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편<4>
지난 줄거리
1. 어렸을 때의 첫 경험과 펜션에서의 그녀와의 시도
2. 그녀와의 첫 만남
3. 그녀와의 첫 경험
4. 밑에 있어요. 즐거운 시간 되시길..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정하여 이사는 가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옆집 친구와 그 동생 계집아이와는 눈도 안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나와 내 동생이나 그 친구와 원수같은 그 계집아이는 서로 자기들끼리만 놀아 그 전보다는 재미없는 놀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했던 우리집은 자주 쌀을 사러 쌀집 심부름을 해야만 했다. 남들처럼 한꺼번에 많은 쌀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어둑해질 무렵 어머니는 어김없이 쌀 심부름을 시켰고 난 대문 밖에서 동생을 불러내어 대신 보냈다. 조금씩 사는 쌀 심부름을 좋아할 리 없는 동생이 투덜거리며 가는 사이에 발밑에 돌멩이나 툭툭 차며 장난을 하던 중이었다. 주인집 마루에 켜놓은 불빛이 기다란 그림자를 내 발밑으로 보내 고개를 들어보니 그 계집아이가 조심조심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내심 당황이 되기도 했지만 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눈을 돌리지 않고 그 아이를 노려 보았다. 나름 애쓰며 눈길을 버티고 섰는 내 앞에서 그 아이는 차분해 보였다. 오히려 약간 웃는 듯한 표정이 있는 것을 느낀 것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뭐 하니?”
그 아이는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편하게 물어왔다.
“...”
“여기서 뭐해? 어두운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기도 했지만 말을 섞기 싫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가 뜻밖의 말을 듣고 다시 그 아이를 보아야 했다.
“미안해. 내가 나쁜 년이야.”
계집아이의 입은 꽤 거친 편이었다. 그 아이 집에서 밖에까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욕을 듣는 것도 심심찮게 있는 일이었다.
“저 뒤로 잠깐 가.”
사뭇 명령조로 말하더니 그 아이는 앞서 집 뒤의 공터로 갔다. 하수구 공사를 하고 버려진 원통모양의 맨홀이 몇 개 어지럽게 놓여 있고 주변엔 쓰레기도 적잖았다. 맨홀에는 거지들이 가끔 자고 있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계집아이는 맨홀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그 중 하나에 냉큼 들어가 앉았다. 짧은 치마를 무릎에 모아쥐고 웅크리고 앉아서 나보고 들어오라는 듯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더 이상 쭈볐거리는 것도 싫고 해서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 앉았다. 똑바로 앉으면 머리가 닿을 듯했다.
“나 엉덩이에 멍들었어.”
“...”
“보여줄까?”
난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숨이 막힐 듯 해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있는데 계집아이가 엉거주춤 뒤로 돌더니 치마를 들추고 팬티를 내렸다. 워낙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고 서슴지 않고 움직여서 난 두 눈 똑바로 뜨고 그 아이의 엉덩이를 보게 되었다. 마음 속으로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는데 조금도 못 움직이고 눈 앞의 엉덩이를 보았다. 사실 어두워서 멍자국 같은 건 본 기억이 없었다. 그저 약간은 야위었지만 위로 좀 쳐들고 있는 희뿌연색의 엉덩이만 한참을 보았다.
“봤지?”
아무 대답도 않는 나를 보더니 웃음을 감추고 그 아이는 혼자 말을 했다.
“아팠는데 내가 맞을 짓을 했어. 내가 나쁜 년이니까”
“왜 욕을 하냐?”
“... 잘못했어. 앞으론 욕 안 할게.”
“그리고 너 국민학생이 왜 나한테 반말해.”
“... 미안해요.”
엉덩이를 본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지 그동안의 불만을 털어놓는지 모르게 다른 이야기를 쉴 새없이 하는데 그 아이는 차분하게 대답하고 선뜻 존대말을 썼다. 덕분에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존대말 쓸게요. 그리고 오빠라고 부를게요. 내 이름 모르죠? 선영이에요. 그 동안 잘못했어요.”
“...”
