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천왕 7
제5장 恥辱의 帝王城
옥사후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 비오던 날과 조금도 틀리지 않군!)
그는 체념한 채 무기력하게 축 늘어진 비취여제를 내려다 보았다.
초패강을 시해한 후, 비취여제는 옥사후에게 어디선가 초패강의
인피면구를 구해다 주며 그에게 초패강의 행세를 하게 했다.
그것이 궁여지책의 최선인 듯 그녀는 죄책감 속에서도 수습을 잊지
않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부부행세를 하며 불륜의 관계를 지속해 왔다.
지금까지......
비취여제, 그녀는 괴로운 듯 눈을 감고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러면 안돼요. 나를...... 이렇게 하는 것은......
오늘 밤만으로 그만 두어야 해요!"
그말에 옥사후는 히죽 웃었다.
"흐흣! 매번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다시 원하는 것은 사모쪽이
아니오?"
이어 그는 비취여제의 검붉은 젖꼭지를 만지작거렸다.
"싫...... 어요!"
비취여제는 달뜬 음성으로 속삭이며 옥용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하나, 그녀는 옥사후의 손길에 자극을 받은 듯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그녀는 대담하게 다리를 들어올려 옥사후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열에 달뜬 콧소리로 옥사후를 재촉했다.
"어...... 어서 밤이 벌써...... 깊었어요!"
옥사후는 그녀의 태도를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었다.
"흐흐...... 알아모시겠소, 사모!"
그는 음탕하게 웃으며 서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하체는 처음에는 규칙적으로 느린 율동을 보였다.
하나, 점차 그의 움직임은 빠르고 격렬하게 변해갔다. 그에따라
비취여제의 뜨거운 교성이 점점 높아졌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 또한 옥사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마주 허리를 흔들고 비틀며 옥사후의 행위에 호응하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급격히 절정을 향해 치달아 올랐다.
이윽고,
"하악......!"
"으음!"
뜨거운 신음과 함께 두 사람은 동시에 절정에 올랐다.
옥사후, 그는 비취여제의 풍만한 가슴 위에 널브러진 채 후끈한
환희의 여운을 즐겼다.
잠시 후, 그는 비취여제의 비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흐응...... 싫어요...... 조금만 더......!"
비취여제는 야릇한 비음을 발하며 옥사후의 허리를 붙잡았다.
한데 문득, 그런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왜 그러시오, 사모?"
옥사후는 흠칫하며 비취여제를 내려다 보았다.
비취여제는 두 눈을 한껏 치뜨고 왼쪽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던 옥사후,
"헉!"
그 역시 대경하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창 밖, 하나의 그림자가 둥실 떠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누...... 구냐?"
옥사후는 일갈을 내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때,
"너는...... 옥면환룡 옥사후가 맞느냐?"
창 밖에서 냉혹한 일갈이 들려왔다.
옥사후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빌...... 빌어먹을...... 다 틀린 것인가?)
그는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휙!
그는 필사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장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자신의 사모 비취여제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면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팟!
옥사후는 필사적으로 장검을 집어들었다.
순간,
"옥사후라면...... 죽어야 한다!"
콰---- 작!
재차 냉혹한 일갈과 함께 창문이 박살나며 한 무더기의 시뻘건 빛의
덩어리가 안으로 폭사되어 들어왔다.
"허억! 지옥폭멸검강!"
옥사후의 입에서 일순 경악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장검을 들어 막았다.
하나,
화드득...... 퍼퍽!
지옥폭멸검강은 노도같이 짓쳐들어 그대로 옥사후의 장검을 박살내며
그의 가슴에 작렬했다.
"커---- 억!"
화드득!
옥사후는 처참한 비명을 토하며 가슴부분이 박살난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윽고,
쿵!
삼 장을 날아간 그는 벽에 모질게 부딪쳤다가 거칠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광경에,
"까아악!"
