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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 온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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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추~웅~성~ 엄마의 아들 한 민, 몸 건강히 잘 다녀왔습니다...”


“ 민..아....흑....”


“ 엄마...”


“ 흑...내 새끼...고생했어...흑흑...어디? 다친 덴 없지? 흑~”


“ 하하하~ 엄마도? 집에 왔다간 지 한 달도 안됐는데 그럴 일이 어디 있겠어?


  군대에서도 말년들한테는 웬만한 건 다 열외를 시켜줘...괜히 다칠까 봐...


  오죽하면 이빨이 부러질까 껌도 안 씹고, 머리가 깨질까 떨어지는 낙엽도 피한다고 할까?


  후후후~ 심지어 우주로 날아갈까 봐 지상에서 30센티 이상도 안 뛴다고요....”


“ 훌쩍~ 피~~ 설마 그 정도일까? 이 엄마 웃으라고 하는 소리지?”


“ 어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미인이라고 늘 자랑하는 우리 엄마를 한번 안아 볼까나?


  아버지 안 계실 때 해야지 안 그러면 아버지가 질투할 테니까...어여차~~”


“ 꺅~ 그만~! 호호호~~ 어지러워~~”


 


일부러 다른 곳으로 새지를 않고 집으로 바로 달려왔다.


근 5시간 정도가 걸려 도착한 건 오후의 중간쯤이었다.


현관 열쇠가 따로 있기는 했지만 일부러 초인종을 눌렀다.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 처음으로 문을 열고서,


장기간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을 맞이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맨발로 달려 나온 엄마가 눈물이 글썽해서는 손을 잡아왔다.


동생 새미를 꼭 20년 후쯤으로 시계바늘을 한꺼번에 돌려놓은 듯한 모습...


어쩌면 눈물짓는 동생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던 건...이런 엄마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는지도...


거실에서 엄마를 번쩍 안아 들고서 빙빙 돌자 가녀린 비명소리와 함께,


포근하고 따스한 엄마의 체온과 내음이 이제야 정말 집으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 점심은? 훌쩍~”


“ 후후후~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어서...


  도중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만 먹고 말았어...나 배고파~~ 빨리 밥 줘요....”


“ 호호호~ 그래, 그래...알았어...네가 좋아하는 갈비찜은 저녁에 모두 같이 먹기로 하고,


  된장찌개하고 굴비를 구워뒀으니까 일단 그걸로 점심을 먹어...어서 씻고 나와...”


 


아직도 눈물방울을 속눈썹에 매단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엄마는 아침부터 준비를 해두고는 시계만 쳐다보다 몇 번이고 덥혔을 것이다.


좋다.


너무나 따스하고 행복하다.


 


“ 엄마~ 사랑해~~”


“ 그래~ 나도 사랑해..우리 아들...잘 돌아왔어...집으로...”


 


주방을 향하는 엄마를 뒤에서 꼭 안으면서 속삭였다.


그러자 엄마가 자신의 어깨를 감싼 민의 팔뚝을 쓰다듬으면서 화답을 했다.


 


 


똑~ 똑~


 


“ 네~”


“ 오빠~~ 나~”


“ 응, 어서 들어와..”


“ 아직 안 잤어?”


“ 응....”


“ 안 피곤해?”


“ 괜찮아...이리 와서 앉아...”


“ 헤헤헤~~”


“ 어이쿠~~ 이 녀석?”


 


외출했다가 돌아온 새미가 또 한차례 눈물을 보이고서는,


퇴근하신 아버지까지 모두가 함께 단란한 저녁식사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민의 제대를 축하하는 간단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첫날이라 먼 길에 피곤했을 민을 생각해 너무 길지 않게 간단하게 끝내고서,


주말에 온 가족이 가까운 곳에 1박이라도 하고 오기로 결정하고는 흩어졌다.


 


아직은 약간 낯선 기분이 드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동생일거라는 짐작은 했었다.


