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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단편<3>

그녀는 소리 내어 웃을 때와 소리 없이 웃을 때 얼굴이 사뭇 달랐다. 허리를 연신 굽혔다 폈다 앞뒤로 심하게 움직이며 깔깔대고 웃을 땐 눈주위가 온통 주름으로 가득 차고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빙긋 웃을 때는 눈은 약간 가늘어지는 듯 하면서 입술꼬리가 조금 들릴 뿐이었다. 결국 세 번째 혼자 호프집을 찾고야 말았다. 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분명 나와 어울릴 듯 싶었다. 사실 이런 생각을 처음하게 만든 여자는 아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단순한 가슴뜀이 아니라 깊은 데서부터 저릿하게 퍼지는 만족감과 기대감이 있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설사 타입이 아니더라도 결국 내 바람대로 될 거라는 막연하달 수 없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문득 정말 내 바람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 계집아이를 겨우 두 세 번 때리고 아버지에게 흠씬 맞은 날 밤, 나는 기어코 잠을 못 잔 채로 밤을 완전히 지새우고 말았다. 새벽의 여명이 조그만 창문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올 때 난 옆에 누운 누나들과 저 멀리 아랫목의 아버지가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방을 나왔다. 어느 계절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잠옷 속으로 찬 기운이 확하니 끼쳐 들어와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화장실-사실 화장실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변소였다. 수세식 화장실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은 너무 멀었다. 흙바닥에 콩크리트가 살짝 덮인 수돗가를 지나 중학생이었던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뚱뚱한 누나가 사는 문간방을 지나야만이 변소가 있었다. 뚱뚱한 누나는 좀 전에 들어왔다. 난 그 누나가 조심성없이 신발을 끌며 들어오는 소리에 방광을 팽팽하게 만든 오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변소를 찾았던 것이다. 들켜서 나쁠 이유도 없지만 공연히 아버지에게 들킬까봐 고양이 걸음으로 변소를 갔다. 5촉짜리 전구를 켤 엄두도 못 내고 더듬더듬 하며 엉거주춤 앉았다. 오줌만 누면 될 일이지만 어두움과 차가운 바깥바람에 식은 몸을 좀 위로하려 앉아서 오줌을 누려는 것이었다. 바지를 내리며 엉덩이가 아직 뜨끈하게 아픈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참 많이 때리긴했다. 소란을 피운 세입자의 입장에서 아들을 더 많이 때렸던 것이 분명했다. 오줌 누는 것은 이미 잊어버리고 난 울퉁불퉁 매자국으로 부어오른 엉덩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매자국 위로 내 손이 지나가는 곳이 더 따끈해지고 있었다. 계속 문지르다가 나도 모르는 틈에 툭툭 소리나게 내 엉덩이를 치고 있었다. 쓰다듬다 치고 쓰다듬다 치고 하는 중에 가끔 세게 치면서 엉덩이가 기분좋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몇 번인가 세게 때리다가 이상한 소리에 변소에서 좀 떨어진 데서 누구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친 문간방 뚱뚱한 누나에 내가 더 놀랐다. 앞뒤 가리지 않고 후다닥 뛰어나와 뒤켠으로 달렸고 아까 저녁 때 숨었던 고무통에 다시 숨어 소란이 가라앉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에버랜드 가고 싶어요.”


그녀는 아이스콘을 기분좋게 베어물며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에버랜드? 용인에 있는 거요?”


“예. 아직 못 가봤어요. 우리 가요? 네?”


세 번째로 혼자 호프집을 찾고 그녀의 미소를 구경하고, 그녀는 내게 자주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정말로 보고 싶었느냐 그렇다 하는 이야기 끝에 좋은 사람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상당히 자신감을 얻었다. 여자들은 반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모두 매너가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참 위험스런 생각들을 하는 여자들이 많은 듯 싶다.
1시가 넘어 2시가 되어가는 때에 그녀는 호프집을 나섰다. 1시에 두 명의 알바생이 퇴근을 했어도 그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뒷정리를 혼자서 하려고 애쓰는 듯 했고 심지어는 전표와 계산대의 현금까지 세어서 지갑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까치발로 호프집 입구에 자물쇠를 채우곤 뒤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이 꽤 흥미로웠고 왠지 모르게 기특하단 생각이 들었다.
길 건너 자기를 바라보는 나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 표정이더니 이내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기다리고 계셨네요. 그럴 것 같았어요.”


“그래요? 늦게 나오네요? 다른 사람은 진작 가더구만.”


“그럼요. 전 사장인데요.”


놀랍게도 호프집은 그녀의 소유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해야 할 생각을 갖고 지방 소도시 출신이라는 그녀는 아버지를 설득해 조그만 액세사리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하지만 집 몰래 이내 호프집으로 바꾸고 지금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단다.


“아저씨 도둑놈 아니죠? 저 지금 돈이 많은데..”


“돈을 도둑질하고 싶어서 기다린 건 아녜요.”


“호호 다행이다. 그럼 저 좀 지켜주세요.”


