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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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9話 별
102-1.
밤이 깊어간다. 사실 여물어간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밤이라는 단어가 먹는 밤(율栗)과 때를 가리키는 밤(야夜)이라는 동음이의어들로 되어 있으니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디선가 많이 본 표현으로 참아달라. 참을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든 밤이 깊어졌다. 내 옆에 누워있던 나탈리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왔다. 그녀의 몸에는 가운을 걸치게 하고 나는 하체만 가린 상태 그대로다. 처음으로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그녀는 약간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그녀를 번쩍 들어서는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미소를 띈 얼굴 그대로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불편해요.”
미소를 띈 것과는 달리 나에게 하는 말은 약간의 투정이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웃는다.
“공주님처럼 떠받들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게 아니라……뱃속이 출렁이는 것 같아요.”
아, 그런 건가. 얼굴이 새빨개진 소녀의 모습에 헛기침. 생각해보면 열 번 정도는 질내사정으로 해버렸던가.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신인류’에 가까운 녀석이니까.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알디노어라는 문명화된 리자드맨과 비슷한 양을 사정하곤 하니까……이 무슨 세계관이 박살날 이야기냐. 일단 잊도록 하자.
“내 사랑으로?”
“몰라요!”
발끈하는 소녀의 체온을,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면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은 세 개의 달이 모두 그믐이 되는 날, 수십 년에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날이다. 그리고 별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날이다.
“별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어요.”
“그렇구나.”
광대한 하늘. 그 아래에 두 사람만이 있는 이 상황을 내 품 속의 소녀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음을 읽으려고 든다면 읽을 수 있겠지만 가까운 관계가 된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쓰고 싶지 않으니까. 다만 나는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일을 미루어 짐작한 후 실행하는 것으로 그녀가 기뻐하면 만족한다. 내가 항상 곁에 있을 수 없으니 한 번씩 만날 때에 최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목표다. 물론 내가 아직 이 소녀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흔히들 이런 하늘을 보면서 연인에게 속삭이지.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달라고 한다면 반드시 따오겠다고 말야.”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푸훗.”
“가능하기는 해. 나는.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세계가 멸망할 위기라는 것이 문제이지. 따지고 보면 연인에게 저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하는 레이디는 마왕이나 다름없어.”
“아하하, 그건 너무한데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란 것이 있잖아요.”
“사실이야. 저 별 하나하나가 아침마다 뜨는 태양과 같은 것이니까. 부글부글 끓는 거대한 용광로를 가져오겠다니, 알지 못하고 내뱉는 말이겠지만 진실을 아는 나에게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어. 물론 별과 비슷한 것을 가져와줄 수는 있겠지만 말야.”
“낭만이 없어요. 오라버니는 너무 현실적이네요.”
“따지고 보면 긴 꼬리를 끌면서 나타나는 혜성도, 짧은 순간 빛나는 유성도 모두 얼음이 낀 돌덩어리에 불과하니까. 이런 진실을 알고 나면 말야. 연인에게 위험한 것을 가져다 주겠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야.”
“여, 연인……우아아아.”
적당히 농담을 섞어 이야기를 나눈다. 소녀는 내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기분 좋은 상황이다.
“춥지 않아?”
“오라버니가 더 추울 것 같은데요.”
얼마나 있었을까, 몸이 식고 한기가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소녀를 품에 꼭 안았다. 준비해온 여벌의 커다란 가운으로 몸을 감고는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안고 있으려니 소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아직은 순수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소녀가 말을 더듬으며 얼굴을 더욱 붉혔다. 이 반응은……무엇인가 새지 않게 참고 있는 모습이다. 용변이 급한 건가. 생각하고 있으려니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소녀가 고해왔다.
“오, 오라버니의 씨가…….”
“…….”
그거였냐.
“뭐라고 생각하신 거죠?”
내 생각을 눈치챘던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귀신같은 형상을 보면서 내 실수를 한탄한다. 소녀의 순정을 무시한 댓가이려니 생각하기에는 소녀의 분노가 무섭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얼굴을 피하는 것이 상책, 그 이상으로 소녀의 마음을 풀어주려면……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어, 오라버니!”
