라 그런지
바다에 가서 다 날려버리고 오자라는 상철의 말이 너무나 유혹적으로 들렸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철과 조
직내의 제비인 준영과 상준은 연신 신이나는지 창밖을 내다보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와~~바다 보인다 보여!"
"씨발...오래 걸려도 경포대로 오길 잘했다니까.."
"오..야야...저 여자 잘빠졌다."
다시 소란스러워 진 탓에 수혁은 살짝 눈을 떴다.뜨거운 햇살이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왔다. 눈을 떠보니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보였다. 그 근처에 발달된 즐비하게 늘어선 호텔들.하지만 수혁등이 탄 차는 호텔로 들어가지
않았다.오히려 해변 깊숙히 까지 들어가는 모습에 수혁이 살짝 입을 열었다.
"해변에 텐트치고 잘라 그러냐?왜이렇게 사정없이 들어가."
"새끼..이 엉아가 아무 대책없이 왔겠냐.숙소는 이미 다 마련되 있어 임마."
"숙소?"
딱 봐도 고급차인 그들의 자동차는 주변의 이목을 한번에 집중시켰다.게다가 수혁을 포함한 네명의 훤칠한 미남
들이 타고 있으니 여자들이 쑥덕거리는 모습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들이 탄차가 천천히 전원주택을 연상시키는
멋진 건물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숙소라는 개념을 비로소 이해할수 있는 수혁이었다.
"이 팬션...유경이 형님꺼잖냐.나중에는 여기서 팬션하면서 살고 싶으시다나?그래서 미리 사두셨는데 이 엉아가
환상의 말빨로 구슬려서 빌린거야 임마."
"환상의 말빨은 무슨.그냥 좀 쓰겠습니다 하면 바로 내줄 사람인데."
수혁의 중얼거림에 상철의 관자놀이가 또 꿈틀대었지만 이내 삭힐 수밖에 없었다.
"자자자.일단 내리자구~바다도 보이고...진짜 괜찮네."
준영은 씩 웃으며 트렁크로 가서 자신의 짐은 물론 수혁의 가방까지 들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상준역시 남아있
는 두개의 가방을 들고 팬션안으로 들어가버린 탓에 느릿느릿 내린 수혁과 상철은 빈손으로 가도 되었다.늘상
수혁은 그들을 참 성격 둥글둥글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화내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하기
야 개차반인 자신에게도 서글서글하게 대해주니 그들과 그나마 교류가 있는것인지도 몰랐다.
"워....꽤 괜찮잖아?"
"여기 아무도 없는거야?"
"3일에 한번 관리하는 할아버지가 와서 청소하고 간다네.유경이 형님 노후대책으로 이런걸 마련해 놓으셨을 줄이
야.."
수혁은 이리저리 2층 복층형으로 되어있는 팬션내부를 둘러보았다. 유경 개인이 쓰려고 지은 팬션이 아닌지라
넷이서 쓰기엔 너무나 넓었지만 1층에서 다같이 모여서 놀면 넉넉하게 놀만 할것 같았다.거실에 넓은 쇼파에 털
썩 주저앉은 수혁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야야..여기까지 와서 뭐하냐?나가서 해수욕도 좀 하고 그래야지."
"남자끼리 해수욕은 무슨...."
퉁명스럽게 돌아오는 수혁의 말에 그의 성격을 아는 셋은 피식 웃어버렸다.
"애초에 저인간이 따라온거 자체가 기적이지..."
수혁을 제외한 세명의 머릿속에 공통된 생각이었다.
"야야...그러지말고 나가자.바닷바람 맞으러 너도 온거 아니냐?"
상철의 말에 수혁이 담배를 끄려고 살짝 몸을 일으켰을때 수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야...니들...."
자신을 제외한 세명은 모두 물에 들어가기 위한 복장으로 완벽하게 바뀌어 있었다.
"자자..가자고..."
"야.,..놔봐..잠깐.."
"자자자...괜찮으니까 나오라니까?"
"낚시대좀 가져가고.."
상철은 낚시대를 주섬주섬 챙기는 수혁을 질질 끌다시피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여전히 뚱한 얼굴을 하고 있
는 수혁은 이내 못이기는 척 그들을 따라나섰다.
"크아,..파도도 죽이고...저기 저여자도 죽이고.."
"어디어디?"
"오..비키니다 비키니."
상철과 준영,상준은 연신 바다를 보며 히히덕 거렸다.상철이야 중개인이라 배가 살짝 나온 아저씨 상이지만,수혁
을 비롯한 셋은 공사를 위해 언제나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야...직업이 여자만나는 거면서 아직도 여자만 보면 히히덕 거리냐."
수혁의 중얼거림에 상준이 씩 웃었다.
"사무직이라고 피씨방 안가냐? 어디 오다랑 밖에 있는 싱싱한 쭉빵애들이 비교가 되겠냐?"
"말은 잘하는구만."
