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 온리 (2)
잘들 아시겠지만.."그때 내가 만약에 그럴 수만 있었더라면..." 이라는 뜻이 담긴 가정의 의미죠...
2)
“ 오빠...”
“ 난 괜찮으니까...그냥 편하게 해...자~ 애들 온다...그만 하자...”
“ 으, 응...미안해...”
“ 쉿~!..그만해...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잖아...그때 조용히 이야기해...”
“ 응~ 알았어...”
다른 사람들이 구내매점에서 먹거리를 사는 동안, 새미는 민의 말상대를 해준다는 핑계로 남아있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가득 담은 그녀의 눈은 약간 젖어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잠시 잡아온 손....
가늘고도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따스함을 전해주었다.
이 손이 이런 느낌이었던가?
어쩌면 지금껏 어리게만 봐왔던 여동생이,
어느 순간 성숙한 여인이란 걸 인식하게 되면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던 아까 순간적으로 생겼던 경악과 알 수 없는 배반감들이 많이 사그라든 것도 같았다.
뭐랄까, 비록 병호와는 알몸으로 서로의 정염을 불태우는 사이이긴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오누이만의 유대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짧은 눈빛을 교환하고 꼼지락거리는 손끝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아마 그건 훗날 둘이 각자 결혼을 해서 따로 가정을 가지게 되더라도,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견고한 성과 같은 자신들만의 소중한 공감대였다.
매점에서 돌아오는 다른 일행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동생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멀어지는 따스함과 부드러움....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에 작게 한숨을 쉬는 순간,
여동생의 입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 건 그냥 자신만의 기분이었을까?
정확히는 몰라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던 것 같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그 찰나의 순간에...
“ 한 병장님 많이 기다리셨죠? 타시죠...”
“ 어, 그러자....”
이것저것을 많이도 챙긴 건지 세 사람의 양 손에는 비닐봉지들이 들려있었다.
“ 5명이 함께 제일 뒤에 앉죠?”
“ 임마...됐어...빈자리도 많은데 불편하게 그럴 이유가 어디 있냐?
나는 졸려서 이제부터 한숨 잘 테니까...나중에 휴게소에나 서거든 깨워라...”
“ 아!...안 그러셔도 되는데...”
“ 자식이? 커플들 사이에 끼여서 눈치 볼 일이 있냐?
가는 동안 이야기나 하고 그래....이제 그만...난 자련다...”
민은 제일 뒷자리로 향하더니 자신에게 안쪽을 권하는 병호에게 핀잔을 한번 주고는,
일부러 조금 앞쪽의 빈자리에 혼자 비스듬히 앉아 모자를 얼굴에다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병호가 겸연쩍어하면서도 배려에 고마운 기색으로 여동생과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상훈과 주연도 그들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즐겁게 재잘대며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잠결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밝게 느껴지는 것에 안심이 되면서도,
왠지 서운함을 느끼는 건 이 오빠가 못난 탓이겠지?....
“ ....장님...한 병장님....
그냥 자는 시늉을 한다는 게 자신도 모르게 꽤나 깊이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겨우 깨어났다.
하기야 휴가 내내 술을 마셨으니 그럴 만도 했었다.
“ 어? 휴게소냐? 다른 사람들은?”
“ 네...먼저 내렸습니다...”
“ 그래? 화장실들을 간 모양이군...넌?”
“ 저...한 병장님...”
“ 왜?”
그간 쌓인 피로가 생각보다 많았던지 멍한 머리가 쉽게 맑아지지를 않았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그때 병호가 약간 주저하는 목소리로 민을 불렀다.
“ 점심시간까지 좀 남긴 했지만...”
“ 왜? 배들이 고프대?”
“ 아, 그건 아닙니다...”
“ 그런데?”
“ 네..모두들 차라리 여기 내려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해서 말입니다...”
“ 여기서? 여기가 어딘데?”
“ 네, 울진입니다...”
“ 그래?”