“오빠한테 맞을 때 잘못했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맞을 줄 알았는데..”
“아팠냐?”
“아팠지만 좋았어요.”
“좋아?”
“오빠가 때린게 잘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
“앞으로도 잘못하면 때려요. 여기서 때리면 되요.”
도대체 이 아이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젠 눈도 마주치기 어색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기어서 내 앞을 지나 맨홀에서 나가더니 저쪽으로 달려갔다.
어두운 가운데 무언가 땅바닥을 뒤지더니 나뭇가지를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오빠. 그동안 잘못한거 많아요. 때려 주세요.”
그 아이는 두 손으로 내게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건네 주었고 나는 얼떨결에 받아 쥐었다.
차는 이제 고속도로에서 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답답한 공기를 바꿀 겸 창문을 조금 열었다. 옷깃을 여며 쥔 채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그녀가 조용히 말을 했다.
“아깐 뭐죠?”
나는 대답대신 조금 지나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월요일 밤의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창을 다시 닫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도 피하지 않고 나를 응시해 우리는 한참을 서로 보고 있었다.
“난 스팽킹을 해.”
“스팽킹이요? 그게 뭐죠? 난 영어 잘 몰라요.”
“스팽킹은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야.”
그녀는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근데 왜요? 새엄마가 때린 적은 있다고 했지만 왜 당신이요? 왜 날 때렸어요?”
“미리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미안해. 하지만 말보다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늉만 한 거고. 보여주지 않고 앞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애초에 보여주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그녀는 할 말을 찾는 듯 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보고 싶지. 가까워지고 싶지. 보고도 싶지. 그래서 자주 만나게되고 만나면 자연스레 손잡고 키스하고 싶고 안고 싶어지지. 살을 맞대고 싶은 거야. 체온도 느끼고. 쓰다듬고 비비고 싶지. 난 쓰다듬는 것이 좋아. 더 나아가서 세게 쓰다듬고 싶기도 해. 그리고 난 힢의 살을 보면 세게 쓰다듬고 강렬하게 만지고 싶어서 스팽킹을 해.”
“말도 안 돼...”
“아냐, 말이 돼. 내 손바닥으로 스팽을 하면 내 손바닥이 미애의 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야. 그저 맞닿은 것을 훨씬 뛰어넘는 거지. 그리고 미애의 살도 내 손바닥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을 느껴. 사랑을 더욱 느끼게 하지.”
그녀는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나를 봐. 어서 봐. 그래. 말을 해야지. 숨기긴 싫으니까. 난 앞으로 미애를 만나면 스팽킹으로 사랑을 보일거야. 스팽킹을 하면 미애가 내 것이라는 생각을 더 잘할 수 있을거야. 아마 미애도 아플지는 몰라도 내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고 또 스팽킹으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될 걸. 진정 하나가 될 거야.”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와 만나면 스팽킹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 꺼야. 아니라면 차라리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지. 다음에 만나는 건 미애가 먼저 신청해.”
나는 메모지를 찾아 전화번호를 적어 계기판 위에 붙였다.
비록 어두웠어도 치마가 앞으로 흘러내려 눈 앞에 하얀 팬티와 앙상한 다리가 잘 보였다. 놀랍게도 난 별로 망설이지 않고 한 차례 그 계집아이의 엉덩이를 내려쳤다. 맨홀 속이라 나뭇가지를 쳐들 순 없었기에 약하게 때렸다.
“하나도 안 아파.”
몸을 그대로 둔 채 뒤돌아보며 그 아이가 빙긋 웃었다.
“너 왜 또 반말해.”
난 나뭇가지를 팽개치며 손바닥으로 때렸다. 꽤 큰 소리가 났다. 그 계집아이는 놀란 듯이 주저 앉았다.
“왜 또 반말해. 좀 전에 약속하고선.”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는 다시 엉덩이를 쳐들고 자세를 잡았다.
“한 대 맞을 때마다 잘못했다고 해.”
난 무척 빠른 속도로 그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고 그 아이는 내가 때리는 것 만큼 잘못했다는 소리를 제대로 따라 붙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