“가만히 있어.”
소녀에게 커다란 가운을 맡기고는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정액을 닦아준다. 정성을 들여서. 하지만 이대로는 다 닦아낼 수는 없을 것 같아 마음을 굳힌다. 소녀다운 첫경험의 기억이 파탄날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나. 소녀를 뒤돌아서게 하고는 테라스의 난간을 붙잡게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정액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천천히 그녀의 음부를 막았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테라스에서 벌이는 후배위의 성교.
“부, 부끄러운데요오.”
“누가 봐도 상관없어. 누구 아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아이라고 하면 되니까 말야. 세진 알카로이드라는 녀석 말이지.”
흘러나오려는 정액을 되밀어 올리면서 이야기한다. 이런 자세는 처음인지 부끄러워하던 소녀는 난간을 잡은 손등에 이마를 대고는 다리를 살짝 더 벌린다. 그런 그녀를 나는 뒤에서 껴안는다. 목 뒤를, 귓불에 입을 맞추고 말랑말랑한 가슴을 가슴으로 일그러뜨린다. 소녀의 입에서 달콤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런 식으로 회피하려고 하시다니, 너무하잖아요.”
“네가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거든.”
찰싹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소녀의 자궁 속까지 싸질러놓은(…)정액을 밀어넣는다. 이런다고 밀어넣어질 리는 없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야외로 나갈 자신이 없는 커플이 테라스에서 전전긍긍한 마음을 즐기면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워요.”
“이 세상이 모두 물로 덮여있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우리 두 명만이 남아서 이렇게 노를 저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둑한 밤이라 이 뽀얀 살결이 남에게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탈리는 너무나도 부끄러워했다. 이 부끄러움을 달래기 위해 나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단 둘 뿐이라고, 하늘 아래 있는 사람은 우리 두 사람뿐이라고. 그러면서 그녀를 번쩍 들어 몸을 돌리고는 재삽입.
“어두운 하늘이야. 별이 빛나고 있지. 언제 세상을 쓸어버렸나 싶을 정도로 잔잔한 물 위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있어. 언제 다시 육지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눈앞의 연인이 너무 다정한 거야. 그런 그가 너의 가슴에 손을 대고 이렇게 쓰다듬기 시작했어.”
가슴을 쓰다듬는다. 한기에 소름이 돋은 살결이 약간 오돌토돌하기는 하지만 부드럽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세상이 멸망했더라도 당신의 가슴은 여전히 부드럽고 아름다워.’라고. 그리고 옷 속으로 그 손이 파고드는 거야. 그 손은 크고 딱딱해서 거칠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손이야. 손이 스칠 때마다 넌 그것을 느끼는 거야.”
“하아앙――”
“그리고 이렇게 심술궂게도 유두를 자극하는 거지. 손가락으로 눌리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고, 하지만 넌 그게 싫지 않아. 그러는 와중에 이렇게――.”
찰싹, 허리를 움직인다. 소녀의 몸은 흥분으로 발산된 열로 뜨거웠다.
“너의 몸을 가르고 들어왔어. 익숙한 연인의 몸이야. 너는 기쁨을 느끼면서 못이기는 척 다리를 살짝 벌려주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허리를 다리로 꽉 안는 거야. 떨어질 수는 없으니까. 그런 너의 반응에 연인은 행복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사랑하고 있다고.”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아, 너무 효과가 좋았나. 나탈리의 얼굴에 행복하다는 표정이 떠오르더니 입을 맞추어왔다. 나는 말을 끊고 그녀의 요구에 응한다. 왠지 모르게 이렇게 원하는대로 해주는 건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주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에 남겨두는 것도 좋겠지.
“사랑해주세요.”
그 말이 내 양심을 자극했다.
103.
“부우. 너무해요. 나탈리님만 사랑해주시고.”
“세린님, 오늘도 아름다우세요.”
“너도 아름다워.”
“…….”
