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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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95-1.
흔히들 말하기로 인간은 이성을 가진 생물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성을 통한 논리적인 생각, 판단을 통하여 사회를 만들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이야기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다워질 수 있었고 이렇게 문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솔직히 의문이다.
아버지는 포로가 되어 갇혀 있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머리에 떠오른 건 다음 몇 가지의 이야기였다.
첫 번째 예시. 카더라 통신(필시 누군가의 창작)에 의하면 2차세계대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와 어머니를 벽이 온통 철로 된 방에 가두고 불을 때어 살이 익을 정도로 온도를 올릴 경우 극한에 이를 때까지는 어머니가 아이를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어머니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발바닥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한계에 몰리면서까지 아이를 품에 안고 발을 동동 구르던 유대인 엄마의 마음은 본능에 가까운 모성애이고 그런 모성애에 질리기도 하고 감탄하면서도 끝내 온도를 더 올리고야만 실험실의 독일인 과학자들의 행동은 이성에 가까운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반대라고 생각하면 서글프겠지.
두 번째 예시. 이것은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이겠지만 어느 남자가 강도를 당해 쓰러져있는데 레위인(성직자계층)이나 부자는 그냥 지나치고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치료해주고 숙소에 묵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레위인이나 부자가 강도를 만난 사람을 구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 것에 대해서 이성이 작용했다고 생각해야 할까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 생각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건 상관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다. 사마리아인이 한 행동은 이성이 먼저 작용한 것이었을까 본능이 마음을 먼저 자극한 것이었을까. 이성이라면 서글프고 본능이라고 한다면 입맛이 쓰다.
――본능이 나은가 이성이 나은가. 이성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가. 이성은 본능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이성은 우월한가. 본능이 아니라 이건 감성이라고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와중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강해져서…….”
“살아남은 다음.”
“생각하도록.”
그리고 아버지는 살아남아서 별의 별 기행을 다 하면서까지 이 생각에 대한 진위를 판단해보려 노력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에게 이성이라거나 본능이라거나 본능이 아닌 감성일지도 모를 감정들은 서로 영향을 주며 본능에서 나오는 욕구, 욕망을 철저하게 무시하려는 건 오히려 반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5話 어비스 : 과거의 이야기2
95-2.
몇 번이고 아버지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여 꼼수를 부렸다. 아버지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그것을 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약간은 불완전한 기억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의 위기를 알아차렸다.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면, 간단하다. 호러라고 해야 할지 그로테스크라고 해야 할지, 광기의 소산으로 보이는 종말의 시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에 아버지가 끊임없이 자신의 기억에 침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잊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잊어버린 아버지는 폭주할 것 같았다.
“어, 어라?”
그 폭주하려는 기색에 긴장하면서 아버지를 깨운다. 지금과는 달리 순수하기 그지없던 소년이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버린 아버지는 혼란에 빠졌던 것도 잠시 다행히도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가 과거의 기억에 먹혀버려서 폭주했다면 아가씨들을 보호할 여유도 없이 정면으로 싸워야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이 행성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필시 둘 모두 파멸했을 것이다. 아마 어머님들도, 아내들도 구할 여지가 없었겠지. 그대로였다면.
“과거의 기억에 먹히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 미안하다.”
허약해진 어조로 말하는 아버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 기억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몸소 체험한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생각하면서 벌벌 떨고 있는 아버지를 품에 안았다. 아버지도 평소처럼 장난을 치지 않았다. 다만 품에 안겨서는 한숨만 내쉬었을 뿐.
“좀 진정하셨습니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당시의 아버지처럼 2단계 각성을 바라보는 수준에 불과했다면 필시 폭주했으리라. 그 정도로 전쟁에 가까운 싸움은 끔찍했다. 다만 아버지같은 사람이 무엇이 무서워서 이렇게 폭주하려고 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달랬다.
무엇인가 끔찍한 것이 그 배후에 있는 것 같았다. 대체 그 무너진 성에 무엇이 있었기에…….
“그런 것 같긴 한데. 이번엔 두근두근댄다고 할까?”
다행히도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난 아버지는 농담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지만 않았다면.
“아들에게 뭐하려는 짓이냐!”
“아파!”
투덜거리면서 여성체로 몸을 바꾸었다. 그러자 눈빛이 바뀌면서 내 품에서 볼을 비비는 아버지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기겁했지만 이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 몸, 여성이 된 몸을 더듬는 아버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거부할 수 없었다. 이렇게 처연한 눈빛을 한 아버지를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참을 뿐이다.
