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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6_45편


마침내 정신이 들었을 때, 제일 처음 슈발츠는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 죽을뻔 했군. "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드웨머하트의 조각 위에서 일어났을 때 보다 훨씬 상태는 안좋았다. 하지만 꽤 [재생]이 진행된 상태라는 것을 느낄수는 있었다.


우드득...


몸을 일으키자, 등과 허리를 거치는 골격 전체에서 무지막지한 소리가 났다. 척추 전체와 늑골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슈발츠의 골격은 금속, 정확히는 (강화된)연금술적 은이다 그 금속으로 된 골격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무지막지한 고통과 소음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 아야야야... "


간신히 뼈를 다 맞추고 나자, 비로소 슈발츠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따질 여유가 생겼다.


주변은 온통 모래와 진흙 투성이의 거대한 평원이었다. 해일이 그를 이런 곳에다가 내던졌을 것이다. 어딘가의 해안인가보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후, 슈발츠는 굉장한 것을 보았다.


하늘의 한쪽이 온통 보라색 구름으로 뒤덮인 채, 푸른 불꽂과 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광경을. 그것은 명백하게 정상이 아닌 형태의 기상현상이었다.


마법은 여전히 쓸 수 없었다. 아니 심지어 어디가 북쪽인지조차 분간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옆에 같이 떠밀려 온 것으로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지팡이 삼아 들고 이상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방향과 반대로 걷기 시작했다.


몆시간이나 갔을 까, 슈발츠는 비로소 자신이 떠밀려온 곳이 해안 따위가 아니라는 증거를 발견했다. 모래 사이에 비죽이 내밀고 있는 하나의 이정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학히는 이정표의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새 조각이다. 철로 된 새가 앉은 것 같은 기다란 쇠막대기 아래 돌과 나무로 된 이정표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정표를 읽느라 땅을 파 볼 필요는 없었다.


" 여기가 테티르 한복판이란 것인가. "


돌로 만든 이정표 위에 쇠로 만든 작은 새 조각을 끄트머리에 단 쇠막대기를 세워 표지로 삼는 것은 테티르 뿐이다. 그것을 슈발츠가 잘못 볼 일도 없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슈발츠가 서 있는 [테티르의 어딘가]는 적어도 사람 키보다 더 높은 높이의 모래와 뻘로 덮였던 것이다.


한참을 더 가자 작은 언덕이 보였다. 중간까지는 나무들이 온통 쓰러져서 뻘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래도 꼭대기 주변은 물의 침범을 받지 않은 것 처럼 멀쩡했다. 슈발츠는 드래곤 형태에서 인간 형태를 취하고(그것은 가능했다), 그 언덕을 올랐다. 생존자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놀래키기 싫어서이다.


" 휴... "


관목 아래 그늘에 주저앉았을 때, 슈발츠는 풀숲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이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구가 작고 민첩한 모양새가, 엘프 같았다. 슈발츠는 피곤하고 귀찮아서 습격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둘 심산이었지만, 그쪽에서 움직여 왔다


" 물러가라.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


엘프어의 속삭임.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 숲을 전세낸 것이 아니라면, 피난민 하나 정도는 좀 봐주지 그래. "


슈발츠는 엘프어가 아니라 북부어로 유창하게 대꾸해 주었다. 엘프 중 과격한 일부는 인간이 엘프어를 쓰는걸 모욕으로 받아들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휘리릭!...


다시 움직임, 이번엔 적극적이다. 기어이 한바탕 해야 하는가 하고 슈발츠는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앉아 있던 나무 그늘 반대편에 작은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무덤인걸로 보였다. [엘프]는 그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 !! "


아니나다를까, 슈발츠가 무덤 쪽으로 한걸음 옮기자 마자 나무 꼭대기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그를 덮쳐 왔다.


와락!... 철퍼덕!


처음 소리는 덮치면서 난 소리고, 두번째는 물론 슈발츠가 휘두른 나뭇가지에 걸려 균형을 잃은 [검은 그림자]가 땅으로 추락하는 소리다.


