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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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3話 기연을 찾아서 : 블랙드래곤
91.
말하기도 민망한 꿈이었지만 곧 잊을 수 있었다.
“안았냐고? 글쎄, 이 녀석은 동생 같아서 말야. 건드리기 뭣하잖아? 덤비면 어쩔 거냐고? 뺨이라도 때려야지 뭘. 그런다고 죽여버릴 수는 없잖아.”
웃으면서,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펠을 안기도 하고 안기기도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내 망상. 어머님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의사가 확실하니 그 꿈을 계속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고하여 쉽게 잊을 수 있었다.
“이곳을 빠져나간다라……어차피 텔레포트 마법이 있으니 조금 기다리는 것도 괜찮잖아.”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골드드래곤 펠을 협박하고 있는 블랙드래곤과 지금까지 펠이 모아둔 아가씨들의 처리 문제였다. 일단 아버지가 과거의 동료인 펠을 아내로 삼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모아둔 아가씨들은 평생 그와 함께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블랙 드래곤은…….
“해치운다. 드래곤하트라면 우리 아가씨들에게는 큰 힘이 되겠지.”
“과연. 뜻하지 않은 수입입니까.”
“그런 거다. 이 아가씨들에게 천천히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마력의 근원이 되겠지.”
“물론 악룡일 경우에만 그러시겠죠?”
“좋은 뜻으로 했다면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 블랙드래곤, 지금까지는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해체당할 미래의 가능성이 높아져버렸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지만 다른 드래곤을 협박하는 녀석이 다른 종족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줄 가능성은 적으니 냉정하게 해체하는데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죽이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몸 하나 만들어서 골드드래곤에게 안겨주면 되는 거고, 이 정도면 아가씨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연……. 응? 잠깐만.
“아버지. 기연이라하면 아버지보다 더 한 기연은 없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 검술에 재능이 없던 유리아도 지금은 3차 각성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쉽게 얻으면 재미없고 이런 일에 휘말려 들어보면 재미있잖아.”
“…….”
쉽게 얻으면 재미없다는 말에는 동감. 이런 일에 휘말리기 시작하면서 아가씨들이 악몽을 꾸는 날이 많아진 것만은 안쓰럽지만 어머님들 중에 지옥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이 아가씨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 아버지가 생각하는 지옥이 뭔지, 노리는 것이 뭔지가 궁금해지는 상황이지만 별로 상관없으려나. 그런 나의 의문에 아버지는 간단하게 대답해왔다.
“우리 가족들이 최고로 치는 가치가 근면함 아니겠냐. 고생하다보면 저절로 몸에 근면함이 배이게 마련이지.”
아니, 그건 아닌데요. 아버지가 근면하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근면하다는 겁니까.
“근면하잖아. 100명을 넘어가는 아내들에게 매일……우웁!”
“그런 쪽으로 근면하다는 건 색골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가치관은 어딘지 모르게 삐뚤어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하는 대화를 마지막으로 기다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로 아버지와 나, 그리고 골드드래곤 펠이 의견을 나누는 수준이었고 아가씨들은 그저 따라오는 입장이었지만.
“그럼 수련을 해보도록 할까?”
아버지는 빙긋 웃으면서 남은 시간 동안 할 일을 말했다. 그리고 아가씨들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나 내가 감독하는 수련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극한에 닿을 것 같은 수련의 끝에는 몬스터군단과의 일대 다수의 대련이 있었다.
“오, 오우거!”
“트롤이라니!”
“그것도 다수!”
“어째서 한 사람씩만!”
“고블린과 일 대 다수가 아니었던가요!”
“하우우우우…….”
그저 묵념하자.
.
.
보통 안마를 해주는 장면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보는 사람들이 야한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낚시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았지만 지금까지 근육통이란 것은 물론이요 피로조차 느낄 리가 없는 아내들과 지내다보니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풀 방법이 없는 안타까운 상황.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이번에 왜 작가들이 그런 충동을 느끼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으읏! 하아아.”
“여기?”
“네……. 흐읏, 후아앗?”
새로운 몸을 얻었다고 해도 강해지는 데에는 뼈를 깎는 수련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어느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며 그 너머에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으면 진일보進一步할 것이라는 말까지도 존재하는 형편이다. 반드시 강해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떠한 사건 때문에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한 아가씨들은 그런 힘든 수련을 잘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힘든 수련을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내들에게 해준 적도 없는 안마라는 것을 아가씨들에게 해주게 되었다.
