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6_42편
" 아무도 죽게 하지 않는것이 시험의 목표라면, 그건 실패로군. "/슈발츠
" 아닙니다. "/솔라
솔라는 거의 무표정했지만, 슈발츠는 그녀(이 솔라의 형태는 분명하게도 여성이었다)가 왠지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악취미다. 그리고 그녀 뒤의 [유일하신 분]도 누군가가 사고를 치게 놔두고 그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는 또한 무척 악취미다. 하지만 그 [악취미]가 아니었다면 애시당초 그가 존재할 일도 없었겠지. 슈발츠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 질문을 해도 될려나, 몆가지 묻고싶은 것이 있는데. "/슈발츠
" 하십시오. "/솔라
" 지금 내 [시험]말인데, 그것은 과거의 일인가, 아니면 현재나 미래의 일인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가? "/슈발츠
" 인간들의 기준으로, 아홉 산이 무너진 해(DR 1381년) 겨울의 일입니다. "/솔라
그렇다면 적어도 과거의 일이다.
" 내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슈발츠
" 그 질문에는 대답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솔라
" 곤란하군. "/슈발츠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에는 정해진 결과가 있다. 슈발츠가 뭘 어떻게 한다 해도 그 결과가 바뀔수는 없고, 남은건 과정의 문제일 뿐이다. 문제는 그 안에서 출제되는 것이니, 일종의 객관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바뀐]다면 무척 곤란해진다. 정해진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는 점도 시험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의 동기 뿐 아니라 과정, 그리고 그 결과까지 모두 평가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의 정답이 없어진다. 주관식도 굉장히 난이도있는 주관식이 되는 것이다.
" 이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려줄 수 있을까? "/슈발츠
" 영혼입니다. "/솔라
" 영혼? "/슈발츠
" 그 이상은 대답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솔라
즉답이 나왔다. 아마 솔라는 이 대답을 무척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슈발츠는 비로소 첫번째 질문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 첫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혹은 [무엇이 누군가의 정체를 결정하는가]인 것인가? "
생각해보면 슈발츠는 지금까지 벨드린이 되었고, 벨드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싸워 왔다. 그는 원래 드래곤으로써 소서러적인 기예에도 달통했지만, 벨드린의 몸에는 그 재능이 없기 때문에 쓰지 못했다. 소서러의 재능이라는 것은 결국 혈통의 문제인 탓이다. 하지만 소서러적인 기예를 쓰지 못하는 드로우 전사가 되었다고 해서, 슈발츠가 그 자신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슈발츠 자신]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소서러적인 기예도 슈발츠 자신의 고유의 것이 아니라면, 그의 전투 기술과 무용도 결국은 육체에 기반하는 것이며, 그의 육체적인 매력과 [밤일 능력]역시 그러한것은 마찬가지다. 그의 지능도 결국은 타고난 두뇌 탓이며, 지혜 역시 어느 정도 까지는 그럴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육체에 기반한다면, 그래서 육체를 제외하고 난다면, 대체 무엇이 남는가. 육체가 바뀌었음에도 그를 슈발츠로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대체 무엇을 [자신]이라 부를 수 있는가. 기억과 경험인가? 하지만 페이룬에는 상대의 기억과 경험마저 강탈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마법적인 수단이 있다. 그 수단의 대표적인 희생자(?)가 슈발츠의 노예 중 한명인 젤라노라다. 그녀가 슌 7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슌 7세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억과 경험도 누군가를 규정짓는데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영혼인가.
하지만 [영혼]이라는 것조차 그 존재의 본질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 세계에서는 누군가 죽으면 그 영혼이 퓨그 플레인(우리 세계에서의 저승, 캘렘보르의 차원이다)에 있는 [심판의 도시]로 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 영혼은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심판을 마치고 자신이 믿는 신의 차원으로 보내 지거나, 혹은 불신자로 심판받아 [불신자의 벽]에 갇히게 되면, 그 영혼은 생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슈발츠는 거기까지 알고 있었다.