그러자, 대답과 함께 동생의 해맑은 얼굴이 문이 열리며 쏙 튀어나왔다.


앉으라는 말에 정말 토끼처럼 폴짝 뛰어서 아예 침대 위의 민에게로 다이빙을 하는 동생...


출렁하는 느낌과 함께 따스하게 부딪쳐오는 동생의 부드러운 몸이 흐뭇한 웃음을 준다.


 


그날 모텔의 침대에서 자신의 팔을 베고 자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훨씬 밝고 따스하고 포근한....


그 사이에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는지 그때의 우울했던 기색은 전혀 없고,


마치 병호와의 일을 알기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왠지 서운해지는 건 왜일까?


 


“ 오빠...”


“ 응? 왜?”


“ 고마워...”


“ 뭐가?”


 


자신의 배를 베고 누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동생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전부다...”


“ 응? 전부다?”


“ 오빠가 내 오빠인 거, 날 예뻐해 주는 거, 그리고 이렇게 무사히 다시 돌아와준 거..전부다...”


“ 하하하~ 그런 게 고맙다면 나도 마찬가지지...


  이렇게 예쁜 새미가 내 동생이란 거...그리고...”


“ 치~~ 그만, 그만...그런 건 나 혼자 고마워할래...오빠보다 내가 훨씬 고마우니까...”


“ 후후후~~ 알았어...그래..우리 귀염둥이...”


“ 아이~~ 이제는 귀염둥이도 그만해...”


“ 왜?”


“ 그냥...”


“ 그러면?”


“ 웅~~ 그냥...새미야...해줘..아니면...예쁜 내 동생도 좋아...


  아니다, 예쁜 우리 새미가 제일 듣기 좋아...오빠가 그렇게 불러주면 정말 행복해...”


“ 그래..알았어...예쁜 우리 새미...”


 


어리광을 부리는 듯 투정을 하는 동생에게서,


무의식 중에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게 언뜻 엿보였다.


오빠에게 어린 동생으로보다는 아름다운 한 명의 여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그러면서도 어릴 때부터 자신이 누려온 오빠의 따뜻한 테두리를 벗어나기 싫은...


그런 미묘한 심리상태가 저런 말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분이 슬며시 좋아지는 건, 겉으로는 의연한 척해도 역시 자신은....


 


똑~ 똑~


어라? 이번엔 누구?


이거 제대 턱을 단단히 치르네?


 


“ 네~ 들어오세요~”


“ 자니?”


 


예상을 한대로 엄마였다.


손의 소반에다 받쳐든 저건 아마 몸에 좋은 마실 거 정도가 되겠지?


물론 저걸 아까 주방에서 줬어도 되겠지만,


구태여 이렇게 들고 찾아온 건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일 거다.


 


“ 어머? 새미 너?”


“ 헤헤헤~ 엄마...”


 


아예 자기 자리라고 권리를 주장이라도 하듯이,


엄마가 들어오는데도 여전히 민의 배를 떡하니 베고 누워서 생글거리기만 했다.


어이가 없어하는 엄마의 표정에도 꿋꿋하기만 한 동생 새미...


 


“ 빨리 안 일어나? 오빠 힘들게...”


“ 치~ 아니야...오빠가 이렇게 하라고 했단 말이야...맞지? 오빠~”


“ 응...엄마..그냥 둬...나도 좋은 걸...뭐...”


 


물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와서 앉으라고 하자 대뜸 몸을 날려 덮치고는 자기가 무턱대고 머리를 들이민 거지...


하지만, 엄마 몰래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이 한 말처럼 이 느낌이 정말로 좋았다.


편안하고 따스한....행복한 기분...


 


“ 흐응~~ 엄마는 괜히 부러우니까...피~~”


“ 아휴~ 이 철딱서니! 오랫동안 고생하고 온 오빠를 편하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 아니야..엄마..나 이대로가 더 편해...


