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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 5

현지가 책상에 앉아서 학교에 제출할 레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레포트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고 프린터기를 통해 뽑은 레포트를 최종점검하는 차원에서 현지는 새하얀 A4용지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검은 활자들을 읽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스으윽...



갑자기 현지가 작성한 새하얀 레포트의 종이위로 검은 물체하나가 미끄러지듯 스르륵 내려앉았다. 마치 하늘에서부터 미끄러져 내려오는듯이 내려온 검은 물체는 다름아닌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누구라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현지는 그런 머리카락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 레포트 마무리 해야하거든?? 이것 좀 치워줄래?? 』



현지가 머리카락이 미끄러져 내려온 윗쪽은 바라볼 생각도 하지않고 중얼거리듯 그리고 조금은 차가운듯한 말투로 혼잣말하듯 말하자 A4지 위로 내려왔던 머리카락은 다시 스르르 위쪽을 향해 올라가버렸다.



『나랑 놀자~~ 이제 다 했잖아~~ 』



어린 아이가 놀아달라고 투정을 부리는듯한투의 남자의 말소리가 현지의 뒤에서 들려왔다. 어제 현지의 옆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현지를 깜짝 놀라게한 바로 그 도깨비였다. 도깨비는 아이의 모습이 아닌 어제 처음 나타날때처럼 현지 또래의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자신과 놀자는 말에 현지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자 현지의 머리 좌측과 우측을 빠르게 왔다갔다하며 현지를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야!!!!!! 』



도깨비의 행동을 무시한채 묵묵히 레포트를 다시 읽어내려가고 있던 현지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듯이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도깨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앗.. 깜짝이야!! 』

 


갑작스럽게 소리치는듯한 현지의 소리에 정신 산란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던 도깨비가 깜짝 놀라는듯한 모습으로 뒤쪽으로 물러서자 현지가 앉은 자리에서 뒤쪽을 돌아보았다. 안그래도 큰 눈에 놀란듯이 더욱 커진 눈망울을 한 남자의 모습이 현지의 눈에 들어오자 짐짓 화난 표정을 하고 돌아보았던 현지의 얼굴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건 도대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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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현지의 앞에 나타난 도깨비는 그 이후로 꼬박 하루가 넘는 시간동안 현지를 졸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밥을 먹을때도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때마저도 졸졸 따라다니며 놀아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제의 유치한 설전이 끝나고 현지는 스스로를 도깨비라 부르는 그 귀신을 철저히 무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현지에게 나타났고 이제는 아예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도깨비를 만난 날 도깨비덕에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고 어쩌면 같이 살고 있는 형사의 말대로 도깨비덕분에 기숙사사건에 벗어나 아직까지 현지가 살아있는 것일수도 있었으니 현지에게 해를 끼칠만한 존재는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놀란듯이 도깨비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형사들의 모습이나 오늘 학교의 다른 학생들의 태도를 봐서는 분명 도깨비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듯 보였고 그런것이 계속해서 현지를 따라다닌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닐거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오늘 하루종일 그런 생각으로 도깨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철저하게 무시하며 도깨비가 없을때의 일상처럼 움직였던 현지였지만 머리속에는 도깨비에 관한 생각이 가득차 있었다. 하루종일 도깨비를 없는 취급하던 현지가 강의를 듣는도중에 하도 정신없이 움직여대고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잠시 화장실에 가는것처럼 강의실 밖을 나와 그날 처음으로 도깨비에게 말을 했다.



『앞으로 한번만 더 날 방해하거나 강의 듣는거 방해하면 다시는 너랑 상종도 하지 않을거야!! 절대로!!!  』

 

『그럼 수업듣는거 방해안하면 나랑 놀아줄거야? 』


잔뜩 화가난 얼굴로 도깨비에게 말을 한 현지를 보고 도깨비가 조심스럽게 현지에게 물어봤지만 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고 그대로 강의실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현지가 강의실로 들어가고 잠시후 또다시 현지를 따라 강의실로 들어온 도깨비였지만 현지의 화난듯한 태도때문인지 더이상 정신사납게 돌아다니거나 시끄럽게 굴지않고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현지가 앉아있는 옆의 책상위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현지의 옆자리에 앉은 학생은 도깨비가 자신의 책상위에 앉아있음에도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지 교수님을 바라보고 노트에 열심히 강의 내용을 적어가고 있었고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던 녀석이 그렇게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있는것을 보니 도리어 안스러운 생각까지 들어왔다.




