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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輪 2부 2편 <만남>

황산(黃山)을 보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험준하고 웅장한 산세, 항상 산허리께를 감싸고 있는 안개 구름에 가려진 산정은 신선들의 거주지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도원곡은 바로 그 황산의 심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 틈으로 세워져 있는 작은 석문 앞에서, 앞장서 있던 우견이 뒤를 돌아보며 흑운에게 당부했다.


" 여기부터는 좀 복잡한 곳이라서... 제가 밟은 부분만 밟고 따라오셔야 됩니다. "


흑운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은색 장창을 들고 우견을 따라 안개가 자욱한 계곡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길은 상당히 복잡했고 또한 위험했다. 자연을 이용한 천하의 절진은 시시각각으로 생문과 사문이 변화하는 묘용이 있었기에 그 진을 뚫고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나라, 구려라 불리었던 옛 신시(神市)의 백성 중에 뽑은 무인들인 조의들이 유일하게 면역이 없는 것이 바로 이 황인들이 만들어 낸 진법이었다. 이에 대해 잘 아는 안내자를 대동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지녔어도 꼼짝없이 안개 속에서 귀신이 될 것이었다.


흑운은 바로 앞에서 앞장서 가는 우견의 등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농무를 헤치고 나가 비로소 빛이 드는 곳에 도착했다.


" 다 왔습니다. "


한참을 진법이 일으키는 안개로 뒤덮힌 어두운 숲 속을 헤메고 난 후, 우견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곳은 별천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은 계곡 아래의 제법 넓은 분지였는데, 사방에 복숭아나무가 서 있었고 남녀노소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


" 좋은 하루가 되시길. "


그들을 시커먼 옷차림의 낮선 이를 보고도 스스럼 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치 흑운이 내뿜는 어둠.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나오는 듯한 어둠의 기운 따위는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다는 듯이.


" 이쪽입니다. "


계곡을 향해 떨어지는폭포 옆, 절벽위의 작은 정자 앞에서 우견의 걸음은 멈추었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엄숙해져 있었다.


" 어서 오시오. "


정자 위, 선풍도골의 노인이 네사람의 소녀와 각각 따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누른 장포에 새겨진 은빛 비늘을 가진 뱀은 머리와 꼬리가 각각 두 개씩 이었다. 황인의 시조라는 태호/복희씨의 상징으로, 헌원의 군기로 쓰인 문양을 대하자 흑운의 눈동자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 한때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증오해야할 적이었던 존재. 황인들의 시조이자, 아직도 그 이름이 끊이지 않은 헌구의 자손이 여기 있었다. 물론 지금의 그들의 자손들에게는 경멸할 가치 정도밖에 없지만.


팍!...


나직한 소리와 함게, 흑운은 창대를 땅에 꽃아 세우고 정자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사 노인은 흑운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운이 노인과 마주 서자, 바둑판은 치워지고 소녀들은 물러나 정자의 사방에 앉았다.


" 앉으시오, 보다시피 별로 대접할건 없는 누추한 곳이라오. "


흑운이 자리에 앉자. 소녀 중의 한명이 작은 쟁반에 다과와 차를 차려 내 왔다. 독이 있는지 따위도 보지 않은채 복숭아 조각을 입에 털어넣기를 기다려, 노인은 자기소개를 했다.


" 내 이름은 하마(夏瑪)라 하오. 이 도원곡의 곡주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오시며 보았듯이 우리는 무림세력이 아니오. "


" ... "


" 한때, 탁록을 누가 차지하는가를 가지고 서로의 조상님들이 싸웠던 옛일은 이제 어린 세대들에게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옛일이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시의 백성들과 우리 헌원의 백성들은 모두 다 이제 천하의 패권과는 무관하게 되었소이다. 우리 둘, 서로 상대방이 어느정도인지는 익히 알만한 세월을 살아왔소. 그래서 말이 통하리라고 생각해서 제안하는 것이지만... "


" 본론을 말하시지. "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 역시, 바로 본론이라. 좋소, 좋아요. "


그는 자신의 긴 은빛의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 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 일단 변명부터 하고 봐야겠소. 공의 내자(안사람,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이오. 그녀의 죽음은 우리 헌원의 일족과는 무관하오. "


" ... "


" 그리고 지금의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리들 말인데, 공도 아다시피 무림성의 조무래기 아해들은 혼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를 그릇이 못되오. 공의 내자의 죽음 뒤에는 누군가 흑막이 있소. 애시당초 우리가 알았다면 극구 말렸을거요."


