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천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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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쓰러진 魔皇
-막북(漠北) 천빙곡(千氷谷)!
막북(漠北)의 명가(名家), 곡주(谷主)는 천빙황(千氷皇) 빙각(氷角).
그는 사십 년 전 절대신검황 초패강을 도와 낭야왕 갈태독을
쓰러뜨린 일대의협이었다.
한데, 삼십여 년 전 천빙곡은 신비하게 멸절되고 말았다.
절대신검황 초패강, 그는 누군가 천빙곡의 보물인
천년빙정(千年氷精)을 노리고 있다는 천빙황 빙각의 구조요청을 받고
막북 천빙곡으로 달려갔었다.
하나, 그가 막북에 이르렀을 때 이미 천빙곡의 전문도들은 처참하게
몰살당한 후였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 무림 일대의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
한데, 천수검후 빙화정, 그녀가 바로 그 천빙곡의 후예인 것이다.
검왕(劍王) 극천, 그는 검미를 모으며 침중한 어조로 빙화정에게
물었다.
"천빙곡의 멸망과 사부님과 무슨 관계라도 있단 말이냐?"
이미 그는 천수검후 빙화정에게 복잡한 내막이 있음을 감지한
것이었다.
"호호호......! 초패강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갑자기 빙화정은 미친 듯이 날카롭게 웃어제꼈다.
그 모습에 검왕은 무섭게 송충이 눈썹을 꿈틀했다.
"무엄하구나! 감히 사부님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그는 분노한 듯 사나운 일갈을 터뜨렸다. 그의 일갈은 순간적으로 십
리를 들썩 뒤흔들었다.
실로 무서운 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비화정, 그녀는 문득 웃음을 뚝 그치며 광기 서린 시선으로 검왕을
노려보았다.
"그 자는...... 천년빙정과...... 나의 어머니의 미모를 노리고
천빙곡을 쑥밭으로 만들었어요!"
그녀는 날카롭게 격분한 음성으로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검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다! 무슨 오해가 있을 것이다!"
"오해라고요? 호호홋! 그때...... 내 눈으로 어머니가 아버님의 시신
옆에서 그 짐승 같은 자에게 능욕당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오해라고요?"
빙화정은 거의 반은 미쳐 절규했다.
그녀의 뇌리에 삼십여 년 전의 일이 악몽같이 다시 떠올랐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넘어진 부친 천빙황, 그 옆에서 사내에게
능욕당하며 미친 듯이 울부짖던 어머니, 그러다 그녀의 어머니는 끝내
혀를 물고 자진하고 말았다.
그 순간 어린 빙화정도 충격으로 혼절해 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한 명의 청수한 문사에게 안겨 있었다.
-아이야! 복수를 하고 싶으냐?
그 문사는 애처로운 눈으로 빙화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빙화정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문사는
탄식하며 그녀를 안고 천빙곡을 떠났었다.
-만겁마종(萬劫魔宗)!
후일에야 빙화정은 그 문사가 바로 만겁마가(萬劫魔家)의
당대가주임을 알게 되었다. 만겁마종은 빙화정을 양녀로 거두어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그러다, 빙화정이 나이 십 오 세 되던 해, 만겁마종은 빙화정을
혈관음교(血觀音敎)로 보내 사악한 마공까지 익히게 했다.
만겁마종은 다른 사대천왕과 싸움의 교두보로 제왕성을 장악하려
했다.
그때 빙화정은 자원하여 초패강의 제자로 제왕성에 침투한 것이었다.
검왕은 빙화정의 말을 불신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라! 사부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그는 침중하게 일갈하며 성큼 빙화정에게로 다가갔다.
순간,
"오지 마라! 더 다가오면 이 어린아이는 시체가 될 것이다!"
빙화정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절규하며 비칠 물러섰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누가...... 시체가 된단 말인가?"
문득 빙화정의 발 끝에서 차가운 일갈이 들렸다.
(흑!)
빙화정은 아연함을 금치 못하며 발 밑을 내려다 보았다. 순간,
그녀는 보았다.
기절해 있어야 할 막붕비, 그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음을......
"이...... 이럴 수가 없어! 너...... 너는 분명 나의
잔양흡정마공(殘陽吸精魔功)에 당했을 텐데......!"
빙화정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간신히 몸을 세우며 불신의 눈으로
막붕비를 바라보았다.
슥......
막붕비는 냉엄한 눈길로 몸을 일으켰다.
"그대는...... 잊었군! 지옥저주마경에는 잔양흡정마공보다 두 배
무서운 지옥흡정심마결이 수록되어 있음을......!"
그는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마검(魔劍) 지옥혈을 쳐들었다.
빙화정의 창백한 옥용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나...... 나를 속였군! 어떻게...... 본녀의 정체를 알았느냐?"
그녀는 절망과 회의가 뒤얽힌 눈으로 막붕비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녀가 만겁마종의 양녀라 해도 지금은 부상당한 상태였다.
검왕과 막붕비 같은 두 초고수에게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막붕비는 냉엄한 눈길로 빙화정을 주시했다.
"당신은...... 아는 게 너무 많았소! 음모의 주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그는 싸늘하게 일갈하며 한 걸음 다가섰다.
"당신의 처지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신검황
부부에게 한 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소!"
순간,
츳!
마검 지옥혈에서 섬뜩하리만큼 시뻘건 노을이 일어났다.
빙화정은 분노의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바...... 득! 다 네놈 때문이다! 오늘의 이 빚은 잊지 않는다!"
그녀는 발악하듯 외치며 막붕비를 향해 어검술로 장검을 투사해
냈다.
하나,
쩌...... 엉!
날아든 그녀의 보검은 지옥혈에 부딪쳐 파열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직후,
쐐액!
빙화정은 지면을 박차고 벼락같이 측면으로 날아올랐다.
"......!"
검왕 극천, 그는 빙화정이 달아는 것을 보고도 침중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막붕비는 힐끗 그런 검왕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마검 지옥혈의 손잡이를 단전에 갖다댔다.
"갈! 지옥(地獄)...... 천리참(千里斬)!"
푸...... 학!
그는 대갈일성과 함께 지옥검결상의 어검비기로 마검 지옥혈을
빙화정의 등 뒤로 날려보냈다.
시뻘건 혈검강으로 뒤덮인 마검 지옥혈, 그것은 빙화정보다 열 배
빠른 속도로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가 막 지옥혈에 관통당할 찰나였다.
피---- 잉!
돌연 측면에서 하나의 나무조각이 날아들어 마검 지옥혈을 후려쳤다.
순간,
따당......!
나뭇조각에 부딪친 마검 지옥혈은 쇳소리와 함께 무력하게 지면으로
뚝 떨어졌다.
실로 간일발의 차이로 빙화정은 지옥혈에 꿰뚫리는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이때,
"왜...... 이러시오?"
막붕비는 창백한 안색으로 신형을 휘청했다.
그는 분노와 회의의 눈으로 검왕을 주시했다.
나뭇가지를 날려 마검 지옥혈을 떨어뜨린 것은 검왕 극천이었다.
"손에...... 사정을 두어 주게! 어쨌든 그녀는 나의 사매라네!"
검왕은 탄식하며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이, 빙화정은 이미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막붕비는 분노로 거칠게 입술을 씰룩거렸다.
"당신은...... 저 계집이 그대의 사모를 어떻게 했는지......!"
하나 말을 하던 그는 급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차마 비취여제 수옥경이 창굴에 팔려갔음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검왕은 막붕비의 말에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했다.
"사모님이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츠...... 읏!
그는 뚫어질 듯 무서운 눈으로 막붕비를 노려보았다.
하나, 막붕비는 죽어도 그 사실을 검왕에게 직접 말할 수 없었다.