울진이라면 강릉까지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강릉에서 간성 읍내까지 다시 1시간, 그리고 읍내에서 부대까지 택시를 타면 20분 정도였다.
즉, 넉넉잡아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면 복귀를 할 수가 있었다.
“ 지금 몇 신데?”
“ 11시 정도 되었습니다...”
“ 그래? 흠...그러면 여기서 5시에 출발하면 8시까지는 넉넉하게 들어가겠군...”
“ 네...그렇습니다...”
“ 그래...무정차 버스는 자주 온다지?”
“ 네...수시로 온답니다...”
“ 알았어...그러면 내리자...좀 쉬다가 점심을 먹고....”
“ 네..알겠습니다..”
병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부대가 가까워질수록 시간에 쫓기고 심적으로도 무거워질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민의 입장에서도 그건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돌아선다면 최소한 4시간 이상을 여동생이 고생을 덜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도 그만큼 빠를 테고....
“ 자~ 빠뜨린 짐은 없는지 잘 보고...”
“ 네..먼저들 다 챙겨서 내렸습니다...”
“ 이 자식 봐라? 아예 미리 작정을 했었구나?”
“ 아..그, 그게 아니라...일단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차를 타면 된다고들...”
“ 하하하...자식이 쫄기는? 됐어...잘 했어..그런 건 선 조치 후 보고를 해도 돼...”
“ 네...”
민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병호에게 퉁명스러워지려는 자신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
사실 품성이나 외모로 봐서도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아니, 동생과 잘 어울리는 꽤나 괜찮은 녀석이었다.
단지, 여동생을 둔 오라비의 심정이란 게 묘해서 자꾸 그런 기분이 드는 게 문제였다.
“ 자~ 기다릴라...빨리 내리자...”
“ 네, 한 병장님...”
그런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앞장을 서자 병호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새미도 이젠 어린애가 아니잖아?
이 정도면 남자친구로 괜찮지...뭐...
하기야 자신도 이미 대학교 1학년 때 여자친구와 깊은 관계였었다.
자꾸만 삐딱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 어디 보자...아직 점심은 조금 빠르고...차나 한잔 마실까?”
“ 그래요..선배님...호호~”
“ 야~! 주연이 너?”
“ 흥~ 왜? 너보다는 선배님이 훨씬 듬직하고 멋있는데 뭘? 아예 이 기회에 남친을 갈아치워?”
겨울을 바로 앞에 둔 한적한 바닷가에 쓸쓸하게까지 느껴지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민이 말을 꺼내자 대뜸 주연이 팔짝 뛰다시피 달라붙어 팔짱을 껴왔다.
처음에 봤을 때 언뜻 쌀쌀해 보이던 인상과는 달리 꽤나 붙임성이 있는 활달한 아가씨였다.
게다가 뭉클하게 팔에 닿는 감촉이 옷 안에 숨겨져 잘 몰랐던,
탄력이 넘치는 실한 몸이 느껴져 순간적으로 민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아옹다옹하는 상훈과 주연,
그리고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만 있는 병호....
그 옆에 역시 병호의 팔짱을 낀 채로 서있는 새미의 표정은 참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여동생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만 같았다.
뭔가 집힐 듯 말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새미에게도 브라더 콤플렉스 비슷한 게 있는지도...
“ 야, 야...오늘은 내가 하루 봐준다...선배님 얼굴을 봐서...”
“ 헤헤헤~~”
“ 하하하...”
카페로 들어와서도 팔짱에서 떨어지지 않던 주연이,
결국 냉큼 민의 곁에 주저앉아버리자 상훈이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픽 웃고 말았다.
그러자 혀를 낼름 내밀고 같이 웃는 주연...
여동생에게 신경을 쓰느라 미처 몰랐었지만
주연도 그렇고 상훈도 꽤나 밝고 시원한 성격인 것 같았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어쩌면 여동생은 자신과 비슷하게
맑고 예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같아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이제는 민도 조금씩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한결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 선배님~”
“ 왜요?”