  새미 요 녀석을 어릴 때부터 하도 이렇게 재웠더니...


  군대 있을 동안에 오히려 허전했다니까..? 하하하~”


“ 히잉~ 봐~ 엄마...오빠도 그러잖아? 엄마는 나만 갖고 그래?”


“ 에그~~ 그 말을 다 믿어? 저를 편드느라고 그러는 것도 모르고...”


“ 하하하..그만해 엄마...엄마도 빨리 앉아..그러고 섰지 말고...”


 


너무나 닮은 모녀가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그리고 그게 민을 더 웃음짓게 만들고...


엄마가 책상 위에다 소반을 내려놓고는 침대를 가로로 누운 새미를 슬쩍 밀치며 곁에 앉았다.


그것 또한 엄마 나름대로의 새미에 대한 못마땅함의 표현이라서 웃게 만들었다.


이 따스한 분위기...정말 오랜만이었다.


 


“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안 피곤해?”


“ 하하..너무 건강해서 탈인 걸? 걱정 마..엄마...”


“ 건강하다고 너무 과신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말을 해...


  긴장이 풀어지고 잠자리가 바뀌면 아무래도 병이 나기 십상이니까...”


“ 알았어...엄마..그럴게...”


 


구태여 됐다고 사양할 필요가 없다.


엄마는 그 동안 못 베푼 자식에 대한 사랑을 하나라도 더해주고 싶어 안달인 거니까...


 


“ 이 말만한 계집애는 도대체 언제 철이 든다니?


  몇 년만 안 있으면 시집을 가야 할 나이가 돼서도...쯧쯧~~”


“ 누가 시집을 간대? 난 그냥 오빠랑 이렇게 평생 재미있게 살 거야~ 그치~ 오빠?”


“ 하..하...그, 그래...네가 그러고 싶다면....하..하...”


 


민은 뜨끔했다.


전처럼 단순히 농담으로 넘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말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지도 몰랐다.


엄마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다행히도 엄마는 별다르게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 이러니까 철이 없다는 거지...누가 널 받아나 준대?


  오빠는 결혼을 안 해? 얘가 나중에도 얼마나 오빠에게 자기 뒷치닥꺼리를 시키려고...?”


“ 아니다, 뭐? 내가 오빠를 챙길 거야...빨래나 청소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줄 거야...”


“ 요것아~! 그걸 네가 왜 해? 엄연히 해줄 사람이 따로 있는데....


  그리고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엄마가 하는 걸 보니까 그렇게 쉽게 보이디?”


“ 아, 알아..나도...뭐...그래도 배우면 나도 잘 할 수 있어...


  우웅~~ 그, 그래...그래도 엄마 딸인데 엄마가 가르쳐주면 금방 배울 거야...엄마를 닮아서...헤헤헤~”


“ 뭐? 요 여우가? 누가 가르쳐는 준대?”


 


동생이 한걸음 물러서면서 아양을 떨자,


엄만 쏘아붙이는 말과는 달리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거였다.


자신이 그리워했던 집의 모습....그리고 가족들...


 


“ 영영 어린애 짓만 하면서 오빠 꽁무니만 바라보고 살 줄 알았더니,


  그래도 얘가 조금은 철이 들은 것 같더라...


  어째 제 오빠한테 면회를 갈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을까?”


“ 아...!”


 


순간 두 남매는 움찔하고 말았다.


그래, 맞아...아마 집에는 내 면회를 온다고 했겠지...


그 일의 진실을 부모님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미 딸이 한 남자와 깊은 사이라는 것도....


물론, 거기다가 지금 오누이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을 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 내일 또 이야기하고 그만 쉬어...새미야 이젠 일어나..오빠 자게...우리는 나가자...”


“ 히잉~ 나 여기서 그냥 오빠랑 자면 안돼?”


“ 얘가? 네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니? 빨랑 안 일어서?”


“ 치~ 알았어...오빠 잘자..내일 봐...”