비취여제 수옥경, 그녀가 어찌 되었는지 아는 것은 막붕비 자신과
죽은 음나찰, 그리고 빙화정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막붕비는 짐짓 싸늘한 어조로 일축해 버렸다.
"궁금하다면 빙화정을 직접 찾아가 물어 보시오!"
막붕비를 주시하는 검왕의 눈빛이 더욱 강해졌다.
"나는...... 어쩌면 자네를 벨지도 모르네! 그대가 본좌를 구해
주었다고 해서 베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말하면서 타는 듯한 시선으로 막붕비를
주시했다.
막붕비는 그런 검왕의 전신에서 이는 예기에 숨통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이 사람은 사실 나보다
다섯 배 이상 강한 사람인데 이제껏 그것을 깨닫지 못하다니......!)
그의 등으로 축축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검왕 극천, 그는 격노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본 실력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은 막붕비의 예기보다 다섯 배나 막강했다.
만일 막붕비가 그와 싸운다면 십초를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물론 마검(魔劍) 지옥혈까지 사용해서였다.
하나, 막붕비는 그런 내심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검왕의 눈을 직시하며 냉막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해 보시오! 그대가 그래서 보게 될 것은 본인의 시체 뿐일
테니......!"
"으음......!"
검왕은 막붕비의 태도에 앓는 듯한 신음을 발했다.
이어, 그는 탄식하며 막붕비에게 포권해 보였다.
"실례했네! 자네로 인해 제왕성이 회생하는 은혜를 입었음을
잊었군!"
그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막붕비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사람...... 역시 장자(長者)답다!)
그는 검왕을 향해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별말씀을...... 그럼 저는 이만 볼 일이 있어서......!"
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배웅하지 못함을 용서하게! 이후 본성은 당분간 봉문하여
사대천왕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겠네! 하지만 자네라면 언제든지
환영하네. 들려 주게!"
"감사하오이다, 선배!"
문득, 검왕은 싱긋 웃으며 흔쾌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내게는 사부님이 남겨 주신 예쁜 사매 하나가 있네.
검정(劍精) 초하령(楚霞靈)이라고...... 자네도 알 것이네!"
"......!"
막붕비는 그 말에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검왕은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어조로 덧붙였다.
"다시 본성을 찾아오면 그 아이를 소개시켜 줌세! 조금 말괄량이긴
하나 자네에게는 잘 어울리는 짝이 될 걸세!"
막붕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뵙겠소이다!"
슥!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달아나듯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검왕은 뒷짐을 진 채 사라지는 막붕비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사부님은 타계하셨어도 역시 환우제일인이시다! 저런 훌륭한
후계자를 남기셨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돌아섰다.
"사대천왕...... 후훗! 곧 깨닫게 되리라! 본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자신들을 위해 유익하다는 사실을......!"
그는 나직한 기소를 발하며 신광을 번뜩였다. 이어,
스읏!
그는 제왕성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그는 한 걸음에 무려 백여 장씩 전진하는 것이 아닌가?
"핫하! 어쨌든 본성은 오패천(五覇天)의 하나인 신강지옥성의
후예이거늘...... 어찌 너희 사대천왕에 뒤지겠는가?"
검왕은 껄껄 대소를 터뜨리며 곧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오패천(五覇天)!
신강지옥성은 바로 사대천왕에 패했던 오패천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미 알려지다시피, 오패천은 각기 한 분야에서는 사대천왕을 오히려
능가하는 막강했던 전설의 초거파들이었다.
그들이 사대천왕에게 패했던 것은 순전히 그들이 사대천왕 만큼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신강지옥성의 절기를 바탕으로 세워진 제왕성은 바로 오패천의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천하에서 오직 검왕 극천밖에 없었다.
스으......
어느 덧,
황산(黃山)의 동녘이 붉게 물들어오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며......
* * *
소문,
실로 충격적인 소문이 돌풍같이 무림을 휩쓸고 있었다.
-절대신검황 초패강이 오 년 전에 시해당했다!
-범인은 초패강의 둘째제자 옥면환룡 옥사후였다!
-옥사후는 혈관음교의 사주를 받아 초패강을 시해한 것이다!
-혈관음교(血觀音敎)는 천 년 전의 사대천왕(四大天王) 중
만겁마가(萬劫魔家)의 사대가신 중 하나라고 한다!
-검왕(劍王) 극천은 복수를 다짐하고 제왕성을 봉문했다!
폭풍 같은 소문이 잇따라 무림을 휩쓸었다.
절대신검황 초패강!
그의 죽음은 실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초패강이 무림에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막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인이며 또 제왕성 환우최강의
결사였다.
그런 초패강의 죽음은 제왕성의 봉문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그 사건으로 인해 무림세력의 판도는 일대격변을 초래하게
되었다.
지금껏 초패강의 위명과 제왕성의 강대함에 눌려 야심을 드러내지
못했던 무림의 뭇 효웅들, 그리고 여러 강파들, 그들이 마침내 서서히
야심의 검(劍)을 뽑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림패왕(武林覇王)!
그 지고무상한 공석을 향한 대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었다.
만겁마가! 사대천왕 중 만마의 하늘인 저 만겁마종의 후예.
검왕 극천은 그들이 무림을 노리고 있음을 전무림에 밝혔다.
하나, 그런 그의 경고도 뭇 군웅들의 야심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뭇 세력과 강자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환우십강이었다.
-환우십강!
전 무림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십 인(十人)의
초고수들, 그들을 일컬어 환우십강이라 하거니와, 그 환우십강은 다시
오정(五正), 오사(五邪)로 나뉘어진다.
그들은 개개인의 막강한 절기 뿐 아니라 수하에 강대한 조직을
이끌고 무림패권을 향한 치열한 암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오정(五正).
-절대신검황(絶代神劍皇) 초패강.
-소림활불(少林活佛) 항마천존(降魔天尊).
-풍뢰천강궁의 지존 천강노조.
-운남(雲南) 패왕부(覇王府) 철장패왕(鐵杖覇王).
-청해(靑海) 유리성(琉璃城)의 신성(新星) 유리옥황(琉璃玉皇).
그들이 바로 환우십강 중 오정(五正)으로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정파를 대표하는 최강자들, 그들의 휘하조직인 제왕성(帝王城),
소림사(少林寺), 풍뢰천강궁, 패왕부(覇王府), 유리성(琉璃城).
그것은 사실상 정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강력조직이었다.
절대신검황 초패강의 사망으로 제왕성이 막후로 잠적하자 나머지
사대문파가 정파맹주의 권좌를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사(五邪).
-아수천황(阿修天皇) 북궁혼(北宮魂).
-혈우사황(血雨邪皇.
-사천(四川) 당문의 지존 삼안천수종(三眼千手宗) 당천성(唐天星).
-천면신투(千面神偸).
-서시독후(西施毒后).
그들 오 인(五人)을 일컬어 오사(五邪)라 칭했다.
아수천황 북궁혼,
마도(魔道)의 당대맹주.
아수파천황(阿修破天荒)의 도법은 생시 초패강조차 맞서기를 꺼려할
정도로 패도적인 것이었다.
그의 도결(刀訣)은 신강지옥성에서 흘러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혈우사황,
사술(邪術), 환술(幻術)의 일인자. 또한, 그는 사파의 당대
맹주이기도 했다.
강직한 성격의 아수천황과는 달리 교활한 대효웅이었다.
그는 아수천황과 흑도제일인의 자리를 놓고 끊임없는 암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삼안천수종 당천성,
일천 개의 손을 지녔다는 암기술의 제일인자.
천면신투,
당대 제일의 투도술을 지닌 기인.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제의 옥새라도 훔칠 수 있다.
또한, 그의 역용술은 가히 불가해의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 가장 무서운 것은 오사(五邪)의 막내였다.