“ 아이~ 참? 왜요는 무슨 왜요에요? 그냥...왜~ 그래야죠~~”
“ 하하하~~ 나~ 참...”
주연이 불러놓고는 민이 존댓말을 해주자 볼을 불룩하게 하면서 툴툴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애교가 넘쳐서 가슴을 찡하게 했다.
어쩌면 이제는 잃어버린 것 같은 동생을 대신해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몰랐었다.
주연이 그런 모습을 남에게, 더군다나 처음 보는 남자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 왜? 이제 됐어?”
“ 와~~ 고마워요~ 오빠~~”
“ 오빠?”
“ 네~에~ 그렇게 불러도 되죠?”
“ 나야 좋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도 그 오빠라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살짝 찌푸려지는 것 같던 새미의 모습도 왠지 야릇한 만족감을 주었다.
민은 지금 자신이 너무나 유치하다는 걸 알았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제가 오빠가 없어서....너무나 가까운 참 좋은 오빠가 있다는 새미가 늘 부러웠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민과 새미는 둘 다 움찔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주연의 말....
“ 그래서 아까 처음 오빠를 봤을 때부터 그렇게 부르고 싶었어요...오빠아앙~~ 헤헤~”
“ 어휴~~ 어울리지도 않게 왠 아양이야? 새미가 하면 귀엽기나 하지? 웩~~!
좀 있다가 선배님이 점심도 못 드시겠다...속이 거북해서....”
“ 상훈이 너?”
“ 하하하~~ 그만, 그만...괜히 싸우겠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유쾌한 시간이 흘러갔다.
단지, 단 두 사람...진짜 오누이만이 뭔가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 우리 귀찮게 따로 옮기지 말고 여기서 간단하게 먹고 말지?
어차피 차를 오래 탄데다가 또 나중에 장시간 타야 할거니까 많이 먹으면 부담스러울 텐데..”
“ 네..그래요...오빠~~”
언젠가부터 대화는 주로 민과 주연이 하고 있었다.
특히나 병호와 새미는 꼭 붙어 앉아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느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단지, 점점 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초조해하는 듯한 것만 빼고...
“ 어? 왠 술이야?”
“ 네...형님하고 술을 한잔하고 싶어서요....
형님은 좀 있다 복귀를 하셔야 하니까 그냥 간단하게 맥주나 몇 잔 하시고,
대신에 저희가 많이 마실게요...하하하...”
점심을 먹고 나서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갔다 오니 테이블 위에 술상이 벌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들 4명은 참 묘했다.
활달한 모습의 상훈과 주연이 한 커플, 그리고 조금은 내성적인 병호와 새미가 또 한 커플...
일부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참으로 잘 어울리는 짝들이었다.
그리고 내심 밀려오는 부러움...
자신에게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물론 남자들이나 여자들의 외양이 자신의 과거보다 훨씬 더 선남선녀라는 게 다를까?
억지라도 부려본다면 그래도 자신은 서울에서 유학을 하는 명문대생이고,
이들은 지방국립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자존심을 회복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자위가 어떤 점에서 스스로를 더 치졸하게 느끼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던 이런저런 걸 다 떠나서 상대방을 참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이었다.
“ 참, 그런데 병호하고 새미...씨..는 어딜 간 거야?”
민은 내친 김에 슬며시 상훈에게도 말을 놔버렸다.
왠지 그러고 싶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상훈의 붙임성 때문이었다.
희한하게도 친 동생인 새미에게만 존댓말을 붙여야 하는 어색한 이 상황이라니...
약간은 씁쓸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 아~ 네...뭐...형님도 병호를 이해해주세요...다시 들어가려니까 갑갑한가 보더라고요...”
“ 그거야...그렇겠지...나도 첫 휴가복귀 때는 정말로 도망가고 싶었으니까....”
충분히 이해가 갔다.
