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천왕 11
제9장 두 자매의 危機
여명 무렵,
"......!"
막붕비는 심한 갈증에 눈을 떴다.
그때,
"마셔요!"
우울한 여인의 음성과 함께 하나의 물병이 막붕비의 입가에
대어졌다.
순간,
(철접......!)
막붕비는 그 목소리가 서시독후 철접의 음성임을 깨닫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떤 건조한 동굴바닥에 누워 있었다. 바닥에는 마른풀이 깔려
푹신했다.
그의 옆,
한 명의 여인이 그림 같은 자태로 앉아 막붕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접, 그녀였다.
"누...... 누님......!"
막붕비는 반가움을 억지로 감추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철접은 다시 물병을 막붕비의 입에 대주었다.
막붕비는 순순히 그녀가 먹여 주는 대로 물을 마셨다.
비로소 갈증이 가셨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지며 자신이 화화관음의 최음제에 중독당했던
사실이 상기되었다.
하나, 그의 몸 어디에도 이미 그런 흔적은 없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이 누군가 여인의 몸에 그 약력을 토해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막붕비는 그것을 깨닫고 문득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누...... 님! 설마 제가 누님을......!"
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눈앞에 있는 철접의 도움으로 최음제를 해독했다고 밖에
생각지 않았다.
"......!"
문득 철접의 눈에 한 줄기 고통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자기의 정인인 막붕비가 비취여제를 안고 몇 번인가 욕정을
토해내는 것을 시종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과 질투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비취여제,
그녀는 그 후 곯아 떨어진 막붕비를 이곳 산동(山洞)에 안치하고
울며 떠났었다.
철접은 잠시 입을 닫고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 아이에게 자신이 비취여제를 강제로 범했다는 얘기를 해줄
필요는 없다!)
이어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은 막붕비가 자기를 구한 것이 철접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누님."
막붕비는 안색이 빨개지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순간의 그는 삼 년 전 십 오 세 소년시절로 돌아갔다.
철접, 그녀는 막붕비에게 있어 첫 여인이자 또한 다정한 누님 같은
존재였다.
철접은 문득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잊어 버려요, 붕비!"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문득 입구쪽을 가리켰다.
"밖을 살펴봐요. 재미있는 일이...... 곧 벌어질 테니......!"
"......!"
막붕비는 흠칫하며 동굴의 입구쪽으로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들이 있는 동굴,
그것은 호리병 모양의 협곡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무성한 등나무의 덩굴이 뒤덮여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밖을 내다보던 막붕비,
"......!"
그는 문득 흠칫했다.
때는 여명 직전,
불그레한 기운과 어둠이 뒤섞여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데, 그 여명 직전의 어둠 속, 한 명의 인물이 협곡의 끝에 우뚝 서
있었다.
막붕비는 시력을 돋우어 그 인물을 살펴보았다.
나이는 대략 삼십 전후, 마치 청동조각을 연상케 하는 굳강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그는 일신에 검은 경장을 걸치고 있었으며, 왼손에는 직경 네 자
정도의 청동방패와 일 장 길이의 방천화극을 비껴들고 있었다.
(대단한...... 패기(覇氣)가 느껴지는 자다!)
막붕비는 놀라운 눈으로 흑의장한을 주시했다.
여명의 어둠 속,
흑의장한의 눈이 새파란 안광을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자의 이름은 전마(戰魔) 혼해룡(混海龍)이예요! 만겁마가의
사가신 중 전사혈문(戰士血門)의 지존이죠!"
등 뒤에서 철접의 우울한 음성이 들렸다.
"전마...... 혼해룡! 무척 강해 보이는군요!"
막붕비는 여전히 흑의인을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해요. 그는 만겁마가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자예요!"
"......!"
막붕비는 철접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전마(戰魔) 혼해룡(混海龍)이란 자는 지금껏 본 그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같은 만겁마가의 가신 중 한 명이긴 하나 화화관음 따위가 따르지
못할 강맹한 기세가 전마(戰魔) 혼해룡에게서 느껴졌다.
막붕비는 혼해룡을 주시하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로써 만겁마가의 사대가신 중 혈관음교, 사망탑(死亡塔)에 이어
전사혈문까지 나타났군! 남은 것은 가장 신비하다는
유령음부갱(幽靈陰府坑)만 남았군!)
만겁마가의 사가신!
만겁마가의 수족이라는 그 네 개의 조직 중 유령음부갱을 제외한
혈관음교, 사망탑, 전사혈문의 후예들이 모두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
문득 협곡의 입구쪽에서 한소리 날카로운 장소성이 들려왔다.
강퍅하면서도 패도적인 장소성.
그에 이어,
쉬---- 잇!
여명을 등지고 하나의 인영이 허공을 밟으며 질풍같이 다가섰다.
(대단한 경공이다! 귀수왕(鬼手王)의 비폭탄궁(飛爆彈弓)
이상인데......!)
막붕비는 눈을 빛내며 다가서는 인물을 주시했다.
화르르......
고오!
순간적으로 그 인물은 전마(戰魔) 혼해룡의 앞에 이르러 맹렬한
선풍을 일으키며 내려섰다.
그는 한 명의 노인이었다.
일신에 뇌전의 문양이 새겨진 붉은 장포를 걸친 인물, 기이하게도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푸른색의 노을이 서려 있었다.
또한, 두 눈은 이글거리는 숯불같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강퍅하고 독선적인 연상을 풍기는 노인이었다.
"전마 혼해룡,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구나!"
적포노인은 내려서자마자 쇳소리 나는 음성으로 일갈하며 혼해룡을
주시했다.
"어서 오시오, 천강노조! 예의 물건들은 갖고 오셨겠지요?"
전마 혼해룡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지막이 울리는 듣기 좋은 전음이었다.
막붕비, 그는 경이의 표정으로 적포노인을 주시했다.
(천강...... 노조! 저 사람이 바로 풍뢰천강궁의 궁주인
뇌궁(雷弓)이란 말인가?)
천강노조 뇌궁!
그렇다.
적포노인은 바로 오정(五正)의 일 인인 풍뢰천강궁의 지존
천강노조였다.
그는 두 가지에서 단연 천하최강이었다.
화기제조술과 극양강의 파괴기공이 그것이었다.
단순히 깨뜨리고 바스러뜨리는 데는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그의 성명절기는 천강뇌폭참이라는 일종의 장법이었다.
천강뇌폭참이 펼쳐지면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스치는 모든
것이 바스라지고 만다.
