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55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55 부 **
제 18 장 검풍연풍(劍風戀風) 2.
병주(幷州) 군영(軍營) 안무총사(按撫總司)의 막사(幕舍) 주변에는 아직도 황보정의 집무실을
지키는 지휘관(指揮官)의 호위(護衛)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 분명 화령의 술수렸다..! 」
짐작컨데 화령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변의 병사들을 모두 물리친 것이라 생각하며 상
관명은 황보정의 집무실로 그림자처럼 스르르 날아 들어갔다.
이미 그 집무실 안에서는 한바탕 걸쭉한 범방(犯房)의 음사(淫事)가 이루어 진 듯 발가벗은 남
녀가 벌건 나신에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은, 화령의 앞에는 황보정이 모든 기력을 소진한 듯 힘없는 모습으로 멍청히
앉아 있었으며 화령은 두 눈을 매섭게 뜨고 황보정을 노려보며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황보정은 이미 화령의 소혼뇌공(召魂腦功)에 당한 듯 허옇게 변한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
으며 그 황보정의 안절부절하는 행동은 화령의 움직임만을 쫒고 있었다.
「 앗차.. 늦었구나..! 저런 악독(惡毒)한..! 」
벌거벗은 몸뚱이를 가릴 생각도 않고 황보정에게 사공(邪功)을 시전하고 있는 화령의 모습..!
십여년전 열 몇살 그때는 한참 자라나는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던 화령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드러나 있는 화령의 나신(裸身)은 허욕(虛慾) 가득한 관능의 육욕을 뿜어내고 있
는 농익은 육체로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조그만 문의 틈새로 실내를 들여다 보던 상관명의 가슴에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나 한순간 마
음을 다스리며 출입문을 열고 사기(邪氣) 가득한 실내로 한발 들어서며 화령을 향해 입을 열었
다.
「 화령아가씨.. 보기가 심히 민망합니다..! 어서 옷을 걸치시지요..! 」
갑자기 문이 열리며 의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깜짝 놀란 화령이 고개를 돌렸다.
「 어어.. 네놈이.. 네놈이 여기엔 왠 일이냐..? 」
뜻밖에 나타난 상관명의 존재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긴 했으나 벌거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없
는 듯 태연히 황보정의 머리에 올린 손은 거두지도 않고 있었다.
「 아가씨.. 어서 손을 거두고 의복을 챙기시오..! 이 무슨 해괴한 짓이오..! 」
타이르듯 점잖게 하는 상관명의 말을 들은 화령의 입에서 표독스러운 독설이 터져 나왔다.
「 이놈이.. 어디 내 앞에서 방자하게 함부로 지껄이고 있느냐..? 내 일에 간섭하지 말고 어서
물러가거라..! 」
「 하하하.. 화령아가씨.. 아직도 그 못된 버릇은 여전하시구려..! 두 분.. 음행(淫行)을 치루
느라 어지간히 기력도 소진된 듯 하니 그만 의복을 갖춘 후 운공이나 하시고, 황보공자를 이제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그만 놓아주십시오..! 」
그래도 예(禮)를 다해 은근히 재촉하는 상관명의 모습에 오히려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오른 화령
은 앞에 앉아있는 황보정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옆에 놓여 진 검(劍)을 집어 휙.. 던졌다.
「 황보공자.. 어서 내 눈앞에서 저놈을 없애 버려라..! 」
화령이 던진 검을 받아든 황보정은 마치 화령의 명령에 순종하는 주구(走狗)나 된 듯 슬며시
일어나 초점 흐린 눈으로 상관명의 앞으로 다가서며 스르릉.. 검을 빼어 들고 휘둘렀다.
(벌써 화령의 소혼뇌공(召魂腦功)이 그의 정신까지 조종을 하고 있구나..! 과연 서문인걸의 딸
답다..!)
상관명도 이제는 화령의 사악함에 치가 떨리고 있었다.
(으음..! 그래.. 이 기회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형성(形成)해 끝내 버리도록 하자..!)
모종의 결심을 굳힌 상관명은 두말없이 황보정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휘둘렀다. 속전속결로
황보정을 처리한 후 또 다른 한 가지 일을 이루려 단단히 마음을 먹은 상관명이었다.
휙.. 휙.. 상관명이 양손을 좌우로 휘두르자 그 손끝에서 분홍빛 아지랑이가 펼쳐져 집무실
실내를 가득 채워 갔다. 그 순간 상관명은 품속에서 옥부채(玉扇)를 끄집어내어 살랑살랑 흔들
기 시작했다. 상관명이 옥선(玉扇)을 펴들고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화령은 잠시.. 아주 잠깐의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왔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자 그녀의 눈앞에는 희한(稀罕)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어어어.. 이게 무슨 조화냐..? 황보정의 무공이 이렇게도 높았던가..? 」
설마 황보정이 이렇게 쉬 상관명을 이기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화령이었다. 다만
자신이 황보정에게 펼진 뇌공(腦功)을 상관명에게 보여줘 상관명은 감히 황보정에게 손을 쓰지
못하고 스스로 이 자리를 물러나게 만들려던 시도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황보정이 지난날
연환서숙에서 자신에게 펼쳐 보였던 무공보다도 훨씬 드높은 무공공력으로 상관명의 신형을 갈
기갈기 찢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관명은 황보정의 그 높은 무공으로 펼친 검기를 온몸으로 받아 그 신형이 토막 토막 찢어져
선혈을 뿜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져 내려앉는 것이었다.
