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무] 1장 병서보검협(兵書寶劍峽)의 소년(少年)
콰르르릉!
우루르르......촤----아아!
포말!
포말을 머리에 인채 휘돌아 구르는 물줄기는 흡사 만 마리 이무기가 뒤엉
켜 몸부림 치는 것만 같다.
콰르르.....쿠쿠쿵!
치솟아 오른 물줄기는 깍아지른 듯이 치솟은 협곡의 석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진다.
쿠르르..........!
촤---------아아.......!
이십여장을 격하고 마주 선 양석벽은 끝이 없을 듯이 치솟아 머리를 구름
에 감추고 있다.
쿠.......철----썩!
말년을 쉬임없이 협곡을 휘몰아 흐르는 장강의 거센 물줄기......
그 위로 흐르는 잔나비의 휘바람 소리가 구슬프게 흐른다.
<병서보검협>
무산삼협으로 이르는 험난한 협곡 중 병서보검협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병서보검협!
이는 사천성과 가까운 호북성의 험한 서안에 자리한다.
그 상류에는 파동과 황우협이 있으며 더 멀리로는 유명한 무협과 구당협이
자리한다.
또한 그 하류로는 삼협의 초입인 서릉협이 험상돎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병서보검협!
이에는 전설이 있다.
후힌의 부름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다가 끝내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
의 별로 진!
저 파촉의 명신 제갈무후를 기억하는가?
그 제갈무후가 말년에 한 자루 신병과 한 권의 병서를 이곳에 묻었다고 한
다.
이것이 병서보검협에 전하는 전설이며,
또한 병서보검협의 이름이 명명된 동기이기도 하다.
콰---르르.....쿠당탕!
청둥이 인듯한 굉음,
하얗게 치솟아 창천을 가리는 하얀 포말...........
병서보검협의 거센 물결은 인간이 이에 접근하기를 거부한다.
인간의 마음이 악착스럽다 하나 무산을 지나는 삼협에 비할바 못된다.
아무리 노련한 뱃사람이라 해도 무산삼협의 거치름에는 오금이 저리고만다
무릇,
--장하는 하늘로부터 비롯되어 창해로 이르고,
삼협은 거칠어 하늘로 오르는 문이 되네!
노래소리,
귀를 찢는 물결소리를 거침없이 헤치며 한소리 창창한 노래소리가 멀리멀
리 퍼져나갔다.
누가 부르는가?
아직 치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었다.
그러나 이에는 장퇘한 호기가 실려있어 듣는 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콰르르...........
쿠------쿵쿵! 철썩..!
휘몰아치는 병서보검협의 격류를 뚫고 예의 노래소리가 이어졌다.
--천하가 혼탁하며 거치나,삼협의 그것만 못하고 인생이 모질어 길다하나
어찌 장하만 같으랴?
세파가 험함은 잔뼈를 굵게 하려 함이오!
인심이 거칠어 짐은 살을 굳게 하려 함이네!
장부되어 천하에 한번 났으니,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촌음이 내개 살을 더해주며,
한가닥 빛이라도 나의 힘을 강하게 하네!
창천에 오르면 대붕이 되어 큰 바람을 부르고,
대지를 딛고 서면 큰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 종리자강이 장부로 태어 았음에야........
호기!
장쾌한 호기가 노래소리에 실려 만파를 꿰뚫고 협곡너머로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쿠르르....콰르릉......
철썩-------촤아아......
휘몰아 용솟음치는 병서보검협의 격류 위로 한척의 편주가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격류에 휘말려 잠겨 버릴듯한 초라한 소주!
그러나 그 소주를 모는 인물만큼은,
소주같이 초라하지 않았다.
--소년!
의외로 거칠디 거친 병서보검협의 격랑을 타고 나는 듯이 하류로 내려가는
인물은....아직도 치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소년이었다.
십 오 세 정도 되었을까?
파의 밖으로 팔,다리가 나와 구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리빛으로 강인해 보이는 팔다리는 소년을 어른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
였다.
그러나 구리빛의 피부와 달리,
소년의 용모!
그 단정하여 그림같은 용모를 어찌 표현해야 옳겠는가?
먹물을 듬뿍 찍어 힘차게 휘둘린 듯 짙디 짙은 눈썹!
옥으로 빛은듯이 너무도 반듯하기만한 날카로운 코의 선,
그리고 두툼한 입술은 소년의 의지가 철썩과도 같음을 웅변으로 말해 준다
지금,
병서보검협을 내려오는 소년의 굳게 다물린 입술가로 흐릿한 미소가 떠올
라 보는이로 하여금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두눈은...봉황의 수려한 기품을 닮아 너무도 아름다운 두눈은....
그 깊숙한 곳에 사자의 강인하고 장한 기개를 닮아 반짝인다.
쿠르르르...콰르르.......