그녀는 다음 골목에 주차한 그녀의 경차에 폴짝 올라 타 가벼운 소리를 내며 가 버렸다.
그녀의 차가 코너를 도는 것을 허망하게 보다가 난 꽤 멀리 주차된 내 차로 걸어갔다. 그녀에게 차가 있을 줄을 생각지 못했다.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든가, 아님 내 차에 좀 태우든가 하려던 생각이 아쉬움으로 날 안달시키기도 전에 그녀의 차가 다시 내 앞으로 달려와 섰다.


“아저씨, 어느 쪽으로 가세요? 태워드릴게 타세요.”


난 조금도 망설임 없이 탔다. 심심찮게 수다를 떨며 그녀는 나를 어느 아파트 앞에 내려주곤 다시 오시면 이번 월요일에 같이 데이트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며 사라져버렸다.


“에버랜드에 지금 뭐가 좋을까?”


“알바생이 그러는데 장미축제를 한 대요.”


“그래요. 갑시다.”


그녀는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아직 가끔 나오는 존대말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훗. 그래 가자.”


멀쩡한 내 차를 두고 그녀의 경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느새 아이스콘을 다 먹고 이번엔 호프집에서 자주 씀직한 방울토마토를 꺼냈다. 꼭지까지 다 떼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한 것이 그녀의 꼼꼼함을 말해 주었다. 조그만 실내공간에 그녀의 화장품 냄새가 금방 끼쳐왔고 기어변속을 하다가는 가끔 그녀의 무릎을 스치곤 했다.


“서울은 좀 힘들어요. 첨엔 좋았는데 친구도 없고. 우리 동네에는 친구도 많았는데..”


속초가 그녀의 고향이었다. 엄마는 진작 집을 나가 기억에 없고 계모 밑에서 적잖이 학대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빠는 자기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에 집에서 나가 줘서 고맙다는 듯이 가게를 차려 주었다고도 했다.


“와. 에버랜드다.”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매표소로 두세걸음 앞서 달려가는 그녀가 꽤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영화도 보고 주로 퍼레이드나 장미 구경을 많이 했다. 그녀는 놀이기구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듯 했다. 폐장시간이 되어가자 기온도 꽤 떨어졌고 그나마 얼마없는 사람들도 거의 퇴장한 듯 싶었다. 아쉬워 하며 그녀와 나오는 길에 더 놀겠다고 떼쓰는 꼬마애를 보았다. 꼬마 엄마는 지친 듯 꼬마의 엉덩이를 때리고 있었고 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맞으면서 떼를 쓰고 있었다.


“새엄마한테 맞아봤어요. 그 땐 울면 더 맞아서 울지도 못했어요.”


“지금 같으면 어떨까? 맞을까?”


“우왓, 말도 안되요. 어떻게 맞아요. 도망가지.”


“따지거나 덤비진 않고?”


“그래도 엄마니까요. 아빠도 있고. 그냥 말들으면서 매맞는게 더 편할 수 있어요. 에이. 다른 얘기해요.”


“그래. 서둘러 나가야지.”


주차장은 이미 어두워졌고 저 멀리 조그만 그녀의 차가 보였다.
애초에 망설임없이 내게 자동차를 맡긴 그녀는 이번에도 자연스레 조수석에 탔다. 난 에버랜드 주차장을 나와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와 시동을 모두 껐다. 삽시간에 주위는 어두워졌고 차 안도 조용해졌다.


“우리 만난지 얼마 안됐지?


그녀는 약간 내게 기대어 옴으로 마음을 열었다는 표현을 해 왔다.
되도록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느끼다가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아 내쪽으로 당겼다. 워낙 조그만 차라 별 어려움없이 마주보는 자세가 되었고 난 한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받쳐 안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힢을 쓰다듬었다. 키스는 몰라도 힢까지는 생각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는 약간 놀란 듯 움츠리며 몸을 빼려 했지만 난 더욱 힘을 주어 그녀를 안았고 쓰다듬었다. 그녀는 두세번 저항하다가 별 수 없이 엉덩이를 이제는 맡긴 듯 입술은 떼지 않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스타킹 밑으로 엉덩이를 느꼈다. 스타킹으로 막힌 엉덩이의 감촉과 서늘함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아버지도 때렸었나?”


엉뚱한 질문에 그녀는 살짝 입을 떼며 몇 번 그런적이 있노라 했다.
바로 앞에서 빙긋 웃는 그녀의 얼굴이 나의 돌발행동을 일으켰다.
그녀를 안은 팔을 한 번 돌리고 그녀의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리니 그녀는 금새 내 무릎에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난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살짝 때렸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멍한 얼굴을 상상하며 난 몇차례 더 때렸다.


“어머. 뭐예요.”


자세가 힘들어서 그런지 힘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별로 저항하지 않는듯한 그녀를 느끼며 난 계속 때렸다. 그녀가 아프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몇차례 들었지만 그리 세게 때리지 않았다. 글쎄 한 열 대쯤 때렸을까 싶을 때 근처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우리쪽으로 돌아 비췄고 나나 그녀나 둘다 황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그 헤드라이트는 우리 옆에 와 섰고 차창을 내려 우리에게 빨리 퇴장하라는 재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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