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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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준비가 진행되어 가는 동안, 슈발츠는 손님 방에 얌전히 처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하프 드래곤과 드로우 일행이다. 밖으로 나가 호기심(과 약간의 적대감)이 섞인 시선들에 노출되는 일도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었고, 전혀 한가하지도 않았다. 눈 독수리의 보금자리까지 오는 동안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보고를 텔레파시로 받고,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등 바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보고 꺼리를 가진 것은 역시 와우킨이었다. 얼핏 보아 매우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텔레파시와 투영을 사용해 전달하는 와우킨의 보고는, 단순히 정보의 양이 문제가 아니었다. 와우킨의 보고의 진정한 가치는 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신계 직송의 정보라는 것이었다.
신들은 아주 많이 안다. 정보의 양과 질에서, 그리고 정보의 취득 능력에서 일반의 필멸자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정보는 힘이다. 적절한 정보는 곧 절적한 대응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슈발츠가 내해의 상권을 틀어쥐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그가 다른 상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정보 수십 네트워크를 짰기 때문이다. 상인의 신인 와우킨은 세계 전체에, 내계와 외계, 주 물질계부터 그림자 차원이나 아스트랄계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아주쓰(Azuth)가 죽었다고?]
[네, 운명의 군주(켈램보르를 말한다)가 그의 죽음을 정식으로 확인했습니다.]
물론 나이먹어 죽는 경우는 없지만, 신들도 죽는다. 그리고 신들이 죽음도 인간이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혼과 육체가 서로 분리되어, 혼은 사라지고 육신은 아스트랄 플레인에 버려져 소멸해 간다. 일반적으로는.
켈램보르가 아주쓰가 사망한 것을 알게 된 사연은 의외로 간단했다. 원래 필멸자였던 그 신격의 영이 심판의 도시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아주쓰를 죽인 살해자에 대한 정보도 드러났다.
아스모데우스(Asmodeus) 구층 지옥의 악귀들의 군주가 바로 아주쓰의 살해자였다. 드웨머 하트의 폭발 때 큰 부상을 입은 아주쓰가 불시착한 곳이 구층 지옥의 밑바닥이었던 것이다. 신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악마 역시 자기 구역에서는 보통보다 훨씬 더 강하다. 저 마법의 여군주인 미스트라의 휘하에 있어 소신격 중에서는 위세가 세던 아주쓰라도, 부상까지 당한 마당에 자기 나와바리에 버티고 있는 아스모데우스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알을 살해한 시어릭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살해당한 신격의 에센스는 살해자의 것이 된다. 빼앗은 신성을 바탕으로 아스모데우스가 무엇을 꾸밀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지상의 대 재앙과 함께 약해진 만신전의 신격들에게 이 사건은 정말로 불길한 전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슈발츠에게도 대사건이었다.
미스트라의 사후, 그 지위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장 유력한 위치에 있는 신격인 아주쓰가 죽었다. 그리고 그보다 오랜 비전의 군주였던 사바스(Savras)의 행방은 묘연하며, 강령술의 신인 벨샤룬(Velsharoon)은 만신전에서 추방되었다. 만신전의 마법과 주문 영역을 담당하는 신들 모두가 죽거나 사라지거나 추방당한 지금, 요동치는 위브를 다시 다스릴 신격의 위치에 설 만한 정통성을 가진 신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앞서 필멸자들의 마법을 제어할만한 [장치]가 사라졌다는 바하무트의 걱정이 현실화 되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 걱정이 완전히 현실화 되면, 2만년전의 왕관 전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법적 재앙이 페이룬의 인류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미스트라의 죽음의 현장에서 그것을 막지 못한 슈발츠의 책임이 될 수도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 어둠이 깃들었다.
그 다음은 에버미트에 간 젤로나가 친족의 안위를 확인하고 에버미트의 내부 정황을 보고해 왔고, 고향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을 보다 못해 코르미르에 파견한 알루시아와 칼라드네이 콤비도 그럭저럭 코르미르의 내정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해 왔다.