비취여제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찢어질 듯한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 사이,
스읏!
부서진 창문을 통해 하나의 건장한 인영이 안으로 날아들었다.
막붕비! 바로 그였다.
옥사후는 안으로 들어서는 막붕비를 바라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옥...... 혈(地獄血)! 너...... 너는 누구냐?"
그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마검 지옥혈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막붕비는 그런 옥사후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사부를 시해하고 사모와 정을 통하고도...... 살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그는 냉막한 어조로 말하며 서서히 수중의 지옥혈을 쳐들었다.
옥사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크으...... 믿을 수 없다! 본성의 경계망은......
환우제일인데...... 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그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막붕비, 그가 전혀 소리없이 검황전(劍皇殿)까지 왔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막붕비는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제왕성의 경계망은 물론 환우제일이지! 하지만 이것을 보이니
아무도 본좌를 막지 않더군!"
그는 냉소하며 마검 지옥혈을 들어보였다.
옥사후의 안면이 순간 낭패함으로 일그러졌다.
"크으...... 그...... 그렇군! 마검 지옥혈이 본성의 지존신물도
됨을...... 잊었...... 헉!"
말을 하던 그는 돌연 공포와 절망이 뒤범벅된 표정으로 막붕비가
들어온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스으......
"......!"
"......!"
그곳에는 어느 새 구인(九人)의 노인들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었다.
비통과 분노의 표정으로 옥사후를 노려보고 있는 구 인, 그들은
하나같이 무서운 기도를 지닌 노인들이었다.
-제왕구검(帝王九劍)!
그것이 구 인의 노인들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사십 년 전, 절대신검황 초패강과 함께 제왕성을 세운 제왕성의
최고원로들, 그들은 각기 한 가지 방면에서 절대신검황 초패강을
능가한다는 초고수자들이었다.
옥사후는 내심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다...... 틀렸다! 후훗! 이제 사모와 함께 자살하는 길만 남았다!)
그는 절망의 눈빛으로 비취여제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
옥사후의 두 눈에 격렬한 파문이 일었다.
비취여제, 그녀는 나신을 이불로 가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몸은 떨고 있었으나 두 눈만은 독사같이 차갑게
번뜩이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 옥사후는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음...... 음모가! 그 날...... 동굴 속에서 내가......
당신을...... 범한 게 아니고......!"
그는 쥐어짜듯 말하며 비취여제를 노려보았다.
하나,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흐윽! 나...... 쁜 놈! 죽엇!"
휙!
돌연 비취여제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옥사후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새파란 비수가 들려 있는 것을 옥사후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일순,
퍼---- 억!
피가 확 튀며 벌거벗은 비취여제와 옥사후의 몸이 같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비취여제의 손에 들려 있던 비수, 그것은 옥사후의 심장 깊숙이 박혀
있었다.
옥사후는 죽으면서도 악귀같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비취여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때,
"흐윽! 모두 이 놈 때문이예요! 옥사후가...... 저를 강제로
능욕하고...... 그이를 시해한 것이예요!"
비취여제는 절규하듯 부르짖으며 옥사후의 시신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뇌살적인 나신은 옥사후의 피로 추악하게 얼룩져 있었다.
"저...... 정말이예요! 그때 저는 도저히 이 자의 완력을 감당할
수......!"
울부짖으며 막붕비를 올려다 보던 비취여제, 그녀의 교구가 돌연
부르르 떨렸다.
"......!"
막붕비, 그가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낀
것이었다.
비취여제는 애절한 표정으로 급급히 입을 열었다.
"저...... 정말이예요! 나...... 나는......!"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막붕비의 발에 매달리려 했다.
그 모습은 무림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의 그것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막붕비는 싸늘하게 얼어붙은 눈으로 비취여제를 내려다 보았다.
"훌륭한 연기로군! 혈관음교의 계집!"
그는 슬쩍 뒤로 물러서며 냉갈을 터뜨렸다.