하기사 수혁은 조금은 이해할수 있었다.세상 여자들이 다 예쁜것은 아니다.자신이야 워낙 독불장군인데다가 유경
의 비호아래 큰 제비니 이쁜여자만 찾아도 상철이 알아서 챙겨주었지만 준영이나 상준의 경우는 달랐다.얼마전에
유리나와 같은 오다는 정말 드문 케이스다.대부분 복부인이라 불리는 아줌마들이 대부분인 그들에게 해변은 천국
과 같다.
"하긴...니들은 눈돌아갈만 하겠구나..."
수혁은 그들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끼며 주섬주섬 낚시대를 챙겨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머지 인물들은 어느
새 바다로 뛰어들어 물을 적시기 바빴다.
"저쯤이면...괜찮을거 같은데..."
나름 낚시광인 수혁의 눈에 적당한 바위산이 하나 눈에 띄였다.해수욕장이 있는 해변과 꽤나 거리가 있어 보였지
만 수혁은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주변의 여자들이 힐끔힐끔 자신을 의식하는 시선이 느껴졌다.원체 수혁에
게는 "여자란 일"이라는 개념으로 굳어져 버린탓에 그닥 신경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북적거리는곳이 딱 질
색인 수혁에게는 얼른 가서 낚시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고보니...오다와 있을때를 제외하곤 여행이란걸 해본적이 없군."
생각해보니 그랬다.공사도중에 오다와 몇번 여행을 간적은 있다. 분위기를 잡아 공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케이스
도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와본적은 없었다.고등학교 졸업이후 힘겹게 살아온 자신에게
있어서 친구란 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나쁘진 않군."
수혁은 적당한 위치를 잡아 낚시대를 드리웠다.민물에서 하는 낚시와는 다른, 일렁이는 파도와 바위에 부딪혀 부
서지는 물방울을 보며 하는 낚시는 나름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심한것들..."
멀리서 자신의 일행 셋이 아가씨들에게 집적대며 공놀이를 하는것이 보였다.꽤나 먼거리였지만 특별한 눈을 가진
수혁에게는 영업용미소를 띈 세명의 선수들의 표정까지 훤하게 보였다.
"서른이 넘은 것들이...."
서른이 넘은 형들에게 반말을 하는 자신의 행동은 죽어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안할 수혁이었다.
"어라?"
바다쪽을 보고 있던 수혁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보였다.물고기가 바늘쪽으로 접근하는것을. 보통때의 수혁이라면 물속까지 통과해서 보지 못
했을 터였다.
"뭐지?방금 이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처럼 새파란 물만 보일뿐이었다.하지만 순간적으로 물고기가 보였던 것은 분명했다.
"진화하고 있는건가....내 매료안이?"
자신이 매료안을 자각한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왠지모르게 눈으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버리는 듯한 그 기분.
수혁은 그날 처음으로 여자에게 고백을 받았다.그리고 눈이 아파서 한동안 고생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수혁은 조금이나마 자신의 힘을 컨트롤 할수 있었다.쓰다보니 어느정도 강도를 걸어 써먹을 수 있다
는 것도 알았다.시력은 점점더 좋아졌고, 어둠속에서도 훤히 볼수 있게 되기까지 했다.하지만 아무리 물이라지만
물체를 통과해서 본적은 없었다.시퍼렇게 일렁이는 물은 일반 욕조에 담긴물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도 이런말은 한적이 없었는데..."
수혁의 머릿속으로 예전의 기억이 영상처럼 펼쳐졌다.
"할머니!할머니!어디아파?"
"혁아...넌 이제부터 할미가 짊어졌던 기구한 운명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그 눈...그 눈을 함부로 써서는 안돼
알았니?"
"어째서?"
"그건 너에게 있어 축복일수도 있겠지..하지만 그 눈은...나중에 너한테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게 할지도 모른단
다..."
"미안해 할머니.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순간 낚시대가 강하게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 수혁은 잽싸게 릴을 감았다.바다낚시경험이 많은 편이 아닌 수혁이인지라 어종은 알수 없었지만 제법묵직한 녀석이 끌려올라왔다.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라 그런지 힘자체가 달랐다.수혁이 거둬들이고 나서도 퍼덕거리는 녀석을 진정시키고 바늘에서 떼는동안은 꽤나 시간이 걸렸다. 한마리 잡히고 나니 신이난 수혁은 다시 미끼를 연결하고는 재차 던지기 위해 낚시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자..이번에도 큰 놈하나 건져볼..."
낚시대를 던지려던 수혁의 몸이 정지했다.그의 눈안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수혁이 낚시를
하고 있는 바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었다.하늘거리는 긴 치마.그리고 똑같이 바람
에 날리는 검은 머리칼.순백색의 피부가 햇살아래 유독 하얗게 보였다.살짝 헐렁거리는 나시를 입고 있었지만
볼록한 가슴의 굴곡과 잘록한 허리라인은 충분히 유추할수 있었다.하얀 얼굴과 대조되는 새까만 눈동자와 앙증맞
은 입술. 수혁은 그 답지 않게 한참이나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예인인가?"
