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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MC] 흑과 백 -Season 3- "最終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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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MC] 흑과 백 -Season 3-



제 8장. 여자.



어느 역앞의 분수 광장...
밝은 햇빛속에서 한 명의 여자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주위를 지나는 대부분 남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헌팅을 걸어 오는 남자들을 한번씩 바라보고는 단 한마디의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당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혼잡한 사람들 속으로 시선을 되돌려, 그가 어떠한 말을 걸어도 더이상 그에게는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태도와 같은 말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는,
언제부턴가 많은 남자들에게 있어서 만질수 없는 하나의 여신으로... 그렇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여전히 역전 공원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 남자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만, 그 남자는 여자에게 헌팅을 하지 않고 그저 빤히 바라볼뿐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움직여 그 남자를 보았을 때, 그녀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제가 기다리던 사람입니까?」
「아니. 너와 나는 초면이야...」

상당히 건방진 말투로 예의 따윈 갖추지 않는 남자였지만,
여자는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여전히 남자에게 시선을 향한채 말했다.

「그렇군요... 당신에게서... 왠지 그리운 향기를 느꼈는데...」
「누구를 기다리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디에 있는지... 그게 누구인지... 그렇지만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거 하나는 분명해요.」
「정말 소중한 사람... 인가...?」
「네, 그 사람은 저를 구해줬어요. 몸도... 마음도... 이상하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 하나만으로...」

서로 시선를 떼어놓는 일은 없었지만,
완전히 무표정한 두 명의 대화는 누가보면 "기계의 대화"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 너에게는 언니가 있었어... 기억해?」
「네? 당신은... 카렌을 아시나요?」
「아, 뭐... 그렇지...」
「... 언니는 잘 지내나요? 언니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3년전쯤이었던거 같아요... 그렇지만... 그 때 주고받은 말도... 그 때 언니의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나의 소중한 사람이 모두.... 나 안에서 사라져 가고 있어요...」
「...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

그녀는 쓸쓸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어째서... 나의 소중한 사람의 향기가 나는 거죠? 당신... 혹시 그 사람과 아는 사이인가요?」
「아니, 몰라. 그건 모르지만... 나도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만약... 네가 기다리는 사람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을때... 오히려 불행하게 된다고해도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야? 차라리 모두 잊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도...」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대답할 가치도 없군요! 당신이라면.... 소중한 사람의 일을 잊고 싶다고 생각할까요? 소중한 사람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것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그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냥 네 마음 안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라면...? 아니면, 그 사람에게는 이제 네가 필요 없어진거라면...? 만약 그렇다면, 정말 불행한거 잖아?」
「그렇구나... 네, 그럴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가상의 인물이든지, 그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지않든지... 지금 나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의 행복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뿐이에요...」

남자는 그녀의 그 대답을 듣고는, 자신의 표정을 감추려는 듯 살짝 고개를 돌려 담배을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배의 연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과 함께 천천히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난 네가 기다리던 사람도 아니고, 그딴 녀석 알지도 못하니까... 네가 여기서 평생 기다리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하지만 만약 그 녀석의 일을 잊고, 다른 행복을 찾고 싶어지면... 여기로 연락해.」

남자가 내민 작은 명함을 응시하는 그녀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남자는 곧 날카로운 눈빛을 품고 몸을 돌려 자신이 갈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걸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몇걸음만에 발길을 멈춰버린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렌은... 잠을 자고 있어... 곧 돌려줄게. 반드시 깨울테니까...」

그녀로써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 남자... 아마노 에이이치의 등을 바라보며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말없이 대답하고 있었다.


☆★☆★☆★☆★☆★☆★☆★☆★☆★☆★☆★☆★☆★☆★☆★☆★☆★☆★☆★☆★☆★☆★


에이이치는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말없이 조금전에 여자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 만약... 내가 어느날 여자들을 모두 풀어준다면 어떨까? 그 애들도 저 여자와 똑같이 생각하게 될까? 내 여자들에게서 나를 지운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저 여자처럼 방황하게 되는 걸까? )

평소의 자신 답지않은 생각들을 하면서 걷고 있던 에이이치가 문득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길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공원을 볼수 있었다.

( 여기는... 그 공원이군... )

에이이치와 메구미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공원...
왠지 감개무량한 기분이 든 에이이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그 공원안으로 들어갔고,
머지않아 그는 메구미와 처음 만났던 작은 수풀 앞에 우뚝 멈춰섰다.

