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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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록
1. 서장(1)
나는 바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바이는 바이섹슈얼의 준말이다. 굳이 우리말로 먼역하자면 양성애자인데 그래도 모르겠다면 여성과 남성 모두와 성관계가 가능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처음부터 바이였던 것은 아니다. 솔찍히 고백하지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남성과 성적 관계를 가지기는커녕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먼저 내 외모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170cm의 그렇게 크지 않은 키에 60kg의 몸무게로 약간 말라보이는 요즘 흔히 이야기 하는 미소년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학생 때부터 여러 운동을 좋아해서 - 태권도가 3단에, 합기도가 4단, 그리고 헬스를 통해 몸을 단련하는 것을 거의 빼먹지 않았었다. - 상의를 벗으면 누구 못지 않은 단단한 체구를 자랑하곤 했다.
이런 내 신체적인 조건으로 사춘기를 넘으면서부터 많은 여자들이 따라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여자들을 돌 보듯이 하는 목석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적 관심과 욕망이 다른 사람보다 더욱 커서 주위의 웬만한 여자들과는 다 관계를 가지게 될 정도였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입시 스트레스가 워낙 거세어서인지 그런데로 참을 수 있었지만 대학에 입학을 한 후에는 논두렁에 봇물이 터지듯 주위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곤 했다. 아마 한 주일에 평균 10명이 넘는 여자와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어쩌다 일이 바빠서 여자와 관계를 가지지 못했을 때면 이상하게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주위의 후배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했는데 후배들은 그때마다 뒤에서 섹스부족증이 도졌다고 쉬쉬대며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내가 거의 보름이 넘도록 여자라고는 구경도 못할 지경에 처해버린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총학생회 임원이었는데. 학내 문제로 수배를 당하고 중이 된 선배의 소개로 서울에서 좀 떨어진 암자에 은신해야만 했다. 주위에 여자는커녕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곳에 보름이 넘도록 숨어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했거니와 여자에 대한 굶주림으로 미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독수리 오형제의 도움을 받아 자가발전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이 와 버린 것이다.
그날도 온 몸이 근지러워 옷을 다 벗어버리고 독수리 오형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리는 것이었다. 놀래서 쳐다보니 처음보는 웬 중놈이 문을 열고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한 채 엄거주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절정으로 치닫던 때라 나는 더욱 손가락을 빨리 움직였고 얼마 있지 않아 “으으으...”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하얀액체를 하늘로 향해 내뿜었다.
놀란 중은 엉거주춤한 채로 내가 일을 다 끝내고 손질을 한 후 바지를 입도록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방을 걸레로 닦으며 말했다.
“스님, 들어오시지요.”
그는 법명이 “유장”이라는 중이었는데 선배의 심부름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오던 길이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참, 대단하시우!”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서 후다닥 옷을 챙겨입을텐데 끝까지 가니 드리는 말씀이우.”
“그런 것을 보고도 놀라서 문을 닫지 않고 끝까지 지켜 본 스님도 보통은 넘으십니다. 또 내가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허, 말씀하시는 것이 아주 도가 텃구려. 유정스님의 말씀처럼 보통 분이 아니신 것 간습니다.”
이렇게 대화가 시작한 때문인지 유장과 나는 별 거리낌없이 친해질 수 있었고 가끔 농담도 던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스님들은 여자 생각이 전혀 나지 않으십니까?”
“왜요, 중도 사람인데 어찌 여자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스님은 억지로 참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스님들은 시주처럼 혼자 처리하기도 하고, 어떤 스님들은 여자들이 있는 곳을 찾기도 하지요.”
“그럼 스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도가 높아 보이시는데 참으실 수 있습니까?”
“천만에요. 과연 그런 경지에까지 갈 수 있을는지요. 또 과연 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러자 유장은 허허거리며 웃기만 할 뿐 좀체 입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
“스님, 혹시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도 좀 가르쳐 주시지요. 허구헌날 손가락 신세만 지니 지루해서 미치겠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졸라대자 유장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된다며 몇번이고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입을 떼는 것이다.
“좋습니다. 대신 제가 어떤 일을 해도 놀라지 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유장은 바지를 훌훌 벗고는 항문을 내 콧등으로 들이대는 것이었다. 나는 놀래서 말했다.
“스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자 잘 보십시오.”