강의가 끝나고 또다시 도깨비는 조심스럽게 놀아달라며 현지 주위를 심란하게 돌아다녔고 조금씩 원래대로 심란하게 까불어대기 시작했지만 현지가 한번씩 째려볼때마다 도깨비는 다시 풀이 죽은듯한 모습으로 조용해졌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현지에게 징징거리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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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목소리에 겁먹은 아이처럼 놀란듯한 눈으로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도깨비를 바라보고있자니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깨비든 귀신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현지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오던 그런 종류의 것들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피를 철철 흘리는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흐느적거리면서 음산함을 풀풀 풍기며 다녀야하는게 아니었던가?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녀석은 여자라면 한번쯤 눈이 갈정도로 귀여운 얼굴을 하고는 인간인 자기보다 더 깜짝깜짝 놀라는가 하면 갖은 오두방정을 떨면서 현지를 귀찮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나 한여름의 귀찮은 파리처럼 현지주위를 붕붕 날아다니거나 벽을 뚫고 지나가거나 하는 것만 아니면 누가 이 녀석을 귀신이나 도깨비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긴.. 피를 철철 흘리며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음산함을 풀풀 풍기며 따라다니는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은것 같기는 하다..



『무슨 귀신이 이래..?? 』

 

『귀신 아니라니... 』

 

찌리릿~!!




조심스럽게 또다시 귀신이 아니라고 항변하려던 도깨비는 현지가 날카롭게 째려보자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현지가 무서운건지.. 아니면 현지가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게 무서운건지 모르겠지만 도깨비는 오늘 현지가 강의실밖에서 화난듯 이야기를 한 그때부터 줄곧 현지의 눈치를 살피며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좋아.. 니 말대로 도깨비랑 귀신은 다른거라고 치자.. 그럼 귀신하고 도깨비는 뭐가 다른건데?? 』



어제의 설전이후 강의실앞에서 화를내며 말했던 현지의 말 이외에 처음으로 현지가 도깨비에게 말을 걸어 준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놀란듯 현지의 눈치를 살피던 도깨비의 얼굴이 환하게 그리고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다시 변해갔다.



『귀신은 무섭지만... 도깨비는 귀엽잖아~~!! 』

 

 

찌리릿~!!!


도깨비의 황당한 말에 또다시 현지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째려보는듯한 눈초리로 변해갔다. 도깨비가 그런 현지의 눈초리에 다시 움찔하자 현지는 도깨비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책상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또 장난치는 거라면 난 그만 할래.. 』

 


책상쪽으로 돌아앉은 현지가 읽었던 레포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하자 도깨비가 당황한듯 재빨리 현지쪽으로 다가와 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아니야!! 말해줄게!! 말한다니까!! 』



고개를 숙이고 레포트를 바라보고 있던 현지의 입에서 씨익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작전 성공~♡"




어제 철저하게 상대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현지였지만 의지와는 달리 머리속에 하루종일 도깨비에관한 생각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꾸만 자기도 모르게 살짝씩 도깨비를 바라보고 있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처음 도깨비를 만났을때도 그랬지만 왠지 편안한 느낌에 자꾸 신경이 도깨비쪽으로 끌리고 있던 현지였다. 저녁무렵에는 이미 현지 자신도 도깨비에 대한 관심이 스스로 주체하지못할만큼 잔뜩 증폭이 되어버려서 집에서 컴퓨터로 레포트를 쓰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어왔지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려면 우선 현지가 먼저 꼬리를 내려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되면 도깨비라는 이 존재에 대해 끌려다닐것만 같아 짐짓 무관심한척하고 있었는데 계획적으로 이런 상황을 이끌어내려고 한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현지가 유리한 상황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니 나름대로 작전아닌 작전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알아서 좋을건 없을건데.. 이해하기도 힘들거고.. 』

 

『싫으면 말구.. 』

 

『알았어.. 계집애 성질하곤... 음..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좋을까..? 』

 



