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3
오전의 골목길에서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 똥개 누렁이가 한 방향을 응시하며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지만 짖어대고 있는 그것에는 멀찌감치 떨어진채 시끄럽게 짖어대기만 하고 있었다.
『으으음... 』
현지가 눈을 떴다. 밝은 햇살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현지의 눈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에 눈이 부셔 제대로 앞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으응? 눈부셔.. 커튼이라도..,.. 응??!!!! 』
잠에서 덜 깬듯 부시시한 눈을 뜨며 당장 자신을 괴롭히는 햇빛을 차단할 커튼을 무심결에 찿고있던 현지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신지 한손을 얼굴위쪽으로 가져가 햇빛을 가리며 현지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와 다른 풍경에 현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지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는 것은 현지가 눈을 뜬 장소가 자신의 집도 그 누군가의 집도 아닌 길거리라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현지의 눈이 똥그랗게 커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런 털을 가진 개 한마리가 현지가 있는 자리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는듯 현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인적이 많지는 않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심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현지를 살짝씩 쳐다보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현지는 어제 밤 길을 잃고 헤메다 매트리스에 주저앉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때 지치고 피곤한 탓에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느정도 상황이 파악이 된 현지는 창피함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옆에 놓여진 가방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이.. 챙피해.. 이게 무슨 꼴이야.. 노숙이라니... 』
종종 술에취해 죽은듯이 길 한모퉁이에 쓰러져 잠이 들어있는 여자들을 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실제로 그런 꼴로 노숙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현지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현지의 생각일뿐 지나가면서 현지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생각은 분명 예전에 현지가 보며 했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거의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들어온 현지는 기숙사와 강의실로 갈라지는 길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강의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상 아무래도 현지가 듣고 있는 강의가 진행되고 있을것이었다. 심정으로는 기숙사의 침대에 틀어박혀 아무 생각없이 푹 쉬고 싶었지만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강의를 빼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현지는 잠시 화장실에 들러 그래도 조금은 깔끔해 보이도록 정리를 하고 강의실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현지의 생각대로 이미 강의는 시작되었고 교수님께서 아이들을 향해 열변을 토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끼이이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고 열었음에도 문에서 나는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강의실을 크게 울리는듯했고 그 소리와 함께 교수님의 목소리가 끊어지면서 강의실 내의 모든 시선이 현지를 향해 모아지자 현지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강의실 문의 손잡이를 잡은채로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자세로 멈춰 있었다.
보통 한 두명씩 강의에 지각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각생이 들어올때 강의가 끊어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교수님들도 지각생때문에 강의를 멈추는 일은 거의 없었고 아이들 역시 한 두명정도 시선을 돌리는 아이들은 있어도 이렇게 일제히 시선이 모아지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현지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수근 수근...
강의실내에 흐르던 잠시동안의 정적이 학생들의 수근거리는 소리에의해 깨지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이 현지를 보고 수근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지는 자신을 보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아이들에게 "지각생 처음 봐??!!"라고 소리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 현지의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다는 걸 현지도 잘 알고 있었다.
『자네.. 들어올건가? 아니면 나갈건가? 』
교수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은 현지가 고개를 숙이고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그래서 조금 전에 말한 경우에는... 』
잠시동안 현지의 모습을 바라보던 교수가 중단되었던 수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수업이 다시 시작되자 학생들은 다시 교수님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몇몇 아이들은 흘깃 거리며 현지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현지는 주위를 둘러보며 은경이를 찿기 시작했다.
"은경이가 없네..? 아직 자고 있나?"
은경이는 현지의 룸메이트이자 대학내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착하고 상당히 성실한 편이어서 강의를 뺴먹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잠이 너무 많은 탓에 시험기간에도 밤 10시만 넘어가면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고 아침에도 현지가 깨우지 않으면 오전내내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은경이한테 어제 일을 이야기하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언제나 아침마다 은경이를 깨워주던 현지가 어제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은경이는 아직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을테지만 조금 있다가 기숙사에 들어가서 은경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마도 은경이는 깜짝 놀랄 것이었다.