“자, 허리를 쭈욱!”
“흐그긋!”
제일 먼저 손을 주물러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다음은 어깨, 그 다음은 허리를 안마해 준다. 이 정도의 안마에도 페라게야는 이미 동공이 풀린 눈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저항이 없는 상황. 내 손끝이 닿을 때마다 페라게야는 칠칠치 못하게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면서 신음만을 내는 중이다. 그 옆에는 먼저 안마를 받고 의식을 잃어버린 사샤와 올가가 페라게야와 마찬가지로 침을 흘리면서 깊은 잠에 들어있는 상황.
“후아……하아……후히헤호핫?!”
“극락안마시술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가씨. 우후후후.”
이번에는 허리. 옆구리 전체를 쓰다듬듯 풀어주고 비벼주고 주물러준다. 휘두르기를 천여번 반복한 근육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확신이 들 정도가 되자 이번에는 다리로 옮겨간다. 원래라면 다리부터 해주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이상하게 다리를 안마해주기 시작하면 아가씨들의 몸이 뜨거워지는 부작용이 있어 순서를 바꾸었다. 며칠 정도 순서를 지켜서 안마를 해주었더니 바로 잠자리를 요구하듯 유혹하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이렇게 한 것이다.
“…….”
야무지지 못하게 침을 흘리고 있는 건 속되게 일컫는 말이겠지만 아래입도 마찬가지이려나. 옆에서 잠들어있는 갈색머리 자매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마 깨어나면 욕실로 직행해야 할 것이다. 그럼 나도 들어가게 될 것이고……으음.
그게 그거네?
“히야아아앗!”
“발목을 돌리고 발가락을 풀고 뭉친 근육을 풉시다. 랄랄라.”
“하우우우…….”
아, 페라게야도 기절했다.
다리를 안마하던 중에 절규를 닮은 교성과 함께 굉침한 그녀를 보고서는 상황을 확인한다. 실금이라도 하면 시트를 바꾸어주어야 하니까.
“실금하지는 않았네.”
그녀의 아래 속옷이 젖어있는 것을 슬쩍 확인하고서는 쓰게 웃는다. 처음에는 실금까지 해버렸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이력이 난 모양이다.
“기다릴까.”
페라게야의 발가락을 주물러, 마저 피로를 풀어주면서 고민한다. 이래도 저래도 어떻게든 하루에 세 번씩은 관계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아침에 한 번, 목욕탕에서 한 번, 잠자리에서 한 번. 너무 자주하면 나중에 불감증에 걸리는게 아닌가 몰라.
.
.
아가씨들이 깨어날 때까지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이 드래곤레어의 주인에게 놀러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그의 방까지 가려면 몬스터들이 순찰을 도는 구역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여성체로 변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귀찮아도 이 레어를 거덜내는 것을 피하려면 해야 하는 일. 한숨을 쉬면서 귀찮은 백조들의 몸가짐을 답습하여 옷을 입었다. 츄리닝에 딱 올려 묶어버린 머리에 슬리퍼. 이것으로 완벽하다.
무엇이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아버지의 공격을 피하는데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말하겠다. 전생에 고시촌에 있던 아가씨들에게서 배운 비기 중의 비기다.
“이 정도면 남자친구는 아예 생기지도 않겠네.”
가슴이 큰 것도 아니고.
“키워볼까?”
문득 생각난 김에 키워보았다. 순간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헉.”
너무 큰 것 같다. 보통 정도로 키워보자.
“걸리적거리네.”
다시 납작한 가슴으로 되돌리고는 한숨을 쉰다. 걸리적거리더라도 남자들의 시선이 가슴에 향하는 한 아가씨들은 아름다운 가슴. 풍만한 가슴을 원할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영원한 딜레마.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로망.
“출발하자.”
그런 생각은 뒤켠에 접어두고 출발한다. 중간에 마주친 몬스터들은 저마다 미소라고 생각되는 표정으로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서는 제 갈 길로 갔다. 아아, 심심해.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심심함에 몸부림치면서 골드드래곤에게 가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나이트가운을 입고 있던 그, 아니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근처에 있던 메이드를 불러 차를 대접해주었다. 기본적인 예의에는 각별히 충실한 녀석이었다.