잠시 고민하듯이 생각을 하던 도깨비가 현지가 앉아있는 책상에 걸터앉은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음.. 너 혹시 음양이라는 것을 알아? 』

 

『음양?? 뭐... 음기라든지.. 양기라든지.. 이런거?? 』

 

『응.. 세상에는 크게 음기와 양기라는 두가지 종류의 기운이 있어.. 그와 마찬가지로 귀(鬼)의 세계에도 크게 음지령이란 것과 양지령이라는 것이 있지.. 쉽게 말하자면 흔히 이야기하는 음기와 양기는 생(生)에서 발생을 하는 것이고 음지령이나 양지령이라는 것은 사(死)에서 발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거야 』

 

『양지령이라는 건 뭐라고 할까..? 음... 그러니까 건물등의 앞에 짐승의 모양을 하고 있는 토우같은 것에 깃들여진.. 또는 흔히 무당들이 부르는 장군신이라든지하는 이런 수호령과 유사한 신들로서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것을 좋아하는 신들이지.. 』

 

『음... 예를들면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산신령같은.. 그런거? 』

 

『응 그렇지.. 산신령도 하나의 양지령이라고 말할 수 있지.. 』

 

『그리고 음지령은 흔히 일반 사람들이 귀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혼백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이 죽을때 몸에서 분리되는 혼령이나 꼭 그런게 아니더라도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귀들이 있거든.. 그런 것들을 음지령이라고 생각하면 아마 이해하기 쉬울거야.. 』

 

『음.. 그럼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처녀귀신이나 몽달귀신 이런것들은 전부 음지령이겠네? 』

 

『응..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보통 양지령은 밝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음지령은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폐가라든지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존재하는 것들은 음지령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낮에 나타나거나 활동하는 귀들은 대부분 양지령이지만 그렇다고 음지령이 낮에는 활동하지 못한다거나 양지령이 밤에 활동하지 못하는건 아니야.. 다만, 서로 반대되는 기운을 싫어하기에 그런 것을 꺼려하는 것 뿐이고.. 아무래도 음지령은 양기가 충만한 낮보다는 음기가 충만한 밤쪽이 활동하기 편하니까.. 』

 

『음... 그럼 넌 양지령이겠네? 낮에도 그렇게 활발하게 돌아다니는걸 보면.. 』

 

『아니.. 난 양지령이 아냐.. 음지령은 더더욱 아니고.. 』

 

『그럼 정말 넌 귀신이 아닌거야?? 』

 

『어제는 귀신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네가 조잡한 음지령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해서 그런거고 크게 말해서는 나도 귀(鬼)의 영역에 속해있는건 맞아.. 다만 내 경우는 음지령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양지령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워.. 』

 

『그럼?? 』

 

『어차피 음지령이니 양지령이니 해도 이것도 옛날 인간들이 그렇게 범위를 규정해 놓은 것이라 구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아마도 양지령쪽에 가깝겠지만 난 음지령이나 양지령의 성격을 떠나 혼이나 백.. 귀들을 정화하기위해 존재하거든... 』

 

『정화?? 음.. 그럼 저승사자같은 그런거야?? 』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은 달라.. 세상에서 령이나 혼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것은 비슷하지만 너희들이 저승사자라고 말하는 귀들은 생(生)이 사(死)로 전환될때.. 즉, 생명을 가진 무엇인가가 죽을때 분리되는 혼이나 령들을 귀들의 세계 즉.. 너희들이 말하는 저승으로 데려가는 역활을 하는 거고.. 난 저승사자들이 데려가지 못한 령이나 혼들을 저승으로 돌려보내 정화시키거나 혹은 소멸시키는 일을 하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

 

『으으으음.... 조금 어려워지는데? 』

 

 

갸웃거리며 깊이 생각을 하는듯한 현지의 모습을 보던 도깨비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사람이 죽으면 혼이 육체에서 떨어져나오거든.. 일반적으로 자신의 수명을 다한 사람이 죽을때는 저승사자가 그 령들을 데려가기위해 미리 귀계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와서 기다리거든.. 어떻게 보면 이런것이 호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야.. 하지만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는 경우는 저승사자들이 사후에 이쪽으로 오기때문에 혼령을 찿지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거든.. 그렇게 저승사자들에 의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인도받지 못하는 혼령들은 갈 길을 찿지 못하고 이 세상을 방황하다가 어느정도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리는게 보통이야.. 』