코르미르의 내정에 관한 보고 중에는 특히 북쪽 국경에서의 셰이드 제국과의 충돌에 관한 보고가 많았는데, 아나우로크 상공에 떠 있는 고대 네서릴의 도시는 한때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사분지 일이나 되는 시민을 만류인력의 법칙에 잃기는 했지만, 위브가 요동친 충격에서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대격변의 피해를 더 자심하게 받은 주변국들에 대해 활발한 [진출]을 벌이는 중이었다. 비록 위브적인 기예가 일시적으로 못쓰게 되었다고는 하나, 셰이드들의 무력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대격변의 회복기를 맞은 신생 네서릴의 주변국가들에 대한 위협은 전란의 양상까지 띄고 있었다.
알루시아와 칼라드네이는 모험자로 가장하고 그 셰이드들의 [진출]을 막기 위한 임무를 몆번이나 해야 했다. 테티르에서의 플로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곧 그녀들의 활약은 코르미르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다만 플로라와 당한 일과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슈발츠는 그녀들이 너무 튀는 일은 삼가하도록 했다.
그럭저럭 사흘 동안은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텔레파시 지령을 내리고, 에어리의 집안 내부를 구경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며 보낼 수 있었다. 에어리의 집의 도서실은 거의 작은 도서관 만 했는데, 책의 태반은 마법서와 학술서였다. 부부가 두명 다 저명한 마법사이고, 또한 저택의 일부가 마법사 과정에 드는 아바리엘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뮈브의 요동으로 인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 개점휴업 상태지만 언제까지 위브가 저런 상태는 아닐 것이다.
집안 구경을 하던 도중에 슈발츠는 작은 성소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성소는 일반적인 신의 성소와는 달리, 하나의 제단에 두 신의 입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너구리를 대동하고 있는 작은 노움 입상은 노움 신인 베어반 와일드원더러(Baervan Wildwanderer)의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번 보았던)날개 달린 어머니, 에어드리 펜야의 입상이 서 있었다.
잠시 그것을 보고 서 있던 슈발츠의 등 뒤에서 에어리가 나타났다. 돌아보자 그녀는 짖궂은 표정을 지었다.
" 아바리엘이 노움의 신을 섬기다니, 특이하지요? "/에어리
" 아아, 하지만 비코니아가 이미 말해 주었소. "/슈발츠
에어리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어 보였다. 두 신을 향한 기도문을 읆어 보인 후, 그녀는 성소를 청소하고 물러섰다. 슈발츠는 그녀가 기도문을 외는 동안 옆에 서 있다가, 성소를 청소할 때 빠져나왔다. 포대기에 싼 아이를 품에 안은 압델이 거실에서 잠든 아이를 얼르면서 슈발츠 쪽을 보고 말을 건네어 왔다.
" 에어리는 언제나 손님들에게 그 질문을 한답니다. 뭐랄까 짖궂다고나 할까요? "/압델
" 어머, 손님 앞에서 아내의 험담을 하시다니. 우리 사랑이 식은건가요, 달링? "/에어리
이 부부는 세상의 지옥을 보고, 죽음의 문턱에서까지 되살아 왔으면서도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아니 그 지옥을 보고 왔기 때문에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슈발츠로써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타입이었다.
슈발츠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압델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은 에어리가 다시 슈발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조금있으면 파티에 참석하실 손님들이 오실 거에요.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보시다시피 전 아이를 돌봐야 해서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비코니아에게 나머지 일(접시를 놓는다던가)을 부탁해도 될까요? "/에어리
" 내가 물어보고 오겠소. 그리고 내게도 뭔가 부탁할 일이 있다면 지금 하시는 게 좋을것 같소이다. "/슈발츠
" 어머, 상냥하시네요. "/에어리
" 과찬이시오. "/슈발츠
곧 두르나와 비코니아는 손님 맞이 준비를, 슈발츠는 압델과 함께 집안 청소를 하게 되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채로 사람들을 능란하게 부리는 에어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님]그 자체였다.