“ 그래..너도 잘자고...엄마도 잘 주무세요...”


“ 그래...나가면서 불을 꺼줄까?”


“ 아니, 엄마..내가 끌게...”


 


마치 신파극의 한 장면처럼 엄마에게 손목을 잡혀 끌려나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는 동생의 과장된 몸짓이 다시 한번 미소를 짓게 한다.


조금 전 여기서 그냥 자겠다는 말을 할 때는 기함을 했었다.


아무리 순진하다지만 성인이 다된 남매가 같이 자겠다는 소리를 엄마에게 하다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아직도 어리게만 생각한 동생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그냥 어릴 때와 다름없이 행동함으로써 아까 자신의 배를 베고 누운 것 같은,


조금 과한 짓도 엄마에게 아무런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이었다.


동생 역시 여기서 자겠다는 소리가 엄마에게 씨도 안 먹힐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녕 그러고 싶었다면 아무 말 없이 나갔다가 엄마 몰래 다시 왔을 테니...


 


생각보다는 동생 역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각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때 면회를 왔을 때 보였던 위태로운 모습은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불편한 것 같던 침대나,


왠지 어색하기만 하던 자신의 방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졸음이 밀려왔다.


 


 


 


“ 잘 지냈어?”


“ 네, 형...형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셨죠? 새미한테 듣긴 했지만...”


“ 그래...”


 


민은 주연보다도 상훈과 먼저 약속을 했다.


아무리 그런 사정을 들었다지만 제일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 그때 너한테 소주를 한잔 산다고 했었지? 그래서 겸사겸사 보자고 한 거야...”


“ 하하하..형도 참? 그런 걸 아직 다 기억하고 그래요?


  산다면 제대 축하주로 제가 사야죠...”


“ 임마...제대주를 사더라도 당연히 내가 사야지...형인데...”


“ 하하..누가 사면 뭐 어때요? 형의 제대를 축하하면 그만이지..좀 늦었지만 축하 드려요..”


“ 그래..고맙다...우리 오늘 찐하게 한잔 빨아보자..”


“ 조~오~쵸~ 형...자~~ 받으세요...”


“ 그래...너도...”


“ 네...”


 


처음 마주 앉았을 때는 조금 어색한 듯했지만 역시나 특유의 쾌활함으로,


금새 그런 분위기를 날려버리는 상훈을 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착잡했다.


희한하게도 새미 때문에 병호에게 느껴지던,


어떻게 보면 약간 적의까지 담긴 그런 감정이 상훈에 대해서는 전혀 생기지를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여자라고도 할 수가 있는 주연의 모든 것을 먼저 가졌던 남자인데도...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병호보다도 상훈이 훨씬 나았다.


단지 정감이 가는 그런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원시원한 성격에다 붙임성,


그리고 그때도 언뜻 보여주었던 잘 드러나지 않는 세심함과 그걸 받쳐주는 영리함까지...


민이 보기에는 단점을 찾기는 힘들고 장점은 너무나 많아 보였다.


외모 또한 병호에 비해서 전혀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직 자세히는 몰라도 옷차림이나 하는 행동에 구김살이 전혀 안 비치는 걸 봐도,


가정환경 또한 웬만한 수준이상은 될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때 산행을 한다며 여자애들끼리 면회를 오게 만든 것도,


주연의 마음을 미리 알고서 자연스럽게 유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이제 와서는 그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었다면 자신으로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겠지만,


이미 쌀이 익고 뜸까지 들어 완전히 밥이 되어버린 상황이니...


 


“ ..저번에...애들끼리 면회를 왔더라?”


“ 아~ 네...”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정도 술기운이 돌 때 넌지시 민이 서두를 뗐다.


그러자, 상훈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미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본인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라서,


혹시나 했는데 주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특별히 감정적인 동요를 보이거나 그러지도 않을뿐더러,


그 웃음 속에는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으니 걱정 마라는 의미까지 담겨있었다.


