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6편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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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6편

<15>


대체로 슈발츠의 노예들은 슈발츠의 궁성 내부에 있을 때는 나체이거나, 나체에 가까운 차림이다. 부끄러움이 많고 얌전한 성격인 플로라도 자기 처소에 있을때는 하얀 세단으로 만든 잠옷 한장밖에 걸치지 않는다. 언제든지 주인인 슈발츠의 필요에 응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연습중인 무투파 노예들이 가장 많이 껴입게 된다.


슈발츠와의 첫 대련을 앞둔 발레리아 역시 두껍게 껴입고 있었다. 솜을 넣은 두터운 전신 호구에, 알루시아가 특별히 신경써서 안감에 두터운 천을 댄 투구까지 착용시켜놓으니, 사람은 안보이고 갑옷만 보일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로 위 상급자인 세실루아가 슈발츠랑 대결하는 모습을 몆번이나 본적이 있는 발레리아는 이런 상태로도 충분할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 첫 대련이라고 봐주진 않는다. "/슈발츠


" 네, 잘 부탁 드립니다! "/발레리아


" 음. 일단 선공을 양보하지, 어떻게든 공격해 봐라. "/슈발츠


" 그럼 사양하지 않고, 실례하겠습니닷! "/발레리아


그동안 알루시아나 세실루아를 상대로 수많은 대련(슈발츠와 그 노예들의 대련은 준 실전이다)을 거친 발레리아다. 기동과 요격의 요령은 충분했다. 휘둘러지는 연습용 해머의 일격을 목검으로 받아 낸 슈발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잘 가르쳤군. "/슈발츠


" 감사합니다. "/알루시아


" 타핫! "/발레리아


그 잠깐의 틈을 노려서 발레리아가 다시 도약해서 해머를 휘둘러 보았지만, 슈발츠는 다시 목검으로 쳐냈을 뿐이다. 그리고 발레리아의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터엉!... 쿵!...


두꺼운 호구 깊숙히 파고드는 칼등의 일격에, 발레리아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서 날아가다 무투장의 경계를 들이받고 떨어졌다.


" 아윽!... "


발레리아는 곧바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끼며 휘청였다.


" 그걸로 끝이냐? "/슈발츠


" 아,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 "/발레리아


몆번이나 보긴 했지만, 몸으로 겪어보니 역시 슈발츠는 격이 다르다. 발레리아는 해머를 고쳐 잡았다.


" 타핫!!... "


다시 도약해 슈발츠 쪽으로 달려가는 발레리아. 대련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 이쯤 하지. "/슈발츠


" 하악하악... 감사합니다. "/발레리아


감사의 인사를 끝마친 후, 발레리아는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알루시아가 기진맥진한 그녀를 일으켜서 호구를 벗기는 것을 보면서, 슈발츠는 두르나가 가져온 젖은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았다.


" 움직임은 꽤 좋아, 그 상태에서 너보다 크고 빠른 상대의 공격을 눈으로 포착하고 대응할 방법을 생각해 봐. 실전에서 드래곤이나 오우거의 입체적인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면, 그보다 작은 상대와의 싸움은 한결 더 쉬워지겠지. "/슈발츠


" 네 주인님. "/발레리아


알몸이 된 발레리아는 젖은 수건으로 땀을 닦은 후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지 정성스러운 체크를 받았다. 호구도 만능은 아니고, 슈발츠도 실수로 힘을 너무 준다던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멍이야 많았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 어떠냐 미샤? "/슈발츠


" 그,어떻다기보다는... 주인님, 너무 무서웠어요. "/미샤


미샤의 눈은 오드아이다. 한쪽은 청록색, 다른 한쪽은 붉은기가 강한 갈색(참고로 슈발츠가 치료해 준 쪽의 눈이 청록색이다)으로, 지금 그 이색적인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 하하하... 무예를 생업으로 삼은 녀석이 나정도에 겁을 내서야 쓰나. "/슈발츠


" 아니 뭐랄까... 발레리아 언니도 저한테는 아직 버거운데, 그 발레리아 언니가 호구 째로 무슨 장난감마냥 하늘로 막 날아 가는건... 첨봐요. "/미샤


" 지나친 겸손. 뭐 이제 슬슬 미샤도 발레리아보다는 제가 담당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니까. 이제 어딜 내놔도 주인님 체면에 흠을 내지는 않을 정도는 되요. "/세실루아


막 승마술 연습을 마치고 슈발츠 옆에 선 세실루아가 한마디 끼어들었다. 슈발츠는 그녀의 어께를 붙잡아 끌어당긴 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아잉, 저 땀냄새나요 주인님. "/세실루아


" 그것도 향기롭군. "/슈발츠


" 하앙... "/세실루아


슈발츠에게 가만히 안긴 채로 아양을 떠는 세실루아. 슈발츠는 문득 그녀의 오늘 일정이 궁금해졌다.


