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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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7話 어비스 : 버리다
99.
“그 년에게서는 그 놈들의 냄새가 난다. 너희들의 냄새로 지워버려.”
“대장, 대범한데? 처음인 것 같은데……대장의 여자를 주는 건 말야.”
“잘생긴 얼굴도 아니잖아?”
녀석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이를 깨문다. 죽여야 하나?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 녀석들은 험한 꼴로 널부러져 있는 여인의 몸에 올라탔다. 그리고 성욕에 몸을 맡기고 범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버지.”
“그래.”
잠시 눈을 감고 화를 삭인다. 이대로라면 그녀까지도 휘말릴 수가 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는 동안 우리를 따라온 펠과 시엘도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다만 참담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 데려가면…….”
“필시 사고만 칠 거다. 한국에 데려갈 수는 없지.”
같은 생각이네 생각하면서 검을 꺼내어 든다. 가만히 심호흡을 한다.
“일단 저 미쳐버린 동행 녀석들부터 죽이고 시작합시다.”
하늘에서 떨어지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적당한 힘으로 원하는 타겟만을 골라 ‘참수’한다. 바람을 가르고 떨어지면서 나는 힘을 싣지 않은 검을 펼친다. 우르르 떨어지는 목들. 그리고 나를 보면서 놀라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의 소년……아니, 죄인. 녀석의 두 팔에는 나긋나긋한 여자들이 안겨 있었으나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죄가 있다면 하필이면 녀석의 곁에 있었다는 것이겠지만 그녀들의 죄를 물을 생각은 없다.
“불쌍해서 봐주려고 했건만 안되겠다. 너 같은 쓰레기는 한국에는 필요없어.”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자마자 나는 녀석의 목에 검을 겨눈다. 나름대로 1단계 각성 - 소드마스터가 된 덕분이었는지 나름대로 반응을 하려는 녀석을 힘으로 억누른다. 이것으로 녀석은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만났다는 것을 알았겠지.
“이런 짓을 벌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 뒤를 이어 아버지도 사뿐히 내려앉았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기세는 몇 명이라도 단숨에 목을 끊어버릴 것처럼 흉흉하다. 그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펠과 시엘도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들의 얼굴은 침통하다. 시엘은 준비한 모포로 남자들에게 범해지고 있던 자세 그대로 누워있는 그녀의 몸을 가려준다. 그런 뒤에야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드러난다. 필시 우리가 아니었다면 언령마법으로 백원만 녀석을 참살하려고 했겠지.
“누구냐. 넌.”
그런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몸이 굳어버린 녀석은 그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아버지도 지금은 여성의 몸. 녀석이 알아볼리는 없는가 생각하면서 쓰게 웃는다. 외견이 변했다고 해서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녀석에게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 어느 왕국의 옥좌라도 꿰어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 녀석을 죽여야 하나?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묻는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고 살았던 오대수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아니면 너를 이곳으로 끌고 온 이우진이라고 말할까? 어떻게 하면 네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의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처음보는 여자를 그렇게 지옥으로 몰아넣은 네가 말이다.”
차갑게 웃으면서 잠시 남자로 변했다가 다시 여자로 변한다. 그제야 녀석은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경악한 다음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순간 녀석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펠도 분노를 잠시 묻어두고 있는데 건방지다. 녀석의 머리카락을 베어버린다. 길게 자랐던 머리가 숭덩 잘리면서 보기 흉하게 변해버린다.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해. 나를 그렇게 몰아넣은 너희들이 끝까지 나를 죽이겠다고?”
“그건 너의 고집이었지. 여전하구나, 너의 그 아집과 독선은.”
싸늘한 검격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분노에 몸을 싣고는 크게 외쳤다. 나는 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분노할 뿐이다. 녀석의 본질이 이정도까지 일그러져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나를 향한 분노다. 녀석의 머리카락을 다시 숭덩 잘라낸다. 그의 양 팔에 안겨있던 여자들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그런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좁은 경험에 비추어 남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 속으로 일그러진 분노라도 품고 있다면 그것도 신경 쓸 바는 아냐. 하지만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남을 상처 입히는 쓰레기는 지워버리고 싶어. 너는 그런 내 마음을 알까?”
녀석의 목에 칼날을 들이민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차가운 마음으로 내 마음에 물어본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지고 남의 머리 위에 앉아서 남을 희롱하기를 즐기는 놈들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너의 눈에는 우리의 행동이 그렇게 비춰졌나? 그거 안타깝네.”
