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유희> - 11~15장
11장. 첫 번째 노예 (1)
제잘지민이 가짜를 제압한 지 3일이 지났다. 그 날 저녁, 그는 자신의 처소에서 비영대주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럼 본가의 일은 완전히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소가주님! 본가에 스며든 혈교의 간세들은 모두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제갈세가 뿐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도 틀림없이 그들의 입김이 닿아있을 것이다.”
제갈지민의 말에 비영대주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의문이 떠 올라 있었다.
‘대체 지난 4년간 소가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총관과 가짜 소가주를 제압한 뒤 온갖 고문을 총동원 했으나 그들의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런데 제갈지민이 나서자 단 한 시진 만에 그들은 모든 것을 토설했다. 어떻게 보면 실로 허무한 결말이었다.
한편 제갈지민은 제갈지민대로 고민이 있었다. 처음에 가짜를 봤을 때, 그자의 모습은 확실히 역용을 한 것도, 인피면구를 쓴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였다. 9써클의 마법, 폴리모프를 응용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해 혈교에 최소한 9써클 유저 이상의 대마도사가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겨우 6써클 유저에 다다른 그로써는 실로 까마득한 경지 ……. 만약 제갈지민이 지금 그를 만난다면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당할 것이다.
고문이 안 통한다는 보고를 받고 제갈지민은 손을 쓰기 전에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 모두 정신적인 금제가 가해져 있었다. 그도 풀 수 없을 정도의 고위 정신마법이었다. 최소한 6써클 마스터 이상의 인물이 손을 썼다는 의미였다.
만약 제갈지민이 평범한 보통 마법사였다면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의 육체는 인간이었으나 영혼은 뱀파이어 로드였다. 뱀파이어 특유의 매혹안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인간의 정신마법과 차원이 달랐다.
비록 제갈지민이 박쥐나 안개 등으로 변하는 변신능력은 인간의 몸을 가지면서 쓸 수 없었지만 매혹안은 그대로였기에 둘의 정신마법을 깨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대략적이나마 혈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마 9서클에 이르른 그자가 바로 혈교교주겠지? 그런데 왜 직접 나서지 않고 이렇게 숨어서 일을 꾸미는 걸까?’
9서클 유저라면 무림고수에 비하면 현경 초입과 거의 맞먹는다. 만약 마스터라면 현경이라할지라도 전력을 다해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지민이 무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현 무림에 현경에 달하는 초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혈교에 9서클 마도사가 있다는 말은 만약 혈교가 전면전으로 나올 경우 중원무림은 설사 정사가 연합한다고 해도 일패도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왜 그자는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는단 말인가? 제갈지민은 그런 의문을 가지며 가짜와의 심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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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진짜 이름이 뭐냐?’
‘강문영이다.’
‘혈교 내의 네 위치는?’
‘오공자 중 막내이지.’
‘오공자라는게 뭐지?’
‘교주의 후계자를 의미한다.’
‘그럼 소교주란 말인가?’
‘그게 아냐. 그러니까 …….’
강문영의 말에 의하면 혈교에는 먼저 수뇌인 혈교주가 있고, 그를 보좌하는 좌우호법이 있다. 그리고 오대장로가 있고, 교내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하는 총사가 있다고 했다. 오공자란 교주가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는 후기지수들을 일컫는데, 이들을 뽑는 것은 오대장로와 총사의 권한이다.
교주는 그들이 뽑은 후보들을 보고 무공에 대한 자질, 교에 대한 충성심, 또는 교에 세운 업적 등을 고루 살펴 최종적으로 다섯 명을 고른다. 그리고 그들 다섯 명이 자유 경쟁하여 최후로 남는 자가 정식으로 소교주로 임명되며, 한 번 소교주로 정해지면 다른 네 명은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 경쟁이라면 ……, 서로 척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약육강식, 강자지존이 본교의 제일철칙이다. 암수를 썼다고 해도 이기기만 한다면 묵인한다. 단 외부의 세력을 본교에 끌어들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본교에 끌어들이는 것은 금지한다 ……. 그 말은 …….’
