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2_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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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막사에 셋팅해 둔 화려한 침상 위에서, 슈발츠는 알몸의 노예들을 주무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고민은 테티르가 요청한 융자였다.
테티르 왕실의 요구는 사실 좀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20만 GP를 연 3%~5%의 저리 융자로 달라니). 물론 테티르는 면밀한 재건과 지불 계획을 확실히 하긴 했다. 하지만(그리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지만) 테티르 왕실이 바알스폰 4인방과 전쟁을 치르면서 [고라이언의 양자]라 알려진 영웅을 죽이기 위해 특공대를 파견했던 무리수를 두어 안 잃어도 될 소중한 전력을 잃었던 이야기를 들어 아는 슈발츠는 테티르 국왕 부부의 정보력과 그들의 재건계획 자체에 약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또한 로드 얼라이언스의 군주 중 한명이자 미스트라 칠공주의 일원인 알루스트리엘 마님이 소위 [연대 보증]을 서겠다는 언질을 했다. 알루스트리엘은 중요한 고객이고 그녀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드 얼라이언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알루스트리엘이 끼어듦으로써 가볍게 거절하고 넘기기엔 너무 무거운 제안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밤중 까지 융자를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노예들을 희롱하고 있던 슈발츠의 텐트에 손님이 방문했다.
알몸의 노예들을 희롱하면서도 슈발츠는 이미 접근하는 자의 기척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노예들을 희롱하면서 다시 엘프의 모습으로 변신했을 뿐. 그리고 그가 엘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본 노예들도 누군가 접근해 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름대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놀란 것은 [손님] 쪽이었다. 경비병들의 눈을 따돌리고 켐핑장에 숨어든 이 손님은 슈발트의 텐트의 휘장을 과감하게 열어제친 것 까진 좋았지만, 그 눈앞에는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하나의 음탕한 하렘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멈추어섰다. 두르나, 플로라 젤로나는 하나같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슈발츠의 옆에 몸을 바싹 붙인 채로 이 새로운 침입자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 위병들의 제지를 받지 않고 내 텐트까지 찾아 왔다면 분명 어딘가의 훌륭한 집의 자제이거나 이런 창시합의 방문자들에 관한 사항을 잘 아는 외부인일 터. 그대는 어느 쪽인가? "
슈발츠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청원자는 자신이 텐트를 잘못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엉거주춤하던 자세를 고쳤다. 눈빛이 맑고 태도가 당당한 그 청원자는, 비록 얼굴엔 검댕이 묻고 남루한 남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 미모를 가리기엔 역부족으로, 슈발츠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녀가 훌륭한 미모를 소유한 훤칠한 키의 인간 여성인 것을 알아보았다.
" 거짓을 고하지 말라. 나는 그대가 아는 것 보다 인내심과 자비심이 부족할지 모른다. "
다시 한번 슈발츠의 경고가 발해지고, 침대에서 느긋하게 일어선 두르나가 속이 훤히 다 비치는 비단 잠옷을 입고 검을 들고 일어설 무렵, 그녀는 마음을 정했는지 무릎을 꿇었다.
" ...그라나다를 도와 주십시오! "
그라나다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슈발츠는 좀 더 긴 설명이 필요했지만, 일단 첫 관문은 넘은 셈이었다.
그라나다는 테티르의 동쪽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개선의 산악 북쪽에 있는 크지 않은 준 독립 영지였다. 혈석이 산출되는 광산을 중심으로 한 광업과 목축을 주 산업으로 하는 인구 수 700명 정도 되는 이 작은 읍과 거기 딸린 성은, 모험가로 출발해 자신의 이름을 딴 성을 세운 그라나다 가문이 테티르 왕가의 임명을 받아 3대 째통치하고 있었다. 슈발츠에게 그라나다의 구원을 요청한 발레리아 벤도른(Valerya Bendorne)은 이 그라나다의 영주 가문을 섬기던 기사 가문인 벤도른 가문의 상속녀였다.
