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9편
<18>
" 정청이라... "
주변에 펼쳐진 지옥도급의 피바다에도 불구하고, 아침 햇살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는 유리강의 신전은 여전히 아름다운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슈발츠는 서스락들이 숨어 있는 요새 그림자쪽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태양이 떠올랐기 때문에 더이상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알루데시아를 붙여두었다. 그들이 지목해준 클레릭의 위치는 정청의 지하 감옥이었다. 당연하지만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이고, 앞에는 베스티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뚫고 가야 했다.
" 갑시다. "
압델의 말에 슈발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를 선두로 하여 일행은 정청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혼을 잃은 베스티지들은 우격다짐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편이어서 훈련된 전사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슈발츠의 경계심은 더 커졌다.
이미 그들의 침입은 알려졌을 것이다. 헌데도 일의 원흉이라는 [클레릭]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이 보이지 않는 것만큼 불리한 상황은 없다. 게다가 상대는 이런 일(도시 하나를 통채로 뒤엎는)을 벌일 정도의 실력자다. 그런 실력자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었다.
마침내 정청 지하 감옥의 문을 열었을 때, 일행의 눈에 들어온 그곳은 무언가 다른 목적으로 개조된 거대한 지하 광장이 되어 있었다.
" 마침내 왔군. "
입구와 반대편 끝에 한 아바리엘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멀쩡한 아바리엘 생존자였다. 그리고 일행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다.
" 아퀼란? "/압델
" 그래, 한때 그런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지. "/아퀼란
" 여기서 뭐하는 거요? 설마 당신이 이런 재앙을 초래한건 아니겟지? "/압델
" 글쎄...재앙이 아니라 [정화]라면, 내가 한 짓이 맞지. "/아퀼란
" 내 눈에는 심각하게 미친걸로 보이는데. "/슈발츠
" 갈!... 너희들 눈에는 이 이상이 보이지 않느냐!... 모든 아바리엘들이 하나의 의지 아래,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의 통일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 모습을!... 분열주의자들로 가득한 아바리엘 사회를 정화한 것은 바로 이 나야!... "
슈발츠는 두르나와 마주보았다. 두르나는 아퀼란을 지목하며, 머리옆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려 보였다. 그리고 슈발츠는 동의한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 너희를 시작으로 분리주의자들, 배신자들은 곧 신의 이름으로 단죄될 것이다. "/아퀼란
" 날개 달린 어머니 말인가? "/슈발츠
" 아니, 그녀는 너무 물러!... 내가 말하는 것은 새로운 신이다! 바로 이 나, 날개 달린 아버지 아퀼란의 이름이 셀다린 뿐 아니라 모든 만신전 사이에 우뚝 설것이야!... "/아퀼란
아퀼란의 후광이 일그러진다 싶더니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가 손에 든 지팡이로 땅바닥을 한번 크게 굴리자, 일행의 사방을 메우며 엄청난 숫자의 베스티지들이 나타났다. 슈발츠는 즉시 검은 칼을 꺼내어 들고 가장 먼저 그 무리 사이에 끼어들어 베어넘기기 시작했다. 압델과 에어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도 즉시 방어에 동참했다.
" 사도에 빠졌군, 아퀼란이여. "/압델
" 천만에! 날개 달린 사람도 아닌 너같은 불순분자는 이해하지 못해!... "/아퀼란
아퀼란이 든 지팡이로부터 압델을 향해 붉은 광선이 발사되엇다.
" 첫 천벌은 너다! "/아퀼란
" 흥! "/에어리
에어리가 신성한 주문을 일으켜 압델의 주변에 결계를 쳤고, 날아오던 붉은 광선이 그것에 맞아 소멸되었다.
" 당신은 내 남편을 해치지 못해, 더이상 어느 누구도! "/에어리
에어리는 아퀼란을 지목하며 신성어를 쏟아 냈다. 눈부신 광선 무리가 허공에서 맺히더니 아퀼란에게로 날아갔다.
" 가소로운!... "
아퀼란의 일갈에, 그의 몸 주변에 펼쳐진 결계가 한층 더 붉은 기운을 띄더니 날아온 빛 덩어리들을 소멸시켰다.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주문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퀼란의 주문과 에어리의 주문은 거의 막상막하였다. 그리고 아퀼란의 지팡이로부터의 공격은, 압델이 자신의 지팡이로 맞받았다. 마법을 사용할수는 없어도 마법이 저장된 물품의 능력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의 모험으로 수많은 마법 아이템들을 수집한 압델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압델 부부의 이인삼각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유리한 위치(이곳은 아퀼란의 본거지였으니)를 점하고 있는 아퀼란의 노도같은 마법 공세에조차 훌륭하게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숫적으로 열세고, 주문 전투의 균형이 언제 깨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슈발츠는 아퀼란을 직접 상대하기로 했다.
" 모두 엎드려! "
슈발츠의 외침에는 용 고유의 공포를 자아내는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에 압델 부부까지 놀라서 엎드리는 동안, 슈발츠는 자신의 검은 칼 외에 하얀 칼도 뽑아서 최대한 늘려서 실내를 한바탕 휩쓸었다. 검은 빛과 하얀 빛이 방을 가득 채운다고 여겨진 다음 순간, 일행을 포위했던 베스티지 무리들의 머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승부를 지어야 한다. 슈발츠는 쓰러지는 베스티지들의 어께를 딛고 뛰어올라, 거의 날아서 아퀼란에게로 달려들었다.
