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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영웅-(부제: 로얄 블러드) - #12 동요

카렌과의 최악의 재회를 해 간밤을 잠 못들고 뒤척인 란셀론은,


 다음 날 매우 우울한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왠지 그때 처음 자위를 실패한 날과 똑같구나...)


 


란셀롯은 한숨을 푹 쉰 뒤, 가벼운 세안을 하고는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조금은 찬 듯한 물로 세수를 개운히 하자 기분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똑 똑!


 


가벼운 노크소리르 통해 그는 메이리가 언제나와 같은 시간에 식사를 준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오도록 해."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가벼운 아침을 준비한 메이리가 들어왔다.
란셀롯은 아침을 그리 많이 먹지는 않는 편이었다.


물론 그것은 다른 귀족들도 비슷했지만, 유독 란셀롯은 아침이 가벼워서 살짝 구운 토스트 하나에 따스한 차 한 컵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 저기..."


 


메이리가 식사를 하는 란셀롯을 자꾸 들여다보며 뭔가를 말하길 주저해 했다.


 


"왜 그러지, 메이리?"
"아!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전하..."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체 묻는 란셀롯의 물음에 메이리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한 뒤,
그가 식사를 끝마치자 서둘러 식기를 챙긴 뒤 물러났다.


 


"휴우~~."


 


솔직히 메이리가 무슨 말을 묻고 싶은지 대충 예감이 왔다.



지난 밤에 메이리의 방해를 받은 그의 표정이 매우 차가웠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란셀롯은 그에 대한 것을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아니, 솔직히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 더 정확하지.)


 


마치 바람을 피다 들킨 남편의 심정이랄까.
아니면 작업을 막 걸려는데 방해를 받게 된 제비의 심정이랄까.


 


(뭔가 둘 다 묘하게 틀린 것도 같지만...)


 


뭐라고 메이리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카렌이 전(前)연인인데 오해가 있어서 그걸 풀어줘야 한다고?


 


(말도 안되지. 내가 그녀를 버린 것은 사실이니까.)


 


아니면 카렌의 힘이 이제 필요하니까 그녀를 설득해 다시 자신의 수하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해야 할까?


 


(하하하, 그랬다간 그동안의 신뢰까지 다 잃어버릴 걸? 그런 치졸한 군주라면 나라도 정나미가 떨어질테니까.)


 


결국 란셀롯으로서는 뭐라고 그때 자신의 태도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태도는 태연을 가장한 체 평상시처럼 그녀를 대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내가 왜 메이리에게 일일히 그런 걸 설명을 해줘야 하지?)


 


뒤늦게야 자신이 왜 메이리에게 그렇게 연연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든 란셀롯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내 시녀이자 이용물 아니었나?"


 


메이리는 단순히 평범한 메이드였다.
왕자인 그가 굳이 신경을 써줘야 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고용인인 것이다.


 


오히려 이용해먹기 쉬운 그 순진함 때문에 그가 가장 잘 활용을 하는 정보망이자(그녀는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용물인 아이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샌가, 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마음 깊이 자리잡아 그 어떤 심복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허 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지만 내 마음을 내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니 웃기는군.)


 


란셀롯은 메이리의 존재가 그의 가슴 안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어느 새 그의 마음 속에  그렇게  그녀의 존재가 커져 있었단 말인가?


 


(조금 주의를 해야겠군. 사람을 부리는데 있어 이런 마음은 순간의 주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말야.)


 


용병(用兵)을 행함에 있어 주의를 하는 것 중 하나는 사소한 정에서 비롯되는 주저함이었다.
주저는 빈틈을 낳고, 빈틈은 패배를 불러온다.
인사(人事)에 있어서도 그러한 사소한 정은 반드시 경계를 해야 하는 무서운 적이었다.
정에 이끌려 인사를 잘못 행하면 끝내 본인이 속한 집단 전체에 큰 해를 불러온다.


 


비록 어림풋이 왕도(王道)를 깨달아가는 란셀롯이었지만 원래 그의 기본성격은 선(善)이 아니었다.
사람은 이용할 수 있으면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옛 지론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그 성격이 좀 변했다지만 그렇다고 그런 그의 오랜 지론이 전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은 전부 자신만을 위해 추구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였다면, 지금은 조금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이 속한 이들에게 행복을 주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한 것 뿐이었다.


그는 이기주의자였고, 앞으로도 이기주의자일 뿐이었다.
그 스스로가 그렇게 되길 바랬고 그런 마음을 포기할 마음도 없었다.


 


"흥, 뭐 그래도...의식을 깨고나서 얻은 첫 아군이니만큼 조금은 해명을 해두는 것이 좋겠군."


