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인간 - 27
<44. 시대극 쇼>
나츠다로와 하루다로는 맥주를 따른 컵을 서로 부딪치고 싱글거리며 건배했다.
"쿄오코. 요령을 잘 터득한 거야. 이제 나도 안심이야.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둘은 맛있는 듯 맥주를 한 컵 마시고 훈련 기둥에 묶여 있는 쿄오코 발 밑에
흐트러져 있는 바나나 껍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쿄오코는 온몸이 비지땀에 젖어 있었고, 어딘가 차가운 옆얼굴을 보이며
가볍게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 라고 말하듯이 슬픈
체념을 표정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 차가운 쿄오코의 미모를 하루다로와 나츠다로는 오싹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컵에 맥주를 따라 쿄오코의 양쪽에 찰싹 감기듯이 다가섰다.
"자 쿄오코에게도 대접해야지. 멋지게 과일을 요리한 축하 선물이야. 자,
마셔"
나츠다로가 컵을 쿄오코의 입으로 가져갔다. 컵이 입에 닿자 쿄오코는 일부러
자조적인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먹겠어요. 쿄오코가 드디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축하 기념으로요."
두 사람의 시스터 보이를 조소하듯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띄우며 쿄오코는
나츠다로가 내미는 맥주를 한숨에 들이켰다.
하루다로는 소리 없이 웃으면서 쿄오코의 발톱 밑에 떨어져 있는 과일 조각을
손에 들어 쿄오코의 눈앞에 갖다댔다
"이것 봐. 지금 쿄오코가 만든 거야. 어때 이 선명하게 벤 자리 마치 칼로
자른 듯하지 않아?"
하루다로는 그렇게 말하며 나츠다로와 함께 웃었다.
쿄오코는 슬픈 듯이 긴 눈썹을 떨며 얼굴을 돌렸다.
"후후후, 뭐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이것으로 쿄오코는 한가지
기술을 더 배운 거야. 자, 어때, 한잔 더,"
하루다로는 다시 컵에 가득 맥주를 따라 쿄오코의 입으로 가지고 갔다. 쿄오코는
주저 없이 다시 컵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단숨에 마셔버렸다. 마치 취해서
신경을 마비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하루다로가 문 안쪽 열쇠를 풀고 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자 츠무라 요시오가 서 있었다.
"어때?"
하루다로는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며 기분 좋은 듯 요시오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츠무라 씨, 드디어 쿄오코가 요령을 터득해줬어요. 이것 봐요."
하루다로는 잘라진 조각을 요시오에게 보였다.
"헤헤헤, 과연 그렇군."
요시오는 하루다로가 보여준 것과 기둥에 묶여져 있는 쿄오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쿄오코는 천진난만한 수치심을 드러내며 가볍게 눈을 감고 얼굴을 돌려 포동포동
살이 오른 관능적인 허벅다리를 딱 붙이고 서 있었다.
여러 겹의 줄에 꽉 묶인 쿄오코의 풍부한 젖가슴에 번쩍번쩍 진땀이 빛나고
있는 것은 두 명의 시스터 보이에게 몇 시간에 걸친 굴욕적인 훈련을 필사적으로
맞붙은 증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요시오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돌리고 있는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이고 있었다.
"공수 2단의 실력인 과격한 언니도 드디어 예정된 코스와 맞붙게 되었군."
요시오는 소리내어 웃고는 두 시스터 보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 과격한 언니가 육체적으로 성장한 것은 기쁜 일인데 근성은 어때."
"어제 그제의 쿄오코는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들의
리드가 능숙했다 라고 할 수 있죠. 손님을 즐겁게 하는 사랑스런 여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몇 번이고 맹세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우리 훈련을 받았어요."
하루다로가 즐거운 듯이 요시요에게 말했다.
"그래, 그것 잘됐군. 지금 동생 세이지 일행들이 왔는데……."
요시오가 한쪽 볼을 찡긋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듯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있던 쿄오코는 당황한 듯이 갑자기 얼굴을 들었다.
"왜 그래, 쿄오코? 이제 와서 당황할 건 없잖아. 동생들은 2년 전의 한을
갚겠다고 기세가 대단해."
요시오가 비웃듯이 웃으며 말하자 쿄오코는 다시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단념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한 쿄오코에게 하루다로는 힐끔 시선을 돌리고,
요시오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츠무라 씨. 쿄오코는 징계 받을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어요.
그건 그렇고 동생들은 지금 어디에?"
"홈바에서 사장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어. 2년 전 쿄오코에게 당한 사정을
말하고 사장의 허가를 받고 있는 참이야."
요시오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후 하고 쿄오코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쪽의 각오는 대단하던데. 얌전하게 세이지 녀석들의 징계를 받아야 할거야.
그놈들을 애먹이거나 하면 너의 귀여운 동생에게까지 불똥이 튈 테니까.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거야."
쿄오코는 젖은 눈동자를 살짝 들어 요시오의 얼굴을 보았다.
"알고 있어요. 어떤 징계라도 쿄오코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그 대신 부탁입니다.
미츠코를 내 일에 말려들게 하지는 말아주세요."
"알고 있어. 하지만 동생들에게 2년 전의 일을 사과하고 그놈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거야. 알았지?"
쿄오코는 슬픈 듯이 젖은 눈썹을 깜박거리며 승낙의 의지를 나타냈다.
"자, 세이지 일행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주세요."
"좋아, 좋은 생각이야. 역시 과격한 언니는 체념도 깨끗하군."
요시오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말한 후 다시 덧붙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나체인 채 세이지 앞에 나서는 것은 재미가
없어. 목욕하고 화장을 해. 옷도 제대로 입는 게 좋아."
세이지들 앞에 나서서 자신의 손으로 옷을 벗고 2년 전 폭력을 행사한 잘못을
빌게 한다는 것이 요시오의 목적이었다.
"그렇군요. 그런 쪽이 동생들도 기뻐하리라 생각해요. 그럼, 선이라도 보러
가는 듯이 말쑥한 차림을 해줘, 쿄오코."
하루다로와 나츠다로는 훈련 기둥에 묶여져 있는 쿄오코의 끈을 풀어주었다.
"쿄오코, 잠시 동안 자유롭게 목욕을 시키는데 공수 같은 건 사용하지 말아요.
후후후, 원래 그런 나쁜 생각은 손톱의 때만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이상한 행동을 하려거든 귀여운 여동생 일을 잘 생각해보고 해."
두 시스터 보이는 그렇게 말하며 쿄오코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온몸이 자유로워진 쿄오코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하얀 양팔을
앞으로 교차시키며 두 젖가슴을 껴안았다. 온몸이 마치 솜처럼 늘어져 있었다.
"자, 목욕하고 깨끗이 화장합시다."
