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노마키아 - 1부(32~34)
지희가 검도부실이 있는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쾌할한 성격덕인지 경희는 거의 예전의 모습을 되찿아가고 있었지만 아직 검도부활동은 재개하지 않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운동과 관계된 부실들은 조금 외진곳에 위치해 있는데다 장비를 갖추고 도장내에서 연습을 하는 검도부와는 달리 대부분 부서들이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는 관계로 특별한 행사등이 없는 경우 대부분 공이나 장비들을 가져다놓는 창고정도로 사용하는게 일반적이었다.
학교에서 건물을 지을때 일부러 소음등을 고려해 조금은 외진곳에 만들어놓았는지 몰라도 단지 유니폼이나 운동복을 갈아입기위해 이곳으로 오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학교내에 있다고는해도 검도부원들을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김유식이 도망가 버린 상황에서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 올지 몰랐기에 되도록 경희는 인적이 드문 곳이나 혼자 있는 일은 피하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검도부 활동은 잠정적으로 중지된 상황이었다.
『꺄아아아아 』
무슨 큰 일을 당했다기보다 큰 일이 있음을 주위에 알리는 것같은 여성의 비명소리에 지희는 소리가나는 운동장쪽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서는 여러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희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거나 누군가 소리지를만큼 놀랄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평상시 이 시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학생들이 제자리에서서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희도 멀리서 사람들의 시선을 쫓아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지애가??!! 』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 바로 신교사의 옥상이었다. 지희는 멀리서 흐릿하게나마 옥상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누군가 질러냈던 비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함께 지희는 얼마전 옥상에서 뛰어내리려했던 지애를 떠올렸다.
『안돼!!!! 』
검도부실로 향하던 지희가 옥상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지희의 몸이 잔잔히 피어오르는 먼지들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순간 옥상위쪽에 있는 작은 사람모양의 인영이 뛰어내렸다.
"왜...왜... 이러는 거야... 제발 이러지마 지애야.. "
미나로 변신한 지희가 거의 울것같은 표정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학생의 얼굴을 가슴에 묻은채 학교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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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후..
『안녕하세요~ 』
천천히 교문을 향해 다가가던 지희가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세 명의 여학생이 지희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지만 막상 지희는 잘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응.. 안녕~ 』
지희가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잘 모르는 얼굴이긴해도 자신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나 가슴에 달린 이름표의 색으로 볼 때 1학년 학생임이 분명 했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지희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요즘들어 지희의 머리속은 무언가 하나씩 짝이 맞지않는 퍼즐조각처럼 어지러웠다. 처음 경희의 일이 그나마 좋은 방향으로 처리가 되면서 미나에게 든든한 아군도 한 명이 생기긴 했지만 김유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능력자 남자는 도망쳤고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경희에게 손을 뻗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희가 경희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이번엔 지애가 자살을 기도했고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몇일 째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정신과 의사인 정찬의 어머니가 지애를 도와주겠다고 나서 지애와 상담치료를 시작한 모양이긴 하지만 정찬의 어머니는 조금 더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잠시동안은 보류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지희에게 정찬이라는 아이가 다가왔다. 동급생이긴 해도 지희보다 1살이 더 많은 아이였고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거나 한것도 아니었는데 갑작스럽게 다가와 지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평소에 남자친구를 사귀거나 하는 일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정찬이라는 남자를 다른 남학생들 이상으로 특별하거나 다르게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버렸는지 이상할정도로 신기했지만 분명 정찬과 같이 있으면 가끔씩 몽롱할 정도로 꿈에 젖어들기라도 하는듯 편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확실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지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일들 모두 지희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것은 물론 평소에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들이기에 지희의 머리속은 쉽게 정리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경희의 일이 좋게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지애의 일이 일어났지만 경희의 일이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상태에서였고 지애의 일도 좋게 해결되는 듯한 시점에서 정찬의 존재가 다가왔지만 지애 역시 아직 확실하게 예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기에 마치 퍼즐조각을 다 맞춰놓고 나서야 남아있는 한조각의 퍼즐조각을 발견한것처럼 해결이 될듯하면서도 어딘가 잘못 된것같은 느낌이 요즘 지희를 계속해서 복잡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풀릴듯 풀리지 않는 생각의 매듭에 잠겨 있던 지희가 교사의 현관으로 들어설때 현관 입구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게시판에 몇 명의 학생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지희가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현관입구에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두 개의 게시판을 설치해 놓았는데 첫번째 게시판은 학교의 공지사항이나 시험이나 행사일정등을 게시하는 게시판이었고 두번째 게시판은 학생들끼리 의견이나 메모 또는 학교에 바라는 것등을 적는 게시판이었다. 게시판에 다가간 지희에게 한개의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Quiz for Lux mea
L.J.A. & J.A.R. and next?