“심심해서 찾아왔어요. 심심해요.”
차를 마시면서 다시 무슨 일로 찾아왔냐기에 그런 말로 대답했다. 왠지 모르게 녀석의 눈이 반짝인 것 같긴 한데 신경쓸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 신경쓰이기는 하지만……그런 내 생각을 긍정하는 것인지 펠은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서는 애교를 떨었다. 그리고 그녀의 애교에 내가 기분좋은 듯 미소를 짓기 시작하자 요청을 해왔다.
“그럼 상담 좀 해주세요.”
“아, 뭐 그러죠.”
심심한데 잘되었네. 무슨 말인지나 들어보자 생각하면서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충 어떤 말이 나올지는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예상만 하는 것보다는 한 번 말을 들어보는 것이 더 나으니까.
“저……여자로서의 매력은 없는 건가요?”
음, 역시 이건가. 생각하면서 그녀를 달랠 궁리를 한다. 당장 저렇게 버림받은 눈을 하고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 차였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그녀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여자로서의 매력은 충분할 거야. 다만 어머니들에 비하면 부족할 뿐.”
“……믿을 수 없어.”
아, 이건 아닌가.
“어머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잖아? 매혹으로 먹고 산다는 서큐버스들도 뒤로 밀려날 정도로 무서운 분들이야. 아직 갈고 닦지 못한 펠에게는 조금 무리일지도.”
“……우우우.”
안돼. 이대로는 울어버릴 것 같아. 부랴부랴 대책을 생각한다. 하지만 대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사고를 쳐버리는 내 입. 절망이다.
“갈고 닦으면 멋진 여자가 될 거니까 걱정하지마.”
하지만 남몰래 절망하고 있던 내 마음과는 달리 펠은 얼굴을 붉히면서 입을 딱 벌렸다. 아직 풋풋한 외모를 가진 여성체로 변해있는 펠이라 꽤나 그림이 되는 광경……아니, 어쨌든 달래는데 성공한 것 같다.
다른 누이들에게 경쟁심리가 있던 아내들에게 아부하느라 늘어난 아부신공 만세!
“정말로 그럴까요?”
“그래, 드래곤이 변한 모습은 미의 결정체이니까 말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골드드래곤 펠. 이대로라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는 거야?”
“어, 그게…….”
아, 그게 말이지. 일단 나는 남자고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고 일단 남자가 보는 멋진 여자를 말해달라고 하면 대충 설명은 해줄 수 있겠는데 말이지. 대체 그 영역에까지 도달하려면 말이지. 그게 음…….
“잘 모르겠다.”
“으아앙!”
아, 결국 울었다.
92.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아가씨들의 수련을 도와주고 나만 보면 울면서 도망가는 펠을 달래주다보니 금방 지나간 것이다. 물론 아가씨들을 안마해주고 촉촉해진 눈으로 덤비는 것을 상대하는 것도 지루함을 없애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크흠!
“그 블랙드래곤, 올 때가 되었네.”
그 일주일 동안 아가씨 트로이카들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 아버지는 한가하게 그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밤마다 들려오는 교성소리에 새로운 교성이 하나 추가된 것 같던데 아버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건가요.
“난 너처럼 의지박약은 아니니까 말이지.”
그러십니까. 여성의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은 다 확인해보셨다는 이야기군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뭐, 기억력도 좋지 않으니 딱 좋은가…….”
“뭔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
으음, 무슨 말일까. 뭐, 고민해봐야 상관없겠지. 생각하면서 지루한 기다림을 계속한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왔나보다.”
기척을 보면 꽤 강한 녀석이 하나 들어온 것 같다. 일단 몬스터들도 결사항전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필시 이 녀석은 드래곤이겠지. 우리가 기다리던 블랙드래곤.
“달링!”
그리고 잠시 후, 검은 머리의 미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나저나 들어오자마자 달링을 찾다니.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드는구만.
“뭐야. 이 여자들은.”
달링을 찾던 건 언제고 여자들이 보이니까 질투하는 거냐.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검은 머리의 미녀. 블랙드래곤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런 내 미소에 화가 났는지 블랙드래곤은 언령을 이용해 나를 공격해왔다.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
뭐냐 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골로 보낸다는 바로 그거냐.