서시독후,
그녀는 삼 년 전 홀연히 무림에 등장했다.
그리고, 당시 독문제일인(毒門第一人) 천독노조(天毒老祖)를 손짓 한
번으로 굴복시켜 독문지존이 되었다.
그녀의 눈짓, 손짓 한 번이면 누구라도 한줌의 독수로 녹아 버린다고
했다.
하나, 그녀의 진정한 실력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와 싸운 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혹자는
그녀를 일컬어 당대 천하제일 미인이라고도 했다.
-오정(五正), 오사(五邪)!
명실상부하게 무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십 인의 초인들.
그들 중에 차기 천하제일인이 날 것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데, 어느 날 한 명의 무서운 신비고수가 무림에 나타났다.
지옥혈황(地獄血皇)!
그는 단지 그렇게만 알려졌다.
또한, 그는 그 옛날 신강을 지배한 공포조직 지옥성의 후예라고도
알려졌다.
그의 애검 마검 지옥혈이 뽑혀지면 아무도 그에 맞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왕성의 치욕스런 모해사건을 푼 것도 바로 그였다는
것이다.
지옥혈황(地獄血皇)!
그의 이름은 처음 검왕 극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검왕은 그가 삼 년 내 환우최강자가 될 것을 서슴없이 단언했다.
위대한 검의 제왕---- 검왕(劍王)!
그의 한 마디 발언으로 지옥혈황이란 인물은 단숨에 천하무림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풍운(風雲)의 세태!
무림은 격변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 * *
-낙수(落水)!
고도(古都) 낙양(洛陽)의 북서쪽을 휘감아 도는 황하(黃河)의 한
지류, 낙수 양안으로는 일망무제의 갈대밭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스으...... 스으......
하얀 갈대꽃이 가을바람에 솜털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환상의 흰 물결이 굽이쳐 흐르는 듯한 가을의 갈대밭, 그것은 가히
절경이었다.
석양 무렵,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시커먼 먹장구름이 갈대밭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문득,
"비가...... 올 것 같군!"
낮고 우울한 한 줄기 음성이 갈대밭 사이에서 들려왔다.
스으......
한 명의 장발소년이 갈대를 헤치며 낙수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드리워진 윤기 흐르는 장발에 낡은 마의를 걸친 소년, 그는
천으로 둘둘 만 한 자루 장검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유현하고 신비롭게 빛나는 혜안(慧眼), 그 깊숙한 곳에 한 줄기
우수의 빛이 엿보이는 소년.
막붕비! 그는 바로 황산을 떠나온 막붕비였다.
그는 황산으로부터 도보로 남서진 방향인 이곳에 이르른 것이었다.
그 전에 막붕비는 오직 철접(鐵蝶)만을 찾고 있었으나 이제는 한
명을 더 찾고 있었다.
-비취여제 수옥경!
바로 그 비운의 여종사였다.
막붕비는 아무도 몰래 그녀를 찾아낼 생각으로 남하 중이었다.
남하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지옥혈황이란 별호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문득, 막붕비는 걸음을 옮기며 고소를 지었다.
"후훗! 그게 나에 대한 검왕(劍王) 극천의 보은인가?"
그는 검왕 극천이 자신을 위해 지옥혈황이란 이름을 퍼뜨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전무림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 분은...... 쓸데없는 짓을 하셨다. 결코 무림인이 될 수 없는
내게 지옥혈황이란 이름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까......!
막붕비는 씁쓸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한데,
"......!"
문득 그는 검미를 모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피...... 비린내......!)
한 줄기 역겨운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자극한 것이었다.
순간,
슥!
막붕비는 걸음을 빨리하여 전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갈대밭 중앙,
사방 십 장 내의 갈대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십여 명의 흑의몽면인들이 죽어 넘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심장 부근에 열십자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막붕비는 그들의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칼(刀)에 베인 상처다!)
그의 눈에 경이의 빛이 흘렀다.
흑의몽면인들의 치명상은 그 십자도흔(十字刀痕)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 십자도흔이 목숨을 뺏을 정도로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겨우 흔적이 남을 정도로 얇은 상처였다.
하나, 그럼에도 그들은 심장이 박살나 절명하고 만 것이었다.
툭!
막붕비는 그 중 한 시체를 뒤집어 보았다.
그 시체의 등에도 역시 십자의 흔적이 나 있었다.
놀랍게도 누군가 가슴에서 등까지 뚫고 나올 정도로 막강한
내가도강을 펼쳐 그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옥저주마경을 연마한 막붕비로서도 엄두도 못낼 지고한
경지였다.
막붕비는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 정도의 내가도강을 펼칠 수 있는 도법(刀法)의 명인은 천하에서
단 일 인---- 아수천황 북궁혼 뿐이다!)
문득, 생각을 굴리던 그는 검미를 모으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아수천황(阿修天皇)이 주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데...... 이
자들은 누구이기에 오사(五邪)의 제일인과 싸웠단 말인가?)
그는 궁금함을 느끼며 흑의인들의 몽면을 벗겨보았다.
순간,
"......!"
몽면을 벗기던 막붕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눈앞에 실로 끔찍한 얼굴이 나타났다.
흑의몽면인, 그 자는 얼굴 가죽이 통째로 벗겨진 끔찍한 형상이었다.
그런 그 자의 이마, 다음과 같은 두 글자가 시커멓게 찍혀 있었다.
<사망(死亡).>
막붕비는 검미를 모으며 침음성을 발했다.
"사망......? 이 자들은 신비한 청부살인집단 사망탑의 살수들인가?"
-사망탑(死亡塔)!
근년 돌연히 나타난 무서운 살수조직, 그들은 황금만 주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죽여 준다.
이미 수많은 무림명숙들이 그들의 손에 쓰러졌다.
막붕비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누가...... 사망탑의 살수들을 고용하여 아수천황을 노린 것일까?)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수천황이 아무리 초고수라도 암습에 능한 이들 전문살수들의
손에서 무사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오늘...... 가장 위대한
마종(魔宗)의 한 사람을 위해 당한지도 모른다!)
스읏!
그는 다시 갈대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이내 하얀 갈대꽃 사이로 사라졌다.
* * *
시커먼 먹장구름은 갈수록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
눈(眼), 하나의 외눈(獨眼)이 먹장구름이 가득 덮인 암천(暗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인,
독안(獨眼)의 주인은 전신에 피칠을 한 듯한 한 명의 노인이었다.
그는 갈대 사이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그의 전신은 흠뻑 피에
젖어 있었으며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한데, 그는 어떤 병기나 암기에 맞은 듯 눈이 파열되어 검푸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흐르는 피가 검푸른 이유는 그의 눈을 찌른 암기에
지극한 극독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츠으......
독안노인,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 칼(刀)이 안겨져 있었다.
길이 넉 자, 도신(刀身)이 가늘고 두께가 두꺼우며 전체적으로
거무튀튀한 빛이 흐르는 묵도!
그 묵도는 날이 서 있지 않고 뭉툭했다.
그것은 그 칼이 날로 적을 베는 것이 아니라 내가도강으로 적을 베는
중병기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문득,
(비가...... 오려나?)
독안노인은 하늘의 먹장구름을 바라보며 우울한 눈빛을 지었다.
눈 하나가 파열되었지만 그는 그런 고통쯤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둘...... 셋...... 모두 열 셋이군!)
문득 독안노인은 입 속으로 숫자를 헤아리며 나직이 뇌까렸다.
순간, 그의 독목(獨目)이 스산하게 번뜩였다.
그의 귓전으로 숨소리도 없이 다가서는 십 삼 인의 적이 감지된
것이었다.
생기라고는 한 올도 흘리지 않으며 다가서는 십 삼 인!