Tonight.....
학생들이 사용하는 게시판에 누군가 붙여놓은 글이었고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웠기에 학생들은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고 지희 역시 뜻을 알 수 없는 그 메모를 얼핏 보고는 누군가의 장난이라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자리를 옮기려던 지희가 다시 게시판을 향해서서 게시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뚫어져라 게시판을 보고있던 지희의 눈이 조금씩 가늘어지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누군가 뒤에서 지희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자 지희는 화들짝 놀랐다.
『지희야.. 』
『응.. 그래 고마워.. 』
정찬이 고개를 들어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희도 정찬을 따라 다시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같은 게시판을 보고 있었지만 정찬과는 다르게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는 지희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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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지희는 멍한 모습으로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에 본 그 게시판의 메모때문이었다. 처음에 얼핏 봤을때는 잘 몰랐는데 조금씩 그 의미가 명확하게 지희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 메모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Quiz for Lux mea
처음 미나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사람들은 신화에 나오는 여성신들의 이름을 가져다 붙여주었었다. 하지만 대표되는 어떤 특수한 능력을 가지지 않은 미나였기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여신의 이름으로 미나를 불렀고 그렇게 수많은 여신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미나에게 도움을 받은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미나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나의 빛"이란 뜻의 라틴어인 lux mea라는 표현을 썼고 그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룩스 메아 -> 루미나"와 같은 형태로 잠시 불리어졌다가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이름을 지어줘야한다고 한 어떤 이에의해 "루미나"와 유사한 한국이름인 "유민아" 라는 이름을 지어졌고 그것이 다시 여러사람에게로 돌고돌아 지금의 미나가 된 것이었다. 특별히 미나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희는 자신이 미나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Quiz for Lux mea라는 말은 결국 미나에게 내는 퀴즈..라고 해석되어 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L.J.A. & J.A.R. and next? 부분에서 지희는 lux mea라고 한 표현이 미나를 지칭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 메모가 미나에게 보내는 메세지라고 생각해보면 LJA는 이지애의 영문 이니셜이었고 그 다음 JAR은 정애리의 영문 이니셜과 맞아떨어졌다. 둘 다 지희가 미나의 모습으로 옥상에서 구해준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next라는 의미와 tonight라는 의미를 예측 할 수 있었다. 이지애와 정애리라면 둘 다 몇일 사이에 욕상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이었고 둘 다 미나에 의해서 구해진 아이들이었다. 몇 일 사이에 두 명이나 자살을 하려고 한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애라 생각했던 인물이 다행히 지애가 아닌 애리였기에 그냥 우연이라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희였다. 하지만 저 메모에 적힌 next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애리이후 또다시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학생이 나온다는 말이었고 그 이후에 나온 tonight라는 말은 아마도.. 애리이후의 학생이 뛰어내리는건 오늘밤이 될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돌아서는 순간 lux mea라는 것이 자신의 이름과도 관계가 되어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다시 돌아본 지희였지만 그런 생각들이 계속 꼬리를 이으며 떠오르자 그 생각에 어떤일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몇번이고 머리를 흔들며 아닐거라고 요즘 여러가지일로 과민해서 그런거라고 스스로 다독여 보았지만 불안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지희가 잘못 해석했고 우연히도 그런 생각과 메모의 내용이 일치한것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했다. 미나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걸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어쩌면 지희라는 존재까지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희의 머리속에서 술집에서 미나에게 패해 도망갔던 김유식이라는 자의 존재가 떠올랐다. 김유식... 그 사람이라면 어쩌면 미나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걸 눈치챘을 수도 있었다. 지희는 잘 생각이 안나지만 분명 경희의 말에 의하면 술집에서 지희가 경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고 했으니까.. 그걸 들었다면 미나가 이 학교 학생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가는 것이 있었다. 그 자가 어떻게 지애와 애리를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했을까? 애리의 경우 멀리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희가 구해낸 것이었기에 누군가 떠밀거나 한 것일수도 있지만 지애의 경우는 분명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리는 지애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었다.