그 기억을 잃어버린 영혼(청원자라고 불리우는)이 [자신]이라 할 수 있는가?
슈발츠가 질문을 던져 놓고 고민하는 동안, 솔라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슈발츠는 고민 끝에 스스로의 질문에 답했다.
" 누군가의 가치는 그자의 지위도, 태생도 아니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그리고 신념이 그 누군가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를 나로 있게 만드는 것은 내 지식, 경험, 그리고 신념이다. 그것을 영혼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를 내 자신으로 있게 만드는것은 영혼이다. 하지만 그 영혼은 결코 청원자처럼 기억없는 영기의 덩어리가 아니라, 기억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무언가이다. "
솔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슈발츠의 눈앞이 하얗게 흐려져 갔다.
" 료나가 남긴건 이것 뿐이야. "
다음 숙영지에서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비코니아는 황옥으로 만든 작은 노리개 하나를 꺼내어 손으로 쓰다듬었다. 가장 고위급 클레릭인 라우라도 침울해 있었다.
비코니아들은 분명 기적을 다룬다, 하지만 그 기적에도 조건과 한계가 있다. 그리고 부활이라는 기적은 [그 신체가 (일부라도)남아있을 것]이 조건이었다. 라우라의 신체가 없이는 부활도 없다. 그리고 그녀의 신체는 이제 수백톤의 돌과 토사 아래 깔려서 찾을수 없게 되어 있다.
그녀도 살게라스도, 죽은 것이다.
슈발츠는 여사제들을 위로하지는 않았다.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에일리스트레이에 바치는 송가를 부르며, 죽은 료나와 살게라스를 추모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 이곳에서 이곳으로 가서, 이 협곡을 지나면, 노스의 숲(네버윈터 우드를 말한다) 근방의 지상으로 통하는 동굴 통로... 그러니까 이곳으로 갈 수 있지요. 이게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
슈발츠의 설명에 라우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 문제는 우리 지도랑 같은 것을 적들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지요. 적들이 매복을 하려 한다면 이곳과 이곳일 겁니다. "/슈발츠
"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더 돌아갈수는 없어. 정면돌파한다. "/라우라
" 행군은 반나절(여덟시간 정도) 쯤 걸릴 것이고, 지상으로 나갈 때는 낮이어야 하니까... 지금부터 대략 하룻밤 정도(여섯시간)는 쉴 수 있습니다. "
클레릭은 강력하지만, 그 강력함은 거의 신성한 기적, 즉 마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에게 그 신성한 기적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준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휴식이라는 행위가 상당히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롤스 패거리들은 숫적인 우세를 통해 끊임없이 추격해 오며 휴식을 방해하는 전술을 쓴다. 당장은 상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고기방패 역할만 해 줘도 좋은 되는 것이다. 선봉대가 일행을 붙잡고 물고 늘어지면, 후발대의 [휴식을 충분히 취한] 사제들이 포함된 팀이 나서서 뒤처리를 한다.
그 의도에 말려들면 곤란하기 때문에, 슈발츠 일행은 선발대를 되도록 재빨리 떨구어 내고 멀찍히 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살게라스나 료나를 희생시키면서도 오직 전진했던 이유는 그것이다. 지상이 그리 멀지 않은 지금, 롤스 교단의 추격대는 지상으로 향하는 입구에 굉장한 숫자의 [매복]을 두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소위 [본대]가 직접 배치되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 또 죽어야 하는 건가... 아니 아예 여기서 모두가 죽을 가능성도 있다.
슈발츠는 정면돌파 한다고 말했을 때의 라우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예감이 안좋았지만, 그로써는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여사제들을 보호할 뿐이다.
