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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대학, 여자, 나. - (1)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날 우리집 분위기는 냉랭했다-라고 기억한다.

코흘리개 꼬마인 나는 뭣도 모르지만, 그래도 분위기 파악하는 데 하나만큼은 민감해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지금은 흐릿한,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아니 분위기는 뭐랄까?

어린 내가 기억하기에도 한자좀 빌려 쓰자면 선풍도골(仙風道骨) 그 자체였던걸로 기억한다.

물론....그때 분위기가 그랬던 이유는 내가 크게 되면서 차차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와 대판 싸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웃기는 건 할아버지가 이기셨다는 거다.

그거 하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아주 또렷이.

왜냐면....그게 내 운명을 바꿨으니까.

할아버지는 승리자의 미소를 띄고 내 머리를 만지셨다.

그리고 나는 뭔가 이상한게 머리를 뚫고 들어온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그날부터 뭔가 달라졌다.

부모님과 벽을 쌓은 것처럼 어색해졌다.

"엄마, 나 밥좀 더 먹으면 안돼요?"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어? 어! 아.. 그..그래?"라는 어색한, 어린 나도 느낄법한 그런 감정이 묻어나왔다.

당혹스러웠다.

그럴때마다 나는 할머니 방에 갔다.

할머니는 나를 어색해 하지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방에 들어갈때마다 "불쌍한 내 강아지...어쩌누..."하며 말라버린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는 그러면 서러움이 복받쳐서 한참을 울다가 잠들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문득, 나는 왜 매번 이렇게 차별당해야 하는건지, 왜 그런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할머니께 물었다.

왜 그런거냐고. 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거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잘못한게 있으면 고치겠다고.....

할머니는 그 말에 우시며 잘못없다고....우리 손주에겐 잘못 없다고....차라리 내게 시련을 달라고...절규하셨다.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더 물어보다가는 할머니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일로부터 5년뒤인 10살때, 그것은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임종날.

사람의 사고라는 것이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것이고.. 할머니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아픔을 성숙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죽음이 뭔지, 이미 어느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슬펐다.

그러나 멀리 떠나는 할머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웃는.....얼굴로 보였을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노력한 얼굴로 사랑했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유언을 시작하셨다.

멀리서 온 제일 큰아버지 부부, 부모님, 첫째 작은아버지 부부....그렇게 모두의 차례가 돌아간 뒤,

조용히 나를 보시고더니, 주변 분들에게 말씀하셨다.

"손주랑 둘이서 단둘이 할말이 있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가면서 돌아보는 이질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지낼 수 있는 1분 1초가 너무 아까웠으니까.

그들이 모두 나간 뒤.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내 베게 밑에 책 한권이 있단다. 네 것이다."

"제거요?"

"그래...너만이 주인 일 수 있는 거지. 너 외엔 보지 못하니까. 꺼내보거라."

"...네."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책을 꺼냈다.

처음엔 그냥 종이 뭉치인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잡는 순간, 머리에서 뭔가 제멋대로 팔로 흘러들어가더니 어느순간 글씨가 보이는 것 아닌가.

"이...이게 뭐죠? 할머니?마..마.. 마술이에요???"

"우리강아지..... 이제 할머니 말 똑똑히 잘 들어야 된다...."

그렇게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끝났다.

"그... 그럼..."

"그래. 그 책엔 그게 적혀있단다."

"그런데 왜 놔둬요! 태워버리면 되잖아요!!! 할머니를!! 할머니를..........슬프게 만들었는데.......

혼자 외롭게 만들었는데....."

"안됀다.......할미는 잘 모르지만, 우리 강아지가 사춘기가 되기 전에 익히게 하지 않으면....

나쁜일이 일어난다는 건 들었거든...."

"그런게 어딨어요! 그런게....."

"중도야."

"네....훌쩍...할너미...아니 할머니...."

"할미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네...."

"할미는, 우리 중도가 할아버지처럼 무책임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당연하죠! 절대 안할거에요!!! 절대!!"

"할미는........그렇다고 우리 중도가 스님이나 신부님처럼 완전히 끊고 사는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어떡해요? 잘못되었으면 안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하지만 그 자체론 나쁜게 아니란다. 중도를 지켜야지."

"중도가 뭐에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에요?"

"....그건 우리 강아지몫이 될 것 같구나......할미는....."

그리고 할머니는 희미하게,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하지만.....내 인생, 내 뇌리에는 가장 큰 목소리로 말했다.

".....믿는다...."

그게 그분의 마지막 말이였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조기진학한 나는 어느새 대학생 새내기 OT장 앞이다.

유혹은, 끈질겼다.

어느 도인인가가 "기뻐하라! 수도자여! 도(道)가 크면 그에 따르는 마(魔)도 클지어니! 외로운 수양길에

항상 벗하여 경계하게 하라!"라고 하셨다지만, 미욱한 나로서는 대체 그분이 얼마나 큰 도인이신지

짐작도 안가고, 그저 가끔씩 덮쳐오는 충동을 억누르는 데만도 힘이 벅차다.

후우....그나저나.....대학은 여대는 있는데 남대는 왜 없지? 공대에 기계과니까 그나마 나으려나?

그렇게, 새로운 번뇌의 시작으로, 나는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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