" 흑철령에 대해서 말할 것이 있다던데. "


흑운의 언급에 하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게 그 얘기요. 최근 우리 곡을 지키던 몆몆 인사들 중에 그 신비 세력에 복종해 수하가 된 자들이 있소. 공이 마주친 당추 같은 자들이오. 그래서 우견이에게 언질을 주어 보냈던 것이라오. 보아하니 이미 늦은것 같지만... "


" 아직 숨은 붙어있소. "


" 그렇소이까? 그럼 다행이군. 나중에 취조하면 무언가 나오겠지요. 하여간에, 그들이 이 흑철령을 징표로 사용하고 있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물건은 모조품이오. "


하마는 또다른 흑철령을 흑운에게 건네주었다. 확실히 그것은 모조품이었다. 서로 차를 한모금씩 마신 후, 하마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나로써는 왜 그 중의 세력이 그것을 징표로 사용하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소. 확실한 것은, 그들이 포섭하고 있는 자들은 정사도를 가리지 않소. 그리고 은거 기인들, 그중에서도 당신처럼 혼자서도 일개 문파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해치울만한 실력을 가진 진짜 실력자들 만을 영입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


" 우리가 공에게 제의할 것은 두가지요. 첫째는 암중세력에 대항하는 눈과 귀, 그리고 손발이 되어 주겠다는 거요. 그리고 두번째는 이거요. "


하마가 자신의 풍성한 소맷자락에서 꺼낸 것은 옥으로 만든 작은 피리였다. 순간 흑운은 보기 드물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중원에 출도해서 처음으로 보이는 감정표현 이었다.


" 그걸 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


그 피리는 백화(白花)의 것으로, 흑운이 그녀에게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내공으로 옥을 다듬고 속을 파내는 것은 보통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재주지만, 그에게는 별일 아니었다. 하마는 그것을 다과 옆에 내려놓았다.


" 오해하지 마시오. 암중세력을 탐색하던 중에 가로챈 물건들 틈에 있었던 것이니. 옥을 내공으로 녹여서 피리를 만드는 재주는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소. 공의 내자의 죽음에는 그들도 한몫 한것 같다는 우리의 추리는 이것 때문에 더 확고해졌고. "


" ...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 공의 무력(武力)이오. "


다시 차를 한모금 들이킨 뒤, 하마의 말이 이어졌다. 흑운은 상 위에 놓여진 옥피리를 품에 갈무리했다.


" 공이 잡은 당추 같은 자들을 말단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오. 암중세력의 지도자는 분명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일 것이오. 나로써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하지만 공이라면 가능하겠지요. "


" ... "


" 나는 이제 늙었소이다. 공 같이 영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한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 목적은 이 도원곡이 바깥세상의 업화(業火)와 무관하도록 안전하게 주민들을 지키는 것이오. 그것을 위해서라면, 과거 우리와 맞서왔던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는 일은 부끄럽지 않소. "


하마는 복숭아를 집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다과상은 이미 거의 비어 있었다.


" 비록 무공은 당신보다 못할지 모르나 우리 일족은 그동안 중원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해 두었소이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이 암중 조직을 분쇄해 주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오이다. "


" 무림이 완전히 초토화된다 해도 말인가? "


" 말하지 않았소이까. 우린 이미 무림세력이 되길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고. "


흑운이 보기에, 그는 대단한 실력자이긴 했지만 과거 그와 맞싸웠던 헌원가의 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를 데리러 온 심부름꾼인 우견이 그보다 훨씬 고수였다.