은경이는 겁이 많으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현지가 쓰는 기숙사는 4학년 언니가 두 명, 그리고 은경이와 현지 이렇게 4명이 사용하는 4인 1실방이었지만 보통 언니들은 취업준비등의 이유로 기숙사에 있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기에 은경이와 현지가 단 둘이 있는 날에 현지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면 은경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얼굴만 빼꼼 내밀고서는 현지에게 이야기를 재촉하곤 했었다.
아마도 현지가 어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면 은경이는 또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을 하면서도 현지에게 이야기를 계속 해달라고 졸라댈것이 분명했고 그런 은경의 모습이 떠오르자 현지의 입가에 살며시 웃음이 베어나왔다.
강의가 끝나고 나오던 현지는 과사무실 앞에 걸린 큼지막한 공지게시판에 걸려있는 내용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 2학년 서현지양은 이 글을 보는 즉시 과사무실로 올것!! 】
【 서현지 양을 보거나 연락이 되는 사람도 과사무실로 바로 연락할 것!! 】
『무슨 일이지?? 』
특별히 과사무실에서 현지를 찿을 일이 떠오르지 않기에 현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로 옆에 있는 과사무실에 노크를 했다.
똑똑똑..
『네에 』
현지가 과사무실의 문을 조금 열고 얼굴을 문틈으로 빼꼼 내밀어 과사무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과사무실에는 조교 한 명과 일명 과순이라 불리는 과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1학년 후배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과 똑같은 일이 이곳에서 그대로 벌어졌다. 과사무실 안에 있던 두 명의 시선이 현지쪽을 향했고 현지를 바라보고 잠시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조교와 과순이가 동시에 현지를 불렀다.
『야!! 서현지!! 』
『선배님!!! 』
조교도 일하던 후배도 모두 현지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거의 매일같이 한번쯤은 보아오던 사람들이기에 자신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상황에 현지가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응?? 왜요?? 』
얼굴만 살짝 내밀고 있던 현지가 문을 열고 과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오자 조교와 과순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현지에게 다가와 현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야!! 너 어디갔었어?? 』
과순이의 말에 대답하고 있던 현지의 팔을 조교가 다짜고짜 잡고 과사무실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방으로 데려가 쇼파에 앉히며 말했다.
『너 꼼짝말고 여기있어!! 알았지?? 』
『뭘요?? 』
현지는 조교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현지는 아무래도 정말 머리가 이상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어제의 일부터해서 지금도 분명 조교는 한국말을 하고 있음에도 조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현지를 바라보고 있던 조교가 말했다.
『아니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거야.. 그건 그렇고 너 정말 괜찮은거야? 』
『그럼 됐어 여기서 조그만 기다리고 있어 』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조교는 방을 나가버렸다. 현지는 쇼파에 등을 기대었다. 길거리에서 벽에 기댄채 잠을 자서 그런지 아직도 온 몸이 피곤하고 어제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도 않아 배도 고프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기숙사에 돌아가서 일단 한숨 푹 자고난 후에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다림에속에서 졸음이 쏟아져 내리려 할 때 즈음 방문이 열리고 한 쌍의 남녀가 조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현지로서는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기에 현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현지씨 되십니까? 』
『네 그런데요? 』
현지의 신분을 확인하는듯한 질문을 던진 남자가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들어 보였다. 남자의 사진이 박혀있는 신분증에는 경찰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져 있었고 신분증을 바라보던 현지가 남자에게 시선을 옮기자 남자는 신분증을 거두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밤에 어디 계셨습니까? 』
『어제 밤이요? 』
현지는 왜 경찰들이 현지를 찿아왔고 어제밤의 일에대해 물어보는지 궁금했다. 어제밤 자신을 강간하려했던 그 남자때문인걸까? 그렇다면 어제밤에 있었던 그 꿈같이 황당했던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말인걸까?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해도 강간은 미수에 그쳤고 목격자도 없었고 현지 자신도 신고를 한 기억이 없었다.
『어제 밤에... 음.... 』
현지는 쉽게 어제밤의 일들을 쉽게 말하기 어려웠다.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어제 밤의 일들을 이 사람들이 믿어줄까? 게다가 이유야 어쨌든 어젯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한 사실을 직접 입으로 말하기는 더더욱 망설여졌다.