" 승마술 연습을 하고 난 다음은 뭐지? "/슈발츠


" 예정은 없지만 플로라 언니랑 텃밭을 돌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실루아


세실루아는 집 뒤에 포도와 딸기 등 유실수들을 심어서 가꾸고 있었는데, 가꾸는 법은 플로라에게 사사받고 있었다. 이 플로라의 수업은 전문적인 드루이드의 경지 까지는 아니라도 제법 전문적인 내용이라, 조경에 관심이 많은 다른 노예들도 종종 같이 하고 있었다.


" 그러고보니 요즘 부쩍 세실루아의 실력이 늘었어요. 다음에 주인님께서도 한번 봐주세요. "/알루시아


" 그러지. "/슈발츠


" 음, 그러면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가요? 알루시아와 주인님의 대련, 두둥~ "/두르나


두르나의 말처럼, 이제 알루시아의 차례다. 그녀는 이제 슈발츠의 공격을 받아 넘기는 법에 익숙해 졌기에 호구는 좀 가벼운 것으로 골라 입고 있었다. 발레리아 때와는 달리 슈발츠는 양손에 목검을 쥐고 나갔다. 그에 맞서는 알루시아는 특기인 검방(검+방패) 조합이다.


" 그럼 시작하지. "/슈발츠


" 네 주인님. 타핫!! "/알루시아


무거운 호구를 걸치고도 알루시아의 움직임은 대단히 빨랐다. 노예중 가장 검술이 뛰어나고 터프하다는 평가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슈발츠는 알루시아의 공격을 한쪽 검으로 받아 흘린 후 다른 손의 검을 휘둘러 알루시아를 노렸지만, 알루시아는 그 쾌속의 일격을 몸을 낮추고 방패 끝을 땅에 박아넣으며 튕겨 냈다.


" 훌륭해. "/슈발츠


" 감사합니다! "/알루시아


한마디씩 나눈 후에 다시 격돌, 얼크러졌다가 떨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눈으로 쫒아가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이뤄지는 대련에, 두르나를 제외한 무투파 노예들의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 알루시아 언니가 대단한건 알았어도... 이정도 레벨이었다니 "/세실루아


" 우리랑 한 대련은 언니에겐 오픈게임도 안되는 거였어... "/발레리아


" 우와아... "/미샤


한동안, 다른 노예들이 보는 앞에서의 알루시아와 슈발츠의 대련은 계속되었다.


.
.
.


물론 언제든 목욕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보통 슈발츠의 노에들은 낮의 일과는 마친 후에 목욕장을 찾는다. 그 시간이 다들 비슷하기 때문에 목욕장은 노예들 끼리의 사교장 역할을 하고 있기도 했다. 오랜만에 무투파 노예들의 수련을 도와 준 슈발츠는 목욕장에 일찍 들어가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 몸을 씻은 두르나가 슈발츠의 목욕을 돕고 욕조 안에 들어간 그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동안, 슈발츠가 앉아 있는 반대편에서는 샤이라가 알루데시아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른 노예들도 저마다 몸을 씻고 슈발츠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시중을 들거나 재롱을 피우거나 하는 것이다.


물론 먼저 다른 일이 필요한 노예들도 있다. 이를테면...


" 어때요 언니? "/와우킨


" 아앙... 거기, 거기 좋아... 역시 신님이야... 치유되는거 같아... "/알루시아


와우킨이 돌방석 위에 엎드린 알루시아의 몸을 마사지하자, 그녀는 낮에 슈발츠에게 신나게 얻어 터진(?) 자리의 아픔이 눈녹는듯이 사라지는 황홀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몸을 씻은 다음에도 멍을 날려 보낸 후에야, 그녀는 욕조 안으로 다이빙을 했다. 그리고 와우킨은 옆에서 마사지를 기다리고 있던 발레리아에게로 옮겨 갔다.