“이번만 참습니다.”
“응, 알고 있어. 폭신폭신한게 기분이 참 좋아♡”
어쩔 수 없지.
엄마 품에 안긴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옷감 위로 슬금슬금 가슴을 부비는 행동에 왠지 모를 감정까지 느낀다.
“이런 기억 때문에 바람둥이가 되었을지도 몰라. 기억이 나지 않게 하려면 허탈해질 정도로 몸을 굴리는게 편했으니까.”
“그런 겁니까.”
당시 아버지가 안았던 분들이 살아있었다면 어머님의 숫자가 20명은 더 늘어났을 지도 모른다. 어쩐지 이런 아버지의 행동이 한국에서 돌아온 나와 비슷했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정녕 나는 아버지를 닮아가는 걸까.
“여자들은 무서워. 대충 무언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일처럼 슬퍼해주었으니까. 운혜도 그렇고, 아라니엔도 그렇고……다들 그랬어.”
“좋은 분들이니까요."
"나에게는 과분한 인연들이었어.“
그런 대화를 끝으로 다시 아버지의 기억을 들여다본다. 이번에도 위험하다 싶으면 깨워달라는 아버지의 눈에는 약간의 겁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눈빛에 몇 번이고 가슴을 빌려줄 생각을 한다. 물론 그 이상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아버지가 기억을 떠올리고 나는 바라본다.
.
.
다시 한 번 아버지의 기억을 들여다본다. 가장 먼저 기억이 나는 것은 냄새. 피냄새였다. 다음은 소리. 지옥에서 울리는 것 같은 신음들이 귀를 때린다. 환청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위기에 처해있었다. 다음에 활성화된 것은 촉각.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 기분 나쁜 느낌에 아버지는 몸을 움찔 떤다. 다음은 시각. 씻어내지 못한 피가 바닥에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회백색의 돌 위로 흘러내린 핏자국은 검었다.
“미친놈들, 제정신이 아냐.”
아버지의 눈이 몇 번 흔들리더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짚어본다. 벌써 여섯 번째 충돌. 녀석들의 본거지까지 치고 들어왔지만 한 번도 우세를 점하지는 못하였고 결국은 위험에 빠지기까지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행들을 어떻게든 도피시킨 아버지는 붙들리지 않기 위해 분전하였으나 결국 녀석들에게 잡히고야 말았다. 그리고 포로가 된 다음날, 아버지는 마치 폐인처럼 무릎을 감싸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누구하나 들을 리 없는 말이었지만 공포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미친놈들.”
아버지의 기억 속, 아마도 어비스 출구 쪽의 무너진 성이라고 짐작되는 곳에 갇힌 아버지는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눈물범벅이 된 채 이를 갈고 있었다. 기억을 본 나로서도 충격을 받은 것은 매한가지. 이것이 기억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저렇게 애처롭게 떨고 있는 아버지를 위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 허상. 아버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쉽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조금은 나아진 모습이었다. 이것은 아버지의 기억이다. 이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핼쑥해져 있었지만
“정말로 제정신들이 아냐. 그 녀석들.”
하지만 과거의 아버지는 씹듯 내뱉는다. 아버지가 말하던 녀석들이라 함은 일본 극우파들을 말하는 것이며, 그들 모두를 지칭할 뻔한 것이다. 물론 지칭할 뻔 했다함은 아버지의 인물분류체계에 귀찮을 정도의 기준이 하나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며 녀석들이라는 지칭을 받은 녀석들은 최악의 평가를 받은 것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는 있었다.
‘도망가. 빨리.’
‘이런 꼴을 보려고 충성했던 건 아냐……빨리 도망가.’
‘미안……하다.’
아버지가 바라마지지 않았던 내응을 하면서까지 일행이 도망갈 수 있게 도와준 세 명은 빠진 것이다. 그들이 내응해준 이유에는 어디까지나 인간답게 살겠다는 의지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같은 것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모는…….
‘그리고……제발 죽여줘.’
‘으아아악!’
기괴하기 그지없었지만.
‘죽여줄 거지?’
혀가 길쭉하게 나와 뱀처럼 흔들리던 극우파A는 그렇게 말했다. 목이 길쭉하게 나와 있고 송곳니 외에는 이빨이 없어 먹을 것은 그저 삼키는 수밖에 없던 극우파B와 관절이 보통 사람들과는 반대로 되어 있던 극우파C는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제기랄!”