티비를 잘 안보는 수혁에게는 그렇게 의심이 들만한 미인이었다. 잠깐이지만 자신의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고 있
음이 느껴졌다. 물론 그녀와 수혁과의 거리는 꽤나 먼 거리였지만 수혁의 경우에는 그녀의 반짝이는 입술까지
훤히 볼수 있었다.그녀는 너무나도 슬픈표정이었다.한없이 멀리서 부터 돌아오는 파도를 응시하는 두 눈가에는
희미하게나마 이슬이 맺혀 있었다.수혁은 낚시대를 던질생각도 하지 않고는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았다.그녀의 고
개가 살짝 돌아가더니 자신을 향한다. 너무나 까매서 아름답기 까지한 투명한 그녀의 두눈.수혁은 꽤나 먼거리임
에도 불구하고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획 하고 돌려버렸다.
"내..내가 왜이러지?"
두근거리는 가슴은 어쩔수가 없었다.여자를 모르는 쑥맥도 아닌 자신이 왜 이런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그렇다고
순 호박들만 만난 자신도 아니다.상철이 가져다 주는 오다는 미와 재력을 갖춘 여자들뿐이었다.그런 여자들을 상
대로 100퍼센트의 성공률을 보였던 자신이었다.그것도 1년이 넘어가는 지난 세월간 줄곧.
"없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때 그녀는 없었다.마치 환상을 본것처럼 그 자리에는 텅빈 해변만이 있을뿐이다.꿈을 꾼것같
은 묘한 느낌에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까지 했다.
"공사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안하던 짓을 하는군...나도 참..."
멀리서 물놀이에 지쳤는지 해변에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일행들을 바라본 수혁은 조용히 한숨을 쉬고는 낚시대를
접었다.아까 잡은 고기까지 바닷물을 담은 어망에 잘 갈무리한 수혁은 도구를 챙겨 내려왔다.애써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까 그 여자의 얼굴은 지우려 노력하면서.
"어이~강태공씨.좀 낚았냐?"
상철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백사장에 널부러진 꼴이 꽤나 격하게 논 모양이었다.해가 천천히 질때쯤 도착
한 그들인지라 금새 날은 어둑해 지고 있었다.
"어...달랑 한마리이긴 하지만.."
"진짜?어디봐봐."
상준과 준영이 신기하다는듯 수혁이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았다.상철이 씩 웃더니 셋을 잡아 끌었다.
"야야.잘됐다..이거 회쳐서 술한잔 하자."
다들 물놀이에 지쳤는지 모두들 숙소로 들어갔다.술장사를 하는 상철인지라 푸짐하게 양주가 차려졌다.이 바닥에
종사하다보면 혼자사는게 의례였기 때문에 모두들 요리는 곧 잘하는 편이었다.물론 가장 나이어린 수혁은 쇼파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자자 마시자!"
솔직히 공사가 끝나면 그 누구보다 한가한 그들이었다.게다가 직업상 조직내의 사람들끼리 친해져 어울리는 경우
가 많았다.독불장군인지라 사람과 어울리는것을 즐겨하지 않는 수혁도 이들과 꽤 많이 술을 마셨었다.수혁이 그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지겹도록 조직내의 인물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을 터였다.이런 저런 이야기들의 소재가 고
갈될때쯤 상준이 입을 열었다.
"야야..우리끼리 이러는것도 웃기고...바닷가까지 왔는데..여자나 꼬시러 가볼까?"
"여자?"
수혁을 제외한 모든 인물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상준은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임마.여기 널린게 쎄끈한 냄비인데...각자 흩어져서 여자 한명씩 꼬셔오자.직업이 그건데 못하겠냐?"
"난 잘란다 니들끼리 해라."
은근한 분위기를 확 깨는 수혁의 말에 상철이 그를 만류했다.
"야야.수혁아.여기까지 와서 쳐 자면 오피스텔에 있는거랑 뭐가 다르냐?"
"귀찮을 뿐이야.분위기 깰생각은 없으니까 나가서들 놀아."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포기할때쯤 준영이 입을 열었다.
"야...그런 이건어때?돈을 거는거야.200만원씩."
"돈?"
"그래.가장먼저 여자를 먹고오는 놈한테 200씩 몰아준다.어때?"
세명이 한사람당 이백씩 몰아주면 1등인 한명은 6백만원을 먹는 셈이 된다.퉁명스러웠던 수혁의 얼굴에도 약간의
흥미가 돌았다.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케치한 준영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재밌을거 같지 않냐? 장소는 이 팬션을 제외한 어디라도 좋다.가장먼저 먹고 이 팬션에 오는놈이 1등."
"야..근데 그 놈이 여자를 땄는지 안땄는지 증거가 없잖아?"
상준의 말에 준영이 위스키를 한잔 들이키더니 씩 웃었다.