몇가지 의문이 있긴 하지만, 지희에게 그 남자 이외의 인물은 떠오르지 않았다. 경희의 일이외에 한동안 미나의 모습을 한 적이 없던 지희였기에 지금껏 아무런 문제도 없다가 경희를 그곳에서 구해내고 얼마 안있어 바로 이런 일이 생겼다는건 아무래도 그 남자이외의 인물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고 만약 게시판의 메모가 그 남자의 짓이라면 이건 미나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 33 -
미나가 어두운 학교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마도 학교처럼 밤과 낮의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구조물은 쉽게 찿아보기 어려울정도로 밤의 학교는 으스스한 느낌이었고 갑자기 무엇인가가 튀어나올것만 같았다. 빠른 속도로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미나의 머리속에는 한 명의 남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김유식.. 스스로 가둬두고 있던 미나의 모습을 다시 나타나게한 사람이었고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을 불러내고 있다고 미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 얽히게 된 것은 경희때문이었고 앞으로 경희의 안전을 위해서도 이 남자와의 일을 확실히 매듭지어야 할 필요성도 있었지만 이 남자가 미나가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이상 이제 경희에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었다.
미나는 빠른 속도로 신교사의 맨 아랫층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너무 어둡고도 조용한 학교였지만 한번 미나에게 패배한 적이 있는 남자였으므로 어떤 함정같은 것을 설치해놨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공격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미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1층..2층..3층.. 3층까지 다달았음에도 특별히 이상한 점이라든지 누군가 있는것 같은 흔적을 찿지 못하자 미나는 어쩌면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의 내용이 묘하게도 미나의 생각과 맞아떨어졌을뿐 그냥 우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강당하고 구교사쪽은 찿아보지 않았으니까...."
미나가 신교사에서 빠져나와 강당쪽으로 이동하려 할때 미나의 머리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남자에게 신경을 집중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애와 애리가 모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한걸로 보아 메모의 내용이 미나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그리고 누군가 또다시 누군가가 죽으려 한다면 이번에도 옥상에서 뛰어내릴 가능성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맞아.. 옥상.."
옥상에 생각이 미친 미나가 옥상쪽으로 몸을 날렸다. 넓게 펼쳐진 옥상위로 올라선 미나의 눈에 난간 부분에 엎어져 쓰러져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미나가 주위를 경계하며 쓰러져 있는 남자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금씩 남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가도록 주위에서는 특별히 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미나는 쓰러져있는 남자를 안아들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보았다.
『저..정찬... 어..어떻게..???!! 설마.. 』
옥상의 난간부근에서 쓰러져 있던 남자는 얼마전부터 지희의 마음한 곳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 정찬이었다. 미나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나는 정찬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다친곳은 없는지 정찬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혹시나 죽거나 많이 다친건 아닌지 걱정하며 정찬의 몸을 살펴보던 미나는 정찬이 아직 숨을 쉬고 있고 특별한 상처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정찬을 꼭 끌어안으며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나가 정찬을 끌어안고 있는동안 정찬이 눈을 떴다.