그 파괴력은 천 년 전 사대천왕이 부활한다 해도 그들의 무공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여 아무리 내공이 막강한 자라도 그것을
연달아 두 번 내치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천강뇌폭참 외에, 천강노조는 풍뢰벽정신강이라는 지고무상의
양강강기신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무공만으로라면 절대신검황 초패강이나 소림의 항마천존보다
오히려 강할 수도 있었다.
하나, 그는 성격이 지극히 독선적인 인물로 사람 사귀기를 싫어한
까닭에 서열상으로 초패강과 항마지존에게 밀려났다.
막붕비는 천강노조를 주시하며 기광 어린 눈을 번뜩였다.
(패도제일인(覇道第一人) 천강노조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운이 좋군!)
하나 문득,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저 노인은 하북(河北)의 풍뢰천강궁에 있지 않고 무슨 일로
북망산의 황곡에 나타났단 말인가?)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천강노조를 주시했다.
그때, 천강노조가 이글이글한 눈으로 혼해룡을 노려보며 말을
건넸다.
"자! 이제 노부의 두 손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전마 혼해룡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믿지 않는 것은 아니나...... 먼저 물건을 가져 오셨는지 확인을
해야겠소이다! 연후에 두 분 영손녀가 어디 있는지 말씀 드리리다!"
"으음......!"
천강노조는 입술을 씰룩이며 혼해룡을 노려보았다.
하나, 칼의 손잡이를 잡은 것은 혼해룡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혼해룡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본래, 천강노조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녀가 있었다.
뇌홍하(雷紅霞).
뇌청하(雷靑霞).
당년 십 팔 세의 쌍동이 자매, 달리 풍뢰쌍염(風雷雙艶)이
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들이었다.
한데, 그녀들은 한 달 전에 풍뢰천강궁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전사혈문(戰士血門)의 마전사(魔戰士)들에게 납치되었었다.
그 후, 전마 혼해룡은 두 소녀를 교환할 모종의 조건을 천강노조에게
요구, 제시해 왔다.
그래서 천강노조는 손녀들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이곳 북망의
황곡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천강노조는 혼해룡의 태도에 못마땅함을 금치 못했다.
하나,
"자! 보아라! 여기 있으니까!"
그는 살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며 품 속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
혼해룡에게 내보였다.
그것은 아주 붉은 하나의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풍뢰열화진결(風雷熱火眞訣).>
두루마리의 표면,
고대 서하 문자로 쓰인 제목이 혼해룡의 눈에 들어왔다.
풍뢰열화진결,
그것은 천여 년 전 서역 풍뢰동(風雷洞)의 명인 풍뢰자(風雷子)가
남긴 것이었다.
풍뢰자, 그는 사대천왕보다도 한 세대 전의 인물이었다.
당시 서역 변황무림의 제일인자!
하나, 그는 당시 중원제일인 천강종의 도전을 받아 싸움에서
동귀어진했다고 한다.
풍뢰열화진결에는 바로 그 풍뢰자가 남긴 화기제조비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풍뢰천강궁,
그것의 영화는 바로 풍뢰열화진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풍뢰열화진결을 보았으니 이제 본좌의 손녀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말할 차례다, 혼해룡!"
천강노조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혼해룡을 노려보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사랑하는 손녀들을 염려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불을 토하는
맹룡(猛龍)과도 같았다.
그 만큼 그는 쌍동이 손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혼해룡의 안색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먼저 풍뢰열화진결을 던져 보내시오! 그럼 두 손녀분을 돌려
드리겠소!"
그는 가라앉은 음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끙......!"
천강노조의 눈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하나 혼해룡의 말을 따를 도리밖에 없었다.
"약속은...... 지키리라 믿는다, 전마!"
핑!
그는 거칠게 일갈하며 풍뢰열화진결의 두루마리를 혼해룡에게
던졌다.
"......!"
혼해룡은 오른손을 내밀어 날아오는 풍뢰열화진결을 받으려 했다.
한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피---- 잉!
쐐액!
돌연, 허공에서 하나의 흐릿한 인영이 질풍같이 폭사되어 오더니
중간에서 풍뢰열화진결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엇! 누구냐?"
"풍뢰열화진결을 놓아랏!"
꽈---- 릉!
번쩍!
천강노조와 혼해룡은 경악하며 동시에 맹렬히 그 신비인을 후려쳤다.
천강노조의 풍뢰신권(風雷神拳)과 혼해룡의 방천화극이 산을
허물어뜨리고 바다를 가를 기세로 신비인을 휩쓸었다. 하나,
"흐흐핫핫! 잘들 놀아보거라. 혼해룡! 천강노조!"
푸---- 하악!
그 자는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삼십 장
허공으로 폭등했다.
그 순간,
"헛! 유령폭등비(幽靈暴騰飛)의 경공! 그대는......
유령음황(幽靈陰皇)!"
신비인의 경공을 본 혼해룡은 경악의 외침을 발했다.
유령폭등비(幽靈暴騰飛)!
만겁마가의 사가신 중 유령음부갱의 비전초경공.
그 유령폭등비를 방금같이 기민하게 쓸 수 있는 자는
유령음부갱(幽靈陰府坑)의 갱주(坑主) 유령음황(幽靈陰皇) 밖에
없었다.
허공에서 감쪽같이 풍뢰열화진결을 채간 자,
그는 바로 유령음부갱의 마황 유령음황이었다.
그때,
"바...... 바득! 노부를 속였구나, 혼해룡!"
천강노조는 이를 갈며 분노의 폭갈을 터뜨렸다.
혼해룡은 당혹한 표정으로 급히 고개를 저었다.
"뇌노사! 이건 오해요! 유령음황은 이 일과 아무런 관계가......!"
하나, 그의 변명은 채 이어지지도 못했다.
콰르릉......!
불 같은 성격의 천강노조,
그의 손 끝에서 인 잠력이 벼락치듯 혼해룡을 후려쳐 온 것이었다.
"이러지 마시오! 이것은 우리 둘 다에게 쓸모없는 일이오!"
꽈릉......!
혼해룡은 폭갈을 내지르며 천강노조의 공세를 막아갔다.
다음 순간,
콰드---- 득!
콰콰쾅......!
협곡 전체가 들썩 뒤흔들리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올랐다.
그와 함께 혼해룡의 하체는 무릎까지 바위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나 천강노조는 불같이 노해 재차 혼해룡을 덮쳤다.
"우! 먼저 네놈을 벌한 후 유령음황이란 놈을 박살내겠다!"