"그러니까...여자팬티를 증표로 가져오는거지...그냥 해변에서 사오는 경우도 있을테니 애액으로 젖은 팬티를
말이야...어떠냐?"
준영의 말에 상준도,중개인인 상철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수혁의 눈빛이 갑자기 엄청난 의욕이 가득담긴
눈빛으로 변했다.
"큭큭...수혁이 저자식도 불타올랐군."
이글이글 타오르는 수혁을 보고 살짝 웃은 준영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자자...먼저오는 놈이 육백먹는거다.이 팬션안에서 말고 밖에서 먹고 오는거 알지?자자..시작하자."
-
수혁은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아까 그 바위섬에서 보았던 그여자가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외모도 외모였지만 뭔지 모를 그 슬픈 눈빛에 자신의 심장은 요동치듯 두근거렸었다.하지만 그
여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자.적당한 여자 하나 물어서 빨리 일을 치르고 가야겠군."
이상한 일이었다.아무리 이쁜여자도 그에게는 직업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늘,아까 본 여자는 왜자꾸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공사가 끝난지 얼마 안돼서 마음이 허한 모양이군."
수혁은 피식웃으며 미리 꼬불쳐 두었던 상철의 차 키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멍청한 것들.팬션안이 안된다면 차안이 가장 편한거잖아."
다들 술을 마신 상태기 때문에 차는 생각도 안한 모양이었다.수혁역시 술을 마셨지만,해변가 돌아다니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게다가 지금 차는 이동수단이 아닌 단지 작업공간일 뿐이지 않는가?
"어디보자..."
비록 해가진 저녁이지만 네온사인이나 불꽃놀이를 하는 인파들때문에 어두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수혁은 열심히
작업대상을 찾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도 이제 슬슬 움직일 것이다.맨정신에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여자
란 찾기 힘들기 때문에 술을 이용해야 했다.이점에서 걸리는 시간은 모두 비슷하게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저여자..괜찮은데.."
수혁의 눈에 노란색 비키니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2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싱그러운 청춘이었다. 가슴이 꽤나
큰 편인데다가 허리곡선이 이쁜편이라 비키니가 잘 어울려보였다.누굴 기다리는지 연신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
며 파도치는 저녁해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한번볼까..."
수혁은 안력을 집중했다.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꽤나 귀여운 얼굴이었다.눈은 크고 코와 입술은 앙증맞는,전형적
인 귀염상의 여인이었다.
"키가 살짝 작은게 아쉽군.뭐 지금은 그런거 따질필요가 없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그여자가 적격이었다.일행들과는 뿔뿔히 흩어져서 여자를 찾은탓에,다른 녀석이 접근할 위험도
없어 보였다.게다가 여자는 네온사인불빛이 비추는 곳에 서있었다.어두운곳에 있으면 매료안에 걸리기 어렵기 때
문에 지금의 조건은 최적이었다.
"저기..."
성큼성큼 접근한 수혁이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찰나의 그 순간, 수혁은 안력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타이밍이었다.다행히도 수혁은 직업으로 그 눈을 쓰고 있기 때문에 타이밍 자체는 완벽하다
고 할수 있었다.
"네?"
그녀의 큰 눈망울이 수혁을 응시한다.깜짝 놀라 돌아본 그녀였지만 이내 동공에 긴장이 풀리듯 술을 마신 여자처
럼 눈빛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잠깐동안의 푸른빛은 수혁의 눈가에서 사라졌다.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큰 눈
만 껌벅거렸다.
"혼자 계신가 봐요?"
"네?아..그..그게..친구들이 오기로 했는데..."
"아까부터 기다리시던데요?"
싱글싱글 웃는 수혁의 얼굴을 왠지 모르게 마주칠수 없는 자신이 이해가 안되는 그녀였다.게다가 말까지 더듬고
있지 않는가?
"그..그러게요..애들이 늦네요...아까 어떤 남자들이랑...같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수혁은 대충 감을 잡을수 있었다.여자끼리 온 그룹이었는데,남자들에게 헌팅을 당한 모양이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녀만 따로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녀의 친구들은 남자들과 노는데 푹 빠져있는 것이 틀림없
었다.
"아마...그 친구분들 재밌게 노느라 안오시는 모양이네요."
"그...그런가요.."
평소라면 "근데 무슨 용건이세요?"라고 물어봤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냥 수혁의 말에 대답만 할 뿐이었다.
제대로 매료안에 걸린것을 확인한 수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도 일행이 없어져서 말이죠.괜찮으시다면 같이 소주라도 한잔 하실래요?"
"야...역시 이 형님의 판단대로 오니까 안막히게 가잖냐?"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상철이 수다떠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수혁은 뒷좌석의 시트에 더욱 깊숙히 몸을 기댔다.바다
에 가자고 한 상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야야 수혁아.어제 잠 안잤어?"
앞좌석에 있던 조직내에 동료인 상준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뿐 감은 눈을 뜨
지 않았다.
"야야.됐어.저새끼 원래 까칠한거 알잖냐."