하루다로와 나츠다로는 쿄오코의 양쪽에서 매끄러운 어깨에 손을 걸쳤다.
그때, 2층의 흠바에서는 요시오의 남동생인 세이지와 그의 동료 코오니,
미키오 세 사람이 다시로가 권하는 위스키를 황송한 듯 굽실굽실 머리를 조아리며
마시고 있었다.
"사장님, 뭔가 우리들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면 사양 말고 말씀해주세요.
살인 경험만 빼고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세이지는 다시로의 컵에 위스키를 따르며 간살부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츠무라 세이지 나이는 스물 두세 살 정도. 형인 요시오와 닮은 창백하고
얇은 피부를 가진 키가 큰 남자로 어딘지 모르게 불량기가 있어 보였다.
"교오코에게 원한이 골수에 미칠 정도라고 하던데……."
다시로는 세 사내들을 재미있는 듯 쳐다보면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건 이제…… 어쨌든 이걸 보세요, 사장님."
세이지는 두 팔을 걷어올리며 다시로의 눈앞에 내보였다.
"저 여자에게 공수로 당한 멍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확실하게
남아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세 사람은 저 여자 때문에 콩밥까지
먹었습니다.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장님?"
세이지는 초조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 다시 다시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쿄오코가 시스터 보이의 여자가 되었다는 게 정말입니까?"
"아아, 지금의 쿄오코는 너희들이 상상하고 있는 여자하고는 완전히 다를지도
몰라. 그녀는 지금은 나의 노예와 같아. 살리든 죽이든 그건 이쪽의 자유지.
하하하."
다시로는 큰 입을 벌리고 유쾌한 듯이 웃었다.
"단지, 노예라고 해도 아까 말했듯이 중요한 상품이거든. 츠무라 씨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너희에게 쿄오코의 몸을 건네주지만 저 아름다운 몸에 상처를 입히는
난폭한 일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해."
그렇게 다시로가 말했을 때, 문이 열리고 오니겐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들어왔다.
"훈련은 이쯤에서 슬슬 정리하지 않겠어, 오니겐? 도박장 쪽도 곧 일단락
지을 듯하니까."
문득 오니겐은 다시로 쪽을 보며 비굴하게 간살부리듯 웃었다.
"아아, 사장님. 여기에 계셨습니까."
다시로가 츠무라 씨의 동생이라고 세이지 일행을 소개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2년 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쿄오코와 대결하러 오셨죠."
오니겐은 이렇게 말하고 스탠드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쿄오코도 지금은 반항하는 일없이 여러분의 징계를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니겐은 주머니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어 다시로의 앞에 펼쳐
보였다.
"어떻습니까, 사장님? 이것은 시즈코 부인의 습자입니다. 헤헤헤, 저 정숙한
부인이 드디어 멋진 힙을 비틀면서……."
오니겐은 종이를 손에 든 다시로의 얼굴을 보면서 킥킥 웃어댔다.
"과연 처음 치곤 꽤 능숙한 것 같은데."
"저 부인은 서도 또한 경지에 이르렀다니까 가르치기가 편해요."
세이지 일행은 종이에 씌어진 문자와 오니겐과 다시로가 주고받는 얘기를
흥미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너희들 세 명에게 이 집에 있는 미녀를 뵙게 해주지. 따라와."
다시로가 일어섰다.
"자, 우선 전 도야마 재벌의 사모님, 도야마 시즈코 부인이다. 천하의 미녀이지.
자, 오니겐 안내 해줘."
다시로는 묘하게 이 세 사내들이 맘에 들었는지 술기운에 달아오른 붉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들을 미녀 훈련 실로 안내하려고 하였다.
훈련실 옆에 있는 넓은 미닫이문이 조용히 열리고, 오니겐에게 안내된 다시로와
세이지 일행이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객실 중앙에서 행해지고 있는 소위 훈련이라는 것을 처음 본 이 사내들은
무심코 에헤 하는 신음과 함께 서로 히죽히죽 웃으며 얼굴을 쳐다보았다
천장 들보에서 타고 내려온 고무줄에 보라색 천으로 팔을 뒤로해서 묶인
몸으로 간신히 서 있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미녀. 더구나, 그 아름다운
곡선의 엉덩이를 계속 꿈틀꿈틀 거리며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가 가져다주는
종이 위에 붓끝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붓이 부인의 왕성하고 볼륨이 있는 힙에 달려 있는 것을 안 다시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버렸다.
종이를 가져다주는 정장 차림의 비쩍 마른 여자―찌요가 다시로 쪽을 보고
금니를 보이며 씽긋 웃었다.
"오니겐 씨가 굉장히 피곤한 것 같아서 내가 대신 이 부인을 지도하고 있어요.
제법 능숙해졌어요."
찌요는 손에 잡은 종이를 다시로의 눈앞에 내밀었다.
"나도 여러 종류의 구경거리를 봤지만 힙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다시로가 혀를 내두르자 오니겐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오니겐의 비법이지요. 헤헤헤, 아무튼 이 부인은 내가 옛날에 돌봤던 창녀들과는
달라서, 총명한 데다가 모든 것이 정말로 훌륭해요. 그래서 이렇게 빨리 요령을
터득해주는 겁니다."
다시로는 즐거운 듯이 끄덕 이면서 전신에 담을 흠뻑 흘리고, 가볍게 눈을
감고 있는 시즈코 부인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바라보며 세이지 일행을 손짓으로
불러, 마치 자신의 보물이라도 자랑하듯이 말하였다.
"어때, 대단한 미인이지. 너 이런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를 지금까지 본
적 있나. 그것뿐만이 아니야. 프랑스 대학에서 유학한 적도 있는 인텔리이고,
대재벌의 사모님이지. 그런 사람을 이처럼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여자로 만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다시로는 코를 벌름거렸다.
시즈코 부인은 다만 침묵한 채, 꿈을 꾸는 듯이 길고 아름다운 속눈썹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굴욕스러움에 한번 죽고. 굴욕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처참할 정도의 냉정함이 시즈코 부인의 온몸에 흐르고 있었다.
"자, 사장님이 보는 곳에서 부인, 다시 한번 글씨를 써보시죠."
찌요는 그렇게 말하고 부인의 뒤쪽으로 돌아가서 붓을 끼우기 시작했다.
시즈코 부인은 진주같이 아름다운 치열을 보이며 애달프게 위를 향해서 애교스런
목덜미를 선명히 드러냈다.
벼루의 먹물에 듬뿍 붓끝을 담근 찌요는 다시 부인에게 끼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호를 하자 시즈코 부인은 마치 조립 인형처럼 정해진 행위를 연기해야만
했다.
그런 광경을 세이지 일행은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오니겐은 뭐에 흘린 듯한 세이지의 옆모습을 보고 히죽 웃었다.