피식 웃으면서 튕겨냈다. 언어에 실려있던 막대한 힘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뭐, 뭐야 이건!”
“혹시 이런 이름 들은 적 없어? 세인 아슈레이와 그 아들 진 맥세인 아슈레이.”
우리말이라기에는 뭣하지만 한자로 변환하면 권능언령살權能言令殺이라고 했던가. 어딘가의 판타지에서 이미 써먹은 소재인 것 같지만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주문을 기합도 없이 손짓만으로 날려버린 내 존재를 보고 ‘사기야!’라고 외치는 블랙드래곤을 보고 싱긋 웃었다.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골로 보내려고 한 죗값은 어떻게 계산하는 것이 좋을까나.
“좀 맞자.”
용병들이 쓸 법한 싸구려 검을 우그러뜨려 봉처럼 만든 나는 방긋 웃으면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서야 상황을 짐작한 듯한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적당히 해라.”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잠시 후, 골드드래곤 펠의 레어에서는 맛깔나는 격타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어느 불행한 드래곤이 절규를 내질러 이를 불안하게 여긴 주변 마을과 도시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나 뭐라나. 일단 몸에 상처는 하나도 없으니 상관없겠지. 참고로 가죽에 상처가 남을 정도로 때리지는 않았다. 그냥 감각을 배증시키는 마법을 사용한 것 뿐이다. 주로 통각. 여자의 몸에 상처를 내는 건 성미에도 맞지 않고 변태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드래곤은 남자건 여자건 다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으음, 더 때릴 것을 그랬나.
.
.
“우에에에엥!”
“시끄러.”
“넵. 훌쩍.”
일단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즉각 공격을 해온 이 괘씸하기 그지없는 블랙드래곤을 징벌한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우는 녀석에게 심문을 시작했다. 참고로 여자이기 때문에 주리를 튼다거나 하는 고문은 하지 않는다.
여성을 존중하는 남자이니까 나는.
“남자가 여자가 되어 있어도 되는 건가요? 그게 여성을 존중하는 방식?”
“아버지의 옛동료에게 재산피해를 입히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야. 그보다 꼬치꼬치 따지지마. 나도 이런 모습하고 있기 신경질나니까.”
“넵!”
어쨌든, 심문을 시작한다.
“호오…….”
“펠에게는 상냥하게 대접받고 싶고, 훌륭한 남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고…….”
이 블랙드래곤의 이름은 에우팔키온 시에리에타 알디노어 디스플러스. 왠지 담배가 생각나는 이름이었지만 일단 상념은 그만두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자못 흥미진진했다. 말인즉슨 그녀는 연약한 녀석을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그런 녀석을 강한 존재로 키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것이 펠이었다.
모성애가 넘치다 못해 애를 잡을 성격인 것 같았지만 아버지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절벽에서 떠민다고 하지만 기어 올라오면 왜 다시 떠밀지 않는가. 배신, 증오, 분노를 이겨내야만이 제대로 된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가 한 행동은 그런 우리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렇다는 말은 아가씨가 다른 녀석들을 동원해 펠을 괴롭혔고, 견디다 못한 펠이 뛰쳐나와서는 우리 일행에 참가했었다는 이야기로구만.”
“네. 다행히도 당신에게 빼앗기지는 않았지만요.”
어쨌든 그녀에게 딱 걸린 펠은 그 이후 히키코모리처럼 처박혀서 사는 것을 선택했고 이는 이 아가씨의 성질을 자극했다. 그래서 냅다 돌입해서는 두들겨 패고는 ‘결혼하겠다.’라고 선언한 것. 이 대목에서 이 아가씨가 얼굴을 붉히면서 일생일대의 결심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직감했다.
이 아가씨는 츤데레와 얀데레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드는 유형의 위험한 여자라고.
“그런데 첫날밤은 왜 그랬나?”
“레어를 화려하게 치장할 정도로 하려면 꽤나 강해졌을 거라고 짐작했거든요. 사실 그렇게 강해진 펠이 저를 이끌어주기를 바랬는데…….”
