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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2-5편

한편, 슈발츠의 [특별 임무]를 받은 두르나는 샤마스로부터 북서쪽으로 제법 떨어진, 대략 중층부 언더다크의 상부 어림쯤의 깊이에 위치한 드로우 도시인 에린들린(Eryndlyn)의 내부에 드로우 순찰병으로 가장한 채 침투하고 있었다.


엘리트 계급의 드로우 여성들은 롤스의 여사제를 지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기예들에 전문화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없다. 멘조베란잔의 아크메이지인 그롬프 베인레는 자신의 딸을 마법사로 길렀다. 보다 [덜]높은 계급의 드로우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보다 일반적이라, 비 귀족의 드로우 여성은 드로우 남성 만큼이나 다양한 직업에종사해 오고 있다.


두르나가 자신의 본업과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은 드로우 정찰병으로 가장하면서도 의심을 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드로우들의 표현대로라면 샤마스의 [함락](즉 샤마스 시의 개방)시에, 많은 드로우 위저즈들이 가장 가까운 동포의 도시인 에린들린을 찾았다. 물론 드로우들 사이에서의 [동포]라는 개념은 희박하지만, 그들이 가진 비 드로우에 대한 경멸감을 +-로 계산한다면 동족의식이란게 확실히 있기는 있다. 때문에 최근까지 샤마스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이 도시로부터 발해지고 있었다. 단지 샤마스가 지금껏 이 도시와의 전면전을 피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서로 다른 드로우 신격을 모시는 사원들 간의 알력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


두르나가 이 도시에 파견된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새로 얻은 샤마스에 대한 안보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다. 공격을 위해서 뿐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도 정보는 필요한데, 산발적인 공격 이외에는 롤스의 침묵과 대격변 이후 이 도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두르나는 샤마스를 공격하기 위해 매복한 드로우 습격대 중 하나를 표적으로 삼아, 그중에서 자신과 비슷한 드로우 여자를 골라내 죽이고 그녀로 변장해 그들 사이로 숨어들었고, 습격대가 에린들린으로 후퇴할 때 그 도시 안으로 성공적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리 슈발츠에게 가르쳐진 대로 여러 신분을 전전하며 도시 내부의 정정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모아서, 꼼꼼하게 기록하고 숨긴 채로 도시를 빠져나왔다. 다른 전형적인 드로우 도시처럼 페즈레즈로 겹겹이 둘러쳐진 에린들린은 예지술 주문이나 순간이동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보다 구식이거나 비마법적인 정보 전달 방식이 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린들린의 외곽에 있는 비밀 수갱에서 다시 슈발츠를 만났을 때, 두르나는 아직 변장을 위해 칠한 도료가 채 벗겨지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물론 그녀도 이뻐 보이고 싶긴 하지만 그녀의 주인에 대한 충정이 앞서는 탓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슈발츠를 보자 마자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보고서를 바쳤다.


" 롤스의 사제인 아린 샤키랴(Arin Shakira; 중립 악 드로우 여성 롤스의 클 16)가 도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고나도어파와 베이론파는 도시에서 쫒겨난 모양입니다. "


샤마스와는 달리, 에린들린은 거의 완전히 일반적인 드로우의 도시다. 그리고 장차 저 멀리 노스의 지하에 있는 드로우들의 대도시. 멘조베란잔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꼭 수중에 넣어야 할 지하 거점이기도 하다. 샤마스가 병참 기지라면, 이곳은 요새인 셈이다.


중층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상층부에 근접한 위치와, 이곳으로부터 뻗어나간 수천의 수갱들(그들 중 얼마간은 예전에 이곳에서부터 상층부 언더다크와 지상까지를 점유했던 드워프 왕국의 작품이다)을 통해 구식 수단을 통한 타지로의 접근성이 굉장히 좋은 편이기 때문에 또한 유용하다.


슈발츠는 되도록이면 에린들린을 [상처 없이]얻고 싶었다. 주민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까지 말이다. 그래서 원래라면, 예전에 들었던 소문(사원들간의 내분)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 길은 막혔다. 이제 어떻게 할것인가, 슈발츠는 두르나의 보고서와 지도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 머리를 자르면, 뱀은 죽겠지. 새로운 롤스의 사제라는 여자는 어떠하냐? "/슈발츠


" 굉장한 성격이더군요... "/두르나


샤키라의 연령은 이제 드로우로써도 노년 초입에 접어드는 600살 남짓. 광적이지만 노련한 책략가이며, 그 잔혹한 취향은 고통의 여신인 로비아타를 연상시킬 정도라고 했다. 두르나가 직접 목도한 사건 만으로도 저잣거리에서 자신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 만으로 노예에게 붕괴 주문을 날렸다. 매일 남자를 갈아치우는 정도야 드로우 여사제들에겐 보통 있는 일이었지만, 샤키라의 침대 위로 올라갔던 남자들 중에 몸성히 살아 나온 경우는 그다지 없었다. 잠자리 테크닉이 시원찮은 친아들을 채찍으로 때린 후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즉결처분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 좀 쩌는군... "/슈발츠