‘즉 다시 말해 교내가 아닌 밖에서 외부세력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것도 일종의 차도살인지계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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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의하면 현재 북리세가의 소가주로 행세하는 자는 혈교오공자 중 삼공자다. 나머지 삼대세가에도 혈교의 간세들이 있기는 하지만 피라미에 불과할 뿐, 그 자만 제거한다면 …….’
상념에 잠기던 제갈지민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는 전음으로 비영대주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비영대주의 얼굴에 경악과 감탄하는 기색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묘책이긴 합니다만 ……, 소가주께서 다소 위험해지지 않을 지 …….”
“거기에 대한 대비책도 생각 중에 있습니다. 제 말에 따라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속하는 이만 …….”
비영대주는 공손히 인사를 한 뒤에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제갈지민은 눈은 감고 다시 상념에 잠겼다.
‘우선 오대세가부터 장악한다. 그리고 다음은 구파일방 ……. 때마침 혈교가 나타났으니 명분은 충분하다. 제2의 정사대전을 일으켜 양측의 세력을 최대한 소진시킨다. 결국 무림에는 오직 나의 추종세력만 남게 되겠지. 후후후 …….’
그가 두 눈을 뜨자 순간적으로 혈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문득 그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누군가 이 곳으로 오고 있다. 살기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적은 아니다. 게다가 굳이 인기척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군.’
잠시 뒤 문이 열리고 홍의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를 본 제갈지민이 빙그레 웃었다. 여자는 다소 미심쩍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그에게 접근했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작은 누님. 오랜만이군요. 4년만인가요?”
“이번에는 ……, 진짜겠지? 진짜 우리 민이지?”
“놀라셨겠지요? 틀림없는 진짜 누님의 동생, 제갈지민입니다.”
“믿어도 돼?”
“이미 아버님도 저를 진짜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합니까?”
“그렇구나 …….”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홍의여인, 제갈소소의 두 눈에 순간 물기가 맺혔다. 다음 순간 그녀는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와락!’
“흑흑흑, 미안해, 정말 미안해! 4년 전 내가 억지로 너를 …….”
“누님 …….”
훌쩍거리기 시작한 그녀를 제갈지민이 부드럽게 다독였다. 4년 전 그 날 직후, 그녀는 죄책감을 좀처럼 떨치지 못했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동생이 납치된 것이다. 물론 난생 처음으로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는 바람에 공황상태에 빠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12장. 첫 번째 노예 (2)
그 뒤로 그녀는 변했다. 반쯤 장난처럼 익히던 무공을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수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갈현은 그런 그녀를 남해검문으로 보냈다. 오대세가의 능력으로 그녀를 검문의 제자로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해검문으로써도 제갈세가와 친문을 맺는 것은 분명 이득이 되는 것이었기에 기꺼이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노력 탓인지 아니면 본래 그녀가 검법에 재능이 있었던 탓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단연 발군의 실력을 가지게 됐다. 1년 전 쯤 검문의 장문인은 그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쯧쯧쯧, 저 아이를 오년만 일찍 찾았어도 검문 역사상 최강의 검후를 탄생시킬 수도 있었는데 ……. 아깝구나 …….’
그로 인해 그녀는 공게롭게도 한 번도 가짜 제갈지민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인편으로 소식을 들었을 뿐 ……. 약 한 달 전쯤 드디어 그녀가 수련을 마치고 검문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짜는 마침 오룡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세가를 떠난 직후였다.
“누님도 벌써 4년 전 일인데 아직도 맘에 두고 계세요? 이미 끝난 일이예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는 멀쩡하다구요.”
“하지만, 하지만 …….”
여전히 훌쩍거리며 웅얼거리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제갈지민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부담되시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부탁? 뭔데?”
<제 ? 눈 ? 을 ? 보 ? 세 ? 요.>
“응?”