순간,
"......!"
혈관음교(血觀音敎)라는 말에 비취여제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옥사후는 죽으면서 네년의 정체를 밝히고 죽었어!"
막붕비는 눈으로 비취여제의 가슴을 가리켰다.
흠칫하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본 비취여제,
"이...... 이런......!"
그녀의 얼굴이 절망과 낭패함으로 얼룩졌다.
그녀의 가슴, 두 다리를 벌리고 요염한 자세로 누워 있는 나녀의
문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가?
본래, 그녀는 일종의 약물로 그 문신을 감추고 있었다.
한데, 옥사후의 심장에서 흐른 더운 피가 그 약물을 녹여 버린
것이었다.
짧은 순간 비취여제의 안색이 여러 번 변화했다.
그러다 문득,
"깔깔! 좋아! 본녀가 졌다, 애송이 놈!"
돌연 그녀는 요란한 교소를 터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이어 그녀는
자신의 얼굴 한쪽을 손으로 더듬었다.
순간,
찌---- 익!
한 장의 얇은 인피면구가 벗겨지며 전혀 다른 얼굴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하나 비취여제의 기품 있는 모습과는 달리 음탕하고 요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이었다.
이때,
"주...... 주모(主母)님이 아니다!"
"그...... 그러면 그렇지! 주모님이 그런 불륜을 저지를 분이
아니다."
요녀의 본모습을 본 제왕구검, 그들은 분노와 안도의 표정으로
술렁거렸다.
막붕비, 그는 냉막한 눈으로 요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네가 누군지 밝힐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 말에 비취여제로 가장한 요녀는 사악한 교소를 터뜨렸다.
"정말 네게는 졌다, 애송이! 호호...... 본녀는 혈관음교 제삼교주
음나찰(陰羅刹)이다!"
그녀의 말이 떨어진 순간,
"혈관음교!"
"저...... 저 계집이 혈관음교의 수뇌라고?"
제왕구검의 술렁임은 더욱 커지며 분분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그들도 혈관음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스스로 음나찰이라고 밝힌 요녀, 그녀는 많은 강적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태연한 모습이었다.
막붕비는 검미를 모으며 냉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음나찰! 이제는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지 않느냐?"
하나, 그 말에 오히려 음나찰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너희는 본녀를 죽이지 못한다! 본녀를 죽이면 너희들의
잘난 주모란 계집을 영원히 보지 못할 테니......!"
"......!"
"......!"
제왕구검의 안색이 순간 홱 변했다.
막붕비는 그제서야 음나찰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내심 침음성을
발했다.
(바로 그거였군!)
그는 가슴 속에서 무섭게 살의가 들끓는 것을 느꼈다.
하나, 그는 냉정하게 가슴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비취여제가 어디 있는지 말해라! 그러면 살려 주마!"
"호호! 여기서는 말할 수 없다! 제왕성 권역 밖으로 나가면 말해
주마! 그것도...... 너 애송이 혼자에게만 말해 주겠다!"
음나찰은 교활하게 눈을 반짝이며 조건을 제시했다.
막붕비의 검미가 무섭게 꿈틀했다.
하나, 지금 상태에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막붕비는 흘깃 제왕구검을 돌아보았다.
그때,
"소형제! 그대가 누군지 모르나...... 그대에게 맡기겠네!"
막붕비의 귀로 한 가닥 전음이 들려왔다.
막붕비는 음나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다! 보내 주마!"
그는 한쪽으로 물러서며 길을 열어 주었다.
"호호!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후일 기회가 생기면 꼭 이 빚을
갚으마!"
음나찰은 깔깔 교소를 터뜨리며 막붕비의 앞을 지나갔다.
그녀는 웃고 있었으나 그 눈빛은 독사의 그것같이 오싹한 한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호호......!"
막붕비의 앞으로 풍만한 엉덩이를 흔들며 지나간 음나찰,
휙!