「 휴우.. 상관명.. 네놈의 목숨은 불쌍하지만 우리를 위해 다행이다. 또한 생각보다 더 고강
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이 황보정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면 큰 낭패를 볼 뿐 하였구나..! 」
어릴 때 함께한 조그만 정리는 남아 있었던가..? 상관명의 목숨이 끊어져 처참히 뒹구는 모습
을 잠깐 안타까워하던 화령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흘렀다.
(상관명 이놈이 끝을 본 것은 아쉬움은 많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버님께서도 이놈을 얼마나
염려하고 조심스러워 했는가..! 아버님의 짐은 하나 덜었고 그렇게도 원하던 한사람의 우군은
확실히 얻은 것이 아닌가..!)
서문인걸이 화령 자신을 이곳에 보낸 목적은, 황보정이 저리도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보
면 이미 달성이 된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서문인걸의 걱정거리인 상관명까지 제거 되었다.
그 흐뭇함에 벌거벗고 있는 자신의 몸이 하늘을 날아오를 듯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픈 마음인
화령이었다.
* * * * * * * * * *
- 크으윽.. 으억.. 우탕탕.. 털썩.. !
몸에서 피를 튀기며 바닥에 넘어져 뒹굴었다. 실내 가득한 분홍빛 운무(雲霧)속에 신형(身形)
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득의양양(得意揚揚)한 황보정이 화령의 앞으로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었다.
「 호호호.. 수고했다. 역시 내 뜻을 이루어 주었구나..! 자.. 내가 상을 주마..! 이리 가까이
오너라..! 」
화령이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황보정을 향해 손짓을 했다. 스..윽 다가서는 황보정의 얼
굴에도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화령은 허리 아래로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황보정이 다리사이로 다가
오는 것을 느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 호호호.. 조금 전 한바탕 질펀하게 놀고서도 또 그리 급하더냐..? 그래 오너라..! 내 특별
한 즐거움을 줄 것이니..! 」
그러나 화령은 자신의 몸이 먼저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듯 스스로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 어.. 어.. 내가.. 내 몸이 내 몸이 왜 이러지..! 」
오히려 당황한 쪽은 화령이었다. 자신이 황보정을 다루어야 할 이 순간 스스로의 몸이 먼저 달
아 오른다.
이 악물고 참아보려 하는 화령의 귀에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화령낭자..! 이 황보정, 낭자가 전해준 대인어른의 말씀을 깊이 새겼습니다. 돌아 가셔서
대인께 전해 올리십시오. 소생 황보정이 국경에 버티고 있는 한 이곳의 모든 군사는 대인의 것
이라고 말입니다. 」
「 아하학.. 으으.. 끄.. 끄윽..! 아.. 알았다..! 내 필히 황보공자의 충성을 아버님께 전하리
라. 알았으니 어서 더.. 더 깊이..! 으으윽..! 」
이미 화령은 황보정의 몸짓에 이끌려 숨이 넘어가는 열락(悅樂)의 극을 헤매고 있었다.
「 낭자.. 지금 곧 출발을 하셔야 합니다. 도착하는 즉시 아버님께 전해 올리십시오. 이곳은
완벽한 준비를 끝내고 기다릴 것이니 웅지를 펴시라는 이 황보정의 전언이라고 말입니다. 」
「 그래.. 알았다. 더.. 더 힘껏.. 학.. 하하학.. 끄으으으..! 」
땀을 뻘뻘 흘리며 요동을 치던 벌건 나신이 서서히 황보정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 위병들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출발하십시오..! 」
육욕의 향연을 끝낸 여운을 만끽할 틈도 주지 않고 황보정은 화령을 보며 재촉하고 있었다.
「 알았다. 내 지금 돌아가마..! 황보정.. 너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
「 알겠습니다. 낭자.. 어서..! 」
다급히 재촉하는 황보정을 돌아보며 급히 의복을 챙긴 화령은 흐르는 땀을 훔칠 여유도 없이
집무실의 문을 나서고 있었다.
* * * * * * * * * *
화경이 사라진 집무실 실내에는 이제 분홍빛 아지랑이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소멸(消滅)되어 가는 분홍 운무(雲霧)속에서 한손에 푸른빛이 도는 옥부채를 든 그림자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느릿느릿 드러났다. 상관명이었다.
상관명이 화령의 앞에서 천궁(天宮)의 신공절예(神功絶藝) 무극연환무(無極捐幻舞)의 춤을 추
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상관명의 발아래에는 황보정이 기진해 쓰러져 꼼짝않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그랬다..! 화령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지금까지의 상황..!