" 네. 제가 본 그 어떤 롤스의 사제보다 독종이었어요. 그리고 그녀가 샤마스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행동을 벌일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가 숨어들었던 척후병 분대는 습격보다는 정탐을 목적으로 하던 자들이었고요. 최근 그런 정탐조를 자주 내보내어 샤마스의 방어를 시험하고 인근의 지도를 작성해 오게 시킨다는군요. "/두르나


다른 세계에서도 물론 그러하지만, 언더다크에서 지도는 가치있는 보물이다. 여행하는 자체로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환경이며 사실상 천정까지 달린 미로나 다름없는 이곳에서는 도보 만큼이나 차원문이 널리 쓰이는데, 통로의 구조나 차원문의 목적지 등이 표기된 지도가 없다면 비참한 꼴에 빠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형은 군대의 이동에도 중요한 요소다. 샤마스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인근 도시의 지도자가 샤마스에 대한 정확한 지형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곧 전쟁 준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함정을 놔 볼까...


지도와 문서들을 번갈아 보던 슈발츠는 마침내  전략을 결정했다.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가 가진 무언가를 얻어내고 싶다면, 상대에게 그것을 직접 요구하기 보다는 내가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숨긴 채 그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와 교환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식이다. 상대가 간절한 만큼 이쪽의 이익은 커진다. 그리고 또한 좀 더 유리한 거래를 하고 싶다면,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내가 있는 곳까지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전쟁을 위한 전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대를 이기고 싶다면, 모든면에서 보급이 충분하고 방비도 잘 된 적의 기지나 요새에서 그 적을 상대해서는 안된다. 모든 완벽한 승리의 초석은, 적을 유리한 위치에서 끌어내는 것에 기초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적은 맨입에 꼬여주지 않는다. 상황에 맞는 적당한 미끼를 던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끼를 던지고 기다리는 전술은, 때로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 된다.


물론 기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처리해야할 다른 엄무가 있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그리고 슈발츠는 한가지 일만 하는 중이 아니다. 심심할 틈이나 지루할 틈이란 것은, 그에겐 당분간 없어 보였다.


두르나에게 다음 계책을 알려준 후 실행을 일임하고, 조력자로 샤이라까지 붙여준 슈발츠는 아스트랄계 여행에 집중했다. 라빈과 샨달라 자매들은 상당히 빠르게 배워서, 이제 스톰 등은 다른 일에 투입해도 좋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마침 심불과 알루스트리엘이 교대로 엘민스터를 돌보러 다니던 데일에서 무언가 불길한 조짐이 일어나고 있어서, 스톰들은 그 문제를 조사하는데 파견되었다. 보통이라면 이런 오지랖이 너른 일은 하지 않지만, 역시 슈발츠는 자신의 노예들에겐 물렀다.


아티팩트를 찾는 일 자체는, 순조롭게 풀렸다. 기스양키 도시에 침입해야 할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우연히 조우한 스펠재머 쉽에서 붙잡은 기스양키 포로들이, 슈발츠가 목적하는 바로 그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루크 풍의 고대 도시의 파편이라... "


고대 사루크 도시의 파편이 아스트랄계로 흘러든 것은 진귀한 사건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파편에 기스양키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도. 슈발츠가 붙잡은 것은 바로 그 폐허로 가득찬 돌덩이들을 탐험하러 가던 기스양키 척후조였다.


" 일이 너무 잘풀리는군. "/슈발츠


" 그런데 주인님, 포로는 어쩌실 건가요? "/라빈


기스양키 치고는 무척 순순히 취조에 협조한 자들이다. 그리고 슈발츠는 그들의 마음에 따로 거짓이나 음모가 없다는 점을 이미 읽고 있었다.


" 풀어 줘. 다른 장비와 함께 은검도 돌려 줘라. 우린 기스의 강탈자나 적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 "/슈발츠


" 그런다고 저들이 우리를 친절하게 대할 것 같지는... "/이쓰미라


" 심각하게 엮이고 싶지 않기 위해서이다. 서로 아무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모른척 하면, 끝나는거지. 그리고 어차피 저자들은 지금 되돌아 가서 보고하는 짓 따윈 꿈도 못꿀게야. "/슈발츠


기스양키들은 대체로 사악한 편이지만 똑똑하고 자존심도 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의무감도 무척 투철한 편이다. 슈발츠에게 잡혀서 혼백이 빠질 정도로 경을 치루었지만, 되돌아가서 지원을 요청한다는건 생각도 못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임무는 어쨌든 수행해야 한다. 너무 접근하지 않도록 눈치를 보며 슈발츠의 배를 따르던 기스들은 슈발츠 일행이 사루크 도시 조각 중 하나인 거대한 돌덩어리 위해 착륙하자, 제법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기들의 배를 대고 이쪽을 경계하면서 캠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 주인님 말씀대로네요... "


헬샤라와 다른 노예들이 경외감이 섞인 눈빛으로 슈발츠를 올려다보는 동안, 슈발츠는 약간 잘난척을 했다.