부드럽던 그의 음성이 다소 달라졌다. 뭔가 묘한 느낌을 받은 제갈소소가 무심결에 그의 눈을 본 순간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제갈지민의 두 눈은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두 개의 태양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 이건 ……, 아아 …….’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고개를 돌리기는 커녕 눈도 감기지 않았다. 순식간의 그녀의 의식은 아득히 멀어졌다. 마치 깊은 나락으로 가라앉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초점을 잃고 몽롱한 표정이 되자 그의 얼굴에 득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나이에 이 갑자의 내공을 지닌 절정고수가 된 것은 칭찬해 주지. 그러나 그 정도로 내 매혹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이건 원래 뱀파이어 일족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거든. 게다가 나는 로드라고.”
그는 부드럽게 한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다만 멍하니 그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피식 웃은 그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좋아, 시작해볼까? 내가 누구지?”
“……, 저의 ……, 주인님 …….”
“너는 누구지?”
“……, 주인님의 ……, 충실한 ……, 노예 …….”
“솔직히 말해봐. 평소 제갈소소는 동생인 제갈지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
“그게 ……, 단순한 ……, 동생이 ……, 아닌 …….”
‘역시 그랬군. 어쩐지 너무 쉽게 매혹안에 걸렸다고 생각했어.’
뱀파이어들이 쓰는 매혹안은 성직자들을 제외하고 꽤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소드마스터나 7서클 이상의 대마도사라면 다소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예외가 있을 수 있는데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제갈지민이 생각해보니 그가 뱀파이어 로드로 각성하기 전에도 무의식적으로 매혹안의 능력이 미약하게나마 발휘되고 있었고 그래서 은연중에 그의 누이들이 그에게 동생 이상의 감정을 품은 것 같았다.
“확실히 ……, 그 날 밤 그녀의 행위는 어쩌면 ……. 재미있군.”
빙그레 미소를 지은 그가 다시 그녀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좋아, 남해검문에서 혹시 너를 시기하는 네 또래의 여자는 없어? 너와 미모나 무공이 비슷한 수준으로 ……. 아니면 보다 뛰어나도 상관없다.”
“있어요 ……. 아무래도 ……, 소문주가 …….”
“소문주가 여자라고? 자세히 애기해 봐.”
“사저는 나보다 두 살 위예요. 그녀는 …….”
빙옥검봉 냉하상.
남해검문의 소문주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강호오봉 중 하나라고 했다. 강호오봉은 아무나 드는 것이 아니다. 무공이나 가진 재주, 외모와 배경이 모두 단연 돋보이는 여인 중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을 가르켜 강호오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냉하상 역시 오봉 중 하나로 현 남해검문주의 수제자다. 문제는 그 배경 탓인지 아니면 무공에 대한 자질 탓인지 더 없이 오만하고 방약무인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추종하는 사내는 많아도 그녀가 마음을 준 사내는 없어 빙옥검봉이라고 불리고 있다.
‘분란의 싹은 미리 제거해야지. 우리 작은 누이를 위해서 그녀를 교육시킬 필요가 있겠군. 더불어 남해검문을 손에 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
사실 냉하상은 제갈소소를 자신의 유일한 대적자라 여기고 있었다. 분명 검문에 입문한 것은 자신이 그녀보다 몇 년 위이거늘 무공수위를 비교해 보면 거의 그녀에 버금가는 것이다. 만약 제갈소소가 천성이 밝고 사교성이 좋아 검문 내에 많은 동조자를 얻지 못했다면 그녀는 지금쯤 사문에서 완전히 외톨박이로 전락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금의 검문은 소문주의 세력과 소소의 세력으로 완전히 둘로 분열된 상태라는 것이다. 심지어 남해검문주도 미처 손을 댈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래, 잘 알았어. 가까운 시일 내에 그녀를 만나게 해 줘. 네가 아무리 그녀와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예, 주인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이는 매혹안의 권능으로 그녀가 완전히 그의 노예가 됐다는 의미였다. 이제 제갈지민이 아닌 다른 누구도 그녀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얼굴에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확실히 각인을 새기는 것이 좋겠지? 벗어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전혀 망설임 없이 옷깃에 손을 가져갔다. 흘러내리는 의복과 함께 드러나는 그녀의 속살은 실로 눈부셨다. 비록 속옷에 가리웠다지만 드러난 부분만 봐도 절로 욕정이 솟아날 정도였다.