" 우린 마당을 쓰는 돌쇠지요. "/압델
" 아아, 그게 그렇게 되는게요? "/슈발츠
청소를 하면서 슈발츠는 압델과 에어리가 이곳에 정착하고 난 이후의 사정을 대강 들을 수 있었다. 귀향하게 된 에어리는 그녀가 지상에서 노예가 되지 않았다면 올랐어야 할 위치(명문가의 따님)에 되돌아왔다. 그 명문가의 데릴사위가 된 셈인 압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바리엘들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모험 중에 얻은 재산을 사용해 두사람과 아이들이 살 집을 구했다. 그동안의 모험행에 지친 압델은 아예 모험과 관련된 일은 하려고 들지도 않았기에(그리고 벌어놓은 재산만으로도 30대 정도는 놀고 먹을 수 있었기에) 집안에서 애보기하는 백수로 지냈다.
하지만 지상인들을 깔보는 아바리엘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압델과 에어리 부부는 쉴새없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딸인 마샤까지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따돌림을 당했다. 참다못한 에어리는 어디 가까운 인간 동네에 이사를 가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둘째 시온을 임신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뒤로 미루어졌다.
거기까지의 일이라면 그리 재미있지도 않겠지만, 정말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마침 눈 독수리의 안식처를 노리는 일단의 화이트 드래곤 무리가 외부 요새의 결계를 약화시킨 일이 벌어졌고, 아바리엘들이 죽니 사니 하는 동안 압델이 혼자 부서진 결계로 뛰어들어 요새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려는 화이트 드래곤들을 마법으로 쫒아보내고 수십명의 아바리엘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이후로 아바리엘들이 압델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잉여백수라고 생각한 인간이 실은 세계를 몆번이나 구한 왕대박 마법사였던 것이다. 요새의 결계를 복구하는 작업에도 자문을 준 후, 압델은 아바리엘 평화주의자들의 마법학교 중 하나인[사티아그라하]의 교수로 정식으로 초빙되었다. 그리고 전날까지도 뒷담화를 까던 아바리엘 귀족들은 자기 자식을 과외해 달라며 청탁을 넣었다. 범상한 사람이었다면 무시했을 것이지만, 대인배 압델은 어제까지도 자신을 까던 자들의 자식을 학생으로 받아 가르쳤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바리엘들은 동아리 의식이 강하고 잘난체가 심하긴 하지만 악하지는 않다. 미스트라가 죽은 후로 마법학교와 과외는 개점휴업이지만, 압델이 보여준 눈 독수리의 안식처에 대한 성실함은 그를 아바리엘 동아리에 받아들여지게 하고, 도시의 저명인사 중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그럭저럭 하는 중에 악사들이 도착했고, 곧이어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압델과 마샤를 대동한 에어리가 문앞까지 나가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파티는 성황이었다. 어쨌든 도시에서 존경받는 부부가 주최한 파티다. 게다가 주빈이 드로우라는 것도 이례적이고, 하프 드래곤인 슈발츠도 상당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아바리엘들은 두르나와 (주빈인)비코니아를 구분하기 힘들어 했다. 여자들의 수다들을 한귀로 흘리며, 슈발츠는 손 안의 잔을 비우고 바람을 쐬기 위해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밖이라고 해 봐야 연회장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테라스로 간 것일 뿐이었지만.
" 어머... "
베란다에는 선객이 있었다.