콰---- 자작!
그는 벼락같이 폭갈을 내지르며 우장을 뻗어냈다.
콰릉!
혼해룡은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해 천강노조의 공세를 막아갔다.
하나,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은 다급하게 유령음황을 쫓고 있었다.
(빌어...... 먹을! 그 놈도 풍뢰열화진결을 필요로 하고 있을
줄이야......!)
그는 낭패한 기색으로 힐끗 유령음황이 달아난 곳을 주시했다.
한데,
슥......!
바로 그 순간 하나의 인영이 석벽 밑에서 치솟아 올라 유령음황이
달아난 곳으로 날아갔다.
혼해룡은 물론 천강노조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인영, 그는 바로 막붕비였다.
* * *
북망산(北邙山)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어느 봉분......
잡초가 무성한 봉분 앞,
이끼 낀 하나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문득,
스슥......
하나의 그림자가 비석 앞으로 내려섰다.
흑포노인, 기이하게도 그는 수염 하나없이 매끈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다.
흡사 금방 관에서 나온 시체 같은 인상, 두 눈도 검은 자위보다
흰자위가 더 많아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흐흐...... 혼해룡(混海龍)! 뇌궁(雷弓)! 어디 머리 터지게들 싸워
봐라!"
흑포노인은 음침하게 히죽 웃으며 손에 든 물건을 들어보았다.
낡은 양피 두루마리,
-풍뢰열화진결(風雷熱火眞訣)!
바로 그것이었다.
천강노조에게서 그것을 가로챈 인물,
그렇다.
흑포노인은 바로 유령음부갱의 갱주 유령음황(幽靈陰皇)이었다.
그의 특기는 유령을 방불케 하는 경공술과, 죽은 사람의 시체의
시독(屍毒)을 흡수하여 연마한 음부시독장(陰府屍毒掌)이라는 일종의
독공이었다.
유령음황,
그는 비석 앞에 우뚝 선 채 흰자위 투성이인 두 눈을 음산하게
굴렸다.
"흐흐...... 꿈에도 이런 곳에 본갱(本坑)의 비밀지부가 있을 줄
모르겠지?"
그는 비석의 아래 위를 몇 번 눌렀다.
순간,
그긍......!
둔중한 굉음과 함께 일 장 높이의 비석이 뒤로 밀려나며 그곳으로
어두운 밀로가 나타났다.
"으핫하! 풍뢰열화진결이 본좌의 손에 들어온 이상 혼해룡, 그 어린
놈의 시건방진 콧대를 꺾고 본갱이 마가의 가장 강력한 가신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유령음황은 야욕의 눈을 번뜩이며 득의의 광소를 터뜨렸다.
이어,
슥......
그는 곧 어두운 밀로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그긍......!
비석은 다시 굉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직후,
"......!"
스읏!
막붕비의 모습이 유령같이 비석 앞에 나타났다.
"이런 곳에...... 두더지굴을 파놓고 있었군!"
그는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유령음황이 했던대로 비석의 여기저기를 눌렀다.
그긍......!
그러자 비석은 역시 뒤로 밀려나며 시커먼 통로가 드러났다.
휙!
막붕비는 주저치 않고 밀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막 어두운 밀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누구냐?"
돌연 어둠 속에서 음산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
막붕비는 일순 흠칫했다.
적이 어딘가에 은신한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으나 자신은 그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 좋은데......!)
그는 검미를 모으며 중얼거렸다.
한데 그때,
"컥......!"
문득 어둠 속에서 괴로운 신음성이 들렸다.
막붕비는 흠칫하며 시력을 돋우어 신음이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밀로의 벽,
그곳에는 음푹 파인 은밀한 은신처가 있었다.
바로 그곳에 창백한 안색의 한 중년인이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한데, 그 자의 피부는 급격히 시커멓게 물들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중독현상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철접......!)
막붕비는 경이의 표정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 자는 바로 서시독후 철접의 독에 쓰러진 것이었다.
철접은 막붕비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 막붕비의 그림자에
은신하여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동영 최고의 여인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득 막붕비는 반가운 음성으로 주위에 대고 외쳤다.
"누님! 어디 계십니까?"
순간,
"멍청이! 적의 소굴에 들어와서 무슨 짓이예요?"
어디선가 철접의 꾸짖음이 들려왔다.
"붕비가 있는 곳이 어디든 제가 있어요! 나를 찾지 말고......
유령음황이나 쫓아가 보세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뇌궁의 두
손녀도 그 자의 손에 떨어져 있을 거예요!"
그녀의 낮고 온화한 음성이 재차 막붕비의 귀에 들려왔다.
"하하! 알아 모시겠습니다, 누님!"
막붕비는 어둠 속에서 히죽 웃어보였다.
철접이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자 그는 마음이 든든해진
것이었다.
다음 순간,
슥!
그는 소리없이 몸을 움직여 질풍같이 밀로 안쪽으로 질주해 갔다.
* * *
석실,
사방이 밀폐된 은밀한 공간이었다.
음침한 붉은빛 궁등이 석실의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석실의 중앙,
스으...... 스으......
하나의 청동향로가 붉은 연기를 토해냈다.
그것은 석실의 분위기를 더욱 음침하게 만들고 있었다.
청동향로의 뒤,
하나의 커다란 침상이 놓여져 있었다.
침상 위,
"......!"
"......!"
두 명의 소녀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나이는 십 칠팔 세 정도, 실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소녀들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두 소녀의 용모는 판에 박은 듯 똑같은 것이
아닌가?
마치 한 소녀가 거울에 비쳐진 듯 착각할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들은 쌍동이인 듯했다.
하나 자세히 보면 두 소녀에게는 약간의 틀린 점이 있었다.
먼저 그녀들의 머리색이 틀렸다.
좌측의 소녀, 그녀의 머리는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반면, 우측의 소녀는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그녀들의 체형은 다소 틀렸다.
두 소녀는 속이 다 비쳐보이는 얇은 나삼만을 걸친 채 누워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들의 속살과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좌측의 붉은머리 소녀,
그녀의 몸매는 놀랍도록 풍만했다.
소녀답지 않게 완숙하고 풍염한 몸매를 그녀는 지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중년여인에 못지 않은 풍성함이었다.
그녀가 숨을 내쉴 때마다 나삼 속의 풍염한 유방이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측의 푸른머리 소녀,
그녀는 붉은머리 소녀와는 달리 전혀 대조적인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몸매는 애처로우리 만큼 가냘펐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꺾일 듯 연약한 몸매.