( 여기서 그 녀석과... )

에이이치는 잠시 그 옆의 벤치에 앉으며 감상빠져 보려는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문득 지금 자신의 행동이 너무 자신답지 않다는것을 느끼고는 그 이상한 감상들로부터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에이이치는 빠른 걸음으로 공원의 출구을 향하던 도중,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노을진 석양에 자신의 마음이 누를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그 녀석이 생각나는거지...??? )

에이이치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석양에 의해 온 세상을 오렌지색에 물들이고 있던 빛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며 서서히 에이이치에게 다가왔다.
에이이치는 그것이 다가올수록 왠지모를 현기증과 불쾌감을 느꼈지만,
빛의 소용돌이는 이윽고 매우 아름다운 여자의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 역시... 이번에도 네놈이냐? 그래, 네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군?」
「아마노 에이이치... 나를 알고 있습니까?」
「나와 메구미를 네 손바닥위에서 춤추게 만든 놈이겠지? 용무가 있다면, 직접 나타나서 정중하게 인사부터 할 것이지... 쳇!」

에이이치는 단지 추측을 했을 뿐이지만, 사실 그것이 바로 정답이었다.
지금 에이이치 앞에 나타난 이 여자는 과거 메구미에게 "힘"을 주어 자신을 막으려 했던 천사였던 것이다.

「나는 "영(靈)"의 존재... 이 세상에 실체화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말 조심하세요. 당신의 같은 사람이 나에게 그런 무례를 범하는 건 용서되지 않아요.」
「아, 그런가? 하지만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당신의 경고 몇마디로 고쳐질수 있는 말버릇이라면 벌써 옛날에 고쳤어.」

에이이치는 차갑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도리어 기가 막힌다는 듯 살짝 인상을 쓰며 입가에 웃음을 띄워 말한다.

「당신이 지금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아이하라 메구미가 "신"님께 간청을 한 덕분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둠에 넘어가서 "어둠의 지배자"의 하수인인 되어버린 당신을 우리가 살려둘리 없죠.」

평소 같았으면 "하수인"이라는 그 말에 화부터 벌컥 냈을 에이이치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보다 더 긴급하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 메구미는... 잘 지내나?」
「그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해오던 일을... 그것도 당신을 위해 하는 일을 모두 헛수고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어둠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서서히 그 어둠을 스스로 없애가던 당신은... 최근에 크게 어둠의 힘을 각성해버렸더군요.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아직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론 그것은 일부 여성에 국한된 마음이긴 합니다만....」

천사는 거기까지 말하고 난 뒤,
홀로그램처럼 흐릿한 자신의 손을 에이이치에게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그들을 믿지 마세요. 그들에게 잘 보여봤자 당신과 여자들은 결코 행복해질수 없습니다... 이제 어둠으로부터 나오세요.... 자, 내 손을 잡고, 천상으로 갑시다. 아마노 에이이치.」
「후훗, 그런 악의 무리와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할 놈은 아무도 없어. 나 역시 그 놈들이 싫고... 하지만... 그럼 나의 소망은 어떻게 되는거지? 내 집 지하실에서 아직도 잠만 자고 있는 그 여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당신이 "신"님의 뜻에 따라, 선행의 공덕을 쌓으면 언젠가 당신의 소원은 실현이 될수 있습니다... 아이하라 메구미도 그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언젠가"라고...? 자그마치 2년이다, 2년~!!! 메구미가 하늘에 올라간지 2년이 지났어! 그 아이가 2년이나 "신"이 시키는대로 다했는데도, 아직까지 여자들은 잠만 자고 있다고~!!! 그런데 그것을 내가 하라고? 늙어 죽을 때까지 해도 난 여자들을 깨울수 없을 거야....... 이봐, 천사 양반. 잘들어. 나는 나의 방식대로한다... 어느 쪽이 정답이었는지는 끝까지 가봐야 아는거야. 알겠어?」

천사는 그런 에이이치의 말에
에이이치를 모멸하는 듯한 시선으로 서늘하게 말했다.

「아마노 에이이치, 후회하게 될겁니다. 어둠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그 때 당신도 사라지겠지요.」
「뭐, 이 놈의 세상... 빨리 뜬다고 해서 문제될건 없겠지.」

에이이치의 마지막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주위를 잠싸고 빛이 서서히 크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정도 그 빛이 사라지자,
그 주변은 서서히 저물어 가는 햇빛속에서 에이이치만이 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에이이치는 홀로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침대 아래에서는 야유미가 정좌하고 앉아 있었지만,
주인인 에이이치가 아유미를 부르지 않는 한, 그녀는 아무 의미없는 장식물에 불과했다.

( 메구미 그 녀석이라면 분명 "오빠, 눈을 떠"라고 했겠지? ...마리라면 "주인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했을까? ... 아카네라면... 그래, 아카네라면 나보단 조금 더 나은 방식을 생각했을지도... )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던 에이이치는 평소와 다르게 감상적인 자신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살짝 시선을 돌려 침대 아래의 아유미를 바라봤다.