그들이 바로 사망탑의 가장 무서운 살수들인
독련십삼살(毒鍊十三煞)이란 자들임을 독안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낫(鎌)이 달린 쇠사슬을 병기로 쓰는 무서운 사신(死神)들, 그들의
연수합격에 걸리면 대라신선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독안노인은 소리없이 고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큭큭...... 이제 종말인가? 나...... 북궁혼의......?)
아! 북궁혼(北宮魂)!
그렇다! 독안노인은 바로 혈우사황(血雨邪皇)과 함께 흑도지존의
권좌를 다투는 도의 명인 아수천황 북궁혼이었다.
한데, 마도(魔道) 총본산 단혈마황맹(丹血魔皇盟)에 있어야 할 그가
어찌 이천 리 밖 낙수의 갈대밭에 피투성이로 누워 있단 말인가?
사박......!
문득 다가서던 십 삼 인의 발자국 소리가 뚝 그쳤다.
그와 함께 북궁혼의 독안이 번뜩 빛났다.
(발견 되었다! 관례를 깨고 선제공격을 해야겠군!)
그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북궁혼, 이제껏 단 한 번도 적을 먼저 공격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하나, 지금 그는 그 관례를 깨고 선제공격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아수...... 쇄륙참(阿修碎戮斬)!)
문득 북궁혼은 입 안으로 아수파천황(阿修破天皇)의 도결 중 한 가지
초식을 되뇌였다.
동시에,
쉬---- 아아악!
그의 신형이 곧장 일 장 높이로 붕 떠오르며 수중의 묵도(墨刀)가
섬전같이 갈대밭을 스쳤다.
순간,
"놈이다!"
"독련살인폭(毒鍊殺人爆)!"
갈대밭에서 십 삼 개의 인영이 놀란 기러기같이 떠올랐다.
거의 동시에, 그들 십 삼 인의 소매 속에서 십 삼 개의 낫(鎌)이
달린 쇠사슬이 빗발치듯 북궁혼을 그어왔다.
차---- 차창!
사가각!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살이 베어지는 듯 섬뜩한 소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순간,
"억!"
"컥......!"
짧고 둔중한 신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그와 함께,
후두둑!
북궁혼의 눈에 독련십삼살 중 네 명이 가슴에서 피분수를 뿌리며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하나, 거의 동시에 북궁혼은 복부가 화끈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당...... 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쿠---- 웅!
그는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나뒹굴었다.
아!
끔찍하게도 그의 왼쪽 다리가 허벅지에서부터 싹둑 잘려 저만큼
나뒹군 것이 아닌가?
또한, 그의 복부는 낫에 잘려 처참하게도 내장조각이 흘러나왔다.
북궁혼은 그 상처로부터 전신이 급격히 마비됨을 느꼈다. 그것은
독련십삼살의 낫에 극독이 함유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북궁혼은 간신히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나, 살아남은 독련십삼살 중 구 인(九人)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북궁혼은 그 자들이 바로 자기 몸 근처에 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눈을 감고 운공하여 독기에
저항했다.
그때였다.
"흐흐...... 꼴 좋구나, 아수천황!"
문득 한 줄기 음산하고 교활한 음성이 북궁혼의 귓전을 울렸다.
이어,
스으......
한 명의 깡마른 인물이 북궁혼의 앞에 나타났다.
일신에 시뻘건 혈의(血衣)를 걸친 중년문사, 그는 몇 가닥의 염소
수염을 기른 아주 교활한 인상이었다.
그가 나타난 순간, 북궁혼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혈우사황(血雨邪皇)의...... 개...... 사뇌마자......!)
-사뇌마자(邪腦魔子),
혈우사황이 조직한 사황혈련(邪皇血鍊)의 모사, 사망탑의 살수들을
고용하여 아수천황 북궁혼을 습격하도록 지휘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사뇌마자, 그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흐흣! 고명하신 아수천황 북궁혼!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는 조소 어린 눈빛으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눈을 감고 있는
북궁혼을 내려다 보았다.
"흐흣! 네 목을...... 빨리 보고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 북궁혼!"
이어,
슥!
문득 그는 품 속에서 하나의 예리한 비수를 꺼내 쳐들었다.
북궁혼은 다급한 심정이었다.
(위험하다! 독기(毒氣)가 심장을 침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
놈은 쓰러뜨려야만 한다!)
그는 거칠게 입술을 실룩거렸다.
이어,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혈우사황...... 이겠지? 본좌를 보고 싶어 하는 자가?"
하나, 그 말에 사뇌마자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흐흐...... 틀렸다! 그 분은 혈우사황보다 열 배 위대하신
만겁(萬劫)......!"
말을 하다 말고 그는 흠칫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북궁혼, 그의 전신이 일순 부르르 경련했다.
"만...... 겁마가의...... 뜻이란 말인가?"
사뇌마자는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얼굴을 실룩거렸다.
자신의 실언이 알려지면 그는 죽지도 살지도 못할 지경이 됨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순간,
"흐흐!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알아 봐라!"
팟!
사뇌마자는 수중의 비수로 맹렬하게 북궁혼의 목을 베어갔다.
북궁혼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떠올랐다.
직후,
"크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확 퍼져 올랐다.
쿵...... 쿵......!
사뇌마자는 불신과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뜬 채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등, 한 자루 반투명한 고검이 앞가슴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백 장 밖에서 그 보검을 던져 사뇌마자를 격살시킨 것이었다.
"지...... 옥...... 혈황?"
쿵......!
사뇌마자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며 마침내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절명한 것이었다.
그때, 스으으......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한 명의 마의소년이 둥실 떠올라 장내를
날아들었다.
막붕비, 바로 그였다.
그 순간,
"큭......!"
쿵!
경악의 표정을 짓고 있던 북궁혼이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그런 그의 전신은 온통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사망탑 살수들의 병기에 묻은 독기가 이미 심장까지 침투한
것이었다.
이때,
"이 사람이...... 아수천황 북궁혼인가? 실로 처참하군!"
막붕비는 둔중한 신음을 발하며 북궁혼의 옆으로 내려섰다.
"도법(刀法)의 위대한 명인(名人)이...... 이렇게 한낱 살수들의
손에 쓰러지다니......!"
그는 탄식하며 북궁혼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때,
"크으...... 그대가...... 지옥혈황...... 인가?"
죽은 줄 알았던 북궁혼이 쥐어짜듯 신음하며 문득 눈을 떴다.
막붕비는 흠칫하며 급히 북궁혼의 옆으로 다가섰다.
"견딜만 합니까?"
그는 북궁혼을 내려다보며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북궁혼은 시퍼렇게 변한 안면을 실룩거렸다.
"보다시피...... 곧 갈 것 같네!"
그는 죽어가면서도 죽음이 남의 일같이 태연하게 말했다.
"부탁하실 일이 있으면 하십시오."
막붕비는 이미 북궁혼이 죽음 직전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급히
물었다.
그 말에 북궁혼은 문득 허탈하고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후훗...... 노부의 육십 년 기업인......
단혈마황맹(丹血魔皇盟)이...... 지금쯤 놈 혈우사황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을 텐데...... 무슨 유언 따위가 필요 있겠는가?"
주르르......
문득 그의 독목(獨目)으로 한 줄기 시퍼런 눈물이 흘러내렸다.
-단혈마황맹(丹血魔皇盟)!
마도의 총본산.
육십 년 전, 아수천황 북궁혼은 마도(魔刀) 묵룡풍(墨龍風)을 들고
무림에 나타났었다.
그 후, 그는 뭇 마도명숙들과 수없는 격전을 치루고 그들을 굴복시켜
단혈마황맹을 만들었다.
북궁혼의 필생기업인 단혈마황맹!
그것은 곧 마도(魔道)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나, 그 단혈마황맹도 지금쯤 혈우사황과 사황혈련(邪皇血鍊)의
습격에 철저히 괴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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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 천왕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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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쓰러진 魔皇
-막북(漠北) 천빙곡(千氷谷)!