" 당신이 그 소문의 지상인이군요? "
옅은 푸른 색조의 깃털에 뒤덮인 날개가 약하게 펄럭이며 뒤돌아 선 여자는 부드럽게 곱슬진 채 허리 어림까지 드리우는 색이 바랜 듯한 금발에 벽옥색의 눈동자를 가졌는데, 그 미모는 아바리엘 사이에서도 한눈에 두드러지는 것이었다. 굳이 비교하라면 어지간한 인간이나 엘프보다 위, 슈발츠의 노예중에서는 미모로 몆손가락 안에 드는 플로라 바로 아래 등급이랄까.
" 처음뵙겠소. 야크트 슈발츠라고 하오. "/슈발츠
" 브리세이즈 판마릴(Brisais Fanmaril; 중립 선 여성 아바리엘 에어드리 펜야의 클4/위 1)라고 해요. "/브리세이즈
슈발츠는 인사를 나눈 후 브리세이즈와 적당히 거리(그녀의 날개가 펼쳐져도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를 두고 테라스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눈 아래, 요새의 내벽 안으로 펼쳐진 거대한 평지에는 굉장한 아열대의 원시림이 펼쳐져 있어서, 이곳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들 위에 지어진 요새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어디 아열대지방 한가운데 세워진 요새 안에 있다고 착각하기 딱 좋을 정도였다.
" 굉장한 경치죠? 조상님들이 이곳에서 우리끼리 뭐든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여기 정착한 후 쭉 노력해 온 결과에요. "/브리세이즈
" 대단하구려. 그럼 다른 주민들은 요새를 나가지 않는거요? "/슈발츠
" 가끔 볼일이 있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다들 에어리만큼 무모하지는 않으니까요. 대부분의 우리 동족들은 지상의 야만을 마주 대할 여유가 없어요. 그저 피하고 말죠. "/브리세이즈
" 그럼 귀 부인은?... "/슈발츠
" 부인이라뇨,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인데!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면, 글쎄요, 전 이제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에어리 덕분에 양쪽 의견이 다 힘을 얻게 되었지만... "/브리세이즈
곧 이어진 브리세이즈의 설명에 따르면, 페이룬 세계에서 가장 큰 아바리엘 공동체를 보유한 눈 독수리의 안식처는 지금 일종의[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거의 4천명의 아바리엘들이 요새 내에 살고 있으며, 700명 가까운 인원이 날아서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면 닿을 거리 안에서 작은 초소나 교역용 거점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나르펠(Narfell), 라셰맨(Rashemen), 다마라(Damara), 그리고 그레이트 데일(Great Dale)에는 부정기적으로 사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지상인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동맹이나, 적어도 다른 악한 존재들(특히 근처의 호르페론에 집단으로 둥지를 튼 화이트 드래곤들)에 대항하는 상호 방위 협약을 맺기를 기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신전 내에서 개방파와 쇄국파간의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었다.
주로 젊은 전사들이 중심인 개방파의 주장의 요지는 이랬다. 이미 요새 내부에서 생산하는 것만으로 자급자족을 할 단계는 지났으며, 자위력도 충분하다. 그러니 지상 종족들과 적극적으로 교역과 동맹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자.
그리고 물론 쇄국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자급자족 능력은 충분하며, 무엇보다 가까운 호르페른(Hoarfaern)의 화이트 드래곤들을 아직 다 구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의 세력 확장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 아닌가 하는것이 반대파의 주된 주장이었다.
거의 200년째 집권 중인 대제사장 아퀼란 그레이트스판(Aquilan Greatspan; 무질서 선 아바리엘 남성 파4/ 클12/디바인 디사이플5/하이어러펀트1)이 뚜렷하게 어떤 정책을 선택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이 논쟁이 격화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
" 그래서 브리세이즈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슈발츠
" 음, 전 일단 [쇄국파]에요. 일단은... "/브리세이즈
" 하지만? "/슈발츠
" 언제까지고 이 안에 머물러 있을 수만도 없으니까요. 핫,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브리세이즈
" 뭐 답답하면 남에게 털어놓는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게다가 국외자인 내가 안다고 한들 별 문제가 될 이야기도 아닐것 같고... "/슈발츠
슈발츠가 어께를 으쓱해 보이는 것을 본 브리세이즈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마침 불어온 바람에 그녀가 어께에 걸치고 있는 하늘색 하마티온(그리스풍의 단망토. 키톤이라 불리는 셔츠 위에 걸쳐 입는다. 그외에 coan이라는 속이 비치는 비단 드레스도 있다)이 머리카락과 함께 펄럭이며 흩어지는 모습은 지독하게도 매혹적이었다.