『괜찮아? 어디 아픈데는 없어? 』
정찬이 눈을 뜨자 미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지금은 지희가 아닌 미나라는 사실도 잊은채 질문을 쏟아부어내고 있었지만 막상 정찬은 정신을 차린지 얼마 안된 탓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윽... 』
그렇게 정찬이 괜찮은지 신경을 쓰고 있는사이 미나는 갑자기 머리가 조여오는듯한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삼장법사에 의해 손오공의 머리에 있는 금테가 조여드는듯이 보이지 않는 어떤 머리띠같은 것이 조여들고 있는듯이 강한 압박감을 느껴지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
미나는 고개를 들어 정찬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정찬은 자신과 같은 두통은 느끼고 있지 못하는듯 정신을 차린지 얼마 되지 않아 얼떨떨한 표정으로 미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겠어.."
미나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 일반적으로 겪는 두통같은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일단 정찬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흐아아악..!!! 』
그렇게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던 미나가 갑자기 머리를 양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의 몇 배는 될것만같은 고통이 머리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머리를 무엇인가로 조여들듯 전체적인 압박감이 느껴지는 고통이었다면 지금 느껴지는 고통은 드릴같은것으로 두개골을 뚫을 듯이 한곳으로 집중이 되면서 머리속으로 파고들어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던 미나의 눈에 앞에있던 정찬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찬도 그 고통을 느끼는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안돼!! 정찬이는 안돼!!"
미나는 머리가 뚫어져버릴듯한 고통속에서도 정찬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참아내고는 있는듯 싶었지만 능력자인 자신이 이정도로 괴로워할 정도면 어쩌면 정찬이 느끼는 고통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보다 훨씬 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는 정찬이 이런 상황에서 강한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찬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자신에게 몰려드는 고통을 최대한 참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괜찮아.. 』
『크흑.. 』
고통이 꽤나 심한지 정찬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발..제발 정찬이만은 무사하게.."
미나는 마음속으로 정찬에게 아무일이 없기를 기도하듯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신이 미나의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했는지 순간적으로 두통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나는 그 틈에 주저하지않고 정찬을 안은채로 몸을 날려 다른곳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옥상에서 멀리 떨어져 갈수록 두통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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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하다 옥상에서 쓰러져있었던거야?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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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차 마셔.. 』
지희는 정찬이 건네주는 찻잔을 손에 들었다. 찻잔안에서 레몬 빛의 액체가 하얀 김에 향기로운 냄새를 실어 보내고 있었다. 고운 향에 지희가 눈을 감으며 한껏 찻잔이 보내주는 향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음~ 향이 너무 좋아.. 』
『그냥.. 보고.. 싶어서.. 』
지희가 정찬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몇일전 저녁에 지희는 미나의 모습을 하고 학교에서 정찬을 만났다. 옥상에 쓰러져있던 정찬을 교문쪽에 데려다주고 지희는 한참동안이나 신교사와 구교사 그리고 강당까지 학교내를 샅샅이 찿아봤지만 어느 누구의 흔적도 발견 할 수 없었다. 어제 살펴본 것만 가지고는 메모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해석과 일치하는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분명 옥상에는 정찬이 있었고 만약 메모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번째로 옥상에서 뛰어내릴 거라고 지목된 사람은 분명 정찬이었다. 그날 학교에서 아무런 발견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지희는 여러가지 생각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왜 정찬은 지애나 애리와는 다르게 뛰어내리지 않고 쓰러져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 때 갑작스럽게 머리에 느껴지는 고통은 무엇일까?
정찬 이외의 다른 특이점이나 지희가 생각했던 그 남자가 없었다는건..