"이런 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이니까 잠깐 훈련실 쪽으로 가볼까."
오니겐은 다시로 쪽에도 눈짓을 하고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복도 쪽으로 나와서 훈련 실의 문을 열자, 벽에 팔짱을 끼고 기대고있던
긴코와 아케미가 입술에 손을 대고 조용 하라고 신호를 했다.
"지금, 사요코가 스타로서 눈을 뜨기 시작하는 중이야. 주위가 산만해지면
안 되니까, 조용히 들어오세요."
긴코가 미소지으며 말했기 때문에 오니겐, 다시로는 눈을 깜박거리며 발소리를
죽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에 붙어서 살짝 발을 들여놓은 세이지 일행은
훈련 실의 주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복숭아색 천으로 손이 뒤로 묶여져 몸이 단 하나의 줄에 연결되어 서 있는
사람은 상아빛으로 반짝이는 횐 피부를 가진 가냘픈 양갓집 딸 같은 느낌을
주는 미인이었다.
그런 여자를 인상이 나쁜 건달 같은 두 명의 남자들이 기묘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에, 오니겐 씨. 화내지 마세요. 저 두 사람은 사요코를 사랑하고 있어요.
괜찮지요. 저 두 사람에게 사요코의 훈련을 맡겨도……."
"그래, 괜찮아."
다시로가 두 사람의 부하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 사요코 쪽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서 긴코에게 말했다.
그리고 세이지 일행 쪽을 돌아보고 설명을 해주었다.
"저 아가씨는 말야. 보석상의 여염집 아가씨지. 그것이 어떻든, 지금은 저런
일을 즐거운 듯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자라고 하는 것은 태생이 어떻고
성장이 어떻다 하더라도 여기서 훈련을 받으면 저러한 일쯤은 훌륭하게 해낼
수가 있어. 하하, 좀더 옆에 다가가서 잘 봐."
역겨운 계란을 깨는 훈련을 받고 있는 사요코도, 그 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다케다와 호리가와도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이마의 땀을 연신 손으로 닦아내면서
사요코의 도자기처럼 하얀 아름다운 허벅지를 좌우에서 휘감으며 신중하게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열기에 빠진 탓인지 입구 가까이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다시로와 오니겐
일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요코는 아름다운 눈썹을 애절하게 찡그리며 상아빛의 목덜미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얼굴을 위로 향한 채 괴로운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때, 아가씨 즐겁지. 이런 식으로 계란하고 노는 기분이."
다케다와 호리가와는 일단락 지을 때마다 히죽거리며 사요코의 얼굴을 보았다.
사요코는 빛이 사라진 공허한 눈을 멍하니 앞을 향하며 괴로운 듯이 입술을
벌렸다.
"부, 분해. 결국 사요코에게 이런 짓을……."
그렇게 말하며 사요코는 슬픈 듯이 눈을 감고 고개 숙인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이윽고 오니겐과 다시로의 뒤를 따라 훈련 실을 나온 세이지 일행은 그대로
지하실로 안내되었다. 거기에는 쿄오코의 여동생인 미츠코가 이미 가와다와
요시자와의 손에 의해 훈련받고 있을 거라고 오니겐이 말했다.
지하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하자 뒤에서부터 긴코와 아케미가 뒤쫓아오듯이
내려왔다.
"저 오니겐 씨. 이분들 도대체 누구예요. 소개해줘요."
긴코와 아케미는 세 사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오니겐에게 말했다.
"츠무라 씨의 동생이다."
오니겐이 대답하자 긴코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꽤 잘생긴 분이네. 츠무라 씨하고 닮았어요. 나는 긴코, 그리고 이쪽은
아케미, 잘 부탁해요."
하고 긴코는 일부러 음탕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세이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이지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긴코는 점점 마음에 들었다.
"당신이 앙심을 품고 있는 쿄오코에게는 우리들도 여러 가지 원한이 있어요.
즉, 쿄오코는 당신과 내게는 공동의 적인 셈이지요. 여러 가지로 우리들도
도와줄게요."
묘하게 색기를 띤 눈초리로 긴코는 세이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오니겐이
히죽히죽 웃으며 긴코에게 말했다.
"긴코, 세이지 씨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 아냐. 너 한눈에 반해버린 것
같다."
긴코는 어울리지도 않게 얼굴이 새빨개지며
"이상한 말하지 말아요."
하고 오니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 세이지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쿄오코 일인데요. 그 여자를 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후후후, 뭐니뭐니 해도 여동생인 미츠코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 여자, 굉장히
동생을 아끼거든요."
그런 말을 하면서 지하실로 내려가자 거기에는 가와다, 요시자와, 우에노
세 사람이 선 채로 뭔가 작은 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아, 사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잠깐 봐주세요."
우에노가 감옥 쪽으로 달려가서 게이코를 끌고 왔다.
아이고 하고 다시로는 한숨을 쉬며 턱 주위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게이코는 젊은이 모습으로 분장하고 있었다.
가는 끈으로 뒤로 손이 묶여진 젊은이 모습의 게이코는 아무런 저항 없이
우에노에게 끌려와 다시로 앞에 세워졌다.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요. 게이코를 남장시켜서 오늘밤 쇼에 출연시키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는 것이 이와자키 두목을 더 즐겁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것 참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쇼에 나오는
거야."
"그건 오늘밤에 보시면 압니다. 헤헤헤, 지금까지 요시자와 형님과 가와다
형님하고 상의해 훈련도 대충 끝낸 상태입니다."
우에노와 요시자와, 가와다는 뭔가 세 사람만의 비밀을 즐기고 있는 듯이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남장의 미인인가. 하하하, 오늘밤 쇼가 기대되는군."
다시로는 붉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젊은이 모습의 게이코를 쳐다보았다.
"야, 귀여워라. 물방울이 똑똑 떨어질 것처럼 예쁜 젊은이란 바로 이런 거로군."
긴코, 아케미는 게이코의 옆에 다가가 한숨을 내쉬며 남장을 한 게이코의
옆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화장을 좀 해줘. 그건 너희들의 일이야."
우에노가 긴코와 아케미에게 말하자 둘은 게이코의 줄을 잡고
"자, 게이코 씨. 화장하러 갑시다."
라고 웃으면서 끌고 갔다.
그 후 다시로는 가와다 일행에게 세이지를 소개하고 미츠코와 후미오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몸과 마음이 무참히 짓밟혀 버린 미소년과 미소녀가 안에서 가와다의 손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다시로는 세이지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남장한 아름다운 여인은 대재벌의 아가씨, 그리고 이 소년은 아까
보석상의 따님인 사요코의 남동생이야. 그리고 그에게 붙어 있는 귀여운 아가씨가
너희들에게는 원한이 있는 쿄오코의 여동생이야. 하지만 여기서 후미오 군과
미츠코 양은 버젓한 부부로서 이 쇼의 젊은 인기 스타이기도 하지."