“속옷도 벗어.”
주저함 없이 그녀는 속옷 역시 단번에 벗었다. 멍한 표정으로 치부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놀랍게도 제갈지민의 두 눈은 얼음장처럼 냉정했다. 수천년을 살아온 그에게 이 정도 욕정 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 조금 아깝기는 하군. 친남매만 아니었어도 기꺼이 너의 처녀를 가졌을 것이다.”
그는 거침없이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그의 우람한 나신이 드러났다. 그는 다가가 그녀를 부드럽게 안았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없이 그대로 그에게 안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제갈지민의 몸으로는 이것이 그의 첫키스였다. 그러나 능숙한 테크닉으로 그는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으음 …….”
입술을 떼자 저절로 나직한 비음이 새어나온다. 뱀파이어의 매혹안은 인간들의 현혹마법이나 이곳 중원의 여느 섭혼술과는 조금 다르다. 이성은 마비되지만 본능은 전보다 오히려 발달되는 것이다.
제갈지민은 그녀를 안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그대로 저항없이 뒤로 쓰러졌다. 그가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자 거의 반사적으로 그녀의 두 팔이 그를 안았다. 수천 년 동안 그가 안은 여인 역시 수천 명이 넘는다. 자연 방중술이라면 단연 고금제일이라 자부하는 그다.
그가 그녀의 귓바퀴를 가볍게 깨물다 살짝 입김을 불자 그녀가 작게 움찔거렸다. 그의 한손은 그녀의 유방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다른 손은 허벅지를 만지고 있다. 그러다가 서서히 손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워낙 손놀림이 교묘한 탓인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서서히 상기된 빛이 떠오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제갈지민이 빙그레 웃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제갈지민은 그녀에게 침대 밑으로 내려가게 한 뒤에 그녀의 눈 앞에 자지를 내밀었다. 이미 그의 자지는 잔뜩 성이 나 있었다. 검붉은 빛을 띄는 그것은 혈관이 드러나 있어 어떻게 보면 다소 흉측해 보였다. 그는 그것을 당당하게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자, 주인의 명이다. 어서 봉사해라.”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의 자지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입을 귀두에 대었다. 그녀의 입 속으로 점차 자지가 들어갔다.
“음음 …….”
“아니, 머금지만 말고 이렇게 해 봐. 그리고 …….”
어디서 들은 것은 있었는지 일단 그의 성기를 입에 물기는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가르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의 동작이 점점 능숙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물건이 워낙 커서 뿌리까지 삼키지 못하고 반쯤 남자 그녀의 두 손이 다시 그의 지시에 따라 쓰다듬기 시작했다. 점차 그는 절정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한 점의 욕정 없이 냉정했다. 그는 흔들림 없는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좋아, 잘 들어. 이제 내가 싸면 전부 삼켜라. 그리고 그 맛과 냄새를 기억해. 너에게 있어 그것은 최고의 진미를 느끼게 할 거야. 그것이 네 유일한 주인의 표식이다.”
그녀는 그의 물건을 입에 문 채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마침내 그는 사정했다. 그의 말대로 그녀는 그대로 삼키며 짐짓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건을 입에서 꺼냈다. 잠시 황홀한 표정으로 물건을 쳐다보던 제갈소소는 다시 정성스럽게 자지를 핱아 뒤처리를 했다.
“잘 했어. 상으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지.”
제갈지민은 그녀로 하여금 침대 위에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 위에 걸터 앉았다. 그는 눈 앞에 있는 두 개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제갈소소가 나직이 비음을 흘렸다.
“으음 …….”
“후후후, 기다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
그는 다소 가까이 다가가 젖가슴 사이에 자지를 끼었다. 그리고 힘차게 자지를 젖가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다소 흥분되어 있던 제갈소소는 그의 행위로 인해 이내 달아올랐다. 그녀에게서 다시 비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으응, 음 ……, 주, 주인님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갈지민의 육체는 이제 약관의 청년이지만 실제로 영혼은 수천 년을 묵은 뱀파이어 로드다. 그 오랜 세월을 겪으며 지낸 여인도 셀 수 없을 정도고 그녀들과 갖가지 성행위를 즐겼다.