「아유미.」
「네! 주인님.」

전라에 새빨간 목걸이만을 댄 그녀가 기쁜듯한 얼굴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 만약 내가 죽는다면, 너는 어떻게 할거야?」
「물론, 저도 주인님을 따라 갑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아유미의 표정은 마치 그 때를 기다리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에이이치에게 그런 표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았다.

「휴우~ 이봐, 아유미.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 마음이 더 무거워지잖아~ ....아유미, 명령이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내가 죽게되면... 넌 여기의 사람들과 살아 가라. 그리고...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 행복을 찾아서 이곳을 떠나도 좋아.」

마치 이별을 말하는 듯한 에이이치의 말에
그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유미의 두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주, 주인님... 그, 그 명령은... 취소... 해주세요.... 주인님이 돌아가시면, 저도 그 뒤를 따르겠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안 계시면... 살아갈 수.... 없...」

괴로운 표정을 띄우면서, 아유미의 두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에이이치...
그는 곧 눈을 감아버리더니 무언가를 아주 깊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동안이나 무언가를 생각하던 에이이치는 이윽고 눈을 뜨더니, 상냥하게 미소 지으면서 아직도 훌쩍 거리고 있는 아유미를 불렀다.

「아유미, 잠깐 이리 가까이 와봐.」
「네...」

너무도 상냥하게 변한 에이이치의 표정과 목소리에 아유미도 눈물을 닦고 에이이치에게 바짝 다가갔다.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글방글 웃으면서 주인을 응시하는 아유미의 턱을 살며시 잡은 에이이치...
에이이치의 그 눈빛에는 왠지모를 어둠의 기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유미는 마치 소녀가 첫키스를 하기 전에 그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신의 주인을 응시하면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이치는 어떠한 사랑의 말도... 어떠한 스킨쉽도 하지 않았다....

「아유미, 너는 나를 잊어라. 네 안에 나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워져...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기억이라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잊는 거다... 그리고... 앞으로는 정말로 네가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 살아라.」

에이이치의 그 말을 들으며,
아유미의 행복한 표정은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고, 그 눈빛 또한 초점이 없어졌다.

「... 아유미, 내가 누구지?」

잠시동안 무표정에 초점없는 눈으로 에이이치의 두눈을 응시하던 아유미...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에이이치가 그렇게 말을 걸자,
아유미는 최면에 깨어난 사람처럼 곧 정신을 차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전라 상태인 자신의 몸을 보자, 아유미의 입에선 경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다, 당신은 누구야~!!! 뭐, 뭐, 뭐... 뭐야, 이건?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내, 내 옷... 내 옷 돌려줘~!!!」

자신의 알몸을 조금이라도 숨기기 위해 방의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아유미는 그렇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처음보는 남자"에게 공포와 오한을 느끼면서...

아유미의 비명소리를 들은 것일까? 나츠미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주인님, 무슨 일 입니까?」
「아, 나츠미... 저 아가씨가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옷을 준비해라.」
「네?」

방의 구석에서 공포의 표정을 띄우면서,
그토록 좋아하던 주인에서 도망가려 하고 있는 아유미를 본 나츠미는 놀란 표정으로 에이이치에게 되물었다.

「아... 저, 저기... 주인님...? 서, 설마... 아유미 상을...?」
「응. 조금 건방져서, 버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네가 이 아가씨를 집까지 좀 모셔다 드려라.」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인과 아유미를 번갈아 응시하는 나츠미...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이치는 살짝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말했다.

「뭐야? 너도 나에게 불평할 생각이냐?」
「아, 아뇨. 아닙니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아유미는 아직도 차의 뒷좌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그 작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나츠미가 운전하는 흰 승용차에 앉아,
지난 2년간 거의 가 보지못했던 자신의 맨션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시간 전, 승용차에 몸을 실던 그때부터 갑자기 복받쳐오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처음보는 남자"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왜 자신이 그런 꼴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SM을 연상시키는 개목걸이를 목에 걸고, 전라로 남자의 방에 있었다.
확실히 그 상황만 보더라도 뭔가 능욕을 당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복받치는 슬픔은 "몸이나 프라이드를 손상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의 그 저택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슬픔이 커지는 것은 대체 무슨일이란 말인가?

이상한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운전석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는 "처음보는 여자"도 자신과 같이... 아니, 자신 이상으로 격렬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츠미라는 이 여자의 말이나 행동으로 보면, 스스로 원해서 그 저택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눈물은 대체 누구를 위해 흘리고 있는 것일까?