 


“ 그래서....”


“ 형...”


“ 응? 왜?”


“ 차라리 그 이야기는 제가 할 게요...아무래도 그게 편할 거에요...형이 하기 보다는...”


“ 으, 응? 그래? 사실, 하기는 꼭 해야 하는 이야긴데도 쉽지가 않았는데 고맙다...”


“ 천만에요..오히려 제가 고맙죠...”


“ 응? 네가 고맙다니?”


 


아무리 성격이 좋고 둘이서 미리 그런 약속이 있었다고는 해도 오히려 고맙다니?


뭐, 주연이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괴롭히던 상황이었다면 몰라도....


하지만 민이 보기에는 그런 상황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았었다.


 


“ 형...주연이하고 저...그러니까...뭐...그건 아실 테니까 그냥 넘어가죠...


  둘이 사귀었다고 하지만, 사실은...주연이가 저를 도와준 거에요...


  혹시나 그것 때문에 형이 주연이를 오해할까 싶어 미리 말씀 드리고 싶어요...”


“ 도와주다니?”


“ 네..주연이하고 저는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오랜 친구거든요...


  그래서 참 친했어요...뭐..대부분 걔가 절 챙겨줬지만...참 좋은 애에요...자상하고....


  뭐...그래서 그렇게 된 거죠...제가 워낙 힘들어하니까...그럴 바에야 나하고 사귀자...


  나중에 네 소원대로 되면 시원하게 보내줄 테니까 그건 걱정을 말고...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혼자 괴로워하는 못난 짓 그만하라고...제 마음을 달래주려 한 거죠...”


“ 뭐?”


 


뜻밖이었다.


사실 민은 주연이 약간 계산적인 행동으로 나온 결과일 줄 알았었다.


소녀적인 감성으로 왕자님을 기다리긴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괜찮은 남자인 상훈을 곁에다 둔...


그런 생각이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상훈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궁금해졌다.


 


“ 못난 친구 하나 인생을 구제해준다는 의미였죠...


  제가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혼자 술 처먹고 미친 짓도 하고 그랬거든요...


  아마 주연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학교도 때려치우고 망가졌을지도 몰라요...”


“ 하~~ 그러면 주연이는? 그냥 일방적으로 희생한 거야?”


“ 뭐...주연이 말로는 둘 다 서로에게 최선은 못 되도 차선은 될 테니 돕고 살자...이런 거였지만...


  애초에 주연이가 그런 제의를 하게 된 자체가 저를 위해서였어요...


  솔직히 주연이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애들이 꽤 있었어요...구태여 저를 택할 이유가 없었죠...


  그래서, 형을 처음보고 반한 것 같았을 때...정말로 잘 되길 빌었어요...


  제가 형보고 고맙다고 한 게 그런 이유에요...”


“ 역시...네가 일부러 피해줬었구나...애들끼리 면회를 오게...”


“ 네...아무리 그런 약속이 있었더라도...직접 대놓고 이야기하기가 그렇게 속이 편하겠어요?


  차라리 제가 그렇게 슬쩍 피해주면 자연스러울 것 같고...


  나중에 일이 잘되면 그때 이야기를 해도 충분할 테니까...


  만약에 잘 안되더라도 그냥 모른 척 서로 이야기를 안 꺼내면 되잖아요?”


“ 그래..그렇구나...”


“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주연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더라면...오히려 훨씬 더 친했을 거라고...


  주연이가 저한테 그런 건...이성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우정에 가까울 거에요...


  형이 그렇게 이해를 해주셨으면 해요...


  대신에 형은 주연이를 정말 사랑해주셨으면 하고...


  죄송해요...제가 너무 건방진 소리를 해서...그건 형이 알아서 하실 문젠데...


  제가 주연이한테 받은 게 너무 커서...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어요...형을 믿는데도...”


“ ..그래..네 마음은 이해하니까...그건 걱정은 마라...오해를 하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야...”


