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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인간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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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박탈의 계약>


 
  지하 감옥으로 이어진 돌계단을 시즈코 부인은 하루다로와 나츠다로에게
오랏줄을 잡혀서 걷고 있었다. 참담한 심정에 완전 파김치가 된 시즈코 부인은
아직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반쯤 얼빠진 표정으로 차가운 돌계단을 맨발로
디뎌갔다.
 
  몇 번, 이 차가운 돌계단을 오르내린 걸까. 자신의 인생은 이 지하 감옥과
만 좌중에 끌려나가 수치를 당하는 일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자, 부인은 울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문득 눈초리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찌요의 방에 삼일 간 감금하며, 철저한 조교를 부인에게 가한 하루다로와
나츠다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고, 돌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마음 산란하게 좌우로 흔들리는 부인의 탱탱한 엉덩이를 바라보면서,
 
  "결국 우리들과도 비밀을 갖게 되셨군요, 부인."
 
  하루다로는 나츠다로에게 부인의 오랏줄을 건네주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조용히 걷고있는 부인의 앞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즈코 부인은 하루다로를 무시하고 냉정하게 아까 가지의 착란의
여운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를 전방에 향한 채 계속해서 걸었다.
 
  "저어, 부인은 말야."
 
  시스터 보이의 야유에서 도망치듯이 제일 안쪽 감옥을 향하여 발걸음을 빨리
한 부인에게 나츠다로가 심술궂게 오랏줄을 잡아당겨 부인의 움직임을 봉쇄하였다.
 
  "수도 없이 우리들, 여자들과도 놀아봤지만 오늘처럼 감격한 적은 없었어.
얼굴도 몸도 천하일품인데다 이곳의 기능 역시 최고야. 정말 여자로서 나무랄
데가 없어. 오니겐 씨의 말대로 드물게 보는 명기야."
 
  하루다로는 심술궂게 웃으며 말했지만, 부인은 살짝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방금 전까지 어처구니없는 신음과 흐느낌을 반복하던 달콤하고 부드러운
입술에, 혼도 마비될 것 같은 흡인력을 발휘한 시즈코 부인이었는데, 마치
그런 일이 거짓말인 양 옆얼굴을 보이며 넓적다리를 딱 밀착시키고 그곳에
서 있었다.
 
  파괴하려고 해도 파괴할 수 없는, 이 우아한 향기에 싸인 아름다움. 찌요가
반발하여 마귀에게 홀린 듯한 잔학한 고문을 부인에게 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하루다로는 이제야 뼛속 깊이 깨달은 느낌이었다.
 
  "부인, 그렇게 잠자코만 있지 말고, 뭐라고 말을 해봐."
 
  "부인은 이제 우리들과 보통 사이가 아니잖아. 아직도 인정 못하겠어?"
 
  조롱하듯이 옆으로 숙인 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두 사람에게 부인은 살며시
눈을 뜨고 정감에 젖은 시선을 던졌다.
 
  "말씀하시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시즈코는, 시즈코는 당신들과도―."
 
  뺨을 살짝 상기시키고 다시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부인은 말하였다.
 
  "잘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부인의 그 사랑스러운 입술과
혀, 아까는 대 분투였지? 그렇게 잘하리라 곤 생각지 못했어. 완전히 두 손들었어."
 
  하루다로가 빈정거리는 웃음을 웃자, 나츠다로도 장단을 맞추어 입을 열었다.
 
  "오니겐 씨의 조교가 훌륭했던 걸까? 아니면 프랑스에 유학 갔을 때, 배워온
걸까?"
 
  부인은 다시 살짝 등을 떠밀려 걷기 시작하였다.
 
  "다 왔어요, 부인."
 
  하루다로가 쇠창살에 채운 자물쇠를 벗겨내고 철문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나츠다로에게 오랏줄을 잡혀 그 자리에 서 있는 부인의 구슬픈 눈은 물끄러미
철문을 여는 하루다로의 동작에 못 박혀 있다. 부인은 갑자기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였다.
 
  이 감옥에서 나와 쇼를 연기하고, 또 뼈와 살까지 갈기갈기 찢겨지는 조교를
받고, 그리고 또 이 쓸쓸한 차가운 감옥으로 돌아오는 노예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비참한 매일의 반복에 시즈코 부인은 그래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문득 원망스러워지기도 하였다.
 
  그런 부인의 마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다로는 갑자기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한 부인의 옆얼굴을 이상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 갑자기 왜 우는 거야? 부인."
 
  철문은 날카로운 소리를 끼익 거리며 열렸다. 퀴퀴하고 으스스한 감옥 안에는
낡아빠진 세면기가 하나, 그리고 낡은 모포가 두 장 구석에 개켜져 있을 뿐이다.
 
  부인은 그것에 눈길을 주자, 한층 자신이 처량하게 생각되어 감옥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두 사내에게 반항하며 어깨를 흔들고 쇠창살에 이마를 기댄
채 슬프게 울기 시작하였다.
 
  "왜 그래? 부인. 내일은 일찍부터 또 조교가 있다고."
 
  "부탁이에요! 잠시 이대로 울게 내버려둬요! 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시즈코 부인은 이들 시스터 보이들과도 마침내 육체관계를 갖게 되고 말았다는
굴욕의 자의식이, 쾌락의 여운이 엷어져오자 하나의 통한이 되어 가슴을 죄어왔다.
 
  하루다로와 나츠다로는 빙그레 웃으면서,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우는 시즈코
부인의 목덜미에 다정하게 키스하고 귀밑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다.
 
  나츠다로는 살짝 몸을 낮추어, 매끄럽고 고운 곡선을 그린 부인의 엉덩이를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으며 황홀하게 눈을 감고 뺨을 문질렀다.
 
  "부인의 힙은 정말 아름다워. 근사해."
 
  나츠다로는 이어 혀를 내밀어 거기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 댔다.
 
  "하루라도 좋아. 하루라도 좋으니까, 자유롭고 싶어요."
 
  시즈코 부인은 나츠다로의 집요한 키스에 미간을 찡그리고 참으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자유롭고 싶다고, 부인!?"
 
  나츠다로가 문득 키스를 멈추고 부인을 올려다보았다.
 
  "하루라도 좋으니까, 이 저택에서 나가 푸른 하늘 아래를 걸어보고 싶어요."
 
  시즈코 부인은 훌쩍이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발, 인간답게 뭔가 걸쳐보고 싶어. 네, 나츠다로 씨."
 
  부인은 나츠다로 쪽으로 젖은 눈을 가냘프게 향하였다.
 
  "부탁이야. 다시로 사장님에게 부탁해서, 시즈코가 지금 말한 것을 전해
줘."
 
  하고 말했을 때, 돌연 들어본 적이 있는 귀신이 웃는 듯한 새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즈코 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움츠렸다. 어느새 들어온 것인지, 찌요가
바로 곁에 서 있었다. 다시로와 모리다도 그 뒤를 따라왔다.
 
  "다시 한번 말해봐, 부인."
 
  잔인한 빛을 눈동자 아래에 깔고, 찌요가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말하였다.
 
  "이 낭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기어올라도 되는 거야!?"
 
  "기어오르다니, 그, 그게."
 
  시즈코 부인은 겁먹은 표정으로 험악한 찌요의 악마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둥, 옷을 입고 싶다는 둥, 노예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지껄여!?"
 