그렇게 연록이 쌓인 그의 능숙한 기교를 숫처녀인 그녀가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의 얼굴이 점차 상기되면서 몸이 조금씩 떨렸다. 그의 행위로 인해 그녀 또한 절정으로 치닫는 것이다. 그리고 …….
“자, 받아!”
“하아아악! 아아아 …….”
마침내 그가 다시 사정했다. 그의 정액이 그녀의 얼굴과 상반신을 질펀하게 덮는 순간, 그녀의 몸이 빳빳하게 굳으며 그녀의 비소에서 순간적으로 애액이 솟았다. 그와 동시 그녀 또한 절정에 이른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녀는 두 눈을 반쯤 감고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한 묘하게 선정적이었지만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그녀의 몸에서 일어섰다. 잠시 쾌락의 여운에 잠겨 얼굴에 묻은 정액을 손으로 닦아 핥아 먹던 그녀는 그를 따라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가 말했다.
“우선 몸부터 닦아라. 뒷정리도 깨끗이 하고 …….”
그녀는 그의 지시대로 행위의 흔적을 깨끗이 치웠다. 그리고 목욕을 한 뒤 다시 옷을 입고 멀쩡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섰다. 그의 두 눈이 다시 핏빛으로 빛나자 그녀의 두 눈이 다시 몽롱해졌다.
“이제 너는 네 방으로 돌아가라. 무공을 써도 좋으니까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행동하는 거다. 그리고 그대로 잠들게 될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평상시처럼 행동하게 될 거고 내가 별도의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오늘의 일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거다. 알겠지?”
“……, 예, 주인님 …….”
그녀는 몽유병자 같은 움직임으로 조용히 그의 방을 나갔다. 제갈지민은 침대에 누우며 빙그레 웃었다. 이제 그녀는 완벽한 자신의 노예였다. 그건 후일 정인이 생겨 혼인을 하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명령이면 부친이든 신랑이든 전혀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의 매혹안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
‘뭐, 나는 그런 극단적인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지만 ……, 그래도 그녀의 영혼을 제압해 둘 필요는 있겠지.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
13장. 뜻밖의 방문
“헉헉, 지독한 놈들 …….”
사내 하나가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봉두난발한 머리나 입고 있는 누더기로 미루어 개방제자로 보였다. 겉보기에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뿐만 아니라 숨결도 고르지 못한 것이 내상까지 입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사내는 멈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어떻하든지 개방 총타까지 가야 …….”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뒤이어 들려온 음성, 그리고 눈 앞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히며 멈춰섰다. 빛이 사라지고 방금까지 빈 공간이던 곳에 서너 명의 회의복면인이 나타났다. 그는 나직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모든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했거늘 …….”
“크크크, 한 번 우리와 만난 이상 세상 끝까지 간다 해도 너는 결코 우리 손을 벗어날 수 없다.”
개방 제자라면 정보수집과 추적술은 당연히 기본이고, 따라서 반대로 추적을 따돌리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내 역시 쫒기는 와중에 나름대로 자신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면서 도주했는데 저들은 너무도 간단히 자신을 찾아낸 것이다.
‘추적향 같은 것을 썼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럼 역시 저들 특유의 사술인가? 제길,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잔꾀부릴 생각 말고 순순히 우리를 따라가자. 그러면 고통은 없을 것이다.”
“어림없다, 차앗!”
그의 판단으로 시간을 끌다가 또 다른 추격자가 합류하기라도 하면 점점 불리해질 뿐이고, 차라리 선공이 낫겠다는 판단 아래 기합과 함께 내심 전력으로 장법을 펼쳤다. 그러자 복면인들의 두 눈이 기이하게 빛났는데, 그것은 조소였다.
“실드!”
‘콰앙!’