“나탈리는 소녀에서 여자가 되는 발전도상에 있으니까.”
“너의 눈동자가 아름다운 건 나를 담고 있기 때문인가?”
“아이, 몰라요오♡”
“그러니까 저희도 어른으로 만들어주세요!”
“…….”
아침이면 체리가 투덜거리고 수지가 가만히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아버지는 자신을 시중들게 해둔 시녀와 끈적한 관계로 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그런 아버지와 시녀의 관계에 아가씨 트로이카가 음울한 표정으로 칼을 갈고 있다는 것도 신경쓰지 말자.
“언니라고 부를게요.”
“여왕전하께서 그렇게 부르시는 건 저희에게는…….”
“언니라고 부를게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저 평민출신 용병이라서. 그런 말씀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언니라고 부를게요.”
“저희들의 양심이 있습니다. 안돼요.”
반면에 이쪽의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다. 다만 등 뒤에 칼을 숨기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하루 정도는 네 명 모두를 침대 위에서 품는 것도 좋을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아내 112명과 마리아스 외에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지금처럼 분신술을 알기 전까지는 최대한 아내들이 나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게 전전긍긍하면서 열댓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품은 적이 있긴 하지만 분신술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한꺼번에 아내들을 안는 일은 없어졌다. 가끔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서 다른 아내를 품는 것을 보여준 일 외에는.
“그럼 오라버니께 여쭈어볼게요. 오라버니.”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호의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호의보다는 높은 편이다. 사랑에 가깝다고 할까. 애매한 감정이다.
“언니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랬다간 이 아가씨들은 왕족능멸죄로 잡혀갈 거라고? 일단은 내 정체를 들킬 수는 없으니까 말야.”
“그런가요. 그럼 사적인 자리에서는 언니라고 부를게요.”
“안됩니다. 그랬다가는 어느 자리에서건 실수하게 마련입니다.”
“언니라고 부르게 해줘요.”
“정말로 안된다니까요. 여왕님은 특별하시니까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제 기분이 그래요. 언니라고 부를게요.”
“안된다니까요. 살려주세요. 여왕님.”
일단 사샤와 올가에 대한 마음은 재미있는 녀석들이라는 기본적인 인식 위에 나 아니면 살기 힘들겠다는 동정심이 바탕에 깔려있다. 지금에 와서는 그녀들의 헌신적인 태도에 만족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에 비하면 페라게야에게는 약간의 미안함과 가슴이 취향인 나에게 직격하는 거유를 넘어선 폭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 직설적인 내 마음이다. 그리고 이쪽도 서툴기는 하지만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므로 남자로서 그녀에게 만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나탈리. 이 아이에게는 나에게는 없는 여동생으로서의 모습을 발견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물론 이 아이가 나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 대한 생각이 옅어지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차지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깨지고 이 아가씨는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마음을 끈질기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말하기로는 사랑이라는 것은 화학작용으로 정열적인 사랑은 몇 개월로 끝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아가씨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일로 내가 이 소녀를 심상하게 보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세린님, 남들이 보면……아앙♡”
“우후후, 우리 고양이는 부끄러움이 많……꺄앙!”
남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 인간은 스스로 달래는 것(자위)에 빠진 고릴라처럼 밤낮에 장소도 가리지 않는 거냐!
“아아, 드디어 우리 진이가 질투를…….”
“그게 아니거든?”
옷자락이 풀려 가슴골을 드러낸 시녀의 옷매무새를 정돈시켜주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뒤에서 아버지가 슬퍼하는 연기를 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말자.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저희들을 어른으로 만들어주시는 건 어떨까요?”
어이, 이때다 싶어서 다시 치고 나오지 말라고.
“귀찮아.”
“하지만 시간을 떼우는 데는 최고잖아요?”
“어린아이의 몸으로 만들어서 너희들을 봉인한 이유를 알기는 하는 거냐?”
볼을 불룩하게 만들어서는 투덜거리는 체리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귀찮다. 녀석이 들러붙는 것도 귀찮고 이런 일을 벌여버린 나 자신의 행동을 수습하는 것도 귀찮다. 그냥 황궁에 꾹 눌러붙어 있었으면 백원만 녀석이 무슨 일을 벌이건 상관없었는데.
