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2-9편
니모어가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합당한 보수를 받을테니 멘조베란잔 공략에 종군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프레이아의 품에서 그런 내용을 가진 서신을 찾아 읽었을 때, 슈발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에게 보내져 온 [전령]은 상당한 실력을 가진 암살자였기 때문이다. 휘하에 이런 자들이 몆명만 더 있다면 전황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슈발츠는 내민 손을 덥썩 잡는것을 꺼렸다. 베인과의 거래에서도 고려했던 바이지만, 서로 주고 받을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런 종류의 [원군]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무언가가 아쉬울때 그것을 채워주는 존재는, 그 아쉬움이 해결되고 나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이쪽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면 상관 없지만(베인은 아예 주도권을 슈발츠에게 넘겨 주었다. 따라서 그가 보내 준 드워프 군대 자체가 그에게는 소모시키는 패라는 사실을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골치아파진다. 나보다 힘이 강한 동맹자는 언젠가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니모어 임프레즐이 슈발츠를 개인으로써 압도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암살자 집단이 슈발츠 군대의 [적]이 된다면, 그것은 상당한 부담 이상의 무언가가 된다. 실질적으로 자신 휘하의 모든 장졸들을 모두 동시에 보호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암살자들이 작심하고 사보타주하게 되면, 그 또한 답이 안나온다.
현 시점에서, 니모어측의 무력에 대해 슈발츠쪽이 댓가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였다. 멘조베란잔을 성공적으로 공격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이것은 [카드]로는 너무 약한 것이다. 공략이 지체되거나 공략 가능성 자체가 희박해지만, 니모어는 주저 없이 그를 버리고, 어쩌면 적이 될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것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지만, 금은 부차적인 것이다. 아무리 보수가 좋아도 이런 류의, 특정한 과업에 몰두하는 자들의 충성을 얻을수는 없다. 병사를 다루려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적시에 제공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고금에 있어서 군대 통솔의 첫걸음이고 진리이다. 그리고 그 전제에 따르자면, 니모어와 그의 수하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 따위가 아니라 기회와 확신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애시당초, 그녀가 그의 앞에서 칼춤을 춘 이유를 슈발츠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의지였지만, 그에 대한 허락, 혹은 명령이 아니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원래 암살단은 명령 체계가 엄격하다. 불합리한 명령도, 자살적인 명령도 기꺼이 따르도록 훈련되지 않는다면 그 암살자는 쓸모가 없고, 쓸모없는 암살자로 이뤄진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암살자 조직의 장이, 자신 휘하의 우수한 암살자를 통해 보낸 서한이다. 단지 편지만 전할 생각이었다면 우수한 암살자를 보낼 리가 없다. 편지를 전하는 정도는 길가는 아이에게 동전 몆잎을 쥐어 주는 것으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편지를 품고 숨어든 프레이아를 통해, 니모어 임프레즐은 슈발츠의 역량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험이라면, 응해 줄 필요가 있었다.
프레이아 등장 이전부터, 슈발츠는 니모어 임프레즐 개인에 대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제즈레드 철스신 조직에 대해서는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남성들만으로 이뤄진 조직은 아니지만, 드로우 종족의 롤스 신앙을 중심으로 한 가모장제 사회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 조직이 시험 삼아 보내 온 것이 다름아닌 여자 암살자다. 깔보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미 슈발츠는 한 도시를 점령해 보임으로써 스스로의 실력을 드러낸 바가 있었다. 정말로 실력이 없다면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사로잡은 여자는 미인이었다.
사실, 거의 종류별로 엘프와 인간 미녀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 슈발츠의 하렘은 그 규모든 종류든 이미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프레이아는 드문 하프드래곤인데다 드로우 답지 않은 큰 키와 창백한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다. 그러나 미인일 뿐이라면 슈발츠는 알루데시아와 수니, 와우킨 같은 유니크한 존재까지 자신의 하렘에 거두고 있었으니, 하프드래곤이라고 굳이 하렘에 포함시킬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프레이아를 보냄으로써 그녀에 대한 슈발츠의 [반응]을 통해, 니모어가 뭔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슈발츠는 안락의자에 기대어 턱 끝을 살짝 긁었다. 그의 허벅지 위로 상반신을 기댄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두 여자 -두르나와 알루데시아- 는 그런 사정과는 별무상관으로, 서로 슈발츠의 무릎을 독차지하기 위해 열렬히 암투 중이었다.