이를 드러내고 웃고 싶을 정도로 녀석의 생각은 엉망이었다. 녀석은 대체 내가 녀석을 단련시키려고 했던 것들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내가 아내들과 어머님들에 대한 음욕을 품을 수 없게 저주를 건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녀석은 왜 이렇게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것일까. 녀석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진실을 가르쳐주어서? 녀석의 추억이 짓밟힌 때문에? 알 수 없다.
“제국의 황태자 전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아래에서 짓밟힌 채 꿈틀대는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없어지신 모양이군.”
“네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겠지.”
검을 휘두른다. 녀석의 귓불에 살짝 상처가 났다.
“난 말이지. 네 놈이 싫어. 죽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싫어. 이곳에 남겨진 네 놈들의 모든 것이 싫다. 그래서 범했지. 시간만 더 있었더래도 나는 이곳의 모든 것을 부숴버렸을지도 몰라. 빼앗은 다음에는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을 주려고 했나? 거짓말하지마, 너희들이 오래 살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 긴 생을 유지하기 위해 나 같은 놈이 필요했나? 하지만 이걸 어쩌나. 나는 진원진기를 폭발시켜버려서 오래 살지 못하는데. 너희들의 긴긴 삶을 지탱해줄 즐거움은 이제 어디서 찾을 거지?”
“미친 놈.”
자신의 귓불에서 배어나오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설을 퍼붓는 녀석의 행동에 질려버렸다. 녀석이 세상을 재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자신의 힘에 대한 책임감이라거나 하는 것은 느끼고 있는 것일까?
“책임감? 네 놈들이나 느껴. 나는 남은 삶 동안 즐기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 그런데 어딜가나 왜 너희들이 따라붙는 거지? 한 세상, 거칠 것 없이 살고 싶은 것이 내 바람이다. 제발 날 내버려둬!”
그런 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약간의 이유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에 중얼거린다. 결국 녀석은 ‘힘’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힘은 곧 세상을 편히 살게 해주는 요술지팡이. 필시 고등학생이던 녀석에게 박혀있는 생각은 그것을 옳다고 판정하고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편하지 않아. 나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녀석에게 고한다.
“대학에 합격하면 편해질 것 같았지?”
“뭐?”
녀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한다. 그러면서 나는 70년대의 한국인과 21세기 초반의 한국인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70년대의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개념이 올바르게 박혀있다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녀석은 이고깽. 개념이라는 것은 약에 쓸래도 쓸 수 없을 정도로 퇴화해버린 종류의 인간이다.
“대학에 합격하면 학점 때문에 고생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항상 시험을 걱정해야 하고 학점에 고민해야 하지. 그렇게 졸업하고 나면 직장에 들어가. 직장에서는 업무실적에 치여 살아야 해. 그러다가 결혼하면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아이들과 아내를 책임져야 해. 위에서 사람들을 부리는 직업이 편할 것 같지? 물론 제정신 놓고 자신의 안락함을 찾는다면 편할 거야. 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업무에 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져있어. 웃고 싶을 때도 무표정을 유지해야 하고 울고 싶어도 웃어야 하지. 넌 세상을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결국 그 모양이야. 시궁창이지.”
“그 딴게 무슨 상관이야!”
녀석이 외친다.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쐐기를 박는다.
“말하자면 책임감이 없는 힘은 결국 폭주해서 자신까지 먹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멍청이. 그리고 또 하나 더 말하자면 그 힘이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도록. 네 놈이 날뛰어도 좋을 세상이 아니다. 여기는.”
“내 세상이 아니잖아.”
“하지만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지. 대지를 밟고 호흡하면서 살고 있다면 최소한의 윤리와 예의는 보여라. 쓰레기.”
검을 들여 옆면으로 녀석의 머리를 후려친다. 한 방에 죽이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문득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치를 떨던 광경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악몽 속의 그 광경. 잠시 분을 삭이며 잊으려 노력한다. 내 마음 속의 잔혹함이 녀석을 그렇게 만들라고 외치고 있었다. 끝내 참아낸다.
“빌어먹을.”