" 그 제의에 응하겠다. "


" 그러리라 생각했소. 제휴가 성사된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술 한잔 하시겠소? "


흑운은 대답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가 정보원을 죽이지 않도록, 정보원을 식별하는 방법이나 알려달라. "


" 잘 아시지 않소이까. 예전부터 써왔던 방식이지만, 우리 정보원들은 옷단 끝을 장식한 은실에 헌원일족 특유의 세공이 되어 있소이다. 공이라면 아무 무리 없이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으실 테니 다른말은 하지 않겠소이다. "


" 그럼 나는 돌아가겠다. "


" 잘 가시구려. "


우견이 흑운을 마중하기 위해 돌아섰을때, 그의 신형은 이미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때엔 바로 앞에 꽃혀있던 창이 사라져 있었다.


" 아니? 어딜 가버린 거죠? "


포권을 마친 후, 하마는 눈이 휘둥그레진 우견을 보며 말했다.


" 이미 왔던 길로 돌아갔을게야. 신인(神人)이로다... 과거 우리 조상님들이 저런 자들과 맞서 싸워 이 중토를 지켜낸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야. "


" 그렇지만 저자는 편복우사 에게도 쩔쩔 메던걸요. "


우견의 말에 하마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 네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더냐? 무인에게 자신의 싸움방법을 보여 준다는 것은, 그를 단련시켜주는것에 진배 없단다. 그래서 적당히 상대한 것이지. 실제로는 너와 나, 그리고 이 곡에서 무공을 익힌 모두가 한자리에서 그와 맞선다 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우리 쪽일 게야.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서 천국(天國)의 수호자인 게지. "


사시사철 도화가 만발해 있는 도원곡에도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었다.


" 그나저나, 편복우사가 살아있다니, 조금 솜씨를 발휘해 볼까?... "


잠시, 그동안의 후덕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을 차가운 한기가 노안(老眼)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몽화는 그동안 흑운과 동행하면서 그의 싸움을 수십여차례의 보아 왔다. 하지만 이번같은 이상한 결전은 처음이었다.


온통 붉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사내가 흑운의 앞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까지 온통 붉은 빛이 돌고 있는 이 사나이는 흑운과 무언가 그녀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주고받았고, 흑운은 말에서 내렸다. 헌데 말에서 내린 흑운과 그 붉은 장포의 사나이 사이에는 족히 수십장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마치 일격 필살을 노리는 살수와 같이 대치하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게 벌써 일주야가 지나고 있었다.


틱... 틱!...


철이른 낙화. 꽃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두 사람 사이의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듯이 날아든 순간, 몽화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일이 벌어졌다.


꽃잎이 정확히 반씩 해괴한 방식으로 [파괴]되었던 것이었다. 한쪽은 생기를 잃은 채 검게 [사그라 들었]고, 반대편은 약간의 연기와 함게 순식간에 타올라 사라졌다. 아니 타올랐다는 표헌보다는[증발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었다. 연기가 피어오른 순간 이미 꽃잎의 반쪽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비로소 몽화는 흑운과 대치하고 있는 이 붉은 눈의 사내가 적어도 흑운을 말에서 내리게 할 정도의 강자라는 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그녀의 역량으로 흑운의 그릇을 알 수 없었던 것 처럼, 붉은 눈의 사내 역시도 알 수 없었다.


" 왜 내 앞을 가로막는가. 적랑(赤狼). "


붉은 눈을 가진 사나이, 적랑이라 불린 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 서토(고구려에서 중원을 지칭하는 말)에서의 은원은 이만 정리할 때가 되었지 않나. 백화가 죽은 것은 들었지만, 무고한 자들 까지 이렇게 도륙하며 지나간다고 해결될 일인가? "


" 그래서. 자네는 내 앞을 가로막고 무엇을 할 작정인가. "


" 대조영이라는 아해가 새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자손들이 나라를 반석 위에 둘 때 까지 도와주라는 부탁을 받았네. "


" ... 내 문제는 아니지 싶은데. 나는 오직 태 대대로(연개소문)에게만 충성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


" 연태상은 돌아가셨잖는가. "


" 돌아가신 그분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것은 그대도 마찬가지일테지. "


적랑이라 불린 사내의 붉은빛을 띈 선이 굵은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기억하게 하는 흑운의 말에 약간 자극을 받은 표정이었다.


