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0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0 부 **
제 21 장 다정여심(多情女心) 2.
「 헉..! 그들이 어찌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버님에게 듣기로 그들 부자는 큰 부상을
당하여 벌써 목숨을 잃었거나 폐인이 되어있을 거라 말씀하셨는데..! 」
상관명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도록 엄명한 조평환부자의 신변(身邊)을 학련이 여경에게 흘린
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이 여경낭자가 주군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감화(感化)를 받아 혹(惑)해 있는지도 모
를 일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드러나는 미심쩍은 눈빛이 여경을 경계하게 만들어 그 속마음을
짐작해 보려고 조평환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 주군의 배려였습니다. 아무리 패악(悖惡)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인명은 소중하다 여기시는
주군께서 두 부자의 목숨을 살리신 거지요. 그들은 지금 주군의 은혜에 감복(感服)하고 있으며
남은 생(生)을 백성을 위하는데 쓸 것이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낭자의 부친과 그들의 인연도
보통은 아닐 진데 한번 만나 보시는 게 어떠할지..? 」
조평환의 부자가 이곳에 피신해 건재해 있다면 조정에 남아있는 그들의 측근들에 대한 영향력
또한 지대할 것이 아닌가..! 조평환 부자의 그러한 힘을 당연히 알고 있을 여경에게 그 사실을
알려 반응을 살피려는 학련의 복안 이었다.
「 아닙니다. 저의 아버님이면 모를까 저는 그들을 잘 모릅니다. 대신 지금 본가로 돌아가 아
버님께 저들을 한번 찾아 위로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 더 옳은 듯 합니다. 양해하신다면 지금
돌아가 아버님께 말씀 올리지요..! 」
학련의 짐작대로 여경은 안절부절 하며 자신의 부친에게 급히 알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
게 드러나고 있었다.
「 호호호.. 그래요..? 그렇다면 낭자가 기다리고 계시던 저의 주군께서 오시는 대로 의논을
하여 다녀오시도록 하세요..! 완(婉)아.. 여경낭자께서 기거할 숙소를 안내해 드리고 지내는데
불편함이 항상 곁에서 보좌해 드려라..! 」
학련의 단호한 어조였다.
주군인 상관명의 허락 없이는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경에게 일러주는 통고(通告)인 것이
었다.
* * * * * * * * * *
완(婉)이 여경을 거소로 안내하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예원(藝院)을 나간 후 방에 남은 자혜공
주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학련을 쳐다보고 말했다.
「 학련언니.. 아무래도 상관오라버니께서 여경낭자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나 봅니다..! 」
말을 하면서도 공주의 얼굴에는 시새움의 표정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그런 공주를 바라보던
학련은 공주가 생각하는 그 같은 일보다 더욱 중요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주를 향해 나무라듯 말을 건넸다.
「 주군께서는 그리 무책임한 행동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공주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
습니까..? 혹여 주군의 진심을 폄훼(貶毁)하는 말은 삼가해 주세요..! 」
「 알아요.. 언니..! 그러나 여경낭자의 그 눈 속에는 오라버니를 흠모하는 빛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을 언니도 보았잖아요..! 」
여경과 상관명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연모의 정이 싹튼 것 같아 마음 졸이며 지켜본 자혜공주의
심정을 학련에게 털어놓는 말이었다.
「 공주님..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주군께서는 여경낭자에게 마음을 준 것은 아닐 겁니다. 필
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일은 여경낭자가 숨기
고 있는 속내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
주군이 어떤 행위를 하든 그것은 필유곡절(必有曲折;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의 행동이라 굳
게 믿고 있는 학련에게는 주군과 여경의 애정행각보다 여경의 눈초리에서 잠깐씩 나타나던 그
비밀스러운 눈빛이 걱정스럽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 에이.. 언니..! 상관오라버니의 말이라며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여경낭자인데..! 어찌 그
속에 딴 마음이 있겠어요..! 언니도 여경낭자가 오라버니를 기다리는 표정을 보았잖아요..! 」
자혜공주는 가슴속에 들끓고 있는 여경에 대한 질시 때문에 여경에 대한 그 이상의 낌새는 보
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 호호호..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 보세요. 주군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연유를 물어 보면 알
게 되겠지요..! 」
오직 자신의 연심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공주의 태도에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학련은 겨우 짜
증을 참아내며 공주를 달래고 있었다.
학련과 공주가 서로 다른 걱정거리를 마음에 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시각..!
예원(藝院)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선언의 후원 석교 위를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 엇.. 잠깐..! 공주님 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혹시 주군이신지 제가 나가보고 오겠
습니다. 」
「 학련언니.. 우리 함께 나가봐요..! 」
학련의 말에 오히려 마음이 들뜬 자혜공주가 먼저 앞을 나서는 순간 벌써 예원의 문앞에서 웃
음 섞인 호탕한 음성이 들려왔다.
「 하하하.. 누님..! 저 왔습니다. 홍련채주도 함께 와 계십니다. 」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다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학련을 부르며 예원으로 들어서는 구(龜)의 활
기(活氣)가 듬뿍 담긴 얼굴이었다. 그 뒤를 따라 홍련채주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예(禮)
를 취하며 함께 들어섰다.