" 슈발츠님. "
그때, 방문 밖에서 헛기침 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인의 휘하 장군이었지만, 지금은 슈발츠의 휘하에서 자신의 드워프 군대를 지휘하는 입장인 다임이었다. 도시 내부에 대한 정리를 끝낸 후, 추후의 전략에 대해 슈발츠의 훈령을 청하러 온 것이다. 물론 예정에 없는 방문이 아니라, 미리 합의가 되어 있었다. 슈발츠는 손을 흔들어 알루데시아를 치타로 변화시키고 두르나를 원래 위치(자신 옆에 서게 핬다)로 물렸다.
" 들어오시오. "/슈발츠
" 실례하겠습니다. "/다임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드워프 장군은 걸음걸이 까지 자로 잰듯이 정확했다. 그 자로 잰듯한 걸음걸이로 4걸음만에 방의 중앙 테이블 옆에 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슈발츠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테이블 옆에 가서 다임의 맞은편에 섰다.
" 명령하신대로, 삼대문(에린들린은 큰 동굴 통로로 통하는 [대문]으로 남, 북, 서문이 있었다)에 대한 방어는 대충 손을 보는 선에서 끝냈습니다. 저는 여전히 도시 내부에 대한 감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여기 할당할 수 있는 여분의 병사를 새로 확보하기 전까지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멘조베란잔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다임
" 음. 반응이라니, 뭘 말하는 것이오? "/슈발츠
대부분의 포로들을 직접 심문하기를 즐기는 슈발츠에게 있어서, 그것은 새로운 정보였다. 그가 반문하자, 다임은 그가 놓친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척후병들입니다. 페즈레즈 외곽의 차원문을 통해 침투하려던 것을 격퇴했습니다. 시체들의 문장으로부터 베인레 가문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요. "
슈발츠는 잠깐 눈가를 찌푸렸다. 베인레 가문이라면, 드로우 도시 멘조베란잔의 필두가문이다. 멘조베란잔 뿐 아니라 언더다크 전체에 이 가문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에린들린은 멘조베란잔으로부터 남쪽으로 족히 수천킬로는 떨어져 있다. 게다가 도시를 공략한지 이제 겨우 나흘째다.
차원문이나 순간이동 마법으로 정탐용 척후를 보냈다 치더라도 너무나 이례적으로 빠른 반응이었고, 게다가 베인레 가문 직속의 첩자라는건 그리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 물건이다. 그럼에도 여봐란듯이 잡혀죽었다니 그 수상함이 보통이 아니다. 그 사실이 슈발츠의 주의를 건드렸던 것이다.
" 아니, 이건 지나치게 수상한데. "/슈발츠
" 그렇습니까? "/다임
다임도 전쟁터에서 수십년을 보낸 인물이라 했다. 그리고 이런 수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군대를 지휘할 자격이 없다.
" 뭔가 다른것도 알아낸 모양이군. "/슈발츠
" 네,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전투 보고서를 보니 그자들은 무언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문의 문장이야 얼마든지 가짜로 꾸며낼 수 있겠지요. "/다임
다임의 말과 달리, 가문의 문장은 대부분 비전 주문으로 새겨지는 것이라 위조가 쉬운편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한 마법 실력을 가진 누군가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멘조베란잔의 척후병을 가장해 [숨어들려던] 자들의 배후에 있는 누군가가 의도하는 것은 과연 누구, 혹은 무엇일까.
전술한 바도 있지만, 에린들린은 입지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바로 위, 상층 언더다크 부분에 걸쳐 [드래곤스피어 요새]의 원주민이던 드워프 거주지의 잔해와 보다 더 고대의 드워프들이 만든 [지하 고속도로]들이 다수 존재하고(거의 수직인 벽돌 갱도들), 때문에 지상으로 향한 교통이 어지간한 상층부 도시들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편이고, 지상에서 직접 언더다크로 흘러드는 강이 하나 있어서 신선한 물도 풍부하다. 중층부임에도 드로우들이 굳이 정착을 결정했던 것은 이런 좋은 입지 조건 덕이었다.