“하지만 최소한 힘에 휘둘려 너를 죽여버린다면, 너를 괴롭힌다면 너랑 같은 놈이 되겠지. 너를 위해 준비한 기연은 모두 회수하도록 하겠다. 너를 돕기 위해 들인 내 몇 달의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네 녀석이 도와주어도 좋을 정도로 좋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 정도로 만족하도록 하지. 너에 대한 판결은 이곳에 있는 마수들에게 맡기도록 하마. 네 놈이 여기에서 살아남는다면 기적일 거다. 그리고 네 놈이 살아남았다면 나에게 찾아와서 당당하게 도전해라. 최소한 힘을 죽이고 상대해주도록 할테니까.”
그의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여자들을 제니키아의 요새로 워프시키고는 절진을 해체한다. 절벽을 무너뜨리고 책자도, 드래곤하트도 회수한다. 이것으로 녀석과의 인연은 완전히 끝이다.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대응이었지만 더 얼굴을 보았다가는 녀석을 속편하게 죽여버릴 것 같다. 이것이 최선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싸울테냐?”
문득 묻고 싶어졌다. 녀석을 죽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싸우다가 녀석을 죽여버리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쓰레기 같은 놈.
“힘은 조금은 강해진 것 같지만 정신력은 예전보다 더 떨어졌구만.”
“뭐?”
“최소한 전에는 덤벼들 깡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없는 얼간이라고 하는 거다. 바보같은 놈.”
슬쩍 도발까지 해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힘을 제한하고 싸운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겠군.”
멍청한 녀석.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돌아선다. 그런 나에게 녀석이 울부짖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네 놈이 나를 살려둔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녀석의 외침을 무시하고 돌아간다. 이제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반드시 네 놈이 후회하게 해주마!”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도록 주변을 단단히 지켜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녀석을 향해 마수들이 몰려드는 것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생각한다.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 당장 할 것은 피해자를 간호하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른다. 목적지는 펠의 드래곤레어. 그곳을 향하며 아가씨들도 데리고 간다. 정말이지 피곤하다.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피곤하다. 펠의 레어에 도착한 뒤로 나는 푹 쉬어버렸다. 아버지가 오고가면서 이런저런 일을 벌이는 모양이었지만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사람이라는 것에 실망했을 뿐이다. 나 자신이 인간인데 말이다.
며칠이 지났다.
“그래, 그 아이는 어쩔 거지?”
“제가 돌볼 생각입니다. 시엘도 도와주기로 했구요.”
“그렇구나. 미안하네.”
“아닙니다.”
산골처녀A, 평범한 처녀A, 전 변태가면 등등 수많은 호칭이 있었으나 영혼이 정화되었던 덕분인지 순수하기 그지없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여인을 품에 안은 펠을 보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그녀가 험한 꼴을 당하게 해서, 그녀를 제대로 도와줄 수 없어서. 기억을 지운다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평범한 일반인의 신체를 가진 그녀에게는 큰 타격이 갈 것이다.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그 정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제가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주고 싶으니까요. 미안해하실 일은 없습니다.”
“그런가.”
파리하게 변한 안색으로 그저 눈을 감고 누워있을 뿐인 그녀에게, 그리고 우리를 어두운 안색으로 바라보는 드래곤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마치 세상 전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황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어둡고……처참했다. 사람에 대한 회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아버지.”
“응?”
나와는 달리 떠들썩하게 놀고 있던 아버지에게 문득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아버지는 내 말에 즉각 반응하면서 반짝이는 눈을 들이민다. 가만히만 있으면 청초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의 모습인데 이렇게 나오니 참……뭣했다.
“저에게 황제라는 자리에 앉을 자격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글쎄다.”
잘 모르겠다는 즉답. 아버지다운 대답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에 나온 아버지의 말에 나는 몸이 굳고 말았다.
“자격 그런게 무슨 상관이냐. 선전만 잘하면 되지.”
“하아?”
“나치독일의 어느 인물이 그랬잖아? 선전이란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여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대중은 언론 내용을 스스로 분석할 줄 모르며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중의 의견이란 누군가를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야. 다시 말하자면 선전을 잘하면 민중의 너의 편이라는 거지.”
“이거보세요.”
히죽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기가 막혀버린 나는 머리를 싸매 쥐었다. 오래간만에 진지해지나 싶었더니 이런 식이다.
“고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더라도 잘 윤색해서 선전해버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못할……꺄앙♡”
“당장 남자로 돌아가!”