가와다가 밧줄에서 손을 떼자 미소년과 미소녀는 금방 그 자리에서 몸을
작게 구부리고 감싸듯이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어때, 정말로 사이 좋은 부부지."
가와다는 유쾌한 듯이 배를 흔들며 웃었다.
세이지 일행은 후미오와 미츠코의 미모에 우선 눈을 크게 떴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눈앞에서 수치와 공포로 바들바들 떨며 손을 뒤쪽으로
바싹 묶인 아름다운 두 사람이었다.
"역시 젊은 손님 앞에 나서면 둘 다 부끄러워서 몸이 굳어져 버리는가봐."
다시로가 입을 삐죽이며 오니겐에게 말했다.
"어제의 공연과 완전히 똑같다면 너무 심심하니까 취향을 바꿔보려고 합니다."
오니겐이 그렇게 말하자, 이미 두 사람이 쓸 가발 준비도 되어 있다고 요시자와가
덧붙여 다시로에게 말했다.
다시로는 만족스런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자키 두목도 반드시 기뻐할 거야. 세이지 군, 쿄오코의 응징 같은 건
언제라도 가능하니까, 우선 쿄오코 여동생의 쇼를 보는 게 어때?"
그 후로 막 한 시간이 지난 후, 시즈코 부인과 사요코는 긴코와 아케미에게
묶여 지하 감방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긴코와 아케미의 뒤에서는
찌요가 담배를 피우며 음습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다가왔다. 게이코, 후미오,
미츠코는 오늘밤 쇼를 배우기 위해 오니겐과 가와다 들에게 대숲 속의 밀실로
옮겨진 듯이 지하실은 텅 비어 있었다.
시즈코 부인과 사요코는 나란히 고개를 떨군 채 맨발로 불안한 발걸음을
옮겨 지하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그녀들은 이미 솜처럼 지쳐있어 서로 위로의
말을 나눌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찌요는 피우던 담배를 돌계단에 비벼 끄고, 앞에서 끌려가는 시즈코 부인과
사요코에게 말했다.
"두 사람들 오늘은 충분히 연습을 해둬. 쇼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방안에서 쉬어라."
지하실 안 감방은 세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첫 번째 감옥 앞으로 오자
아케미가 쇠창살의 자물쇠를 철컥 열었다.
"여기가 사요코의 집이지. 후후 시즈코 언니와 같이 있게 해주고 싶지만,
언니는 두세 시간 후면 쇼를 하러 가야 해. 그러니 오늘밤은 혼자서 얌전히
자야겠다."
긴코와 아케미는 시즈코 부인의 포승줄을 찌요에게 맡기고 사요코의 결박을
풀었다. 드디어 양손이 자유롭게 된 사요코는 허리를 굽히고 가슴을 누르며
갑자기 슬픈 표정으로 포승줄에 묶여 있는 시즈코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즈코 부인도 그늘 깊은 눈으로 비통하게 사요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천근의
피로에 눌려 입을 열 기력조차 없었다.
"자 들어가."
백옥같이 하얀 등을 긴코가 떠밀자, 사요코는 양손으로 유방을 감싼 채 터덜터덜
감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로 아케미가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아케미는
약 세 평 남짓한 감방 안에서 미녀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은 것을
즐거운 듯 바라보았다.
"연습에 잘 응해왔으니, 시즈코 부인의 오늘밤 쇼 출연을 특별히 허락한다는
오니겐 씨의 허락이 있었어. 그 대신 내일은 8시부터 연습을 시작해야 해."
긴코는 이렇게 말하고 바지 주머니에서 탁구공을 꺼내 쇠창살 사이로 사요코에게
던져주었다. 공은 무릎을 세워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은 사요코의 둔부에 맞고
돌로 된 마루로 굴러갔다.
"자기 전에 그걸로 잘 단련해둬. 그리고 매일 밤 스스로 공부해야해. 알겠어?"
이렇게 말한 두 명의 불량배는 구석에 쌓아둔 모포 한 장을 꺼내어 쇠창살
사이로 밀어 넣으며
"공부가 끝나면 이걸 덮고 자. 예전 그이의 꿈이라도 꾸면서 말이야."
라며 키득키득거리던 긴코와 아케미는 이번에는 시즈코 부인의 포승줄을
찌요에게서 넘겨받았다.
"자, 부인은 밤에 쇼가 시작될 때까지 세 시간 정도 휴식이야."
시즈코 부인은 긴코가 등을 밀자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얼어붙은 아름다운
얼굴을 들어 돌계단 위를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부터, 먹을 묻힌 붓으로 철저하게 농락 당하던 부인의 풍만한 둔부가
걷기 시작하자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찌요는 혀라도 대고
싶다는 듯이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자 여기야."
녹슨 쇠창살에 부딪힐 정도로 다가서며 아케미와 긴코는 낮은 감방 입구로
부인을 밀어 넣고 곧이어 자기들도 감방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오니겐 씨의 명령이야. 그가 여기 올 때까지 부인의 포승줄을 풀어줄 수
없어. 좀 참고 있어."
두 사람은 부인의 우윳빛 어깨와 등을 밀어 네 평정도 되는 감방 구석의
돌로 된 바닥에 모포를 깔고 부인을 앉혔다. 벽돌 벽에는 쇠 바퀴가 걸려있어
그곳에 부인의 포승줄을 묶었다. 긴코는 바지 주머니에서 줄을 꺼내며 부인에게
말했다.
"다리를 포개라."
시즈코 부인은 순순히 정좌를 하고 있던 다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후후후, 말을 참 잘 듣는군. 부인."
찌요도 감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다리를 하려 애쓰는 시즈코 부인을 심지
있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인이 겨우 다리를 포개고 앉자, 긴코는 부인의
발목을 겹치게 한 후 묶기 시작했다.
"호호호, 부인. 꽤 많이 지쳐 보이네. 습자 연습을 꽤나 많이 하셨나? 통증은
좀 어떠신가?"
찌요는 즐거운 듯 말하며, 다리를 포개 앉은 부인 앞에서 몸을 구부려 부인의
고귀해 보이는 콧날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내렸다. 지금까지 추악한 쇼를 해왔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시즈코 부인의 아름답게 정돈된 단아한 용모와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시선으로 멍하니 앞을 보고있는 시즈코 부인의 젖어있는 듯한 서정적인
눈동자를 찌요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바라보았다.