" 하아앙!... 최고야아아... "/발레리아


" 최근 와우킨 동생이 자주 오네요. "/칼라드네이


" 그러고 보니 내일은 와우킨의 거처가 완공되는 날이구나... "/젤로나


" 벌써 그렇게 됐느냐? "/슈발츠


" 네 주인님. 사실 공사는 끝났고, 이제 와우킨이 입주하는 것을 축하만 하면 돼요. "/젤로나


" 수고했다. 사탕을 주지. "/슈발츠


" 오오, 감사합니다! "/젤로나


[사탕] 자체야 사탕수수즙과 다른 과즙을 섞어 굳혀 만든 과자에 불과할 뿐이지만, 슈발츠가 사탕을 주면 그 노예가 언제 원할때 한번 슈발츠가 안아 주는 걸로 되어 있었다. 와우킨의 거처 공사를 담당한 것은 젤로나가 만든 고렘들이기 때문에, 그 수고를 치하한 것이다. 다른 노예들이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젤로나를 보는 것도 그때문이다.


" 으음... 나도 뭔가 제대로 된 어필을 해야... 이러다간 똘똘한 동생들에게 밀려서 거기에 거미줄을 칠지도... "


두르나의 거미줄 드립에 잠깐 목욕장 내부가 웃음바다가 된 후, 슈발츠는 두르나를 시작으로 노예들을 하나둘씩 곁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 하아앙~ 좋아용~ "


끈적한 신음성과 콧소리들. 목욕장 안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압델을 찾아보고 아바리엘 도시에서도 약간의(?) 모험을 한 후, 슈발츠는 조금 [느슨해졌다]. 한달 동안을 검은 숲의 궁성에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노예들을 돌보며(그리고 즐기며) 지낸 것이다. 덕분에 그의 부재시에 수절(?)하고 있었던 노예들도 대만족. 슈발츠 자신도 다음 모험을 위한 재충전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휴식을 가진 후의 슈발츠의 시야에 들어온 다음 목표는 고대 네서릴의 비전들이었다.


지금 대두하고 있는 신생 네서릴의 부유 도시 역시도 상당히 많은 것을 물려받았지만, 진정한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카서스나 아이올라움 같은 존재들의 유산들, 산을 잘라서 부유 도시를 만들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파괴적인 마법들을 연이어 개발해 냈던 과거의 마법적 기예의 정점을 찍은 지식들 대부분은 지금 추락한 그들의 도시들과 함게 아나우로크 사막의 모래 아래 묻혀 있다.


신생 네서릴 제국은 그것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 찾는다면 분명히 악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게 둘 수는 없었다. 슈발츠는 두르나와 알루데시아를 데리고 아나우로크 사막의 모처로 향했다. 젤로나가 와우킨의 창고에서 찾아낸 네서릴의 역사책에 따르면, 한 부유했던 하(下) 네서릴의 거주구이자, 그 거류구의 멸망 후에 지어진 지하 피난처가 있다는 곳이었다.


" 이게 모두 마법으로 만들어진 사막이란 말이지... "/슈발츠


" 끔찍하네요. 페아림들이란. "/두르나


보통의 사막엔,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찌 사는가 싶을 정도의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눈썰미가 좋고 사막에서의 삶에 대해 아는 자들의 눈에만 뜨이지만, 그런 것들은 사막 여행에서 귀중한 식량과 수원이 된다.


하지만 아나우로크 사막엔 그런것이 없다. 비록 오래 전에 이계의 괴생물체인 페아림들이 건 마법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 지역에 한정되지만, 마법적으로 생명력이 [고갈되어] 만들어진 그 거대한 모래 사막에는 그야말로 모래 뿐이며, 이런 곳에서는 생명이 없는 유령 정도나 살 수 있다. 그리고 슈발츠 일행이 도착한 곳도 바로 그런 생명력이 고갈된 지역이었다.


" 그보다 더 끔찍한 것들이 저 아래 있겠지. "


슈발츠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하나의 작은 동굴 입구가 있었다. 지상의 대부분의 동굴들은 그렇지 않지만, 저것은 분명히 언더다크로의 입구였다.


" 위험한 것과 중요한 것은 지하에 묻어라, 남이 보지 못하게. "/슈발츠


" 하지만 언더다크에 숨기는건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닌거 같네요. "/두르나


슈발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어둡고 습했다. 페아림들의 생명력을 갈취하는 저주의 힘이 미치지 않는듯, 동굴 벽을 따라 이끼들이 자생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인공의 흔적을 발견한 슈발츠는, 이곳이 자신이 찾는 옛 네서릴 시대의 유적임을 확신했다.