「 어서 오세요 홍련채주님..! 구(龜)도 수고가 많았다. 」
「 예.. 학련낭자..! 다행히 궁주님의 명(命)을 실수 없이 행(行)하고 왔습니다. 」
「 홍련채주께서 가신 일인데 어련하시겠습니까..? 주군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
「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입만 나불거렸을 뿐이지요..! 그들을 굴복시킨 일은 오로지 구
(龜)공자의 공(功)이었지요. 궁주님의 말씀대로 구공자가 한 순간 천궁의 무공을 시전하여 그
들의 눈을 뜨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상관궁주께서는..? 」
홍련은 말을 하며 눈웃음으로 학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 예..! 아직 당도하지 않았습니다. 채주께서 오셨으니 아마 곧 당도하실 것입니다. 먼
길 고생하셨는데 자 자 우선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완(婉)아.. 두 분께 차 한잔 올려라..! 」
학련이 자리에 안내를 해 차를 따르게 한 후 구(龜)에게 은근히 물었다.
「 구(龜)야..! 지금 이곳에 황보대인의 따님이 주군의 당부(當付)라 하며 와있다. 혹시 주군
에게 무슨 말을 들은 적이 없느냐..? 」
「 예.. 누님..? 여경낭자가 여기에 와 있단 말입니까..? 그래.. 무슨 일이랍니까..? 」
구(龜)도 뜻밖이라는 듯 도리어 학련에게 묻고 있었다.
「 주군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느냐만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어 걱정이구나..! 」
학련이 대답을 하는 그 말이 끝나지도 않아 예원의 창문으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흰
그림자가 휘익.. 날아들었다.
「 하하하.. 하하하하하.. 학련누님..! 너무 걱정 마시오. 나에게 생각이 있소이다..! 」
상관명이었다.
그 순간 상관명이 비연선원의 후원을 뛰어넘어 예원으로 날아 든 것이었다.
「 어엇.. 주군이시다..! 주군..! 무사히 다녀오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
학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조르르 앞으로 달려 나와 고개를 숙였다. 그 옆으로 자혜공주
가 재빨리 다가와 상관명의 앞에 다가서며 방글거리고 있었다.
* * * * * * * * * *
자혜공주가 상관명의 소매 자락을 움켜쥐고 슬며시 한쪽 구석으로 당겨갔다.
「 오라버니..! 황보승의 딸이 오라버니를 찾아 여기에 와 있습니다. 병주에서 오라버니와 무
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요..? 」
추궁하듯 묻은 공주의 표정은 감정이 격해져 눈이 한쪽으로 실긋실긋 움직이고 있었다.
「 알고 있습니다. 공주..! 벌써 당도해 있었군요. 내가 부탁을 한 일이오. 여경낭자에게 황보
대인의 설득을 부탁드렸습니다. 」
그러나 공주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투정 부리듯 상관명의 옷소매를 당겼다.
「 아니.. 아니.. 그런 건 저는 몰라요..! 여경낭자가 오라버니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연인
을 기다리는 행동이란 말이에요..! 」
공주의 말에 상관명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 어허.. 공주..! 내, 나중 모두 말씀 드리리다. 자.. 자.. 이리로 오시오. 학련누님 여경낭
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
공주에게 설명하기 난감한 자리를 우선은 피하고자 상관명은 학련에게 여경의 행방을 물으며
모두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 완(婉)아.. 어서 가서 여경낭자를 모시고 오너라..! 」
학련이 눈치 빠르게 완(婉)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르르 달려 나가는 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상관명이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며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공주.. 궁내(宮內)에서 황보대인의 행동은 어떠하던가요..? 」
묻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상관명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자혜공주에게 느닷없는 물음을
던졌다.
「 예.. 예..? 」
「 서문인걸이 저리도 서두르는 모습을 보니 혹여 자신의 의견이 황보대인에 의해 좌절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본 말입니다. 」
「 아하.. 그일 이라면 오라버니의 짐작이 맞습니다. 그동안 두 사람은 번번이 의견충돌을 일
으키곤 했습니다. 」
공주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키던 상관명이 입을 열었다.
「 여경낭자가 오면 나의 생각을 모두에게 말씀 드리지요..! 」
상관명이 여경을 기다리는 말을 입에 올리자 공주와 학련의 얼굴색이 동시에 변하고 있었다.
공주는 여경을 기다리는 상관명에게 시새움의 감정을 느껴 눈 꼬리가 꿈틀하고 있었으나 여경
을 경계하는 학련의 속마음은 확연히 달랐다.
「 주.. 주군..! 여경낭자에게 우리의 복안을 듣게 한다면 기밀이 새어나갈 수 있습니다. 」
「 예.. 궁주님..! 학련낭자의 말이 맞습니다. 여경낭자는 황보대인의 친딸이 아닙니까..! 」
곁에 앉아있던 홍련채주도 학련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그 들을 바라보고 있는 구(龜)
는 상관명의 생각을 짐작이라도 하고 있는 것 처럼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 하하하.. 모두들 아무 염려마십시오. 나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또한 여경낭자가 무슨 행동
을 하더라도 방해를 말고 그냥 두십시오..! 」
모두들 미심쩍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상관명의 말을 수긍(首肯)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예원의 문밖에서 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주군.. 여경낭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
「 오.. 그래, 어서 안으로 뫼시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