『저기.. 그런데 무슨 일때문에 그러시는데요? 』
대답을 할듯 하던 현지가 대답은 하지않고 반문하자 두 명의 경찰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는 다시 현지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직 모르세요? 』
조금 전 조교가 현지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죠.. 』
『으흠.... 』
남자 형사가 특별한 말 없이 한 손으로 턱을 비비며 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옆에 여자가 나서기 시작했다.
『서현지씨 지금부터는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젯밤 이 대학내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졸린듯 삼분의 일쯤은 감겨있던 현지의 눈이 놀람으로 인해 동그래졌다. 여자 기숙사라면 현지가 생활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여자는 그런 현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듯이 특별한 내색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 네명의 피해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삼백...육.......?? 』
현지는 어제밤 시퍼런 칼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현지의 다리사이를 스치고 지나갔을때의 느낌 이상으로 오싹한 느낌이 들어오고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제밤의 이상한 일로 복잡하게 얽히고 꼬여있던 머리속은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져나가는 화이트보드처럼 새하얗게 변해갔다.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현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현지의 귓속에 이어지는 여자의 말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어 오기 시작했다.
『사망자 이영희.. 이은경... 』
『중상자 김지연... 그리고.. 』
여경찰의 말이 현지의 귓속을 파고들어 맴돌다가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세글자만은 계속 귓속에서 그리고 머리속에서 맴돌뿐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이은경...
현지의 룸메이트중 한명이자 바로 몇 일전까지만 해도 한 이불속에 누워 키득거리며 장난치던 현지와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고.. 현지의 앞에 있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참을 멍한듯한 눈빛으로 오한이라도 있는듯 몸을 떨던 현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봐야겠어요!! 』
『안돼요.. 지금은 아무도 못들어가요!! 』
현지가 일어서서 금방이라도 뛰쳐나갈듯한 태도를 보이자 남자와 여자가 현지를 붙잡고 발버둥치는 현지를 쇼파에 억지로 앉혔지만 현지는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쇼파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쳐대고 있었다.
『진정해요!! 이런다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
여형사가 현지를 억누르며 소리치듯 말하자 경찰들에게서 벗어나려던 현지의 움직임이 잦아들면서 현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은경이가.. 은경이가... 』
『으음.. 알았어.. 일단은 조금 진정시켜봐.. 』
여자보다 선배인듯한 남자가 여자의 말을듣고 현지를 잡고있던 손을 천천히 놓고는 뒤돌아 문밖으로 나가자 여자가 현지의 옆에 앉아 흐느껴 울고있는 현지를 다독이며 말했다.
『현지씨.. 이은경씨랑 많이 친한가봐요? 』
현지는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는 연신 눈물을 닦아내면서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제 일은 안됐어요.. 하지만 어제밤의 사건의 내말을 알기위해서는 현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
현지는 울먹이면서 또다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요.. 그럼 내가 몇가지 질문을 할건데.. 솔직하게 대답해 줄 수 있겠어요? 』
이번에도 현지는 고개를 끄덕여 여자의 뜻에 동의를 표했다.
『좋아요.. 아까 말했듯이 어제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이 이영희씨 그리고 이은경씨..... 』
여경찰은 은경의 이름을 꺼내며 조심스럽게 현지의 반응을 살펴보다 현지가 딱히 특별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말을 이어갔다.
『중상인 사람이 김지연씨.. 그리고... 』
고개를 숙인채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현지가 여자의 말에 고개를 들어 눈물이 흘러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버젓이 여기에 있는데 실종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어제밤에 현지가 기숙사에 있지는 않았지만 21살이나 먹은 여자가 하루밤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실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실종.. 이라니요? 전 이렇게 여기에 있는데..? 』
『그래서 통신회사에 의뢰해서 위치추적을 해봤습니다.. 통신회사의 정보에 의하면 학교근처에 계셨더군요.. 그래서 인원을 동원해 통신회사의 정보를 토대로 그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현지씨는 찿을 수 없더군요.. 분명 통신회사의 위치추적시스템상으로는 현지씨의 핸드폰은 켜져있는 상태고 그 위치가 맞았는데도요.. 그렇게 수색을 하던 도중에 이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현지씨거 맞죠? 』
말을 하던 여자가 투명한 비닐봉투안에 담겨진 작은 수첩을 현지에게 내보였고 그 수첩은 분명 현지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이 맞았다. 아마도 어제밤에 그 골목길에서 떨어트렸지만 작은 수첩이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그곳에 그대로 두고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지씨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을거라고 판단하고 실종이라 짐작한 겁니다 』
여자의 말에 현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현지의 핸드폰을 살펴보던 여자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
여자는 조금 언짢은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다시 현지에게 건네줬고 핸드폰을 받은 현지는 자신의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핸드폰에는 소유자에게 알리는 메세지가 떠 있었다.