카가가강!!!
슈발츠의 검은 칼과 하얀 칼에 지팡이를 휘둘러 맞선 아퀼란. 그의 지팡이를 둘러싼 역장과 슈발츠의 칼들이 부딛친 부분에서 성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퀼란은 슈발츠를 지목한 후 지팡이를 날렸다. 지팡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슈발츠에게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동시에 바닥으로부터 뼈로 이뤄진 거대한 몬스터인 본가드 둘이 떠올라, 지팡이와 합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일행이 들어온 입구로부터는 베스티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에어리 부부와 아퀼란의 주문 전투가 재개되었고, 아퀼란의 지팡이는 그의 소환수와 함께 슈발츠와 맞서는 형태로 2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보통이라면 슈발츠에게는 본가드 따위는 상대도 안되고, 날아다니는 지팡이 따위도 쉽게 쳐 날릴 것이었다. 하지만 슈발츠의 칼날을 맞받는 지팡이에는 그조차 허투루 하기 힘든 힘이 담겨 있었고, 공세 자체도 비범했다. 굳이 비교하라면 일찌기 지옥에서 한번 맞서 보았던 마왕 그라즈트의 [파도치는 검]과 몹시 유사한 느낌이었다. 그 검의 검날이 마치 살아잇는 별개의 생물같이 방어자의 빈틈을 노리는 것 처럼, 그의 눈앞의 허공을 빙빙 돌면서 그의 공세를 받아 넘기고 있는 이 지팡이도 쉴새없이 모습을 바꾸며 슈발츠의 빈틈을 노렸다. 게다가 유효적절한 본가드의 조력과 방어까지 추가되어 그의 공세를 아주 유효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캉!... 카캉!... 챙!...
빛의 칼과 지팡이들이 현란한 불꽃쇼를 연출하는 동안, 아퀼란의 손발은 점점 어지러워졌다. 슈발츠가 그의 지팡이를 담당한 덕분에, 에어리와 압델 두사람의 공격을 번갈아 가며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두사람은 보통 실력자가 아닌데다, 오랫동안 함게 살아온 금슬 좋은 부부다. 손발이 척척 맞는 두명의 합격은 신의 대리인을 자칭했던 아퀼란마저 수세에 몰리게 하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데....
상황은 유리하게 바뀌었지만, 슈발츠는 그래도 뭔가 뒤가 구린 느낌을 계속 받고 있었다. 마치 아퀼란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질질 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내려오는동안 그리 강력한 저항을 받지도 않았던 사실도 수상했다. 마치 여기까지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은 상황이 아닌가. 그리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아바리엘들에게 베스티지를 빙의시킨 마법도 여기서 행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최초로 무언가를 성공하고 나면, 그 다음 똑같은 일을 하기는 한결 수월하다.
그리고 곧 해가 진다.
슈발츠의 머릿속에서 스치는 불길한 예감이 점점 구체적이 되고 있었다. 그는 순간이롣으로 탈출해 볼까 생각해 봤지만, 눈 독수리의 안식처 자체에 걸린 대결계의 힘이 그의 능력을 억누르고 있어 두르나 정도면 모를까 압델과 에어리 등 모두를 데리고 이동할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선책이다.
" 차앗! "
터엉!!...
슈발츠는 지팡이에 강타를 먹여 튕겨낸 다음, 그래도 뒤로 도약해 한단 아래 있는 마법진 위에 내렸다. 지팡이와 본가드가 득달같이 달라붙어오는 그 순간의 틈에, 그는 빛의 칼들을 땅바닥에 박아넣어 돌 바닥을 뜯어내어 마법진을 찢었다.
" 안돼!!!... "
아퀼란이 비명을 질렀다. 곧바로 엄청난 차원적인 폭발이 일어나서 슈발츠와 아퀼란, 압델 일행들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상키고, 눈 독수리의 안식처 바깥까지 퍼지는 강렬한 차원적인 파동을 일으켰다. 그 차원적 파동은 도시 내부에 있던 베스티지 전체를 두들겨 땅바닥에 쓰러트렸다.
.
.
.
다시 슈발츠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사방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직의 벽과, 주면을 온통 둘러싼 어둑한 보라빛 안개였다. 주변엔 같이 온 일행들이 쓰러져 있었다. 일단 주변을 돌아보고 위험이 없는지를 조사한 후, 그는 두르나를 시작으로 나머지 일행 모두를 깨웠다.
" 으으으... "
" 아아아... "
어디선가 괴로워하는 비명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슈발츠의 귀에[작게]들릴 정도면 다른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 여기는...낮이 익군. "/압델
" 그러네요. "/에어리
압델과 에어리는 전에도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레니쿠스와 싸웠을 때, 지옥 밑바닥에서 영혼을 걸고 처절한 최후의 전투를 치루었던 곳의 느낌과 매우 유사하다고.
" 이런 곳에 출구가 있네요. "
두르나가 찾은 것은 작은 [눈]의 부조가 그 위를 장식하고 있을 뿐인, 얼핏보면 벽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문이었다.달리 출구가 없었기에, 슈발츠는 그것을 밀어 열었다.
그그그그그...