“모르겠는데요?”
“알면서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지마.”
“아, 들켰다.”
“얌마.”
마왕과 폭군(의 정화된 영혼)을 어린아이의 몸으로 봉인한 것은 간단한 이유다. 다른 사람들에게 견제받지 않고 나탈리를 지키게 하려는 목적. 하지만 어른의 몸으로 다시 옮기게 된다면 필시 다른 사람들에게 견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녀들이 여왕을 움직여서 국정을 농단하지 않을까 하는 식의 견제를 말이다.
“상관없지 않나요? 힘으로 눌러버리면 되니까.”
“어이, 거기.”
“이봐. 마왕처럼 이야기하지 말라고.”
“전 마왕인데요?”
“무시하지 말라고!”
“지금은 단순히 여왕 측근의 시녀일 뿐이잖아?”
음? 무엇인가 이상한 녀석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거기 여자, 뭐하는 녀석이냐.”
뒤돌아보니 무지 재수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누구더라?
“외모는 반반하구만.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지. 어쨌든 거기의 꼬맹이. 여왕전하께 고하도록, 나 말종 백작이 승전보고를 상신하러 왔다고.”
하는 말이 무지 재수없는 말종 백작이었다. 일단 재수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포마드라도 발랐는지 머리를 올백으로 뒤로 넘긴 녀석이었다. 거기에 거시기가 훌륭할 정도로 드러나는 타이즈를 입고 있어 미적감각이 과연 정상인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저건 마왕 강림 전에나 유행하던 건데 말이지.
“그렇게 뜨겁게 바라보지 않아도 좋다고. 나중에 숙소로 찾아오면 극락을 보여주도록 하지. 하하하핫!”
내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지 녀석은 자못 호탕한 척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묘하게 허리를 흔들었는데 타이즈를 입은 탓에 어떻게 보아도 시각테러였다. 과도하게 부각되는 건 좋은데 어딜봐도 부실할 것 같은데 말야. 녀석의 자신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공로를 치하하실 때 너를 달라고 해도 좋겠군.”
자신감도 저 정도면 예술이다. 때려잡을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모습을 보인 녀석은 곧 체리를 뒤따라 대전으로 들어선다. 뭐, 저런 녀석도 있게 마련이니까. 힘내라 나탈리.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배당되어 있는 숙소로 걸어간다. 일단 몸은 만들어둘까. 몸을 만든다면 누구의 몸을 베이스로 만들어야 할까. 고민되네. 호문클루스라면 모를까 인간의 몸을 만든다면 베이스가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으음…….”
다음에 한국에 가면 베이스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의 머리카락. 조금 입수해봐야 할런지도. 일단 지나가는 시녀들의 유전 정보를 기본 베이스로 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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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탈리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업무를 처리하는데 이런 일이 문제였다거나 어제 밤을 새워서 몸을 섞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가뿐했다거나(당연히 체력을 보충해주기 위해 이런저런 수작을 부려두었다) 북동부 테이트 강 유역으로 떠내려온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돌아온 말종 백작이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해와서 화를 낼뻔했다거나……어쨌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그녀였다.
“말종 백작? 그 머리를 뒤로 넘겨 빗은 재수 없는 젊은 귀족?”
“네. 오라버니도 예전에 한 번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오라버니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젊은 기사 말이에요. 오라버니께서 숙부의 군대를 모두 흡수해서 이겨버리시니 그 뒤로는 딴지를 걸지 못하게 되었지만요.”
아, 그 녀석이었나.
“그 녀석 취향이 이상하던데?”
“쫓겨 다닐 적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영지를 받고 작위를 받고 나서는 그렇게 변해버렸어요. 솔직히 민망하잖아요. 그 패션. 그래도 그게 좋다나봐요. 그 사람의 말로는 이게 과거의 진정한 귀족들의 모습이라고 말하는데 정신만 배웠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거든요.”