그녀의 젖가슴도 이제 겨우 봉긋할 정도로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었다.
두 소녀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그 두 가지 차이가 아니면 누구든 두 소녀가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
"......!"
두 소녀는 침상에 반듯하게 누운 채 천정을 바라보며 눈만 굴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들은 연마혈이 찍혀 운신을 못하는 듯했다.
그녀들이 바라보는 천정,
그곳에는 한폭의 음화(淫畵)가 그려져 있었다.
서로 뒤엉켜 교접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그린 음화(淫畵), 그것에
시선이 갈 때마다 두 소녀의 호흡이 다소 거칠어졌다.
문득,
"이제 어쩌지, 홍하(紅霞)야?"
푸른머리 소녀가 천정의 음화를 노려보며 걱정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걱정마, 청하(靑霞)야! 할아버지가 꼭 우리를 구하러 와 주실
거야!"
붉은머리 소녀는 야무진 음성으로 푸른머리 소녀를 위로했다.
"정말 와 주실까?"
청하라 불리운 푸른머리 소녀, 그녀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청하(靑霞)!
-홍하(紅霞)!
그렇다! 두 소녀는 바로 천강노조 뇌궁(雷弓)의 쌍둥이 손녀
풍뢰쌍염(風雷雙艶)이었다.
그녀들은 전마 혼해룡의 수하들에 의해 낙양성 내에 갇혀 있다가
유령음황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것은 하루 전의 일이었다.
"흐흐! 꿈은 빨리 깨는 것이 좋아, 아가씨들!"
문득 석실의 문 밖에서 음험한 웃음이 들려왔다.
이어,
그긍......!
문이 열리며 한 명의 흑포노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자는 바로 유령음황이었다.
그가 들어선 순간,
"유령음황! 빨리 우리를 집으로 돌려 보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할아버지께서 당신을 풍뢰벽력탄(風雷霹靂彈)으로 태워 죽이고 말
거예요!"
홍하는 무섭게 유령음황을 노려보며 독살스럽게 외쳤다.
화를 내자 그녀의 붉은머리는 더욱 붉어졌다.
하나, 유령음황은 개의치 않았다.
"흐흐! 노부를 걱정해 주실 필요없소, 부인!"
그는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며 두 소녀에게로 다가섰다.
순간, 홍하의 눈꼬리가 역팔자로 치켜 올라갔다.
"부...... 부인? 무슨 미친 개소리냐?"
그녀는 발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나, 청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두려움에 바들바들 몸을 떨고만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홍하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날뛰었다.
그것은 두 소녀의 대조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유령음황은 음험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었다.
"흐흐...... 그대들은 곧 함께 노부에게 처녀를 바치게 될 테니
노부의 부인이라 해서 안될 것은 없지!"
이어, 그는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와 침상의 끝에 앉았다.
그가 다가앉자 두 소녀는 마치 벌레가 가까이 온 듯 교구를 부르르
떨었다.
"노부는 오래 전에 한 가지 상고시대의 초마공을 얻었다. 흐흐......
그것을 연마하는데는 두 가지 필요한 것이 있는데 지금 그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다!"
유령음황은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두 소녀의 몸을 쓸어보았다.
순간,
"상...... 상고 초마공(超魔功)?"
홍하는 위기 중에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물었다.
유령음황의 입가에 음탕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하하! 궁금하신가? 그럼 보여 주지. 어차피 아가씨들은 평생 노부와
살을 비비며 살게 될 사이니까......!"
이어, 그는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철판을 꺼내 두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길이 한 자, 폭 반 자의 철판,
그것은 천 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전혀 녹이
슬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여러 장의 철판 중 하나인 듯 위쪽에 끈으로 묶을 수
있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철판의 양면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적혀 있었다.
그 글들은 모두 갑골문이었다.
<양심초극심마결(兩心超極心魔訣).>
철판의 맨 위에는 그와 같은 구결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양...... 양심초극심마결?"
홍하는 그 구결의 제목을 보고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양심초극심마결(兩心超極心魔訣)!
보통 양심마공(兩心魔功)이라 불리는 전설상의 마공.
본시 무공이란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자라도 한 가지 방면
이에는 익히지 못한다.
즉 극양기공이면 극양기공(極陽奇功), 극음기공이면
극음기공(極陰奇功), 마공(魔功)이면 마공(魔功), 정종신공이면
정종신공(正宗神功)으로 각기 분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방면만을 택하여 연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 양심마공은 그 상례를 깬 파격의 무공이었다.
그것을 연마하면 마음을 둘로 나눌 수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극양이나 극음의 상반된 무공을 동시에 연마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양심초극심마결이었다.
홍하는 내심 놀람을 금치 못하며 아미를 모았다.
(저...... 저것은 그 옛날 만겁마가의 시조 천마황(天魔皇)이 죽음
직전에 창안했다는 전설의 마공인데 어떻게 저 자의 손에 들어갔단
말인가?)
삼십 년 전----
유령음황은 만겁마가의 발상지인 천마정(天魔井)에 참배하러 갔었다.
그때 그는 천마정 내에 있는 하나의 은밀한 석실을 발견했다.
그 석실은 무슨 이유에선지 천여 년 전에 봉쇄되어 있었다.
한데, 그 안에서 유령음황은 바로 그 양심초극심마결이 적힌 철판을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 유령음황은 그것을 만겁마가에 바치지 않고 은밀하게 보관해
왔다.
그는 자신의 가문인 유령음부갱이 만겁마가의 가신인 것에 늘 불만을
품어왔다.
그러다 양심초극심마결을 발견하자 그는 만겁마가에서 독립할 야심을
키워왔다.
하나, 돼지에게 진주를 준들 무슨 소용이랴?
양심초극심마결은 너무 난해하여 유령음황은 삼십 년을 소모한
지금에야 겨우 그 묘의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을 연마하는데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극음기공과 극양기공!
그 두 가지였다.
그것은 실로 난해한 조건이었다.
유령일족(幽靈一族)의 유령음부마강은 극음(極陰)쪽의 기공이었다.
하나, 그 정도로서는 양심초극심마결이 필요로 하는 음기를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극양(極陽)의 기공도 없었다.
유령음황, 그는 고심 끝에 한 가지 편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극양과 극음의 약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유령음황은 어렵게 지극히 강한 극양, 극음의 영약을 얻을
수 있었다.
-화룡내단(火龍內丹)!
-천년빙정(千年氷精)!
바로 그 두 가지였다.