 


왠지 메이리의 슬프도록 큰 눈망울과 자신에 대한 신뢰에 찬 눈동자가 다시금 떠오른 란셀롯은 마지못한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스스로 아니라고 열심히 부정을 해도 그는 알게 모르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xxx


 


메이리를 찾아 요새 안을 돌아다닌 란셀롯은, 어렵사리 메이리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도대체 뭐하러 기사들의 막사는 찾아간거야?)


 


애당초 메이리는 란셀롯의 전담 메이드였다.
그 이전에는 로자리아 담당이었는데, 그 이유는 로드리아가 건재했을 당시 또래의 말동무를 붙여주기 위한 왕비의 배려 때문이었다.


로자리아와는 한 살 차이가 나는 메이리는 열살의 나이부터 로자리아의 시중을 들어왔었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곁에 있어왔다.
그런만큼 로자리아에게 있어서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믿을 수 있는 상대였기에 그녀는 란셀롯을 메이리에게 맡겼고, 메이리는 그런 로자리아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왔다. 비록 지금은 원(元)주인인 로자리아보다 지금의 주인인 란셀롯을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렇게 몰래 기사들의 막사를 찾아가다니 혹시 평소 적기마병단에 사모하던 기사라도 있었던 것일까?"


 


란셀롯은 아무도 모르게 기사들의 막사로 향한 메이리의 행동에 대해 약간 불평투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워낙 조용히 움직인 덕분에 요새 안에 그 누구보다 치밀한 정보망과 눈들을 가진 란셀롯으로서도 그녀의 행방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평소 기사들의 막사에 전혀 올 일이 없는 메이리가 갑작스레 그곳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앗! 왕자님. 이곳에 어떤 일로 오신 것 입니까?"


 


갑작스런 란셀롯의 방문에 기사들의 막사를 담당하고 있던 기사 그랜트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랜트는 이미 란셀롯과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기사로, 광휘의 메라체트 내에선 터줏대감으로 유명했다.


 


"아, 그랜트 경. 다름이 아니라 이곳으로 내 담당 메이드가 오지 않았는지요?"


 


란셀롯의 물음에 그랜트는 바로 답변을 해주었다.


 


"아아~ 메이리를 말씀하시는거군요? 그녀라면 카렌님과 함께 동쪽 숲으로 가는 것 같던데요? 뭔가 둘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랜트의 대답에 란셀롯은 더욱 황당함을 느껴야만 했다.


 


(동쪽 숲? 그곳은 대체 왜?)


 


동쪽 숲으로 흔히 통하는 요새 동쪽의 장소는 뒷우물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도대체 중요한 이야기란 또 뭐야?)


 


완전히 똥개훈련을 받는 느낌이라 란셀롯은 불쾌했다.
괜한 변명을 하기위해 그가 생고생을 해야하는 현재의 처지가 매우 우스웠다.


 


 


"...그래서 할 얘기란 게 도대체 뭐지?"


 


란셀롯이 동쪽 숲에 도착을 하자 때마침 카렌의 고조가 거의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어제 카렌님과 란셀롯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메이리의 말에 카렌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제라니...? 아 그렇군. 어제 란셀롯님을 찾았던 메이드가 바로 너였군."


 


그녀는 곧 눈 앞의 상대가 시기적적하게 나타났었던 메이드임을 알 수 있었다.


 


"네, 그건 바로 저 였습니다. 어제는 경황 중에 제대로 보질 못해 인사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메이리의 카렌의 말에 수긍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메이리가 다가가자 마자 카렌이 몸을 숨겼기 때문이었지만 둘은 그 사실에 대한 건 서로 언급하질 않았다.


 


"아니 그건 아무래도 됐어. 그런데 메이리, 왕녀님의 전속 메이드인 네가 왜 나를 이 곳으로 부른거지?  어제의 일 때문이라면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말야."


 


카렌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메이리와 카렌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솔직히 말해 그렇게 여성의 비율이 많지 않은 아프스 요새 안에서는 여성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꽤 친한 편이었고, 또 서로에 대해서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요새 안의 유일한 여장수이자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카렌은 로자리아 왕녀의 신임을 단단히 받고 있어 둘은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어제 카렌님과 만나고 나서부터 내색은 하지 않고 계시지만 란셀롯님께선 무척 고통스러워 하고 계세요."


 


메이리의 말에 카렌의 심장이 뜨끔거렸다.
그녀는 메이리의 말을 통해 란셀롯이 자신 때문에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왜 그렇게 란셀롯님을 비난하셨지요? 왜 그렇게 그 분을 증오하시나요?"


 


메이리는 언제나 냉정하지만 사려깊고 아랫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카렌이  남을 그토록 비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목소리 뿐이었지만 그 안에 내포된 크나큰 애증을 메이리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알 수가 없군. 왕녀님의 전속 메이드인 네가, 왜 자꾸 란셀롯님에 대해서 말을 하는거지?"
"이제 제 담당이 바뀌었으니까요."


