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무] 3장 적미불존과의 인연
그곳은 갈대가 무성한 소로의 한 모퉁이었다.
쏴----아아아!
스스스슷----!
갈대가 강바람에 맞아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는 아래에...
[쿨룩....쿨룩...아미타불... 그는 죽지 않았다...중생들은...그가 젊은사자
에게... 죽었다고 알고 있으나...쿨룩...노납은 알 수 있다...그는...아직도
살아있다....아미타불.......]
심하게 기침을 하며 불호를 외는 인물이있었다.
노승!
그 인물은 노승이었다.
나이가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노승이 갈대 아래에 앉아 있었다.
[..........!"]
종리자강은 호기심이 지독한 눈으로 노승을 바라보았다.
짙무른 두 눈에서는 진물이 배어 나오고 나무 껍질같이 허옇게 뜬 입술에는
핏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노승이 지나온 긴 인생만큼이나 많은 주름으로 덮여 그가 격은 풍상이
얼마나 모질었는지를 보여준다.
특이한 것은.
그런 노승의 두 눈썹의 색이 검지않고 붉은 색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노승의 노안을 이국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적미........!)
종리자강은 노승의 적미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쿨룩....쿨룩...!]
노승은 연이어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기치은 할때마다 매우 괴로운듯이 노승은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아미타불...업보로다...백념이 지나도록 그에게 당한 일장의 치욕을 잊지 못
하다니.....!]
노승의 노안이 고뇌로 이지러졌다.
어떤 지극한 한이 노승으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을 잃도록 만들고 있는듯이 보
였다.
[.........!]
노승은 적미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물이 흐르는 노승의 두 눈에서 끊임없이 고통과 번뇌의 빛이 흘렀다.
종리자강이 어느덧 이장 가까이 다가갔으나 노승은 종리자강에게 일별도 하지
않았다.
노승은저녘하늘을 올려다보며 망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미타불...어찌되었든....노납의 모든것을 앗아간.....그 일장의 빗을 갚지
못하면.....열반에 들 수 없다.]
무엇인가를 결심하는 듯이 노승의 입술이 지그시 물려졌다.
(천하가 죽었다고 알고있는 천강의 마성은 ...이곳 삼협 주위에서 건재하도다
....반드시 그를 찾아내어 백 년만에 재현한 항마수로 빚을 갚으리라.)
적미노승은 손에 든 묵주를 굴리며 조용히 시선을 떨구었다.
점차 들끓던 심기가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종리자강은 천천이 입을 열었다.
[대사...! 괜찮으십니까? 몹시 불편해 보이시는데....!]
노승은 종리자강의 말에 나직히 불호를 외웠다.
노승은 이미 종리자강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다른 반응을 보이
지 않았다.
[소시주...... 추태를 보였소이다.]
노승은 진심으로 부끄러운 표정이되어 천천히 종리자강에게로 몸을 돌렸다.
순간,
[..........!]
몸을 돌리던 적미노승의 노구가 갑자기 부르르 떨렸다.
흡사 벼락을 맞은듯이 강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 역력했다.
[............!]
[......... ]
적미노승과 종리자강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켜 불꽃을 튀겼다.
(이런 눈이 있다니.......!)
종리자강의 시선에서도 경이와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노승의 눈!
그것은 마치 끝이 없는 심해와도 같아 종리자강을 빨아들였던 것이다.
종리자강은 제법 많은 종류의 눈을 보았으나 노승의 눈같이 신비한 눈은 처음이
었다.
[음.........!]
문득, 노승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경악과 감탄의 신음이었다.
스스스스스.............!
그리고 병색이 완연하던 노승의 두 눈에서 무지개 같은 안광이 뻗쳐 종리자강을
휘감은것은 그 다음이었다.
(웃!)
그 안광에 접한 종리자강의 몸이부르르 떨렸다.
적미노승의 안광은 모든것을 꿰뚜ㅎ어 보는듯했기 때문이다.
종리자강은 자신의 심기가 산산이 으스러지고 자신의 영혼이 적나라하게 노승의
눈빛 아래에 드러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가라 앉히려 노력하였다.
(대단한 눈빛...... 인간의 눈빛이 어찌 저같이 될 수 있는가?)
그는 내심 노승의 안광에 혀를 내둘렀다.
스스스스스스------
[아미타불......!]
문득, 불호성과 함께 휘황하던 노승의 안광이 사그러들었다.
종리자강을 주시하던 노승이 스스르 눈을 내리감은 것이었다.
어떤지극한 감회를 느꼈는지.
노승은 미미하게 노구를 떨며 두손을 한데모아 합장을 했다.
또르르........!
한 가닥 맑은 물방울이 감겨진 노승의 눈가로 배어 흘렀다.