여명 무렵,
"......!"
막붕비는 심한 갈증에 눈을 떴다.
그때,
"마셔요!"
우울한 여인의 음성과 함께 하나의 물병이 막붕비의 입가에
대어졌다.
순간,
(철접......!)
막붕비는 그 목소리가 서시독후 철접의 음성임을 깨닫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떤 건조한 동굴바닥에 누워 있었다. 바닥에는 마른풀이 깔려
푹신했다.
그의 옆,
한 명의 여인이 그림 같은 자태로 앉아 막붕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접, 그녀였다.
"누...... 누님......!"
막붕비는 반가움을 억지로 감추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철접은 다시 물병을 막붕비의 입에 대주었다.
막붕비는 순순히 그녀가 먹여 주는 대로 물을 마셨다.
비로소 갈증이 가셨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지며 자신이 화화관음의 최음제에 중독당했던
사실이 상기되었다.
하나, 그의 몸 어디에도 이미 그런 흔적은 없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이 누군가 여인의 몸에 그 약력을 토해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막붕비는 그것을 깨닫고 문득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누...... 님! 설마 제가 누님을......!"
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눈앞에 있는 철접의 도움으로 최음제를 해독했다고 밖에
생각지 않았다.
"......!"
문득 철접의 눈에 한 줄기 고통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자기의 정인인 막붕비가 비취여제를 안고 몇 번인가 욕정을
토해내는 것을 시종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과 질투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비취여제,
그녀는 그 후 곯아 떨어진 막붕비를 이곳 산동(山洞)에 안치하고
울며 떠났었다.
철접은 잠시 입을 닫고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 아이에게 자신이 비취여제를 강제로 범했다는 얘기를 해줄
필요는 없다!)
이어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은 막붕비가 자기를 구한 것이 철접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누님."
막붕비는 안색이 빨개지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순간의 그는 삼 년 전 십 오 세 소년시절로 돌아갔다.
철접, 그녀는 막붕비에게 있어 첫 여인이자 또한 다정한 누님 같은
존재였다.
철접은 문득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잊어 버려요, 붕비!"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문득 입구쪽을 가리켰다.
"밖을 살펴봐요. 재미있는 일이...... 곧 벌어질 테니......!"
"......!"
막붕비는 흠칫하며 동굴의 입구쪽으로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들이 있는 동굴,
그것은 호리병 모양의 협곡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무성한 등나무의 덩굴이 뒤덮여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밖을 내다보던 막붕비,
"......!"
그는 문득 흠칫했다.
때는 여명 직전,
불그레한 기운과 어둠이 뒤섞여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데, 그 여명 직전의 어둠 속, 한 명의 인물이 협곡의 끝에 우뚝 서
있었다.
막붕비는 시력을 돋우어 그 인물을 살펴보았다.
나이는 대략 삼십 전후, 마치 청동조각을 연상케 하는 굳강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그는 일신에 검은 경장을 걸치고 있었으며, 왼손에는 직경 네 자
정도의 청동방패와 일 장 길이의 방천화극을 비껴들고 있었다.
(대단한...... 패기(覇氣)가 느껴지는 자다!)
막붕비는 놀라운 눈으로 흑의장한을 주시했다.
여명의 어둠 속,
흑의장한의 눈이 새파란 안광을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자의 이름은 전마(戰魔) 혼해룡(混海龍)이예요! 만겁마가의
사가신 중 전사혈문(戰士血門)의 지존이죠!"
등 뒤에서 철접의 우울한 음성이 들렸다.
"전마...... 혼해룡! 무척 강해 보이는군요!"
막붕비는 여전히 흑의인을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해요. 그는 만겁마가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자예요!"
"......!"
막붕비는 철접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전마(戰魔) 혼해룡(混海龍)이란 자는 지금껏 본 그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같은 만겁마가의 가신 중 한 명이긴 하나 화화관음 따위가 따르지
못할 강맹한 기세가 전마(戰魔) 혼해룡에게서 느껴졌다.
막붕비는 혼해룡을 주시하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로써 만겁마가의 사대가신 중 혈관음교, 사망탑(死亡塔)에 이어
전사혈문까지 나타났군! 남은 것은 가장 신비하다는
유령음부갱(幽靈陰府坑)만 남았군!)
만겁마가의 사가신!
만겁마가의 수족이라는 그 네 개의 조직 중 유령음부갱을 제외한
혈관음교, 사망탑, 전사혈문의 후예들이 모두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
문득 협곡의 입구쪽에서 한소리 날카로운 장소성이 들려왔다.
강퍅하면서도 패도적인 장소성.
그에 이어,
쉬---- 잇!
여명을 등지고 하나의 인영이 허공을 밟으며 질풍같이 다가섰다.
(대단한 경공이다! 귀수왕(鬼手王)의 비폭탄궁(飛爆彈弓)
이상인데......!)
막붕비는 눈을 빛내며 다가서는 인물을 주시했다.
화르르......
고오!
순간적으로 그 인물은 전마(戰魔) 혼해룡의 앞에 이르러 맹렬한
선풍을 일으키며 내려섰다.
그는 한 명의 노인이었다.
일신에 뇌전의 문양이 새겨진 붉은 장포를 걸친 인물, 기이하게도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푸른색의 노을이 서려 있었다.
또한, 두 눈은 이글거리는 숯불같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강퍅하고 독선적인 연상을 풍기는 노인이었다.
"전마 혼해룡,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구나!"
적포노인은 내려서자마자 쇳소리 나는 음성으로 일갈하며 혼해룡을
주시했다.
"어서 오시오, 천강노조! 예의 물건들은 갖고 오셨겠지요?"
전마 혼해룡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지막이 울리는 듣기 좋은 전음이었다.
막붕비, 그는 경이의 표정으로 적포노인을 주시했다.
(천강...... 노조! 저 사람이 바로 풍뢰천강궁의 궁주인
뇌궁(雷弓)이란 말인가?)
천강노조 뇌궁!
그렇다.
적포노인은 바로 오정(五正)의 일 인인 풍뢰천강궁의 지존
천강노조였다.
그는 두 가지에서 단연 천하최강이었다.
화기제조술과 극양강의 파괴기공이 그것이었다.
단순히 깨뜨리고 바스러뜨리는 데는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그의 성명절기는 천강뇌폭참이라는 일종의 장법이었다.
천강뇌폭참이 펼쳐지면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스치는 모든
것이 바스라지고 만다.