“ 고맙습니다...형...”


“ 됐어...이걸 끝으로 이제는 더 이상 고맙다는 소리는 말아...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니까..”


“ 네..형...”


“ 자~~ 한잔 받아라...”


“ 네...”


 


잔을 채워주자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상훈...


참말...주연이나 상훈이...둘 다...괜찮은 녀석들인데...


사람의 일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 녀석의 속에는 어떤 게 들어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 이제부터 어쩌려고?”


“ 네?”


“ 임마...넌 주연이 걱정을 한다고 거기에만 마음을 쓰는데...


  그래..네 말대로 주연이는 이제 행복을 찾았으니 나하고 즐겁기만 하면 되지만...


  너야말로 그나마 챙겨주고 도와주던 사람마저 떠났으니 어쩔 거냐고?


  지금 주연이 걱정할 때냐? 자식이? 제 수염이 석자구먼....”


“ 하하하...그건 걱정 마세요...이젠 저도 제법 컸거든요...


  전처럼 자학하고 괴로워하면서 꾸질꾸질한 짓은 안 해요...


  그래 봐야 저만 힘들고 주변 사람들 걱정만 시킬 텐데요?”


“ 하하...이 녀석 봐라? 이럴 때 보면 아주 멀쩡한데?”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으려 하는 빈말일지도 모르지만 듣고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 하하하...제가 그랬잖아요? 많이 자랐다고...


  사실, 나타날지도 모르는 사람을 막연히 기다렸던 주연이도 소원을 성취했는데...


  저야 거기에 비하면 훨씬 희망이 있는 거죠...그래서, 조용히 기다려 볼 거에요...


  일단은 그 사람을 지켜볼 수 있는 것만해도 행복한 걸로 알고...”


“ 하...하...내가 오늘 너희 둘한테 많이 배운다...알았어...나도 더 이상 걱정 안 하마...


  대신에 힘든 일이 있거나 이런저런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말해..


  뭐..그게 아니라 그냥 소주 한잔이 생각날 때라도 좋고...친형이라고 생각하고..알았지?”


“ 당연하죠...전 정말로 형을 친형처럼 생각해요...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다 털어놓은 거고요..”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상훈과의 자리는 허심탄회하면서도 아주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로서 한 가지 근심은 든 것 같았다.


일단, 사회로 돌아와 출발부터 순조로운 게 왠지 예감이 좋았다.


 


 


 


“ 상훈이랑 만났었다며?”


“ 응, 며칠 전에....”


 


영화를 보고 나와서 팔짱을 낀 채 길거리를 걸으며 주연이 문득 물었다.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든 자그마한 손을 꼭 쥐고서 그 온기를 즐기던 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재미있었어?”


“ 후후후~ 유익한 시간이었지...”


“ 뭐가 그렇게나 유익했는데?”


“ 흐음~~ 어떤 여자의 험담을 하느라 둘이 아주 재미있었거든?”


“ 치이~~ 내가 험담할 게 뭐가 있다고? 이만하면 완벽하지...흥~~”


“ 흐흐흐~ 나는 너라고 한 적이 없는데? 흠, 뭔가 찔리는 게 있구나?”


“ 뭐야~!”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바로 반응이 오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알콩달콩 연애란 걸 해보니 새삼 제대를 한 게 실감이 났다.


그래서 주연이 더욱 고맙고 사랑스러워지는지도...


어쨌던 만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주연의 모습에 민의 마음도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저 깊은 곳에 숨은 동생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불씨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 그 여자는 말이야....”


“ 아이~ 몰라~ 안 들을 거야...”


 


고개를 젓는 주연을 보면서 웃음을 짓고서 민은 모른 척하며 계속했다.


 


“ 여자인데도 아~주 건방지게...남자보다 성격이 더 시원시원하고 화끈한데다가...