혹시.. 그 메모지가 미나에게 보내는 선전포고같은 것이 아니라 다음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정찬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누군가 미나에게 보내는 어떤 도움요청과 같은 의미의 쪽지였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미나가 이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분명 일반적인 두통이 아닌것 같은 그 고통.. 그것을 유발시킨 누군가가 꾸민 짓이었을까? 그랬다면 왜 다른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런 암호같은 메모까지써서 미나를 불러놓고도 그곳에서 벗어나도록 그대로 놓아주었을까?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과 함께 도저히 답을 찿을 수 없는 의문만 한가득 떠올랐지만 그중에서 가장 지희를 불편하게 하는 생각은 아무래도 그 누군가가 지희가 미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애도 정찬도 모두 지희와 관련이 된 인물이었다. 물론, 애리의 경우 지희와는 어찌보면 오히려 악연인 사이였지만 악연이라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분명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지애나 애리 그리고 정찬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지만 선생님도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다행히 모두들 무사하지만 그들에게 아직까지 또다른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걸 보면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 자체가 타겟이 아니라 자신이 타겟이었을 수도 있다는....
누군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희.. 아니 미나라는 목적을 위해 지희의 주변인물들을 괴롭히며 미나를 압박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일들 뿐이었기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만 더해만가고 있었고 그럴수록 지희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지쳐갈수록 지희는 언제나 자신을 편안하게 대해주던 정찬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아니 그날 밤이라도 정찬에게 찿아가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미나라는 사실때문에 주저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듯 학교에 나온 정찬을 보고서야 조금은 마음이 놓였었다. 그리고 오늘 그날일로인해 어디 아프거나하지는 않은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그리고 정찬이 보고싶은 마음에 지희는 정찬의 집에 온 것이었다.
『저기.. 정찬아.. 』
『걱정마.. 난 튼튼하니까 그런 걱정 안해도 돼 』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지희가 대충 둘러대고는 있었지만 정찬의 말에 지희는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한쪽에 앉아있던 지희가 찻잔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있는 정찬에게 다가가 정찬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대고 살포시 정찬을 안아주었다.
『고마워... 』
경희의 일부터 시작해서 어제의 일까지 무엇하나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못하고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는듯한 느낌에 힘들고 지쳐가던 지희를 편안하게 해주는 정찬은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다. 지애도 없는 지금 아마 정찬마저도 없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은 생각에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있는 정찬이 너무나도 고마운 지희였다.
『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
따뜻한 차에 정찬의 편한 느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지희는 정찬의 말대로 침대에 잠시 누워있기로 하고 침대에 몸을 눕히자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의 감촉이 지희의 마음을 감싸주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있으면 불편할테니까.. 난 다른 방에 있을께.. 한숨 푹 자둬.. 있다가 엄마오실때쯤 내가 깨워줄게.. 』
『저기.. 정찬아.. 』
편하게 잘수 있게 불을 끄고 방을 나가려던 정찬을 지희가 불렀다.
정찬이 의자쪽으로 가려고 하자 지희가 정찬의 손을 잡았다.
정찬이 다시 뒤돌아 지희를 바라보자 지희가 정찬의 손을 침대쪽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같이.. 누워있자.. 』
『그래도 돼? 』
정찬의 말에 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찬이 나가버리면 집에서처럼 또 불안한 마음이 들것만 같아 지희는 정찬이 같이 있어줬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같이 누워있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불도 꺼진 어두운 방에서 멀거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정찬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지희는 같이 누워있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찬이 이불속으로 들어와 지희의 옆에 누웠다. 자신이 같이 누워있자고 말은 했지만 막상 한 이불속에 남자와 단 둘이 있다는 생각때문인지 지희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정찬의 얼굴을 바라보자 심장 조금씩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하더니 어둡고 조용한 방에 자신의 심장소리만 울려퍼지면서 그 소리가 정찬에게 들릴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심장박동소리가 커지는것만 같이 느껴지는 순간 지희의 심장박동소리를 듣기라도 한듯이 천장을 바라보던 정찬이 고개를 돌려 지희를 바라보았다. 지희는 조금씩 정찬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희를 바라보던 정찬의 얼굴이 조금씩 다가오면서 지희의 얼굴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어갔고 입술이 맞닿을정도로 가까워지자 마치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가버릴듯이 두근거림이 심해졌다.