『그런데 그렇게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인도받지 못한 혼령들 중에 강한 원한이나 세상에 대한 미련 또는 집착이 강한 영혼들... 또는 음기나 귀기가 강한 곳에서 발생한 영혼들은 주위의 음기나 다른 령들을 흡수하면서 그 존재를 계속 이어나가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가 흔히 평범한 인간들이 가끔 보게되고 무서워하는 귀신이라는 존재들인데.. 난 이런 영혼들을 소멸시키거나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거야.. 』

『아.. 그렇구나.. 그럼.. 도깨비는 좋은 일을 하는거구나? 』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은 구별 할 수 없어.. 내게 소멸당하는 령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거니까.. 그냥 세상의 법칙을 따르는 것뿐이지.. 』

 

『그렇게 저승으로 가지 못한 귀신들을 정화하거나 소멸시킬때 귀신들이 가만히 있어? 』

 

『일반적으로 한이나 미련으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혼들은 그 한을 풀어주거나 하는 방향으로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정화를 하지.. 하지만 네 생각대로 그런것이 불가능하고 저승으로 가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령들도 있어.. 그런 경우는 뭐.. 어쩔수 없이 소멸시켜야지.. 도깨비는 그런 령을 정화하거나 소멸시키는게 할 일이니만큼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게 세상의 이치니까.... 귀신들이 저항한다고해도 대부분 소멸시키는데 크게 어려운 점은 없어.. 다만... 』

 

『다만..?? 』

 

『도깨비로도 조금 골치아픈 경우가 한가지 있어.. 』

 

『그게 뭔데?? 』

 

『아까도 말했듯이 세상은 크게 너희가 이승이라고 하는 인간세상과 저승이라고 하는 귀의 세계가 있어.. 일반적으로 귀계에 속한 존재들은 인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수 없고 인간계에 속한 존재들 역시 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워.. 그런 이유로.. 도깨비같이 조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귀신들은 분명 인간세계에 존재하지만 가끔 모습을 보인다거나 하는 것 이상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움직인다거나 하는 일은 아무리 큰 힘을 가진 령이라 하더라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

 

『엥?? 그럼.. 가끔 실화처럼 TV나 잡지에 소개되는 영혼이 복수한다거나 하는 일은 전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야?? 』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아.. 』

 

『귀신들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는 없다면서? 그럼 사람을 해치거나 그런 일은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잖아.. 그럼 그 이야기들이 거짓말이라는 얘기아냐?? 』

 

『원래는 그런데... 세상에 귀기와 생기말고.. 또하나의 이상한 기운이 있거든.. 』

 

『그게 뭔데?? 』

 

『사기(邪氣)라는 건데... 』

 

『사기?? 』

 

『응.. 인간이 내뿜는 욕망이나 그런 부정적이고 사악한 기운들이 하나의 기운을 형성하는 것인데... 이게 좀 묘한게 발생자체가 귀의 존재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에게서부터 발생한것이라 그런지 귀기(鬼氣)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면서도 귀기와는 다르게 인간계에 영향을 끼치는 기운이거든.. 귀기와 그 형태를 같이해서 혼령이나 귀들이 이런 사기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이렇게 사기를 어느정도 이상 흡수하거나 받아들인 귀들은 사기때문인지 그때부터 인간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어버리거든... 물론..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네가 말한 그런 것들은 아마도 사기의 영향을 받은 귀신들의 짓일 확율이 높지... 』

 

『아... 조금은 알것같아..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귀신이잖아.. 네가 정화하거나 소멸시키면 그만 아니야?? 』

 

『그게.. 귀기는 없앨 수 있는데 사기는 완전히 없애지를 못해.. 그래서 그런지 사기와 결합한 혼령들은 아무리 도깨비라고해도.. 힘을 약화시키거나 잠시 조용하게 만들수는 있어도 완전하게 소멸시키거나 정화시킬수가 없어.. 』

 

『그럼.. 그런 귀신들은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 근처를 떠도는거야?? 』

 

『아마도 한번 그렇게 도깨비에게 호되게 당한 사기를 머금은 령들은 철저하게 도깨비를 피해다니던지 아니면.. 더 큰 령과 사기 그리고 음지령이라면 음기를 끌어모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