나는 어쩔 수 없이 냄새나는 유장의 엉덩이를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두 다리로 굳게 버티고 선 채 허리를 반으로 꺽은 그의 엉덩이는 다리 사이로 축 늘어진 고환과 그 밑으로 자지가 조금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유장이 똥꼬에 힘을 주는 듯 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배설물이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똥꼬가 동그랗게 벌어진 것이다. 그 구멍은 웬만한 자지가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어떻게 한 것인지 몰라도 자유자재로 구멍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을 그렇게 보여 준 유장은 바지도 입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놀라운 재주인 것은 같은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설명을 드리죠. 절에는 동자승이라고 있습니다. 부모없는 고아를 거두어서 절에서 키우는데 대개는 어릴 때부터 머리를 깍게 하고 중으로 키웁니다. 그런데 중들 가운데는 동자승들을 여자 대신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지요. 제가 바로 그런 동자승 출신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길에 버려진 저를 큰 스님이 데려다가 키워주셨습니다. 절에서 자라면서 때로는 구박도 받고 때로는 귀여움도 받았는데 유독 저를 귀여워 해 주시던 스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14살쯤 되었을 때에 그 스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어디를 좀 가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른채 따라갔습니다. 스님은 제 손을 붙잡고 한참을 산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호젓한 암자가 있더군요. 스님이 이곳에서 한달동안 도를 닦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며 같이 있어야 되겠다고 말씀하시길래 그런줄로만 알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스님은 나에게 하나의 호흡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스님은 그 호흡법을 어디에 쓰는지는 말씀하지 않았지만 아침마다 두 시간씩 연습하라고 하고는 잘못되는 것이 없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스님이 좌선에서 깨어난 후 이제 도를 닦아야겠다며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옷을 다 벗으시는겁니다. 그리고는 제 옷도 다 벗겨 주셔서 우리는 알몸으로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 큰 어른의 자지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큰 자지를 덜렁거리는 스님이 꼭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스님이 저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고는 무릎을 끓고 안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스님의 자지가 꼭 제 입에 닿더군요. 스님은 저에게 입을 벌리라고 하더니 자지를 제 입에 집어 넣었습니다. 물컹한 것이 입에 들어오니 놀랍기도 하고 역겹기도 해서 뱉어내려고 하자 엄한 소리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자지를 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스님의 자지에 변화가 오더군요.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더니 입과 턱이 아프도록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스님이 제 머리를 잡고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아팠지만 무서운 마음에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분쯤 지났을까 스님이 갑자기 몸소리를 치자 입안에 있던 스님의 자지가 요동을 치며 뭔가 뜨거운 것이 제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더군요.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캑캑거렸지만 스님이 내 머리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기에 그러고도 한참을 스님의 자지를 입에 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님은 자지가 처음의 상태로 되고 난 다음에야 저를 놓아주더군요. 나는 그때서야 꺽꺽대며 토해내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목구멍으로 다 넘어간 뒤라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연공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바랑에서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곶감과 과자들, 그리고 음료수를 꺼내주었습니다.
그후로도 매일밤 똑같은 일이 계속되었지만 곶감과 과자를 받아먹는 재미에 스님을 돕는 일이 싫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이 생겨서인지 처음처럼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지를 빨아줄 때마다 스님이 좋아했기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것이 정말 도를 닦는 방법의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20일쯤 지났을 때 스님이 또 연공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옷을 벗고 스님의 자지를 빨아주기 위해 가까이 가자, 스님은 이제 1단계는 끝났으니 2단계로 갈 때가 됐다고 하더군요.
스님은 나를 바닥에 눕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내 자지로 자신의 입을 가져 갔습니다. 그때 내 자지는 조금씩 털이 나려고 하던, 고추의 단계는 지났지만 아직 자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는데 스님의 입에 들어가자 빳빳해 지더군요. 스님의 입김과 혀의 놀림에 나는 난생 처음 느끼는 황홀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죠. 이게 도의 세계인가보다라고.
스님은 잠시 제 자지를 빨더니 아침마다 연습하던 호흡법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호흡법을 하기 시작하자 스님은 내 두다리를 들더니 항문에 입을 대고 내 호흡에 맞춰서 혀를 집어넣었다가 빼고는 했습니다. 자지를 빨아주는 것보다 더 큰 황홀함이 있었습니다. 자지를 빨리는 것이 주변적인 것이라면 항문을 빨아주는 것은 온 몸을 휘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황홀감에 빠져 있는데 뭔가 미끌한 것이 제 항문에 닿더군요. 그것은 살며시 제 안에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깊이 들어오더군요. 그러자 큰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놀래서 몸을 비틀자 스님은 엄한 목소리로 아픔을 참고 호흡을 계속하라고 하더군요. 억지로 아픔을 참고 호흡을 계속 했더니 아픔이 조금 덜한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호흡을 계속 하라고 이르고는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습니다.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미끌한 것이 깊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또다른 황홀함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황홀감을 참을 수 없어 “으으... 아아...”라는 신음 소리를 내었고 그것은 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속.