  그렇게 말하자마자, 찌요는 부인의 뺨을 돌연 찰싹 때렸다.
 
  "다시로 사장님에게 부탁해달라니, 잘도 그런 말이 나와!?"
 
  찌요는 부인이 단지 그것만을 요구한 것에도 화가 나, 다시 부인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였다.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시즈코 부인은 눈물에 젖은 뺨을 보이고 와들와들 입술을 떨면서 찌요에게
사과하였다.
 
  "두 번 다시 버릇없이 굴지 마! 응? 부인은 말야, 이제 이 집에서 영원히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알몸인 채 일생 여기서 사는 거야. 알았어!?"
 
  찌요가 퍼붓는 말에 부인은 체념한 듯이 눈을 조용히 감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찌요 씨. 멋대로 말해서 죄송해요."
 
  꺼져들 듯이 고개를 숙이고 좌우에 선 하루다로와 나츠다로에게 애처롭게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겠어요. 끈만 풀어 주세요."
 
  그러자, 다시 찌요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무 자르듯이 말했다.
 
  "버릇없이 지껄인 죄로 오늘은 그대로 감옥에 들어가!"
 
  하루다로가 감옥 문을 닫고, 나츠다로가 자물쇠를 채웠다.
 
  찌요는 사뭇 즐거운 표정으로 감옥 안의 시즈코 부인을 내려다보았다.
 
  포박을 푸는 것도 허락 받지 못한 시즈코 부인은 감옥 한 쪽에 조용히 앉아,
초췌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한 시즈코 부인의 단아한 옆얼굴이 또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으로 비치므로
찌요는 다시 아니꼬움으로 속이 뒤틀렸다.
 
  "호호호, 일찍이는 절세 미녀라고 각계 명사들이 입에 닳도록 떠들어대던
도야마 재벌의 젊은 부인이 알몸으로 움막살이라니, 세상도 요지경이야."
 
  한쪽 뺨을 일그러뜨리고 야유하던 찌요는 다시 독기에 찬 말투로,
 
  "하지만 부인에게는 셀 수 없이 즐거운 추억이 많잖아? 파리에서 놀고 로마에서
공부하고, 마음껏 호화롭게 살던 때를 떠올리면 이런 움막살이도 고통스럽진
않을 거야."
 
  시즈코 부인의 긴 속눈썹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제야 찌요는 생긋 웃었다.
 
  "아니, 이자와 선생 아냐?"
 
  찌요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어울리지도 않는 테 없는 안경을 걸친 훤칠한 키의 사내는 찌요의 의뢰를
받아 도야마 가의 고문 변호사로서 일하며, 시즈코 부인 명의의 부동산을 모두
찌요 소유로 바꾸기 위한 일에 착수하고 있는 사내였다.
 
  "뭐야, 이자와 선생이라고? 오랜만입니다."
 
  "잠시, 급한 용무가 있어서요. 아니 어쩌면 그것은 구실이고, 거기 계신
아름다운 젊은 부인도 한번 만나 뵙고 싶고, 그게 본심일지도 모르죠."
 
  곧 이어 이자와는 그곳에 알몸으로 앉아 있은 시즈코 부인에게 익살부리는
투로 말을 건넸다.
 
  "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젊은 부인.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후로 상당히 지났는데, 왠지 이 타고난 미모가 한층 빛을
발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주절주절 그침 없이 떠벌리면서도, 눈만은 번뜩이며 부인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참, 미모에 넋이 나가 중요한 용건을 잊고 있었네."
 
  이자와는 손에 들고 있던 큼직한 검정 가방을 열고 커다란 봉투를 꺼내자
찌요 쪽을 보았다.
 
  "이전에 제가 시즈코 부인 명의의 재산을 조사하고 약 오 천만 엔이라고
말씀드렸었죠, 그런데 여러 가지로 조사를 계속하던 중, 아직 다른 막대한
자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 정말이에요?"
 
  찌요는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다시로도 모리다도 문득 흥미가 쏠리는 표정을 지었다.
 
  "홋카이도에 약 1억 엔에 상당하는 토지, 그리고 큐슈 쪽에도 시가 3억 엔이나
하는 방대한 산림, 그리고 약 1억 엔 호가하는 유가증권이 은행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놀랐어요."
 
  "놀란 것은 이쪽이에요."
 
  찌요는 얼굴을 온통 주름 투성이로 만들며 웃었는데, 그 웃던 얼굴이 갑자기
일변하여 시즈코 부인 쪽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이봐! 부인. 당신 이런 재산이 있는데도 나에게 숨겼어!?"
 
  하고 말보다 먼저 부인의 뺨을 우악스럽게 후려갈겼다.
 
  그것을 황급히 제지한 이자와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기다려요! 이건 지금 뇌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도야마 씨가, 이 젊은 부인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명의를 이전해두었던 모양이에요. 자신에게 만일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부인에게는 평생 놀고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남겨두려는,
즉 지극 정성 애정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죠."
 
  "흥! 그런 거였어?"
 
  찌요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떨궈버린 시즈코 부인에게,
 
  "전 남편은 배려가 깊어서 부인도 행복했었지. 하지만 지금의 부인에게는
스테타로라는 좀 바보스러운 남편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돼. 알았어?"
 
  찌요는 아양떠는 미소를 이자와에게 보냈다.
 
  "그런데, 선생. 그 재산은 물론 제 소유로―."
 
  "그럼요. 그게 사업이니까요."
 
  이자와는 가방 안에서 조심스럽게 상아 도장을 꺼냈다.
 
  "이건 시즈코 부인의 인감인데, 이 서류 전부에 날인함으로써 부인의 자산은
모두 찌요 씨의 소유가 되는 셈입니다."
 
  "요컨대, 나는 억만장자가 되는 거군요."
 
  찌요는 안절부절못하였다.
 
  "빨리 도장을 찍어, 이 재산 일체를 제가 계승하도록 수속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전처럼 이 인감은 원 도야마 가의 젊은 부인에게 찍도록
하죠."
 
  이자와는 부인의 눈앞에 산더미 같은 서류를 놓았다.
 
  "여기에 날인함으로써 부인은 개인이 소유하는 일체의 재산을 찌요 부인에게
양도하게 되는 겁니다. 어때요? 한번 서류를 읽어보시겠습니까?"
 
  이자와가 그렇게 말하자, 부인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분명하게 말하였다.
 
  "이제 시즈코는 일생 이곳에서 나갈 수 없는 신세예요. 그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맞아요. 호호호, 이것으로 나는 억만장자, 부인은 진짜 알몸으로 일관하게
된 셈이지."
 
  이자와가 부인의 하얀 발목을 들어올려, 그 화사한 발가락 사이에 상아 도장을
끼웠다. 그 사이, 이자와의 집요한 시선은 우윳빛으로 빛나는 성숙한 부인의
넓적다리와 비너스의 둔덕의 혼까지 빨아들인 듯한 부드럽게 윤기가 흐르는
봉긋한 곳에 못 박혀 있다.
 
  찌요가 그런 이자와를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호호호, 선생, 그 근방은 나중에 천천히 맛보도록 하시고, 일 먼저 부탁드려요."
 
  "아아, 그, 그러죠. 어쩐지 마음 산란한 것이 눈앞에 알짱대니까―."
 
  이자와는 모두를 웃게 만들고, 부인의 발가락에 꽂은 도장으로 몇 장이고
서류에 날인시켜갔다.
 