상철의 말에 상준은 사람좋은 미소를 씩 지어 보이더니 이내 다시 몸을 틀어 앞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겉멋든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상철이 새로 뽑은 차는 외제세단이었다.때문에 뒷좌석은 꽤나 넓었고, 자신의 옆에 준영이 앉아 있음에도 불구
하고 수혁은 편하게 누워서 갈수 있었다.
"내가 왜 남자새끼들이랑 바다를 가고 있는거지."
분명 이해할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나름 큰 건 두개를 하고난 뒤라 그런지
바다에 가서 다 날려버리고 오자라는 상철의 말이 너무나 유혹적으로 들렸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철과 조
직내의 제비인 준영과 상준은 연신 신이나는지 창밖을 내다보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와~~바다 보인다 보여!"
"씨발...오래 걸려도 경포대로 오길 잘했다니까.."
"오..야야...저 여자 잘빠졌다."
다시 소란스러워 진 탓에 수혁은 살짝 눈을 떴다.뜨거운 햇살이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왔다. 눈을 떠보니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보였다. 그 근처에 발달된 즐비하게 늘어선 호텔들.하지만 수혁등이 탄 차는 호텔로 들어가지
않았다.오히려 해변 깊숙히 까지 들어가는 모습에 수혁이 살짝 입을 열었다.
"해변에 텐트치고 잘라 그러냐?왜이렇게 사정없이 들어가."
"새끼..이 엉아가 아무 대책없이 왔겠냐.숙소는 이미 다 마련되 있어 임마."
"숙소?"
딱 봐도 고급차인 그들의 자동차는 주변의 이목을 한번에 집중시켰다.게다가 수혁을 포함한 네명의 훤칠한 미남
들이 타고 있으니 여자들이 쑥덕거리는 모습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들이 탄차가 천천히 전원주택을 연상시키는
멋진 건물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숙소라는 개념을 비로소 이해할수 있는 수혁이었다.
"이 팬션...유경이 형님꺼잖냐.나중에는 여기서 팬션하면서 살고 싶으시다나?그래서 미리 사두셨는데 이 엉아가
환상의 말빨로 구슬려서 빌린거야 임마."
"환상의 말빨은 무슨.그냥 좀 쓰겠습니다 하면 바로 내줄 사람인데."
수혁의 중얼거림에 상철의 관자놀이가 또 꿈틀대었지만 이내 삭힐 수밖에 없었다.
"자자자.일단 내리자구~바다도 보이고...진짜 괜찮네."
준영은 씩 웃으며 트렁크로 가서 자신의 짐은 물론 수혁의 가방까지 들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상준역시 남아있
는 두개의 가방을 들고 팬션안으로 들어가버린 탓에 느릿느릿 내린 수혁과 상철은 빈손으로 가도 되었다.늘상
수혁은 그들을 참 성격 둥글둥글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화내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하기
야 개차반인 자신에게도 서글서글하게 대해주니 그들과 그나마 교류가 있는것인지도 몰랐다.
"워....꽤 괜찮잖아?"
"여기 아무도 없는거야?"
"3일에 한번 관리하는 할아버지가 와서 청소하고 간다네.유경이 형님 노후대책으로 이런걸 마련해 놓으셨을 줄이
야.."
수혁은 이리저리 2층 복층형으로 되어있는 팬션내부를 둘러보았다. 유경 개인이 쓰려고 지은 팬션이 아닌지라
넷이서 쓰기엔 너무나 넓었지만 1층에서 다같이 모여서 놀면 넉넉하게 놀만 할것 같았다.거실에 넓은 쇼파에 털
썩 주저앉은 수혁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야야..여기까지 와서 뭐하냐?나가서 해수욕도 좀 하고 그래야지."
"남자끼리 해수욕은 무슨...."
퉁명스럽게 돌아오는 수혁의 말에 그의 성격을 아는 셋은 피식 웃어버렸다.
"애초에 저인간이 따라온거 자체가 기적이지..."
수혁을 제외한 세명의 머릿속에 공통된 생각이었다.
"야야...그러지말고 나가자.바닷바람 맞으러 너도 온거 아니냐?"
상철의 말에 수혁이 담배를 끄려고 살짝 몸을 일으켰을때 수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야...니들...."
자신을 제외한 세명은 모두 물에 들어가기 위한 복장으로 완벽하게 바뀌어 있었다.
"자자..가자고..."
"야.,..놔봐..잠깐.."
"자자자...괜찮으니까 나오라니까?"
"낚시대좀 가져가고.."
상철은 낚시대를 주섬주섬 챙기는 수혁을 질질 끌다시피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여전히 뚱한 얼굴을 하고 있
는 수혁은 이내 못이기는 척 그들을 따라나섰다.
"크아,..파도도 죽이고...저기 저여자도 죽이고.."
"어디어디?"
"오..비키니다 비키니."