그녀는 곧 발가벗은 몸을 날려 제왕구검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
슥!
막붕비도 곧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삽시에 두 사람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제왕구검, 그들은 침중한 안색으로 두 사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무어라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적막, 갑자기 주위는 죽음 같은 적막에 휩싸였다.
* * *
일 다경 후, 막붕비와 음나찰(陰羅刹)은 이미 제왕성의 삼십여 리
떨어진 곳을 달리고 있었다. 문득,
"이 정도면 되지 않겠느냐?"
막붕비는 앞서 가는 음나찰을 향해 일갈했다. 그의 오른손은 마검
지옥혈의 손잡이를 만지고 있었다.
여차하면 지옥폭멸검강을 날려 음나찰을 베어 버리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태도였다.
그것을 감지한 음나찰,
"호호! 좋아!"
그녀는 교소와 함께 갑자기 몸을 멈추며 돌아섰다.
순간,
(읏!)
그녀가 너무 갑자기 몸을 멈추는 바람에 막붕비는 하마터면 그녀와
충돌할 뻔했다.
음나찰은 요염하고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녀는 일부러 다리를 살짝 벌리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도발적인 자세로 막붕비의 앞을 막아섰다.
휘---- 익!
막붕비는 음나찰과 충돌하기 직전에 그녀의 머리를 타넘어 뒤쪽으로
내려섰다.
"자...... 이제 말해 보시지! 더 잔꾀 부릴 생각은 말고!"
그는 지옥혈의 검신을 쓰다듬으며 냉막한 어조로 말했다.
"호호! 정말 박정한 분이군요!"
음나찰은 야속하다는 표정으로 막붕비를 주시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비취여제는 어디 계시느냐?"
막붕비는 눈썹을 꿈틀하며 재차 일갈했다.
"호호! 그렇게 알고 싶다면 얘기해 주마! 그 계집은......
낙양(洛陽)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낙양(洛陽)의 어디에 계시느냐?"
막붕비는 재차 다그쳐 물었다.
문득 음나찰의 두 눈이 잔혹하고 음탕하게 변했다.
"그것은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 년 전에 그 계집은 무공을
폐지당하여 낙양의 매음굴에 팔아 넘겼으니까!"
순간 막붕비는 아연실색했다.
"무...... 무어라고? 매음굴에 팔아 넘겼다고?"
그는 너무도 기막힌 사실에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휘---- 익!
음나찰은 벼락같이 몸을 날려 측면으로 달아났다.
"호호! 낙양의 창녀촌에 가 봐라! 운좋으면 뭇사내들의 노리개가
되어 있을 그 계집을 찾을지도 모르...... 아...... 악!"
돌연, 교활한 웃음을 흘리며 날아가던 음나찰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그녀는 피를 뿌리며 실 끊어진 연같이 바닥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런 그녀의 왼쪽 젖가슴, 한 자루의 반투명한 장검이 박혀 있었다.
누군가 어검술로 검을 날려 음나찰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찰나간의 일이었다.
"간악한...... 계집!"
어둠 속에서 서릿발 같은 여인의 냉갈이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스읏!
하나의 왜영이 음나찰이 날아가던 정면의 숲으로 유령같이 떠올랐다.
왜영은 창백한 안색의 흑의미부였다.
나이는 대략 삼십 전후, 일신에는 짙은 흑의궁장을 걸쳤으며
얼음으로 깎은 듯 새하얗고 창백한 안색을 지닌 여인이었다.
어둠 속에 떠오른 그녀의 새하얀 옥용은 섬뜩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막붕비, 그는 번뜩 눈을 빛내며 흑의미부를 예의 주시했다.
(천수검후(千手劍后) 빙화정(氷花精)이 저 여인인가?)
그것은 직감적인 느낌이었다.
-천수검후(千手劍后) 빙화정(氷花精)!