" 크아악!... "
막 드로우 전사 하나의 가슴에 찔러 넣은 검을 뽑은 후, 슈발츠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매복은 있었다. 게다가 무척 본격적으로, 롤스의 고위 사제 여럿이 매복조에 끼어 있었다. 거의 처음으로 여사제들 사이의 본격적인 주문 전투가 벌어졌다. 숫자는 열세였지만, 라우라와 비코니아의 [신성함]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슈발츠로써는 처음 목격하는 고위의 신성 주문들이 연이어 퍼부어지고 되받아쳐지며, 여사제들 사이에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구역을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여사제들끼리 [신의 은총]을 겨루는 동안, 슈발츠는 그녀들의 배후를 지키며 잡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간을 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저쪽이 증원을 받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척 아쉽게도, 이번엔 적들이 출구를 가로막고 선 덕분에 지진을 일으켜 통로를 묻어버리는 전법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적의 지진 주문을 되받아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 벨드린! "
막 주문 하나를 역주문하고 파멸적인 주문의 역공을 날려 여사제 하나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게 만든 라우라가 슈발츠쪽을 돌아보며 그를 외쳐 불렀다. 슈발츠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 언젠가 모아서 한번에 처리하자고 했었지? 지금이 그때인 것 같구나! "
슈발츠가 쓰러진 여사제의 뒤에서 다른 여사제 하나가 나섰다. 한눈에 봐도 그 갑주와 무기의 화려한 모양새가 [나 롤스의 총애를 심하게 받고 있소]라는 표를 내고 있었다. 슈발츠가 지키며 버텨 서 있는 일행의 후방으로도 한 무리의 무장한 드라이더들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슈발츠가 우려해 마지않은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라우라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이 든 배낭을 비코니아를 향해 던졌다. 얼결에 배낭을 받아 든 비코니아의 등 뒤에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라우라가 그 주문을 미리 걸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상황을 [예지]했던 그녀가 남긴 마지막 안배였다. 다른 롤스의 사제가 차원이동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도, 이 전권을 벗어나기엔 충분했다.
" 달 아래 춤추는 여신의 영광을 위하여, 가거라! "
비코니아는 안된다고 외치려 했지만, 이 절망적인 상황은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슈발츠는 비코니아에게 태클을 걸듯이 그녀를 문 안으로 밀쳐 넣고 자신도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막 등 뒤에서 [문]이 닫히려는 순간, 라우라의 몸에서 엄청난 충격파와 섬광이 뿜어져 나와 슈발츠와 비코니아의 몸을 튕겨 날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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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죽을거 같군, 정말로. "
솔라 앞에서, 슈발츠는 푸념하며 어께를 으쓱거려 보였다. 처음엔 살게라스, 그다음엔 료나, 그리고 이제는 일행 중 최연장자이자 가장 고위 사제인 라우라가 스스로를 희생했다. 그 칼에 과연 이럴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임무 자체를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조차도 불투명했다.
그리고 슈발츠는 이제 겨우 첫번째 문제를 풀었을(?) 뿐이다.
" 두번째 문제는 힌트가 없는가? "/슈발츠
" [삶]입니다. "/솔라
" 삶? "/슈발츠
두번 대답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즉답이었다. 삶이라. 과연 그것이 무엇이던가.
단순히 [살아있는 상태]를 삶이라 부르진 않는다. 그리고 엄연히 따지자면 살아있는 존재라 할 수 없는 (신과 악마를 포함한)불멸의 존재들이나, 심지어는 기억이 없어진 영혼인 청원자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삶]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무엇이 삶인가.
그리고 그 [살아있는 상태] 자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 두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가?
이번에도 솔라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슈발츠는 생각에 잠겼다.
생, 혹은 삶의 목적은 다양하다. 사에몬 하바리안 같은 자는 되도록 많이 분탕질을 치고 거짓을 퍼트리며, 그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슈발츠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노예를 모으고 돈을 벌며 살았다. 선한 클레릭들과 팔라딘들은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게, 세상에서 선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살며, 악한 클레릭들과 블랙가드도 신앙에 충실하게 산다는 점은 같지만 세상에 불의와 악을 퍼트리기 위해서라는 점은 다르다. 그리고, 단순히 먹고 싸고 숨을 쉬는것 만이 목적인, 쌀만 축내는 자들도 어디에나 있다.