1. 서장(1)
나는 바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바이는 바이섹슈얼의 준말이다. 굳이 우리말로 먼역하자면 양성애자인데 그래도 모르겠다면 여성과 남성 모두와 성관계가 가능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처음부터 바이였던 것은 아니다. 솔찍히 고백하지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남성과 성적 관계를 가지기는커녕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먼저 내 외모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170cm의 그렇게 크지 않은 키에 60kg의 몸무게로 약간 말라보이는 요즘 흔히 이야기 하는 미소년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학생 때부터 여러 운동을 좋아해서 - 태권도가 3단에, 합기도가 4단, 그리고 헬스를 통해 몸을 단련하는 것을 거의 빼먹지 않았었다. - 상의를 벗으면 누구 못지 않은 단단한 체구를 자랑하곤 했다.
이런 내 신체적인 조건으로 사춘기를 넘으면서부터 많은 여자들이 따라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여자들을 돌 보듯이 하는 목석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적 관심과 욕망이 다른 사람보다 더욱 커서 주위의 웬만한 여자들과는 다 관계를 가지게 될 정도였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입시 스트레스가 워낙 거세어서인지 그런데로 참을 수 있었지만 대학에 입학을 한 후에는 논두렁에 봇물이 터지듯 주위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곤 했다. 아마 한 주일에 평균 10명이 넘는 여자와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어쩌다 일이 바빠서 여자와 관계를 가지지 못했을 때면 이상하게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주위의 후배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했는데 후배들은 그때마다 뒤에서 섹스부족증이 도졌다고 쉬쉬대며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내가 거의 보름이 넘도록 여자라고는 구경도 못할 지경에 처해버린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총학생회 임원이었는데. 학내 문제로 수배를 당하고 중이 된 선배의 소개로 서울에서 좀 떨어진 암자에 은신해야만 했다. 주위에 여자는커녕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곳에 보름이 넘도록 숨어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했거니와 여자에 대한 굶주림으로 미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독수리 오형제의 도움을 받아 자가발전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이 와 버린 것이다.
그날도 온 몸이 근지러워 옷을 다 벗어버리고 독수리 오형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리는 것이었다. 놀래서 쳐다보니 처음보는 웬 중놈이 문을 열고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한 채 엄거주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절정으로 치닫던 때라 나는 더욱 손가락을 빨리 움직였고 얼마 있지 않아 “으으으...”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하얀액체를 하늘로 향해 내뿜었다.
놀란 중은 엉거주춤한 채로 내가 일을 다 끝내고 손질을 한 후 바지를 입도록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방을 걸레로 닦으며 말했다.
“스님, 들어오시지요.”
그는 법명이 “유장”이라는 중이었는데 선배의 심부름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오던 길이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참, 대단하시우!”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서 후다닥 옷을 챙겨입을텐데 끝까지 가니 드리는 말씀이우.”
“그런 것을 보고도 놀라서 문을 닫지 않고 끝까지 지켜 본 스님도 보통은 넘으십니다. 또 내가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허, 말씀하시는 것이 아주 도가 텃구려. 유정스님의 말씀처럼 보통 분이 아니신 것 간습니다.”
이렇게 대화가 시작한 때문인지 유장과 나는 별 거리낌없이 친해질 수 있었고 가끔 농담도 던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스님들은 여자 생각이 전혀 나지 않으십니까?”
“왜요, 중도 사람인데 어찌 여자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스님은 억지로 참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스님들은 시주처럼 혼자 처리하기도 하고, 어떤 스님들은 여자들이 있는 곳을 찾기도 하지요.”
“그럼 스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도가 높아 보이시는데 참으실 수 있습니까?”
“천만에요. 과연 그런 경지에까지 갈 수 있을는지요. 또 과연 갈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러자 유장은 허허거리며 웃기만 할 뿐 좀체 입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
“스님, 혹시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도 좀 가르쳐 주시지요. 허구헌날 손가락 신세만 지니 지루해서 미치겠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졸라대자 유장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된다며 몇번이고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입을 떼는 것이다.
“좋습니다. 대신 제가 어떤 일을 해도 놀라지 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유장은 바지를 훌훌 벗고는 항문을 내 콧등으로 들이대는 것이었다. 나는 놀래서 말했다.
“스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자 잘 보십시오.”