바알스폰 4인방이 테티르 동부 내륙과 개선의 산악 인근을 유린하는 동안 그라나다는 정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교역로가 끊어지고 고립되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은 데다, 다른 소소한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 시절은 지나가고 재건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하지만 재건을 빌미로 한 과중한 징세 때문에 주민의 반란이 일어났다. 처음에 그 반란은 그저 몽니를 부리는 수준의 것이었기 때문에 영주측에서도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반란이 장기화 되는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서 인망이 있었던 벤도른 가문의 당주이자 기사인 하거스 벤도른(Hargus Mensaline)이 시민군의 지도자로 추대되면서 반란은 본격적인 양상을 띄어 갔다.
당시 그라나다를 다스리던 영주는 레이디 에바 그라나다(Lady Eva Granada)로, 그의 아들 오를로(Orlo)가 충분히 자랐음에도 고집스럽게 통치권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자칭 [반역 파벌]의 요구에 동의하는 것을 거부했고, 무력으로 영민들을 진압하길 원했다.
레이디 에바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작은 규모의 트롤 용병대를 고용했다. 트롤 용병대의 도움을 받은 진압군은 빠른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는 레이디 에바 그라나다가 아니라, 베인(Bane)의 숭배자인 트롤 용병대의 대장, 워 트롤 벤둘(War troll Vendool)이었다.
벤둘과 그의 트롤 용병대는 벤도른도 레이디 그라나다도 죽여버리고 이 영지를 차지해버렸다. 그는 그라나다의 마을과 성을 거점으로 자신의 군대를 모으고 있으며, 곧 다가올 봄에 베인의 이름아래 자신의 트롤과 몬스터 휴머노이드 군대를 이끌고, 인근의 영지와 마을을 침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왜 테티르 왕실 대신 나에게 탄원하는 것인가? "
확실히 테티르 왕실은 자기 앞가림에 바쁘고, 직할령도 아닌 그라나다에까지 병력을 투입할 여력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과는 상관 없이, 그라나다의 문제는 일단 테티르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트롤 용병대가 한 영지를 뒤집었다 해도 테티르 왕실에서 정식으로 토벌대를 보내지 않는 한, 남의 국내 사정에 슈발츠가 이래라 마라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 벤둘은 행정관 게힌샤(Jehynsha The Reeve)씨를 비롯해 많은 마을 주민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고 그들을 협박해서 영지가 평소처럼 잘 돌아가는 것 처럼 가장하고 있어요. 정식 서훈을 받은 기사도 아니고 고위 귀족도 아닌 저 하나의 탄원 만으로 군대는 움직이지 않아요. 하지만 상인으로써 젠타림을 물리쳤던 내해의 대공 께서라면!... "
[내해의 대공]이라는 미사여구가 더 나오면 두드러기가 돋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슈발츠는 손을 들어 발레리아의 말을 멈추었다.
" 도와 주지. 단 조건이 있다, 여기사여. "/슈발츠
" 저의 능력이 닿는 한 무엇이라도!... "/
슈발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당연히 그대의 능력 범위 내의 일이며, 간단한 일이다. "
이튿날, 마상 창시합 3회전을 관람하기 위한 귀부인들 사이엔 여자답게 깨끗히 단장하고 젤로나의 옷을 빌려 입은 발레리아가 있었다. 슈발츠가 영지의 해방 조건을 걸기 전에 그의 손님이 되어 나머지 사흘동안 마상 창시합을 관람하고, 길안내를 해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그라나다의 문제가 그녀는 안절부절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칼자루를 쥔 것은 슈발츠였다.
이날 슈발츠의 군마로는 샘슨이 봉사했는데,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을 아돈에게 듣고 매우 고무되어 있는 한편 질투도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다.
" 내가 그 덜떨어진 [고자]녀석(주 : 아돈을 말함. 그 뿔의 끝이 약간 깎여 나가 있기 때문이다. 샘슨은 뿔은 끝이 약간 휘어 있어 [임포]라 불리운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소! "/샘슨
거칠게 콧김을 내 뿜으며 앞발로 땅을 두드리는 그 모습은 실로 점잖은 [침착하고 조용한 처녀의 보호자]라는 이미지의 유니콘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날 슈발츠는 젤롯2호기 대신 일반적인(?) 미스릴 완전 판갑으로 무장하고 나갔는데, 금 장식이 된 그 갑옷은 샘슨의 약간 금빛이 도는 체모와 잘 어울렸다. 그 위에 금실로 V가 수놓아진 검은 비단 휘장을 두르자 그 그림같은 모습에 노예들은 물론 다른 관람자들 모두 넋을 놓고 보았음은 물론이었다.