조금 도를 지나쳤다고, 찌요 자신도 갑자기 얼굴을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잔학한 고문을 시즈코 부인에게 가한 것이 몇 번이던가. 이 보석같이 아름다운
시즈코 부인은 그 빛을 잃어 가는 것인가?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부인의 아름다움은
한층 빛을 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염한 시즈코 부인의 목덜미에서 어깨, 보라색 띠로 묶여져 있는 두 개의
아름답고 풍만한 유방,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복부선, 광택 있는 우윳빛으로
빛나는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육체. 찌요는, 다시금 시즈코 부인의 아름다운
육체에 압도당하면서도, 그러한 자신이 괴로워져 엉겁결에 발작적으로 부인의
뺨을 찰싹 때렸다.
시즈코 부인은 찌요에게 맞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잘 단련된 듯이 냉정한
표정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찌요는 시즈코 부인이
세상의 욕망을 일체 버리고 이 지옥 같은 곳에 몸도 마음도 녹여버릴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인이 인간의 욕구를 포기하고 짐승보다 못한
생물로 운명에 몸을 맡기는 심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시즈코 부인을
더욱 학대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시즈코 부인의 천성적인 미모에
대한 질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찌요는 자신이 조금 불쌍하게 생각되어
거꾸로 패배감이 들었다.
초조해진 찌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얼어붙은 듯 냉정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부인의 턱에 손을 대고 갑자기 얼굴을 들어올렸다.
"울든지 웃든지, 당신은 오늘밤 스테타로의 여자가 될 거야. 호호호. 그것도
이와자키 선생의 친구들인 야쿠자들이 단체로 구경하는 앞에서."
"각오는 돼 있다고 이미 찌요 씨에게 말했어요."
시즈코 부인은 차갑지만 아름다운 눈을 찌요에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조급해진
찌요를 질책하는 듯한 냉정한 어조였다. 찌요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히스테릭한 찌요의 마음을 달래듯이 긴코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찌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서 투덜대봐야 별수 없잖아. 이 아줌마가 스테타로와 실습할 때 마음껏
통쾌해하면 되지 않겠어?"
"그래, 네가 말한 대로야."
찌요는 가볍게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문 채 발이 묶여 있는 미녀를 흘겨보며
긴코 들과 함께 감방을 나왔다. 쾅 하고 철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긴코는
쇠창살 사이로 부인을 들여다보며,
"자, 그럼 부인. 오늘밤 쇼에서 만납시다. 후후후."
라고 말하며 찌요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콧노래를 부르며 지하실을 나섰다.
찌요와 긴코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지자, 시즈코 부인은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와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부인이 눈을 뜨자 누군가가 물끄러미 쇠창살
사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그것은 에츠코였다.
시즈코 부인은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이 최근 자기를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여온
에츠코 한 사람뿐인 것을 알고 안심한 듯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에츠코에게
시선을 주었다. 에츠코도 미소를 지었다.
"저요 부인, 아까부터 여기에서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시즈코 부인은 볼을 붉히며 물었다.
"에츠코 씨, 저 어느 정도 잤나요?"
"두 시간 정도……."
부인의 기품 있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럼 이제 나가야 하겠군요."
시즈코 부인은 에츠코가 자기를 쇼 무대에 데리러 온 줄로 생각하고 쓸쓸히
에츠코를 바라보았다. 에츠코 역시 조금은 괴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조금은 시간이 남았지만 곧 오니겐 씨 일행이 부인을 데리러 이곳에
올 거예요."
이렇게 말한 에츠코는 들고 있던 화장품 상자를 들어올려 부인에게 보였다.
"저, 사장님과 오니겐 씨에게 말씀드려 부인에게 화장시켜 드리려고 여기
왔어요."
시즈코 부인은 부드러운 속눈썹을 슬프게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럼 에츠코 씨는 사형수를 대하는 선교사 같은 사람이군요."
하며, 가볍게 농담하는 것도 아마 부인이 모든 것을 체념했기 때문이리라.
에츠코는 안심한 듯이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부인, 저는 부인이 불쌍해요. 부인은 아무 죄도 없어요."
"에츠코 씨, 이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시즈코는 당신의 노예일 뿐이에요."
시즈코 부인은 슬픈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을 살짝 들었다.
"지금 포승을 풀어줄게요. 긴코 씨가 화낼 테지만 상관없어요."
"그러지 마세요. 그런 일을 하면 모두가 당신을 괴롭힐 거예요. 이대로도
상관없어요. 자, 이제 화장해주세요."
시즈코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에츠코는 허리에 감아놓은
네카칩을 풀어 부인의 무릎에 펼쳐놓고, 부인의 옆으로 몸을 숙여 화장품 상자를
열었다. 시즈코 부인은 단 냄새가 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해주세요. 에츠코 씨."
하고 부드럽게 간질이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응석부리듯이 얼굴을 에츠코에게
맡긴 시즈코 부인. 그렇게 무리하게 평정을 가장하는 모습이 오히려 에츠코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괴롭죠 부인?"
"괴롭냐고요?"
시즈코 부인은 한쪽 볼에 미묘하게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괴롭다거나 힘들다고 하기보다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이상할 지경이에요."
시즈코 부인은 멍한 눈을 감은 채 에츠코의 손에 조용히 얼굴을 맡기고 있었다.
"저, 부인께 부탁이 있어요."
에츠코는 시즈코 부인의 눈에 엷게 아이 섀도를 바르며 말했다.
"뭐지요 에츠코 씨?"
"제가 이렇게 말하면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싶어요. 부인이 가지고 있는 교양의 수십 분의 일, 아니 수천 분의 일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에츠코는 가정 형편으로 여고를 중퇴하고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된 사연을
부인에게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외국에 가고 싶어요. 그래서 한때는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학원에 다닌 적도 있지요."
에츠코의 손으로 아름답게 단장된 시즈코 부인은 이상하다는 듯 에츠코를
보았다.
"부인 부탁이에요.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세요."
에츠코는 갑자기 격렬해진 어조로 싸울 듯이 말했다. 시즈코 부인은 아연한
표정으로 빤히 에츠코를 보았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에츠코 씨, 그것은 무리예요. 저는 지금 잡혀있는
몸이고 게다가 오늘밤은 결국 최후의 파멸로 쫓겨갈 몸이에요. 그런 제가 도대체
무얼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렇게 말한 시즈코 부인은 무언가 가슴에 슬픔이 치밀어 올라 얼굴을 옆으로
묻었다. 에츠코는 갑자기 낙담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래요. 아무런 희망도 없는 부인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제가 바보였어요.
용서하세요. 오히려 부인께 슬픔을 더해드린 것 같군요."
에츠코는 실망하며 부인의 머리를 벗기 시작했다.
"에츠코 씨!"
시즈코 부인은 맑은 눈으로 에츠코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까지 공부하고 싶은 건가요?"
"예, 어학뿐만 아니고 역사나 문학도 공부하고 싶어요. 이제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이 참을 수 없이 싫어요."