복귀를 한다고 집을 나서서 차를 탈 때까지는 몰랐지만,
막상 간성이 가까워지면서 정말 탈영이라도 해버리고 싶던 그 심정....
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병호란 녀석은 참으로 복이 많은 것 같았다.
세미 같이 다정하고 예쁜 여자친구에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런 세심하고 정이 많은 친구를 두었다니...
“ 그래서 제가 둘을 내보냈어요...둘만 있으라고...4시까지만 오라고 했어요...
저희는 여기서 술이나 한잔하면서 기다리겠다고...미리 말씀을 안 드려서 죄송해요...
사실 여기서 내리자는 것도 제가 그랬어요....차 안에서 미리 생각을 했었어요...
병호 그 녀석 얼굴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안쓰러워서....새미도 풀이 잔뜩 죽은 게 마찬가지이고...
형님을 잘 알지는 못해도 왠지 충분히 이해를 해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하하...”
“ 그, 그렇다면?”
“ 헤헤~ 네...지금쯤이면 둘이 모텔에 있을 거에요...
형님도 잘 아시죠? 한참 죽고 못살 때는....우리도...아얏~!”
“ 너, 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취했어?”
“ 아~ 미, 미안....주연아...나는...헤헤...용서해주라...”
“ 흥~~ 몰라...오빠 앞에서 창피하게...못살아~~”
얼결에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털어놓아버리고는,
얼굴이 빨개진 주연에게 꼬집히면서 싹싹 비는 상훈의 넉살에도 쉽게 웃음이 나오지를 않았다.
어쩌면 진짜 실수가 아니라 미안함을 얼버무리려는 의도적인 실수인지도 몰랐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를 할 만한 상황인데다가,
그 배려와 우정,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을 만드는 치밀함까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상훈이었지만,
지금까지 애써 자신을 달랬던 평정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순간적으로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상훈의 잘생긴 얼굴을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걸 참기가 힘들었다.
“ 오빠~ 우리 러브샷을 해요~~ 저런 입이 싼 남자는 무시하고~~ 어서요~~”
“ 으, 응...그래...”
“ 헤헤~~ 건배~~ 짠~~ 너무 좋다~~”
“ 주, 주연아....나도 잔이 비었는데...”
“ 흥~ 넌 알아서 먹던지 말던지~~”
다행이었다.
자신의 흥분을 눈치챈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절묘한 순간에 옆에서 잔을 들며 애교를 떠는 주연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서로의 팔을 감은 채로 맥주를 넘겼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서 따끔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왜일까?
이 순간만큼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주연의 팔도,
생글거리면서 어쩌면 요염하게까지 느껴지는 예쁜 얼굴도,
과장되게 울상을 지은 상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처음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동생을 본 이후로,
힘겹게 눌러왔던 상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여동생이 중학교 때쯤인가 우연히 보게 되었던 그 새하얗고 아름다운 알몸 위로,
세면장에서 종종 봤던 늘씬하게 빠진 병호의 몸이 올라타고서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장면이 떠돌았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뜨거움이 가슴 속을 메운다.
그 열기를 가라앉히려 벌컥벌컥 잔을 비웠다.
“ 와~~ 역시 화끈한 오빠~~”
빈 잔을 내려놓자마자 주연이 탄성을 토해냈다.
“ 어? 벌써 술이 모자라네?...제가 화장실을 가면서 더 시킬게요....”
“ 으, 응....그래...”
가슴 속의 열기는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오히려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달아올랐다.
상훈이 일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 오빠~”
“ 응....왜?”
“ 오빠...지금은 사귀는 사람 없죠?”
“ 어...그건....어떻게 알았어?”
“ 호호호~~ 그거....보니까....헤~”
“ 헉~!!!”
뜬금없는 말에 멍하던 정신을 가다듬고 말뜻을 헤아리다가 주연의 턱짓에 무심결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소름이 쫙 끼쳤다.
군복바지 앞자락이 마치 뭔가를 넣은 것처럼 불룩해져 있었다.