그렇다. 어검술로 검을 날려 음나찰을 떨어뜨린 흑의미부, 그녀는
바로 절대신검황 초패강의 셋째 제자 천수검후 빙화정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당년 삼십 이 세, 천수검결(千手劍訣)이라는 전설
상의 검예를 터득하여 어쩌면 초패강이나 검왕 극천조차 능가할지도
모른다고 알려진 초고수였다.
이때,
스읏!
천수검후는 막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걸음에 삼십 장을 날아
쓰러진 음나찰의 앞으로 내려섰다.
"당...... 당신이...... 이럴 수가......!"
음나찰은 죽어가며 경악과 분노의 시선으로 천수검후를 주시했다.
"감...... 감히 마가(魔家)를...... 배신하다니......
가주(家主)...... 만겁마종(萬劫魔宗)께서 아시면...... 당신......
이교......!"
그녀는 애써 몸을 일으키며 발버둥치며 이를 갈았다.
하나,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팟!
후두둑!
천수검후가 슬쩍 한 차례 손짓을 하자 음나찰의 심장에 박혔던
장검이 뽑혀 그녀의 손에 들어갔다.
그 순간, 비릿한 선혈이 어두운 밤하늘에 확 퍼져오르며 음나찰은
절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죽으면서도 한스러운 듯 두 눈을 감지 못했다.
"어리석은 계집...... 둔한 네 따위에게 쓰러질 정도로 제왕성이
허술하지 않음을 몰랐느냐?"
천수검후, 그녀는 음나찰의 피투성이 시신을 내려다 보며 우울하게
탄식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막붕비, 그는 검미를 모으며 내심 침음성을
발했다.
(흐음...... 음나찰이 죽어가며 무어라 한 것 같은데...... 왜
내게는 들리지 않았을까......?)
이어, 그는 천천히 천수검후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가
다가서자 문득 천수검후는 고개를 들며 말을 건네어 왔다.
"그대가...... 사부님의 마지막 제자인가요?"
우울하고 나직한 음성이었다.
막붕비는 그제서야 천수검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어느 모로 보나 서른을 넘은 중년여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앳된 십대 소녀 같은 용모, 너무 희어 파랗게까지 보이는
창백한 얼굴이 상대로 하여금 절로 가슴 뭉클한 연민을 느끼게 했다.
막붕비는 음나찰의 시신 앞에 멈춰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제가 무공을 익히게 된 것은
순전히 그 분 때문이니."
음나찰, 그녀는 죽으면서도 눈을 자극하는 야릇한 자세로 넘어져
있었다.
그녀의 심장에서 흐른 붉은 피가 어느 덧 주위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막붕비는 음나찰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침중한 어조로 물었다.
"혈관음교가 당대에 부활하여 제왕성을 잠식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
천수검후의 창백한 얼굴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제...... 이렇게 부르는 것을 용서하세요! 그대는 본성을 노리는
것이 단순히 혈관음교라고 생각하나요?"
그 말에 막붕비는 흠칫했다.
"그럼 아니란 말씀이오?"
"물론이예요! 혈관음교의 요사한 계집들 따위로는 감히 본성을
노리지 못해요!"
막붕비는 검미를 모으며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럼 혈관음교의 뒤에 배후가 있단 말씀이오?"
천수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제...... 는 사대천왕이라고 아세요?"
막붕비는 경악하며 다급히 되물었다.
"저...... 천년최강이란 사대천왕(四大天王)의 후예들이 당대에
부활했단 말이오?"
천수검후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사대천왕의 후예들이 당대에 모두
나타나 있는 상태예요. 그들은 천 년 전에 그들의 선조가 가리지 못한
천왕지존의 권좌를 놓고 아마 대격돌에 돌입한 것 같아요!"
막붕비의 눈빛이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사대천왕!
고금을 통틀어 가장 막강했다는 네 명의 초강자들,
천 년 전, 그들 사 인(四人)은 고금최강의 권좌를 놓고 격돌했었다.