돌이 맞부닥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문이 뒤로 열리고, 일행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계단이었다. 그것도 밤하늘같이 공허한 보라색의 공간 위에 걸쳐져 있는 하나의 계단. 슈발츠는 이것에서 상당히 낮익은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이런 느낌을 받았는가를 곰곰히 떠올리던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은, 신비한 느낌을 주는 별빛 사이에 떠 있던 하나의 광활한 차원이던 드웨머하트의 하늘, 그 보라색이었다.
" 저게 뭐지요?... "
일행 중 두르나가 가장 먼져 본 그것은, 슈발츠가 막 딛기 시작한 계단 아래 펼쳐진 초월적인 광경이었다. 무엇인가 신성한 힘을 느끼게 하는 빛의 기둥이 계단 끝에 위치한 하나의 원형 광장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것의 주변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기운이 감싸고 도는 모양새였다.
" 마치 바알의 왕좌 같군... "/압델
압델과 에어리는 전에도 비슷한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대충 짐작했다.
" 약간의 방해가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 마침내... 여기서 네놈들의 끝을 보게 되겠군. "
계단의 끝,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약한 청색을 띄는 거대한 하얀 빛기둥을 배경으로 아퀼란이 서 있었다. 그만큼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 빛기둥을 감싸고 도는 검은 영기가 보다 분명하게 보였다. 슈발츠는 눈앞의 빛기둥이 위브이며, 그것을 감싸는 검은 영기도 일종의 유사 위브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 아퀼란이여, 그림자 위브를 다시 만들려는 것인가? "/압델
" 하하 그림자 위브 같은 조악한 가짜가 아니야 이것은!... 나는 위브 전체를 지배할 것이다! 이것은 새 세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나 아퀼란이 그 새로운 세상의 절대적인 신격으로 등극하게될 축포다! "/아퀼란
우우우우우...
아퀼란의 외침에 호응하듯이, 검은 영기 흐름이 일렁였다. 그것은 엄청난 숫자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비로소 슈발츠는 베스티지들과 그들에게 빙의된 아바리엘들의 운명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상도 잠시, 영기로부터 끈적이는 덩어리들이 쏘아져 나와 아퀼란을 감싸는 듯한 위치를 잡더니, 그대로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 이제 곧, 신성으로의 길은 완성된다. 신위에 앉아서 네놈들이 고대의 영웅들에 맞서 얼마나 훌륭하게 싸울지 지켜봐 주겠다. "/아퀼란
"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될지 두고 보지. "/슈발츠
모두 전사로 보이는 여섯의 인간과 엘프의 검은 그림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슈발츠는 눈대중으로 그중 제일 낫다 싶은 놈 앞을 가로막고 섰으며, 다른 일행들도 저마다 상대를 골라 잡았다.
" 시작해볼까? "
카가강!!...
슈발츠의 검은 칼날에 맞선 검은 바스타드 검의 날에서 불꽂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칼날을 붙이고 힘 겨루기를 하는 틈에, 슈발츠는 머리로 그림자를 들이받았다. 비틀거리며 몆걸음 물러서던 그 그림자가 휘두르는 검을 몸을 살짝 돌려 피한 후, 다시 왼손으로 하얀 칼을 날려 그림자의 허리를 깊숙히 베어 내고, 비틀거리는 그림자의 허벅지를 검은 칼로 찔러서 완전히 주저앉힌 후, 두 칼을 동시에 휘둘러 그림자의 모가지를 쳐서 날렸다.
" 고대의 영웅이라길래 기대했지만, 별것 아니군. "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영웅의 그림자를 쓰러트린 것은 오직 슈발츠 만이었다. 다들 저마다 상대를 맞아 일대 다수로 싸우면서도 호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검은 영기가 그림자를 쏘아 냈고, 아퀼란이 자신의 지팡이를 슈발츠를 향해 던진 것으로 3라운드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슈발츠는 [발동이 걸려]있었다. 그의 전신이 신적인 힘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발동이 걸린 슈발츠와 맞설 만한 것은 고위 마왕이나 신적인 존재 정도다. 고대의 영웅 중 누구이든 상관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적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빠르게 죽음을 선사할 뿐. 날아오는 지팡이에게 강타를 먹여 땅바닥에 처박은 후, 달려드는 영웅의 그림자들을 방금보다 더 어이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쓰러트린 슈발츠는 다시 떠오르려던 아퀼란의 지팡이를 발로 밟았다.
부드득... 우지끈!...
어마어마한 힘으로 밟아 누르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무리도 아니다. 마법적으로 강화한 물품이라지만 원래 재질은 나무일 뿐이다. 슈발츠의 [결계 따위는 무시하는]손발에 걸리면, 특별히 강한 힘으로 강화된 아티팩트가 아닌 이상 마법 아이템 이라도 그대로 박살나고 만다. 중간 어림으로부터 금이 간 그것은 발버둥질 같은 움직임을 보였지만, 슈발츠의 발에는 자비가 없었다.
[끄아악!]...
머릿속으로 강력한 텔레파시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확실히 지팡이 안에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슈발츠는 자신의 주변으로 결계를 치려 했지만, 아퀼란의 마법 지팡이가 부서지면서 터져 나온 에너지의 충격파가 슈발츠를 감쌌다.