"응, 알았어요."
시즈코 부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저는 이미 아무 희망도 없고 지금까지 전락해온 운명의 여자이기는 하지만
당신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남아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말씀하세요."
"정말이신 가요, 부인?"
에츠코는 기쁨에 들떠 부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자, 이제부터 부인은 저의 어학 선생님이 되어주신 겁니다."
"선생이라니 뭐 그런……."
이제부터 매일, 오니겐의 훈련이 끝난 후, 어두운 감방 안에서 에츠코에게
프랑스어와 영어를 가르친다. 그런 자신이 참을 수 없이 비참하게 생각되었지만
시즈코 부인은 에츠코의 열성에 진 것이다. 또한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 지옥의
바닥을 헤매는 자신에게 정신적인 구원이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결심한 시즈코 부인은 오니겐 패들이 이곳에 올 때까지 앞으로의 공부 방침에
대해 에츠코와 의견을 나누었다.
"저, 빨리 내일 서점에 가서 프랑스어 독본을 사다드릴게요."
이렇게 말하는 에츠코에게 시즈코 부인은 어떤 종류의 책을 사올 것인가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부인은 프랑스어를 몹시 배우고 싶어하는 에츠코에게,
초보적인 교양으로 프랑스 문명 개발에 대해 간단히 말해 주었다.
"싫어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당신에게 보이며 문명 개발 이야기를 한다니
말이에요."
시즈코 부인은 긴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부끄러운 듯 미소지었다.
―로마제국이래 프랑스에는 이탈리아, 스페인의 문화와 그 외의 제국 문명이
모여들어 루블이 출현하여 그것을 기초로 지금의 프랑스 문명이 생겼다는 것.
에츠코의 희망대로 프랑스 문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부인은, 그 순간만은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을 맛보고 있는 현실을 잊을 수가 있었고, 부인의 뇌리에는
도야마 다카요시와 결혼한 직후 몇 번인가 유학이나 관광을 갔던 유럽의 풍물이
떠올랐다.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가던 길에 파리 교외의 고즈넉한 아름다움.
쓸쓸한 겨울의 자연 풍물이 무언가 가슴을 저미며 주마등같이 부인의 기억을
스쳐지나갔다. 아! 그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운 추억에 부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 갑자기 오니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무얼 둘이서 소곤소곤 얘기하는 거야?"
깜짝 놀라 부인과 에츠코가 동시에 얼굴을 들자 어느결엔가 오니겐과 찌요가
쇠창살 사이로 이쪽을 보며 히죽히죽 웃고있었다.
"베르사유가 어떻고, 몽파르나스, 그게 도대체 어떻다는 거야? 여기에 이제부터
부인과 스테타로가 곧 시작할 69에 대해 이야기 좀 해보려는데……."
오니겐은 이렇게 웃으며 말한 후 찌요와 함께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에츠코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단장해놓은 시즈코 부인을 본 찌요는,
"와! 예쁜데. 오늘밤 손님들에게 갈채를 받을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며 오니겐과 함께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시즈코 부인의 양옆으로
히죽거리며 다가섰다. 부인의 수치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에츠코가
부인의 무릎 위에 펼쳐둔 네카칩을 찌요가 빼앗듯이 집어들며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에츠코를 험악하게 쳐다보았다.
"내 허락 없이 이런 여자를 동정하는 일 따위는 하지 마."
에츠코는 찌요를 쏘아보며 말했다.
"동정 받은 쪽은 저예요."
에츠코는 두리번거리며 시즈코 부인에게 프랑스어 등을 시간을 내서 배우게
되었다고 설명하자 오니겐과 찌요는 얼굴을 마주보며 소리를 내어 웃었다.
오니겐은 히죽거리며 백랍같이 희고 우아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시즈코 부인을 보았다.
"어이 부인, 에츠코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것은 좋지만 자기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안 돼."
오니겐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 속에서 고무로 만든 두툼한 막대기 같은
것을 꺼냈다.
"자, 사장들의 의견이 오늘밤 당신과 스테타로의 쇼는 우선 69자세부터 하자는
거야. 어때 69자세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이거, 프랑스에서 오래 산 부인이
실습을 하게 된다는 게 재미있는걸."
시즈코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찌요가
옆에서 끼여들었다.
"호호 그러니 부인, 손님 앞에서 연기를 하기까지는 아직 삼 사십 분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때까지 잠깐 그 우아한 부인의 입으로 연습을 해볼까? 오니겐
씨도 그걸 원하는걸."
"이건 스테타로의 물건을 본 따 내가 이전에 만들어둔 거야. 어때 훌륭하지?
너 같은 영부인의 벙어리 같은 입에 어울릴지 상당히 고심했죠."
오니겐은 히죽 웃으며 시즈코 부인의 기품 있는 콧날을 눌렀다. 침묵을 지킨
채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던 시즈코 부인도 목덜미에서 귓불까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 코치를 해주지. 무대에서 허둥대면 안 되니까."
부인의 오른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오니겐은 부인의 몸에 자기 몸을 밀착시켜
왼손으로 부인의 우윳빛 어깨를 감싸고 오른손으로 자기의 작품을 쥐어 부인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어이 어때. 그렇게 부끄러워하지마. 미츠코는 후미오와 잘하던데. 자,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려봐."
"자 부인, 확실하게 연습해둬.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쇼장에는 벌써 손님으로
가득 찼어. 부인이 나타나기를 지금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찌요는 킬킬대며 부인의 오른쪽에 몸을 밀착시켜 잔뜩 긴장되어 있는 부인의
보랏빛 유방을 손가락으로 튀겼다.
한참을 고개를 떨군 채 훌쩍거리며 오니겐과 찌요를 애먹이던 시즈코 부인은
마침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어이, 난, 네가 무대에서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얼마나 애쓰는 줄 알아?
그리고 이 물건은 네 남편도 좋아할 거야."
오니겐은 부인의 결심을 재촉하듯이 말했다.
"서로 부부 아니야?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어, 부인? 남편에게 마음의 애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찌요도 시즈코 부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받을 정도의 상아빛 나는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절세의 미녀라는 칭송을 받으며 일세를 풍미한 시즈코 부인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잔혹한 백치 남자와 몸을 섞는다, 그런 상상을 한 찌요는 참을 수 없이
도착 적인 쾌감이 치밀어 올라 부인의 파리하게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흥,
이제 가면을 벗는 것이 좋을 텐데 하며 마음속으로 부인에게 내뱉었다.
"알았어요 할게요."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부인이 말하자, 찌요는 기쁨에 들떠 고개를 끄덕이며
뽀로통한 얼굴로 벽에 기대서 있는 에츠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에츠코,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당신도 좀 도와줘. 좀더 짙은 립스틱을
발라줘야겠어. 어쨌든 오늘밤은 부인의 혀가 주인공이 될 거야."