그의 장세는 복면인들의 앞에 갑자기 펼쳐진 기이한 투명한 막으로 인해 퉁겨졌고 그는 충격으로 서너 걸음 물러서야 했다. 덕분에 내상이 심해진 것인지 한 움큼의 피를 토한 뒤 그가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난데없이 빛줄기 하나가 그의 코 앞에 닥쳐왔다. 황급히 피하려 했으나 워낙 갑작스러워 명치에 맞을 것을 우측 어깨로 대신한 정도였다.
“크윽!”
“그 거리에서 그 순간에 매직미사일을 빗겨 맞다니 제법이다만 끝났다. 슬립!”
어깨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그대로 쓰러지는 그에게 그들이 다가왔다. 이어서 그 중 하나가 그의 얼굴 앞에서 한 손을 펴자 그의 의식이 저절로 흐려졌다. 쓰러진 사내를 보고 또 다른 회의복면인이 의문점을 발했다.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왜 굳이 번거롭게 …….”
“지부장님의 명이다. 이놈을 심문해 배후를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보나마나 개방이잖아?”
“그렇다고 개방과 전면전을 치를 수는 없다. 아직은 본교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돼.”
“제길! 쥐새끼 하나 때문에 번거롭군.”
“그만 투덜거리고 녀석을 데리고 돌아가자. 어서 이리 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3번째 복면인이 땅에 뭔가를 끄적이더니 작업이 끝났는지 일어서며 그들을 불렀다. 땅에는 중원에서 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복면인들이 모두 그림 위에 서자 그림을 그리던 자가 뭐라 중얼거리더니 힘찬 음성으로 외쳤다.
“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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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밝군 …….”
제갈세가의 한처, 백의청년이 한참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두 말할 것 없이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지민이었다. 제갈소소를 자신의 노예로 만든 그는 다음 계획을 위해 내일 다시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북리천, 아니 혈교오공자 중 삼공자 …….”
다음 표적을 생각하던 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희미하게나마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제갈세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침입자? 그들은 아니다. 살기가 없어. 게다가 같이 나는 이 냄새는 …….’
인기척은 바로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침입자가 자신의 방 창문을 넘으면서 누구인지 알자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뜻밖이라면 뜻밖의 인물 ……. 어디서 당했는지 피투성이였다.
“헉헉헉, 몇 가지만 물어보자.”
“물어 보십시오.”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가 어디냐?”
“장안에 있는 만전루이지요.”
“그 때 네가 무슨 음식을 시켰지?”
“정확하게는 식사 중에 선배님이 오셨지요. 요리 종류는 …….”
“그 때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아느냐?”
“먼저 선배님이 음식을 남기면 벌받는다고 하시면서 바로 제 음식을 뺏아 드셨고 …….”
한참 설명하자 그제야 사내, 오통달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어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솔직히 도박이었는데 다행히 성공했군. 운기조식을 할 테니 호법 좀 부탁한다.”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이제 안전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조식에 들어가자 제갈지민의 얼굴에 이채가 서렸다. 뒤이어 고개를 한 번 까닥이자 바로 비영대주가 나타난다.
“세가 내의 경비를 강화하세요. 특히 제 숙소는 당분간 잡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존명!”
비영대주가 사라지자 그는 심유한 눈으로 조식하고 있는 오통달을 바라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통달이 혼자 오지 않았다는 것을 ……. 제갈지민은 그에게 한 손을 내밀며 나직이 주문을 외었다.
“디스펠!”
‘파직!’
그의 마대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걸 본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추적마법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항상 매고 있던 마대에 추적마법을 쓰려면 지인이 아니고는 불가능 ……. 결국 개방에도 그들의 손길이 …….’
“인져빌리티!”
주문을 외우자 지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는 곧바로 신법을 써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멈춰있던 기척을 감지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의 얼굴은 다소 굳어있었다.
‘역시 추적자가 있었군! 아직 내가 드러나면 안 돼. 모두 제거해야 한다!’
14장. 침입자
한밤중. 어둠에 잠겨 있던 제갈세가 앞에 섬광과 함께 복면인들이 나타났다. 수십 명의 흑의복면인들 중 회의를 입고 있는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유독 그만은 복면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가 수뇌인 듯 보였다.