(아미타불...세존께서 이 못난 제자의 목숨을 이제껏 거두어 가시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두 눈가로 진물이 흐르는 대신 눈물이 맺히고.
노승의 나무껍질같이 허옇게 뜬 입술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떠올랐다.
어떤 지극한 깨달음이 뇌전같이 노승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다.
(천강성체가 당대에 헌신함은...알았으나.. 이런곳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아미타불.......)
입안으로 나직히 불호를 외우며 노승은 조용히 눈을 떴다.
[...........!]
눈을 뜬 노승의 두 눈은 아주 평범한 종래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종리자강은 볼 수 있었다.
노승의 두 눈이 고뇌대신 환희와 해탈의 빛으로 가득함을......
종리자강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가지 확신 할 수 있는것은... 이분 스님이 결코 범사한 분이 아니라는 것
이다.)
종리자강은 염두를 굴리며 조심스레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는 공경한 어조로 적미노승에게 말을 건넸다.
[소생이 뵙기로...법체가 불편한듯이...보이시는데..괜찮으시겠습니까?]
[아미타불....고마우이...이제는 괜찮네!]
노승은 조용히 대답했다.
말을 하면서도 노승의 눈빛은 종리자강의 몸에서 떠날줄 몰랐다.
(천강성체는...고금제일인이 될수있는 강인한 골격이나...그대신 마에 물들기도
쉽다. 노납이 속세에서 해야할 마지막 일은...복수 하는것이 아니고 ...이 소시
주를 마로부터 호법함이다.)
노승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허헛,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으니.....통인사나 하세. 노납은 적미라 하고
감히 불존이라 불리네!]
(적미불존.....)
종리자강은 노승의 이름을 입 안으로 되새겨 보았다.
--- 적미불존
종리자강은 이 이름이 얼마나 엄청난 이름인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다만, 적미의 노승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을뿐...........
[소생의 성씨는 종리이고 이름은 자강이라고 합니다.]
종리자강은 공손하개 말했다.
[종리자강...... 좋은 이름이야.....!]
적미불존은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미불존의 미소에는 기이한 힘이있어 보는이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아미타불.... 그래, 소시주의 집은 이 근처인 모양이구먼...!]
[그렇습니다! 저쪽 산 아래에 서있는 모옥이 소생의 집입니다.]
[음.......!]
노승은 종리자강의 손길을따라 멀리를 바라보았다.
촉산에서 이어진 제법 험한 구릉 아래 단촐한 모옥 한채가 서있는것이 눈에들어
온다.
[괜찮으시다면 소생이 한끼 공양을 해 올렸으면....]
[아미타불....성의는 고마우나....]
적미불존은 종리자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저어 말을 막았다.
[노납은 곡기를 끊은지 이미 오래이네. 허헛, 속세에 미쳐 다 끊지 못한 인연이
있었다면 오래전에 피안으로 갔을 몸이지.....]
적미불존은 초탈한 미소를 지었다.
신음하고 고뇌하던 방금 전까지의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해탈과 관조의 고
요함이 적미불존의 일신에 가득하였다.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네만.....!]
[하교하소서! 소생의 힘으로 될 일이라면......!]
[별일은 아닐세, 오늘밤 삼경이 지나기전....이곳으로 다시 한번 와주게나!]
종리자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종리자강은 말을 하고는 적미불존에게 합장을 해 보였다.
[다시 뵙겠습니다!.]
[허헛! 잘 가시게.....!]
종리자강은 다시 망태를 둘러메고 모옥이있는 구릉쪽으로 나갔다.
[음......!]
종리자강의 제법 널찍한 등을 바라보며 적미불존은 나직히 신음을 흘렸다.
(아미타불...기연이 많은 시주이고...그 중에는 끔찍한 마연이 섞여 있도다.
만일 오늘 노납이 저 시주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적미불존은 다시 눈을 내려 감았다.
[아미타불......!]
적미불존의 입에서 절로 불호성이 흘렀다.
또르르.....!
한 방울의 식은 땀이 적미불존의 이마 위로 굴렀다.
[대천강종이 무색할 절대마종이 탄생할 뻔하였다. 이 모두가 세존의 안배에 드는
일이니...아미타불....]
화르르......!
스스스......!
불호를 외는 적미불존의 낡은 승포가 저녘바람에 흩날렸다.
어느덧,
석양이 타는듯이 붉어지고 있었다.
운명의 석양이.....
[.......! ]
종리자강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강추아저씨 말씀대로다. 삼협 주위로 많은 기인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종리자강은 봉목을 무심하게 빛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스스스........
저녘바람이 스산이 부는 갈대밭 사이로 한명의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였다.
헌데,
쿵!,쿵!,
한손에든 철장을 굴려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는 노파, 그 노파에게서는 아주 기이
한 분위기가 풍기지 않는가?