병소보검협의 거친 물결은 소년이 타고있는 편주를 뒤흔든다.
때로는 편주를 허공으로 던져내고, 때로는 탁류를 뒤집어 씌워 짓누른다.
하지만,
[...........!]
편주를 모는 소년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유유자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편주의 선미를 밟은 소년의 두발은 뿌리를 내린듯 견고하고, 노를 쥔 소년
의 두팔은 마치 무쇠로 빛은 둣이 강인해 보인다.
[핫하! 나는 삼협의 이 호탕탕함이 좋다!]
소년은 능숙하게 배를 몰며 크게 웃었다.
[핫하..! 막힘없이 치닫는 네 강함이 나 종리자강은 좋다!]
콰르르.....촤아아......!
소년...종리자강이 웃는 중에도 병서보검협의 격류는 편주를 이 장 높이로
퉁겨 올렸다.
[핫하! 천변만화 하는 듯이 보여도 결국은 낮은 곳으로 치닫는 너의 불변
함이 자강은 또한 좋다!]
콰르르.....
허공으로 치솟은 편주를 바로 뉘어 오 장을 날아 가면서도 종리자강은 미
소를 쑬지 않았다.
콰르르....
치 솟는 물줄기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것은 석양이 가까워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하! 해가 서산으로 지기도 전에 집에 닿아야 한다. 하하 자강은 마음이
약하여 쇠약하신 어머남이 노심초사하시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촤----아아......쿠르르!
종리자강이라는 소년어부는 움켜쥔 노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 그의 발아래에는 커다란 망태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은 수초로 엮어 만든 망태인데 그 안에는 어린 아이만큼이나 큰 잉어
십여마리가 허연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소주가 황류를 타고 내려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소주는 순식간에 몇 굽이의 황류의 거친 물길을 날아 지나쳤다.
그러자
점차 협곡을 이루는 양쪽의 석벽이 멀어졌다.
처음에는 이십여 장 정도였으나 마침내는 백여 장 까지 넓어진 것이다.
그와 함께 병서보검협의 거친 물결도 수구러들어 잠잠해 갔다.
물결이 잠잠해 지고 양악의 석벽도 낮아지다가 이윽고 석벽은 드넓은 갈대
밭 사이로 잦아 들었다.
[다 왔군!]
소년은 이마로 흐르는 땀방울을 쓱 닦아내며 멀리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가린 갈대밭 저 너머로 여러 줄기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어촌의 아낙들이 저녘을 준비하느라 피우
는 연기이리라.
삐---직! 삐----직!
촤---아아!
소년 종리자강은 여전히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지은 채 편주를 무성한 갈
대 사이로 몰아갔다.
잔잔한 물결을 헤치며 나아가는 편주의 앞으로 여러 갈래 수로가 어지러이
나타났다.
이곳의 수로는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마치 거미줄 같이 어자러이 뒤엉킨 수로는 오랫동안 이 수로를 지나다닌
그렇지 않고 전혀 수로를 모르는 자가 잘못 수로로 들어서면 지쳐 죽을때
까지 헤메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곳이다.
문득,
[호호! 자강, 또 미련스럽게 병서보검협까지 갔다온 게로구나!]
한소리 해맑기가 옥구슬이 구르는 그것 같은 목소리가 종리자강의 귓전을
울렸다.
[진산! 또 여기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군.]
종리자강은 콧등에 내천자를 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촤.....아아....
한쪽 수로가 쩍 갈라지며 한척의 쾌주가 쏜살같이 미끄러져 나오고 있었다
(말괄량이 계집.....)
인상을 찡 그리기는 했으나 종리자강의 눈에는 풋풋한 미소가 흘렀다.
쾌주 위,
한 명 마의 소녀가 오연히 선미를 딛고 서서 노를 젓고 있었다.
나이는 종리자강 정도 되었을까?
그러나,
어느 덧 물이 올라 가슴과 둔부에 터질 듯한 부플음이 인 미소녀였다.
마의 밖으로 나온 미끈한 팔다리가 싱싱한 젊음으로 빛나 보이고,
질끈 삼베천으로 묶어 무릅 아래까지 드리운 긴머리가 인상적이다.
용모도 어촌의 소녀답지 않게 반듯한데 특히 두눈이 크고 아름답다.
다만,
미소녀의 눈썹이 사내같이 길어 성격이 꽤나 거침을 보여준다.
소녀도 어부인 듯이 쾌주 안에는 작살, 그물, 부싯대, 등의 도구가 눈에
띄었다.
[호호! 색시가 되어 낭군을 기다리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아?]
미소녀는 깔깔 웃으며 다가와 종리자강에게 추파를 던졌다.
[색시라고?]
종리자강이 지겨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코웃음을 쳤다.
[너 같은 말괄량이를 색시로 삼느니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
[호호! 진산이 한법 네 색시가 된다고 하면 되는거야! 호호.. 무슨짓으로
빠져 나가려해도 진산은 놓치지 않아!]