" 언제까지고 이 안에 머물러 살 수는 없다... 맞는 말이긴 하지. 조심만 한다면 동맹을 얻어서 나쁠건 없을게요. 그나저나 브리세이즈, 당신은 마법사라고 했소? "/슈발츠
" 네.그리고 동시에 날개 달린 어머니의 길을 탐구하는 자이기도 하지요. "/브리세이즈
" 인간들의 성직자나 드루이드 같은 직분으로 들리는구료. "/슈발츠
" 비슷할거에요. "/브리세이즈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브리세이즈는 조금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슈발츠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남자고, 게다가 날개도 없는 지상인(하프 드래곤이긴 하지만)이다. 그런데 술기운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있으니, 그녀로써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브리세이즈 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남자인 슈발츠는 보통의 지상인이 아니다. 수많은 위험한 모험과 전투를 거쳐 오고, 그를 통해 노예들을 얻고 스스로를 단련시켜 오면서 붙은 후천적인 기품과 자신감은 그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기에 족했다.
" 나와 자매들은 거인 독수리를 돌보는 직분도 가지고 있어요. 거인 독수리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브리세이즈
" 들은적은 있소만, 본적은 없소. "/슈발츠
당연히 없겠지. 브리세이즈는 조금은 우월감을 담은 짖궂은 시선으로 슈발츠를 곁눈질로 보았다. 좀 더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몰라도, 그가 더 멋져 보였다.
" 그럼... 구경해 보실래요? "/브리세이즈
" 그래 주신다면 무척 영광스러운 경험이 될거요 레이디. "/슈발츠
" 그럼 잠깐만요. "/브리세이즈
슈발츠는 주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브리세이즈는 그것을 좋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잠깐 슈발츠에게 윙크를 하고 날아서 자리를 뜨더니, 한쌍의 날개 달린 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 이걸 착용하시면 날 수 있을 거에요. 따라오세요. "
샌들을 신고 따라간 곳은 요새의 서쪽 방벽 일대에 세워진 인공적인 숲이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 위에 수백개의 둥지가 있었고, 인간보다 덩치가 훨씬 큰 거대한 독수리들이 날아다니거나 나뭇가지나 둥지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날개 달린 엘프들이 날아다니며 알과 새끼들을 돌보는 일을 돕고 있었다.
" 그들은 명예롭고 뛰어난 존재들이에요. 평등한 동맹자로써, 그들 스스로 자신의 친구를 선택하지요. "
거인 독수리는 말을 하지 거의 않지만 못하지는 않으며, 인간만큼이나 지능이 높다. 슈발츠가 브리세이스의 안내를 받으며 지나는 동안, 몆몆 거인 독수리 새끼들이 슈발츠 주변에 꼬였다.
" 브리세이즈다. " /아기 독수리 1
" 신기한 생물이다. "/아기 독수리 2
" 날개가 없는데. "/아기 독수리 3
조금은 어색한 발음이었지만 분명한 아루안(Auran; 대기 정령의 언어)이었다. 슈발츠는 유니콘이랑 안면도 트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구관조는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독수리가 말하는 것은 난생 처음 듣는 것이었다.