막북(漠北)의 명가(名家), 곡주(谷主)는 천빙황(千氷皇) 빙각(氷角).
그는 사십 년 전 절대신검황 초패강을 도와 낭야왕 갈태독을
쓰러뜨린 일대의협이었다.
한데, 삼십여 년 전 천빙곡은 신비하게 멸절되고 말았다.
절대신검황 초패강, 그는 누군가 천빙곡의 보물인
천년빙정(千年氷精)을 노리고 있다는 천빙황 빙각의 구조요청을 받고
막북 천빙곡으로 달려갔었다.
하나, 그가 막북에 이르렀을 때 이미 천빙곡의 전문도들은 처참하게
몰살당한 후였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 무림 일대의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
한데, 천수검후 빙화정, 그녀가 바로 그 천빙곡의 후예인 것이다.
검왕(劍王) 극천, 그는 검미를 모으며 침중한 어조로 빙화정에게
물었다.
"천빙곡의 멸망과 사부님과 무슨 관계라도 있단 말이냐?"
이미 그는 천수검후 빙화정에게 복잡한 내막이 있음을 감지한
것이었다.
"호호호......! 초패강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갑자기 빙화정은 미친 듯이 날카롭게 웃어제꼈다.
그 모습에 검왕은 무섭게 송충이 눈썹을 꿈틀했다.
"무엄하구나! 감히 사부님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그는 분노한 듯 사나운 일갈을 터뜨렸다. 그의 일갈은 순간적으로 십
리를 들썩 뒤흔들었다.
실로 무서운 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비화정, 그녀는 문득 웃음을 뚝 그치며 광기 서린 시선으로 검왕을
노려보았다.
"그 자는...... 천년빙정과...... 나의 어머니의 미모를 노리고
천빙곡을 쑥밭으로 만들었어요!"
그녀는 날카롭게 격분한 음성으로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검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다! 무슨 오해가 있을 것이다!"
"오해라고요? 호호홋! 그때...... 내 눈으로 어머니가 아버님의 시신
옆에서 그 짐승 같은 자에게 능욕당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오해라고요?"
빙화정은 거의 반은 미쳐 절규했다.
그녀의 뇌리에 삼십여 년 전의 일이 악몽같이 다시 떠올랐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넘어진 부친 천빙황, 그 옆에서 사내에게
능욕당하며 미친 듯이 울부짖던 어머니, 그러다 그녀의 어머니는 끝내
혀를 물고 자진하고 말았다.
그 순간 어린 빙화정도 충격으로 혼절해 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한 명의 청수한 문사에게 안겨 있었다.
-아이야! 복수를 하고 싶으냐?
그 문사는 애처로운 눈으로 빙화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빙화정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문사는
탄식하며 그녀를 안고 천빙곡을 떠났었다.
-만겁마종(萬劫魔宗)!
후일에야 빙화정은 그 문사가 바로 만겁마가(萬劫魔家)의
당대가주임을 알게 되었다. 만겁마종은 빙화정을 양녀로 거두어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그러다, 빙화정이 나이 십 오 세 되던 해, 만겁마종은 빙화정을
혈관음교(血觀音敎)로 보내 사악한 마공까지 익히게 했다.
만겁마종은 다른 사대천왕과 싸움의 교두보로 제왕성을 장악하려
했다.
그때 빙화정은 자원하여 초패강의 제자로 제왕성에 침투한 것이었다.
검왕은 빙화정의 말을 불신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라! 사부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그는 침중하게 일갈하며 성큼 빙화정에게로 다가갔다.
순간,
"오지 마라! 더 다가오면 이 어린아이는 시체가 될 것이다!"
빙화정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절규하며 비칠 물러섰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누가...... 시체가 된단 말인가?"
문득 빙화정의 발 끝에서 차가운 일갈이 들렸다.
(흑!)
빙화정은 아연함을 금치 못하며 발 밑을 내려다 보았다. 순간,
그녀는 보았다.
기절해 있어야 할 막붕비, 그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음을......
"이...... 이럴 수가 없어! 너...... 너는 분명 나의
잔양흡정마공(殘陽吸精魔功)에 당했을 텐데......!"
빙화정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간신히 몸을 세우며 불신의 눈으로
막붕비를 바라보았다.
슥......
막붕비는 냉엄한 눈길로 몸을 일으켰다.
"그대는...... 잊었군! 지옥저주마경에는 잔양흡정마공보다 두 배
무서운 지옥흡정심마결이 수록되어 있음을......!"
그는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마검(魔劍) 지옥혈을 쳐들었다.
빙화정의 창백한 옥용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나...... 나를 속였군! 어떻게...... 본녀의 정체를 알았느냐?"
그녀는 절망과 회의가 뒤얽힌 눈으로 막붕비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녀가 만겁마종의 양녀라 해도 지금은 부상당한 상태였다.
검왕과 막붕비 같은 두 초고수에게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막붕비는 냉엄한 눈길로 빙화정을 주시했다.
"당신은...... 아는 게 너무 많았소! 음모의 주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그는 싸늘하게 일갈하며 한 걸음 다가섰다.
"당신의 처지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신검황
부부에게 한 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소!"
순간,
츳!
마검 지옥혈에서 섬뜩하리만큼 시뻘건 노을이 일어났다.
빙화정은 분노의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바...... 득! 다 네놈 때문이다! 오늘의 이 빚은 잊지 않는다!"
그녀는 발악하듯 외치며 막붕비를 향해 어검술로 장검을 투사해
냈다.
하나,
쩌...... 엉!
날아든 그녀의 보검은 지옥혈에 부딪쳐 파열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직후,
쐐액!
빙화정은 지면을 박차고 벼락같이 측면으로 날아올랐다.
"......!"
검왕 극천, 그는 빙화정이 달아는 것을 보고도 침중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막붕비는 힐끗 그런 검왕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마검 지옥혈의 손잡이를 단전에 갖다댔다.
"갈! 지옥(地獄)...... 천리참(千里斬)!"
푸...... 학!
그는 대갈일성과 함께 지옥검결상의 어검비기로 마검 지옥혈을
빙화정의 등 뒤로 날려보냈다.
시뻘건 혈검강으로 뒤덮인 마검 지옥혈, 그것은 빙화정보다 열 배
빠른 속도로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가 막 지옥혈에 관통당할 찰나였다.
피---- 잉!
돌연 측면에서 하나의 나무조각이 날아들어 마검 지옥혈을 후려쳤다.
순간,
따당......!
나뭇조각에 부딪친 마검 지옥혈은 쇳소리와 함께 무력하게 지면으로
뚝 떨어졌다.
실로 간일발의 차이로 빙화정은 지옥혈에 꿰뚫리는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이때,
"왜...... 이러시오?"
막붕비는 창백한 안색으로 신형을 휘청했다.
그는 분노와 회의의 눈으로 검왕을 주시했다.
나뭇가지를 날려 마검 지옥혈을 떨어뜨린 것은 검왕 극천이었다.
"손에...... 사정을 두어 주게! 어쨌든 그녀는 나의 사매라네!"
검왕은 탄식하며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이, 빙화정은 이미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막붕비는 분노로 거칠게 입술을 씰룩거렸다.
"당신은...... 저 계집이 그대의 사모를 어떻게 했는지......!"
하나 말을 하던 그는 급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차마 비취여제 수옥경이 창굴에 팔려갔음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검왕은 막붕비의 말에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했다.
"사모님이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츠...... 읏!
그는 뚫어질 듯 무서운 눈으로 막붕비를 노려보았다.
하나, 막붕비는 죽어도 그 사실을 검왕에게 직접 말할 수 없었다.