이처럼,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로 다양하고 다르다. 그것을 어떻게 한데 뭉뚱그릴 것인가.
" 그것은 목적이다. "
솔라의 시선이 슈발츠와 마주쳤다.
" 스스로 정했든, 남이 부여했든, 산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목적]하는 것이다. 정의이든, 악의든, 불의이든, 아니면 그저 아무일 하지 않는 무능이든, 모든 존재는 그 [목적]에 따른다. 그것이 존재의 목적이며, 삶이다. 우리는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이번에도 정답인가, 슈발츠의 눈에 솔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 용서 못해!!! "
짜악!!
비코니아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가냘프기까지 한 손바닥이 눈앞을 스치는 순간, 슈발츠의 눈에서 별이 번쩍였다. 그는 휘청이다가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다.
타악!
다시 반대쪽으로 날아오려는 손을 붙잡은 슈발츠는 그대로 그녀를 끌어당겨서 눈을 마주쳤다.
" 라우라는 죽으면서 너에게 여신의 신성한 유물을 맏겼다. 너는 너의 신앙을 져버리고 너를 위해 희생한 그녀의 뜻도 어길 셈인가? "
비코니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다만 이글거리는 눈으로 슈발츠를 쏘아 보다가,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가는 방향이 잘못되어 있어, 그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쪽이다 비코니아. 그 방향으로 가면 언더다크 깊숙히 가게 된다. "
비코니아는 다시 슈발츠를 쏘아봤지만, 발길을 돌렸다.
[문]을 통해 도착한 곳은 예상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지상으로의 출구였다. 물론 진짜 지상으로 나가려면 며칠을 더 걸어야 할 정도의 거리의 [출구] 였지만. 슈발츠가 앞서고 비코니아가 쭈볏거리면서도 뒤를 따르는 형세로 그럭저럭 한나절을 걸은 끝에, 숙영지를 정하고 쉴 시간이 되었다.
짐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에, 침낭은 슈발츠의 것 하나 뿐이었다. 물론 불침번을 교대로 설 테니 하나의 침낭을 교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상심하고 [까칠해진]그녀가 견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때문에 슈발츠는 자신의 침낭을 비코니아에게 양보하게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두고 나서 비코니아가 침낭에 파고드는 동안, 슈발츠는 경계 서는 위치에 가서 앉았다. 지상에 비교적 가까운 [얕은] 언더다크에서는 심층부에서 처럼 무지막지한 것들이 튀어나올 위험은 적지만, [지상 종족의 눈]이라는 위협이 있었다. 특히 드워프 순찰이 위험했다. 그들이 보기에 드로우는 모두 같은 종자라, 에일리파라고 딱히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먼저 죽이고 나서 질문하는 것이 드로우를 상대하는 쪽과 드로우들 쌍방의 [공통된 스타일]이었다.
한 드워프의 지하 순찰대가 지나가는 것을 지나보낸 후, 슈발츠는 등 뒤로부터 인기척을 느꼈다. 돌아보니 비코니아가 침낭 밖으로 기어나와 그를 보고 있었다.
" ?! "
슈발츠가 뭐라기도 전에, 비코니아가 그를 덮쳐 왔다. 키스를 하고 정신없이 옷을 벗기려 달려드는 것이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인가 싶었지만, 드로우는 원래 선천적으로 마법에 대한 저항이 있고 정신 방어에 대한 내성이 강한데다, 그녀는 신앙의 힘으로 내적인 평정심을 추구하는 클레릭이다. 눈빛도 정상이었다.
" 안아 다오... "
슈발츠가 어께를 붙잡아 떼어 놓았을 때, 눈이 마주친 비코니아는 그에게 애원했다.