  "선생 여러 가지로 수고하셨습니다. 이삼일 느긋하게 쉬셔도 괜찮겠죠?"
 
  그리고 시즈코 부인의 배꼽 부분을 손가락으로 퉁기며, 이자와를 바라보고
음흉하게 웃었다.
 
  "알겠어요. 내일 밤엔 선생의 방에 이 부인을 데려다놓죠. 아침까지 듬뿍
서비스해 드리라고 일러두겠어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이자와는 우아하고 매끄러운 부인의 피부를 새삼 탐욕스럽게 바라보면서,
온몸의 피가 끓었다.
 
  다시로가 이자와에게 말했다.
 
  "예전, 선생이 이곳에 오셨을 때와는 달리, 이 부인은 지금은 갖가지 재주를
익혀 이 방면의 스타로서 관록도 쌓았지요. 뭐, 한번 시험해 보시면 잘 알겠지만요."
 
  그 말을 들은 이자와는 점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군! 한 가지 잊은 게 있었지."
 
  이자와가 생각난 듯이 검정 가방 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뭐야, 선생? 그 편지는?"
 
  "일주일쯤 전에 도야마 가의 시즈코 부인 앞으로 프랑스에서 온 것입니다만."
 
  "네!? 프랑스에서?"
 
  찌요는 이자와에게서 봉투를 건네 받아, 아무렇게나 찢었다.
 
  "뭐야, 꼬부랑글씨 아냐? 이런 건 질색이야."
 
  "이자와 선생, 읽을 줄 알아요?"
 
  "프랑스어는 종잡을 수가 없어서요. 그걸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즈코 부인뿐일
겁니다."
 
  이자와는 모리다가 따라준 위스키를 마시며, 딸꾹질을 하며 말하였다.
 
  "이봐, 여기에 뭐라고 써 있는 거야?"
 
  살짝 눈을 뜨고 그것을 속으로 읽기 시작한 시즈코 부인의 표정이 문득 밝아지며,
그 부인의 서정적인 눈빛에도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생기가 떠올랐다.
 
  "죄송해요, 다음을 읽게 해주세요."
 
  부인의 부탁에 찌요는 불쾌한 표정으로 한 장 한 장 편지의 넘기면서, 갑자기
지금까지 구슬프게 감고 있던 부인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빛나기 시작한 것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잠자코 있으면 알 수 없잖아. 도대체 뭐라고 써 있는 거야?"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할 때, 저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프랑소와 드미어
씨가 같은 대학의 문학 교수와 결혼하게 되었대요. 그 결혼식에 시즈코를 초대해주셨어요."
 
  "음, 결혼식에 말이지. 도대체 어디서 결혼식을 하는데?"
 
  찌요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물었다.
 
  "스위스에서 올린다고 써 있어요."
 
  그리고 유학 시절의 둘도 없던 친구인 드미어의 편지에 다시 한번 눈길을
보내면서, 찌요에게 그것을 해석해서 들려주었다.
 
  꽤 거나하게 취한 모리다는 꼬부라진 혀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찌요는
찌요대로 표독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그 편지를 허리띠 사이에 끼우면서,
부정확한 발음으로 뭔가 생각난 표정을 지으며 시즈코 부인을 조롱하였다.
 
  "후후후, 그런데 아름다운 알몸의 젊은 부인. 그 스위스의 결혼식에 출석하실
생각이십니까?"
 
  시즈코 부인은 호소하는 듯한 정서적인 눈을 물끄러미 전방으로 향하면서
중얼거렸다.
 
  "닥터 장발은 시즈코에게 학문뿐만 아니라, 인생도 가르쳐주신 분이에요.
만약 시즈코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와 그녀를 축복하기 위해 날아가고 싶어요."
 
  시즈코 부인이 조용히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이러한 지옥의 밑바닥에
허덕이면서도 옛 친구의 행복을 비는 부인의 심성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찌요의 경우 이러한 인간상의 존재에 반해, 자신 같은 추한 마음을
지닌 저속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열등감. 그것이, 즉 미에 대한 증오심, 복수
심리로 변모하는 듯했다.
 
  "흥! 양놈 편지를 받고 기분이 좋은가보군!? 말해두겠는데 말야, 부인이
프랑스의 대학을 나왔는지 스위스 대학을 졸업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그런 교양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이곳만 단련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찌요는 부인이 딱 붙이고 있는 넓적다리의 사타구니께에 가만히 숨쉬고 곳을
가리키며 웃었다.
 
  "지금 부인에게 남은 유일한 최대의 재산이라고."
 
  찌요가 그렇게 말하므로 사내들은 큰 입을 벌리고 웃어댔다.
 
  "알고 있어요, 찌요 씨. 부탁이에요, 이제 더는 말하지 마세요."
 
  시즈코 부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머리칼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까, 다시로의 심부름을 갔던 하루다로와 나츠다로가 그곳에 소형 보스턴
가방을 들고 돌아왔다.
 
  가방을 건네 받은 다시로는 자크를 열면서,
 
  "이자와 선생의 사무가 매듭지어졌으니, 이번엔 모리다파의 서류에 부인의
도장을 받아야겠어. 이런 일도 야쿠자 스타일로 처리하기보다, 이젠 점차로
민주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싫다면 억지로는 찍으라고 하지 않아.
그러나 일단 도장을 찍었으면,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야만 해. 알았어,
부인?"
 
  다시로는 방실 웃는 얼굴로 부인을 보았다.
 
  "먼저, 이제부터 부인의 확실한 승낙 의사를 밝혀주길 바래."
 
  찌요는 다시로의 손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 부인의 코앞에 가까이 가져갔다.
부인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찌요에게서 몇 번이고 재다짐을 받은 일로, 언젠가는 그 날이 오리라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 시일까지 확실히 명기된 서면을 들이밀자 사형 집행 일을 선고받은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그 서면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적혀있었다.
 
 
 
  ―도야마 시즈코(26세)는 내달 6월 3일 6시 30분 의사 야마우라코헤이에
의해 인공수정 수술을 받을 것을 승낙합니다―
 
 
 
  다시로가 고안해낸 기묘한 문구였는데 타이프로 인쇄되어 있었다.
 
  찌요는 서면을 부인의 발치에 다시 놓고, 화사한 부인의 발가락 사이에 펜을
끼웠다.
 
  "발로하는 사인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모리다는 부인의 발목을 들어올리고 사인하는 것을 거들고 있는 찌요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 다음은 도장을 찍어야지."
 
  찌요가 들뜬 마음으로 부인의 상아 인감도 발가락에 끼우려고 하였다.
 
  "찌요 씨, 잠깐 기다려요―!"
 
  "왜 그래?"
 
  "한 가지,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그래서 만약 시즈코가
진짜로 아기를 낳게 되면 그 아기는……."
 
  "어떻게 되냔 말이지?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들이 맡아서 길러줄
테니까. 단! 양육비는 엄마가 부담해야 해. 열심히 벌지 않으면, 아이가 불쌍하겠지?"
 
  시즈코 부인을 임신시켜 아이를 낳게 만드는 일은, 찌요의 생각과는 달리
다시로와 모리다에게는 꿍꿍이가 있었다. 즉, 포로인 시즈코로부터 인질을
잡아두자는 것으로, 설령 인공수정으로 얻은 자식이라고 해도 시즈코 부인의
성격상으로 볼 때, 모성애가 여느 부모보다 강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할 것은 뻔하다. 타고난 미모와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도야마
시즈코를 영구히 이 저택에 붙들어두기 위해서 시즈코의 족쇄가 될 육신의
분신을 하나 이 세상에 탄생시키자 하고 여우 같이 교활한 다시로는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자, 부인. 이 이상 애먹이지 말고 도장 찍어."
 