" 아윽!... "


떨어진 것은 역시나 두건을 눌러 쓴 작은 엘프 여자였다. 슈발츠는 능숙한 솜씨로 지팡이 삼아 들고 있던 나뭇가지의 갈라진 부분을 사용해 그녀의 목을 누르고(뱀을 제압하듯이) 발버둥치는 그녀의 팔을 능숙하게 뒤로 붙잡아 꺾어 올리며 제압했다.


" 아악!... 놔라! 놔라 이 무도한 인간놈 같으니!... "


자세히 들으니 드로우 억양이 담긴 그 엘프어를 구사하는 것이 어딘가 낮익은 목소리였다. 슈발츠는 지팡이를 버리고 무릎으로 그녀의 몸을 누른 후, 두건을 벗겼다.


" 아, 이런게 정해진 인연이란 거로군... "


약간 금발끼가 도는 은발, 칠흑같이 검지만 빛을 반사할 정도로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불타는 듯이 진한 보라색의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의 주인공은 비코니아였다.


" 날 알아보질 못했구만. "/슈발츠


" 네놈따위 모른다! "/비코니아


" 그럼 이러면 어떨까? "/슈발츠


제압한 그대로, 슈발츠는 비코니아를 뒤에서 끌어안아 준 후에 버둥거리려는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 무슨?!?...이...이게?... "/비코니아


" 자자, 이제 기억이 날만도 한데. "/슈발츠


" 아냐 그럴리가 없다! 그는 죽었다!... "/비코니아


입은 여전히 험했지만, 비코니아는 더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 가끔은 환생할 때도 있는 법이야. "/슈발츠


" 정말인거야?... 정말 벨드린인거야? "/비코니아


슈발츠가 꺾은 팔을 풀어 주고 다시 한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비코니아는 몸을 떨면서 적극적으로 그의 품에 안겨 왔다. 언더다크로 가는 노정에서 안아 달라고 매달려오던 그때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 그 이름 말고 내가 뭐라고 부르라 했었지? "/슈발츠


" 슈발츠... "/비코니아


" 그래, 뒤에 뭔가 빼먹은 것이 있는것 같지만, 지금은 일단 재회한 기념으로 용서해 주지. "/슈발츠


" 용서는 내가 해야지, 내가 몆년이나 기다렸는줄 아느냐! "/비코니아


그리고 비코니아는 어린애처럼 울었다. 얼마나 애절하게 악을 쓰며 울던지 슈발츠가 손도 못써볼 정도로 울었다. 그리고 실컷 울고 나서 눈이 퉁퉁 부은 후에(그리고 한참 머리를 쓰다듬어서 달래 준 후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야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알고보니 그곳은 슈발츠가 비코니아를 올려 보낸 오래된 드워프 광산 수갱의 출구 인근이었다. 에일리 교단에 크레센트 블레이드를 반납한 후, 비코니아는 쭉 그곳에서 그가 [돌아 오길]기다린 것이다.


" 훌쩍... 내 뒤에서 동굴이 무너졌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줄 아느냐, 훌쩍... 그자리에서 죽을까 하고 생각했다. 흑!... "/비코니아


" 그래도 살아있으니 잘된 거지. 임무도 무사히 끝냈으니 잘 했어. "/슈발츠


슈발츠가 본 돌 무더기는 묘비가 아니라 꺼림 마법을 건 결계의 중심이었다. 비코니아는 자신의 기다림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그녀와 슈발츠 이외의 존재가 이 장소를 피하도록 마법을 걸어 두었던 것이다.


" 그런데 그게 다 소용 없게 되었다. "/비코니아


" 임무 말이야? "/슈발츠


" 응, 여신이 더이상 내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신지 오래 되었다. "/비코니아


하긴, 마법이 있다면 그리 쉽게 당할 비코니아가 아니다. 슈발츠는 다시 품안에 파고들어 아양을 떨기 시작하는 비코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 원인을 곰곰히 따져 보았다.


분명예 에전에 에일리 여신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게 된 후에, 그녀를 향한 기도의 응답을 엘프 만신전의 주신인 코렐란 로다리안이 하고, 그의 [용서]로 몆몆 드로우 부족의 피부가 옅은 갈색으로 [되돌아]갔다. 그 부족들의 피부색이 옅은 갈색이던 시절은 삼만년도 더된 옛날의 [크라운 전쟁기]로 거슬러 올라 가니까 되돌아 간 거라도 제삼자들에겐 그저 변한걸로 보였지만.