“이런…….”
기억을 떠올리고 있던 아버지가 다시 한 번 폭주할 기미를 보였다. 아버지의 사지를 봉하고 바닥을 나뒹군다. 아버지의 절규가, 오열이 내 가슴에 축축히 젖어들었다.
.
.
다시 한 번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기억을 들여다본다. 가슴 쪽이 눈물과 타액으로 찝찝하게 젖어들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인간의 꼴은 아니지만 인간으로 죽을 수 있게 도와줘.’
어쨌든 여섯 번째 충돌 끝에 아버지가 이곳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은 먼저 말해두었다.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던 세 사람의 모습에 머뭇대다가 남은 두 녀석들의 부하들에게 붙잡힌 아버지는 포박당해 녀석들에게 끌려갔다.
“반가워.”
“미친놈들, 동료들을 저 꼴로 만들다니 제정신이냐?”
마치 왕좌에 앉은 폭군처럼 눈을 내리깔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녀석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으르렁대었다. 녀석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한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건가?”
“뭐?”
“마족들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그 영혼이 포식당해서 영원한 괴로움에 빠지기 전에 우리가 구해왔다고? 조금은 감사해도 좋은게 아닐까? 그것도 전원을 빼오느라 힘들었다고. 칭찬 좀 해줘. 그 숲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행운아씨.”
“…….”
뜻밖의 말이었다. 100명의 동료들, 아니 이운혜님과 아버지와 눈앞의 두 명과……기괴한 꼴로 바뀌어버린 세 사람을 빼고 93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모두 구해왔다니. 증오가 삽시간에 쓸려내려갔다. 솔직히 으르렁대기는 하였지만 앞의 세 사람이 한 일도 있고 하여 녀석들과 힘을 합칠 수 있다면 합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그들을 구해내었다면, 그들이 무사하게 있다면 그들과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 폭군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용서해줄 수 있다.
“미……미친 녀석들. 제정신이 아니었어.”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그리운 얼굴들’을 본 순간 아버지의 입에서는 절로 욕이 치밀어 올랐다는 것이었지만. 이 순간부터 아버지는 이 녀석들과 한 하늘 아래에서 살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으니까. 녀석들과의 동맹은 이로써 물 건너간 것이었다.
“물론 제정신이야. 아주 멋지게 제정신이야. 마법이 있는 세계에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거든. 하지만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실험해줄 수가 있지. 이런 미친 시대, 미친 세계에서는 해도 상관없는 일이거든. 덕분에 기쁘게 실험을 해보고 있어.”
“철저하게 실험이라……철저하게 미쳤어.”
아버지는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서 유추할 수 있는 녀석들의 행동에 이를 갈았다. 녀석들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끌려온 곳은 이 세상의 지옥이었다. 얼마나 지옥이었던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공간이었다. 최소한 지옥에서는 이런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극우니까 이런 미친 짓을 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지만 거기 안에서도 등급이 또 나뉘는 모양이야. 너희들은 말하자면 최악이라는 이야기겠지.”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아버지라면 일단 무너지는 척하고 기회를 보아 녀석들을 척살하겠지만 이때의 아버지는 그럴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없었는지 도발에도 쉽게 걸렸다. 무엇보다 보이는 광경이 끔찍했기 때문이지만.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우리들의 친구들은 이렇게 죽여달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나는 실존주의라는 것을 옹호하는 입장이라서 말야. 이런 모습으로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미친놈들.”
731부대가 한 행동이 양호해보일 정도의 풍경이었다. 그 정도로 93명의 동료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설명하겠다.
“세황이 형……나츠키 누나.”
“멋지지? 아마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을 거야.”
첫 번째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하여’라는 표지판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의 몸이었다. 입술, 가슴, 성기가 모두 결합되어 그대로 붙어버린 몸에 서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말라고 눈꺼풀을 꿰매어 감지 못하게 한 상황.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제대로 먹지 못한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죽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서로에 대한 마음이 고통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래도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 있는 건 기적이었다.
일제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던 체벌, 서로의 뺨을 때리라는 체벌을 시켰을 때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뺨을 후려치게 되더라는 이야기처럼 흘러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레베카씨…….”
“모두의 씨를 받아내었으니 모두의 아이를 가지는 것이 가능해야지.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아.”