“ 헤헤~~ 걱정 말아요, 오빠...제가 아직 어려도 그런 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정도는 알아요...
그냥 오빠가 건강하다는 걸로만 생각할 테니까 괜히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 으, 응...그, 그래...”
주연은 민의 당황을 민망함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민망함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경악이었다.
그렇게 분노를 하고 마음이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발기를 하다니...
그것도 새미가 병호와 알몸으로 엉킨 장면을 상상하면서....!
“ 누구 때문?”
“ 그게..무슨...말이야?”
“ 치~~ 제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을 줄 알아요? 새미한테 반했죠?”
“ 아, 아니..그게...”
“ 걱정 마세요....병호나 상훈이는 모를 거에요...그런 건 남자들은 잘 몰라요...눈치가 둔해서...
그리고, 저도 오빠한테 관심이 있어서 자세히 살피다가 안 거지....”
“ 주, 주연아...그런 게...”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연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이제와 남매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일 것만 같았다.
“ 에~~ 오빠...그렇게 안 봤는데 왕 내숭이네?
비밀은 지킬 테니까 너무 그렇게 딱 잡아떼지 말아요...
전 오빠가 맘에 들어서 이렇게까지 솔직히 다 이야기하는데...
오빠가 그러니까 서운해지려고 하잖아요?”
“ 저, 정말이야...난 새미..씨한테...전혀 그런 마음이 없어...그냥 동생 같아서...”
“ 에? 무슨? 동생을 그런 눈으로 보는 오빠가 어디 있어요?”
“ 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 눈이라니?
“ 완전히 첫눈에 반한 눈이던데....지금도 질투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 .............”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쩌면 스스로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모든 감정이 질투였던 것이다.
그것도 동생이 아니라 한 명의 여자로 의식하면서....
그랬기에 오빠라면 당연히 화를 내고 따귀라도 날렸을 상황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기합리화와 함께 상처 받은 좋은 오빠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여자 특유의 날카로운 육감으로 주연은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
민은 아득한 벼랑 끝에 선 채로 강한 바람에 위태위태하게 흔들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찔했다.
“ 나중에...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오빠...”
낮게 속삭이는 주연에 주변을 둘러보자 저기서 상훈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 어? 아직 술이 안 왔어? 아저씨~~”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털썩 주저앉은 상훈이 고개를 빼서 주인을 불렀다.
“ 상훈아...화장실이 어디야?”
“ 응...저기 카운터 옆으로 가면 표지판이 있어...복도로 들어가면 돼...”
“ 남녀 공용이야?”
“ 으, 응...안에는 구분이 돼있지만....가게?”
“ 응...”
“ 같이 가줄까?”
“ 오빠? 오빠도 화장실을 갈 때가 안됐어요? 저랑 같이 가서 밖을 좀 지켜줘요...”
“ 으, 응...그래....”
“ 오빠랑 갔다 올 테니까 술이나 시켜놔...”
“ 응...알았어...아저씨~~”
손님이 우리뿐이라서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건지 재차 부르는 상훈의 목소리에도 인적이 없었다.
민은 엉거주춤하게 주연의 손에 끌려 화장실을 향했다.
잔뜩 부푼 아랫도리가 뻑뻑하게만 느껴져 걷기에 불편할 지경이었다.
정말로 오줌이 마려운 건지 흥분으로 인한 단순한 발기인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느껴지면서 핑 돌았다.
“ 주, 주연아?”
“ 쉿~! 오빠~”
“ 왜? 어쩌...흡~~”
정말로 많이 취한 걸까?
화장실 앞에 다다라 밖에 있을 테니 안심하고 먼저 일을 보라고 말하는 순간,
주연이 민의 손목을 낚아채 같이 안으로 끌어들이더니 갑자기 키스를 해왔다.
화장실 문의 딱딱하고 차가운 촉감이 등에 느껴지면서 정신이 채 드는가 싶기도 전에,
뜨거운 숨결과 함께 물컹한 살덩어리가 입 안으로 들어와서 휘저었다.
