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51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51 부 **
제 17 장. 심심상인(心心相印; 마음으로 서로의 뜻이 통하다) 1.
- 크르르르릉..!
상관명이 비연선원(秘緣仙院)의 밀실(密室) 운향원(雲香院)으로 들어서서 벽 한 모퉁이에 장식
이 되어 놓여있는 거북의 머리를 손으로 슬쩍 누르니 막혀 있던 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아담
한 내실이 눈앞에 드러났다. 그 내실의 실내에는 부상을 당해 이곳으로 후송되어 온 조평환과
그의 아들 조익균이 나란히 침상에 누워 있었고 그 두 사람의 주위에는 학련(鶴蓮)과 구(龜)
그리고 홍련채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주군..! 」
「 노고(勞苦)가 많으셨습니다. 궁주님..! 」
모두 실내로 들어서는 상관명을 맞이하고 있다.
「 홍련채주.. 화염에 휩싸여 있는 용정장원(龍亭莊園)에 숨어 조평환을 지키느라 고생하셨습
니다. 구(龜)도 국경을 수습하느라 수고했다..! 」
「 아닙니다 주군..! 모두 주군께서 미리 귀뜸을 해준 대로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공(功)을 자신의 주군에게 돌리려는 구(龜)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
보며 상관명이 누워있는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갔다.
실눈을 뜨고 보고 있던 조평환의 부자가 겨우 몸을 일으켜 침상의 가장자리에 기대는 것을 본
상관명이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이제 기력을 회복들 하셨는지..? 내가 좀 살펴볼까요..? 」
팔을 뻗어 두 사람의 손목을 쥐고는 맥을 살피던 상관명이 만면(滿面)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 다행이 두분 모두 고비를 넘겨 이제는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
「 우리 부자의 목숨을 구해주신 공자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몸을 겨우 추슬러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조평환에게 손사래를 쳤다.
「 아니.. 아닙니다. 목숨은 모두가 귀히 여겨야지요. 그런데 조대인께서는 혹시 누구에게 금
제(禁制)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
상관명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위에 둘러선 모두가 의아한 눈빛을 하며 조평환을 바라보고 있
었다.
「 어헛 공자..!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
오히려 조평환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관명을 올려다 보았다.
「 예 조대인.. 대인의 몸속을 지나는 혈(穴)이 어느 순간 정체되는 것을 반복하여 일정기간
동안에 그 혈을 해혈(解穴)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막혀 있습니다. 누군가가
대인을 조종(操縱)할 목적으로 점혈을 한 것으로 보여져 여쭈어 보았습니다. 」
「 예.. 잘 보셨습니다. 오래전 복면을 한 흑의인에 의해 그리 당한 것입니다. 달포에 한번씩
그가 찾아와 해혈(解穴)을 해주고는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 흑의인이 요구한 것이 모두 서문
인걸의 인망(人望)을 두텁게 만들려는 시도였었고 그 흑의인의 정체가 결국은 서문인걸의 아비
인 서문상현이었다는 사실이 용정장원(龍亭莊園)에서 저와 맞닥뜨려 밝혀진 것이지요. 」
「 자신의 아들인 서문인걸을 도우려 한 것이겠지요. 제가 모두 해혈(解穴)을 하였으니 더 이
상의 금제(禁制)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안심을 하셔도 됩니다. 」
상관명은 모든 일련의 사태를 짐작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평환에게 안심을 시켰다.
「 고맙습니다. 공자.. 그런데 모두가 노리고 있는 우리 부자의 목숨을 무슨 마음으로 구하셨
는지..? 」
그래도 일국을 호령하던 재상이 아니던가..! 조평환은 분명 이사람들이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으리라 짐작하여 그 연유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 하하.. 목적이라..? 그래..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보다 조대인께 한 가지만 물어도 되
겠습니까..? 」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답을 하는 상관명의 말을 들은 조평환이 오히려
어리둥절 긴장된 표정이었다.
「 예.. 공자..! 무슨 말씀이든지 하문을 하십시오..! 」
「 조대인.. 그리고 익균공자..! 서문인걸이 황보승대인을 앞세워 두 분을 탄핵을 하고 목숨까
지 취하려 한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던 조평환이 겨우 마음을 다잡은 듯 입을 열었
다.
「 그건.. 나의 잘못이겠지요. 권력에 심취해 황실도 안중에 없었고 또한 백성들에게 조차 나
의 힘을 과시하며 권세를 혼자 손에 쥐고는 전횡(專橫)을 일삼은 나의 부도덕함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익균 이놈은 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외다. 」
그래도 자식은 두둔하고 싶은 아버지의 정(情)이었다.