  의리까지 웬만한 남자들 뺨을 쳐....이건 여자로서 아주 큰 약점이야..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


 


예상과 달리 이야기의 시작이 뭔가 이상했던지 주연이 고개를 젓던 걸 그만두고 빤히 바라보았다.


 


“ 게다가, 얼굴도 무지 예뻐서,


  다른 남자들이 자꾸만 접근하게 만드는 바람에 남자친구를 아~주 신경 쓰이게 해...


  그것뿐이야? 몸매마저 완전히 모델도 저리 가라 이어서,


  남자친구랑 같이 가는데도 지나가던 남자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들어...


  참 괘씸한 여자지? 꼭 지금 너처럼 말이야...하하하...”


“ 모, 몰라~ 놀리고 있어? 사람 창피하게...치~~”


 


입을 비죽거리면서도 자신에 대한 찬사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이 상기된 모습이 너무 예뻤다.


 


“ 상훈이가 네 걱정 많이 하더라...”


“ 치~ 자기나 잘하지? 흥~”


“ 하하하...그건 걱정을 안 해도 될 거야...아주 씩씩한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나 때문에 괜히 너무 매몰차게 나 몰라라 그러진 말고...잘 챙겨줘...


  그 녀석 속도 깊고 정말 좋은 친구 같으니까...”


“ 오빤 기분 안 나빠? 내가 그러면...”


“ 후후후~ 널 믿으니까...상훈이도 믿고....걱정 마...”


“ 오빠....”


 


감동을 한 건지 눈가가 발그레해진다.


그리고 촉촉해지는 눈동자....


그러자 선명하면서도 약간 차갑게 보일 만큼,


단정하던 표정이 색기가 자르르 흐르며 요염하게까지 느껴진다.


두근두근~


단숨에 아래가 뻑뻑해지면서 묵직해져 왔다.


겨울이라 긴 코트로 가려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변태로 몰렸을지도...


 


“ 흐흐흐~ 너 지금 딴생각했지?”


“ 무, 무슨 생각?”


 


넌지시 찔러보자 화들짝 놀라는 주연...


역시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둘은 연분인 걸까?


단 하룻밤의 관계였고 몇 번 되지도 않는 만남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다니...


 


“ 조금 전에 네가 날 보는 눈초리가...맛있는 고기를 눈앞에 둔 암사자 같았거든?”


“ 오빠~~!!!”


 


누가 들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면서 당황해 주머니 속에 든 손을 살짝 꼬집어왔다.


그나마 그마저도 아플까 조심스레 살짝 꼬집는 주연이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 후후후~ 내 눈에도 네가 포동포동하게 맛있는 통닭같이 보여...침이 꼴깍 넘어가는....”


“ 치~ 엉터리...”


“ 어쩌지? 난 지금 네가 고파서...쓰러질 것 같은데...?”


” 흥~ 쓰러지던지 말던지...”


 


과장되게 비틀거리자 주연이 고개를 획 돌리며 외면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에서 열기가 흐르며 손을 꽉 잡아왔다.


민은 빙그레 웃으며 주연을 이끌었다.


 


“ 갈까?”


“ 어~딜?”


“ 둘만 있을 곳으로...”


“ ..으, 응...오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주연의 목소리가 끈적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애가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나 과감했는지...


어쨌던 자신에게 끌려오는 듯한 주연의 모습도 아주 좋았다.


이것 역시 남자의 본능을 만족시켜주는 주연의 타고난 순발력인지도...


 


“ 너...................”


“ 미, 미쳤어 오빠?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 후후후~ 나보고 변태기가 있다며? 빨리 가자...”


 


민이 주연의 귓가에다 뭐라고 속삭이자,


얼굴에서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듯이 빨개지면서 민이 이끄는 대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서둘러 골목으로 접어들자 화려한 모습의 모텔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리로 들어섰다.


 


조금 전 민이 주연의 귀에 속삭인 말은 바로 이거였다.


 


‘ 너 지금 보지가 잔뜩 젖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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