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5
찬바람이 두툼한 옷깃마저 파고들어 몸서리가 쳐지는 저녁 무렵
하나 둘씩 떨어지는 눈꽃이 바라보이는 카페 창가에 두 소녀가 나란히 앉아 커피를 홀짝 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언니, 오늘 학원 등록했으니까 내일부터는 우리 같이 학원 다니는 거죠?”
“그래, 은주야”
“야호, 신난다!”
“그렇게 좋아?”
“네, 언니”
“은주가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혜영은 자신의 생의 반려자이자 은주의 가장 큰 기둥임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혜영의 진학 문제...
언제까지나 이런 산골 별장에서만 생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교의 강요에 의해 했던 휴학이라 말이 휴학이지 사실상 자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전학을 가거나 검정고시를 통해서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데,
그 시간 동안 혜영과 떨어져 지낼 생각을 하니,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검정고시였다.
은주는 싫다고 하는 딸 아니, 반려자 혜영을 몇 날을 걸쳐 설득한 끝에
혜영 역시 잠시라도 자신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학원 생활을 은주가 함께한다는 조건으로 혜영의 설득했다.
하지만, 세월이 무엇이던가?
결정 이후 딸 혜영의 참고서와 교과서를 열어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한 은주였으나,
남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처럼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것을 책일 뿐이라
도통 이해하기 힘들뿐이었다.
나름 모범생이었던 은주에게도 세월은 비껴지나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자신과 혜영이 같이 학원에 다니는 것은 불가능할듯하여
혼자 끙끙대고 있던 은주에게 혜영은
“공부는 잘 해서 뭘 하게? 그냥 내 옆에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그 한마디로 정리해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사실 학원 수업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는 없는 은주였다.
그저 자신의 애인인 혜영의 옆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예전의 모녀는 그 집에 없었다.
엄마 은주와 딸 혜영은 그 집 안에 없었다.
사랑하는 연인인 두 여인만이 그 집 안으로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은주는 더 이상 딸 혜영을 ‘혜영’이라 부르지 않았고
혜영은 더 이상 엄마 은주를 ‘엄마’라 부르지 않았다.
그저 한 쌍의 연인만이 그 집 안에 있었다.
은주는 딸 혜영에게 살림에서부터 생활의 모든 것까지 의논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혜영은 의젓하게 하나하나 꼼꼼히 듣고는 결정해 주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은주에게 혜영은 든든한 울타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언니, 나 안아줘요”
“응?”
“아까 언니가 카페에서 내 스커트 밑으로 거기 건드렸잖아”
“...?”
“그 때부터 나 이상해졌다구요”
“하하하”
“언니, 나뻐, 빨리 안아줘요”
혜영은 매달린 엄마 은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입을 맞추며 안방으로 유도해 들어갔다.
혜영이 입을 떼며
“내가 먼저 씻을까? 아니며 은주부터?”
“아니, 같이요”
“그래, 우리 같이하자”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옷을 모두 벗은 두 여인이 안방 욕실로 들어섰다.
미끈한 두 나신이 서로를 바라본다.
혜영은 매달리는 은주의 머리를 보듬어 안고 은주의 눈동자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엄마 은주의 눈동자 안에 있는 혜영의 모습은 더 이상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눈동자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일 뿐이었다.
혜영의 입술이 다가가자 엄마 은주의 혀가 마중을 나왔다.
“으...ㅁ...”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잠시 엄마 은주의 타액이 혜영에게 밀려들어 오는듯하다가
이내 엄마 은주가 혜영의 타액을 빨아들였다.
별장에서의 그 날 이후 엄마 은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딸인 자신을 대하는 말투뿐만이 아니라 태도는 물론이고
단 둘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시간까지도 적극적인 여자가 되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행하는 모습, 수동적인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혜영은 그런 엄마 은주의 모습이 좋았다.
엄마 은주의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다.