「 맞습니다. 그점이 저들에게 명분을 제공한 것이지요. 조대인은 그리 말씀 하시지만 아버지
의 위세(威勢)를 등에 업고 천방지축(天方地軸) 날뛰던 익균공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상대는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거사를 이루는 명분으로 삼은 것입니다. 」
「 예.. 공자..! 맞는 말입니다. 이 지경이 된 우리 부자가 더 이상 무엇을 말하리까..! 지난
일 후회 한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아무리 반성을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 결
심을 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요. 」
「 하하하.. 조대인.. 다시 전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또다시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을까요..? 」
탐심(貪心;부당한 욕심)을 부추기듯 농담처럼 하는 상관명의 말에 두 손을 흔들며 질겁을 하는
조평환이었다.
「 아이구.. 공자..! 그런 말 마십시오. 나락(奈落)에 떨어져 지옥의 문턱을 헤매다 겨우 살아
난 목숨입니다. 이 폐인(廢人)들을 어디에 쓸 곳이 있다고 목숨을 살리셨습니까..? 」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것..! 또다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한 이유를 묻고 있었다.
「 하하하.. 글쎄요..? 조대인께서도 처음 조정의 수장자리에 올랐을 때는 그 경륜(經綸)을 백
성을 위해 펼쳐 보이리라 각오를 다지지 않으셨소이까..? 」
말을 하며 상관명은 빙긋 미소를 띤 표정으로 조평환을 바라보았다.
「 허허허..! 그랬지요. 그러나 권력의 속성이 사람을 너무나 쉬 바꾸어 놓더이다..! 」
그 말에 맞장구치듯 대답을 하는 조평환의 얼굴에는 회한(悔恨)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 그렇지요..! 조대인께서도 초심(初心)을 버리고 그리했을 진데, 지금 새로이 조정의 수장이
된 황보대인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는 또한 서문인걸이라는 걸출한 인물까지도 등뒤의 배경
으로 삼고 있는 위의(威儀) 당당한 사람입니다. 」
갑자기 조평환이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권세의 맛에 심취해 온갖 권력을 스스로를 위하여 휘두른 사람이 아닌가..? 새 세상을
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정의 혁신을 도모한 황보승(皇甫承)의 무리들 또한 권세를 탐하기
시작한다면 무력(武力)까지 보유해 황실까지 넘 볼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상관명의 말속에 숨겨진 뜻..! 한동안 그 마음속 깊이 의미를 생각하던 조평환의 가슴은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조평환을 말없이 바라보던 상관명이 정중하고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 예.. 조대인어른..! 짐작하시는 대로 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나라와 백성이 또다시 그런
꼴을 당해서는 안되겠지요. 아니 당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때문에 대인어른의 힘이
아직은 필요한 때이외다. 이제 저에게 조대인어른의 목숨을 구해준 빚을 갚아 주십시오..! 」
눈을 둥그렇게 뜨고 상관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조평환이 입을 열었다.
「 공자.. 알겠소이다. 그러나 날개 잃은 지금의 저는 일개 힘없는 노인에 불과한 신세, 무엇
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습니까..? 」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며 내뱉는 조평환의 자조 섞인 말이었다.
「 아닙니다 대인어른..! 비록 대인어른은 권력의 핵심에서 쫒겨났다고는 하나 아직은 조정 구
석구석 조대인 어른을 따르는 인맥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익균공자 대신 황보대인의 아들인
황보정이 지휘하게된 국경의 병력들 속에도 익균공자와 가까운 수족들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들을 한사람 빠짐없이 조정에 남아 자리를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니 조정이나 국경의 모
든 일들에 균형을 이루도록 암암리 연락을 취해 주십시오..! 」
「 자.. 잠깐만 공자..! 공자의 말속에는 분명 지금보다 더한 거센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암
시가 들어있습니다만..! 」
당황스럽게 묻고 있는 조평환의 말에 말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득이는 상관명의 입에
혼잣말처럼 조그만 소리가 흘러 나왔다.
「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모두가 진정으로 기원을 해야겠지요..! 」
* * * * * * * * * *
언제 소란이 일었는지 한바탕 광풍(狂風)이 지난 조정(朝廷)은 겉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
었으나 강호는 폭풍전야(暴風前夜)의 불안스러운 정적(靜寂)으로 오히려 음산하기까지 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도 낙양성 동쪽 백마사(白馬寺) 아래의 낙읍객잔(洛邑客棧)은 강호의 협객들
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문가(西門家)..!
높은 대문위에 화려하게 걸려있는 현판 무상서문가(無想西門家)..!
한동안 폐허처럼 버려져 있던 건물은 웅장한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이 되어 위용(威容)을 자랑
하고 있었다.
그 서문가(西門家) 안채의 내실에서 조용조용한 말소리가 흘어 나오고 있었다.