기세가 오른 군마 덕에, 슈발츠는 3회전과 4회전도 무사히 넘겼다. 이튿날은 검술, 궁술 시합의 본선이 있는 날로 마상 창시합은 쉬었기 때문에, 슈발츠는 내키지 않아 하는 발레리아를 시내의 살롱으로 데려가 옷을 사 입혔다.
" 옷이 날개로군. 잘 어울리는데. "
" 아... 이런 차림은... 부끄럽습니다. "
기사 집안에서 자라 어릴때부터 무예 단련 이외엔 관심이 없던 발레리아는 드레스를 입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명한 영웅인 슈발츠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 주고 옷을 사준다는 사실이 싫지는 않았다. 다른 노예들도 발레리아의 미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발레리아는 그제사 비로소 슈발츠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테티르 왕성의 번화가를 돌면서 즐기고 논 슈발츠 일행은 저녁이 되어서야 발레리아를 앞세우고 숙소인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도 없는 발레리아를 위해 슈발츠는 여분의 천막 하나를 더 치게 했다. 평소라면 여관을 잡아 줬을 테지만, 이미 여관이 만원이라 그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상 창시합의 결승전이 있는 날, 슈발츠는 장식이 없는 아다만틴제 완전 판갑을 입고 그날 소환된 아돈에게도 장식이 없는 붉은 비단 휘장을 씌웠다. 상대는 테티르 최고의 기사라는 평이 자자한 블랙쏜(Llachior Blackthorn; 무질서 선 인 간 남성 파이터 13) 공작이었다. 그는 흘림세공이 잘 되어 있는 강철 판금 갑옷을 입고 검고 덩치가 큰 북부산 준마에 타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콰아앙!
첫 챠징을 교환했을 때, 둘은 평수를 이루었다. 백기가 오르는 것을 보며 슈발츠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내구력 싸움으로 가면 슈발츠가 이기지만, 그는 이 친구라면 우승을 [양보]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테티르 왕실 주최의 시합이다. 손님인 자신이 우승해서야 테티르측의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거래를 하러 와서 힘자랑만 하면 될 장사도 안된다. 적당히 상대해 주는 것은 결승전에 올라온 것 만으로 충분했다.
콰아앙!...
두번째 챠징에서 슈발츠는 일부러 창을 빗나가게 했다. 아다만틴 판금 위로 두드려붙여진 랜스의 일격은 슈발츠의 상반신을 휘청이게 할 만큼 강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챠징에서도 서로 비김으로써, 슈발츠는 우승을 양보했다. 블랙쏜 남작은 테티르의 영웅이다. 그가 우승하자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 환성을 들으며 공작은 말을 타고 슈발츠와 지나치면서 멈추어 섰다.
" 내 마상 창술 실력은 마릴렌 공작에 비해 손색이 있소이다. 설마 사정을 봐 주신 게요? "/블랙쏜 공작
" 아니, 이번엔 운이 안좋았소. 멋을 부린다고 새로 만든 면갑이 시야를 가렸거든. 다음엔 이런일이 없을 거요. "/슈발츠
슈발츠의 허세에 공작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두 기사는 악수를 나누며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갔다.
준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왕실 트로피를 받은 슈발츠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 왔다. 연회가 남아 있었지만, 슈발츠는 발레리아의 일을 우선시 해서 부상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고, 대신 젤로나가 남아서 연회에서 선방하기로 했다. 나머지 노예들과 발레리아는 이미 여행 준비가 끝나 있었고, 소환된 아돈과 마법으로 불려진 유령 준마 2마리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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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부실함. 으음, 역시, 이 부분이 부실해. 좀 더 므흣하게 했어야 했어... 두르나를 좀 더 벗기는 것이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