" 에일리에 대한 기도를 들은 코렐란이 신탁을 내렸다는데, 그것은 듣지 못한 거야? "/슈발츠


" 뭐, 그런일이 있었나? " /비코니아


시기적으로 에일리스트레이 여신이 죽은 시점이 DR 1370년대 초의 일이다. 그리고 비코니아가 그녀의 클레릭이 된 시기는 여신이 죽은 시점에서 2, 3년 정도 후로 추정된다. 그당시 이미 여신의 클레릭들의 주문은 코랠론이 주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는데 비코니아는 모르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아직 고위 클레릭이 아닌 그녀의 신심을 흔들리게 하지 않기 위해 상급자인 라우라가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다.


슈발츠의 설명을 들으면서 비코니아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변화무쌍하게 바뀌었다.


" 그렇다면 나는 이미 죽은 여신을 모시고 있던 셈인가? "/비코니아


"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그러하지. "/슈발츠


" 하지만 신성한 축복과 기도에 대한 응답은? "/비코니아


" 그건 여신의 [아버지]인 코랠론이 대신 응답해 준거라고 이야길 했잖아. "/슈발츠


한참을 고뇌하는 비코니아의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던 슈발츠는 그녀를 등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머리에서부터 엉덩이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 하아앙... 좋아, 거길 좀더 쓰다듬어 달라. "/비코니아


" 이제 지상인데, [안아] 주는건 싫나? "/슈발츠


대답하지 않고 비코니아는 슈발츠에게 키스를 요구해 왔다. 슈발츠는 그녀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돌려 옷 위로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그녀의 키스에 응해 주었다. 한참 깊은 키스를 통해 비코니아를 가벼운 질식 상태까지 몰아간 후, 슈발츠는 입술을 떼어 놓았다.


" 그러고보니, 아직 나는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한 적이 없군. "/슈발츠


" 으음... 그게 무슨 소리냐? "/비코니아


" 내 정체는 인간도 아니고 드로우도 아니야. "/슈발츠


슈발츠는 말하면서 잠깐 벨드린의 얼굴로 돌아가 보였다. 그리고 비코니아가 조금 놀라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 원래 모습은...이거지. "/슈발츠


" 우 우왓?... "/비코니아


변신하면서,슈발츠는 자신의 능력 중 일부가(마법과 주화를 제외한)돌아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놀라서 몸을 움츠리는 비코니아를 향해 용인(龍人)의 모습으로 씨익 웃어보여준 후, 그는 다시 인간 형태로 돌아갔다.


" 나는 슈발츠야. 해적 군도의 지배자이고 용의 해안의 보호자이며, 미쓰 드레노어와 데일랜드의 친구고 신과 마왕과 싸우는 자다. 네명의 부인과 13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고, 그중 하나는 에버미트의 공주지. "


" 벨드린...은 없는 것인가? "/비코니아


" 벨드린도 나다. 하지만 진정한 나는 슈발츠지. " /슈발츠


여전히 키스의 여운이 남아 있는 상기된 얼굴이었지만, 비코니아는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 내 노예가 되겠느냐? "/슈발츠


" ... "


비코니아는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슈발츠를 한번 본 후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너의 것이다. "


.
.
.


-후기-


이 세계에서는 마법사도 클론을 만들어 두고, 성직자는 죽은 시체를 그냥 살리며, 드루이드조차 [환생]을 시킵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이 무척 가볍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만,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클론을 제외한 부활 계통의 소생확률은 [영혼이 돌아올 의지]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 세계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쪽은 신들을 진지하게 믿는 분위기라서(그도 그럴것이 신들이 가끔 지상에 아바타를 보내기도 하고, 성직자라는 종류의 인간들은 신의 힘을 빌어 직접 기적을 행하니까요), 죽은 후에 자신이 모시는 신들의 세계로 가서 돌아오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예를들어 살게라스의 경우 죽은 후에는 [에일리 여신 항가항가... 특히 각선미가 카와이 하시고도...]상태가 되어 지상에서 불러도 나몰라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리 부활 마법을 걸어도 당연히 실패하지요.


포렐 세계에서는 누구나 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 상태가 아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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