구체제에 진입해버린 신참자가 다른 구체제 인사보다 더 보수적이 되는 것 같은 상황인가. 녀석이 어째서 그런 민망한 쫄쫄이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알 것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웃으면서 ‘얼간이네’라고 말하자 나탈리도 웃으면서 ‘바보예요. 단순히.’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에게 조금 흑심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제 몸에 흑심이 있다기 보다는 지위에 흑심이 있는 것 같지만요. 질투해주세요.”
“널 믿고 있으니까 그 멍청한 녀석에게는 이상하게 견제할 마음이 들지 않는데?”
“그, 그런가요? 그거 기쁘네요. 에헤헤.”
일단 안심시켜놓고.
“그런데 그 녀석, 이번에 공로를 세웠으니 뭔가를 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 질문을 던졌다. 일단 그 녀석이 정말로 나를 달라고 했던지를 알고 싶었다. 일단 나탈리가 말종 백작이 한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화를 낼 뻔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확실히 확인은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탈리는 화를 냈다. 포크로 드래싱한 양념을 얹은 야채를 찍던 손을 마구 흔들면서 말이다.
시녀들에게는 미안한데. 치워야 할 것이 늘었어.
“감히 오라버니를 달라고 하다니! 일단 손님이라서 안된다고 말은 해두었어요. 화를 내려는 것을 체리가 말려서 어떻게든 참았지만 공신이고 뭐고 사형시키고 싶었다니까요. 그랬더니 ‘공신을 무시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지 뭐예요. 정말이지 공신 자격이 없는 인간이었어요. 오라버니에게 감히 반대의견을 내놓을 때에도 알아봤지만, 정말이지.”
“아하하. 그랬냐? 하지만 그런 반대의견까지는 괜찮잖아. 아무래도 권력을 가지고 나니 썩어버린 모양이지만.”
“오라버니, 오라버니의 일이에요. 화를 내셔도 좋잖아요!”
새삼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는지 마구 화를 내는 그녀의 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뼈에서 고기를 발라내던 행동을 중단하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대신 화를 내어주어서.”
“정말이지…….”
어이, 울지마. 내 반응에 갑자기 울먹이는 그녀를 보고 기겁한다. 냅킨을 주워들어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면서 피식 웃었다. 이거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게 아닐까?
“오라버니는 저에게 단 한 사람밖에 없는 믿을 만한 분이니까요.”
그런 내 생각에 답하는 나탈리의 말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부담이 되는 말이기도 했다. 외로웠구나 나탈리.
“그거, 공신들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가면 섭섭해할 건 잘 알지?”
하지만 국가의 수반이라는 것은 그만한 정쟁과 유혹에 휘말리기 쉬운 자리이다. 그런 생각으로 소녀에게 조언을 담아 약간의 경고를 해주었다. 그러자 나탈리는 지금의 상황을 조리있게 분석한 답변을 내놓았다. 물론 나탈리가 이런 것을 모두 생각한 것은 아니고 체리가 나름대로 정보를 모아 분석해준 것에 자신의 판단을 섞은 것에 불과했지만.
“저마다 저라는 사람과 혼인하여 한몫 잡으려는 속셈으로 가득해요. 지금에 와서는 그 사람들이 충성으로 저를 섬긴 건지 나중에 한몫 잡으려는 도박을 하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니까요. 아, 물론 그건 영지를 보상으로 받은 사람들이고 몇몇 분들은 친위대에 남아서 저를 지켜주고 계시니까요.”
“그 사람들은 조금 위험한 걸? 오히려 외곬수라 더 위험해. 질투해야겠는데?”
슬쩍 어두운, 현실의 이야기를 하려는 분위기로 넘어가려는 것을 그렇게 무마한다. 그런 내 말에 나탈리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했다. 의외의 곳에서 기습을 당한 심정이리라.
“그, 그럼 그 분들을 친위대에서 내보낼까요?”
“아냐, 아냐. 그 분들을 친위대에서 내보내면 네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체리에게 단단히 감시하라고 일러야겠는걸?”