그 파괴력은 천 년 전 사대천왕이 부활한다 해도 그들의 무공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여 아무리 내공이 막강한 자라도 그것을
연달아 두 번 내치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천강뇌폭참 외에, 천강노조는 풍뢰벽정신강이라는 지고무상의
양강강기신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무공만으로라면 절대신검황 초패강이나 소림의 항마천존보다
오히려 강할 수도 있었다.
하나, 그는 성격이 지극히 독선적인 인물로 사람 사귀기를 싫어한
까닭에 서열상으로 초패강과 항마지존에게 밀려났다.
막붕비는 천강노조를 주시하며 기광 어린 눈을 번뜩였다.
(패도제일인(覇道第一人) 천강노조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운이 좋군!)
하나 문득,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저 노인은 하북(河北)의 풍뢰천강궁에 있지 않고 무슨 일로
북망산의 황곡에 나타났단 말인가?)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천강노조를 주시했다.
그때, 천강노조가 이글이글한 눈으로 혼해룡을 노려보며 말을
건넸다.
"자! 이제 노부의 두 손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전마 혼해룡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믿지 않는 것은 아니나...... 먼저 물건을 가져 오셨는지 확인을
해야겠소이다! 연후에 두 분 영손녀가 어디 있는지 말씀 드리리다!"
"으음......!"
천강노조는 입술을 씰룩이며 혼해룡을 노려보았다.
하나, 칼의 손잡이를 잡은 것은 혼해룡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혼해룡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본래, 천강노조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녀가 있었다.
뇌홍하(雷紅霞).
뇌청하(雷靑霞).
당년 십 팔 세의 쌍동이 자매, 달리 풍뢰쌍염(風雷雙艶)이
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들이었다.
한데, 그녀들은 한 달 전에 풍뢰천강궁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전사혈문(戰士血門)의 마전사(魔戰士)들에게 납치되었었다.
그 후, 전마 혼해룡은 두 소녀를 교환할 모종의 조건을 천강노조에게
요구, 제시해 왔다.
그래서 천강노조는 손녀들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이곳 북망의
황곡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천강노조는 혼해룡의 태도에 못마땅함을 금치 못했다.
하나,
"자! 보아라! 여기 있으니까!"
그는 살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며 품 속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
혼해룡에게 내보였다.
그것은 아주 붉은 하나의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풍뢰열화진결(風雷熱火眞訣).>
두루마리의 표면,
고대 서하 문자로 쓰인 제목이 혼해룡의 눈에 들어왔다.
풍뢰열화진결,
그것은 천여 년 전 서역 풍뢰동(風雷洞)의 명인 풍뢰자(風雷子)가
남긴 것이었다.
풍뢰자, 그는 사대천왕보다도 한 세대 전의 인물이었다.
당시 서역 변황무림의 제일인자!
하나, 그는 당시 중원제일인 천강종의 도전을 받아 싸움에서
동귀어진했다고 한다.
풍뢰열화진결에는 바로 그 풍뢰자가 남긴 화기제조비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풍뢰천강궁,
그것의 영화는 바로 풍뢰열화진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풍뢰열화진결을 보았으니 이제 본좌의 손녀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말할 차례다, 혼해룡!"
천강노조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혼해룡을 노려보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사랑하는 손녀들을 염려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불을 토하는
맹룡(猛龍)과도 같았다.
그 만큼 그는 쌍동이 손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혼해룡의 안색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먼저 풍뢰열화진결을 던져 보내시오! 그럼 두 손녀분을 돌려
드리겠소!"
그는 가라앉은 음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끙......!"
천강노조의 눈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하나 혼해룡의 말을 따를 도리밖에 없었다.
"약속은...... 지키리라 믿는다, 전마!"
핑!
그는 거칠게 일갈하며 풍뢰열화진결의 두루마리를 혼해룡에게
던졌다.
"......!"
혼해룡은 오른손을 내밀어 날아오는 풍뢰열화진결을 받으려 했다.
한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피---- 잉!
쐐액!
돌연, 허공에서 하나의 흐릿한 인영이 질풍같이 폭사되어 오더니
중간에서 풍뢰열화진결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엇! 누구냐?"
"풍뢰열화진결을 놓아랏!"
꽈---- 릉!
번쩍!
천강노조와 혼해룡은 경악하며 동시에 맹렬히 그 신비인을 후려쳤다.
천강노조의 풍뢰신권(風雷神拳)과 혼해룡의 방천화극이 산을
허물어뜨리고 바다를 가를 기세로 신비인을 휩쓸었다. 하나,
"흐흐핫핫! 잘들 놀아보거라. 혼해룡! 천강노조!"
푸---- 하악!
그 자는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삼십 장
허공으로 폭등했다.
그 순간,
"헛! 유령폭등비(幽靈暴騰飛)의 경공! 그대는......
유령음황(幽靈陰皇)!"
신비인의 경공을 본 혼해룡은 경악의 외침을 발했다.
유령폭등비(幽靈暴騰飛)!
만겁마가의 사가신 중 유령음부갱의 비전초경공.
그 유령폭등비를 방금같이 기민하게 쓸 수 있는 자는
유령음부갱(幽靈陰府坑)의 갱주(坑主) 유령음황(幽靈陰皇) 밖에
없었다.
허공에서 감쪽같이 풍뢰열화진결을 채간 자,
그는 바로 유령음부갱의 마황 유령음황이었다.
그때,
"바...... 바득! 노부를 속였구나, 혼해룡!"
천강노조는 이를 갈며 분노의 폭갈을 터뜨렸다.
혼해룡은 당혹한 표정으로 급히 고개를 저었다.
"뇌노사! 이건 오해요! 유령음황은 이 일과 아무런 관계가......!"
하나, 그의 변명은 채 이어지지도 못했다.
콰르릉......!
불 같은 성격의 천강노조,
그의 손 끝에서 인 잠력이 벼락치듯 혼해룡을 후려쳐 온 것이었다.
"이러지 마시오! 이것은 우리 둘 다에게 쓸모없는 일이오!"
꽈릉......!
혼해룡은 폭갈을 내지르며 천강노조의 공세를 막아갔다.
다음 순간,
콰드---- 득!
콰콰쾅......!
협곡 전체가 들썩 뒤흔들리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올랐다.
그와 함께 혼해룡의 하체는 무릎까지 바위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나 천강노조는 불같이 노해 재차 혼해룡을 덮쳤다.
"우! 먼저 네놈을 벌한 후 유령음황이란 놈을 박살내겠다!"
콰---- 자작!