그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나, 전설에 의하면 사대천왕은 끝내 천왕지존(天王至尊)을 가리지
못하고 함께 지상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한데...... 동귀어진하여 지상에서 소멸되었을 것으로 믿어지던
사대천왕, 그들의 망령이 당대에 다시 부활한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무림의 존망이 달린 중대한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사대천왕이 다시 당대에 부활하면 천 년 전과 똑같이
그들은 다시 천왕지존을 가리기 위해 대격돌을 벌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은 무림의 위기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천수검후는 침울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대천왕 사이의 암투는 이미 시작된 상태예요. 그 때문에
환우최대의 조직인 제왕성이 그들의 공략 목표로 정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예요!"
"사대천왕 중 누가 혈관음교를 조종하여 제왕성을 노린 것입니까?"
막붕비는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다시 물었다.
천수검후, 그녀는 우수 어린 눈 깊숙이 스산한 신광을 발하며
말했다.
"만겁...... 마종(萬劫魔宗)의 후예인 만겁마가(萬劫魔家)가
장본인이예요!"
"만겁...... 마가(萬劫魔家)!"
막붕비는 신음하듯 나직이 부르짖었다.
-만겁마가(萬劫魔家)!
고금 모든 마도(魔道)의 조종(祖宗)이랄 수 있는
만겁마종(萬劫魔宗)의 후예들, 만겁마가(萬劫魔家)는 만마(萬魔)의
처음이고 끝이라 할 수 있었다.
만겁마가의 만겁마황번(萬劫魔荒幡)이 나타나면 그 즉시 천하각지의
백만마인(百萬魔人)들이 그 휘하에 모여든다고 한다.
가히, 만마(萬魔)의 하늘(天)이고 암흑무림(暗黑武林)의
대부(代父)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만겁마가였다.
대대로 만겁마가의 가주는 만겁마종이라 불리웠다.
만겁마종(萬劫魔宗)!
그 이름은 마도인들에게 있어 곧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만겁마가에는 사대가신(四大家臣)이 있어요! 그 사대가신 중 하나가
바로 혈관음교예요!"
천수검후는 우울한 눈빛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막붕비, 그는 유현한 눈빛으로 천수검후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물었다.
"혈관음교에서 제왕성에 파견된 책임자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음나찰(陰羅刹) 정도의 피라미는 아닐 텐데......!"
천수검후는 여전히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바로 보았어요! 제왕성에는 사실상 혈관음교의 제일고수인
제이교주가 파견되어 있어요!"
"그녀가...... 누구입니까?"
막붕비는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수검후는 한 손으로 긴 머릿결을 쓸어넘기며 막붕비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우수 어린 시선으로 막붕비를 주시하며 문득 물었다.
"알고...... 싶나요?"
"그렇소! 누가 혈관음교의 제이교주요?"
막붕비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바로...... 나예요!"
천수검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예! 지금 무어라고 그랬소?"
막붕비는 너무도 태연한 천수검후의 말에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순간 천수검후의 표정이 변했다.
정숙하고 우수 어려 보이던 그녀의 옥용 위로 문득 사악하고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똑바로 막붕비를 직시하며 재차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바로 혈관음교의 제이교주 혈관음(血觀音)이란
말이예요!"
"혈...... 혈관음, 당신이?"
막붕비는 아연실색했다.
순간,
파---- 앗!
그는 다급히 뒤쪽으로 퉁겨져 천수검후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하나,
"호홋! 늦었다, 어리석은 아이야!"
천수검후, 아니 혈관음의 입에서 사악한 교갈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츠츳!
휘르륵!
그녀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확 퍼지며 막붕비를 휘감아
왔다.