지희의 입술이 정찬의 입에 닿자 금방이라도 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듯이 거칠게 뛰던 심장의 박동이 부드러워지는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심장은 아까처럼 바쁘게 뛰고 있었지만 몸 밖으로 튀어나갈것 같이 거친 느낌이 아닌 부드럽게 안으로 스며드는듯한 느낌으로 마치 지희를 다독여주듯한 느낌으로 변해갔다.
지희의 모든 불안함을 지워주는듯이 부드럽고 편안한 키스와 함께 정찬이 지희의 울굴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겨주고 있었다. 다독여주는듯한 심장의 움직임도 머리를 쓸어넘겨주는 손길도 그리고 혀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도 지희는 모두 좋았다.
정찬의 손이 이불 안쪽으로 사라진듯 싶더니 지희의 허벅지쪽위로 살며시 와 닿았다. 지희는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정찬의 손길에 조금 놀라며 몸을 떨었지만 정찬을 믿고 싶은 생각에 따로 정찬의 손을 막지는 않고 있었다. 정찬의 손이 지희의 스타킹위로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자 지희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이왕 한번 정찬을 믿기로 한 것 끝까지 정찬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손의 움직임을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지희의 치마 안쪽으로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손이 지희의 엉덩이쪽을 스치고 올라가서는 몇번 지희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는듯 하다가 걷어올려진 치마를 내려주었다.
『고마워.. 』
『니가 원할때까지는.. 지켜주기로 했으니까.. 』
지희는 정찬의 따뜻한 마음씨와 배려에 고마워하며 이번엔 지희가 먼저 다가가 정찬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처음으로 지희가 먼저 혀를 내밀어 정찬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정찬은 그런 지희의 혀를 반겨주었다. 또다시 정찬의 손이 지희의 허리쪽으로 움직이면서 교복브라우스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이번에도 지희는 약간 몸을 떨었지만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브라우스를 밀어올리면서 지희의 가슴을 감싸고 있는 브라까지 손이 올라가자 정찬이 잠시 손을 멈추고 지희에게 말했다.
『이정도는 허락해주면 안될까? 』
지희가 정찬에게서 입을 떼고 가만히 정찬을 바라보았다. 정찬은 지희의 브라위에 손을 얹은채 지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지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하아..... 』
정찬이 브라위에서 지희의 가슴을 살포시 움켜쥐자 몸을 조금 움츠리며 지희가 낮은 숨소리를 내며 정찬의 얼굴에 따뜻한 입김을 내뿜었다. 정찬이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지희였지만 그런 생각과 함께 가슴에서 묘하게 좋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희는 정찬의 손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지희의 가슴을 어루만져주던 정찬의 손이 살짝 브라를 밀어올리려고 하자 지희가 정찬의 손을 잡았다.
『왜? 』
지희가 정찬의 물음에 더이상은 안된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정찬의 손을 브라우스 안에서 빼내었다.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아니였나보네..? 』
정찬이 조금은 실망한듯한 목소리로 지희에게 말하자 지희가 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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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은 지희의 솔직함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위에서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지희의 가슴의 느낌에 조금 더 지희를 탐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희의 귀여운 솔직함에 오늘은 져주기로 마음먹었다.
『화..났어? 』
정찬은 지희가 참 특별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많은 남자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큼 예쁜 아이이긴 했지만 지희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희보다 더 예쁘다던지 몸매가 좋다든지 섹시한 그런 매력을 가진 여자를 찿으라면 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여자들 수백명과 지희를 바꾸자고 한다해도 정찬은 그들 수백명과 지희를 바꾸지 않을것 같았다. 지희를 처음 봤을때부터 정찬은 지희에게 여자이상의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나 조금만.. 안아줄래? 』
아직 몸은 허락하고 있지 않았지만 지희는 정찬에게 안아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가고 있으면 충분히 정찬의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계획보다 훨씬 빠르게 지희가 가까워져가고 있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계획 이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정찬은 씁쓸한 마음이 들어오고 있었다.