평상시의 에린들린의 수비 태세는 선제 공격이 기본이기 때문에, 많은 팀들이 돌아가며 도시 외곽을 [전투 정찰]했다. 그러므로 도시를 공략할 계획을 꾸미는 자들은 우선 자기 몸의 안전부터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붕괴되고 드워프들이 방어를 담당하는 중이다. 방어에 할당할 병력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선제 공격을 가할 역량이 남아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하지만 에린들린 주변에 대한 정찰은 중단된 상황이었고, 그 틈을 노려 누군가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더다크에서는 사실 지리적인 거리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워낙 동굴 통로가 이리저리 꼬여있고, 게다가 그 통로조차도 지진 등으로 인해 언제든지 막히거나 새로 생길 수 있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보니, 대부분의 현명한 자들은 차원문을 운송과 여행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대규모의 군대를 이동시킬 때는 임시 차원문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슈발츠가 에린들린은 확보한 이유는, 물론 그런 대규모 수송을 위한 차원문을 만들때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쪽이 유리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 도시가 가진 지상에의 접근성이 더 큰 요인이었다. 이미 확보한 샤마스와도, 또한 지상과도 활발한 교역을 통해 군량과 군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도시를 점령한지 나흘째일 뿐이다.
" 다임 자네의 의견을 수용하지. 외곽 초소들은 비워두고 시내의 순찰을 늘리게. 특히 여기, 이곳 고급 주택가의 주인이 바뀐 경우가 없는지 조사해 보는 것이 좋을게야.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드로우는 드로우니까 말일세. 외곽의 척후에 대해서라면 내가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곧 알게 될게야. 이만 가서 일 보게나. "/슈발츠
" 존명! "/다임
다임이 군례를 취해 보이고 난 후에, 슈발츠는 두르나와 알루데시아를 데리고 신전의 지하 구역으로 갔다.
드로우들의 감옥관은 좀 독특하다. 그들에게 있어 죄수는 곧 노예이며, 노예를 팔기 위해서는 [전시]해 보여야 한다. 그래서 감옥은 사실상 전시장이기도 하다. 이런 감옥에 개인실이란 것은 없으며, 죄수에게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또한 없다. 반면에, [지하실]은 드로우들에게 있어 심문실이자 처형실이다. 처형도 물론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중 하나이지만, 노예로 삼기 불가능하거나, 지나치게 위험하거나,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비밀리에 죽여야만 하는 죄수들을 가둘 때 그들은 지하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이런 류의 처형실은 절대 남에게 보이는 공간이 아니다. 또한 죄수를 [확실히] 가두어 두기 위한 수많은 장치들이 되어 있다.
그래서 죄수 우리의 가시 돋은 창살 사이에는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지만, 지하실은 대부분 그 출입에 열쇠가 필요한 차원문을 사용한다.
슈발츠가 에린들린의 점령했을 때, 사제관의 지하실은 비어 있었다. 정치범이건 뭐건 즉결심판으로 유명한 최고 통치자 덕에 비밀스러운 감금과 처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발츠는 이 지하실을 즉시로 사용했는데, 그 첫 [죄수]가 바로 그를 죽이러 왔던 하프드래곤 암살자인 프레이아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천정에서 내려뜨린 사슬에 연결된 수갑에 두 손목이 구속되고, 바닥에 어께 너비로 떨어진 차꼬에 두 발목이 고정되어 있어 전신의 부끄러운 부분이 훤하게 다 드러난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보통이라면 프레이아 정도 되는 암살자는 차꼬나 수갑 정도는 쉽게 풀겠지만,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힘을 제약하는 마법이 걸린 것으로, 거인이나 용을 속박해 두기 위해 제작한 특제품이었다. 앞서의 마법적인 효과 이외에도 마법적으로 치수가 조절되어 신체에 딱 달라붙으며, 자물쇠가 없고 미리 설정된 자가 마법적인 명령어로만 여닫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번 구속되면 힘으로 끊지 않는 이상 탈출은 불가능하다.
" 잘 잤나? "
" 으으우웅.... 으으웅!... "
프레이아는 자살할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그리고 절반쯤은 취미로) 재갈을 물려 둔 그대로였다. 슈발츠는 턱짓으로 알루데시아를 부려 그녀의 입에 물려진 재갈을 치우도록 했다. 두르나를 시키지 않은 것은 두르나가 그녀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가 작기 때문이다. 재갈이 치워진 프레이아는 한동안 턱을 우물거리더니, 슈발츠를 향해 눈을 부라려 왔다.