" 헛... "
그것은 얼핏 시간이 멈춘 듯한 상황이엇다. 온통 회색이 되어 멈춘 세계 안에서, 슈발츠 혼자만이 의식을 가지고 터져나오는 파동 안에 떠 있었다. 부서진 지팡이로부터 빠져 나오는 붉은 영기는 악마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슈발츠는 그 실루엣이 낮이 익었다. 박쥐 날개와 불꽃 채찍과 검. 어비스의 가장 강력한 고위 악마인 발러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정보가 빠르게 슈발츠의 머릿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배신의 군주 웬도나이는 롤스의 챔피언으로 더 잘 알려진 고위 악마(발러)다. 다른 발러와 달리 웬도나이는 음모에 탐닉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한가지 특기로 그 악마를 다른 악마와 구분할 수 있다. 바로 무기나 도구에 빙의되는 능력이다. 아퀼란의 지팡이에 깃들어, 신실한 에어드리 펜야의 종의 마음에 힘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은 것은 웬도나이였다. 마침 아바리엘 사회는 격렬한 내분 중이었기에, [질서의 회복]이라는 안성맞춤의 대의명분까지 있었다.
베스티지의 존재를 소개하고, 대단위의 마법진 주문으로 영혼을 속박하는 방법을 아퀼란에게 가르친 것도 웬도나이였다. 아바리엘의 오랜 적이던 화이트 드래곤의 영혼조차 갈취하고 속박할 수 있는 힘에 취한 아퀼란은, 웬도나이의 설득에 따라 새로운 신이 되기 위한 음모를 기획했다. 정청 지하에 그린 거대한 마법진을 통해 한순간에 도시 전체의 아바리엘들과 베스티지들의 영혼을 바꿔치고, 곧이어 지옥의 사술로 그들의 영혼까지 속박해 끔찍한 괴물로 바꾼 것도 아퀼란이었다. 서스락 등 일부 베스티지들을 일부러 탈출시켜 보다 더 강하고 용감한 영혼을 끌어들인 것도 계획 안에 포함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은 슈발츠이고 압델이었다. 막 마법진이 발동하려는 찰나에 슈발츠가 마법진을 부수어 첫번째 실패가 발생했고, 압델의 신적인 혈통은 차원의 틈새로 사라질 그 일행들을 그가 예전에 가졌던 신적인 권좌의 흔적(작은 포켓 차원)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권좌에서, 웬도나이의 조언으로 아퀼란이 준비한 위브 변환 장치와 연결되어 일행이 다시 아퀼란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발츠의 전투 능력은 그들의 마지막 음모까지 박살냈다. 웬도나이가 빙의해 있던 아퀼란의 지팡이가 부서짐으로써 그 악마와 아퀼란과의 연결점이 끊어진 것이다.
아퀼란의 지팡이가 파괴되는 순간의 짧은 시간동안 웬도나이가 빙의된 그 지팡이와 연결되었던 슈발츠는, 지팡이가 이끌고 있던 검은 영기와도 연결되었다. 그것은 웬도나이의 사악한 마력으로 이뤄진 [탐욕]의 결정체로, 그 안에 강제로 끌려들어간 수많은 영혼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와 함께 슈발츠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며, 그의 정신과 영혼을 좀먹으러 들었다.
보통의 다른 필멸자들이었다면 그대로 영혼이 검은 영기에 빨려들어간 후 검은 영기 자체에 빙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슈발츠의 [영혼]은 위브와 연동되는 특별한 것이다. 아직 위브에조차 제대로 침범하지 못한 상태에서 슈발츠의 영혼에 빙의되려는 시도를 한 것은 검은 영기에는 안좋은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위브와 접촉한 것 처럼 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후, 그것의 능력 중 일부와 웬도나이가 지팡이에 깃들기 위해 사용한 힘의 대부분이 슈발츠의 영혼에 빨려든 것이다. 그것은 그 악마가 예상했던 결과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으며, 최종적으로 그의 음모가 박살난 순간이었다.
모든 안배와 모든 농간질이 무산된 직후에, 지팡이에 깃들어 있던 웬도나이는 마지막으로 탈출을 선택했다.
쉬이익!...
[말도 안되는... 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서... ]
뒤로 날아가 엉덩방아를 찧은 슈발츠가 일어나는 동안, 부서지는 지팡이로부터 붉은 색의 영기가 빠르게 빠져 날아나갔다. 웬도나이의 신음같은 텔레파시가 마지막으로 흐릿하게 들렸다.
" 크아아아!!!... "
자신의 지팡이가 부러지자 아퀼란의 상태가 급격히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위브를 감싸고 돌던 검은 영기들도 급격하게 흐트려졌다. 뒷배를 봐주고 힘을 보충해 주던 웬도나이와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보통의 아바리엘로 돌아갔던 것이다. 아니 보통의 상태가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신성한 능력까지 모두 상실한 무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 약속...약속하지 않았는가?!... 내가 신이 되게 도와주겠다고!... "
위브와의 연결, 그리고 신적인 힘이 넘치던 아퀼란의 전신에서 급격히 힘이 빠져 나가며, 그는 마치 노인처럼 쭈그러들었다. 아퀼란은 도움을 요청하듯이 위브 기둥에 손을 뻗었지만, 그것에 손이 닿자 마자 손이 증발해 버렸다.
" 끄아악!... "
한쪽 손이 사라진 채로 비틀거리며 몆걸음을 물러서던 아퀼란이 엉덩방아를 찧는 동안, 압델 등과 맞서던 그림자 영웅들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우우오오오....