 

『무슨 방법이 있는데? 』

 

『응.. 일단은 귀의 세계에 속해있는 나 혼자로서는 완전하게 소멸시키기 어렵지만.. 귀의 존재가 아닌 인간세계에 있는 누군가와 손을 잡으면 가능해.. 내가 귀이기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것들은 귀가 아닌 인간이 처리할 수 있으니까.. 』

 

『아~ 그럼 무당이나 퇴마사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

 

『음.... 그렇긴한데.... 』

 

『뭐가 또 있어?? 』

 

『너 혹시 엑소시스트라는 영화 본 적 있어? 』

 

『엑소시스트?? 아.. 그 신부가 제령하는 그 영화?? 』

 

『응... 』

 

『거기보면 신부가 제령을 하잖아? 하지만 세상에 모든 신부가 다 제령을 할 수 있는건 아니지? 』

 

『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겠지? 』

 

『그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퇴마사나 무당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건 아니야.. 일반적으로 무당이나 퇴마사는 자신이 섬기는 양지령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오래전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제령의식등을 통해서 제령을 하긴 하지만.. 보통은 인간이 보거나 대화할 수 없는 령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령들을 자연스럽게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거나 아니면 그들이 섬기는 양지령의 힘으로 령을 쫓아내는 수준정도거든.. 즉, 한을 풀어주지 못하거나 자신이 섬기는 양지령보다 강한 힘을 가진 령들은 제령하지 못하는데다 아무리 큰 힘을 가진 양지령이라해도 힘으로 위협해서 쫓아버릴 수는 있어도 혼령을 소멸시키지는 못해.. 혼령을 소멸시키는 것은 저승사자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혼령을 또는 귀를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도깨비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니까.. 더군다나 사기까지 가진 혼령들이라면 아마 아무리 큰 힘을 가진 양지령이라도 어쩔 수는 없을거야.. 』

 

『아.. 그럼 도깨비와 손을 잡은 퇴마사나 무당같은 존재들만 그것이 가능한겠구나? 』

 

『응.. 그렇지.. 』




현지는 어느새 도깨비와의 대화에 푹 빠져서 도깨비의 말을 어느정도는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잠시동안 생각을 하던 현지가 도깨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찿은거아냐?? 』

 

『번지수를 잘못 찿다니? 』

 

『난 퇴마사도 아니고 무당같은것은 더더욱 아니야.. 』

 

『알고 있어.. 』

 

『그런데 왜 나한테 온거야?? 무당이나 퇴마사같은 사람한테 가야하는거 아냐? 』




잠시동안 생각하던 현지는 이 도깨비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깨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도깨비는 현지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간에 어떻게 하려고 찿아온 것은 아닌것 같았고 만약 사기를 가진 령을 소멸시키기위해 인간세상의 협력자를 찿고 있었다면 자신은 무당도 퇴마사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현지에게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현지를 바라보던 도깨비는 현지의 뜻을 이해한듯이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걱정하지마.. 너한테 그런거 안시키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난 그냥 친구를 찿아 온 것 뿐이야... 』

 

『아.. 맞다 전에도 친구를 찿아왔다고 그랬었지?? 그런데 아직도 그 친구는 널 못알아봐?? 』

 

『응.. 좀 서운하지만.. 그런거 같아.. 그래서... 』

 

『그래서?? 』

 

『너랑 친구하려고.. 그 친구가 날 알아볼때까지... 』

 

『아~ 그렇구나... 』


 


현지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도깨비의 말을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현지가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며 도깨비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응??? 야!!!! 』

 

『깜짝이야.. 너 왜 자꾸 코앞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건데!!!! 』

 

『니가 사람이야???!! 그리고!!! 누가 니 친구야??!! 내가 언제 너랑 친구한댔어?! 』

 

『니가 그랬잖아!! 다음에 나랑 같이 놀아준다고!! 』

 

『그건 니가 쪼만한 꼬맹이 모습으로 쓸데없는 고집피우니까 그런거고!! 』

 

『헉.. 너 그럼 거짓말한거야??!! 그 쪼그맣고 순진한 어린애한테??!!! 악마!! 』

 

『더헉..!! 누구보고 악마라는 거야!! 귀신은 너잖아!!! 귀신한테 그런소리 듣고싶지 않거든???!!! 』


 


또... 시작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또다시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도깨비가 자신들이 얼마나 유치하게 놀고 있는지 깨달았는지 어느순간부터 갑자기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이 녀석만 만나면 이렇게 투닥거리면서 싸우게 되면서도 이렇게 말을 섞다보면 이 녀석이 싫지않은 느낌이 드는 현지였다. 한참을 키득거리고 웃던 현지가 말했다.