플로라의 지도를 받은 샨달라 자매들이 캠프를 설치하는 동안, 슈발츠는 라빈을 데리고 거대한 돌덩어리 안쪽을 향한 입구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었다.


" 이쪽에 비밀문이 있어요. 돌을 누르는 것 같은데... 열리지 않네요. "


라빈이 찾는 것은 두개의 기둥을 양각해 둔 것 같은 일종의 [벽]이었다. 그것의 한가운데는 실같은 가는 틈이 나 있었는데, 확실히 그것은 여닫는 문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조금 더 탐색해 보자 문의 나머지 부분도 드러났다. 그럭저럭하는 동안, 캠프의 일은 동생들에게 맏긴 플로라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 비밀문을 찾으셨다면서요? "/플로라


" 아아, 그런데 어떻게 여는지는 모르겠군. "/슈발츠


플로라도 음각되어 있는 문양 등에 골몰해 보았지만, 그것은 그냥 장식일 뿐 별다는 뾰족한 수가 나오진 않았다.


" 흐음, 힌트도 없고 그냥 밋밋한 돌판 뿐인가... "


슈발츠는 사루크처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몹시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 마다 그때 그때 꺼내어 써야 하는 물건이 있다 치자. 그럴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되도록 자신만이 아는 장소를 만들어 거기에 숨겨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물건 자체가 [숨기기]가 무척 어려운, 이를테면 수킬로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환한 광채가 나거나 집채만큼 큰 물건이라면? 그럴때는 그것을 자신만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두면 된다.


특히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인 [드래곤의 무덤]은 대충 어디있는지 (관심을 가지는)누구나 그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로 위엄 드높은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음... 이게 만약 내가 생각하는 후자의 전형이 맞다면...


슈발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스트랄게 고유의 편재 중력이 있는 이 공간은 원래 벽이었던 장소를 바닥으로, 바닥이었던 장소를 벽으로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중력 자체도 느슨하다. 때문에 성벽도 맨손으로 부수는 괴력을 가진 슈발츠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껏 힘을 발휘하기 곤란했다.


이런 상황이니까 방법은... 이것 뿐.


슈발츠는 발가락이 드러나 있도록 고안된 자신의 신발을 벗었다. 자신의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선 발 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웃샤... "


발가락을 포함해 발 전체로 기둥 앞의[바닥]을 붙잡은 슈발츠는, 바닥의 단단함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짚고 벽을 한번 밀어 보았다.


드드드드...


문 안쪽으로부터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예상대로 그냥 이 문은 엄청나게 무거울 뿐인 것이다. 계속 힘을 주어 문을 밀어붙이는 순간, 바닥에서 묵직한 느낌이 왓다. 더이상 하면 바닥이 부서질 것이다. 슈발츠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힘을 뺐다.


" 으음, 어떻게 힘을 줄 방법이 없을라나... "


고민하는 슈발츠, 그때 플로라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눈을 반짝였다.


" 주인님,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


플로라의 아이디어란, 슈발츠의 힘을 지지하는데 쓸 것을 돌바닥 대신 [역장의 벽]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아케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슈발츠는 자신의 발 받침으로 사용할 역장 벽을 만드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


" 괜찮은 생각이구나. 성공하면 사탕을 두개 주지. "/슈발츠


" 에헤헤헤~ 감사합니다. "


슈발츠는 즉시로 정신을 집중해 [바닥]에 손을 뻗었다. 옅은 보라색을 띈 거의 투명한 역장 벽이 순식간에 바닥 위로 넓게 깔렸고, 슈발츠는 그 위로 올라섰다. 소리를 낼 정도로 세게 밟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플로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보여준 후, 슈발츠는 역장 벽을 딛고 문에 손을 짚었다.


" 으으음!!!... "


뿌드드득!... 드드드.... 드드드드드드드!!!....


엄청난 돌 갈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씩 뒤로 밀려 열렸다. 그리고 문이 밀려나면서 바닥의 반원형 홈이 드러나서, 그것이 슈발츠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일정한 힘을 가지지 못한 자라면 절대 열 수 없도록 고안된 거대한 석문임을 보여주었다.