그리고 검은 영기가 분명하게 진동하면서 [끓어올랐]다. 그 거품으로부터 아바리엘들의 영혼들이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고, 베스티지들도 하나둘씩 해방되어 위브 기둥 아래 모이기 시작했다.
"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우리들을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파멸에서 구해낸 영웅입니다. "
슈발츠의 눈앞에 검은 로브를 입은 거구의 인간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보는 자였지만 어째 인상이 낮익었다.
" 제가 바로 서스락입니다. 당신이 웬도나이를 쫒아낸 덕에 우리는 아바리엘의 몸으로부터 풀려나 다시 자유로워졌습니다. "
베스티지들은 각양 각색의 종족과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전사도 있고 마법사로 보이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클레릭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그점을 이상해 하는것을 알아차렸는지, 서스락은 고개를 숙였다.
" 우리는 신들에게 죄를 지은 죄인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심판의 도시로 가면 그 도시를 둘러 싼 불신자의 벽의 재료가 되는 형벌이 기다릴 뿐이겠지요. "
이어서 서스락은 슈발츠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에게 웬도나이가 아퀼란을 홀린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일행이 딛고 있던 바닥이 분명하게 진동하기 시작하고, 위브를 둘러싸던 검은 영기가 끓어오르는 현상이 심해졌다. 서스락은 그 현상을 하번 보고나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저것은 위브를 영원히 타락시켜 세상을 파괴하기 위한, 지옥의 마법입니다. 검은 영기는 위브가 완전히 오염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
베스티지들이 이번에는 자의로 저 영기와 합쳐져, 검은 영기와 위브를 완전히 분리해 내어 소멸시킬 작정이라고 했다.
" 다만 이를 위해서는 위브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가진 자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그 [인도자]는 생명력을 과도하게 소모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필요한 지식은 있지만, 살아있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분의 자원자가 제가 제공하는 지식을 받아들여 저 검은 영기를 인도해 소멸시키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압델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 내가 하겠소. "/압델
" 여보! "/에어리
압델은 에어리를 돌아보고 그녀를 다정하게 포옹했다.
"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는 나요.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가장 적임자지. 그리고 이대로 가면 세상이 파멸할거요. 당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일은 내가 해야 겠소. "/압델
" 하...하지만... 그 지옥같은 아수라장을 탈출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당신이란 사람은... "/에어리
에어리가 서럽게 우는 동안, 압델은 그녀를 두르나에게 맏겼다. 그리고 슈발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녀를 잘 부탁하겠소. "/압델
" 최선을 다해 그녀의 안전을 지키겠소. "/슈발츠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압델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 인도자 역할은 내가 하겠소. "/압델
" 진심으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겠소. 압델이여. 지금까지 숨겨왔지만, 내 본명은 카서스(karsus)라고 하오. "/카서스
" 카서스!... 설마 당신이 그 네서릴의 위대한 마법사?... "/압델
자기를 알아보는 압델을 향해, 카서스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 자기가 저지르려는 짓이 어떤 행위인지 관심도 없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멍청이였을 뿐이오. "
놀라는 압델 앞에서, 이제 카서스라고 본명을 밝힌 베스티지는 두 손을 내밀어 압델의 손을 잡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손이 닿자 마자, 그의 신체가 하얀 빛을 내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것과 동시에, 그 뒤에 서 있던 베스티지들이 하나둘씩 허공에 떠서, 검은 영기 안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져갔다.
" 오... 오오오... "
압델의 눈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환한 빛이 났다. 그리고 그 빛이 잦아들었을 때, 압델의 눈빛은 한층 더 지혜로운 빛으로,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듯이, 바닥에 쓰러져서 버르적거리는 아퀼란을 지나쳐 위브의 빛기둥 앞으로 가서 섰다.
" Undor... Oxaleum... Trbitus... "
그것은 일종의 운율을 가지고 있는 긴 장문의 서서시 같은 것이었다. 슈발츠나 다른 모두는 몰랐지만, 고대 네서릴 어로 된 그것은 카서스가 개발한, 9레벨을 넘어서는 궁극의 마법들이 가지는 서사적인 영창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인 중(重)마법에 사용하는 주문이었다. 카서스는 이와 같은 중마법 중 하나인 [카서스의 아바타(Karsus "s Avatar)]주문으로 1대 마법의 여신의 신성을 강탈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마법은 결과적으로 카서스 자신과 그의 조국의 파멸을 불러왔다. 필멸자에 불과한 그의 몸에 유입된 신성력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의 몸은 폭주하는 신성력을 견디지 못하고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끝에 돌이 되었다. 그 다음 통제를 벗어난 위브가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법의 여신이 위브와 함께 스스로를 희생시켰다. 위브는 사라졌고, 위브 마법으로 지탱되던 네서릴의 공중 도시들 거의 전부가 땅에 떨어져 깨어졌다.
다시 탄생한 2대 마법의 여신은, 새로운 위브를 창조한 후에 필멸자들의 고위 마법에 대한 접근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3대 마법의 여신이었던 미스트라 역시도 그녀의 정책을 계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도 죽고 없다.
무척 아이러니한 운명이지만, 카서스로부터 촉발된 필멸자의 위브와의 (일부)단절은, 다시 카서스로 귀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수천년동안 후회해 왔던 과거의 잘못을 속죄할 기회를 잡아, 압델에게 그의 모든 지식을 제공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브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영기가 압델의 주문과 손짓에 따라 인도되어 한곳으로 모여 갔고,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구가 된 다음, 천천히 아지랑이처럼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 구체가 거의 사라질 무렵, 바닥에서 버르적거리고 있던 아퀼란이 발작적으로 일어나 압델의 등 뒤로 달려갓다.