나는 어쩔 수 없이 냄새나는 유장의 엉덩이를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두 다리로 굳게 버티고 선 채 허리를 반으로 꺽은 그의 엉덩이는 다리 사이로 축 늘어진 고환과 그 밑으로 자지가 조금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유장이 똥꼬에 힘을 주는 듯 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배설물이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똥꼬가 동그랗게 벌어진 것이다. 그 구멍은 웬만한 자지가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어떻게 한 것인지 몰라도 자유자재로 구멍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을 그렇게 보여 준 유장은 바지도 입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놀라운 재주인 것은 같은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설명을 드리죠. 절에는 동자승이라고 있습니다. 부모없는 고아를 거두어서 절에서 키우는데 대개는 어릴 때부터 머리를 깍게 하고 중으로 키웁니다. 그런데 중들 가운데는 동자승들을 여자 대신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지요. 제가 바로 그런 동자승 출신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길에 버려진 저를 큰 스님이 데려다가 키워주셨습니다. 절에서 자라면서 때로는 구박도 받고 때로는 귀여움도 받았는데 유독 저를 귀여워 해 주시던 스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14살쯤 되었을 때에 그 스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어디를 좀 가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른채 따라갔습니다. 스님은 제 손을 붙잡고 한참을 산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호젓한 암자가 있더군요. 스님이 이곳에서 한달동안 도를 닦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며 같이 있어야 되겠다고 말씀하시길래 그런줄로만 알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스님은 나에게 하나의 호흡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스님은 그 호흡법을 어디에 쓰는지는 말씀하지 않았지만 아침마다 두 시간씩 연습하라고 하고는 잘못되는 것이 없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스님이 좌선에서 깨어난 후 이제 도를 닦아야겠다며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옷을 다 벗으시는겁니다. 그리고는 제 옷도 다 벗겨 주셔서 우리는 알몸으로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 큰 어른의 자지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큰 자지를 덜렁거리는 스님이 꼭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스님이 저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고는 무릎을 끓고 안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스님의 자지가 꼭 제 입에 닿더군요. 스님은 저에게 입을 벌리라고 하더니 자지를 제 입에 집어 넣었습니다. 물컹한 것이 입에 들어오니 놀랍기도 하고 역겹기도 해서 뱉어내려고 하자 엄한 소리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자지를 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스님의 자지에 변화가 오더군요.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더니 입과 턱이 아프도록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스님이 제 머리를 잡고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아팠지만 무서운 마음에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분쯤 지났을까 스님이 갑자기 몸소리를 치자 입안에 있던 스님의 자지가 요동을 치며 뭔가 뜨거운 것이 제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더군요.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캑캑거렸지만 스님이 내 머리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기에 그러고도 한참을 스님의 자지를 입에 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님은 자지가 처음의 상태로 되고 난 다음에야 저를 놓아주더군요. 나는 그때서야 꺽꺽대며 토해내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목구멍으로 다 넘어간 뒤라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연공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바랑에서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곶감과 과자들, 그리고 음료수를 꺼내주었습니다.
그후로도 매일밤 똑같은 일이 계속되었지만 곶감과 과자를 받아먹는 재미에 스님을 돕는 일이 싫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이 생겨서인지 처음처럼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지를 빨아줄 때마다 스님이 좋아했기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것이 정말 도를 닦는 방법의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20일쯤 지났을 때 스님이 또 연공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옷을 벗고 스님의 자지를 빨아주기 위해 가까이 가자, 스님은 이제 1단계는 끝났으니 2단계로 갈 때가 됐다고 하더군요.
스님은 나를 바닥에 눕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내 자지로 자신의 입을 가져 갔습니다. 그때 내 자지는 조금씩 털이 나려고 하던, 고추의 단계는 지났지만 아직 자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는데 스님의 입에 들어가자 빳빳해 지더군요. 스님의 입김과 혀의 놀림에 나는 난생 처음 느끼는 황홀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죠. 이게 도의 세계인가보다라고.
스님은 잠시 제 자지를 빨더니 아침마다 연습하던 호흡법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호흡법을 하기 시작하자 스님은 내 두다리를 들더니 항문에 입을 대고 내 호흡에 맞춰서 혀를 집어넣었다가 빼고는 했습니다. 자지를 빨아주는 것보다 더 큰 황홀함이 있었습니다. 자지를 빨리는 것이 주변적인 것이라면 항문을 빨아주는 것은 온 몸을 휘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황홀감에 빠져 있는데 뭔가 미끌한 것이 제 항문에 닿더군요. 그것은 살며시 제 안에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깊이 들어오더군요. 그러자 큰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놀래서 몸을 비틀자 스님은 엄한 목소리로 아픔을 참고 호흡을 계속하라고 하더군요. 억지로 아픔을 참고 호흡을 계속 했더니 아픔이 조금 덜한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호흡을 계속 하라고 이르고는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습니다.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미끌한 것이 깊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또다른 황홀함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황홀감을 참을 수 없어 “으으... 아아...”라는 신음 소리를 내었고 그것은 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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