순간,
"끄---- 윽!"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막붕비는 그대로 혈관음의 머리카락에 목이
휘감겨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혈관음, 그녀의 머리카락은 순간적으로 일 장이 넘는 길이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피를 칠한 듯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실로 끔찍하고도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깔깔! 맛이 어떠냐? 이것이 바로 혈관음교의 최강의 절기인
혈발천라신강이란 것이다!"
혈관음은 요악한 교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에 목이 감겨
쓰러져 있는 막붕비를 내려다 보았다.
막붕비의 두 눈이 경악과 분노로 한껏 부릅떠졌다.
"당...... 당신이...... 원흉이었다니...... 이런 엉터리
같은......!"
그는 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혈관음을 노려보았다.
혈관음의 새하얀 옥용이 섬뜩하도록 차갑게 굳어졌다.
"자칫 너로 인해 본녀의 십 년 공작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그녀는 바득 이를 갈며 막붕비를 노려보았다.
"위대한...... 만겁마가에 대항한 죄로...... 죽어 주어야겠다.!
어린 아이야!"
그녀의 눈이 요악한 빛으로 번뜩였다. 문득 그녀는 긴 혀로 입가를
빨며 입맛을 다셨다.
"호호...... 무엇을 먹었는지...... 네 몸 속에는 대단히 막강한
원정내단이 형성되어 있구나! 그것을 본좌가 접수하여 유용히 쓰겠다!"
그녀는 막붕비의 내부에 천년독황정이 다 융해되지 않고 있음을
감지하고 탐욕의 눈을 번뜩였다.
(이놈의 원정내단을 제대로 흡수하면...... 만겁마종과 맞서 싸워 볼
수도 있다!)
그녀는 내심 기대와 흥분에 사로잡혔다.
이어,
츠---- 읏!
그녀는 즉시 잔양흡정마공을 일으켜 막붕비의 내공을 흡수했다.
순간, 그녀의 혈발(血髮)은 불에 달군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크---- 악!"
막붕비는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그의 내공은 혈관음의 모발을 통해 급격히 빨려 들어갔다.
"호호...... 원망하지 마라! 이 모두 네가 주제를 모르고 만겁마가의
일에 끼어든 대가이니!"
혈관음은 막붕비의 내공을 흡수하며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위기의 순간, 그때였다.
"대충...... 그 정도로 그치는 게 어떠냐, 사매?"
문득 한 쪽의 어둠 속에서 우울한 탄식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대...... 사형(大師兄)!"
혈관음은 전신을 격렬하게 떨며 홱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장한이 산악같이 우뚝 서 있었다.
만인을 위압하는 막강한 기도의 중년인- 검왕 극천!
바로 그였다. 제왕성의 제일검호(第一劍豪)!
절대신검황 초패강이 죽은 지금 명실상부한 중원제일검왕이 바로
그였다.
혈관음은 떨리는 눈빛으로 검왕을 주시했다.
"이...... 이 어린 아이가...... 당신의 금령(禁令)을 해제해
주었군요!"
그녀는 비칠비칠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녀의 전신이 경악과 두려움으로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검왕, 그는 탄식하며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유가...... 무어냐? 사부님, 사모님은 네게 잘못해 준 일이
없는데...... 왜 그 분들을 해친 것이냐?"
그는 지금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빈손이었다.
하나, 그의 전신에는 흡사 천 개의 칼날이 돋아난 듯 보였다.
검벽신공!
그것은 검도의 전설적인 최후단계의 형상이었다.
검왕, 그는 이미 검이 필요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문득, 혈관음의 봉목이 갈등과 회한의 빛으로 뒤흔들렸다.
"대...... 형은...... 막북(漠北) 천빙곡(千氷谷) 빙(氷)가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아시나요?"
그녀는 입술을 악물며 쥐어짜듯 말했다.
그 말에 검왕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막북 천빙곡의 후예란 말이냐?"
"그래요! 내가 바로 막북 천빙곡 빙가의 마지막 후예예요!"
혈관음은 회한의 표정으로 절규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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