" 안돼!!... 그것은 내것이야!... "
누구보다 먼저 슈발츠가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으로 대처했다. 그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하얀 빛의 칼]이, 달려가던 아퀼란의 무릎 아래를 절단해버렸던 것이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아퀼란의 손에서 단검이 쨍그랑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달려간 두르나가 그 단검을 발로 차서 멀리 날려보냈다.
" 끄아악!... "
한 손은 불타고, 두 다리는 잘렸다. 남은 한 손으로 위브 쪽으로 기어가려는 아퀼란의 움직임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영기가 다 사라지면서, 압델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 여보!!... "
에어리가 달려나가 쓰러지는 압델을 끌어안았다. 그의 머리는 하얗게 새어 있었다.
" 이건 불공평해!... 그렇게 고생해서 지옥의 밑바닥을 헤치고 살아남아 왔는데!... 이제 겨우 사람다운 삶을, 행복의 맛만 살짝 본 사람인데!... "
에어리가 대성통곡을 하는 동안, 압델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박였다. 손을 들어 에어리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졸린다는 듯이 압델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본 에어리가 비명을 질렀다.
" 아아악!...안돼에에에!!!... "
슈발츠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시슈발을 포함한 아바리엘 전사들조차 비탄에 빠졌고, 두르나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갑자기 허공 한가운데서 거대한 호박색의 차원문이 열렸던 것이다.
슈발츠에게, 눈앞에서 열리는 호박색의 차원문은 낮이 익었다. 그리고 붉은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난 거대한 체구의 솔라도 상당히 낮이 익었다. 그녀(분명한 여성형이었으니)는 슈발츠쪽을 향해 목례를 해 보이고, 하늘에 둥둥 뜬 그대로 (난데없는 출현에)벙쩌있는 슈발츠 일행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 나는 위브를 구하신 분의 위대한 업적에 맞는 예우를 하기 위해, 위대하며 절대적이신 분께서 보내신 전령입니다. "
그제사 눈물젖은 얼굴로 올려다본 에어리도 벙쪘다.
" 어째...낮이 익네요 당신. "/에어리
" 기분탓입니다. "/솔라
에어리의 질문에 솔라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부정했다. 하지만 슈발츠는 분명히 이 솔라가 [그] 솔라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슈발츠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와 아랑곳없이 솔라의 선언이 이어졌다.
" 압델 아드리안은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현명함과 자기희생으로 세상을 구했습니다. 또한 신과 인간들 중 가장 위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바, 그 위대한 희생과 업적을 기려 새로이 위브의 관리자로써 그 이름을 신들 사이에 세우고자 하니, 이번에는 이 결정을 반려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십니다. "
" 하지만 나의 압델은... "/에어리
" 어쩐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걸, 당신 품에 이렇게 안겨 보는것도 오랜만인듯 하고. "/압델
" 에에?... "/에어리
일어난 압델은 백발은 그대로 였지만, 황금색 광채에 싸여 있었다. 에어리를 부드러운 눈길로 보며 손을 맞잡아준 후, 그는 솔라 쪽을 바라보았다.
" 오랜만이구려. "/압델
" 초면이에요. 기분탓일겁니다. "/솔라
" 뭐 그건 아무래도 좋지, 그나저나 이번에도 내가 필멸자로 남고 싶다고 하면 그분께서는 뭐라고 하실 작정이신지 아시오? "/압델
" 그대로 죽게 내버려두실겁니다. "/솔라
에어리는 파랗게 질렸고, 압델은 입맛을 다셨다.
" 선택의 여지가 없는듯 하군. "
압델이 에어리쪽을 돌아보자, 그녀는 고개를 저어보이고 나서 압델의 손을 맞잡았다.
" 예전에 바알의 왕좌에서, 당신의 발목을 잡은 것 같아 내내 미안했어요. 이젠 나도 고향을 찾았고, 가족도 있고, 당신이 남겨준 마샤와 시온도 있으니 괜찮아요. 가서, 좀 더 높은 곳에서, 위대한 존재가 되세요. "/에어리
" 미안하구려. 당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압델
" 아니오, 남편이 신이라고 자랑할 수 있어서 저는 외려 좋은걸요. 마샤도 시온도 신이 된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할거에요. "/에어리
그때 다시 솔라가 두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그리고 이건 또 그분의 전언입니다만, 이쪽으로 넘어오시는(?) 댓가로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솔라
" 소원을? "/압델
이 세계는 신의 기적에도 한계는 있다. 하지만 세계의 창조자인 AO에게 그 한계는 없다. 그가 들어주는 소원이란 것은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까지 바꿀 수 있을만한 힘을 가진 절대적인 무엇이다. 슈발츠는 압델이 어떤 소원을 바랄까가 궁금해졌다.
" 내 모친... 알리아나가 바알에게 경도되기 전의 제정신을 찾고, 내 양부와 함께 했으면 좋겠소. 그것이 어디든 두분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오. "
세계정복도 가능한 상황에서 저런 소박한 소원을 바라다니, 과연 영웅이라는 생각을 하며 슈발츠는 씨익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아마도 보다 더 막강한 신적 능력을 바랬을 것이다. 그랬으니 시험을 통과했을 당시에도 [그분]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겠지만. 슈발츠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솔라가 그쪽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에 [또 하나 더] 건지셨으니 따로 드릴 것이 없다십니다. 다만 만신전의 다른분들께서 이번 일로 호의적인 시선 이상의 것을 준비하신다고 하는군요.]