비취여제 수옥경, 그녀가 어찌 되었는지 아는 것은 막붕비 자신과
죽은 음나찰, 그리고 빙화정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막붕비는 짐짓 싸늘한 어조로 일축해 버렸다.
"궁금하다면 빙화정을 직접 찾아가 물어 보시오!"
막붕비를 주시하는 검왕의 눈빛이 더욱 강해졌다.
"나는...... 어쩌면 자네를 벨지도 모르네! 그대가 본좌를 구해
주었다고 해서 베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말하면서 타는 듯한 시선으로 막붕비를
주시했다.
막붕비는 그런 검왕의 전신에서 이는 예기에 숨통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이 사람은 사실 나보다
다섯 배 이상 강한 사람인데 이제껏 그것을 깨닫지 못하다니......!)
그의 등으로 축축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검왕 극천, 그는 격노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본 실력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은 막붕비의 예기보다 다섯 배나 막강했다.
만일 막붕비가 그와 싸운다면 십초를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물론 마검(魔劍) 지옥혈까지 사용해서였다.
하나, 막붕비는 그런 내심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검왕의 눈을 직시하며 냉막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해 보시오! 그대가 그래서 보게 될 것은 본인의 시체 뿐일
테니......!"
"으음......!"
검왕은 막붕비의 태도에 앓는 듯한 신음을 발했다.
이어, 그는 탄식하며 막붕비에게 포권해 보였다.
"실례했네! 자네로 인해 제왕성이 회생하는 은혜를 입었음을
잊었군!"
그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막붕비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사람...... 역시 장자(長者)답다!)
그는 검왕을 향해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별말씀을...... 그럼 저는 이만 볼 일이 있어서......!"
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배웅하지 못함을 용서하게! 이후 본성은 당분간 봉문하여
사대천왕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겠네! 하지만 자네라면 언제든지
환영하네. 들려 주게!"
"감사하오이다, 선배!"
문득, 검왕은 싱긋 웃으며 흔쾌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내게는 사부님이 남겨 주신 예쁜 사매 하나가 있네.
검정(劍精) 초하령(楚霞靈)이라고...... 자네도 알 것이네!"
"......!"
막붕비는 그 말에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검왕은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어조로 덧붙였다.
"다시 본성을 찾아오면 그 아이를 소개시켜 줌세! 조금 말괄량이긴
하나 자네에게는 잘 어울리는 짝이 될 걸세!"
막붕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뵙겠소이다!"
슥!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달아나듯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검왕은 뒷짐을 진 채 사라지는 막붕비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사부님은 타계하셨어도 역시 환우제일인이시다! 저런 훌륭한
후계자를 남기셨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돌아섰다.
"사대천왕...... 후훗! 곧 깨닫게 되리라! 본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자신들을 위해 유익하다는 사실을......!"
그는 나직한 기소를 발하며 신광을 번뜩였다. 이어,
스읏!
그는 제왕성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그는 한 걸음에 무려 백여 장씩 전진하는 것이 아닌가?
"핫하! 어쨌든 본성은 오패천(五覇天)의 하나인 신강지옥성의
후예이거늘...... 어찌 너희 사대천왕에 뒤지겠는가?"
검왕은 껄껄 대소를 터뜨리며 곧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오패천(五覇天)!
신강지옥성은 바로 사대천왕에 패했던 오패천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미 알려지다시피, 오패천은 각기 한 분야에서는 사대천왕을 오히려
능가하는 막강했던 전설의 초거파들이었다.
그들이 사대천왕에게 패했던 것은 순전히 그들이 사대천왕 만큼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신강지옥성의 절기를 바탕으로 세워진 제왕성은 바로 오패천의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천하에서 오직 검왕 극천밖에 없었다.
스으......
어느 덧,
황산(黃山)의 동녘이 붉게 물들어오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며......
* * *
소문,
실로 충격적인 소문이 돌풍같이 무림을 휩쓸고 있었다.
-절대신검황 초패강이 오 년 전에 시해당했다!
-범인은 초패강의 둘째제자 옥면환룡 옥사후였다!
-옥사후는 혈관음교의 사주를 받아 초패강을 시해한 것이다!
-혈관음교(血觀音敎)는 천 년 전의 사대천왕(四大天王) 중
만겁마가(萬劫魔家)의 사대가신 중 하나라고 한다!
-검왕(劍王) 극천은 복수를 다짐하고 제왕성을 봉문했다!
폭풍 같은 소문이 잇따라 무림을 휩쓸었다.
절대신검황 초패강!
그의 죽음은 실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초패강이 무림에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막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인이며 또 제왕성 환우최강의
결사였다.
그런 초패강의 죽음은 제왕성의 봉문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그 사건으로 인해 무림세력의 판도는 일대격변을 초래하게
되었다.
지금껏 초패강의 위명과 제왕성의 강대함에 눌려 야심을 드러내지
못했던 무림의 뭇 효웅들, 그리고 여러 강파들, 그들이 마침내 서서히
야심의 검(劍)을 뽑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림패왕(武林覇王)!
그 지고무상한 공석을 향한 대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었다.
만겁마가! 사대천왕 중 만마의 하늘인 저 만겁마종의 후예.
검왕 극천은 그들이 무림을 노리고 있음을 전무림에 밝혔다.
하나, 그런 그의 경고도 뭇 군웅들의 야심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뭇 세력과 강자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환우십강이었다.
-환우십강!
전 무림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십 인(十人)의
초고수들, 그들을 일컬어 환우십강이라 하거니와, 그 환우십강은 다시
오정(五正), 오사(五邪)로 나뉘어진다.
그들은 개개인의 막강한 절기 뿐 아니라 수하에 강대한 조직을
이끌고 무림패권을 향한 치열한 암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오정(五正).
-절대신검황(絶代神劍皇) 초패강.
-소림활불(少林活佛) 항마천존(降魔天尊).
-풍뢰천강궁의 지존 천강노조.
-운남(雲南) 패왕부(覇王府) 철장패왕(鐵杖覇王).
-청해(靑海) 유리성(琉璃城)의 신성(新星) 유리옥황(琉璃玉皇).
그들이 바로 환우십강 중 오정(五正)으로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정파를 대표하는 최강자들, 그들의 휘하조직인 제왕성(帝王城),
소림사(少林寺), 풍뢰천강궁, 패왕부(覇王府), 유리성(琉璃城).
그것은 사실상 정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강력조직이었다.
절대신검황 초패강의 사망으로 제왕성이 막후로 잠적하자 나머지
사대문파가 정파맹주의 권좌를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사(五邪).
-아수천황(阿修天皇) 북궁혼(北宮魂).
-혈우사황(血雨邪皇.
-사천(四川) 당문의 지존 삼안천수종(三眼千手宗) 당천성(唐天星).
-천면신투(千面神偸).
-서시독후(西施毒后).
그들 오 인(五人)을 일컬어 오사(五邪)라 칭했다.
아수천황 북궁혼,
마도(魔道)의 당대맹주.
아수파천황(阿修破天荒)의 도법은 생시 초패강조차 맞서기를 꺼려할
정도로 패도적인 것이었다.
그의 도결(刀訣)은 신강지옥성에서 흘러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혈우사황,
사술(邪術), 환술(幻術)의 일인자. 또한, 그는 사파의 당대
맹주이기도 했다.
강직한 성격의 아수천황과는 달리 교활한 대효웅이었다.
그는 아수천황과 흑도제일인의 자리를 놓고 끊임없는 암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삼안천수종 당천성,
일천 개의 손을 지녔다는 암기술의 제일인자.
천면신투,
당대 제일의 투도술을 지닌 기인.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제의 옥새라도 훔칠 수 있다.
또한, 그의 역용술은 가히 불가해의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 가장 무서운 것은 오사(五邪)의 막내였다.