  찌요는 부인의 발가락에 도장을 끼웠다.
 
  "좋아, 이것으로 한 가지 계약이 끝났어."
 
  다시로는 찌요에게서 그 승낙서를 건네 받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또 한 장을 찌요에게 건네주었다.
 
  "다음은 이건데."
 
  공허한 눈을 멍하니 향하던 시즈코 부인은 퍼뜩 놀라 이내 가와다 쪽을 보았다.
 
  "이건 싫어요! 부탁이에요, 다시로 씨. 이것만은 봐주세요!"
 
  시즈코 부인은 다시로에게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것도 언젠가 약속했을 텐데. 깜둥이도 사람이야. 그렇게 까닭 없이
싫어할 것 없다고 생각해."
 
  찌요가 부인의 코앞에 팔랑팔랑 흔들고 있는 괴상한 승낙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도야마 시즈코(26세)는 미국 출생, 주소 불명의 흑인(통칭 죠)과 연기
콤비를 이뤄, 내달 5월 5일부터 개최되는 제2회 비밀 파티에 일주일간 연속
출현할 것을 승낙합니다―
 
 
 
  "유럽의 백인 놈들과는 유학 당시부터 충분히 놀아봤을 것 아냐. 때로는
미국 출생의 깜둥이를 상대로 하는 게 어떻겠어, 부인."
 
  모리다가 주머니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었다. 그것은 바디 빌딩 포즈를
취한 죠의 전라 상이었다.
 
  "이봐, 잘 봐. 이 엄청난 크기는 스테타로도 무색할걸."
 
  "싫어, 싫어요! 네, 부탁이에요, 흑인과 그런."
 
  시즈코 부인은 어깨를 흔들며 훌쩍였다.
 
  "그렇게 고집 부리지 말고 도장 찍으라고. 그래야 다치카와 기지에서 빈둥거리는
죠를 즉시 불러들여 파티가 시작하는 날까지 충분히 연습할 거 아냐. 새하얀
피부의 아름다운 젊은 부인과 새까만 피부의 못생긴 흑인 죠와는 정말로 환상의
커플일 거야. 쇼에 출연해서 프랑스식의 묘기를 피로라도 한다면, 손님들이
아주 기뻐할 거라고."
 
  "응, 부인. 나도 부탁할게. 이 승낙서에 도장을 찍어 줘. 분명, 부인이라면."
 
  그런 식으로 시즈코 부인에게 달라붙어 설득하기 시작한 두 시스터 보이를
다시로는 재미있게 지켜보면서 담배를 태웠다.
 
  괴롭게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부인의 표정이 차츰 차갑게 변해가기 시작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시즈코 승낙하겠어요."
 
  하루다로와 나츠다로는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부인의 발가락에 도장을 끼웠다.
승낙서를 가까스로 날인시킨 두 사람은 너무 기쁜 나머지 와아― 하고 환성을
질렀다.
 
  부인의 날인을 기다리고 있던 다시로가 모리다를 향해 지시했다.
 
  "그럼 두목, 어서 오니겐에게 알려서 죠를 오라고 연락하게. 파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연습은 빠를수록 좋아."
 
  "네 알았습니다."
 
  모리다가 철문을 나가자, 다시로는 어깨의 짐이 내려진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찌요의 등을 두드렸다.
 
  "이런 것도 있는데 어떡할까? 찌요 부인."
 
  "어머, 개하고―."
 
  "쉿―! 소리가 높아."
 
  다시로는 찌요를 눈짓으로 제지하고, 고개를 떨구고 작게 오열하는 시즈코
부인 쪽을 신경 쓰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엄청나게 큰 개가 홍콩에 있어. 상당한 고가지만
말야. 지금부터 주문하면 이삼 개월 후에는 이곳에 도착할 거야."
 
  "때마침 시즈코에게 인공수정을 할 때군요."
 
  찌요의 눈이 잔인한 빛을 띠었다.
 
  "재미있겠어요, 사장님. 그 개 값은 제가 지불할게요. 주문해주세요."
 
  그리고 찌요는 다시로의 손에서 개와의 교미를 승낙케 하는 그 무서운 서류를
받아 쥐고 경련이 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때를 봐서 제가 시즈코를 설득해서 반드시 도장을 찍게 하겠어요."
 
  이윽고 오니겐이 모리다와 함께 잰걸음으로 왔다.
 
  "지금 모리다 두목에게서 들었습니다만, 정말로 죠 녀석을 고용하실 건지."
 
  오니겐은 감옥 안으로 들어오자, 곧 다시로에게 물었다.
 
  "그래. 젊은 부인이 고맙게도 이렇게 정확하게 승낙서에 서명 날인 해주셨어."
 
  오니겐은 다시로에게서 건네 받은 승낙서를 보고 히죽히죽 누런 이를 드러내었다.
 
  "과연 승낙서는 좋은 착상입니다요, 사장님. 이렇게 스스로 인정했으니,
본인도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죠."
 
  찌요도 킬킬 웃으며, 선 채로 정신이 나간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즈코
부인의 턱을 정면으로 잡아 올렸다.
 
  "짐승처럼 크다는 말을 듣고, 이 부인 기뻐서 그 승낙서에 도장을 찍은 거야,
오니겐 씨. 전에부터 종종 내게 스테타로 씨보다 큰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까, 하고 푸념했는걸. 클수록 좋다고 했어."
 
  시즈코 부인의 꼭 감은 눈초리에서 다시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인은
마음속으로, 이들 악마들이 한시라도 빨리 자기의 주위에서 물러가 이 불쾌한
시간이 어서 끝나길, 그것만을 전심으로 신에게 빌고 있을 뿐이다.
 
  "좋아, 알았어."
 
  하고 오니겐은 그런 시즈코 부인에게 다가갔다.
 
  "그럼 이삼일 내로 죠를 이곳에 불러들일게 놈은 본바닥에서 훈련받았으니까
말이지. 특히 네가 좋아하는 그것은 천하일품이야."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꼼짝 않고 눈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오니겐이,
 
  "이봐, 귀담아 듣지 않고 뭐해!"
 
  하고 세게 부인의 가슴을 떠밀었다.
 
  "알았어!? 아침 여덟 시에 기상, 세수하고 화장한 후 먼저 내 방으로와.
그곳에서 나를 실험상대로 삼아 연습을 두 시간쯤 시작하자고."
 
  "어이, 오니겐 멋진 역이군."
 
  다시로가 놀리듯이 말하였다.
 
  "헤헤헤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꽤 힘든 일이지요. 어떻든 죠와 한 쌍을
이루니까 말이에요. 녀석은 중도에서 그만두면 화를 내거든요."
 
  다시 폭소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찌요는 짜릿한 쾌감을 음미하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홍콩에서 오게 되어 있는 동물하고 까지―찌요는 가슴
벅찬 흥분을 느꼈다.
 