" 이분은 지상에서 오신 분이에요. 지금은 견학 중이니까 다음에 놀아요. "/브리세이즈
" 아아, 나중에? "/아기 독수리 1
" 나중에 놀아줄거야? "/아기 독수리 2
" 재미있어? 날개 없는데 괜찮아? "/아기 독수리 3
잠시 실랑이 아닌 실랑이와 떠들썩함 끝에, 브리세이즈의 능란한 [타이름]에 넘어간 아기 독수리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그즈음 해서 브리세이즈의 다른 자매들이 도착했다. 하나같이 브리세이즈처럼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여자들이었다.
" 슈발츠씨 이쪽이 제 자매들이에요, 이쪽부터 헬레네, 크리세이스, 펜테실레이아, 카산드라에요. "
" 소문으로 듣던 지상으로부터의 방문자시군요. 반가워요."/헬레네
" 우와 드래곤 같아... 아 실례했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크리세이스
" 우린 구면이네요. 펜테라고 불러 주세요. "/펜테실레이아
" ...안녕하세요. "/카산드라
연장자부터 꼽으라면 헬레네(Hellane; 중립 선 아바리엘 여성 클 8)/ 브리세이즈/ 크리세이스(Kriseis; 혼돈 선 아바리엘 여성 클 6)/ 펜테실레이아(Pentesyleia; 혼돈 선 아바리엘 여성 파 5)/ 카산드라(Kasandra; 혼돈 선 아바리엘 여성 클 2/ 위 1) 순이었다. 그중에서 펜테실레이아는 슈발츠와 처음 마주쳤던 순찰 부대 부대장으로, 워낙 얼굴을 심하게 가리는 투구를 쓰고 있었기에 슈발츠가 그녀를 알아보는데는 시간이 약간 걸렸다.
" 자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앉아서 이야길 나누죠. "
서서 인사를 나누기도 뻘쭘했기 때문에, 자매들은 슈발츠를 가까운 빈 독수리 둥지 위로 안내했다. 둥지 가장자리에 평평한 마루를 덧댄 부분에 탁자와 다섯의 의자가 놓여 있어서, 평소에도 브리세이즈와 그 자매들이 휴게실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잽싸게 어디론가 날아간 펜테실레이아가 의자 하나를 더 가져오는 동안, 슈발츠를 중심으로 좌우에 자리를 잡은 브리세이즈의 자매들은 차를 내온다 과자를 내온다 하며 수선을 떨었다.
" 지상은 어때요? 정말로 날개 없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아요? "/크리세이스
" 날개 없이 드래곤들과 어떻게 맞서는 거지요? "/펜테실레이아
지상에 대해, 자매들은 궁금한 것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슈발츠는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되도록 재미있게 설명을 해 주었다.
" 날개달린 사람들(아바리엘 자신을 말함)은 아직도 갈길이 멀군요... "/헬레네
지상 도시의 규모에 대해 들은 헬레네는 조금은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심(?)한듯 보였다. 그녀는 자매의 연장자이며, 또한 그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헬레네는 독수리 돌보기 담당 이외에도 사제단의 일원으로, 정청에서 서기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상 이주 계획도 그녀의 담당이었다.
자매들의 외모를 보자면, 자매답게 생김새는 많이 닮아 있었다. 눈동자의 색은 한결같은 벽옥색이었지만, 체모 색은 분명하게 차이가 났다. 그중 헬레네는 금으로 만들어진 양털마냥 풍성하게 곱슬진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크리세이스는 진한 갈색의 직모, 펜테실레이아는 약간 붉은색이 섞인 금발 곱슬머리였는데 헬레네보다는 그 풍성함이 조금 덜하고, 말총머리 모양으로 묶어올린 상태였다. 그리고 자매의 막내이며 제일 수줍어 하는 카산드라는 불타는 듯한 붉은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수니를 연상시키게 하는 바가 있었다. 다른 아바리엘들은 대부분 검은 머리나 진한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자매들의 외모는 특출났다.