중년사내는 품 속에서 수정구 하나를 꺼내어 잠시 살펴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수정구를 품 안에 넣고 세가를 가르켰다. 그걸 본 복면인들은 그대로 세가의 담장을 넘으려고 했다. 바로 그 때였다.
“크윽!”
“잠깐, 적이다. 다들 경계하라!”
복면인 하나가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자의 이마에 비수가 꽂혀 있었다. 중년인이 주위를 주자 복면인들이 일제히 검을 빼들었다. 중년인은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때 모두에게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감히 본가를 무단으로 침입하려 하다니 ……. 각오는 되어 있겠지? 네놈들은 아무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곤란하군. 잘못 하면 오공자님의 정체만 드러날 것 같고 …….’
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로 하고 나직이 주문을 외웠다.
“마나 디렉트!”
탐지주문으로 비영대의 매복위치를 알아낸 그는 재빨리 메시지 주문을 사용했다. 혹의복면인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자 비영대는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됐음을 깨달았다. 이에 비영대주는 더 이상 숨어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모두 침입자를 처리해라!”
결국 비영대와 복면인들과의 혈투가 벌어졌다. 회의 중년인은 잠시 지켜보더니 다소 굳은 표정이 되었다. 비영대에 의해 수하들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재빨리 캐스팅을 시작했다.
“음, 매직미사일!”
수십 개의 빛줄기들이 그의 주변에 나타나더니 곧장 비영대를 향해 날아갔다. 대원들은 갑작스런 습격에도 침착하게 피하거나 마는 등 적절히 대처했으나 자연 상대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복면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크윽!”
“윽, 이 놈들이 …….”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그는 다시 주문을 외우다가 문득 살기를 느꼈다. 그는 재빨리 주문을 바꾸었다. 그의 주문이 완성되는 순간, 매서운 검세가 그를 덮쳤다.
“실드, 블링크!”
‘콰직!’
그가 만든 실드는 습격자의 일검에 부셔졌으나 결과적으로 순간적으로 검을 멈추게 했고 그에게는 그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의 신형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검은 그대로 그가 서 있던 자리를 갈랐다.
“이 놈이?”
비영대주는 흠짓하는 기색이었다. 처음에는 비영대가 다소 우세였다. 자신은 침입자의 우두머리를 잡으려 했고 수뇌인 듯한 사내를 찾는 순간 갑자기 그가 출수했고 그의 급습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그를 급습했거늘 그자는 자신의 검을 직접 맞대지 않고도 막았고 게다가 순식간에 피해버렸다. 문제는 바로 상대가 사용한 수법이었다.
‘호신강벽에 이형환위?’
반신반의하는 사이 뒤쪽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당황하며 황급히 신형을 돌리니 어린애 주먹만한 불덩이 몇 개가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사내의 득의한 얼굴이 얼핏 보였다.
“제길!”
‘콰앙!’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표정이 바뀌었다. 비영대주는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그리고 중년인은 경악과 회의로 ……. 블링크로 뒤쪽을 점한 뒤에 화이어 볼로 끝내버릴 생각이었는데 난데없이 실드가 나타난 것이다.
“누구냐?”
그는 살기를 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자신 말고 또다른 마법사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앞에 있는 비영대주의 존재를 잠시 잊는 실수를 저질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비영대주는 다시 전력을 다해 검을 내질렀다.
“이 놈이 ……, 웃!”
살기를 느껴 그제야 아차한 그는 황급히 앞을 보고 다시 주문을 외우려 했으나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당황하며 마악 입을 연 순간 검은 그대로 그의 몸을 갈랐다. 경악으로 가득찬 표정으로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홀드, 거기에 사일런스 ……, 제, 제기 방심했 …….’