정체를 알수없는 불안과 슬픔을 안고, 아유미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아유미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
창밖으로부터 비춰지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아유미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드르르르...

창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상쾌한 아침의 공기에
아유미는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웃는 얼굴로 자신에게 인사하는 그 여자가 서 있었다.

「어때요? 이제 좀... 활기가 생겼어요?」

나츠미라고 하는 이름의 그 여자는 아유미를 집으로 데려다준 이유로도 자주 집으로 찾아와 아유미를 돌봐주곤 했다.
다리가 불편한 아유미의 여러가지 심부름을 해주거나, 여러가지 집안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물론 나츠미가 아유미의 집을 찾아올 때는 오늘처럼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아유미는 그런 나츠미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져 싫지가 않았다.

「하아~ 아니요... 왠지 요즘은 아무런 의욕도 안 생기고... 미안해요, 나츠미 상. 저 때문에 번번히 귀찮게...」
「아, 아니요! 사과하지 마세요.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제 멋대로 불쑥 찾아와서 실례를 범하고 있으니까.」
「아니요, 절대 실례가 아니에요... 고마워요, 나츠미 상. 정말... 매번 이렇게 신세만 지네요.」
「신세를 지다니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아유미 상에게 신세를 진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걸요~」

아유미는 그 이상한 저택에서 만난 나츠미에게 확실히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토록 비정상인 상황에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 그 때는... 나츠미 상도 전라였어. 그리고 목걸이도... 지금도 얇은 원피스 한 장만 입고, 속옷도 전혀 안입은거 같은데...? 그리고 그 남자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어... SM... 이라는 건가...? 나도 나츠미 상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기억을 잃고 있던 지난 5년동안... 나도 그 남자에게 종속당하고 있었던 걸까...??? 전라로... 개처럼... )

생각하기도 싫은 그 끔찍한 상황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아유미는 알수 없는 묘한 기분과 함께 그 은밀한 부분이 습기를 띠는 것을 느꼈다.

( ...!!! 꺄아악~~~!!!! 시, 싫어...!!! 이럴수가... 어째서... 내가...? )

아유미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것 같은... 말할 수 없는 불안감에 싸였다.

「... 저어... 나츠미 상... 나, 대체 지난 5년 동안 뭘하고 있었던 거죠?」
「.....」
「... 역시... 말해줄수 없나요?」

아유미가 조심스럽게 묻자, 나츠미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고 무척이나 슬픈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츠미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아유미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 아유미 자신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 뿐더러,
에이이치 역시 그것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해줘선 안된다고 엄중히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말을 해줄수 없는건 아유미 상을 위해서에요... 물론 제 말을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나는 지난 5년간의 기억을 빼앗겼어요! 알겠어요? 5년이라구요. 5년~!!! 지난 5년간의 일들중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사이에 내가 뭘 했는지,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지금 내 오른쪽 다리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대체 내가 왜 이렇게 절음발이가 되었는지...!!!! 알 권리는 있다구요~!!!」

나츠미는 정말 슬픈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동정이나 연민의 표정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의 불행을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미안해요... 나는... 나는 말해줄 수 없어요... 아유미 상... 이제 그만, 그것들도 다 잊어버리세요... 아유미 상의 그 의문도... 그 분의 얼굴도...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생활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밝게 사세요... 그때까지... 아유미 상이 행복하게 살수 있을때까지... 충분한 생활비도 아유미 상의 계좌로 들어올 것이고, 또 일손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도와드릴게요... 그렇지만... 아유미 상이 잃어버린 5년은 답해줄수 없어요... 그러니까... 부디 지금까지의 일은 빨리 잊으세요... 평범한 행복을 찾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아유미 상.」

아유미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는 나츠미에게 더 이상 화를 낼수도 없었지만,
석연치 않는 기분은 지금도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알았어요. 그렇지만 하나만 가르쳐 줘요... 지난 5년. 나에게 있어 좋은 일이 있었나요? 아니면 나쁜 일이 있었나요?」

나츠미는 잠시동안 고민하며 대답을 머뭇거리는 듯 했지만,
곧 대담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아유미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고 말했다.

「틀림없이... 아유미 상은 행복했을거에요. 나보다 더... 다른 누구보다 더...」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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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왔습니다만, 별달리 할 말은 없네요 ^^;;;;

흑과 백... 정말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개연성"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소설입니다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해서 올리니,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소설의 흥미를 더욱 높이기 위해, 조금씩 원작에 손을 댔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며...
이 소설은 E=MC^2 NOVEL 이라는 사이트에서 boby 님의 소설을 가져왔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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