『근데 궁금한게 하나 생겼는데 말야.. 』

 

『또 뭔데? 』

 

『너가 한을 풀어주면서 영혼들을 정화한다고 그랬잖아?? 』

 

『응.. 그랬지.. 』

 

『근데.. 예를들어서 홀로 남겨진 부모가 걱정되는 혼령에게는 부모와 대화를 하게 해준다던지.. 부모가 괜찮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한을 풀어주면 될거고.. 연인을 잃어버린 영혼에게는 연인을 찿아준다던지... 아니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던지.. 그런식으로 한을 풀어주는거야? 』

 

『음.. 뭐 대부분 그렇지?? 보통 그런 귀들의 한이나 미련이라는게 보통은 자기 스스로의 걱정이나 상심에 빠져서 발생한것들이니까 그 령들이 납득할만한 상황을 마련해주면 되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

 

『그럼.. 처녀귀신의 한은 어떻게 정화해줘? 이미 처녀인 상태로 죽은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거잖아? 』

 

『음.. 그런 경우에는 보통 총각으로 죽은 영혼이나 이런 영혼들과 짝을 맺어주지 』

 

『항상 그렇게 짝이 있는건 아닐꺼아냐?? 아니면.. 총각귀신이 처녀귀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을거구.. 』

 

『그렇지는 않아.. 보통 령의 한이라는 것 자체는 인간세계처럼 복잡한게 아니기때문에 인간처럼 서로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이런것보다 보통 처녀귀신의 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이나 남녀의 결합 그 자체에 있는거라서 네가 말한것처럼 그렇게 서로 거부하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그런 영혼들끼리 서로 연결해주면 돼.. 하지만 네 말대로 항상 그렇게 상대를 찿을 수 있는건 아니야.. 』

 

『그럼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해?? 그냥 소멸시켜?? 그럼 너무 불쌍하잖아.. 』

 

『그렇지.. 아무리 내가 귀를 소멸시키는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되도록 사기와 결합된 귀가 아닌 이상 되도록 소멸까지 가지는 않게 하려고 해.. 그런 이유에서 어쩔수 없이.. 네가 말한 그런 경우에는 내가 그 상대가 되어주지.. 』

 

『네가??? 그럼 네가 직접 처녀귀신과 결혼한단 말이야?? 』

 

『응.. 아마 인간세상의 기준으로 따지면 내 부인은 수천명은 될껄? 우히히 』

 

『뭐???!! 이런 변태.. 바람둥이 귀신같으니라고!!!!! 』

 

『변태라니!! 니 말대로 소멸시키는건 너무 불쌍하잖아.. 』

 

『정말 불쌍해서가 그 이유야?? 그것 뿐이야?? 』

 

『음...... 』

 



도깨비가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자 현지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도깨비에게 말했다.




『변태..... 』

 

『히히히..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는거니까.. 』

 

『그럼.. 총각귀신에게 그런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해?? 넌 남자니까 총각귀신이랑 결혼할 수는 없을거아냐?? 』

 

『아~ 총각귀신?? 그런 경우에는 당연히.. 』

 

『당연히?? 어떻게 하는데?? 』

 

『그냥 쌩까지... 』

 

『아하~ 그러면 되는구나... 』

 

.
.
.

 

『............. 』

 

.
.
.