일단 나부터가 여성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 제발 아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어주세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들이랑 뜨거운 추억을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당장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잠시 동안 툭닥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평평하기 그지없는 내 가슴을 조물락거리면서 능글대는 아버지의 행동을 사실상 용인……이 아니라 포기해버린 것이다. 아버지도 이런 행동 이상으로 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옷 속으로 손을 밀어넣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정말이지 피곤했다.
100.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일단은 나 자신, 그 다음은 아내들과 딸아이들. 거기에서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미시어스 제국이 그 대상이다. 거기에서 더 넓힌다면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도 포함이 되겠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정도로 내가 부지런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개는 제법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라면 이유이겠지만.
“……다만 너희들이 문제로구나.”
“오래간……이네요. 훌쩍.”
백원만, 이곳의 이름으로는 베이 클라이트라는 플라스틱 같은 이름을 가진 녀석이 처음 출몰한 장소인 프리그 왕국으로 왔다. 녀석이 복수를 하려고 한다면 방비가 잘되어 있는 미시어스 제국을 노리기보다는 프리그 왕국을 유린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때문이다. 이곳은 내 힘이 함부로 미칠 수 없는 곳. 그래서 일단 찾아들었다. 물론 여자의 몸을 하고 있었던 탓에 나를 알아보지 못한 여왕, 나탈리가 잠시 ‘경쟁자를 보는 소녀’의 눈으로 나를 대하는 소동을 벌이기는 했지만 체리와 수지가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엉겨붙은 덕분에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이 녀석들, 냄새로 나를 알다니 뭐하는 놈들이야.
“그런데 왜 여자인가요?”
“눈에 안띄니까. 한나라의 황태자가 다른 나라에 들어가서 깽판을 치면 국제적인 문제가 되잖아.”
꺅꺅대면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볼살을 건드리는 체리와 수지의 행동에 핏대를 세우면서 대답한다. 여성의 몸으로 나타난 내 모습에 놀랐던 나탈리는 주저주저하면서도 결국은 내 옆에 앉아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이어진다. 어색해하던 나탈리도 결국 보통의 소녀처럼 즐겁게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을 본 아버지는 그 얼굴에 미소를 함빡 묻히고는 그저 과자만 축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신경이 쓰였던 것인지 나탈리는 나에게 아버지의 정체를 물었다.
“그럼 이분은…….”
“아버지. 여자의 몸으로 돌아다니자고 말한 건 아버지야.”
“져, 졌다.”
어이, 열서너살 주제에 경쟁의식 불태우지 말라구. 아버지의 피부에, 아버지의 머리카락의 윤기에, 아버지의 미모에(……우웩), 아버지의 몸매에 졌다는 듯 좌절포즈를 취하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얼마간 못 본 사이에 부쩍 자란 그녀는 나를 보면서도 졌다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보면서는 완전히 좌절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탈리, 대체 어딜보고 ‘이겼다’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는지 말해주지 않겠니.
“오, 오라버니는 날씬하긴 하지만 빈약하시잖아요? 에헤헤.”
“아, 그거라면 원래대로 돌아가면 달라지는데 말야.”
활동하기 불편해서 몸을 줄였을 뿐이니까. 원래라면 이렇게 변했어야 했다는 식으로 몸을 원래대로 돌려 보여주면서 말한다.
“오, 오라버니. 당신마저.”
“어이…….”
원래라면 특정부위가 아버지보다 더 나왔던 몸매로 바꾸자(이것이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가졌을 모습이라는 것이다)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한 시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버린 나탈리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린다.
“오오, 우리 진이 여자였다면 좋았을텐데!”
“……설마하지만 내가 당신을 닮은 거냐.”
차가운 물을 퍼부은 란마에게 달려드는 팔보채영감(원래 이름은 핫포사이)의 영혼이라도 빙의한 것인지 나에게 달려드는 아버지를 올려차기로 날려버리고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런 내 모습에 나탈리는 어딘지 모르게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두려워할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럴까. 그러나 그렇게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내가 따스한 눈빛(을 가장한 너도 그러면 날려버린다는 협박의 눈빛)에 용기를 얻었는지 이런 말을 했다. 초롱초롱한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가장한 짐승의 눈빛이었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어이, 거기서 스톱.”