당황하면서 이야기하는 나탈리에게 그렇게 느물거렸다. 그리고 내 말이 진짜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난이라는 것을 안 그녀는 다시 한 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음, 이렇게 나가면 화를 내려나? 조금 놀렸으니 상관은 없겠지.
“너무해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풀이 죽을 필요는 없는데……좀 달래둘까.
“아니, 솔직히 제법 괜찮은 남자가 진심으로 사랑을 얻기를 원한다면 여자다운 여자는 넘어갈지도 모르니까 말야.”
“여, 여자다운 여자…….”
이것이 만화라면 ‘퐁’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서 김이 솟을 것 같은 느낌으로 나탈리는 볼을 감쌌다. 음, 역시 이래야 보통의 소녀다운 모습이지. 나와 함께 있을 때 정도는 여왕의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는 것도 내 책무일 것이다. 연인이라는 자로서의.
“그래서, 식사가 끝나면 같이 목욕탕에 들어가볼까?”
“네? 네! 기꺼이.”
소녀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도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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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별이 잘 보여요. 오라버니.”
“그렇구나.”
오늘도 어제처럼 가득 사랑을 나누고 그녀를 품에 안고 테라스로 나왔다. 어제와는 달리 체리와 수지도 난입해 들어와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 나탈리는 극도로 만족했다. 물론 갈색머리 자매와 폭유아가씨도 중간에 소환해서 백합향이 가득한 연출을 해버리는 바람에 조금 삐지긴 했지만.
“오라버니, 상의는 입으시는 것이…….”
“이렇게 가운을 걸치고 있으면 볼 수 있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말야.”
코코아라도 마시고 싶은 차가운 밤기운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를 꼭 안고서는 함께 별을 바라본다. 어제보다는 달이 조금 밝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별을 관측하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것은 지상에는 어둠이 내려있다는 이야기이고 불이 꺼진 방에 붙어있는 테라스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남들은 이곳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렇게 체온을 직접 받을 수 있으니까 더 좋잖아.”
“그, 그건……그러네요.”
돌아서서는 얼굴을 붉히는 소녀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 품에 안겨서는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만약에 내가 여자로 변했을 때 아이들에게 가지는 감정을 모성애라고 한다면 지금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것은 모성애일지도 모른다. 저녁식사 때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정말로 믿을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다. 내가 붙여둔 체리와 수지 이외에는. 그것도 체리는 원래가 마왕이었고 수지는 기억이 말소되고 영혼이 정화되었다지만 형을, 나탈리의 아버지를 죽이고 멋대로 정치를 하던 무능한 폭군이었다. 그것을 따져보면 나탈리가 이렇게 나에게 기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그녀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도록 가슴을 빌려주도록 하자.
“이렇게 있으니까……별을 따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별?”
잠시 동안 내 품에 안겨있던 나탈리는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그 의미를 몰라서 되묻는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오라버니는 저에게 별이니까요. 밝게 빛나고 제자리에 있어서 항상 저를 인도하는 북극성같은 분이요.”
“태양이라거나 달도 좋은데…….”
“태양은 너무 뜨겁고 달은 너무 빨리 변해요. 그러니까 별이 딱 좋아요.”
“그래?”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별이 되어주마. 언제나 원하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부담을 주지 않고 너를 지켜봐주는 별이 되어주마.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그렇게 이야기해주었다. 소녀의 얼굴이 잠시 환하게 빛나고,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정말이지요?”
“그래. 신목에 걸고 맹세하마.”
나탈리는 그런 내 맹세가 정말로 기뻤는지 이곳에 와서는 처음으로 듣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이 대에 맞는 웃음소리였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별을 바라본다. 별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착각이야. 그런 진실을 조금은 씁쓸하게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녀가 살아갈 수십 년 동안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주자.’
밤은 깊었고 그녀의 사랑도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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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플래그 완료. 역사서에는 세진 알카로이드가 나탈리 여왕의 부군이라고 기록됩니다. 방랑벽이 있는 그랜드마스터(여기의 기준으로는 2단계 각성)로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