그는 벼락같이 폭갈을 내지르며 우장을 뻗어냈다.
콰릉!
혼해룡은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해 천강노조의 공세를 막아갔다.
하나,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은 다급하게 유령음황을 쫓고 있었다.
(빌어...... 먹을! 그 놈도 풍뢰열화진결을 필요로 하고 있을
줄이야......!)
그는 낭패한 기색으로 힐끗 유령음황이 달아난 곳을 주시했다.
한데,
슥......!
바로 그 순간 하나의 인영이 석벽 밑에서 치솟아 올라 유령음황이
달아난 곳으로 날아갔다.
혼해룡은 물론 천강노조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인영, 그는 바로 막붕비였다.
* * *
북망산(北邙山)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어느 봉분......
잡초가 무성한 봉분 앞,
이끼 낀 하나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문득,
스슥......
하나의 그림자가 비석 앞으로 내려섰다.
흑포노인, 기이하게도 그는 수염 하나없이 매끈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다.
흡사 금방 관에서 나온 시체 같은 인상, 두 눈도 검은 자위보다
흰자위가 더 많아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흐흐...... 혼해룡(混海龍)! 뇌궁(雷弓)! 어디 머리 터지게들 싸워
봐라!"
흑포노인은 음침하게 히죽 웃으며 손에 든 물건을 들어보았다.
낡은 양피 두루마리,
-풍뢰열화진결(風雷熱火眞訣)!
바로 그것이었다.
천강노조에게서 그것을 가로챈 인물,
그렇다.
흑포노인은 바로 유령음부갱의 갱주 유령음황(幽靈陰皇)이었다.
그의 특기는 유령을 방불케 하는 경공술과, 죽은 사람의 시체의
시독(屍毒)을 흡수하여 연마한 음부시독장(陰府屍毒掌)이라는 일종의
독공이었다.
유령음황,
그는 비석 앞에 우뚝 선 채 흰자위 투성이인 두 눈을 음산하게
굴렸다.
"흐흐...... 꿈에도 이런 곳에 본갱(本坑)의 비밀지부가 있을 줄
모르겠지?"
그는 비석의 아래 위를 몇 번 눌렀다.
순간,
그긍......!
둔중한 굉음과 함께 일 장 높이의 비석이 뒤로 밀려나며 그곳으로
어두운 밀로가 나타났다.
"으핫하! 풍뢰열화진결이 본좌의 손에 들어온 이상 혼해룡, 그 어린
놈의 시건방진 콧대를 꺾고 본갱이 마가의 가장 강력한 가신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유령음황은 야욕의 눈을 번뜩이며 득의의 광소를 터뜨렸다.
이어,
슥......
그는 곧 어두운 밀로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그긍......!
비석은 다시 굉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직후,
"......!"
스읏!
막붕비의 모습이 유령같이 비석 앞에 나타났다.
"이런 곳에...... 두더지굴을 파놓고 있었군!"
그는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유령음황이 했던대로 비석의 여기저기를 눌렀다.
그긍......!
그러자 비석은 역시 뒤로 밀려나며 시커먼 통로가 드러났다.
휙!
막붕비는 주저치 않고 밀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막 어두운 밀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누구냐?"
돌연 어둠 속에서 음산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
막붕비는 일순 흠칫했다.
적이 어딘가에 은신한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으나 자신은 그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 좋은데......!)
그는 검미를 모으며 중얼거렸다.
한데 그때,
"컥......!"
문득 어둠 속에서 괴로운 신음성이 들렸다.
막붕비는 흠칫하며 시력을 돋우어 신음이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밀로의 벽,
그곳에는 음푹 파인 은밀한 은신처가 있었다.
바로 그곳에 창백한 안색의 한 중년인이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한데, 그 자의 피부는 급격히 시커멓게 물들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중독현상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철접......!)
막붕비는 경이의 표정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 자는 바로 서시독후 철접의 독에 쓰러진 것이었다.
철접은 막붕비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 막붕비의 그림자에
은신하여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동영 최고의 여인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득 막붕비는 반가운 음성으로 주위에 대고 외쳤다.
"누님! 어디 계십니까?"
순간,
"멍청이! 적의 소굴에 들어와서 무슨 짓이예요?"
어디선가 철접의 꾸짖음이 들려왔다.
"붕비가 있는 곳이 어디든 제가 있어요! 나를 찾지 말고......
유령음황이나 쫓아가 보세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뇌궁의 두
손녀도 그 자의 손에 떨어져 있을 거예요!"
그녀의 낮고 온화한 음성이 재차 막붕비의 귀에 들려왔다.
"하하! 알아 모시겠습니다, 누님!"
막붕비는 어둠 속에서 히죽 웃어보였다.
철접이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자 그는 마음이 든든해진
것이었다.
다음 순간,
슥!
그는 소리없이 몸을 움직여 질풍같이 밀로 안쪽으로 질주해 갔다.
* * *
석실,
사방이 밀폐된 은밀한 공간이었다.
음침한 붉은빛 궁등이 석실의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석실의 중앙,
스으...... 스으......
하나의 청동향로가 붉은 연기를 토해냈다.
그것은 석실의 분위기를 더욱 음침하게 만들고 있었다.
청동향로의 뒤,
하나의 커다란 침상이 놓여져 있었다.
침상 위,
"......!"
"......!"
두 명의 소녀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나이는 십 칠팔 세 정도, 실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소녀들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두 소녀의 용모는 판에 박은 듯 똑같은 것이
아닌가?
마치 한 소녀가 거울에 비쳐진 듯 착각할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들은 쌍동이인 듯했다.
하나 자세히 보면 두 소녀에게는 약간의 틀린 점이 있었다.
먼저 그녀들의 머리색이 틀렸다.
좌측의 소녀, 그녀의 머리는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반면, 우측의 소녀는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그녀들의 체형은 다소 틀렸다.
두 소녀는 속이 다 비쳐보이는 얇은 나삼만을 걸친 채 누워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들의 속살과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좌측의 붉은머리 소녀,
그녀의 몸매는 놀랍도록 풍만했다.
소녀답지 않게 완숙하고 풍염한 몸매를 그녀는 지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중년여인에 못지 않은 풍성함이었다.
그녀가 숨을 내쉴 때마다 나삼 속의 풍염한 유방이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측의 푸른머리 소녀,
그녀는 붉은머리 소녀와는 달리 전혀 대조적인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몸매는 애처로우리 만큼 가냘펐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꺾일 듯 연약한 몸매.