"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온 자들이 있네요... 열 대여섯명 정도... "/두르나


" 열일곱이다. 둘은 여자군. 바로 몆시간 전에 이곳을 지나갔어. "/슈발츠


슈발츠의 예상은 정확했다. 곧이어 발자국을 추적하다가 핏자국을 발견한 슈발츠는 두르나를 불렀다. 그녀가 함정을 찾는 동안, 그는 다른 흔적이나 매복이 없는지 주변을 좀 더 세심히 살폈다. 에테르계 까지 꿰뚫는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드물다.


철컹!...


낮은 쇳소리와 함게, 벽에서 창이 튀어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들어가야 하겠지만, 두르나의 손을 거친 망가진 함정은 창을 회수하지 못했다.


" 기계식인데 굉장히 정교하고, 고전적이네요. 드워프제는 아닌것 같아요. 이런 돌로 된 촉은 처음보네요. "/두르나


" 끝에 피가 묻어 있군. 그리고 이건 독 같아 보이는데... 적어도 한명은 함정에 걸렸어. 죽지는 않았지만... 중상이군. "/슈발츠


" 걸음이 좀 늦어졌겠지요. "/두르나


" 그걸 노리고 설치한 함정일게야. 마법 탐지에 걸리지 않는 기계식이고... 아마도 비슷한게 몆개 더 있겠지. "/슈발츠


몆걸음 더 들어간 곳에서 슈발츠는 다른 흔적을 찾아 냈다.


" 여기서 핏자국이 끊어지는군. 치료를 했어. 사제가 있나 보군. "/슈발츠


" 발걸음이 흐트러졌어요. 마법이 아니라 그냥 응급치료만 한것 같아요. "/두르나


두르나의 말이 맞았다. 두명이 긴장한 것을 보고 덩달아 긴장한 알루데시아도 조용히 슈발츠 뒤를 따르다가, 문득 어떤 냄새를 맏았다.


" 크응... 크르릉... "


치타 모드의 알루데시아가 털을 곤두세우는 것을 보면서, 슈발츠도 앞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유령이군... "/슈발츠


" 유령이라고요?... 어디에?... "/두르나


두르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에테르 계에서조차 희미한 어떤 고풍스러운 옷을 걸친 남자의 유령이 슈발츠의 눈앞의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 지독히도 오래 된, 퇴치하거나 성불시켜줄 수 없는 일종의 잔류사념 같은 것이었다. 유령이 지나가자 알루데시아의 경계도 풀렸다.


" 그냥 지나가는군. "/슈발츠


" 와이트 같은게 아니라면야... 헉! "/두르나


막 두르나의 발끝에 채인 것은 하나의 해골이었다. 통로를 막듯이 가로 누워 있는 것을 모르고 발로 건드린 것이다. 하얗게 뼈만 남은 인간의 백골 그 자체야 위협적일 리가 없지만 일단은 기분나쁘고, 해골이 일어서서 덤빌수도 있는 세상이다.


" 이제 겨우 몆시간 지난 시체야. 우리가 찾은 일행의 일원이겠지 "/슈발츠


" 맙소사, 아까 그 함정 아닌가요? "/두르나


슈발츠는 고개를 저었다. 창이 튀어나오는 함정에 발린 독은 이렇게까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었다. 바닥이 젖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잡낭에서 (알루데시아를 먹이기 위해 가져온)마늘빵 덩어리 하나를 꺼내어 조금 뜯어서 해골이 쓰러진 바닥에 던졌다.


스스슷...


벽과 바닥에서 거의 투명한 젤리 같은 것이 새어나온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순식간에 통로 전체를 채운 그것은, 슈발츠가 던진 빵 덩어리를 허공에서 붙잡아서 그대로 녹여 버렸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슈발츠는 손 끝에서 불꽃을 튀겨 보았지만, 그 젤리는 불꽃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 굉장하네요... "/두르나


" 우즈를 함정으로 쓰는군... 이대도라면 (나는 몰라도 노예들은)통과할 수가 없겠어. "/슈발츠


문득 슈발츠는 아직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샤아악...


주문을 이용해 벽과 바닥에 물이 맺히도록 한 다음, 그것을 다시 얼렸다. 그 다음 마늘빵 덩어리를 통채로 던지니 우즈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 이건 내가 먹어야겠군. "


바닥에 떨어진 마늘빵을 회수하면서 슈발츠는 웃었다.