두 번째는 ‘모두의 어머니’라는 표지판 아래에 있는 인도 여성이었다. 그녀의 생식기는 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가 있는 방안이 마치 그녀의 자궁속인 듯, 그녀의 몸에서 나온 붉은 피막과 혈관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좋겠지만 그녀와 관계를 맺었을 사람들이 모두 태아처럼 물을 가득 채운 막에 갇혀 벽에 매달려 있었다. 필시 폐에 물이 들어가 고통스럽게 익사하고 말겠지.
그녀가,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이렇게 고통을 받았던 이유는,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강한 남성에게 몸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이 녀석들에게는 죄악이었다. 그리고 그 죄악을 자신들이 감히 처벌하겠다는 듯 새디즘으로 단단히 무장한 녀석들은 이런 일을 저질러버렸다.
“최악이야.”
더욱 최악인 것은 녀석들이 웃고 있었다는 것. 그런 녀석들에게 아버지는 잔뜩 골이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필시 조롱하려는 것이었겠지.
“결벽인가? 최악이구만.”
결벽이 심하면 이렇게 될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만두자. 녀석들은 이런 자신들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즐길 정도로 인성을 버리고 있었으니까.
“최악이라니, 서로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해주는 우리가 최악이라니 말이야. 이런 상냥한 사람이 또 어디에 있는가 말야.”
“돌았구만.”
녀석들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녀석들은 약을 먹은 개들에게 깔려 수간을 당하고 있는 금발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는 과거 아버지가 이 세계에서 깨어나기 전에 바위 뒤로 아버지를 끌고 가려고 했던 동성애자였다. 상체는 여전히 남자였지만 하체는 여자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라면 꿈에 나올까 무서운 몸이었지만 지옥과도 같은 모습을 본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놀랍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것이 슬펐다고 한다.
“돌았다고는 할지 몰라도 우리는 이런 행동에 만족해. 이어지지 못한 사랑에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하는 말이야. 이건 우리의 의무일지도 몰라. 물론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건 감추지 않겠어. 적당히 네 녀석의 정신을 흐트러놓고 제물로 바치기 전에 극락을 맛보게 해준다고 해두지.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참, 그리고 너에게 마음이 있지만 육체의 문제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을 도와야겠군.”
무슨 짓을 벌일 생각인지 이미 정신이 붕괴된 듯 동공이 풀린 남자에게 다가가는 녀석들의 행동에 아버지는 경악했다.
“이봐, 토머스씨. 당신이 그렇게 안고 싶어했던 남자가 왔다구.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정XX야. 하지만 당신이 게이라서 싫어했던 건 알지? 그래서 우리가 도와주려구.”
“그만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떠올려버린 아버지의 절규에도 녀석들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머리를 열고 뇌를 꺼낸다. 속이 뒤집힐 것 같은 상황에 아버지는 말을 잊었다.
“자, 과연 뇌를 바꾼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여자가 될 수 있을까요?”
“두근두근대는데?”
그렇게 저희들끼리 장단을 맞추며 즐거워하던 녀석들은 시녀를 하나 붙잡아와서는 그 머리에서 다시 뇌를 꺼냈다. 그리고 서로 교환. 비명과, 튀는 피와, 숨막힐 것 같은 악의에 짓눌린 아버지는 그저 부들부들 떠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완성! 자, 한 번 시험해볼까?”
“어색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으아아아아아악!”
덜그럭거리며 다가오는, 시녀의 몸을 한 동성애자의 모습에 아버지는 기어코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그러나 온 몸이 결박당한 상황에서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 결국은 붙들려 그날 밤, 죽어가는 그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는 억지로 당한 후 죽음을 맞이할 그의 옆에서 하룻밤을 새하얗게 지새워야 했던 것이다.
“뭐야. 공포로는 안되는 건가? 어럽쇼? 죽어버렸네? 괜찮아. 살리면 될 거야.”
“미친……개새끼들.”
다음날 아침, 편안하다는 눈빛으로 죽어버린 그를 다시 되살린 녀석들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 전날 아버지를 도와주고 죽어버린 세 사람의 극우파였던 사람들도 되살아나 있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섬뜩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방금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두 손을 쭈그린 발에 두르고 중얼중얼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깨우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아버지!”
96.
“그 뒤로……끔찍한 모습이 된 동료들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조금씩 더 배우고 나서는 그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는……녀석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지. 훗날 다시 만난 녀석들은 동료들을 되살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부숴버린 내 행동에 혀를 차더군. 끔찍하다고 말야.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힘만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들에게 새로운 정상적인 삶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있어.”