혜영이 마주보던 자세에서 엄마 은주를 돌려세워 가슴을 애무하자
엄마 은주가 은주의 가슴에 등을 기대며 손가락으로 혜영의 클리를 조심스럽게 자극했다.
“은주야”
“네, 여보”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지난밤의 정사로 인해 깊은 잠을 못 이뤄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뜨고는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딸 혜영을 깨웠다.
“자기야, 일어나요”
“응”
“...”
“자기야, 일어나요”
“응”
“...”
“자기야, 일어나요”
“응”
“...”
시간 간격을 두고 몇 번이나 깨웠지만 딸 혜영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 아파요?”
조심스레 딸 혜영에게 묻고는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끓고 있었다.
“언니”
“응, 나 오늘 학원 못갈 거 같은데”
“그럼 어떡해요?”
“...”
막상 학원 첫날, 당일이 되니 이렇게 되다니...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였다.
딸 혜영이 요즘 뉴스에서 말하는 병에 걸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가 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혜영을 억지로 잠에서 깨워 겨우 옷을 입혀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역시 요즘 유행하는 그 전염병이라고 했다.
당분간 푹 쉬면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듣자 아직까지 남은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무감에서일까?
사랑하는 연인 혜영과 함께 있고 싶고 간병을 해야만 된다는 생각에 앞서서 딸 혜영의 공부가 걱정되었다.
‘오늘 강의하는 것들 필기라도 제대로 다 해 와서 언니에게 보여줘야지’
하긴 은주는 단 한 번도 학원이라는 곳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비좁은 강의실에 빽빽이 붙어 앉은 학생들의 모습.
겨울이라 찬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을 해 놓아서 인지 환기가 되지 않아 쾌쾌한 냄새.
강의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은주에게 가방만 덩그러니 놓아둔 빈자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는 은주가 그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던 딸 혜영보다 서너 살은 위로 보이는 남학생이 힐끗 보더니 쓴 웃음을 지으며
은주에게 말을 건넸다.
“거기, 내 친구 자린데”
“네?”
“내 친구 자리라고”
“빈자리 같은데...”
말꼬리를 은주를 바라보던 남학생이 자신의 휴대폰 벨이 울리자 전화를 받는 틈에
자리를 지켜야 필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은주는 책상에 책과 공책을 펼쳤다.
“너, 오늘 처음이지?”
“네”
“오늘만이다, 내일부터는 오늘처럼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운 좋은 줄 알아, 친구 놈이 오늘 아파서 못 온다고 하네”
“...”
은주와 그 남학생이 옥신각신하던 참에 강사가 들어와 강의를 시작했다.
“안녕? 몹시 추운 날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넓은 강의실 안에 강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며 강의가 시작되었지만,
칠판과의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은주에게 필기를 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피식 웃으며 자신의 공책을 보여주어 겨우 필기를 할 수 있었다.
첫째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어 화장실로 향하는 은주에게
딸 혜영이 또래의 여학생이 다가왔다.
“너, 오늘 처음이지?”
“응”
“너 옆에 앉은 남자애,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왜”
“불량스러운 사람이거든”
“응?”
“암튼, 조심해”
“...”
쉬는 시간이 끝나고 좀 전에 들은 여학생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옆 자리에 있던 남학생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정거장으로 들어섰다.
“아까 고마웠어요.”
“응”
“아까 학원에서 고마웠는데, 커피라도 한 잔하실래요?”
“...”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의 은주는 그 남학생에게 무엇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남학생의 팔을 잡아끌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커피가 놓인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은주와 남학생이 마주 앉았다.
“애들이 뭐라고 안해?”
“...?”
“나, 학원에서 애들이나 선생들한테 찍혔거든”
“...?”
“쌈꾼으로 말이야”
“...”
“놈이고 년이고 말이지, 왜 그렇게 내 신경을 긁어 놓는지...”
“...”
“근데... 이제 보니 너 이쁘...”
“...”