진산이라는 소녀는 자신에 찬 어조로 말하며 종리자강의 반듯한 얼굴을 바
라 보았다.
[네 좋은대로 해 보아라! 핫하...전에도 말했으나...자강은 얌전하고 정숙
한 각시를 원하지 너 같은 말괄량이는 좋아 할 수 없다.]
촤아! 종리자강은 크게 웃으면서 급격히 소주의 방향을 틀었다.
촤----아아!
[어멋!]
물길이 크게 일어나며 한 가닥 물기둥이 진산을 뒤집어 씌었다.
[핫하! 진산 내일보자!]
쏴----아아......
종리자강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나는 듯이 소주를 몰라 좁은 수로
사이로 사라졌다.
[자강! 무슨짓을 해도 소용없어! 진산은 꼭 네게 시집가고 말테니까?]
진산은 종리자강이 사라진 쪽을 향하여 주먹을 앙증맞게 휘둘러 보였다.
[핫하! 마음대로 해 봐라!]
멀리서 종리자강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강......]
진산의 목소리가잦아들고, 스르르......
주먹을 쥐어 휘들던 진산의 교수가 허망하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
진산의 커다란 눈이 우울한 빛으로 젖어들었다.
마치 저녘 호수의 빛깔같이......
[자강....때로는....다정한 말을 해 줘도 되잖아!]
또르륵! 한방울의 맑은 이슬이 진산의 속눈썹 사이로 굴렀다.
----진산.
그녀는 이십여리 떨어진 어촌에 사는 소녀였다.
아직은 소녀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삼협 근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종리자강의 이름과 함께.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어울리지 않는 소녀였다.
곱상한 그 여린 모습에서 어찌 그런 힘과 담력이 나오는지......
그녀는 사내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삼협의 거친 물살을 자기집인 양 넘
나든다.
아마도,
삼협의 물결을 탈 줄 아는 여인은 그녀 외엔 달리 없는 것이다.
사내같은 소녀 진산,그녀는 어려서부터 종리자강과 뒹굴며 자랐다.
사내같기만 하기에 종라자강은 그녀를 다만 좋은 친구로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진산은 달랐다.
여인이란 아무래도 사내보다는 조숙한 때문인지....
몇년 전 부터인가,진산은 종리자강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통의 사내는 그녀의 눈에 차지도 않았다.
엉덩이에 불록한 살이 돋고 가슴의 융기가 부끄럽게 자라남을 느꼈을때,
그녀는 자신의 시선이 늘 종리자강을 ?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면에서 그녀 자신보다 뛰어나고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종리
자강의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방심에 가득 들어차 떡하니 버티
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산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날아 갈수록 종리자강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뜨거워만 갔으나......
종리자강은 그저 무심하기만 하였다.
그의 눈에 비친 진산은 여전히 다만 친구뿐인 탓이다.
[진산은...때로 겁이 난단...말이야..너는 웅크리고 있는 대붕...언젠가는
한 마디 말도 없이...먼먼 하늘로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
똑.....또르르......
또 한 방울의 이슬이 굴러 진산의 작고 귀여운 발등 위에 떨어졌다.
진산은 발등으로 굴러 부서지는 눈물을 내려다 보았다.
사내같이 거칠어도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여인인 것이다.
그것도 꼿같은 나이의 소녀.....
[진산에게는 마음이 없어! 자강...미운 네가 훔쳐가 버려서...]
진산은 투정 부리듯이 중얼거리며 가슴을 꼬옥 끌어안았다.
뭉클.....!
이제는 제법 봉곳해진 융기가 탄력있게 팔 안에 느껴졌다.
[그런데...그런데...진산을 돌아봐 주지 않으면.....진산은 어떻게 살아가
란 말이야?]
진산은 가슴을 부둥켜 안고 흐느끼듯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치 가슴을 보도로 저며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또한 소녀를 여인으로 성숙시켜가기 위해 신이 주는 고통이었다.
[칫! 못난 진산...새침떼기 계집애처럼 찔끔거리다니....]
진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쓰윽 닦았다.
금방 그녀의 옥용은 활짝펴져 있었으며 예쁜 입술에 미소가 감돌았다.
진산은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노를 힘차게 잡았다.
[호호....진산은 자강외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않아...호호..사랑싸움에서
도 마찬가지야!]
촤---아아!
노가 움직이고 그녀가 탄 소주는 경쾌하게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호호...누구도 진산에게서 자강을 빼앗아 가지 못해! 결국 자강은 진산을
색시로 맞아들여야만 될걸......호호.....]
진산의 명랑한 웃음소리 속에서 소주는 경쾌하게 미끄러져 강심쪽으로 사
라져갔다.
화르르-------! 스스스----------!
그녀도 떠나고 텅빈 갈대밭의 수로에 저녘바람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