「 아버님.. 그 철없던 아이가 무엇이 그리도 두렵기에 모두들 이리도 조심스러워 하고 있습니
까..? 소녀가 당장 만나보고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겠습니다. 」
서문화령(西門華怜)이 조심조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부친을 바라보며 별 걱정을 다하고
있다는 듯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 어허.. 또..!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일렀거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구나..! 」
서문인걸의 꾸지람을 들은 화령(華怜)이 볼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는 서문인
걸과 새로이 조정의 수장(首長)에 오른 황보승(皇甫承), 서문인걸의 부친 서문상현(西門相賢)
이 함께 자리하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도 소림사(小林寺)의 달마동(達磨洞)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는 또 한사람 의외의 인
물 혜승대사(惠昇大師)가 금강염주(金剛念珠)를 손에 들고 눈을 감은 채 그들의 말을 듣고 있
었다.
「 황보대인.. 조금은 바삐 움직여야겠습니다. 일전에 본바와 같이 황제가 친정(親政)의 욕심
을 부리고 있습니다. 조정이 혼란스러움을 틈타 황제의 친위(親衛)세력을 구축하여 힘을 과시
하려 작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 」
서문인걸은 황보승을 향해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 저도 그리 보았습니다. 폐하는 분명 예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요. 혹시
어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지..? 」
황보승 자신도 도저히 알 수 없는 황제의 변화였다.
그전 까지만 해도 조정에 어떤 분란이 일어도 침궁(寢宮)에 틀어 박혀 나서지도 않고 간섭조차
하지 않던 황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조정은 힘을 가진 자에 의해 혁신을 이루었고 그 힘을
뒤에 업은 혁신세력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단지 권력의 주체만 바뀐 것이었다. 황제에게는 조
정이 혁신을 하기 전이나 그 후의 모든 상황이 꼭 같은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황제의
위의(威儀;위엄이 있는 태도)가 불현듯 바뀌어 버린 것이다.
「 아마 그 아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날 그 아이의 태도를 보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신속
히 대비를 해야겠다는 말입니다. 」
황보승도 동감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야 할 것입니다. 겨우 조정을 손에 넣은 지금인데 황제가 힘을 갖기 전에 빠르게 장악
을 해야 하겠지요. 」
서문인걸은 황보승의 말에 결심을 굳힌 듯 결연한 표정으로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 이제는 강호의 힘을 모두 한곳으로 집결을 해야겠습니다. 소림(小林)과 숭정방(崇正邦)은
지난번의 거사때 함께 움직였으니 안심이고 그때 가장 소극적이었던 진양문(眞陽門)을 다잡기
위해 서둘러야 겠습니다. 그리고 산동(山東) 태안(泰安)에 있는 제갈세가(諸葛世家)의 제갈가
주도 급히 만나보아야 할 것이외다. 」
소림방장 지원대사(智元大師)와 깊은 인연이 있는 제갈가의 가주 제갈청운(諸葛靑雲)까지도
지원방장을 통해 우군으로 만들려는 서문인걸의 복안이었다.
「 그 일들을 혼자 움직여 모두 마무리 하시려는 것이오..? 」
「 아닙니다. 소림(小林)은 여기 스승님께서 계시니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지원사형만 움직이
면 되겠지요. 그리고 숭정방(崇正邦)은 방주가 이곳 개봉에 있으니 아버님께서 한번 더 그들을
독려해 주십시오. 」
「 그렇다면 다른 곳은..? 」
「 예.. 황보대인께서는 황궁의 사정을 면밀히 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아드님인 황보정공자께
연락을 하여 그곳의 병력을 철저히 장악하라고 일러두십시오. 다른 곳은 제가 연환서숙에 들려
서숙의 서생들을 분기(奮起;분발해 일어남)시킨 후 그들을 만날 것이외다. 」
역시 상관명의 짐작 그대로였다.
그 짧은 순간 손에 쥔 권력이지만 벌써 그 맛에 젖어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 당해왔던 온갖 치욕들이 마음 깊이 새겨져 이제 드디어 손에 쥔
자신의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웅심(雄心)이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 허허허.. 나무아미타불..! 인걸아.. 과욕(過慾)은 금물이니라.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가는 길이 옳은가 깊이 생각하여 움직이도록 하여라..! 」
불문의 고승(高僧)인 혜승대사(惠昇大師)의 눈에는 서문인걸의 대망(大望)이 뚜렷이 보였다.
그러나 그 욕망(欲望)가득한 마음이 어쩐지 조급하고 불안해 보이는 것이었다.
분명 선승(禪僧)의 눈에는 그리 보이고 있었으나 혜승대사(惠昇大師)의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는 소림(小林)의 번영을 바라는 욕심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