" 우리 집안은 아주 예전에 지상인 조상이 섞여들어 이런 머리색을 가지고 있데요. 그것도 여자만... 일종의 컴플랙스죠. "
슈발츠가 체모 색이 다른점을 궁금해 하자, 브리세이즈가 조금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펜테실레이아가 조금은 화난 듯이 한마디 더 첨언했다.
" 헬레네 언니의 남편, 그러니까 우리에겐 [형부]되는 작자였던 파리스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음에 안든다나? 이혼하기 전까지 헬레네 언니는 머리까지 염색하고 있었다니까요. 그집 식구들 하나같이 재수없어. "/펜테실레이아
" 아니 지금, 아바리엘들은 서로를 머리색 때문에 차별한다는 거요? "/슈발츠
" 눈동자 색도 다르지요. 그리고 엄연히 따지라면, 맞아요. "/브리세이즈
" 가엾은 카산드라는 좋아하던 남자애에게 모욕을 당하질 않나... "/펜테실레이아
자매중 가장 열혈한 성격인 펜테실레이아는 폭풍우처럼 불평을 쏟아내었다. 그나마 머리색이 다른 아바리엘과 비슷한 크리세이스는 순조롭게 혼담이 진행되는 중이었지만, 나머지 자매들은 저마다 눈동자와 머리색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슈발츠는 머리색이나 눈동자의 색으로 동족을 차별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지상은 물론이고, 드로우들의 사회도 그러지 않는다. 뭔가 그럴듯하게 멋져 보이기만 했던 아바리엘 사회의 치부를 본 기분이었다.
" 아, 죄송해요, 손님을 앞에 두고 험한 이야기만... 아무튼 그점만 제외하면 이곳은 살기 좋은 동네죠. "/브리세이즈
" 그래서 브리세이즈만 빼고 우린 전부 [개방파]기도 해요. "/헬레네
헬레네의 은근한 시선을 받은 브리세이즈는 얼굴을 붉혔다. 당황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 전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완전히 지상과 연결을 끊고 살자는 과격파는 아니라고요. 그리고 과격한걸로 따지자면 개방파가 한술 더 뜨죠. "
브리세이즈의 말에 크리세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아 정말, 우리 파티(party; 당)의 지도자인 아이아스(중립 선 아바리엘 남성 파이터 16)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일전에도 금지된 비밀 회합을 열었다가 들켜서 경을 치뤘지요. 그 덕분에 우리 입지만 흔들리고... "/크리세이스
" 진짜 문제는 아퀼란이에요. 그가 중심을 잡는답시고 어느 파티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방조해서 이런 문제가 점점 커지는 경향도 있으니까. "/헬레네
그럭저럭 하는 동안, 다과와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 자매들은 다시 놀러와 달라는 말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졌고, 브리세이즈는 다시 에어리의 집으로 슈발츠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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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리엘들은 전통적으로 파벌이 있습니다. 주로 성직자와 마법사로 이뤄진 [평화주의자] 파벌과 전사 중심의 [호전적 파벌]입니다. 아바리엘의 성인 교육 코스는 이 양쪽 파벌의 도제 생활을 교대로 하는 것이라 이 양 파벌이 딱히 서로 격리되어 있거나 이쪽 저쪽으로 확실하게 나뉘어 정치적으로 대립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 소설에서는 하나의 정치적인 쟁점(개방하느냐 마느냐)을 두고 양 파벌이 대립한다고 설정했습니다.
확실히 페이룬의 엘프 사회에서 4천(성년만)이라는 숫자는 적은것이 아니고, 대격변을 무사히 넘긴(어차피 그들의 거주지인 눈 독수리의 안식처 내부는 아열대 온실입니다. 대격변이나 긴 겨울 같은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동네지요)아바리엘 사회 주변의 인간 사회들은 대격변으로 약해져 있습니다. 식민활동의 필요는 이미 생겨 있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해진 상황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회]라는 것이죠.
물론 [기회]가 언제나 잘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시도하지 않으면 얻는것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