" 날 어쩔 생각이지? "/프레이아
" 글쎄, 일단은 조금 가지고 놀면서 몸부림 치는걸 보다가, 공개 처형을 해서 그 목을 성문 앞에 걸어둬 볼까 하는데. "/슈발츠
" 그런다면 니모어 님이 가만있을것 같아? 그분은 너를 동맹자로 선택하셨다. 날 죽이는건 그 동맹 제안에 파토를 내는 행위일 뿐이야. 그리고 그분의 적이 된다면, 맹세컨데 넌 아주 괴로운 꼴을 당하게 될거야. "/프레이아
이글거리는 하프드래곤의 회색 눈동자는 슈발츠의 시선과 맞서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참 굉장한 담력이 아닌가. 슈발츠는 프레이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놀려주기로 했다. 그는 턱짓으로 두르나를 부려 프레이아의 뒤에 돌아가 서게 했다. 그녀의 손에는 가장 유명하고 효과적인 드로우들의 고문 도구인 촉수 채찍이 들려 있었다.
" 일단, 첫번째로. 단순히 동맹을 맺자는 편지만을 보낼 목적이었으면 길가는 어린아이에게 동전을 쥐어 주고 배달시켜도 돼. 그런데 그러지 않았지. 그것이 하나의 잘못이고... "/슈발츠
짜악!!
" 으윽!!... "/프레이아
두르나가 휘두른 촉수 채찍이 등에 작렬한 순간, 프레이아의 눈에 핏발이 서며 눈빛이 흐트러졌다. 사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 만으로도 칭찬해 마땅한 의지력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칭찬해 줄 필요는 없다. 슈발츠는 프레이아가 이를 악무는 것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 두번째, 너는 내 침실을 침입해서 내 사생활을 훔쳐봤어, 그러니 그것이 또한 하나의 잘못이며..."/슈발츠
짜악!!!
" 으큭!!.... "/프레이아
다시 등에 시커먼 줄이 하나 늘어나면서, 프레이아의 악다문 이빨 사이로 침이 튀겨 나왔다. 처음의 일격의 고통을 견뎌내느라 이미 그녀의 전신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하면서, 두번째의 일격 직후에는 그녀의 오똑한 코 끝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걸리기 시작했다.
" 세번째, 너는 나에게 들킨 후에도 편지를 전하기보다는 내 앞에서 칼춤을 추는 쪽을 선택했지. 그것 역시 하나의 잘못이야. "/슈발츠
짜악!!!
" 으악!!!... "/프레이아
세번째 채찍이 그녀의 땀에 젖은 등에 작렬했을 때, 프레이아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눈물을 흘려내며 몸을 뒤트는 그녀를 내려다 보면서, 슈발츠는 조용히 말을 끝마쳤다.
" 그것이 네가 처형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처형되기 전에 너를 상대로 재미를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승자인 내 권리야. "
그녀의 푸른기가 감도는 창백한 백발을 손에 움켜 줘고 잡아당겨 고개를 들었을 때, 프레이아의 눈빛은 흐트러져 있었다. 눈물이 흐른 자국이 뺨에 아직 남아 있었고, 너무 꽉 다물었던 이빨이 미끄러진 덕분에 입술에 상쳐가 나서 입가로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으... 젠장... 이런 야비한... "/프레이아
" 뭐가 야비하다는 건가? 애시당초 남이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침실로 잠입해 들어온건 야비한게 아닌가? "/슈발츠
" 니가 남자라면... 스스로의 실력으로 날 굴복시켜 봐라... "/프레이아
" 그럴려는 중이잖아. "/슈발츠
슈발츠가 바지를 벗으려는 것을 보며, 프레이아는 돌아가지 않는 혀를 움직여 입술을 축였다.
" 그것 말고... 이 사슬을 풀고...힘으로 날... "/프레이아
" 뭐야, 강간을 해 달라고? 너 그런 플레이를 좋아하는 건가? "/슈발츠
" 힘으로 날 이겨 보란 말이다... 여자들을 앞세우지 말고!... "/프레이아
두르나가 참지 못하고 실소를 흘렀다. 그녀는 슈발츠의 거의 모든 전투를 보아 왔다. 그래서 힘으로 슈발츠의 맞상대를 하려면 상위 거인족이나 고룡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매달려 있는 이 천둥벌거숭이는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하플링이 타이탄에게 팔씨름으로 겨루자는 제안을 한 격이다.