어떻게 이렇게나 대담한 걸까?
물론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주연이 처음부터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긴 했지만...
더군다나 대충 짐작은 했었던 두 사람 사이가 상훈의 입을 통해 깊은 관계라고 확인까지 됐었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인연이라면 모르겠지만, 여동생의 친구들이다.
그런 당혹스러운 감정들과는 상관 없이 이미 잔뜩 자극을 받아있던 딱딱한 성기가,
가슴팍을 짓눌러오는 뭉클한 젖가슴과 함께 그곳을 비벼오는 부드러운 아랫배의 감촉으로 인해,
자신의 혀를 아릿하게 빨고 있는 상황을 부추기며 민의 머리 속을 더욱 아득하게 만들고 있었다.
“ 하아~ 오빠~”
“ 주, 주연아...그만...상훈이도 밖에...”
“ 제발...그만...”
“ 헉~!!!”
왜 이 보드랍고 뜨거운 여체가 자신인들 싫겠는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정열적인데...
하지만, 못이기는 척하고 이 순간을 계속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억눌러야만 했다.
모르겠다.
그게, 상훈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 때문인지...
새미의 친구들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아니, 어쩌면 스스로는 부정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정말은 여동생을 배신하는 것 같은 한 남자로써의 마음일지도....
어쨌던 매달리면서 온몸으로 자극을 가해오는 주연의 어깨를 양 손으로 잡아,
가까스로 떼어내는 순간 갑자기 주연이 손을 내려서 바지 위로 덥석 성기를 거머쥐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민은 혀가 딱 붙어버렸다.
이곳에 여자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껴본 게 그 얼마만인가?
하체가 움찔하면서 성기 전체가 찡하고 울리는 것 같은 감각에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 새미 때문에 여기가 이렇게 된 게 분하긴 하지만....”
“ 주, 주연아...”
“ 제발...오빠..잠시만 그냥 들어줘...”
“ ...........”
달뜬 숨결이 코끝을 스치면서 이글거리고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가 아프게 찔러왔다.
그리고, 크기와 경도를 가늠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기둥을 쥐었다 놨다 하는 손길...
또다시, 짜릿한 쾌감이 밀려왔다.
“ 상훈이...그 바보자식이 다 불어버렸지만....맞아...나 상훈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맞아...오빠..”
“ 주, 주연아...”
“ 하지만, 그렇다고 상훈이를 진짜 내 짝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그냥 아주 가까운 친구...그러니까 조금 특별한 친구 정도야....
물론 상훈이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단지, 애인이라고 하기에는 늘 뭔가 허전했어..
그런데, 오빠를 보는 순간에 알았어...내가 기다려왔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 주..연..아...”
“ 오빠가 처음부터 새미한테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알아?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얼마나 힘들게 참았는지 아냐고?”
정말로 주연의 눈이 촉촉해지고 있었다.
간절한 열망과 슬픔을 가득 담은 까만 눈동자....
주연의 눈 속에 이렇게 풍부한 감정이 담길 줄은 몰랐다.
자신이 새미 때문에 느꼈던 아픔과 비슷한 빛깔을 가진 그 시선에,
민은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동병상련이랄까?
아니면, 주연의 흡입력에 한 없이 빨려 들고 있는 걸까?
“ 미안해...주연아...”
“ 쉿~!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오빠...”
자신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와버렸다.
진심이었다.
이 짜르르한 아픔을 자신 역시 너무나 생생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내 동생...새미...
“ ...그렇다고 이대로 쉽게 오빠를 포기하거나 그러진 않아...난, 정말 욕심이 많은 애거든?
약속해줘...나중에 제대하고 나서 꼭 연락을 해주기로....아니, 오빠의 연락처를 알려줘...”
“ 주, 주연아...그, 그게...”
“ 행여나 가짜 번호를 알려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믿어...”
“ 하압~~”
정말로 놀랐다.