그 텔레파시엔 엄숙함과 장난기가 혼재되어 있었다. 슈발츠 쪽에서 다시 압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솔라는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희미한 환영 둘이 압델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점점 형체를 갖추어 가더니, 마침내 완전히 반투명한 남녀의 형상을 갖추었다. 살아있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나타난 유령이었다.
" 아버지!... 어머니?... "/압델
" 머리가 하얗게 세었구나. 어쩌다 그렇게 되었더냐. 내 아들아? "/고라이언
" 그래, 엄마란다. 이제야 네 아버지와 함게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구나, 고맙다. "/일리아나
압델은 눈물을 흘리며 양부와 모친 앞에 꿇어앉았다. 고라이언은 차치하고서라도, 미쳐버린 상태에서 바알의 사제가 되어버린 알리아나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었다. 딱 한번, 그가 바알의 왕좌를 향한 모험을 했을 때 솔라가 불러낸 것을 보았을 뿐이고, 그때도 바알을 섬길 당시의 모습 그대로 미쳐있었다. 구원받을수 없는 영혼이 된 모친의 상황을 안타까워 했지만, 어떤 마법도 신성한 기적도 그녀를 구원할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광기가 치유되고, 더더군다나 그의 양부인 고라이언과 함게 하게 되었으니, 이뤄질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부친과 모친의 해후를 기꺼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몆마디 더 나눈 후에, 압델은 자신의 신위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행이 보는 앞에서 솔라와 함게 호박색 차원문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 그나저나, 우린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거지?... "
문득 생각난 듯이 시슈발이 한마디 했다. 슈발츠야 별로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에어리와 아바리엘 전사들은 스스로는 차원 이동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헌데 시슈발이 그런 말을 하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눈앞에 황금색 차원문이 열렸다. 차원문은 방금의 것과는 달리 그 건너편이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는데, 그 문 건너편의 풍경은 눈 독수리의 안식처의 공원을 비추고 있었다.
" 내가 먼저 가보겠소. "
이번에도 슈발츠는 가장 먼저 차원문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슈와악...
몸 주변의 공기가 뒤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의 다음 걸음은 땅을 딛고 있었다. 돌아온 것이다. 돌아보니 멀리 정청의 건물이 석양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난장판인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베스티지들은 이미 없었다. 곧이어 나타난 두르나와 에어리를 돌아보며, 슈발츠는 웃어 보여 주었다.
" 드디어 돌아왔군. "
.
.
.
<에필로그>
눈 독수리의 안식처는 다시 아바리엘들의 도시가 되었다. 사천에 달하던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도시의 방어도 거의 파괴되어 다시 재건하는 일이 최 우선 과제가 되었지만, 끔찍한 재앙에서 회복한 아바리엘들은 이제 내분에서도 벗어났다.
뜻을 한데 모은 아바리엘들은 지상인 모험자들을 고용해 분탕질을 조장하고, 주변국들과 적극적으로 동맹을 맺어 토벌대를 보내는 등의 등의 적극적인 전술을 펼쳐 호르페론의 화이트 드래곤을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 성공의 소문을 들은 다른 방랑 아바리엘들이 눈 독수리의 안식처를 찾아오면서, 도시의 인구는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에어리와 다른 목격자들이 침묵했기에, 아퀼란의 불명예는 드러나지 않고 묻혀졌다. 마지막의 타락이야 어쨌든, 그는 200년간이나 아바리엘 민족의 안전을 책임지던 [아버지]였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오늘날의 아바리엘 사회의 번영은 그가 없었다면 생각지도 못할 일인 것이다. 그는 눈 독수리의 요새를 [침범]한 침입자들에 용감히 맞서 싸우다가 정청 한가운데서 전사했다고 공표되었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어졌다. 그리고 그를 잃은 아바리엘들은 전제적인 결정권을 가진 윙드 파더를 새로 선출하는 대신 보다 [민주적]인 의회를 구성했다. 귀족들의 폐쇄적인 클럽 분위기를 풍기던 원로원이 폐지되고, 신관들(전통적인 평화주의자들-쇄국파)과 전사(전통적인 공세주의자들-개방파)들, 그리고 직공 대표(전통적인 중도파)로 구성된 [3부회]가 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카서스의 유산을 이어받은 압델 아드리안은 공식적으로 새로운 [주문의 군주]가 되었다. 미스트라가 가지던 위브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은 가지지 않지만, 필멸자의 무절제한 마법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을 정도의 통제력은 남았다. 원래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영웅이었고, 에어리의 적극적인 노력도 있고 하여 그 교세는 빠르게 늘어났다. 그가 애용하던 끝에 눈 그림이 그려진 수수한 참나무 지팡이가 그의 상징이 되었고, 그 상징은 미스트라의 심볼을 대신하는 새로운 마법 사용자들의 희망으로 옛 소드 코스트 전역에 천천히 퍼져 나갔다.