" ...우리끼리의 내분으로 정작 우리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에 없었던 것은 태 대대로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 일. 그래서 나는 새 나라에 힘을 보태어 왔네. 그것으로 속죄하고 싶어서... "


흑운이 적랑의 말허리를 끊었다.


" 그런 것으로 속죄가 된다니, 자네도 참 맘편한 사람이었군. "


" 비꼬지 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골에 처박혀서 혼자 여유롭게 살아온 것은 누구인가? 여자 하나 때문에 [하나의 나라를 멸망시킬 힘]이라 불린 그 능력을 엉뚱한 곳에 쏟아 붓는것은 또 어떻고! "


이번엔 흑운의 검은 눈썹이 꿈틀 했다.


" 그러고보니, 우린 아직 연태상이 돌아가신 직후에 벌였던 싸움의 결착을 내지 않고 있었군 그래... "


" 그렇지. 오랜만에 서로 주먹을 맞대어 누가 옳은 쪽인지 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


다음 순간, 정적이 깨졌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성이 울리며, 두사람의 신형은 몽화의 시야에서 사라졋다.


파팟!...


피이잉!!...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 귀로 들을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 파공성과 폭음. 인간으로써는 도달할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영역의 힘의 격돌이었다. 순식간에 십수그루의 나무가 증발해 사라지는가 하면, 땅이 검게 녹으며 구덩이가 패이고, 튀어나간 충격파에 족히 수십장은 떨어져 은신해 있던 몽화마저 내상을 입었다.

 

 그 충격파는 호신강기로 가려지는 따위의 성질의 힘이 아니었다. 심각한 중상이었다.

콰앙!!!


어느순간. 두사람은 주먹을 맞댄 채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얗게 백열하는 섬광이 번쩍이고, 커다란 두개의 구덩이가 새로 생겼다. 두사람이 튕겨져 나가 땅바닥에 처박힌 여파로, 관도가 완전히 끊어질...아니 이후 복구 가망이 없을 정도의 거대한 구덩이 두개가 새로 생겻다. 관도 양쪽에 있던 나무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땅 거죽엔 군데군데 이상하게 검게 변색된 부분 이나 하얗게 타오르고 남은 흔적들이 얼룩처럼 남겨져 있었다.

 

 그것은 신들의 전투, 모든 것을 태우는 힘과 모든 것을 죽이는 힘 끼리의 대결이었다.

" 오랜만에 제대로된 싸움을 해 보는군. "/흑운


약간 먼저 일어난 흑운의 전신은 바위조차 녹일 정도의 고열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주변의 대기가 열을 머금고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토양이 증기를 내뿜으며 녹아 흐물거리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었다.


" 산골에 처박혀 있었다더니, 솜씨는 녹슬지 않았군. "/적랑


반면에 적랑의 온 몸은 생기가 빠져나간듯 창백했다. 눈 아래에는 검은 기미가 보였고, 그의 입가로는 시커멓게 변색된 죽은 피가 한줄기 맺혀 있었다. 구덩이 주변의 토양은 완전히 시커멓게 썩어버린 채로 변색되어 있었다. 추후 거기에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을 것이리라.


둘은 웃음을 교환했다. 입에서 피를 게워내면서도 은신을 유지하던 몽화는 거기까지를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중상을 입은 그녀의 입가로 한줄기 피를 흘리며 땅바닥 위에 쓰러진 그녀는 비로소 적랑의 눈에 들어왔다.