 


담담한 메이리의 대답.


그녀는 이제 자신이 란셀롯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음."

 


그리고보니 그녀가 개선을 했을 당시, 란셀롯을 부축해주던 것도 메이리였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란셀롯님께서 제 주인인 이상, 그 분에게 고민이 있다면 그걸 해결해줘야 드려야하는 게 메이드로서의 제 의무입니다."


 


메이리의 그 말에 란셀롯이 경악을 했다.


 


(어이 어이, 그건 좀 주제가 넘는 건 같은데...?)


 


숨어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란셀롯이 생각했다.


 


메이리는 현재 고용인치고는 너무 나서는 것이다.
주인인 그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보다 배는 신분이 높은 기사에게 따지듯이 묻는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행동이 아니라면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군."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납득을 하는 카렌의 태도였다.


 


(어이 카렌, 그걸 그냥 수긍하고 마는거야?)


 


란셀롯은 경악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여인의 대화를 좀처럼 이해를 할 수 란셀롯에 비해,


카렌은 메이리의 확고한 두 눈동자를 통해 여자로서의 감으로써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 눈 앞의 메이드는 자신의 주인을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그렇기에...)


 


그렇기에 그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며 스스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었다.


 


"...."


 


-따끔 따끔


 


메이리의 맑고 신뢰로 가득찬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게 되어 카렌은 가슴이 아팠다.
 
"...그 분은 너에게 있어서 무엇이지?"


 


카렌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어보았다.


 


"그 분은 제게 소중한...."


 


그녀의 질문에 메이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을 말하기에는 매우 부끄러우리라.


그렇기에 그녀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어 갔다.


 


"소중한....아주 소중한 주인님입니다."


 


그런 잠깐의 주저함과 부끄러움에 빨게 진 얼굴을 본 카렌은 이미 이 소녀가 사랑에 깊이 빠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이 잠시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순진한 모습이 우려가 되어 여자로써 그녀는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하였다.


 


"소중한 주인님이라... 하지만 그를 너무 믿지는 마. 그는 널 버릴지도 몰라."


 


그런 카렌의 말에 발끈한 메이리는 오히려 그녀에게 되물어 보았다.


 


"...왜 그리 그 분을 비난하시는거지요? "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메이리가 물어 보았다.


메이리도 붉은 매의 날개가 꺽이는 날 카렌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입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한때 서로를 사랑했다가 마지막 의견차이 탓에 갈라지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연인들의 이야기.



하인들 사이에서 그런 연애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잘 퍼지는 흥미거리였기에 그녀는 귀족들보다도 내부사정을 더 잘 알고 있었다.


 


"3년 전의 그 일 때문이라면, 그 때 그 분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요."


 


모두가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


리더라면 소수의 희생이 두려워 다수의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당시 란셀롯이 취한 행동은 병사들 사이에 아무런 불만거리가 되질 않았다.


심지어는 그 당시 부당하게 지휘관을 잃어 전멸을 금치못했던 적기마병단원들에게까지 말이다.


 


"입다물어!"


 


메이리의 말을 통해 그녀가 이미 자신과 란셀롯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음을 깨달은 카렌은 급히 고함치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가 그 때 그 상황에 대해 무엇을 알아?!"


 


급격히 카렌의 몸에서 쏘아져 내리는 날카로운 살기.


진정한 상급 기사는 살기만으로도 상대를 억압할 수 있다.


 



카렌 역시 이미 그런 경지에 든 상급의 기사.
그녀는 분노에서 비롯된 살기를 억제하지 않고 내뿜어댔다.



하지만 그런 기사의 살기를 받았음에도 메이리는(비록 지독한 살기에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음에도) 꿋꿋하게 대답을 하였다.


 


"몰라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요. 그 분은 절대 비난 받아 좋을 행동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것을요!"


 


자신이 존경하는 이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이런...!)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메이리의 전혀 밀리지 않는 태도에 카렌이 먼저 패배감을 느끼고 손을 들어야만 했다.


 


(정말 당돌한 아가씨로구나. 순진한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강골인 걸?)


 


이미 왕녀의 전속 메이드였던 메이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카렌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일반인이 받기에 위험한 살기임에도 그런 자신의 살기를 온전히 받고도 저리도 당당히 말을 하다니.
저런 메이리의 모습은 그녀로서는 단연코 처음이었다.


 


(사랑을 하는 여자는 강한 법...인가?)


 


왠지 이전에 란셀롯을 사랑했었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나도 저랬던 것일까...저런 식으로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카렌은 절대적인 신뢰감이 담긴 메이리의 눈동자를 대하자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끼고야 말았다.
이미 자신은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에 대한 선망?


 


"...후우~, 그 정도로 그를 믿고 있다면 더이상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않겠네."