분명 상대를 쓰러뜨렸음에도 비영대주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눈 앞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뭔가 ……, 순간적이나마 이 자의 몸놀림이 …….’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버렸다. 지금은 세가를 침입한 침입자들을 격퇴해야 했다. 의문점은 싸움이 끝난 뒤에 풀어도 늦지 않았다. 그는 이내 함성을 지르며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한편 복면인들은 곧 자신들의 수장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내 동요가 생겼고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동료들이 쓰러지자 남은 자들은 서로 재빨리 눈빛을 주고 받는가 했더니 돌연 큰 소리로 외쳤다.
“혈교재림!”
“군림천하!”
“아차! 막아라!”
비영대주가 황급히 명을 내렸지만 이미 늦었다. 복면인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는 가 했더니 순식간에 한 줌 혈수로 녹아버렸다. 대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주님, 모두 독을 먹고 자결한 듯 보입니다.”
“이런 …….”
혹시나 해서 먼저 쓰러진 자들을 둘러보았으나 이미 마찬가지로 혈수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비영대주가 나직이 혀를 찼다.
“하나같이 지독한 놈들이군. 진충, 피해상황을 보고해.”
“존명!”
옆에 있는 측근에서 지시하자 그가 곧 비영대원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굳은 안색으로 비영대주는 상념에 잠겼다.
15장. 도움을 청하다.
제갈지민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걸어가며 그는 상념에 잠겼다. 조금 전 그는 투명주문으로 자신의 몸을 감춘 채 비영대와 복면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물론 비영대주의 상대에게 마법을 써서 대주를 도운 것도 그가 한 일이었다. 처소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오통달이 대번 얼굴을 구겼다.
“아무리 불청객이라지만 어쨌든 손님인데 그래 차 한 잔도 없느냐?”
“차보단 이게 낫지 않습니까?”
그가 빙그레 웃으며 품 속에서 술병과 종이꾸러미를 꺼내자 대번에 그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그가 번개같은 동작으로 제갈지민에게 달려들어 물건을 빼앗았다. 종이를 풀자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오리구이가 나타났다.
“오! 역시 오대세가의 두뇌를 담당하는 제갈세가의 소주답게 똑똑하단 말이지. 흠흠! 이건 죽엽청이군.”
“많이 드십시오.”
한참 신나게 즐기던 그는 대충 식사를 끝내자 술병을 내리며 제갈지민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이제’ 제갈세가는 안전한 거냐?”
“‘지금은’ 안전합니다.”
“……‘지금은’ 그렇단 말이지 ……. 과연 그렇군 …….”
“선배님 말씀은 개방은 안전하지 않다 ……. 즉 다시 말해 믿을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 군요.”
제갈지민의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개방 제자, 그것도 한 분타의 분타주 앞에서 꺼낼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화를 내야 할 그는 묵묵히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것은 깊은 회의였다.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 너를 만난 뒤로 나는 극비밀리에 사천 분타로 협조요청을 보냈다. 네 말대로라면 오대세가를 대상으로 뭔가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었거든. 그래서 오룡지회부터 알아봤지. 그런데 …….”
사천지부에서 온 회답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만난 것이 진짜 제갈지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말 역시 믿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단순히 적의 수단이 워낙 교묘하여 미처 개방이 눈치채지 못한 것이라 믿고 속으로 사천지부의 개방제자들을 욕할 뿐이었다. 물론 사천에 연락할 때 워낙 사안이 사안이라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혹시 그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 하고 그저 대충 넘긴 것이 아닌가 하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대세가를 직접 조사했다. 그리고 제갈세가는 자신이 직접 맡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제갈세가에 한바탕 숙청이 벌어진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숙청이 소가주가 주체가 되어 벌어진 것도 알아냈다.
물론 세가에서는 최대한 감추려 했으나 그가 그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가까스로 제갈지민이 움직였다는 것 정도를 알아냈고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자위했다. 그런데 나머지 사대세가를 조사한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역시 아무 이상 없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제야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진짜로 믿는 최측근의 제자들을 시켜 이번에는 오룡지회와 사대세가를 조사한 제자들의 뒤를 은밀히 캐보았다.
그러나 뜻밖에 조사를 맡은 제자들이 하나씩 소식이 끊기는 일이 벌어졌다. 글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증발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밤, 의문의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