서시독후,
그녀는 삼 년 전 홀연히 무림에 등장했다.
그리고, 당시 독문제일인(毒門第一人) 천독노조(天毒老祖)를 손짓 한
번으로 굴복시켜 독문지존이 되었다.
그녀의 눈짓, 손짓 한 번이면 누구라도 한줌의 독수로 녹아 버린다고
했다.
하나, 그녀의 진정한 실력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와 싸운 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혹자는
그녀를 일컬어 당대 천하제일 미인이라고도 했다.
-오정(五正), 오사(五邪)!
명실상부하게 무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십 인의 초인들.
그들 중에 차기 천하제일인이 날 것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데, 어느 날 한 명의 무서운 신비고수가 무림에 나타났다.
지옥혈황(地獄血皇)!
그는 단지 그렇게만 알려졌다.
또한, 그는 그 옛날 신강을 지배한 공포조직 지옥성의 후예라고도
알려졌다.
그의 애검 마검 지옥혈이 뽑혀지면 아무도 그에 맞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왕성의 치욕스런 모해사건을 푼 것도 바로 그였다는
것이다.
지옥혈황(地獄血皇)!
그의 이름은 처음 검왕 극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검왕은 그가 삼 년 내 환우최강자가 될 것을 서슴없이 단언했다.
위대한 검의 제왕---- 검왕(劍王)!
그의 한 마디 발언으로 지옥혈황이란 인물은 단숨에 천하무림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풍운(風雲)의 세태!
무림은 격변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 * *
-낙수(落水)!
고도(古都) 낙양(洛陽)의 북서쪽을 휘감아 도는 황하(黃河)의 한
지류, 낙수 양안으로는 일망무제의 갈대밭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스으...... 스으......
하얀 갈대꽃이 가을바람에 솜털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환상의 흰 물결이 굽이쳐 흐르는 듯한 가을의 갈대밭, 그것은 가히
절경이었다.
석양 무렵,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시커먼 먹장구름이 갈대밭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문득,
"비가...... 올 것 같군!"
낮고 우울한 한 줄기 음성이 갈대밭 사이에서 들려왔다.
스으......
한 명의 장발소년이 갈대를 헤치며 낙수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드리워진 윤기 흐르는 장발에 낡은 마의를 걸친 소년, 그는
천으로 둘둘 만 한 자루 장검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유현하고 신비롭게 빛나는 혜안(慧眼), 그 깊숙한 곳에 한 줄기
우수의 빛이 엿보이는 소년.
막붕비! 그는 바로 황산을 떠나온 막붕비였다.
그는 황산으로부터 도보로 남서진 방향인 이곳에 이르른 것이었다.
그 전에 막붕비는 오직 철접(鐵蝶)만을 찾고 있었으나 이제는 한
명을 더 찾고 있었다.
-비취여제 수옥경!
바로 그 비운의 여종사였다.
막붕비는 아무도 몰래 그녀를 찾아낼 생각으로 남하 중이었다.
남하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지옥혈황이란 별호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문득, 막붕비는 걸음을 옮기며 고소를 지었다.
"후훗! 그게 나에 대한 검왕(劍王) 극천의 보은인가?"
그는 검왕 극천이 자신을 위해 지옥혈황이란 이름을 퍼뜨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전무림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 분은...... 쓸데없는 짓을 하셨다. 결코 무림인이 될 수 없는
내게 지옥혈황이란 이름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까......!
막붕비는 씁쓸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한데,
"......!"
문득 그는 검미를 모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피...... 비린내......!)
한 줄기 역겨운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자극한 것이었다.
순간,
슥!
막붕비는 걸음을 빨리하여 전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갈대밭 중앙,
사방 십 장 내의 갈대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십여 명의 흑의몽면인들이 죽어 넘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심장 부근에 열십자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막붕비는 그들의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칼(刀)에 베인 상처다!)
그의 눈에 경이의 빛이 흘렀다.
흑의몽면인들의 치명상은 그 십자도흔(十字刀痕)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 십자도흔이 목숨을 뺏을 정도로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겨우 흔적이 남을 정도로 얇은 상처였다.
하나, 그럼에도 그들은 심장이 박살나 절명하고 만 것이었다.
툭!
막붕비는 그 중 한 시체를 뒤집어 보았다.
그 시체의 등에도 역시 십자의 흔적이 나 있었다.
놀랍게도 누군가 가슴에서 등까지 뚫고 나올 정도로 막강한
내가도강을 펼쳐 그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옥저주마경을 연마한 막붕비로서도 엄두도 못낼 지고한
경지였다.
막붕비는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 정도의 내가도강을 펼칠 수 있는 도법(刀法)의 명인은 천하에서
단 일 인---- 아수천황 북궁혼 뿐이다!)
문득, 생각을 굴리던 그는 검미를 모으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아수천황(阿修天皇)이 주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데...... 이
자들은 누구이기에 오사(五邪)의 제일인과 싸웠단 말인가?)
그는 궁금함을 느끼며 흑의인들의 몽면을 벗겨보았다.
순간,
"......!"
몽면을 벗기던 막붕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눈앞에 실로 끔찍한 얼굴이 나타났다.
흑의몽면인, 그 자는 얼굴 가죽이 통째로 벗겨진 끔찍한 형상이었다.
그런 그 자의 이마, 다음과 같은 두 글자가 시커멓게 찍혀 있었다.
<사망(死亡).>
막붕비는 검미를 모으며 침음성을 발했다.
"사망......? 이 자들은 신비한 청부살인집단 사망탑의 살수들인가?"
-사망탑(死亡塔)!
근년 돌연히 나타난 무서운 살수조직, 그들은 황금만 주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죽여 준다.
이미 수많은 무림명숙들이 그들의 손에 쓰러졌다.
막붕비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누가...... 사망탑의 살수들을 고용하여 아수천황을 노린 것일까?)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수천황이 아무리 초고수라도 암습에 능한 이들 전문살수들의
손에서 무사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오늘...... 가장 위대한
마종(魔宗)의 한 사람을 위해 당한지도 모른다!)
스읏!
그는 다시 갈대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이내 하얀 갈대꽃 사이로 사라졌다.
* * *
시커먼 먹장구름은 갈수록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
눈(眼), 하나의 외눈(獨眼)이 먹장구름이 가득 덮인 암천(暗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인,
독안(獨眼)의 주인은 전신에 피칠을 한 듯한 한 명의 노인이었다.
그는 갈대 사이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그의 전신은 흠뻑 피에
젖어 있었으며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한데, 그는 어떤 병기나 암기에 맞은 듯 눈이 파열되어 검푸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흐르는 피가 검푸른 이유는 그의 눈을 찌른 암기에
지극한 극독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츠으......
독안노인,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 칼(刀)이 안겨져 있었다.
길이 넉 자, 도신(刀身)이 가늘고 두께가 두꺼우며 전체적으로
거무튀튀한 빛이 흐르는 묵도!
그 묵도는 날이 서 있지 않고 뭉툭했다.
그것은 그 칼이 날로 적을 베는 것이 아니라 내가도강으로 적을 베는
중병기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문득,
(비가...... 오려나?)
독안노인은 하늘의 먹장구름을 바라보며 우울한 눈빛을 지었다.
눈 하나가 파열되었지만 그는 그런 고통쯤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둘...... 셋...... 모두 열 셋이군!)
문득 독안노인은 입 속으로 숫자를 헤아리며 나직이 뇌까렸다.
순간, 그의 독목(獨目)이 스산하게 번뜩였다.
그의 귓전으로 숨소리도 없이 다가서는 십 삼 인의 적이 감지된
것이었다.
생기라고는 한 올도 흘리지 않으며 다가서는 십 삼 인!