그 모든 일이 환영(幻影)이었다. 화령의 나신을 올라 타고 그녀의 관능에 불을 지르며 귓속말
로 웅지(雄志)를 펴라고 속삭이던 황보정도 환영이었고 황보정의 검에 선혈을 뿜어내며 쓰러지
던 상관명의 신형도 환영이었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상관명은 천궁(天宮)의 절예 무극연환무(無極捐幻舞)를 추며 화령의 뇌리에 뇌정
입밀(腦靜入密)의 밀공(密功)을 심어 두어 혼란을 일으키게 했고 기변연환(欺變撚幻)의 내공으
로 황보정의 진신을 순식간에 자신의 모습으로 바꾸어 피를 토하는 듯 보이게 한 후 자신의 원
영(元孀)을 불러내어 황보정의 모습으로 바꾸어 화령에게 다가갔던 것이었다.
* * * * * * * * * *
「 어엇..! 상관공자께서 여기에 어인일이십니까..? 」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황보정의 앞에 상관명이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었다.
(그렇지..! 화령낭자가 여기에 왔었지..!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화령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자신의 머릿속
은 어질어질 흔들리고 있었다.
「 고생하셨소 황보공자..! 이제 정신이 드시오..? 」
「 상관공자.. 내.. 내가 어찌된 일입니까..? 」
황보정 자신은 옷까지 몽땅 벗겨져 발가벗은 상태였다. 분명 신상(身上)에 무슨 일인가 변화가
지나간 듯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 하하하.. 화령아가씨가 찾아 온 것은 기억하시오..? 」
「 예.. 상관공자..! 화령낭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기억이 나나 그 후의 일은 도통 생
각이 나지 않습니다. 」
「 그럴 거외다. 화령아가씨가 잠시의 틈을 타 공자에게 미혼산을 뿌렸습니다. 그 후 공자가
그녀와 음사(淫事)에 빠져 있을 때 또다시 공자께 소혼뇌공(召魂腦功)을 시전하여 공자의 마음
까지 조종을 하려 했던 것이지요. 」
「 그.. 그런 일이..! 이거 큰일이 아닌가..? 」
자신은 이제 화령의 뇌공(腦功)에 조종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스스로 자신을 제어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나니.. 죽음보다 더 굴욕스러운 처지가 아닌가..! 순간 황보정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 하하하.. 염려마시오. 다행히 내가 일찍 발견을 하여 체내의 음독은 물론 소혼뇌공(召魂腦
功)도 모두 제거를 했습니다. 이제 조용히 운공을 하여 빨리 기력을 회복만 하시면 아무런 이
상이 없을 것이외다. 」
「 그게.. 그말이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
상관명의 말을 듣고 난 황보정의 표정은 이제사 그 굳어졌던 얼굴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 자.. 자.. 좌정을 해 보시오. 내가 회복을 도우리다. 」
상관명은 황보정의 뒤로 돌아 앉아 내공을 단전에서 끌어 올려 장심(掌心)에 모으고 등에 밀착
을 시켜 공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 휴.. 우..! 」
겨우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황보정의 입에서 긴 숨결이 새어 나왔다. 역시 황보정 또한
무시 못 할 공력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하루를 쉬며 체력을 회복시키려 해도 못다 할 내공의 손상을 이 짧은 시간에 극복을 한 황보정
인 것이다.
「 고생하셨소이다. 공력의 손상 없이 체내의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소. 이제 운공
을 해보시오. 」
황보정을 두 손을 하복부로 가져가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며 운공을 시작했다. 그 흐릿해져 있
던 황보정의 눈동자가 이제는 맑은 빛을 띠우고 있었다.
* * * * * * * * * *
「 상관공자님..! 공자님은 저에게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할 위기를 구해주신 은인이십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상관명은 의관을 정제하고 깊이 고개를 숙여 사례를 하는 황보정에게 손사래를 치며 다시 한번
간곡한 당부의 말을 일렀다.
「 화령아가씨가 찾아온 목적은 기히 알고 있을 것이외다. 이제 어느 길이 백성을 위하는 길인
가는 스스로 깊이 명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
「 예 상관공자님..! 그 말씀.. 마음속 깊이 담아 둘 것입니다. 실은 아버님의 행보에 동조할
까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요. 아버님의 말씀대로 저의 가문이 회생(回生)하여 당금에
제일가는 가문이 되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공자의 은혜라기보다 저
스스로가 깨달은 바가 큽니다. 잠시 생각을 달리한 점 공자께 용서를 빕니다. 」
「 아니.. 아니오..! 저 또한 우리가 헤어진 후 황보공자를 믿지 못해 이곳까지 찾아온 잘못이
큽니다. 다행히 공자께서 그리 생각해 주시니 제가 더욱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상관공자님..! 저는 맡은 바 국경을 열심히 지키고, 이곳에서 추호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더 이상 저에 대한 염려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
황보정의 말에 미소로 답하며 상관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