  "그 다음은 알겠지, 조교 실에서 8밀리 영화 촬영이야. 스테타로 녀석의
감기 기운도 상당히 좋아진 모양이니까 말야. 내일은 딱 호흡을 맞춰서 아주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해. 저녁때까지 필름 다섯 통을 찍을 예정이야. 이봐,
듣고 있는 거야!? 대답 정도는 해야지!?"
 
  "듣고 있어요."
 
  부인은 온순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게 끝나면 삼십 분 휴식, 그리고 대나무 숲의 다실(茶室)로 가도록 해.
그곳엔 가와다 형에게 조교 받고 있는 오리하라 박사 부인이 있어. 그곳에서
오리하라 부인과 특수 관계를 맺는 거야. 그러는 편이 차후 그 박사 부인을
교육하기 수월해질 테니까."
 
  "그 후는 이자와 선생 방에 들어가도록 해."
 
  찌요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이불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이자와를 찌요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죄송해요, 선생. 내일은 아침부터 시즈코에게 서비스하도록 할 셈이었는데,
제2회 파티가 임박한 만큼 여러 가지로 바빠서요. 그 대신 밤엔 충분히 즐겁게
해 드릴게요."
 
  이자와는 뭔가 부스럭부스럭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부인 앞으로 가져갔다.
 
  "프랑스에서 온 봉투 안에 이런 사진이 들어 있었어요. 방금 생각났는데."
 
  그것은 눈이 쌓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선 아름다운 프랑스 아가씨와 일본
아가씨의 사진으로, 아마 처녀 시절의 시즈코 부인의 사진을 발견한 옛 친구인
드미어가 편지와 함께 동봉해 왔나보다.
 
  갖가지 심리적인 고통에 시달리던 시즈코 부인이었지만, 생기가 되살아났다.
 
  "너무, 너무 그리워."
 
  친구와 함께 스위스에 여행 갔을 당시의 사진으로, 스물 하나나 두 살 무렵의
행복하게 웃는 자신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사무쳐 왔는지, 부인의 쌍꺼풀 진
눈에는 반짝반짝 눈물이 빛났다.
 
  찌요는 웃으면서 이자와의 손에서 사진을 뺏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에 젖은
부인의 뺨을 닦아주었다.
 
  "자, 부인. 이제 그만 울어. 프랑스에서 온 편지를 애써 갖다주신 이자와
선생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연기 스타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해봐. 먼저 하루다로
씨에게 조교 받은 성과를 확실히 보여주면."
 
  찌요가 그렇게 말하고 이자와를 부인 앞으로 밀었다.
 
  시즈코 부인은 눈물을 뿌리치고 연기스타 시즈코로서, 호색가 이자와와 마주보고
섰다.
 
  "그리운 추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보답으로 시즈코도 선생님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 봐주시겠어요?"
 
  시즈코 부인은 진작부터 오니겐 일당에게 지도 받은 요염한 미소를 살며시
입가에 띠고, 달콤한 소리로 말했다.
 
  "저어, 선생님. 시즈코의 뒤로 돌아와 주세요. 음, 서서 보실 수 없어요.
앉아서―."
 
  앉은 이자와의 눈앞에는 끈끈한 지방이 오른 요염하고 관능적인 부인의 엉덩이가
있었다.
 
  "으응, 빨리 보세요. 언제까지나 애태우다니 몰라."
 
  시즈코 부인은 사뭇 조바심이 난 듯이 탐스럽게 솟은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실룩
흔들며 한껏 교태를 연기하였다.
 

<62. 중과부적>
  
  불룩한 젖가슴에서 매끈매끈한 복부에 이르기까지 끈끈한 비지땀을 흘리며,
다마에 부인은 한계에 도달한 생리의 고통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목마
위에서 좌우로 벌어진 날씬하게 뻗은 다리 곡선은 화사하고 섬세하여 마음을
녹일 듯한 우아한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다.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더블 침대 위에 타고 올라앉아, 화투를 치면서 가끔
즐거운 표정으로 목마 위에서 번민하는 다마에 부인 쪽을 보았다.
 
  "너무 참는 거 아냐, 응? 오리하라 부인."
 
  "계속 오기로 버티지 말고 얼른 해치워버려. 그런 뒤, 이 침대에 묶고 아주
행복한 기분에 젖게 해줄 테니까."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얼굴을 마주보고 히죽거렸다.
 
  하얀 지방으로 안개가 긴 듯한 고운 살결의 다마에 부인은 때때로 목마에
얹은 허리 부분과 좌우로 벌린 관능적인 넓적다리께는 비비며 애처롭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렇게 움찔움찔 하면, 과녁이 빗나가 버리잖아!?"
 
  사타구니의 아련한 그늘에 눈이 간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몸 안에 달큰한
관능이 솟아옴을 느끼면서, 동시에 적개심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꼴 좋다, 실컷 울상을 짓게 해줄 테다. 가와다는 광포한 피가 들끓어 올라
슬며시 손을 뻗었는데, 순간 다마에 부인이 화들짝 놀라 허리를 부르르 흔들었다.
 
  "무, 무슨 짓이에요! 음탕한 짓을 하면 혀를 깨물겠어요."
 
  "아아, 깨물려면 깨물어. 쇠창살 안에 있는 치하라 미사에가 네 대역을 맡게
될 뿐이니까."
 
  가와다는 코웃음을 쳤다.
 
  "질질 끌다 밤새겠어."
 
  요시자와가 손목시계를 보고 혀를 차며 다마에 부인의 목마에 탄 엉덩이를
두드렸다.
 
  "이봐, 쌀 건지 싸지 않을 건지 확실하게 해. 아직 이야? 아직 이라면 침대가
푸념을 늘어놓겠어."
 
  다마에 부인의 뺨에 굵은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부탁이에요. 네, 부탁드리겠어요."
 
  몇 분인가 지나 다마에 부인은 상기된 얼굴을 들었다.
 
  "왜. 결국 참을 수 없게 된 거야, 오리하라 부인?"
 
  다마에 부인은 미간을 여덟팔자로 모으고 가와다와 요시자와에게 애원하였다.
 
  "우리들이 보는 앞에선 교양 때문에 쌀 수가 없다는 소리 군. 좋아, 십분
이내에 마치지 않으면 호되게 혼날 줄 알아. 명심해!"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음란한 미소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윽!"
 
  다마에 부인은 다시 급격하게 밀려온 생리적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이를 갈며 힘껏 넓적다리로 목마를 조였다.
 
  "이제, 이제 안 되겠어!"
 
  마침내 봇물이 터졌다.
 
  아아― 하고 다마에 부인은 당혹하여 빨개진 얼굴을 미친 듯이 내저었다.
목마 아래의 함석 양동이를 세차게 두드리는 물소리.
 
  "헤헤헤, 부인 들어가도 돼?"
 
  밖에 나가 있던 가와다와 요시자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 돼! 들어오면 안 돼! 제발요. 들어오지 말아요!"
 
  목마 위의 다마에 부인은 크게 동요하며 화끈 달아오른 몸을 목마 위에서
흔들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런 섭섭한 소리 말아. 이제 불원간 남이 아닌 관계가 될 텐데."
 
  공포와 수치의 전율로 목마 위에서 두 다리를 떠는 다마에 부인은, 얼굴을
외면하고 탐스런 젖가슴을 흔들며 흐느꼈다.
 
  마침내 오줌 줄기는 점차로 약해져 방울이 되어 양동이 안으로 떨어졌는데,
이미 그때는 다마에 부인도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
 
  "헤헤헤, 간신히 싸셨군요."
 