슈발츠는 [차려진 밥상을 외면하는 것은 사나이의 수치다]라는 격언 그 자체다. 하지만 덮쳐지는 것도 또한 [사나이의 스타일]은 아니다. 간절히 안아주기를 원하는 비코니아의 어께를 붙잡은 채 잠깐 그렇게 정적이 흐른 후, 슈발츠는 그녀를 침낭으로 데리고 갔다.
키스를 해 주고, 우는 얼굴에 애무를 퍼부어 준 후, 슈발츠는 숨결이 거칠어진 비코니아의 귀에 속삭였다.
" 후회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더 후회할만한 일을 해서는 안되겠지. 너는 지금 무섭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그리고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자의 품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서움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
비코니아의 보라색 눈동자가 한동안 슈발츠를 향했다.
" 두려운 것은 아니다, 죽는것도 무섭지 않아. 내가...매력이 없느냐? "/비코니아
" 그런건 아니야, 너는 무척 아름답다. "/슈발츠
노예로 삼고 싶을 정도로, 물론 속으로 한 첨언은 [지금 당장은 하지 말아야 할 말] 100위 안에 들어갈 것이다. 슈발츠는 비코니아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슈발츠의 품에 자신을 맏겼다.
" 그리고 여담이지만, 나는 부인이 많아. 그것도 모두 노예지. 네가 그런 사실을 감수할 것이라고도 여겨지지 않는구나. "
다시 올려다보는 비코니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마칩내 말문을 열었을 때, 슈발츠가 들은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 부인이 많아도 상관없다... 아니 노예라도 좋아. "
일반적으로 드로우 여자들은, 에일리스트레이파 드로우라도, 기가 드세고 독점욕이 강하다. 거기에 육체적으로도 더 강하고 당당한 경향이 있다. 자진해서 숙이고 들어온 두르나는 엄청나게 드문 예외적인 케이스고, 대부분의 경우 일랙트라처럼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협을 해서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마침내 굴복시켜야만 수동적으로 남자를 따르게 만들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도 여러 여자가 한 남자를 따른다는 것은 거의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다. 한 드로우 남자를 두고 두 드로우 여자(물론 그녀들은 롤스의 클레릭일 것이다)가 결투해서 상대방을 쳐죽인 쪽이 [트로피]로 남자를 차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질투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쳐죽이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것이 드로우 사회다.
그리고 에일리스트레이를 모시는 드로우 집단도 죽이는 경우까지는 드물겠지만 남자가 수동적인 [트로피]라는 점에서는 롤스 사회와 거의 막상막하며, 심각한 남성 부족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어서 여러 여자가 한 남자를 [공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지만 그런 관계도 결국 남자가 수동적인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 남자를 [거느린]여자가 그 남자를 다른 여자들과 너그러이 공유한다는 느낌. 그러니 기껏해야 [종마]역할일 뿐인 그런 남자가 여자들 모두를 자신의 [부인]으로 부르는건 언어도단이다(노예제는 아예 논외).
따라서 슈발츠가 [나는 부인이 많다]라고 말한 것은 비코니아에겐 [나는 드로우 남자인 주제에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있다]로 해석되며, 이것은 드로우 사회에 있어서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리고 비코니아는 그 [예외적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한때 롤스의 클레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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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포랠에서 [필멸자의 한계를 넘은]에픽 주문 시전자들은 말 그대로 최고레벨인 9레벨 너머의 주문 영역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에픽 주문이지요. 당연히 일반적인 마법과 그 효과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에픽 주문들은 개발비용 자체가 황당할 정도로 높다던가, 서사적인 수준의 영창 시간과 주문 시전자들을 요구한다던가(마법진으로 발동하는 의식마법), 아니면 역반발 피해(주문 시전자에게도 피해를 준다)가 쩐다던가 합니다.
라우라가 마지막으로 시전한 주문은 광범위한 영역에 천상의 신의 분노를 직접 불러 오는 것으로, 시전자도 그에 준하는 역반발 피해를 받는 주문으로 설정해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