에어리는 자신의 고향을 완전히 떠나, 새로이 [송골매 요새]라고 명명된 아바리엘과 타종족들간의 교역을 목적으로 한 신도시에 정착했다. 그녀는 거기서 새로이 마법의 신이 된 남편 압델의 지상 대리인이 되어, 그의 신전을 건설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녀의 첫 신자는 압델을 따라갔던 두명의 아바리엘 전사들, 루와 달이었다. 송골매 요새는 아바리엘 외에도 지상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었기에, 포교는 주로 그들에게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슈발츠는 신도는 되지 않았지만, 신전을 원조하고 포교를 돕는 일에는 개입했다. 곧 장성한 마샤도 아버지의 사제단의 일원이 되었고, 머잖아 장성한 아들 시온은 최초의 팔라딘이 되었다.
헬레네 자매들의 운명은 서로 엇갈렸다. 여전히 슈발츠에게 호감을 가진 채로, 그녀들은 각자의 운명을 찾았다.
헬레네는 사제단의 일을 퇴역하고, 눈 독수리의 안식처에 있던 집을 팔고 송골매 요새로 이사했다. 그녀는 여전히 송골매 요새의 에어드리 펜야의 신전의 클레릭으로 봉직하면서 에어리 가족과 서로 도우며 살게 되었다. 아퀼란과의 언쟁 등으로 이제 유명인사가 된 그녀는 여러번 재혼 권유를 받았지만, 아무와도 결혼은 커녕 깊은 관계도 쌓지 않고 수절(?)했다.
브리세이즈는 죽은 크리세이즈를 되살려 보려 애썼지만, 그것이 여신 곁에서 영면 보내는 동생을 방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념한 채로 그녀는 모험자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고, 송골매 요새의 새 집의 이사를 도운 후에는 계절마다 한번 정도만 집에 돌아올 뿐 방랑의 세월을 보내었다.
화이트 드래곤과의 전투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펜테실레이아는 신전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육체적인 상처는 거의 고쳤지만,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결국 그녀는 전사의 길을 버리고 평화주의자 일파에 가입해 에어드리 펜야의 길을 배우기 시작했고, 곧 신전의 예배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슈발츠를 가장 잘 따르게 된 어린 카산드라는 그의 아내가 될것이라는 야망을 가졌다. 하지만 날개를 치료받은 후 송골매 요새의 신전에 딸린 성가대에 들어간 그녀는 바드로써의 소양을 보였고, 결국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다시 생기게 되면서 슈발츠의 아내가 되겟다는 야망을 잊게 되었다. 다른 자매들과 달리 세월의 풍파를 덜 겪은 그녀는 곧 장래를 촉망받는 유명인이 되었고, 재건된 실버리문의 포클루칸 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어 아바리엘의 음악적인 경지를 널리 알리게 되었다.
슈발츠는,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에 바하무트에게 다시 불려가서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바하무트의 소개로 코렐란 로다리안을 만난 일이었다. 아바리엘 종족을 구한 업적을 인정받은 슈발츠는 셀다린 만신전, 그중에서도 특히나 아바리엘의 안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에어드리 펜야(옹가라스의 한 측면이지만, 또한 별개의 여신으로도 간주되는)의 깊은 감사와 호의를 입어 그 신들 사이의 [손님]이 되어 언제나 환영받게 되었다.
.
.
.
그리고 아퀼란, 한때 아바리엘 모두에게 존경받는 날개 달린 어머니의 사도였다가 웬도나이의 꼬임에 넘어가 타락해 힘을 잃어버린 그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슈발츠 일행이 차원문을 건너서 눈 독수리의 안식처로 돌아간 직후, 그가 웬도나이의 힘을 빌려 아스트랄계에 만들었던 [위브 통제 장치]는 불타오르고 산산히 깨어졌다. 장치의 파편과 함께 아스트랄계의 허공에 뿌려진 아퀼란은 한 거대한 뼈무더기 위로 추락했다.
장치의 폭발의 여파를 뒤집어 쓴 아퀼란은 전신이 불타올라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태로도 살아남아, 하나 남은 손으로 뼈 무더기를 헤치며 원망의 소리를 높였다.
" 으으으으... 증오한다... 나는 네놈들을 영원히 증오할 것이다아!.... "
타락한 신의 사도의 외침이 불렀는지, 아니면 원래 거기의 주민이었는지 모르나, 누군가가 아퀼란의 눈앞에 나타났다. 올려다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청동색의 피부를 가지고, 정교한 돋을새김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등 뒤에 거대한 대검을 짊어진 젊은 청년처럼 보였다.
" 타락한 채 복수심으로 가득찬 신의 사도라... 너는 쓸모가 많겠군. "/청년
" 으으으으... "/아퀼란
다죽어가는 아퀼란에게 포션을 먹인 후, 그 청년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검은 갑옷의 기사들을 불러 그들에게 아퀼란을 들쳐 업도록 했다.
" 힘을 주마. 복수할 수 있는 힘을. 그것이 나의 복수이기도 할테니까. "
의식을 잃어 가는 아퀼란을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주먹을 폈다 접었다 하고 있는 청년의 손가락은 여섯개였다.
.
.
.
5부 1은 이로써 어딘가 낮익은 떡밥과 함게 끝을 맺습니다. -_- 앞으로 더욱 개드립스러워진 5부 2편과 함게 찾아올것을 약속하며, 저는 이만.
P.S 댓글이 많이 달리면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집니다. 단, 한명이 여러번 댓글을 남기는 것은 무효처리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