  요시자와가 다마에 부인의 넓적다리를 쓰다듬었다.
 
  "맘대로 해요."
 
  다마에 부인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힘없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어때, 부인. 하는 김에 큰 쪽도 해결해버리지. 그쪽이 번거롭지 않고 좋잖아?"
 
  다마에 부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마에 부인은 뺨과 목덜미께를 다시 물들이며 처녀가 수줍어하듯이 하늘하늘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래. 억지로 하라는 건 아냐. 어차피 그쪽에는 혼쭐나게 한 답례로 내가
듬뿍 관장해줄 셈이니까."
 
  가와다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옷을 벗었다.
 
  "요시자와 형, 자네도 벗는 게 어떻겠어?"
 
  "그럴까. 왠지 찌는 것 같군."
 
  요시자와도 가와다를 따라서 옷을 벗고 팬티 한 장 차림이 되었다.
 
  "오리하라 부인도 완전 알몸인데, 불공평하다는 소리 듣지 말고 벗어버리지."
 
  팬티를 벗은 두 사내는 좌우에서 다마에 부인의 허리에 손을 뻗어왔다.
 
  "헤헤헤, 목마 위의 아름다운 부인, 개운해졌으면 어서 침대 위로 오르시지요."
 
  목마에서 내려진 다마에 부인은 똑바로 설 기력이 없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들어온 것은 오니겐과 오츠카 쥰코였다.
 
  "좀 일찍 왔으면 재미있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요시자와는 목마 아래의 양동이를 가리키며 웃다, 퍼뜩 생각났는지 황급히
팬티를 입었다.
 
  "정숙한 부인도 역시 그것만은 어쩔 수 없었나보지?"
 
  오츠카 쥰코는 소리내어 웃었다.
 
  다마에 부인의 눈에 증오의 빛이 스치며 쥰코를 올려다보았다.
 
  "오츠카 씨! 이, 이런 모욕을 내게 주고 그걸로 끝나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실한 적의를 보이며 다마에 부인이 눈썹을 치켜 뜨고 히스테릭한 소리로
악을 썼다.
 
  "사내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것을 싸놓고도 아직도 큰소리 시네. 오리하라
부인."
 
  쥰코가 목마 아래의 양동이를 가리키면서 다시 웃었다.
 
  가와다와 요시자와가 등뒤에서 다마에 부인의 어깨 죽지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뭘 하려는 거예요!? 분명하게 말씀해주세요!"
 
  "고집이 센 여자로군. 그렇게 일일이 속썩이지 말라고."
 
  요시자와가 쓴웃음을 지었다.
 
  "민감한지, 둔감한지 테스트 해주려는 거야."
 
  가와다는 다마에 부인의 오랏줄을 힘껏 당겨 간신히 일으켜 세우자, 그 볼기짝을
때리며 웃었다.
 
  네 구석에 가죽 벨트가 장치되어 있는 섬뜩한 침대를 본 다마에 부인은 새파랗게
질려 전신을 돌처럼 경직시켰다.
 
  "여기에 대자로 누우라고, 부인. 그렇게 하면 우리들이 감수성이 강한지
약한지 자세히 조사해 줄게."
 
  가와다가 냉소하며 다마에 부인의 얼어붙은 뺨을 찔렀다.
 
  "마지막 부탁이에요! 이 모욕적인 일을 하루만 늦춰주세요!"
 
  "에? 또 하루 기다리라고?"
 
  요시자와는 코에 주름을 모으며 다마에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모코 양과 나오에 양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내일 하루 기다려 만약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는."
 
  오츠카 쥰코가 소리를 높여 웃어댔다.
 
  "아직 모르겠어, 오리하라 부인? 당신과 치하라가의 아가씨는 그 두 하녀에게까지
배신당한 거야."
 
  그렇게 말한 쥰코는 뒤돌아보고 문 쪽을 향해 말했다.
 
  "이제 됐어. 두 사람 모두 들어와요."
 
  아까부터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긴코와 아케미가 치하라 미사에의 하녀인
도모코와 나오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 순간, 다마에 부인의 얼굴이 오그라들었다.
 
  "앗! 당신들은."
 
  금방은 소리도 나오지 않고, 다마에 부인은 경악한 나머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부인. 고용살이로 혹사당하며 사는 것보다 호화롭게
사는 쪽이 낫지 않겠어? 우린 앞으로 하자쿠라단 언니들의 신세를 지기로 했어."
 
  도모코의 말을 들은 다마에 부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아가씨와 저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거군요."
 
  다마에 부인은 전율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뭔가 말하려고 해도 불덩어리
같은 것이 가슴 언저리에 치밀어와 다마에 부인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니, 부인, 불쌍하게 알몸이 되셨군요."
 
  나오에는 나신을 떨며 흐느끼는 다마에 부인을 응시하고 빙그레 웃었다.
 
  "예쁜 몸이네. 눈부실 정도로 하얘. 이봐, 도모코 그렇게 생각하니?"
 
  도모코도 황홀한 눈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다마에 부인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오츠카 쥰코가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그런 다마에 부인에게 다가갔다.
 
  "호호호, 이제 납득이 가셨죠, 오리하라 부인? 인간을 신용하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이것으로 한 가지 배웠을 거야."
 
  "한 가지만 말해주세요. 오츠카 씨."
 
  다마에 부인은 떨리는 뺨에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쥰코 쪽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뭐야, 부인."
 
  쥰코는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당신들은 아가씨와 나를 여기에 감금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후후후, 그건 몇 번이고 말씀드렸을 텐데?"
 
  쥰코는 맛있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내가 주재하고 있는 고게츠류 꽃꽂이는 당신들로 인해 이제까지 충분히
골탕을 먹어왔어요. 나는 그 복수를 하기 위해, 치하라 당주인 아가씨와 그
후원자인 오리하라 부인을 이렇게 납치한 거예요."
 
  쥰코는 다마에 부인의 몹시 처량한 얼굴을 즐거이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의 목숨까지 해치겠다고는 말하지 않겠어. 그 대신 야만적인 인간들의
방석 쇼에 출현하는 밑바닥의 여자로 전락시켜 주겠어. 자세한 얘기는 여기에
있는 오니겐이라는 인간 조교사에게서 듣도록 해."
 
  오니겐은 다마에 부인을 옆으로 안으려고 하였다.
 
  "무슨 짓이야! 놔!"
 
  다마에 부인은 몸을 비틀며 흥분된 소리를 질렀다.
 
  "지금 와서 발버둥치면 꼴불견이지."
 
  가와다에 요시자와 그리고 히죽히죽 지켜보고 있던 긴코와 아케미까지 힘을
합해 다마에 부인을 침대 위에 밀어 올렸다.
 
  "싫어요! 아아, 제발!―."
 
  당찬 다마에 부인도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숫처녀도 아니면서 허풍스런 소리 지르지 말아!"
 
  오니겐은 몸부림쳐대는 다마에 부인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긴코와 아케미가 신이 나서 날뛰는 다마에 부인의 두 다리를 붙잡아서 묶으려고
했다. 다마에 부인은 양 팔목을 파고든 가죽끈을 잡아당기면서 두 다리를 오므렸다,
버둥거렸다. 미친 듯이 날뛰었다.
 
  "적당히 하지 못하겠어!"
 
  요시자와가 그런 다마에 부인의 뺨을 별안간 우악스럽게 후려갈겼다.
 