그들이 동료들의 불사, 몸과 영혼이 둘 다 존재하는 한 영원히 죽음에 빠지지 못한다는 법칙을 이용하여 동료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주던 것이 나쁜 것인지, 죽여달라고 해놓고서는 마지막 순간 ‘살려줘.’라고 외친 동료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다시는 살아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버린 아버지가 나빴던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잘 버티셨어요.”
“으응. 고마워.”
그것은 아버지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지옥이었다. 그런 지옥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이렇게 위로받기를 원하는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강하지 않은 거라고?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아버지, 전생에 제가 대학까지 졸업한 ‘형’이었잖아요?”
“뭐야, 갑자기 그건. 지금은 내 아들이지.”
“그때의 기분으로 말씀드릴게요.”
“우우, 아들에게 깔봐지는 아버지라니. 절망했다!”
내 빈약한 여성체의 가슴을 주물주물 주무르면서 아버지가 투정을 부리는 모습에 웃는다. 그 눈에 나도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겁을 내는 모습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동료에 가까운 환생자라고 하더라도 아들이라고 봐주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대인배다. 세인 아슈레이라는 남자는. 아들을 덮쳐서 백합물을 만들려는 건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절망하면서 들으세요.”
“우우우!”
문득 아버지가 여성체로 있으면서 자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제한을 걸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해버렸지만 모른 척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지금 하려는 이야기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고한다.
“아버지가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을 내가 풀 수는 없어요. 속 시원하게 아버지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기만이니까요. 하지만 심리학을 겉핥기식으로 배운 나라도 그건 땜빵 이외에는 가치가 없다는 건 알 거든요.”
“사설이 길어!”
내 머리를 툭 치면서 장난스럽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기대를 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받아들이겠다는 말일 것이다.
“배운지 오래되어서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초기 심리학에서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경쟁심리를 느끼게 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지요.”
“알아, 그거. 유명한 이야기잖아.”
“네. 하지만 아들은 곧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저항할 수 없는 상대를 따라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일종의 신격화라고 해야 할까. 대충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 같던 아버지도 나이가 조금 더 들게 되면 약하다는 것이 눈에 보이거든요. 그 때부터는 경멸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죠.”
“말하자면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라거나?”
“네.”
그러면서도 닮아가는 것이 핏줄이지만, 쓰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을 교육하게 되면 자신의 연약한 모습도 보여라는 입장을 견지한 심리학자가 있어요. 이름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들이 제대로 자라는 데에 필요한 일이라던가요? 그 사람은 그것이 정말로 좋은 아버지라고 했어요. 어쩌면 자신의 연약함을 내비치는 것이 가장 강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 말은?”
“그 고민은 마음껏 고민하세요. 다만 저에게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그것을 부러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품에 안긴 아버지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하시나요?”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둥지를 찾아 날아드는 산새처럼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아가씨들은 저마다 하루를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이 높은 이곳의 특성상 필시 밖에서는 아직 훤한 대낮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와중에 자신이 할 일을 재빨리 마친 시엘, 블랙드래곤은 우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 통에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길을 멈춘다. 아버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어쩔 수는 없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던 참이지.”
“아, 안되요!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던 참이야.”
“네? 네에.”
그녀에게 한 방 먹인 것이 즐거웠던 듯 아버지는 쿡쿡 웃기 시작했다. 시엘도 그런 아버지의 웃음이 성대하게 착각을 해버린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는 것을 안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한동안 아버지는 웃고 그녀는 얼굴을 물들인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요?”
그렇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펠, 골드드래곤이 찾아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식사를 준비해두고 있던 아가씨들에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 몰라!”
그의 말이 계기가 된 듯, 시엘은 펠의 손을 붙잡고 우리와는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필시 이 쑥쓰러운 감정을 무마하고자 펠에게 으름장을 놓겠지. 펠은 울상이 될 것이고.
“고민은 오늘까지. 여기에 기연이랍시고 가져다 둔 것들이 있으니 녀석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잘 꾸며놓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웃으면서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 손에 엮은 아버지는 방긋 웃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 그런 광경을 보여주면서 내 마음을 단련시키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미소를 지었다. 컴컴해오는 하늘 아래 저녁을 짓기 위한 화롯불이 유난히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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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이야기2. 그로테스크를 넘어서는 수위이지만 이곳의 분위기도 분위기이므로……그럭저럭 넘어가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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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지적받은 것에는 조금 뜨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