에츠코가 입을 삐죽거리는 것을 본 오니겐이 말했다.
"어이 에츠코. 뭐 때문에 그렇게 토라져서 뽀로통해 있는 거야? 너 앞으로
프랑스어를 부인에게 배운다고 했지. 그러면 네 선생이 쇼에 출연할 때 이것저것
도와줘야지."
에츠코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화장품 상자에서 립스틱을 꺼내 부인 앞으로
다가섰다.
"부인,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에츠코는 괴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시즈코 부인은
"괜찮아요 에츠코 씨. 이것이 나의 운명이지요."
라고 말하며, 가볍게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에츠코 쪽으로 내밀었다. 에츠코는
부인의 턱에 손을 대고 핑크빛 립스틱을 부인의 붉은 입술에 바르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에츠코가 몸을 일으키자 오니겐은 재빨리 훈련에 착수했다.
부인의 부드럽고 붉은 입술에 고무 막대를 가져다 댄 오니겐은
"좋아 처음엔 계속해서 입을 맞춰."
라며 집요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요구에 따라 충실하게, 그리고 필사적으로
입맞춤을 반복하는 시즈코 부인.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 찌요.
"좋다. 이 실습은, 스테타로 녀석이 그만 하자고 할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해야만 해. 그러니 되도록 빨리 스테타로를 녹초로 만드는
것이 좋을걸."
오니겐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음란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시즈코 부인은
이미 자신이라는 인간을 포기해버린 듯이 낭패의 기색이나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고 오니겐이 시키는 그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오니겐은 위압적으로
시즈코 부인에게 차례대로 명령했다.
"흐흐흐. 점점 잘 하는군. 한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안 되지. 자, 이렇게
부드럽게 속삭여봐."
단념했다고는 하지만 끝없이 집요한 괴롭힘에 부인의 꼭 감은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입 좀 열어봐. 오니겐 씨가 가르쳐 주신대로 남편에게 부드럽게
속삭여봐."
이제 찌요도 오니겐과 함께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시즈코 부인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눈을 감고 허스키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 시즈코는 이렇게 이토록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시즈코 부인은 오니겐이 시키는 대로 부드러운 꽃잎처럼 붉은 입술을 움직여
신음해야 했다.
"그래 그래 점점 잘 하는군."
오니겐도 이상한 열기에 휩싸여서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오니겐의
열정적인 코치를 받은 시즈코 부인은 몇 분 후에는 옆에서 보기에도 완전히
몰아 지경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호호호. 아주 잘 하는군, 부인. 전에 유럽에 갔을 때 배우기라도 했나보군.
혹시 프랑스식 아닌가요?"
찌요는 통쾌해 마지않았다.
그때 뚜벅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가와다가 들어왔다. 쇠창살 안을 살펴본
가와다가,
"준비가 다 되었는데, 더 이상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슬슬 스타를
등장시켜야지."
라고 말하자, 찌요가 가와다를 보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금 시즈코 부인은 프랑스식 훈련을 한창 받고 있는 중이야.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지금 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봐."
"프랑스식이라고?"
가와다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오니겐과 시즈코 부인을 다시 한번 본 후,
"아―과연……."
하며 입을 삐죽였다. 시즈코 부인도 그렇지만 부인을 코치하던 오니겐도
한창 열중하고 있던 터인지라 가와다가 시즈코 부인을 데리러 온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래라 저래라 부인에게 까다롭게 지시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부인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입술로 발음 연습을 하듯이 무아지경에서
반응하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그 어쩐지 약간은 차가워
보이는 단정한 얼굴을 돌리면서 입을 우물우물 움직이고 있는 시즈코 부인을
한쪽 구석에서 보고있던 에츠코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오니겐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오니겐 씨, 이제 그만 적당히 해두지요. 가와다 씨가 부인을 데리러 왔잖아요."
오니겐이 집요하게 치근덕거릴수록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 에츠코는
토해내듯 오니겐에게 말했다
"뭐야?"
자신의 일에 열중해서 에츠코의 말을 듣지 못해 반문한 오니겐은 어느결엔가
가와다가 감방 안으로 들어와 싱글거리며 자기들을 보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오니겐은 멋쩍게 웃으며 그제야 훈련을 멈추었다.
"그것 참, 시간 빨리 지나가는군. 이제 겨우 한 수 지도해볼까 했는데……."
"하하하! 조교치고는 재미가 상당한걸! 그런 일이라면 나도 한번 해보게
해주지."
오니겐과 가와다는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웃었다. 그런 후 오니겐은 이제
곧 많은 사람 앞에 끌려나가 스테타로와 짝이 되어 참혹한 예술을 펼쳐 보여야
하는 시즈코 부인에게 계속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이야기 한 후 손과 발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자, 이제 일어나라. 손님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지."
오니겐은 부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오랫동안 묶여 있던
부인은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일어난 부인은 비틀거리다가 벽에
손을 짚고 몸을 지탱하려 애썼다.
"이거 왜 이래. 어이, 정신차리라고."
벽에 기대 있는 부인을 끌어내려는 오니겐과 가와다 사이로 에츠코가 끼여들었다.
"조금만이라도 쉬게 해줘요. 너무 오래 묶여 있어서 손발이 마비되었잖아요.
그렇게 하고도 만족을 못 하셨나요?"
"하긴 그렇군. 좋아 10분 간 휴식이다."
오니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에츠코 씨, 미― 미안해요."
시즈코 부인은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유방을 감싸고 쓰러지듯 앉으며 깊게
그늘진 눈에 감사의 빛을 담아 에츠코를 살며시 올려보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나요?"
"아니 괜찮아요. 조금 쉬면 나을 거예요. 고마워요. 에츠코 씨."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빛나는 부인의 눈동자를 본 에츠코는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 부인의 뒤에 앉아 우윳빛의 매끄러운 등을 가볍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노예 같은 저에게 그러지 않아도 돼요."
"아니에요. 여기 아프기 않아요? 묶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시즈코 부인의 몸을 이곳 저곳 사려보는 에츠코를 가와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찌요가 가와다에게 소곤거리며 말했다.
"에츠코가 이제부터 시즈코 부인을 프랑스 선생으로 모신다더니 저렇게 벌써
아첨을 시작하는구먼."
"과연 그렇네. 그런데 시즈코 부인을 선생으로 삼은 것은 좋은 생각이야.
어쨌거나 저 여자는 말이야, 본고장에서 익힌 어학 실력이 대단하다니까. 좋은
선생을 만난 거지."
이렇게 말한 가와다는 문득 손목시계를 보며,
"빨리 가자. 벌써 시간이 지났잖아."