  다마에 부인의 눈에서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은 체념이 빨라야 해. 너는 이제 제2의 시즈코 부인이 되기 위해 우리들의
조교를 받게 되어 있으니까 말야. 자, 부인 마음껏 활짝 벌려."
 
  딱 붙이고 있던 다마에 부인의 넓적다리가 긴코와 아케미의 손에 의해 좌우로
벌려져갔다.
 
  "아아, 이, 이런―!"
 
  다마에 부인은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는 수치와 공포에 다시 비단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가와다와 요시자와까지 거들어 좌우로 팽팽히 당긴
다마에 부인의 발목에 가죽끈을 친친 감고 말았다. 다마에 부인의 육체는 도마
위에 얹은 아름다운 인어처럼, 침대 위에 반듯하게 묶이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토록 우아하고 요염한 나신이 있단 말인가!
 
  서른 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반질반질 빛날 정도의 우윳빛 피부, 불룩
부드럽게 솟은 가슴 융기, 허리께의 나긋나긋한 요염한 곡선, 그리고 무참하게
좌우로 크게 벌려져 묶인 두 다리의 뛰어난 곡선미. 희미하게 안쪽 허벅지에
푸른 혈관이 비치고, 싹 깎인 듯이 벌어진 넓적다리는 상아색으로 차갑게 빛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뇌쇄적이면서도 고귀한 관능미에 휩싸여 있었다.
 
  "이, 이런 모욕을 내게 주고,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이 으스스하고 음란한 공기를 참을 수 없어 최후의 적의를 나타내듯이 부들부들
입술을 떠는 다마에 부인이었지만, 긴코와 아케미는 도모코와 나오에를 구석으로
불러 뭔가 속삭이며 의논하고 오니겐 쪽을 향했다.
 
  "저, 오니겐 씨, 다마에 부인의 감도 테스트를 이 두 사람에게 맡기는 게
어때? 그쪽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긴코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붉은 혀를 쏙 내밀었다.
 
 
 
  치하라 미사에의 하녀인 도모코와 나오에를 시켜 다마에 부인을 곯려주자는
착상을 가장 기뻐한 것은 오츠카 쥰코였다.
 
  "그럼, 여기는 두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저쪽에서 잠시 쉬도록 하죠."
 
  쥰코는 구석 탁자로 걸어가 선반에서 양주병을 꺼냈다.
 
  "그럼 한숨 돌리도록 할까?"
 
  가와다도 요시자와도 의자에 앉아, 쥰코가 따라준 위스키를 맛있게 마셨다.
 
  도모코와 나오에는 왠지 멋쩍은 얼굴을 하고 침대에 묶여 있는 다마에 부인
곁으로 다가갔다.
 
  "부인, 나쁘게 생각 말아."
 
  다마에 부인은 자신의 몸에 성 희롱을 가하려는 두 하녀가 다가오자, 대자로
고정된 몸을 젖히고 몸부림치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외쳤다.
 
  "너희들까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는 거야!? 분명, 분명 너희들 후회할
날이 있을 거야! 앗, 뭘 하려는 거야!"
 
  도모코와 나오에는 허둥대며 악쓰는 다마에 부인을 무시하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침대 위에 무릎을 얹었다.
 
  나오에는 다마에 부인의 부드러운 가슴 융기를 양손으로 감싸쥐고, 그 정점의
귀여운 엷은 홍색의 유두에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
 
  "앗! 그만해! 무슨 짓이야!?"
 
  하녀의 손에 희롱 당하는 분노, 그 역겨운 감촉을 젖가슴에 받는 다마에
부인은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는데, 한편 도모코는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
쪽으로 돌아가 나오에에게 질소냐 하는 식으로 희롱을 가하므로, 다마에 부인은
발끈하여 양 팔목, 양 발목에 감긴 끈을 잡아당기며 발버둥쳤다.
 
  "저깟 일로 저렇게 난리 법석이니, 앞으로의 조교가 깜깜하군."
 
  요시자와의 말에 오니겐이 손을 내저으며,
 
  "그렇지 않아요. 박사 부인 입네 하는 거만함이 장애물이긴 하지만, 저 여자의
몸 생김을 봐서 다른 사람의 배는 민감하다고 판단돼요. 그래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더 호들갑을 떠는 거예요."
 
  오니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쥰코가 따라준 위스키를 마셨다.
 
  "그런데 오니겐 씨. 앞으로 저 오리하라 부인을 어떤 식으로 교육시켜갈
생각이에요?"
 
  쥰코는 침대 쪽을 바라보면서 오니겐에게 물었다.
 
  "이런 콧대 높은 여자는 바짝 조이지 않으면 안 되죠. 오늘밤엔 새벽녘까지
이놈을 사용해서 닦달할 겁니다."
 
  오니겐은 시즈코 부인을 괴롭힌 미국제 고문 기구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효과는 절대적으로 높아 시즈코 부인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던
모양이라고, 오니겐은 찌요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쥰코에게 들려주었다.
 
  도모코의 공격이 다마에 부인의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곳으로 옮겨간 듯했다.
 
  "그만, 그만해!"
 
  엉덩이를 들썩이며 오른쪽, 왼쪽으로 몸을 뒤집으려고 난동을 부리고, 허리를
흔들어 도모코의 끔찍한 손길을 피하려는 비통한 노력을 다마에 부인은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이제 어쩔 수 없어. 적당히 단념하는 게 어때? 부인."
 
  도모코는 다소 처치 곤란한 기색이었다.
 
  "제, 제발요, 그만해요! 네, 도모코 양."
 
  도모코는 나오에와 얼굴을 마주보고 히죽 웃고 다시 공격을 계속했다.
 
  "아, 아아, 도모코 양, 제발! 이, 이러지 마―."
 
  다마에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젊은 부인 스타일로 아름답게 세트한 검은
머리칼을 좌우로 내저었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부인. 그보다 이제 얌전해지는 게 어떨까."
 
  다마에 부인의 애원 따위는 아예 묵살하고 기세 등등하게 공격하였지만,
공포와 굴욕의 극에 달한 다마에 부인이 근육을 경직시키고 굴복하지 않자,
도모코는 초조해졌다.
 
  "비켜봐. 우리들이 해볼 테니."
 
  긴코와 아케미가 주체하지 못하는 도모코와 나오에를 물렸다.
 
  "정말 똥고집이네, 이 부인."
 
  그러나 긴코도 손들고 말았다. 다마에 부인은 고통스럽게 눈살을 찌푸릴
뿐 의연하였다. 온몸으로 숨죽이며, 허물어지지 않으려고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긴코?"
 
  가와다가 술기가 오른 눈으로 다마에 부인을 주무르고 있는 긴코를 보았다.
 
  "불감증인가?"
 
  긴코는 입이 나와서 가와다 쪽을 보며, 다마에 부인이 굴복하지 않음을 알렸다.
 
  "설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라고. 이 위스키 병을 비우고 나면 우리들이
교대해 줄게. 잠시 그대로 기다려."
 
  "이번엔 베테랑이 승부에 도전할 거야. 어느 쪽이 이기나 우리들은 구경이나
하지."
 
  긴코와 아케미는 억울한 표정으로 다마에 부인을 바라보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지금까지 도모코와 긴코 일당에게 받은 굴욕의 세례에 부인의 젖가슴은 노여움으로
고동치고, 벌어진 넓적다리도 분함에 부들부들 경련 하였다.
 