그녀의 젖가슴도 이제 겨우 봉긋할 정도로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었다.
두 소녀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그 두 가지 차이가 아니면 누구든 두 소녀가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
"......!"
두 소녀는 침상에 반듯하게 누운 채 천정을 바라보며 눈만 굴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들은 연마혈이 찍혀 운신을 못하는 듯했다.
그녀들이 바라보는 천정,
그곳에는 한폭의 음화(淫畵)가 그려져 있었다.
서로 뒤엉켜 교접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그린 음화(淫畵), 그것에
시선이 갈 때마다 두 소녀의 호흡이 다소 거칠어졌다.
문득,
"이제 어쩌지, 홍하(紅霞)야?"
푸른머리 소녀가 천정의 음화를 노려보며 걱정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걱정마, 청하(靑霞)야! 할아버지가 꼭 우리를 구하러 와 주실
거야!"
붉은머리 소녀는 야무진 음성으로 푸른머리 소녀를 위로했다.
"정말 와 주실까?"
청하라 불리운 푸른머리 소녀, 그녀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청하(靑霞)!
-홍하(紅霞)!
그렇다! 두 소녀는 바로 천강노조 뇌궁(雷弓)의 쌍둥이 손녀
풍뢰쌍염(風雷雙艶)이었다.
그녀들은 전마 혼해룡의 수하들에 의해 낙양성 내에 갇혀 있다가
유령음황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것은 하루 전의 일이었다.
"흐흐! 꿈은 빨리 깨는 것이 좋아, 아가씨들!"
문득 석실의 문 밖에서 음험한 웃음이 들려왔다.
이어,
그긍......!
문이 열리며 한 명의 흑포노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자는 바로 유령음황이었다.
그가 들어선 순간,
"유령음황! 빨리 우리를 집으로 돌려 보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할아버지께서 당신을 풍뢰벽력탄(風雷霹靂彈)으로 태워 죽이고 말
거예요!"
홍하는 무섭게 유령음황을 노려보며 독살스럽게 외쳤다.
화를 내자 그녀의 붉은머리는 더욱 붉어졌다.
하나, 유령음황은 개의치 않았다.
"흐흐! 노부를 걱정해 주실 필요없소, 부인!"
그는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며 두 소녀에게로 다가섰다.
순간, 홍하의 눈꼬리가 역팔자로 치켜 올라갔다.
"부...... 부인? 무슨 미친 개소리냐?"
그녀는 발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나, 청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두려움에 바들바들 몸을 떨고만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홍하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날뛰었다.
그것은 두 소녀의 대조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유령음황은 음험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었다.
"흐흐...... 그대들은 곧 함께 노부에게 처녀를 바치게 될 테니
노부의 부인이라 해서 안될 것은 없지!"
이어, 그는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와 침상의 끝에 앉았다.
그가 다가앉자 두 소녀는 마치 벌레가 가까이 온 듯 교구를 부르르
떨었다.
"노부는 오래 전에 한 가지 상고시대의 초마공을 얻었다. 흐흐......
그것을 연마하는데는 두 가지 필요한 것이 있는데 지금 그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다!"
유령음황은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두 소녀의 몸을 쓸어보았다.
순간,
"상...... 상고 초마공(超魔功)?"
홍하는 위기 중에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물었다.
유령음황의 입가에 음탕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하하! 궁금하신가? 그럼 보여 주지. 어차피 아가씨들은 평생 노부와
살을 비비며 살게 될 사이니까......!"
이어, 그는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철판을 꺼내 두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길이 한 자, 폭 반 자의 철판,
그것은 천 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전혀 녹이
슬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여러 장의 철판 중 하나인 듯 위쪽에 끈으로 묶을 수
있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철판의 양면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적혀 있었다.
그 글들은 모두 갑골문이었다.
<양심초극심마결(兩心超極心魔訣).>
철판의 맨 위에는 그와 같은 구결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양...... 양심초극심마결?"
홍하는 그 구결의 제목을 보고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양심초극심마결(兩心超極心魔訣)!
보통 양심마공(兩心魔功)이라 불리는 전설상의 마공.
본시 무공이란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지닌 자라도 한 가지 방면
이에는 익히지 못한다.
즉 극양기공이면 극양기공(極陽奇功), 극음기공이면
극음기공(極陰奇功), 마공(魔功)이면 마공(魔功), 정종신공이면
정종신공(正宗神功)으로 각기 분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방면만을 택하여 연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 양심마공은 그 상례를 깬 파격의 무공이었다.
그것을 연마하면 마음을 둘로 나눌 수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극양이나 극음의 상반된 무공을 동시에 연마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양심초극심마결이었다.
홍하는 내심 놀람을 금치 못하며 아미를 모았다.
(저...... 저것은 그 옛날 만겁마가의 시조 천마황(天魔皇)이 죽음
직전에 창안했다는 전설의 마공인데 어떻게 저 자의 손에 들어갔단
말인가?)
삼십 년 전----
유령음황은 만겁마가의 발상지인 천마정(天魔井)에 참배하러 갔었다.
그때 그는 천마정 내에 있는 하나의 은밀한 석실을 발견했다.
그 석실은 무슨 이유에선지 천여 년 전에 봉쇄되어 있었다.
한데, 그 안에서 유령음황은 바로 그 양심초극심마결이 적힌 철판을
발견한 것이었다.
하나, 유령음황은 그것을 만겁마가에 바치지 않고 은밀하게 보관해
왔다.
그는 자신의 가문인 유령음부갱이 만겁마가의 가신인 것에 늘 불만을
품어왔다.
그러다 양심초극심마결을 발견하자 그는 만겁마가에서 독립할 야심을
키워왔다.
하나, 돼지에게 진주를 준들 무슨 소용이랴?
양심초극심마결은 너무 난해하여 유령음황은 삼십 년을 소모한
지금에야 겨우 그 묘의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을 연마하는데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극음기공과 극양기공!
그 두 가지였다.
그것은 실로 난해한 조건이었다.
유령일족(幽靈一族)의 유령음부마강은 극음(極陰)쪽의 기공이었다.
하나, 그 정도로서는 양심초극심마결이 필요로 하는 음기를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극양(極陽)의 기공도 없었다.
유령음황, 그는 고심 끝에 한 가지 편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극양과 극음의 약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유령음황은 어렵게 지극히 강한 극양, 극음의 영약을 얻을
수 있었다.
-화룡내단(火龍內丹)!
-천년빙정(千年氷精)!
바로 그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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