 


카렌은 아직도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메이를 향해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


 


"하지만...사랑..에 빠져 있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야. 그를 완전히 믿지는 마."


 


말을 하는 카렌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사,사랑이라니요..."


 


카렌의 말에 메이리는 그때까지 당당하던 모습을 잃고서 당황을 하고 말았다.


 


"아,아니 꼭 네가 그런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은 시야가 좁아지니까 조심하라는 말이지,"


 


카렌 역시 자신이 왜 그런 말을 메이리에게 해주는지 모르는 듯 당황해했다.
왠지 자신의 연적에게 충고를 하고 있는 듯 하지 않은가.


그녀는 매우 복잡한 마음이 들어서 기분이 착잡했다.


 


일순간 보인 동요.


 


(응?)


 


사랑이란 말을 언급할 때 보인 카렌의 동요를 란셀롯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카렌이 동요를 해?)


 


순간 그런 카렌의 모습을 보며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지가는 란셀롯이었다.


 


(하하, 정말이지 저 메이드 아가씨는 대단하군.)
 

카렌은 몰랐겠지만, 란셀롯은 그녀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 하면 의외로 쉽게 카렌을 공략할 수 있겠는 걸?)


 


처음엔 자신을 변호해주려는 메이리의 당찬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 란셀롯이었다.
그리고 그런 당찬 메이리의 모습에 그 대단한 카렌마저도 한수 접어버리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정말 그녀때문에 우연찮게 카렌의 약점을 발견하게 되는군.)


 


그러던 것이 이제는 정말 난감하기만 했던 카렌의 공략법까지도 힌트를 주자,
마치 그녀가 하늘에서 자신을 위해 점지를 해준 행운의 천사인 것만 같았다.


 


-바스락.


 


란셀롯은 더이상의 상황을 지켜보아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인기척을 내었다.


 


"누구?!"
"란셀롯님!!"


 


다가온 이가 란셀롯인 것을 보자 마치 치정싸움을 하다 들킨 것 같은 느낌에 두 여인의 얼굴은 붉게 변해버렸다.


 


(하필이면 이런 때 란셀롯이라니...)



언제나 냉철하기만 했던 카렌의 얼굴은 그 동요가 더욱 심해 그녀가 감싸고 있고 얼음 가면이 일순간 산산히 부서진 것처럼 보였다.


 


-울그락 불그락


 


그렇게 붉어진 카렌의 얼굴을 보자 란셀롯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난공불락이기만 했던 성문의 빈틈을 발견한 것 같아서 말이다.


 


(크크큭~. 정말 의외의 길이 있었어.)


 


자신들에게 다가온 란셀롯을 보자 두 여인은 꿀먹은 벙어리인 마냥 아무런 말도 꺼내지를 못했다.


 


"..."
"...."


 


그렇게 다들 어색해하자, 그런 분위기를 수습한 것은 란셀롯이었다.


 


"메이리, 찾고 있었잖은가. 도대체 이곳은 무슨 볼 일이었지?"


 


카렌을 흘끔 쳐다보며 란셀롯이 질문을 던지자 메이리는 잘못하다 들킨 학생인 양 기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하였다.


 


"아, 그냥 카렌님께 급한 볼 일이 있어서요."


"그게 정말이오? 카렌 경?"


 


란셀롯의 물음에 카렌은 시선을 피한 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았소. 그럼 그대와 볼 일이 끝난 다음에 나 역시 메이리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니 빨리 보내주길 바라겠소."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말에 메이리는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카렌님과의 일은 이제 다 마쳤으니 같이 돌아가도록 해요. 란셀롯님."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바로 그의 뒤를 쫒아왔다.
마치 자신의 주인을 봐서 기쁜 듯한 강아지의 모습을 한 체로 말이다.


 


"아...!"


 


그런 메이리를 바라보는 카렌의 눈동자는 그녀도 모르는 동요로 흔들리고 있었다.


 


(푸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메이리와 돌아오는 길에  란셀롯은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정말 의외야. 역시 세상은 무조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이군.)


 


그는 자신을 억누르며 자신의 곁에서 마냥 행복한 듯 싱글 벙글 웃고 있는 순진한 메이드 아가씨를 쳐다보며 생각하였다.


 


(아무래도 메이리에 대한 나의 평가를 좀 많이 수정해야겠는 걸?)


 


정말 그녀는 최상의 아군이었다. 언제나 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동요라... 어쩌면 카렌은 아직도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군.)


 


카렌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의식을 바꾼 란셀롯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잘 하면 이건 정말 잘 써 먹을 수 있겠어.)


 


란셀롯의 뇌리에는 매우 사악한 시나리오가 마구 그려지고 있었다.


 


(크크크~ 아주 재밌는 시나리오가 될거야.)


 


카렌을 뒤흔들고, 다시 그녀를 수중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시나리오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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