상철과 준영,상준은 연신 바다를 보며 히히덕 거렸다.상철이야 중개인이라 배가 살짝 나온 아저씨 상이지만,수혁
을 비롯한 셋은 공사를 위해 언제나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야...직업이 여자만나는 거면서 아직도 여자만 보면 히히덕 거리냐."
수혁의 중얼거림에 상준이 씩 웃었다.
"사무직이라고 피씨방 안가냐? 어디 오다랑 밖에 있는 싱싱한 쭉빵애들이 비교가 되겠냐?"
"말은 잘하는구만."
하기사 수혁은 조금은 이해할수 있었다.세상 여자들이 다 예쁜것은 아니다.자신이야 워낙 독불장군인데다가 유경
의 비호아래 큰 제비니 이쁜여자만 찾아도 상철이 알아서 챙겨주었지만 준영이나 상준의 경우는 달랐다.얼마전에
유리나와 같은 오다는 정말 드문 케이스다.대부분 복부인이라 불리는 아줌마들이 대부분인 그들에게 해변은 천국
과 같다.
"하긴...니들은 눈돌아갈만 하겠구나..."
수혁은 그들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끼며 주섬주섬 낚시대를 챙겨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머지 인물들은 어느
새 바다로 뛰어들어 물을 적시기 바빴다.
"저쯤이면...괜찮을거 같은데..."
나름 낚시광인 수혁의 눈에 적당한 바위산이 하나 눈에 띄였다.해수욕장이 있는 해변과 꽤나 거리가 있어 보였지
만 수혁은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주변의 여자들이 힐끔힐끔 자신을 의식하는 시선이 느껴졌다.원체 수혁에
게는 "여자란 일"이라는 개념으로 굳어져 버린탓에 그닥 신경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북적거리는곳이 딱 질
색인 수혁에게는 얼른 가서 낚시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고보니...오다와 있을때를 제외하곤 여행이란걸 해본적이 없군."
생각해보니 그랬다.공사도중에 오다와 몇번 여행을 간적은 있다. 분위기를 잡아 공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케이스
도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와본적은 없었다.고등학교 졸업이후 힘겹게 살아온 자신에게
있어서 친구란 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나쁘진 않군."
수혁은 적당한 위치를 잡아 낚시대를 드리웠다.민물에서 하는 낚시와는 다른, 일렁이는 파도와 바위에 부딪혀 부
서지는 물방울을 보며 하는 낚시는 나름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심한것들..."
멀리서 자신의 일행 셋이 아가씨들에게 집적대며 공놀이를 하는것이 보였다.꽤나 먼거리였지만 특별한 눈을 가진
수혁에게는 영업용미소를 띈 세명의 선수들의 표정까지 훤하게 보였다.
"서른이 넘은 것들이...."
서른이 넘은 형들에게 반말을 하는 자신의 행동은 죽어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안할 수혁이었다.
"어라?"
바다쪽을 보고 있던 수혁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보였다.물고기가 바늘쪽으로 접근하는것을. 보통때의 수혁이라면 물속까지 통과해서 보지 못
했을 터였다.
"뭐지?방금 이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처럼 새파란 물만 보일뿐이었다.하지만 순간적으로 물고기가 보였던 것은 분명했다.
"진화하고 있는건가....내 매료안이?"
자신이 매료안을 자각한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왠지모르게 눈으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버리는 듯한 그 기분.
수혁은 그날 처음으로 여자에게 고백을 받았다.그리고 눈이 아파서 한동안 고생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수혁은 조금이나마 자신의 힘을 컨트롤 할수 있었다.쓰다보니 어느정도 강도를 걸어 써먹을 수 있다
는 것도 알았다.시력은 점점더 좋아졌고, 어둠속에서도 훤히 볼수 있게 되기까지 했다.하지만 아무리 물이라지만
물체를 통과해서 본적은 없었다.시퍼렇게 일렁이는 물은 일반 욕조에 담긴물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도 이런말은 한적이 없었는데..."
수혁의 머릿속으로 예전의 기억이 영상처럼 펼쳐졌다.
"할머니!할머니!어디아파?"
"혁아...넌 이제부터 할미가 짊어졌던 기구한 운명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그 눈...그 눈을 함부로 써서는 안돼
알았니?"
"어째서?"
"그건 너에게 있어 축복일수도 있겠지..하지만 그 눈은...나중에 너한테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게 할지도 모른단
다..."
"미안해 할머니.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순간 낚시대가 강하게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 수혁은 잽싸게 릴을 감았다.바다낚시경험이 많은 편이 아닌 수혁이인지라 어종은 알수 없었지만 제법묵직한 녀석이 끌려올라왔다.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라 그런지 힘자체가 달랐다.수혁이 거둬들이고 나서도 퍼덕거리는 녀석을 진정시키고 바늘에서 떼는동안은 꽤나 시간이 걸렸다. 한마리 잡히고 나니 신이난 수혁은 다시 미끼를 연결하고는 재차 던지기 위해 낚시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자..이번에도 큰 놈하나 건져볼..."