녀석의 돌진을 방어하면서 몸을 다시 원래대로 돌린다. 빈약한 가슴 그 자체로 말이다. 그러자 어딘지 모르게 아쉬워하는 눈빛을 한 그녀는 조용히 물러났다. 다만 체리와 수지가 눈을 번쩍이면서 나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 아이들의 모습에 사샤와 올가, 그리고 페라게야가 도끼눈이 된 것은 사소한 일이다.
“대체 뭘 원하는 거냐. 갑자기 애교라니.”
아가씨들이 도끼눈이 되거나 말거나, 이 녀석들이 갑자기 애교를 부리는 이유를 묻고 싶어졌다. 아니, 물론 그 대답을 예상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묻고 싶어졌다.
“에헤헤. 저희들은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몸이 호문클루스이니까요.”
“그런데?”
역시 그런 건가. 몸도 마음도 모두 여자가 되어버린 건가. 생각하면서 되물어보았다.
“어른의 육체를 주시면 저희는 주인님에게 모든 것을 드리면서 평생을 봉사……꺄앗!”
녀석의 말에 기겁하면서 꿀밤을 먹이고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이 녀석들에게 좋은 몸을 주고 힘을 불어넣는다면, 그러니까 마왕으로서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면 녀석이 이곳을 유린하려고 해도 최소한 나탈리는 지켜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한 번 해봐? 하지만 녀석에게 딱 맞는 몸이 있으려나.
“아아, 이대로는 주인님이 조물락거리면서 만든 몸으로 태어난 보람이……나의 주인님에게 모든 것을 바치면서 봉사해야 할 종으로서의 존엄이……. 주인님에게 극한의 쾌락을 주고 싶은 나의 결의가…….”
하지만 다음 순간 터져나온 녀석의 말에 나는 그 생각을 모두 접어버렸다. 이 녀석, 나를 색골로 만들 셈이냐! 난 로리콘이 아니거든?
“일단 나이는 5천살은 충분히 넘어가니까 로리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모가 외모잖아.”
“그거야 성숙한 여자로 바꾸어 주시면 딱이잖아요.”
그리고 부비적. 그런데 왜 네가 내 가슴을 만지는 거냐.
“장난치지마.”
“꺄앙! 아아, 부드러웠어. 주인님의 가슴. 거기에 주인님에게 맞는 꿀밤도 쾌감♡”
“어이, 기뻐하지마…….”
이 녀석 전직 마왕 맞아? 수지야 기억이 말끔히 말소되어버린 입장이니 뭐라 말할 수는 없겠다만.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수지는 나탈리의 숙부였으며 나탈리의 아버지. 전전대 왕을 폐위하고 자신이 국왕의 자리에 앉은 쿠데타로 집권한 녀석이었다. 지금이야 새로 태어난 녀석이지만.
“아직도 마왕이긴 한데요.”
“아, 그랬던가.”
어쨌든 녀석이 주동, 수지가 보조하여 나탈리에게 금단의 성애를 가르친 모양이다. 괘씸하다는 생각에 녀석의 머리를 두어번 쥐어박았다.
“오, 오라버니. 체리를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
그런 나를 막아서는 나탈리의 모습에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녀석, 마음까지 빼앗겨버렸구나. 이런 마왕같은 녀석……이 아니라 마왕 녀석에게 세상의 정의라는 것을 보여주마. 나 말리지마아아아!
“그게 아니라니까요! 오라버니에게 기쁨을 주려면 지금부터 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오오, 그런 건가! 아가씨는 며느리 자격이 충분해. 인정하마!”
하지만 곧 나온 말에 나는 무너지고야 말았다. 세상에는 의남매의 정리란 없단 말입니까. 신! 할 말 있으면 해봐!
[나도 당신에게 할 말 많아. 왜 이래!]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여신, 노르텐이 외쳤다. 얼씨구? 이 여신은 왜 나에게 화를 낸담? 화를 내야 할 건 나인데?
[몰라! 알아서 생각해!]
어이, 왜 화내는 거야? 어이, 대답 좀 해보라고! 어이, 무시하지마아아아!
“일단 이 왕실의 혈통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역시 우리 아들이 씨를 주는 것이 좋겠군. 우후후후.”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아무래도 이곳은 사지死地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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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분들의 원한이 하늘에까지 닿을 것 같아 막장 분위기로 돌아갑니다. 원래는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동네처녀A가 당했던 일은 원래라면 나탈리가 당했을 일. 하지만 어느 분의 반대가...)백합 여왕 나탈리가 되어버려 이 캐릭터에게는 그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