하며 서둘러 대기 시작했다.
"좋아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일어서."
오니겐이 부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시즈코 부인은 아직까지도 등을 문지르며
포승 자국을 찬물로 찜질하는 에츠코에게,
"고마워요, 에츠코 씨. 당신의 친절은 잊지 않을게요."
라고 말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빛나는 눈으로 오니겐을 보며
물었다.
"양손을 또 묶나요?"
"당연하지. 자 시간이 없어. 빨리 손을 뒤로 돌려."
이제 시즈코 부인은 쇼 스타로서 어느 정도 분위기에 익숙해졌긴 하지만,
두 손이 자유로워지기만 하면 한 손으로는 유방을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랫도리를 가리며 본능적인 수치심만은 어쩌지를 못했다.
"빨리 해. 사장님이 오셨는지도 몰라."
가와다도 옆에서 두 손을 간신히 뒤로 돌려 손목을 교차시킨 부인을 오니겐과
함께 꽁꽁 묶었다.
"자, 에츠코. 선생님을 일으켜 세워라."
가와다가 히죽거리며 포승줄을 에츠코에게 넘겼다. 시즈코 부인은 눈물도
미련도 다 말라버린 듯, 우아한 얼굴을 들어올리고 걸어갔다. 그 발걸음은
모든 욕망의 마음을 비우고 단두대를 향해 올라가는 사형수 같은 담담한 심정으로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부인을 데리고 가는 에츠코 쪽에서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복도에서 정원 쪽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부인을 주춤거리며 데려가던
에츠코는 부인에게 오늘밤 쇼는 두 군데로 나뉘어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귀띔해줬다.
"도박장의 손님뿐만이 아니고, 사장님의 바이어들, 고리대금 업자들이 몰려들어
한꺼번에 수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부인은 3층 큰 객실에서……."
에츠코는 미안한 듯이 부인을 보며 포승줄을 당겨 부인을 세웠다. 정원의
대나무 숲 안에 있는 밀실은 이제부터 게이코와 후미오, 그리고 미츠코의 쇼가
벌어진다고 한다. 시즈코 부인은 단정한 얼굴을 살짝 들어 촉촉한 눈빛으로
정원의 밀실을 바라보았다. 저곳에서 곧 게이코들의 쇼가 꽉 들어찬 남자들
앞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자, 부인은 자신의 처지를 잠시 잊은 채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이, 어디에 가는 거야? 부인의 무대는 3층이야."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큰 소리로 떠들며 부인과 에츠코의 뒤를
따라오던 가와다 들이 소리쳤다.
"자, 빨리 빨리 서두르라고."
가와다, 오니겐, 찌요 세 사람은 부인의 어깨와 등을 떠밀 듯이 복도를 걸어
올라갔다. 꿈도 희망도 던져버린 채 이 지옥의 바닥에서 미쳐버릴 듯한 결심을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에 투영시키며 악마가 기다리고 있는 쇼 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기는 시즈코 부인.
가와다는 장엄한 느낌마저 주는 잘 다듬어진 차가운 시즈코 부인의 표정과
조용히 걷고 있는 요염한 백옥 같은 하체에 음흉한 시선을 보냈다.
"완벽하게 원래의 예쁜 모습을 되찾았군. 부인 어때 기쁜가?"
라며 그 얼어붙은 냉담한 부인의 표정을 풀어볼까 하는 요량으로, 부인의
볼을 손가락으로 눌러보았지만 시즈코 부인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촉촉이
젖은 눈으로 앞만 보고 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찌요가 부인의
봉긋이 솟아오른 풍만한 둔부를 갑자기 찰싹 손바닥으로 때렸다. 부인의 득도한
듯한 맑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그 따위 표정은? 이제 저 바보와 개돼지보다 못한 짓을 할거면서."
찌요는 부인이 허둥대면 허둥대는 대로, 침착하면 침착한 대로 화를 내는
듯했다. 에츠코가 찌요를 말리며 말했다.
"찌요 부인, 시즈코 부인은 이미, 자기는 인간이 아니고 우리들의 노예로
살아갈 것을 결심했어요. 개, 고양이보다 못한 연기를 하는 심정인 시즈코
부인을 때리다니 미치기라도 했나요?"
"뭐― 뭐라고?"
찌요가 눈을 흘기자 지금까지 침묵하던 시즈코 부인이
"기다려요 찌요 씨. 시즈코가 나쁜 거예요. 에츠코 씨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마세요."
라며 슬픈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그때 오니겐이 세 사람을 중재하듯이
끼여들며 말했다.
"여기서 티격태격할 시간이 없어. 싸우려면 쇼가 끝나고 싸워."
오니겐은 에츠코의 손에서 포승줄을 빼앗듯 낚아채서 부인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3층 복도의 막다른 곳은 시즈코 부인과 스테타로가 쇼를 벌일 큰 홀이 마련되어
있고, 장지문 너머 홀 중앙에는 모여든 손님의 웃음소리와 화내는 소리가 섞여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거야."
"술 가져와, 술."
장지 너머에서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 코를 찌르는 듯하였다. 부인을 끌고
온 오니겐 패는 장지문 틈 사이로 살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손님들이 화났나봐."
가와다가 장지문에서 눈을 떼며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수십
명의 손님 앞에 끌려나간다고 생각하니 시즈코 부인은 모든 것을 초월했다는
마음과는 달리 온몸이 굳어오며 무릎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장지문이
열리며 다시오가 허겁지겁 나타났다.
"아 시간을 딱 맞았군. 이제 곧 여기에 이와자키 왕초도 곧 올 거야. 지금
커튼으로 홀 한쪽 구석에 네 평 짜리 분장 실을 마련했으니까, 우선 거기에
시즈코 부인을 옮겨 놔. 스테타로도 거기에서 대기하고 있어."
"예."
오니겐과 가와다가 부인을 홀 쪽으로 옮기려 하자 다시오가,
"잠깐 기다려봐."
하고 둘을 저지했다.
"지금 야쿠자패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몹시 난폭해져 있어. 이런 미인을
게다가 저 몸 그대로 보여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마치 발정한 수캐
같은 놈들이니까 이걸로 부인을 푹 뒤집어씌워서 분장 실로 데려가."
다시오는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하얀 커튼을 오니겐에게 주었다. 다시오의
지시대로 부인을 커튼으로 감싼 뒤, 오니겐, 가와다, 찌요, 에츠코는 다시오의
안내로 홀 안으로 발을 옮겼다.
다다미 20장 정도 넓이의 안쪽에는 수십 명의 야쿠자가 시끌벅적하게 모여
있다가, 몇 명의 남녀가 하얀 커튼을 머리부터 뒤집어쓴 여자를 둘러싼 채
나오자, 와 하고 탄성을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