낚시대를 던지려던 수혁의 몸이 정지했다.그의 눈안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수혁이 낚시를
하고 있는 바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었다.하늘거리는 긴 치마.그리고 똑같이 바람
에 날리는 검은 머리칼.순백색의 피부가 햇살아래 유독 하얗게 보였다.살짝 헐렁거리는 나시를 입고 있었지만
볼록한 가슴의 굴곡과 잘록한 허리라인은 충분히 유추할수 있었다.하얀 얼굴과 대조되는 새까만 눈동자와 앙증맞
은 입술. 수혁은 그 답지 않게 한참이나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예인인가?"
티비를 잘 안보는 수혁에게는 그렇게 의심이 들만한 미인이었다. 잠깐이지만 자신의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고 있
음이 느껴졌다. 물론 그녀와 수혁과의 거리는 꽤나 먼 거리였지만 수혁의 경우에는 그녀의 반짝이는 입술까지
훤히 볼수 있었다.그녀는 너무나도 슬픈표정이었다.한없이 멀리서 부터 돌아오는 파도를 응시하는 두 눈가에는
희미하게나마 이슬이 맺혀 있었다.수혁은 낚시대를 던질생각도 하지 않고는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았다.그녀의 고
개가 살짝 돌아가더니 자신을 향한다. 너무나 까매서 아름답기 까지한 투명한 그녀의 두눈.수혁은 꽤나 먼거리임
에도 불구하고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획 하고 돌려버렸다.
"내..내가 왜이러지?"
두근거리는 가슴은 어쩔수가 없었다.여자를 모르는 쑥맥도 아닌 자신이 왜 이런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그렇다고
순 호박들만 만난 자신도 아니다.상철이 가져다 주는 오다는 미와 재력을 갖춘 여자들뿐이었다.그런 여자들을 상
대로 100퍼센트의 성공률을 보였던 자신이었다.그것도 1년이 넘어가는 지난 세월간 줄곧.
"없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때 그녀는 없었다.마치 환상을 본것처럼 그 자리에는 텅빈 해변만이 있을뿐이다.꿈을 꾼것같
은 묘한 느낌에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까지 했다.
"공사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안하던 짓을 하는군...나도 참..."
멀리서 물놀이에 지쳤는지 해변에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일행들을 바라본 수혁은 조용히 한숨을 쉬고는 낚시대를
접었다.아까 잡은 고기까지 바닷물을 담은 어망에 잘 갈무리한 수혁은 도구를 챙겨 내려왔다.애써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까 그 여자의 얼굴은 지우려 노력하면서.
"어이~강태공씨.좀 낚았냐?"
상철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백사장에 널부러진 꼴이 꽤나 격하게 논 모양이었다.해가 천천히 질때쯤 도착
한 그들인지라 금새 날은 어둑해 지고 있었다.
"어...달랑 한마리이긴 하지만.."
"진짜?어디봐봐."
상준과 준영이 신기하다는듯 수혁이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았다.상철이 씩 웃더니 셋을 잡아 끌었다.
"야야.잘됐다..이거 회쳐서 술한잔 하자."
다들 물놀이에 지쳤는지 모두들 숙소로 들어갔다.술장사를 하는 상철인지라 푸짐하게 양주가 차려졌다.이 바닥에
종사하다보면 혼자사는게 의례였기 때문에 모두들 요리는 곧 잘하는 편이었다.물론 가장 나이어린 수혁은 쇼파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자자 마시자!"
솔직히 공사가 끝나면 그 누구보다 한가한 그들이었다.게다가 직업상 조직내의 사람들끼리 친해져 어울리는 경우
가 많았다.독불장군인지라 사람과 어울리는것을 즐겨하지 않는 수혁도 이들과 꽤 많이 술을 마셨었다.수혁이 그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지겹도록 조직내의 인물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을 터였다.이런 저런 이야기들의 소재가 고
갈될때쯤 상준이 입을 열었다.
"야야..우리끼리 이러는것도 웃기고...바닷가까지 왔는데..여자나 꼬시러 가볼까?"
"여자?"
수혁을 제외한 모든 인물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상준은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임마.여기 널린게 쎄끈한 냄비인데...각자 흩어져서 여자 한명씩 꼬셔오자.직업이 그건데 못하겠냐?"
"난 잘란다 니들끼리 해라."
은근한 분위기를 확 깨는 수혁의 말에 상철이 그를 만류했다.
"야야.수혁아.여기까지 와서 쳐 자면 오피스텔에 있는거랑 뭐가 다르냐?"
"귀찮을 뿐이야.분위기 깰생각은 없으니까 나가서들 놀아."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포기할때쯤 준영이 입을 열었다.
"야...그런 이건어때?돈을 거는거야.200만원씩."
"돈?"
"그래.가장먼저 여자를 먹고오는 놈한테 200씩 몰아준다.어때?"