겨우 몸을 옆으로 해서 통과할 정도만 밀어붙이고 나서, 슈발츠는 자신의 힘을 한계까지 시험당한 느낌을 받으면서 석문에서 손을 뗐다. 그만큼 석문은 특별히 무거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문 안의 천정과 바닥과 벽도 마찬가지 재질이었다. 석실 내부는 문을 밀어붙이는 이외의 물리적인 돌파 수단에는 면역에 가까운 방어벽을 가졌던 것이다.


플로라에게 사탕 두개를 주고, 라빈에게는 문을 지키도록 명령해 둔 후 문 안에 한걸음 들어서자, 슈발츠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곧이어 따라 들어온 플로라도 같은걸 느꼈는지 어께를 살작 움츠렸다.


" 으음, 이건 겨우 입구일 뿐인가보군. "/슈발츠


" 공기가 달라요. 이건 전에 말씀하셨던 추가 차원적인 공간 같은게 아닐까요? "/플로라


플로라의 지적에는 일리가 있었다. 사루크들은 최초의 마법 고안자들이다. 추가차원적인 공간을 만드는 마법도 당연하지만 그들로부터 연원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사용했을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문 안은 거대한 석조 기둥이 좌우로 펼쳐진 열주 회랑이었고, 십여미터쯤 앞에는 하나의 흉상이 서 있었다. 1m높이의 대리석 좌대 위에 장치된 청동으로 만들어진 뱀과 비슷한 얼굴을 한 그것은 아마도 사루크 중에서 위인이나 영웅의 그것이거나, 혹은 그들이 모셨다는 세계 뱀의 신상일 것이다. 그것에서는 어떠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외에는 텅 비어있는 석실의 내부를 이곳저곳 둘러보던 슈발츠는, 문득 흉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에 붙여진 청동 판에 눈길이 갔다. 굉장한 솜씨의 음각으로 사루크들의 언어가 부조되어 있었는데, 그것에 정신을 집중해 해독해 본 슈발츠는 그것이 이름이 아니라 서사시 같은 것임을 즉시 깨달았다. 그는 플로라를 문 앞으로 물러서게 하고, 그 청동 명판에 있는 구절을 소리높여 읽었다.


" 내 종족의 운명처럼 내 이름 역시 세월 속에 묻히더라도, 세계 뱀의 축복과 은혜 속에 비늘족들이 영원한 세상을 만들기를 꿈꾸며, 이곳에 잠드노라. 록타르! "


마지막 구절은 사루크어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슈발츠가 청동 판의 문구를 다 읽자, 어딘가에서 돌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윽고 흉상이 세워져 있는 좌대가 뒤로 슬금거리며 밀려가기 시작했다.


" 음, 너무 전형적인데. "


흉상이 물러난 자리에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어는지는 모르나 창백한 빛을 내는 구슬들이 일정 거리마다 천정에 박혀 있어 계단을 밝혀두고 있기까지 했다.


나선의 계단을 십여미터 정도 내려갔을까, 눈앞에는 다시 막다른 석실이 나타났다. 역시 어슴프레한 푸른 조명 아래 있는 그 방은 전체적으로 보아 팔각형이었는데, 각 면에 뱀과 비슷한 금속 두상이 방 한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한바퀴를 돌아서 조사를 마치고 나서, 슈발츠는 하나의 두상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무언가 필요한가 본데... "


문득 슈발츠는 기스양키들이 착륙한 건너편의 돌조각 유적이 떠올랐다. 그것도 제법 컸고, 유적같은 건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여기 없는 사루크 두상은 그곳에 있을지도 몰랐다.


-후기-


기스양키는 D&D세상에서는 두가지로 유명합니다. 일리시드 헌팅 파티와 은검. 특히 은검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라 기스양키가 등장하는 게임에는 빠짐없이 등장하지요. 슈발츠 역시 그 골격의 재료가 은검이니, 기스들과 꽤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스양키들은 뛰어난 전사와 마법사들을 다수 배출하는 경향이 있지만 15레벨에 도달하면 그들의 지배자인 리치 퀸에게 정기를 빨려 죽습니다. 장래의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고 스스로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그리 하는 것입니다만, 왜인지 기스양키들은 이런 황당한 통치를 받으면서도 얌전히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기스양키는 많은 숫자의 래드 드래곤과 공식적인 동맹 관계라, 래드 드래곤에 탑승한 기스양키 전사를 보는 경우도 드물지만 가능합니다. 사실 [드래곤 라이더]는 거의 대부분의 RPG 플레이어들의 로망 중 한가지입니다만, 드래곤 자체가 이미 지성체라 룰적으로 몹시 힘들죠. 기스양키를 보며 분루를 집어삼켜야만 했던 플레이어도 적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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