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엄마, 내 엄마(1)
엄마, 내 엄마(1)
- 청산리
제대를 반년을 앞두고 있던 나는, 엄마로부터 편지를 받았
다. 면회 오겠다는 엄마의 말이, 편지의 끄트머리에 서툰 글
씨로 써 있었다.
‘면회라.....’
그러고 보니, 집에 안 간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자식이라
고는 나 하나뿐이었던 엄마의 속은, 이미 문드러질 대로 문
드러졌을 것이었다.
‘면회라.....’
1년이 넘도록 내가 집에 안 간 것은, 엄마가 미워서가 아니
었다. 엄마가 싫은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엄마에게 미안
한 마음뿐이었다.
‘면회라.....’
내 눈은, 편지에 듬성듬성 묻어난 얼룩에 멈춰 있었다. 그
랬을 것이었다. 엄마는 편지를 쓰면서, 한없이 솟아나는 눈
물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월 15일이라는 글씨에 내 눈은 박혀 있었다. 15일이면
내일 모레였다. 이번에도 오지 말라는 말 따위는, 엄마의 귀
에 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휴가까지, 반납했던 나였는데.’
괜스레 집에 가기 싫었고, 엄마에게도 미안해서 휴가를 반
납하겠다고 했더니, 중대장의 눈이 동그래지며 나를 이상한
놈으로 여겼던 것까지도 감수했었다.
‘엄마가 오는구나.’
기어코 면회를 오기로 작정한 엄마라면, 이제는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 1년처럼, 언제까지 엄마를 피하며 살
아 갈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온단다.’
이제는 엄마를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내일, 모레면 엄마
가 나를 찾아 올 것이었다. 엄마와 나 사이가, 이렇게 껄끄
럽게 변한 것은, 첫 휴가를 나갔을 때였다.
훈병의 고된 생활을 꿈 같이 흘려보내고, 자대에 배속되어
서도 6개월이 흘렀을 때였다. 휴가명령을 받자, 날아갈 듯
한 기분으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아이고, 경식아 이놈아.”
맨발로 내달으며 나를 붙잡고 철철 눈물을 흘리던 엄마였
다. 아들을 군에 보내고 늘 노심초사했던 엄마는, 검게 그을
린 내 얼굴을 백번도 더 어루만졌다.
집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내 팔자는 늘어졌다. 산해진미는
아니었지만,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에는, 내가 좋아
하는 것으로 늘 채워지곤 했다.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아무리 늦잠을 자도, 엄마는 낯빛도
변치 않고 나를 감싸주었다. 귀대를 사흘 앞두었던 날까지
는, 엄마와 나는 더 없이 좋았던 나날이었다.
그 날은 아침부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귀대날
짜가 점점 가까워지자, 마음 한쪽에서는 은근히 켕겼고, 겁
도 먹었던 참이었다.
친구 놈들과 술판이 길게 이어졌다. 꽤 많이 마셨지만, 그
날따라 정신이 말똥말똥 하기만 했다. 귀대를 앞 둔 휴가병
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괘종시계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까지 눈을 붙이지 않고,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눈 가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고, 좀 부은 듯 보였다. 아버지
를 여의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며칠이면 군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에, 엄마는 목이 멨다.
“경식아, 웬 술을 이렇게 마셨니?”
“엄마, 엄마도 괴로울 땐 술을 마셔봐.”
“술 마시면, 괴로움이 없어지니?”
“엄마, 그것도 몰랐어?”
“그래, 그렇구나. 술이란 것이.....”
괴로움을 잊는다는 말에 눈을 반짝였던 엄마가, 금세 풀죽
은 모습을 보이자, 가슴이 쓰렸다. 초라해 보인 엄마의 등이
그날따라 너무 측은해 보였다.
“엄마, 우리 술 한잔 할까?”
“얘는, 내가 술을 어떻게.”
“아냐, 엄마. 엄마도 한번 마셔 봐.”
“정말, 괴로운 것을 잊을 수 있니?”
엄마는 촉촉해진 눈을 들어 나를 보았다. 엄마가 눈 가에
맺힌 이슬을 슬며시 훔쳤다. 찡하게 메어지는 가슴을 안고,
후다닥 구두를 집어 들었다.
“어디 가려고, 경식아.”
“엄마, 잠간만 기다려. 얼른 술 사올게.”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의 술자리가 엄마와 나, 둘이서 그
렇게 시작되었다. 조금씩 혀끝으로 할금거리던 엄마의 볼
이, 사과 쪽처럼 붉어지더니 술잔을 제법 홀짝거렸다.
엄마의 이마가 찡그러지며, 눈자위가 많이 풀려 있으면서도
내미는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마셨다. 아직도 고운 자태를 그
대로 간직한 엄마를, 새삼스레 발견했다.
“엄마, 발그레한 볼이 예뻐.”
“어머나, 얘는 엄마에게 못할 말이 없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지며, 창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번갯불
이 번쩍거리며 파라락 지나갔다.
“엄마야.”
나직한 비명이었지만, 엄마는 겁을 먹고 있었다. 몸을 움츠
린 엄마가 들이치는 비바람에 진저리치며, 내 곁으로 바싹
붙었다. 쌔근대는 엄마의 숨결이 귓불을 간질였다.
“우르릉 꽝! 꽝!”
“엄마야!”
천둥소리가 굉음을 내며 들이쳤다.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내 품으로 무너졌다. 뭉클한 탄력이 내 몸을 파고들었고, 사
시나무처럼 파르르 떨었다.
‘괜찮아요. 엄마.’
취기가 내 눈을 천근처럼 무겁게 누르며, 그 말은 입 밖으
로 나오지 못했다. 보드랍고 매끈한 탄력이 내 품에서 꿈틀
거리자, 그 찌릿한 감촉을 잃을까 두려웠다.
펑퍼짐한 살덩이가 무릎에서 팔딱이고 있었다. 다급했던 엄
마가 내 무릎 위로 올라앉았던 때문이었다. 허리를 잡은 엄
마의 손은 행여 놓칠 새라, 힘이 잔뜩 들어 있었다.
말랑말랑한 것이 가슴을 자꾸 문대고 있었다. 숨소리가 쌔
근거리며 얼굴을 화끈하게 달구었다. 무릎 위에 얹혀진 엉덩
이는 내 중심을 사뭇 짓누르고 있었다.
‘엄마, 일어나야 돼요.’
목구멍까지 치솟은 내 말은, 입안을 맴돌고 있었다. 아래쪽
으로부터, 무엇인지 붉은 기운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살짝
걷힌 치맛자락이 허연 허벅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엄마, 제발.....’
천둥소리가 그치기를 바랐다. 아니, 천둥소리가 그치지 말
기를 바랐다. 간헐적으로 굉음을 쏟아내는 천둥소리가, 엄마
와 나를 더욱 밀착시키도록 만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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