『넌 편안하고 포근해.... 저기... 정찬아.. 』
지희가 무슨 말을 하려는듯 머뭇거리자 정찬이 말했다. 품안에 지희를 느끼면서 말하고 있는 정찬의 말은 단지 지희를 자신의 것으로 할 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지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이 여자..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가 원하는거라면 뭐든.. 설사 그것이 자신의 목숨이라도 쉽게 내어줄 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이야? 정말 뭐든지 다 해줄거야? 』
『고마워... 』
지희가 조금 더 엄마젖을 먹고싶어하는 아이처럼 더욱더 정찬의 품안에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찬의 가슴에 파묻히다시피 얼굴을 묻고 있는 지희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 』
『사랑..해.. 』
들릴듯 말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말을 듣는 순간 정찬은 자신의 가슴에 맞닿아 있는 부드럽고 기분 좋은 느낌이 드는 지희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두근두근...
아주 강렬하게.. 하지만 심장을 부수고 튀어나올것 같은 파괴적인 느낌의 강렬함이 아닌 수줍은듯한 느낌의 두근거림..
"이게.. 지희의 심장이구나.."
정찬은 눈을 감고 지희의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단지 유방을 만지고 여자의 질 속에 자신의 물건을 넣을때 드는 그 흥분감과는 전혀다른 종류의 흥분감이었다. 분명 애리나 주희와 성행위를 하거나 할때 느끼는 흥분감이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느낌이라면 따뜻하고 포근한.. 마치 아름답고 향긋한 꽃향기를 맡을때 미소를 지을 생각을 구지 하지 않아도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지는듯한 그런 좋은 느낌.. 그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섹스할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흥분감... 이대로 하늘끝까지라도 날아오를수 있을것같이 기분이 붕 뜨는 느낌..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총동원한다고 해도 도저히 이 모든 느낌을 알려줄 수 없을것만 같은 느낌...
정찬은 지금 느끼는 이 두근거림이 지희의 것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다. 분명 지희에게서 전해져오는 두근거림이었지만 이미 이 두근거림이 정찬의 심장도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정찬은 알고 있었다. 정찬의 심장의 두근거림만도 아닌 지희의 심장의 두근거림만도 아닌..
어쩌면 지희와 정찬의 심장이... 그렇게 두 개의 심장이 있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신비롭고 조화로운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정찬은 하고있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하나의 단어가 정찬의 머리속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너무도 흔하디 흔하게 불리워져 이젠 아무리 들어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단어.. 누구나 한번쯤 말해봤을 그런 단어.. 하지만 누구도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런 단어...
이 단어가 지금 정찬이 느끼고 있는 모든걸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인지 정찬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최소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어들 중에서 지금 이 느낌을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는것이었다. 평소 영화.. TV.. 드라마.. 수도없이 들어봤던 그때는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했던 그 단어가 주체할수 없는 느낌이 되어 정찬의 가슴속에서 그리고 머리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런게 사랑이라는 건가.....? "
많이 피곤했는지 정찬의 품에 안긴 지희의 숨소리가 잦아드는듯 싶더니 어느새 곤히 잠이 들어버렸다. 정찬이 잠이 들어있는 지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찬은 처음엔 지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 했었지만 조금씩 지희와 가까워지면서 지희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정찬은 너무도 사랑스럽게 잠들어 있는 지희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었다.
『나도.. 사랑해... 그리고.. 』
정찬은 아직도 지희에게서 전해져오는 것만같은 어쩌면.. 지희가 아니었으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것만 같은 이런 느낌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씁쓸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일찍 지희와 가까워졌었다면... 하는 생각과 함께 얼마전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