그랬는데 알고 보니 펠 녀석은 금광을 개발하여 그 돈으로 레어를 꾸민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이 아가씨가 알지 못한 것은 수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녀석의 말에 제깍제깍 반응하여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유사인류를 포함한 인간과 드래곤들은 건드리지 않고 몬스터들만 닦달해서 이 정도로 만들어냈다는 것. 그녀는 만족했고 그에게 냉큼 안겼다. 하지만 진실은 펠이라는 녀석이 계약을 통해 고용주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펠이 벌벌 떨면서 이 아가씨를 품고 있었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안 그녀는 즉각 응징에 들어갔다.
말하자면 (버러지들을 때려잡고 부려먹으면서)레어를 (무자비한 수탈과 저임금노동을 통해)황궁처럼 만들라는 명령은 지켜지지 않은 셈. 화가 난 그녀는 부끄러움도 잊고는 다시 녀석을 때려버렸다고 한다. 그 순간 녀석이 사정을 했다나 뭐라나.
“하나는 S인 것 같은데 M기질이 농후하고, 다른 하나는 극도의 M으로 자라버린 녀석이라는 이야기군. 그걸 S로 만들려고 하니 무리가 생길 수밖에.”
최소한 여자라도 짓밟으면서 자신이 이 세계 최강의 종족이라는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펠 녀석이 매너좋은 남성으로 아가씨들을 대한 덕분에 실패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그녀는 자신에게 원망이 쏠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의 곁에 있는 여자들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바로 공격을 가한 거로구나.”
“네.”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를 향해 공격을 날린 것은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용서해주세요. 제 눈이 멀어서…….”
“다시는 안 그럴 거지?”
“네.”
음, 이 정도면 되려나.
“아버지.”
“그래.”
드래곤이면 나이가 들면 강해질 것이고 매너좋은 남자로 잘 자라났으니 이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이야기를 들은 입장에서는 그녀의 몸에 칼질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랄까.
“드래곤하트는 어쩌지?”
“포기하죠.”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는 안되겠지.
어쨌거나 이런 사실을 알아버린 아버지와 나는 이들의 결혼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야 어쨌든 펠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진실한 것 같았고 앞으로 이런 일을 하지도 않을 거라고 말했다. 물론 그녀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은 있었다. 그래서 드래곤으로서 힘에 집착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약자들을 보살펴주는 펠의 모습이야 말로 진정으로 강한 드래곤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그러자 그녀는 감동했다.
“펠이 아니었으면 전 당신에게 반했을지도…….”
어이, 어이. 감동하는 것은 좋은데 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강한 모습. 저를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 반했어요.”
남편(?)을 앞에 두고 여자에게 반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한숨부터 나왔다. 떼어내려고 해도 들러붙어서는 ‘아앙!’하는 교성만 내는 그녀의 모습에 포기. 그 모습에 아버지는 활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드래곤 두 명과 미시어스 제국의 황족 두 명은 모두 여성의 몸. 아버지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그거냐.
“언니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배경에 백합이 피어날 것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고백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쩌라고.
“어디보자 나는 우리 진을 좋아하고 펠은 나를 좋아하고 시엘은 펠이랑 진을 좋아하니까……재미있겠는데?”
아버지 불난데 또 불 지르지마.
“아얏!”
아버지의 머리에 꿀밤을 한가득 안긴다. 이 아가씨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천장을 바라본다. 골치가 아프다.
.
.
다음날.
무사히 첫날밤을 보내게 하려고 두 사람을 밀어넣었더니 아버지에게 달라붙는 펠과 나에게 달라붙는 블랙드래곤, 시엘 때문에 그 일은 실패하고 말았다.
“에고 소드입니까?”
“응, 그거 무지 좋은 거야.”
대신 아가씨들에게는 각각 전설의 무구라 할 수 있는 무기들이 주어졌다. 우리 일행에 끼어들려는 블랙드래곤 아가씨, 시엘의 뇌물이었다. 덕분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 우리 일행들은 그녀와 펠의 동행을 허락한 상태였다. 이건 대체 뭔가요.
“좋잖아.”
“하나도 안 좋거든요?”
웃는 아버지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기연이라고 해야 하나? 드래곤이 둘이나 들러붙었으니까.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묘하게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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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추가. 플래그는 없음. 저러다가 떨어질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