통로는 구불구불하면서도 점점 깊은 지하로 이어졌다. 그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슈발츠는 이곳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든 요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주지라면 이렇게까지 엄중한(그리고 무차별적인) 함정으로 방어되지 않는다. 그리고 갈림길이 있어야 한다. 지금 자신이 따라가고 있는 이 일련의 통로들은, 침입자의 발을 묶고 소모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것이었다. 오래전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매복은 없었다. 그 흔한(?) 가고일이나 고렘 한번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함정의 난이도는 점점 올라갔다(그중 몆개는 정말 위험했다). 그럭저럭 함정을 십여개나 거치는 동안, 먼저 들어간 일행의 숫자는 하나씩 줄어들어 마침내 다섯이 되었다.


" 지상이 이제 제법 멀겠군... "/슈발츠


" 본격적인 언더다크까지는 아직 멀겠지만... 제법 깊이 들어왔네요. "/두르나


이끼의 종류도 달라졌다. 언더다크 특산의 희미한 빛을 발하는 발광이끼가 곳곳에 자라나 통로를 비추고 있었다.


" 여기부터는 방어장치가 없군... "


눈앞에 모퉁이의 일부가 부서져 뚫린 석제의 문이 있었다. 양쪽으로 밀어 열게 되어 있는 그것은 슈발츠쯤 되는 완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열 수 없는 무게였다. 기계 장치나 고렘 같은 것으로 작동시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슈발츠는 고렘 구경을 한적이 없다.


문을 여는 장치같은게 있을라나?...


슈발츠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두르나와 알루데시아가 문의 부서진 구멍으로 들어가 안을 살폈다. 그리고 조금 지나고 나서 두르나의 얼굴이 구멍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주인님, 문을 여는 장치를 찾았어요 안에서만 작동시키도록 되어 있는거 같은데, 부서져 있네요. "/두르나


" 최근에 부순건가? "/슈발츠


두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닌거 같아요. "


슈발츠는 몸을 줄이고 문의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두르나가 찾은 기계 장치는 오래 전에 부서져 있었다.


" 이건 확실히 드워프들의 솜씨 같군. "


어둠을 뚫고 볼 수 없는 종족이였다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한없는 어둠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르나도 슈발츠도, 그리고 알루데시아도 모두 어둠을 꿰뚫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까마득한 지하 절벽을 사이에 두고 수십개의 돌다리로 연결된, 거대한 지하 도시의 입구의 일부였다.


" 대단하네요... 드워프들의 도시일까요?... "/두르나


" 아아, 아마도... 지금까지 본것중 가장 거대한 규모군. "/슈발츠


돌을 깎아낸 솜씨나 기둥의 양식, 그리고 그 웅장한 규모로 보건데 확실히 슈발츠의 추측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또한 슈발츠는 양각된 조각 위로 덧새겨진 정체불명의 문자를 발견했다. 마법적인 해독을 통해 슈발츠는 그것이 이미 오래 전에 그 효력을 상실한 일종의 [룬]이라는 사실과, 해악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어던 종족의 문자인지 알수는 없었다.


" 이런 곳에 조개가?... "


두르나가 바위조개를 발견한 것은 다리를 건너서 있던 부서진 문을 밀어 열었을 때 였다. 아니 처음엔 바위조개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화석화된 조개였다.


" 이런건 처음 보는군. "/슈발츠


" 저도요... 무언가의 마법때문에 이렇게 된걸까요? "/두르나


슈발츠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그냥 화석이다. 헌데 어떻게 조개가 이런곳에 화석이 되어 있지?... "


나중에 무언가 단서가 될까 싶어 조개를 잡낭의 옆주머니에 건사한 슈발츠는, 자신들이 쫒던 흔적이 점점 가까워진 것을 깨달았다. 그는 조용히 텔레파시와 수화로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에게 적당한 매복지역을 찾도록 지시를 내렸다. 두명이 각기 반대방향의 통로로 들어간 후, 그는 자기자신에게 투명화의 마법을 걸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 ... 이런 곳에서 막히는 것인가!... "


흔적이 점점 가까와 오는 도중에, 약간 저음인데도 카랑카랑한 느낌을 주는 노성이 울렸다. 목소리만으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노인도 아이도 아닌 이상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 직후에, 슈발츠는 빛을 찾았다.