“아니야, 아무 것도”
남학생의 말을 듣고서야 아까 딸 혜영이 또래의 여학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은주는 뭐라 말 하기 어려웠다.
“나가자”
몇 마디 말에도 아무 대꾸도 안하는 은주를 바라보던 남학생이 아직 채 식지도 않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은주에게 나가자고 했다.
다시 버스 정거장에 들어 선 두 사람은 말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은주가 탈 버스가 와 버스에 오르는데 그 남학생이 은주 뒤를 따라 올라탔다.
“너도 이 버스?”
“네”
은주가 연인 혜영이 기다리고 있는 둘만의 보금자리인 자신의 아파트 단지 앞에서 내리자
그 남학생도 따라 내렸다.
“너 여기 살아?”
“네”
“몇 동?”
“...”
“난 OOO동”
“...”
남학생이 말한 동은 은주의 베란다에서 마주 보이는 동이었다.
은주가 아파트 정문을 지나 놀이터 옆을 지날 때 남학생의 발걸음 소리가 급해지더니
은주의 팔을 끌고 어둠속으로 이끌었다.
“앗”
“잠깐만”
“왜?”
남학생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은주의 팔을 끌고 이미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에 들어간 날씨라
이미 어둡고 찬바람에 낙엽만 뒹구는 놀이터 구석으로 몰아갔다.
은주를 어둠 속 구석진 벽에 기대게 한 남학생의 팔이 은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겁에 질린 은주는 남학생의 얼굴도 바라보지 못했다.
남학생이 한 손으로 은주의 턱을 추켜들더니 은주의 떨리는 여린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으...”
무어라고든 싫다고 말하고 싶은 은주였지만 입이 막힌 은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것이 모두였다.
남학생의 혀가 은주의 입술을 두드렸다.
하지만, 당혹스럽기만 한 은주는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만을 찾고 있었다.
남학생의 손이 은주의 스커트 밑으로 들어와 레깅스 위로 은주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아... 흑...”
은주가 놀람으로 인해 한 숨 섞인 신음을 터뜨리자 순간 남학생의 혀가 은주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은주는 자신의 레깅스 위에 있는 남학생의 손을 떼어내려 애쓰면서 자신의 혀를 남학생의 혀로부터 도망치기에 분주했다.
두 곳으로 나뉜 은주의 신경은 두 곳을 모두 감당하지 못하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남학생의 손은 레깅스 위에서 더 이상 욕심을 내지는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은주의 혀가 남학생의 강한 흡입력으로 해서 남학생의 입으로 끌려들어갔다.
남학생은 은주의 혀를 소화라도 시킬 듯 강하게 끌어당겨 은주의 체액이 모두 빨려나가는 듯 했다.
“으... ㅁ...”
딸 혜영과의 키스는 언제나 부드러운 깊고 깊은 정신적 교감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포근한 안락감을 느끼는 키스였다.
남학생의 키스는 텁텁하고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 교감은 없었다.
오직 동물적 감각뿐...
빨려 나가는 자신의 체액과 함께 은주는 어둠의 색이 검은 색에서 하얀 색으로 변하는 듯 한 착각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은주가 막 자신의 두 손으로 남학생을 안으려 할 때 쯤 남학생은 은주의 스커트를 바로 해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남학생이 은주의 손을 잡아끌어 놀이터 벤치에 앉혔다.
“아까 내가 카페에서 하다 만 얘기가 뭔 줄 알아?”
“...”
“너 이쁘다고”
“...”
“내가 막 나가고 쌈질도 좀 하지만 여자애들 울리는 놈은 아니거든”
“...”
“내가 여자애들 함부로 건드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
“네가 내 맘에 들었단 얘기야”
“...”
“너 나랑 사귀자”
“...”
은주는 남학생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늘 이 자리에 자신이 왜 있는 것인지...
이런 일이 왜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은주는 머리 안이 초겨울 찬바람에 얼어 마비되는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