『응???!! 야!! 그런게 어딨어!!! 』

 

『그럼 나보고 남자랑 결혼하란 말이야??!! 남자랑 합궁하란 말이야??!!! 』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야!! 그래도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

 

『불공평해도 어쩔 수 없어!!! 죽어도 남자랑 그런짓은 못해!!! 난 여자가 좋단말야!! 』

 

『그런짓?? 너.. 너.. 그럼.. 설마 너랑 결혼했다는 그 수천명이랑...??!!! 』

 

『아.. 음... 뭐... 음.... 』

 

『으아~~!! 절루갓!!! 』



현지는 엄청난 호색한을 보고있는듯한 느낌에 책상에 걸터 앉아있는 도깨비를 냅다 떠밀어버렸다. 갑작스럽게 현지에게 밀려 책상아래 바닥으로 떨어진 도깨비가 아프다는듯한 표정으로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어구구.. 사람.. 아니 도깨비 잡네... 』



의자에서 일어서서 엄살이 가득 베어있는 도깨비의 모습을 보던 현지가 그런 익살스러운 모습에 참지못하고 끝내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쨌든.. 나 자는동안에 절대로!! 내 근처에도 오지마!! 바람둥이 도깨비씨!!! 』



현지의 말에 엄살을 부리며 바닥을 뒹굴던 도깨비가 바닥을 등지고 누은채로 현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하늘 색이네... 』



엄살이 가득한 표정이 사라지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도깨비가 말하자 현지가 천장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듯이 도깨비에게 물었다.



『뭐가?? 』

 

『색이... 』

 

『색?? 무슨 색?? 난 잘 모르겠는데?? 』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도깨비가 말한 하늘색 비슷한 색을 열심히 찿고있던 현지의 귀에 도깨비의 말이 들려왔다.




『니가 입고 있는 팬티 색... 내일은 무슨 색으로... 』

 


쿠웅....!!!

 



도깨비의 말뜻을 알아차린 현지가 화들짝 놀라며 누워있는 도깨비의 얼굴을 발로 밟아버렸다. 도깨비의 너무도 엉뚱하고 어이없는 말에 너무 놀라 자기도모르게 한 행동이었지만 밟고 있는 도깨비의 얼굴은 딱딱한 사람의 두개골의 느낌이 아닌 마치 푹신한 벼개나 스펀지를 발로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버버..!! 』

 

『이런!! 8000살 먹은 노인 변태 색귀같으니라고!!! 』


현지가 발을 떼자 얼굴이 현지의 발모양으로 움푹패여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지 도깨비의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오지않고 그런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대로 말까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도록 버버대고 있었다. 현지는 이것도 도깨비의 장난이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삐진듯이 도깨비에게 말을 하고는 침대의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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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침대에서 누워있던 현지는 예상외로 주위가 너무도 조용해 살며시 이불속에서 얼굴을 빼어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지가 화를내듯이 한 말때문인지 도깨비는 현지에게 다가오지 않고 방 한쪽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한 자세로 꼼짝도 않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 현지는 또다시 조금은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왔다.



『거기서 그러지말고.. 침대에.. 와서 자... 』

 


현지의 말에 도깨비가 고개를 들고 현지를 바라보았다. 왠지 장난기가 가시고 진지해진듯한 도깨비의 눈과 마주치자 현지는 조금 무안한 생각에 시선을 돌리며 조용하게 말했다.




『대신 이상한짓하면 정말 다시는 널 안볼거야.. 』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침대위로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현지가 또다시 조용히 말했다.




『전에.. 처음 만났을때부터 궁금한게 하나 있었는데... 』



잠시 말을 끊은 현지가 잠시후 말을 이었다.



『이름이.. 뭐야? 』

 


현지의 질문에 도깨비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잠시동안 도깨비의 대답을 기다리던 현지가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않자 포기한듯 눈을 감았다.



『치우... 』



눈을 감은 현지의 등뒤에서 하나의 이름이 현지의 귀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치우.. 좋은 이름이네.. 』

 

『잘 자.. 』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잠에 빠져든 현지의 얼굴위에 도깨비의 손이 올려졌다. 현지의 얼굴위로 올라온 도깨비의 손은 잠결에 흘러내린 현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올려주고 있었다.




『괜찮겠지....? 』

 

『이해해 주겠지..? 그렇지..? 지아야..? 』




의미모를 말을 하고 있는 도깨비의 얼굴에서부터 하나의 물방울이 옆으로 돌아누워 잠들어 있는 현지의 뺨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현지의 뺨위로 흘러내려 동그랗게 망울진 물방울속에서 검고 긴 머리를 한 여자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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