[24건의 부재중 통화가 있었습니다]
『이..이게.. 어떻게.. 분명 어제밤에는 한번도 핸드폰이 울린적이... 』
현지는 거의 울먹일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여자는 여전히 의심적은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만약 현지가 상대여자의 입장이었으면 아마도 지금 현지의 앞에 있는 여자처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분명 핸드폰은 켜져 있었는데 벨이 24번이나 울리는동안 한번도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어제 현지가 있었던 곳은 노래방이나 주점같이 시끌벅적한 곳도 아닌 아무런 인적도 없이 조용한 골목길이었기에 현지조차도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어제밤에 어디서 무얼하고 계셨던 거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세요 』
여자의 질문에 현지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어제의 상황은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말해봐야 지금처럼 믿지 못할것은 뻔한 일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제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는 없을것 같았다.
『말씀드려도... 믿지 못하실 거에요... 』
현지는 어쩔 수없이 어제밤에 일어난 일을 여자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일 그리고 어린 아이의 일.. 마지막으로 현지가 탈진할 정도로 계속해서 나타났던 그 두갈래의 갈림길까지 여자에게 모두 말을 해줬다.
현지의 말을 듣던 여자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지는 그 표정의 변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말을 하고 있는 자신도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고 전해듣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여자가 말을 꺼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21살의 여자가.. 그것도 시험을 통해 대학에까지 입학해 다니는 여자가 그렇게 자주 다니는 길을 잃고 해매고 있었다는 말을 믿으라구요? 』
여자의 말이 맞았다. 분명 현지가 경찰의 입장이었어도 여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 어제의 일은 아직까지 현지의 기억속에 남아있었고 상대방이 믿어주지 않는다면 현지로서는 더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
현지가 조심스럽게 여자에게 말했다. 범행 동기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알리바이는 입증할 길이 없는데다 비록 현지는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고 하지만 현지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자의 입장으로 보기에는 현지가 횡설수설하고 있는 상황이니 충분히 그럴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이들은 현지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전 분명히 아니에요... 제가 왜 언니들과 은경이를... 』
『범인은 어제 칼을 가지고 기숙사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다른곳은 들리지 않고 곧장 306호로 들어갔습니다 잠시후 306호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죠.. 가장 먼저 범인이 들고 있는 칼에의해 살해당한 사람은 이영희씨.. 좁은 기숙사 방에서 이영희씨가 수차례 칼에 찔려 죽어가는 것을 보던 김지연씨는 자신마저도 죽이려는 범인을 피하려 했지만 좁은 방에서 피할 수가 없자 창문밖으로 뛰어내렸지만 깨어진 유리파편과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구요.. 』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인은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의 복부를 수차례 찌르고 자살했습니다... 』
『자..잠깐만요...!!! 그..그게 무슨 말이에요???!!!! 뭔가 착각하시는거 아니에요?? 』
『아니요.. 이영희씨와 김지연씨의 비명소리에 306호로 몰려든 다른 사람들의 일관된 진술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는거니까 분명한 사실.. 입니다 』
『마..말도 안돼요!! 그.. 그럼.. 범인이 은경이란 말이에요??!! 은경이가 언니들을 죽였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자살을 했다구요?? 』
『네.. 이은경씨가 306호 이영희씨를 죽이고 김지연씨에게 중상을 입힌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현지씨 역시 그곳에 계셨다면 어쩌면 현지씨까지도.... 』
『마..말도 안돼.. 은경이가 왜...!!! 그렇게 착한 애가... 그렇게 겁이 많은 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