  "부탁이에요! 오츠카 씨―."
 
  다마에 부인은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쥰코에게 말하였다.
 
  "뭐야? 부인."
 
  쥰코는 잔을 한 손에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침대의 다마에 부인에게 다가갔다.
 
  "부탁이에요! 이 이상 이런 끔찍한 고문은 그만둬주세요! 네? 오츠카 씨."
 
  다마에 부인은 목구멍 언저리에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으면서 증오하는
오츠카 쥰코에게 애원하였다.
 
  "뭐라고 소곤소곤 거리는 거야."
 
  가와다가 탁자 곁에서 참견하였다.
 
  쥰코는 웃으면서 가와다 쪽을 돌아보며 반은 다마에 부인에게 들으라고 말하였다.
 
  "언제까지 질질 끌지 말고 고문하려면 어서 고문하라고 재촉이 대단하셔."
 
  "오츠카 씨, 당신은 악마의 화신이야!"
 
  다마에 부인은 흥분하여 한마디 외치고는 활짝 벌어진 사지를 떨며 목메어
울었다.
 
  "그럼, 이번엔 우리들이 상대해주지. 좋지? 부인."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구미 당기는 얼굴로 침대로 접근하였다.
 
  "그런 비참한 얼굴 하지 마. 우리들은 말야, 당신의 불감증을 치료해 주겠다는
거야."
 
  입술을 빼앗으려고 가와다가 다마에 부인의 뺨에 손을 가져갔지만, 부인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어 가와다의 입술을 피했다.
 
  "빌어먹을! 만만하게 보지마!"
 
  요시자와가 다마에 부인의 고집에 화가 치밀어 따귀를 찰싹 때렸다.
 
  "엇, 그런 짓 하지 말아! 우리들은 좀더 품위 있게 항복시켜야지."
 
  가와다는 요시자와를 제지하고, 능글맞게 웃으면서 다마에 부인의 매끄러운
목덜미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요시자와도 가와다를 본떠 폭신한 귓불,
선이 곱게 뻗은 어깨 등에 술 냄새를 뿜어대었다. 싸늘함 속에 우아함과 기품을
겸비한 다마에 부인의 얼굴이 차츰 상기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쯤
지나서이다.
 
  "남편에게는 이렇게 강짜 부리지 않았겠지? 응, 부인?"
 
  가와다는 부인의 두툼한 턱을 잡아 얼굴을 젖히면서 귀에 입을 대고 물었다.
 
  다마에 부인은 굳게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괴롭게 찡그린 이마에
끈끈한 비지땀이 배어왔다.
 
  "이봐요, 다음은 내게 요리시켜 줘."
 
  오츠카 쥰코는 두 사람의 협공을 받고 있는 다마에 부인을 눈을 번뜩이며
보고 있었는데, 돌연 잔학의 충동에 휩싸여 침대로 다가갔다.
 
  "레즈비언의 대가이신 오츠카 여사에게 걸리면 불감증도 단숨에 날아가 버리지."
 
  오니겐이 껄껄 웃었다.
 
  쥰코는 옷을 벗고 전문가다운 검은 슬립 차림이 되자, 다마에 부인을 들여다보았다.
 
  "무, 무슨 짓이에요, 오츠카 씨!"
 
  심한 당혹스러움에 얼굴 가득 수치의 홍조가 번진 부인은 몸을 크게 버둥거렸다.
 
  "괜찮아.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쥰코는 몸부림치며 우는 다마에 부인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처녀든, 유부녀든
상대가 미인이라면, 이러한 동성애 장난질에 끌어넣고 싶은 충동에 쥰코는
사로잡히는 모양이다.
 
  마치 도원경에 빠진 것 같이 멍한 표정으로 변해 가는 쥰코를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도 잊고 아연히 바라보았다. 별안간 얼굴을 든 쥰코는
이쪽을 넋 놓고 바라보는 가와다와 요시자와를 쏘아보며 말했다.
 
  "멍청하게 있으면 어떡해! 알겠어? 우리들은 이 부인의 몸을 지금 치료하고
있는 중이야."
 
  가와다와 요시자와는 쥰코의 꾸짖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얼굴을 마주보았다.
 
  "후후후 부인, 적인 내게 이런 짓을 당해서 원통해? 응? 그렇다면 뭐라고
말씀 좀 해봐."
 
  다마에 부인은 뺨에 한층 홍조를 번지며, 가느다란 흐느낌의 소리를 새었다.
원통하게도 의지와는 반대로 굴복의 징조를 공격자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쥰코도
또한 잔학미에 도취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은 오니겐 쪽을 보았다.
 
  "오니겐 씨.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것 안심이군요. 상품으로서 통용되지 않으면 내 책임이 되니까."
 
  오니겐이 웃었다.
 
  진작부터 쥰코의 솜씨를 침을 삼키며 지켜보던 도모코와 나오에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짓듯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솜씨야. 이런 분한테 걸리면 아무리 완고한 부인이라도
끝까지 고집 부릴 턱이 없지."
 
  "나도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다마에 부인은 점점 뜨거운 숨을 토해내면서, 때때로 흐릿해진 무기력한
눈을 떴다 감았다 하였다. 넓적다리가 안타깝게 흔들리는 것은 공격자를 거부하기
위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동시에 흘러 넘칠 정도의 감미로운 비지땀.
 
  다마에 부인은 바야흐로 모든 이성을 빼앗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뇌의
파도에 심하게 흔들리며 요염하리 만치 슬피 울기 시작하였다.
 
  "오니겐 씨, 슬슬 준비에 착수해줘요."
 
  쥰코가 오니겐에게 부탁했는데, 이미 오니겐은 구석의 가스 스토브에 따뜻하게
데운 밀크를 조심스럽게 고문 기구에 붓고 있었다.
 
  "후후후, 준비성이 좋아."
 
  눈을 뜬 부인은 퍼뜩 놀라 그만 눈을 외면하였다.
 
  "그렇게 놀랄 것 없어. 이놈은 시즈코 부인한테 실험을 끝냈어."
 
  오니겐이 냉소하였다.
 
  "이것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허사라는 것을 가르쳐줄게. 알았지?"
 
  쥰코는 다마에 부인의 뺨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마침내 부인은 시즈코 부인과 함께 깜둥이와 구경거리로 나가야만 해. 좀
심한 것 같지만, 이것도 수업을 위해서야."
 
  다마에 부인의 옥죈 얼굴을 보고, 쥰코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훗후후 날뛰면 안 돼. 자 착하지."
 
  "여보! 아아, 여보 용서해줘요!"
 
  다마에 부인은 열병에 걸린 듯이 남편을 외쳐 부르며, 쥰코의 교묘한 손놀림에
따라 이 같은 고문에 굴복하여 노리개가 된 자신을 사죄하였다.
 
  생각보다도 순탄하게 다마에 부인이 굴복해 오자, 쥰코는 가와다, 요시자와와
개가를 올린 양 들떠서 떠들어댔다.
 
  "이제 이것으로 부인은 우리들 거야. 앞으로 온갖 솜씨를 다 부려서 쇼에
나갈 수 있는 몸으로 완성시켜 줄게."
 
  쥰코는 이제 이렇게 되면 생각대로 됐다 하고, 격렬한 도착의 욕망이 가세하여
더욱더 공격에 박차를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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