세명이 한사람당 이백씩 몰아주면 1등인 한명은 6백만원을 먹는 셈이 된다.퉁명스러웠던 수혁의 얼굴에도 약간의
흥미가 돌았다.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케치한 준영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재밌을거 같지 않냐? 장소는 이 팬션을 제외한 어디라도 좋다.가장먼저 먹고 이 팬션에 오는놈이 1등."
"야..근데 그 놈이 여자를 땄는지 안땄는지 증거가 없잖아?"
상준의 말에 준영이 위스키를 한잔 들이키더니 씩 웃었다.
"그러니까...여자팬티를 증표로 가져오는거지...그냥 해변에서 사오는 경우도 있을테니 애액으로 젖은 팬티를
말이야...어떠냐?"
준영의 말에 상준도,중개인인 상철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수혁의 눈빛이 갑자기 엄청난 의욕이 가득담긴
눈빛으로 변했다.
"큭큭...수혁이 저자식도 불타올랐군."
이글이글 타오르는 수혁을 보고 살짝 웃은 준영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자자...먼저오는 놈이 육백먹는거다.이 팬션안에서 말고 밖에서 먹고 오는거 알지?자자..시작하자."
-
수혁은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아까 그 바위섬에서 보았던 그여자가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외모도 외모였지만 뭔지 모를 그 슬픈 눈빛에 자신의 심장은 요동치듯 두근거렸었다.하지만 그
여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자.적당한 여자 하나 물어서 빨리 일을 치르고 가야겠군."
이상한 일이었다.아무리 이쁜여자도 그에게는 직업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늘,아까 본 여자는 왜자꾸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공사가 끝난지 얼마 안돼서 마음이 허한 모양이군."
수혁은 피식웃으며 미리 꼬불쳐 두었던 상철의 차 키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멍청한 것들.팬션안이 안된다면 차안이 가장 편한거잖아."
다들 술을 마신 상태기 때문에 차는 생각도 안한 모양이었다.수혁역시 술을 마셨지만,해변가 돌아다니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게다가 지금 차는 이동수단이 아닌 단지 작업공간일 뿐이지 않는가?
"어디보자..."
비록 해가진 저녁이지만 네온사인이나 불꽃놀이를 하는 인파들때문에 어두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수혁은 열심히
작업대상을 찾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도 이제 슬슬 움직일 것이다.맨정신에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여자
란 찾기 힘들기 때문에 술을 이용해야 했다.이점에서 걸리는 시간은 모두 비슷하게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저여자..괜찮은데.."
수혁의 눈에 노란색 비키니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2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싱그러운 청춘이었다. 가슴이 꽤나
큰 편인데다가 허리곡선이 이쁜편이라 비키니가 잘 어울려보였다.누굴 기다리는지 연신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
며 파도치는 저녁해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한번볼까..."
수혁은 안력을 집중했다.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꽤나 귀여운 얼굴이었다.눈은 크고 코와 입술은 앙증맞는,전형적
인 귀염상의 여인이었다.
"키가 살짝 작은게 아쉽군.뭐 지금은 그런거 따질필요가 없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그여자가 적격이었다.일행들과는 뿔뿔히 흩어져서 여자를 찾은탓에,다른 녀석이 접근할 위험도
없어 보였다.게다가 여자는 네온사인불빛이 비추는 곳에 서있었다.어두운곳에 있으면 매료안에 걸리기 어렵기 때
문에 지금의 조건은 최적이었다.
"저기..."
성큼성큼 접근한 수혁이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찰나의 그 순간, 수혁은 안력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타이밍이었다.다행히도 수혁은 직업으로 그 눈을 쓰고 있기 때문에 타이밍 자체는 완벽하다
고 할수 있었다.
"네?"
그녀의 큰 눈망울이 수혁을 응시한다.깜짝 놀라 돌아본 그녀였지만 이내 동공에 긴장이 풀리듯 술을 마신 여자처
럼 눈빛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잠깐동안의 푸른빛은 수혁의 눈가에서 사라졌다.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큰 눈
만 껌벅거렸다.
"혼자 계신가 봐요?"
"네?아..그..그게..친구들이 오기로 했는데..."
"아까부터 기다리시던데요?"
싱글싱글 웃는 수혁의 얼굴을 왠지 모르게 마주칠수 없는 자신이 이해가 안되는 그녀였다.게다가 말까지 더듬고
있지 않는가?
"그..그러게요..애들이 늦네요...아까 어떤 남자들이랑...같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수혁은 대충 감을 잡을수 있었다.여자끼리 온 그룹이었는데,남자들에게 헌팅을 당한 모양이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녀만 따로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녀의 친구들은 남자들과 노는데 푹 빠져있는 것이 틀림없
었다.
"아마...그 친구분들 재밌게 노느라 안오시는 모양이네요."
"그...그런가요.."
평소라면 "근데 무슨 용건이세요?"라고 물어봤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냥 수혁의 말에 대답만 할 뿐이었다.
제대로 매료안에 걸린것을 확인한 수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도 일행이 없어져서 말이죠.괜찮으시다면 같이 소주라도 한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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