반면에 프레이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육체적인 능력, 특히 완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바탕한 무예 솜씨에도 자신이 있는 것이다. 알루데시아와 싸웠을 당시에도 신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해서 잡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자를 앞세웠기 때문에, 슈발츠가 무예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폭소를 참으며, 슈발츠는 반문해 보았다.
" 이미 널 잡은 상황에서, 내가 니 도발에 걸려들어 너를 상대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내가 이겨도 실질적으로 얻는것이 없잖아? "/슈발츠
" ...이대로라면, 남자로써의 자존심은 상하겠지. "/프레이아
말을 마친 후 프레이아는 목 너머로 올라오는 피가래를 뱉았다. 촉수 채찍은 피부 표면에 상처를 낼 뿐만 아니라 내장까지 상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고문 도구였기 때문이다. 다시 올라오려는 피가래를 누르며, 프레이아는 [경솔하게]말을 덧붙였다.
" ...니가 날 실력으로 굴복시킨다면, 내가 스스로 가랑이를 열고 널 주인으로 모시지. 죽을 때 까지. "
우물 안 개구리라도, 프레이아의 자신감은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었다. 실력으로든 힘으로든, 니모어 휘하의 젊은 암살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그녀의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슈발츠는 손가락을 퉁겨 두르나를 불러들였다.
" 정말로 자신있나 본데요?... "/두르나 - 소곤거림
" 흠, 그래도 이겨봐야 얻는건 없잖아, 실질적으로? "/슈발츠 - 소곤거림
" 냥~ "/알루데시아 - 기대의 눈빛
의논은 끝났다. 슈발츠는 두르나를 시켜 프레이아의 차꼬와 수갑을 풀어 주게 했다. 그리고 회복 포션과 무기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 독이 아니니까 안심하고 마셔라. "
슈발츠는 벗으려던 바지를 다시 입고, 걸치고 있던 다른 옷들을 벗어던졌다. 심지어는 팔 보호대로 착용하고 있던 젤롯4.5호기도 벗어서 두르나에게 넘겼다. 웃통을 벗은 그가 손발을 풀면서 준비 운동을 하는 동안, 프레이아는 조금 놀란 눈치로 그를 보았다.
" 무기는... 쓰지 않나? "/프레이아
" 너정도 되는 [아이]를 상대하는데 무기 같은건 필요 없어. 그리고 내 손에 무기가 없으면 네가 유리한 상황 아니냐? "/슈발츠
슈발츠의 지적이 맞기 때문에 프레이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에도 장난질이 되어 있지 않았다. 물약을 마시니 상처가 치료되고 기운이 회복되어 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비로소 그녀의 마음 속에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 그럼 시작하지. "
슈발츠가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프레이아는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허점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대로 그림자 사이로 도약하여 [그림자 밟기]를 써서 슈발츠의 등 뒤에서 기습할 생각이었는데, 막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간 그녀의 등 뒤에서 슈발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속도도 빠르고, 움직임도 좋고, 나무랄데가 없군. 그런데...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꺼운 쇠기둥 같은 팔이 등 뒤로부터 프레이아의 목과 몸통을 휘감았다. 번들거리는 흑요석 비늘에 싸인 그 [쇠기둥]은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는 슈발츠의 팔이었다. 그 팔을 풀어보려 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벗어날 수가 없어서 놀라는 그녀의 귓전으로 슈발츠의 낮은 음성이 들려 왔다.
" 그림자 속에 숨을줄 아는게 너 뿐만은 아니지. "
우드드득!...
다음 순간, 그 쇠기둥들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목과 몸통을 조여 왔다. 스스로의 갈비뼈가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것이 느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비로소 프레이아는 왜 드로우 여자(두르나)가 실소를 흘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힘과 슈발츠의 힘의 차이는 코끼리와 개미 수준 이상의 격차가 나고 있는 것이다.
" 커흐윽!... 끄윽... "
코와 입을 통해 왈칵 피를 토하고 눈을 까뒤집은 후, 프레이아의 의식은 까맣게 흐려졌다.
-후기-
슈발츠의 힘 수치는 50입니다. 30부터는 근력이 톤단위로 나가니까, 50이면 몆십[톤] 단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요. 그런 슈발츠의 품에 안기면 곰이 아니라 용이라고 해도 늑골이 부러질 겝니다. 그리고 힘이 이렇게 좋으면 여자들이 안겨있다가 뼈가 다 부서져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만, 근력이 좋다고 사과를 쥘 때 마다 무의식적으로 쥬스로 만드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다 힘조절이 되는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