그들이 바로 사망탑의 가장 무서운 살수들인
독련십삼살(毒鍊十三煞)이란 자들임을 독안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낫(鎌)이 달린 쇠사슬을 병기로 쓰는 무서운 사신(死神)들, 그들의
연수합격에 걸리면 대라신선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독안노인은 소리없이 고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큭큭...... 이제 종말인가? 나...... 북궁혼의......?)
아! 북궁혼(北宮魂)!
그렇다! 독안노인은 바로 혈우사황(血雨邪皇)과 함께 흑도지존의
권좌를 다투는 도의 명인 아수천황 북궁혼이었다.
한데, 마도(魔道) 총본산 단혈마황맹(丹血魔皇盟)에 있어야 할 그가
어찌 이천 리 밖 낙수의 갈대밭에 피투성이로 누워 있단 말인가?
사박......!
문득 다가서던 십 삼 인의 발자국 소리가 뚝 그쳤다.
그와 함께 북궁혼의 독안이 번뜩 빛났다.
(발견 되었다! 관례를 깨고 선제공격을 해야겠군!)
그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북궁혼, 이제껏 단 한 번도 적을 먼저 공격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하나, 지금 그는 그 관례를 깨고 선제공격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아수...... 쇄륙참(阿修碎戮斬)!)
문득 북궁혼은 입 안으로 아수파천황(阿修破天皇)의 도결 중 한 가지
초식을 되뇌였다.
동시에,
쉬---- 아아악!
그의 신형이 곧장 일 장 높이로 붕 떠오르며 수중의 묵도(墨刀)가
섬전같이 갈대밭을 스쳤다.
순간,
"놈이다!"
"독련살인폭(毒鍊殺人爆)!"
갈대밭에서 십 삼 개의 인영이 놀란 기러기같이 떠올랐다.
거의 동시에, 그들 십 삼 인의 소매 속에서 십 삼 개의 낫(鎌)이
달린 쇠사슬이 빗발치듯 북궁혼을 그어왔다.
차---- 차창!
사가각!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살이 베어지는 듯 섬뜩한 소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순간,
"억!"
"컥......!"
짧고 둔중한 신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그와 함께,
후두둑!
북궁혼의 눈에 독련십삼살 중 네 명이 가슴에서 피분수를 뿌리며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하나, 거의 동시에 북궁혼은 복부가 화끈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당...... 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쿠---- 웅!
그는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나뒹굴었다.
아!
끔찍하게도 그의 왼쪽 다리가 허벅지에서부터 싹둑 잘려 저만큼
나뒹군 것이 아닌가?
또한, 그의 복부는 낫에 잘려 처참하게도 내장조각이 흘러나왔다.
북궁혼은 그 상처로부터 전신이 급격히 마비됨을 느꼈다. 그것은
독련십삼살의 낫에 극독이 함유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북궁혼은 간신히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나, 살아남은 독련십삼살 중 구 인(九人)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북궁혼은 그 자들이 바로 자기 몸 근처에 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눈을 감고 운공하여 독기에
저항했다.
그때였다.
"흐흐...... 꼴 좋구나, 아수천황!"
문득 한 줄기 음산하고 교활한 음성이 북궁혼의 귓전을 울렸다.
이어,
스으......
한 명의 깡마른 인물이 북궁혼의 앞에 나타났다.
일신에 시뻘건 혈의(血衣)를 걸친 중년문사, 그는 몇 가닥의 염소
수염을 기른 아주 교활한 인상이었다.
그가 나타난 순간, 북궁혼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혈우사황(血雨邪皇)의...... 개...... 사뇌마자......!)
-사뇌마자(邪腦魔子),
혈우사황이 조직한 사황혈련(邪皇血鍊)의 모사, 사망탑의 살수들을
고용하여 아수천황 북궁혼을 습격하도록 지휘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사뇌마자, 그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흐흣! 고명하신 아수천황 북궁혼!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는 조소 어린 눈빛으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눈을 감고 있는
북궁혼을 내려다 보았다.
"흐흣! 네 목을...... 빨리 보고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 북궁혼!"
이어,
슥!
문득 그는 품 속에서 하나의 예리한 비수를 꺼내 쳐들었다.
북궁혼은 다급한 심정이었다.
(위험하다! 독기(毒氣)가 심장을 침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
놈은 쓰러뜨려야만 한다!)
그는 거칠게 입술을 실룩거렸다.
이어,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혈우사황...... 이겠지? 본좌를 보고 싶어 하는 자가?"
하나, 그 말에 사뇌마자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흐흐...... 틀렸다! 그 분은 혈우사황보다 열 배 위대하신
만겁(萬劫)......!"
말을 하다 말고 그는 흠칫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북궁혼, 그의 전신이 일순 부르르 경련했다.
"만...... 겁마가의...... 뜻이란 말인가?"
사뇌마자는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얼굴을 실룩거렸다.
자신의 실언이 알려지면 그는 죽지도 살지도 못할 지경이 됨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순간,
"흐흐!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알아 봐라!"
팟!
사뇌마자는 수중의 비수로 맹렬하게 북궁혼의 목을 베어갔다.
북궁혼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떠올랐다.
직후,
"크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확 퍼져 올랐다.
쿵...... 쿵......!
사뇌마자는 불신과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뜬 채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등, 한 자루 반투명한 고검이 앞가슴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백 장 밖에서 그 보검을 던져 사뇌마자를 격살시킨 것이었다.
"지...... 옥...... 혈황?"
쿵......!
사뇌마자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며 마침내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절명한 것이었다.
그때, 스으으......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한 명의 마의소년이 둥실 떠올라 장내를
날아들었다.
막붕비, 바로 그였다.
그 순간,
"큭......!"
쿵!
경악의 표정을 짓고 있던 북궁혼이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그런 그의 전신은 온통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사망탑 살수들의 병기에 묻은 독기가 이미 심장까지 침투한
것이었다.
이때,
"이 사람이...... 아수천황 북궁혼인가? 실로 처참하군!"
막붕비는 둔중한 신음을 발하며 북궁혼의 옆으로 내려섰다.
"도법(刀法)의 위대한 명인(名人)이...... 이렇게 한낱 살수들의
손에 쓰러지다니......!"
그는 탄식하며 북궁혼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때,
"크으...... 그대가...... 지옥혈황...... 인가?"
죽은 줄 알았던 북궁혼이 쥐어짜듯 신음하며 문득 눈을 떴다.
막붕비는 흠칫하며 급히 북궁혼의 옆으로 다가섰다.
"견딜만 합니까?"
그는 북궁혼을 내려다보며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북궁혼은 시퍼렇게 변한 안면을 실룩거렸다.
"보다시피...... 곧 갈 것 같네!"
그는 죽어가면서도 죽음이 남의 일같이 태연하게 말했다.
"부탁하실 일이 있으면 하십시오."
막붕비는 이미 북궁혼이 죽음 직전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급히
물었다.
그 말에 북궁혼은 문득 허탈하고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후훗...... 노부의 육십 년 기업인......
단혈마황맹(丹血魔皇盟)이...... 지금쯤 놈 혈우사황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을 텐데...... 무슨 유언 따위가 필요 있겠는가?"
주르르......
문득 그의 독목(獨目)으로 한 줄기 시퍼런 눈물이 흘러내렸다.
-단혈마황맹(丹血魔皇盟)!
마도의 총본산.
육십 년 전, 아수천황 북궁혼은 마도(魔刀) 묵룡풍(墨龍風)을 들고
무림에 나타났었다.
그 후, 그는 뭇 마도명숙들과 수없는 격전을 치루고 그들을 굴복시켜
단혈마황맹을 만들었다.
북궁혼의 필생기업인 단혈마황맹!
그것은 곧 마도(魔道)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나, 그 단혈마황맹도 지금쯤 혈우사황과 사황혈련(邪皇血鍊)의
습격에 철저히 괴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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