" 대단한 솜씨군. 여태까지 거기 있는걸 몰랐어. 자네를 노리던 자객인가본데. "


" 지금은 기이한 동행이지. "


" 보아하니 여인 같은데. 그것 때문에 살려준건 아닐테고, 게다가 데리고 다니다니. 무슨 바람이 분건가? "


" 글쎄... 가르칠 만한 녀석이랄까. "


적랑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 새로운 제자라니. 대체 무슨 바람이 분건지... "


"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오랜만에 몸좀 더 풀고 가는게 어떤가? "


적랑은 고개를 저었다.


" 이 장소에서 더 하다간 시신하나 치워야 될거야. 난 그럴 맘이 없네. 게다가 [죽음]을 상대로 전력으로 싸우는 도박을 걸고 싶지도 않고. "


" 자네의 제안은 일단 마음에 담아두겠네. 승부는 나중에 내도록 하지. "


" 그러세나. [상경 용천부], 새로운 땅에서 자네를 기다림세. "


적랑은 그 말을 끝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 상경 용천부라... "


흑운은 한동안 말없이 지는 해를 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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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단고기 빠돌이인 이유는, 그 책의 내용이 저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며, 김부식과 김춘추, 김유신 같은 천하의 개망나니들에게 상처입은 저의 자존심을 복구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때 까지, 나는 우리나라 역사를 한심하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렇게 만든 자들은 아직 대부분 버젓히 살아 있고, 나는 그자들을 증오합니다.

 

난 한단고기의 기록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우리 교과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신라 중심의 사학에 빠져있던 모든 자들을 처형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길 바랍니다. 조금 앞선 시대였다면, 전 파시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고구려가 자기네 지방정권이라는 개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신라와 가야가 자기네 식민지였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문명]이라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았던들, 그들은 아직도 뼈다귀로 만든 곤봉을 이용해 짐승이나 잡아먹으며 동굴에 기거하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인데. 그 사실을 왜곡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있는 역사마저 짤라먹은 개새끼가 쓴 책이 유일한 성전이라며 받들고 있습니다.

 


중국에 철기를 전해준 것은 우리 민족입니다. 진나라의 왕이 직접 호복을 하고 철기를 구하러 동이의 땅에 갔습니다. 춘추와 사기에 나옵니다.

 

이위공문대와 사기에 나옵니다. 고구려의 역사는 900년이라고. 김부식은 고구려의 역사를 200년이 나 잘라먹었습니다.

 

춘추에 나옵니다. (고)조선과 삼한은 중국에 있는 땅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것이 한반도에 있다고 배웁니다.

 

그들이 인정하는 정전에 이렇게 버젓이 나와있음에도, 우리 사학계는 애써 그것을 무시합니다. 물리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물리적 증거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은 일본과 중국이 이미 수십여차례나 우리에게 증명해 준 [사실]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5000년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5000년 중에 한인(황인)의 왕조는 손에 꼽습니다.

 

일본은 아무리 늘려잡아도 2000년 짜리 역사입니다. 게다가 그 역사도 식민지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라먹어도 5000년 짜리 역사를 가집니다. 그리고 5000년 이전의 부분은 얼마나 큰 제국이었는지, 세계 각지에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이민족 집단의 하나인 묘족은 아직도 치우신(자오지 한웅)을 기억합니다.

 

성서에 나온 홍수같은 재앙의 전설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나 있습니다. 우리와 역사가 비슷하다는 주변국들에게는 다 있음에도, 하지만 우리만은 그런 전설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홍수를 피할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우리 나라는 위대했습니다.

 

이제 그정도는 인정해 주어도 좋지 않을까요. 더이상 한단고기가 위서네 어떠네 하는 말이, 적어도 우리 사이에서 흘러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의심하는 것은 좋지만, 스스로를 까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꾸 개를 빗댄 욕이 많아서 개들에게 미안하지만, 그 이상의 욕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잡담은 이만 하겠습니다. 즐감하시고 재미있으셨다면 댓글 하나 정도는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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