성기에 느껴지던 압박감이 스르르 사라지는 걸 느끼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움에 숨을 들이키는데,
그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고도 없이 혁대를 비집고서는,
주연의 손이 위로부터 안으로 파고들어 팬티 안까지 한번에 침범을 했다.
이미 겉물이 미끈거리고 있던 귀두를 덮은 손바닥이 마찰을 하면서,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쾌감의 물결을 일으켰다.
경이로움으로 주연을 재평가할 때마다 그 한계선을 다시 한번 무너뜨리는 그녀...
놀랍고도 놀라운 여자였다.
“ 빨리...”
“ 하악~...그..래...전화번호는.....”
마치 고문을 당해 모든 기밀을 불어버리고 있는 포로만 같았다.
물론 이런 고문이라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백기를 들고 자진해서 포로가 되겠지만...
홀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입대를 하면서 정지를 시켜두었던 핸드폰 번호를 불러주었다.
그걸 내뱉는 자신도 그랬지만 듣는 주연도 거짓말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를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불러주고 그걸 되뇌면서 기억하는 두 사람...
물론 민의 바지 속으로 들어온 보드랍고 작은 손이 일반적인 남녀의 상황과 많이 다르긴 했다.
“ 오빠..먼저 나갈게...천천히 와....”
“ 하....알았어...”
탕~~
문이 닫히고 나자 조금 전의 일들이 잠깐 졸면서 꾼 꿈만 같았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 비추어 본 거울로 보이는 입가에 희미하게 번진 립스틱 자국과,
아직도 아랫도리를 욱신거리게 만드는 쾌감의 여운이 꿈이 아니었다고 항변을 했다.
“ 휴~~~”
쏴~~아~~
오줌을 누고 나자 조금 진정이 되는 것도 같았다.
도저히 가라앉을 것 같지가 않아서,
자위라도 한번 할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던 성기도 천천히 그 열기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짜릿한 흥분이 밀려왔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구애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로부터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엔 이래저래 복잡하게 얽힌 게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엔 동생 새미가 있었다.
새미에게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다시 한번 명치 끝이 묵직해진다.
지금이면....
아니다, 그만 생각하자...일단은 빨리 나가야겠지?
민은 머리를 흔들고서 차가움에 부르르 몸이 떨리는 걸 느끼면서도 일부러 찬물에다 세수를 했다.
“ 어~? 어서들 와...생각보다 빨리 왔네?”
“ 으, 응....”
“ .........”
마음이 복잡한 탓일까?
어차피 말년이라서 약간 욕만 먹고 말겠지만, 복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침 없이 맥주를 마셔버렸다.
그렇게 정신 없이 셋이서 마시고 있는데 병호와 새미가 조용히 나타났다.
원래 4시까지 오기로 했다더니 생각보다 한 시간은 빨랐다.
제 오빠 때문에 새미가 서두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전에,
맞은편에 앉은 동생의 홍조가 띤 얼굴과
아직도 촉촉하게 습기가 느껴지는 늘어진 머리카락이
잊은 듯했던 감정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아니, 아까보다 훨씬 거세고 빠르게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건 주연의 말이 맞았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날카로운 것에 살을 베이는 것 같은 섬뜩한 통증이 가슴 속을 스치면서,
뭔가 뜨거운 게 치밀어올라 숨마저 쉬기가 힘들게 했다.
질투가 분명했다.
배신감도....
게다가 결정적인 건,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부러질 듯이 팬티를 밀어내는 자신의 성기...
이거야말로 모든 변명이 필요 없는 확실한 증거였다.
자신은 동생을 여자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생긴 감정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내 소속이라고 무심결에 여기고 있던...
민은 몰랐다.
시선은 동생에게 고정돼있으면서도,
모든 걸 불태울 것 같은 자신의 눈을,
조금 전까지 시선을 피하는 듯했던 정면의 여동생뿐만이 아니라,
옆에 앉은 주연마저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눈 앞의 공간이 텅 비어 있었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