그것은 이상한 일행이었다. 창백한 피부의 키 큰 여자 한명과 금발의 10대 소녀로 보이는 여자 둘이 목과 손이 차꼬와 사슬로 속박된 채 어두운 피부를 가진 창백한 남자 세명의 손에 끌려다니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시커먼 로브를 입고 같은 색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자가 리더 같았는데,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그였다. 빛은 그가 들고 있는 지팡이 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총사, 더이상 앞세울 병사도 없습니다. "


한손에는 두 여자의 목에 연결된 사슬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거대한 투핸드 소드를 들고 있는 덩치가 큰 남자의 말에, 다시 총사라 불린 로브 차림의 남자가 짜증을 터트렸다.


" 염병할 미스트라년 같으니!... [그 마법]만 쓸 수 있었더라도!... "


또 다른 한명의 전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을 피하며, 슈발츠는 몸을 낮추고 그들에게 되도록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슈발츠는 곧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어두운 기운을 볼 수 있었다.


이것들 쉐이드로군...


아마도 신생 네서릴의 고위 인사인 모양이었다. 슈발츠보다 한발 앞서 왔던 것이다.


슈발츠는 앞서 신생 네서릴의 네서릴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샤르 여신과 싸워 이겨서, 그 여신에게 전 우주적인 창피를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슈발츠에게 어떤 식으로도 보복당하는 것을 금지당해, 지금쯤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슈발츠가 또 다른 네서릴의 고위 인사를 쳐죽이면, 여신의 복장을 더더욱 긁어 놓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아직은 여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슈발츠로써는 그 이상 여신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네서릴의 고대 비전을 파헤치려는 중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며 고민하는 동안, 두르나와 알루데시아가 매복 위치에 도착했다는 사인을 보내 왔다. 그리고 포로중 금발의 소녀가 한마디 하는 것이 들렸다.


" 어떤 고대의 비밀은 그대로 묻혀 있는 것이 더 나아요 하드룬(Hadrhune; 중립 악 남성 셰이드 위저드 10/새도우 어댑트 10).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를 풀어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스스로의 몸에 닥칠 파멸을 피할 수 있을 거에요. "/금발 소녀


" 조용히 좀 하시오 존경하는 [선배]양반, 자꾸 그렇게 쫑알거리다간 내가 아니라 당신 목줄을 쥐고 있는 레보쓰(Leevoth)가 당신 목을 가지고 공기놀이를 할지도 모르니. "/하드룬


하드룬은 하나의 거대한 금속제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문은 온통 가는 선으로 그어 만든 것 같은 부조 그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을 조작해서 여는 것이 분명했다.


저건 일리시드 문자 아닌가?...


슈발츠가 본 그대로, 그림의 부조는 조금 [문법]이 다른 일리시드들의 문자(Qualith)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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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두 종족은 몆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리시드(마인드 플라이어)와 아볼레스.


두 종족 모두 물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일리시드는 일종의 [양서류]이며, 아볼레스는 노골적으로 [어류]입니다. 또한 두 종족 다 그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정신적인 능력으로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또한, 두 종족 다 지성이 있는 먹이를 즐기며, 그 육체의 일부로부터 [기억]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종족 모두 자신들의 [시간]을 버리고 포렐의 시간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저는, 일리시드와 아볼레스를, 인간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형상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능력, 그중에서도 특히 [지능]을 중시하고 육체적인 능력을 경시하는 것부터가 이미 인간 사회에서 [미래적]인 트랜드이며, 스스로에 대한 과대망상이라고까지 여길 수 있을 만한 지나친 우월감과 그에 기반한 배타적이고 약탈적인 그들의 [문명]은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의 형태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고갈시키고 파괴할 것이 분명한 소비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성장] 이론을 되는대로 뇌까리고 있는 현대의 지성들과, 먼 미래의, 별들이 꺼져 [영원한 어둠에 푹 젖은]세계를 알고 있음에도 전혀 후회할 줄 모르고 그 시대의 출현을 앞당기기 위해 태양을 꺼트리려는 일리시드들은 닮은 것 이상입니다. 아볼레스들 역시 자신들의 세계를 스스로 파괴했음에도,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종족이라는 점에서 일리시드들과 거의 완전히 차이가 없지요.


그리고 그럼에도, 그들 개체와 집단은 강력하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게임의 설정에 불과할 뿐이지만, D&D의 포가튼 랠름을 돌아보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패러디하고 있어 가끔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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