색바랜 회의로 일신을 가렸으며 매우 곱상한 노파의 주름덮힌 얼굴.... 그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마치 흠집 하나 없는 백지를 보는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스스스..........!
노파의 일신에서는 무엇인가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같은 것이 흘러 주위를 가
득 메웠다.
그것은.....고독!
바로 지극한 고독의 고통이었다.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지니게된 것인지는 알수없으나, 노파의 자그
마한 노구에서 마치 칼날로 저며내는 듯한 진한 고독의 느낌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것이다. 타인에게까지 고통을 전하다니........
종리자강으로서는 듣도,보도 못하던 일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으신 분인데....저런 고독함이 뼈에 저리는 아픔으로 느껴지는가?)
종리자강은 멍한 표정이되어 다가오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스스스......화르르....!
강바람이 스산하게 종리자강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노파의 기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종리자강은 자신이 있는 위치마저 망각하고
말았다.
어느덧 노파는 종리자강의 이장 앞으로 다가왔다.
[..........! ]
쿵!
문득, 노파는 철장을 지면에 꽃으며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
종리자강을 흩어보던 노파의 시선이 미미하게 떨린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아이와........이리도 흡사하다니.......)
노파의 안면에 한줄기 회오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종리자강이 누구와 닮았다는 얘기인가?
[아이야......!]
노파의 조용히 묻는 말에 종리자강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소생을 부르셨습니까? 할머니?]
종리자강은 노파의 무심한 시선에 슬쩍 얼굴을 붉히며 공손히 대답했다.
[오냐...네게...한가지 물어볼것이 있단다!]
노파의 입가에 처음으로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의 보일듯 말듯한 미소, 그러나 종리자강은 그 미소가 그렇게 포근하게 느껴
질수가 없었다. 그것은 흡사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미소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교하십시요. 아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리자강은 괜스레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노파의 미소는 조금 더 짙어지고 따뜻해졌다.
[오냐....이 할머니는...한명의 여아를 찾고있단다. 매약빙이라는 아이로.....
나이는 서른 녀덟정도 되었고....]
[매약빙........!]
종리자강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연세는 어머님과 같은 분인데.........)
종리자강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소자는 매약빙이라는 이름을 처음들어 봅니다.]
[그래.........?]
노파의 주름덮힌 얼굴로 한 가닥 수심이 스쳐갔다.
그리고,
[음....분명..삼협 근처를 벗어나진 않았을 터인데.... 궁이 무너졌을때 피할곳
은 무협외에는 달리 없었고.......)
망연한 어조로 노파가 중얼거렸다.
--궁(宮)이 무너졌다.
이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어떤 세력이 궤멸당했다는 뜻인듯 하나 종리자강으로서는 전혀 알수없는 일이
었다. 적미불존이나 이 노파등이 사는 세계는 종리자강 자신이 사는 세계와는
완연히 다른 별개의 세계인것만 같았다.
(이 분들의 세계는 자강이 갈 수 없는 세계......)
종리자강은 무심한 표정이되어 오파를 바라보았다.
노파의 무심하여 싸늘하기까지 한 모습이 기이하게도 종리자강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쿵!
노파는 다시 한법 철장을 들었다 놓았다.
가볍게라고는 했으나 철장이 지면에 닿는순간 흡사 지진이 일어난듯이 땅이 흔
들렸다.
[시신이 궁에 없었음은.....그 아이가 무협으로 몸을 던져 난을 피한것이라 생
각 했거늘...쯧쯧...이제 어디가서 그 아이를 찾을수 있을지......]
노파는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종리자강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오장정도 걸어가던 노파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자강! 종리자강 입니다.]
종리자강이 큰 소리로 대답하는 순간,
[............!]
노파의 몸이 미미하게 흔들림을 종리자강은 놓치지 않았다.
[종리.....그 못된 아이와 모습뿐 아니라 성(姓)까지 유사하다니......)
노파의 시선에 파랑이 일었다.
그러나,
(단정은 금물.......)
노파는 이내 특유의 무심한 표정이되어 몸을 돌렸다.
[아이야...이 할머니는 남들이 고독신모라고 부른단다.]
그와 함께 몸을돌려 갈대 사이로 사라지는 노파의 전음이 종리자강의 귓전에
속삭이듯이 전해졌다.
[고독신모........!]
종리자강은 노파의 이름을 입안으로 되뇌여 보았다.
스스스...... 그 사이, 고독신모의 모습은 흐르는 구름인양 무성한 갈대 사이로
잦아들었다.
[고독신모.....기억해 두겠습니다.]
종리자강은 고독신모가 사라진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어,
[허어......이거 늦었는걸......!]
종리자강은 싱긋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