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천왕 13
제11장 盜難당한 戰國玉璽
석실 안----
"이거야 원 마구잡이로군!"
막붕비는 고소를 지으며 바닥에 던져져 있는 풍뢰천강경을 집어
들었다.
풍뢰천강경----
그것은 풍뢰천강궁을 있게 만든 천년비급이었다.
풍뢰천강경을 지은 것도 저 천 년 이전의 두 고인 풍뢰자와
천강종이었다.
천 년 그 이전,
당시 중원제일인(中原第一人) 천강종은 서역 풍뢰동을 방문했다.
그는 서역제일인 풍뢰자의 명성을 듣고 누가 더 강한지 무공을
겨뤄보기 위해 풍뢰동을 찾은 것이었다.
풍뢰자(風雷子), 그 역시 은근히 중원제일인 천강종과 자신의 무공을
비교하고 싶었었다.
두 초인은 경천동지의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사흘 밤낮 동안 그들은
무섭게 충돌했다. 산이 무너지고 계곡이 함몰되었다. 천(天), 지(地)가
서로 엇갈리는 엄청난 대격전!
하나, 풍뢰자와 천강종 그들은 누구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다.
결국, 양인은 동시에 손을 맘추었고 진심으로 서로에 대해 감탄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두 고인은 생사지교(生死之交)가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자신들의 무공을 한 권의 비급에
수록했다.
그것이 바로 풍뢰천강경이었다. 그것에는 일곱 가지의 무공이
기재되어 있었다.
풍뢰자와 천강종은 각자 자신이 자랑하는 세 가지씩의 절기를 그
안에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두 사람이 합작하여 창안한
무공이었다.
-풍뢰벽정신강!
-풍뢰신권!
-풍뢰열화인!
그것이 풍뢰자가 수록한 절기인 풍뢰삼절(風雷三絶)이었다.
주로 양강을 위주로한 무공으로 무쇠를 녹이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풍뢰자의 무공이 펼쳐질 때는 우뢰성과 광풍이 일어
풍뢰절기(風雷絶技)라 불리웠다.
천강종, 그가 남긴 세 가지 절기는 다음과 같았다.
-천강신공!
-무적천강인!
-천강뇌폭참!
무엇이든 깨뜨려 버리는 극강의 파괴력을 위주로한 패도절기!
천강노조는 천강종 쪽의 무공연마에 주력하여 천강뇌폭참까지
연마했다.
하나, 그도 풍뢰자와 천강종이 합작하여 창안한 최후기공은 연마하지
못했다.
-벽정천강추!
그것이 두 고인이 합작한 기공이었다.
호신기공의 파해를 목적으로한 초절기!
그것은 풍뢰자의 풍뢰삼절과 천강종의 천강삼절을 모두 연성한
후에야 연마가 가능한 기공이었다.
시전하면 무서운 우뢰성과 함께 송곳 모양의 강기가 일어 어떤
호신강기든 꿰뚫어 버린다.
그것은 풍뢰자와 천강조의 최후무적신공이었다.
막붕비, 그는 풍뢰천강경을 대충 훑어보고 품 속에 집어 넣었다.
"백 일 이내로 반환하라고?"
풍뢰천강경의 무공은 막붕비에게 또 다른 무공의 경지를 보여
주었다.
그가 익힌 지옥저주마경의 위력은 강하나 음험하고 잔인하여
막붕비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반면, 풍뢰자의 절기는 그에 못지 않을 뿐 아니라 광명정대함을
기초로한 정종신공들이었다.
특히 그 중 벽정천강추는 막붕비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막붕비는 문득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노인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백 일 내에 이것을 꼭 돌려
주러 가야겠군!"
그러다 퍼뜩 그는 서시독후 철접을 떠올렸다.
"누님은 어디 가서 아직 안 돌아 오는가?"
그는 검미를 모았다.
이어, 그는 병기와 비급을 챙겨들고 급히 석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누님! 어디 계십니까?"
그는 사방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
웅웅......!
그의 외침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 어디에서도 철접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죽음 같은 정적만이 지하를 공허하게 울릴 뿐......
유령음황의 부하들은 철접과 천강노조에게 모두 죽음을 당한 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위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것은 막붕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둠 속에 망연하게 서 있었다.
"떠났어...... 야속한 계집!"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철접을 원망했다.
-나를 찾지 말아요! 붕비가 나를 원하면 그곳에 내가 있을
테니......
철접의 그 말이 문득 막붕비의 뇌리를 울렸다.
"그렇다고 해도...... 왜 내 마음을 몰라 주지? 항상 당신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쾅!
막붕비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발을 굴렀다.
우르릉......!
그러자 지하 분묘 전체가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다시......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해 봐라! 꽉 눌러 주어서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테니......"
이어, 막붕비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지직......
마도 묵룡풍과 마검 지옥혈이 그의 손 끝에 축 늘어진 채 질질
끌려갔다.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막붕비의 마음을 대신하듯......
이윽고, 막붕비의 모습은 이내 칼칼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남경(南京)!
<승상부(丞相府).>
늦가을의 풍성한 황금빛 햇살이 승상부 전역을 비추고 있었다.
끝이 없을 듯 펼쳐진 거대한 규모의 대장원,
그것은 울창한 원시림 가운데 우뚝 버티고 선 드넓은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정오가 지난 무렵,
"......!"
문득, 한 명의 남루한 마의소년이 터덜터덜 승상부의 정문 쪽으로
다가섰다.
커다란 두 자루의 칼과 검을 아무렇게나 둘러멘 장발의 소년, 그가
모습을 보인 순간,
"어엇! 저...... 저 분이 누구야?"
"어이쿠! 소부주님이시다!"
승상부 정문, 거대한 석사자 옆에 서 있던 일단의 위사들이
아연실색하며 부르짖었다.
대로를 휘적휘적 걸어오는 남루한 마의소년, 그가 누군지 첫눈에
알아본 것이었다.
막붕비, 마의소년 그는 바로 이 거대한 장원의 어린 주인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은 일대소동을 불러 일으켰다.
"빨...... 빨리 주군께 알려라!"
"아...... 아닐세, 좀 기다려. 도련님께서 저런 몰골로 돌아오신
것을 아시면 마님께서 기절하신다!"
위사들은 법석을 떨며 일단은 허둥지둥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또
일단은 황망히 막붕비쪽으로 달려왔다.
"......!"
그런 위사들의 분주함에 아랑곳없이 막붕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집이...... 좋기는 좋구나!)
그는 푸근한 안도감을 느끼며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문득 그의 눈가로 한 가닥 쓸쓸한 빛이 스쳤다.
그것은 한 명의 여인 때문에 생긴 고독감이었다.
누이라도 한참 위의 누이 뻘인 열 살이나 연상인 여인, 하나 너무도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져 한시라도 잊을 수 없는 여인......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막붕비의 가슴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돌아왔다! 후훗...... 삼 년이나 연락 한 번 안했으니
아버님께 종아리를 맞게 되리라!)
막붕비는 고소를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뚜벅......
그는 성큼성큼 승상부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귀가(歸家)!
망나니 같은 승상부의 어린 잠룡, 그의 삼 년 만의 귀가였다.
-의사청!
승상부의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건물, 그것은 어지간한 작은
장원만한 규모였다.
뚜벅......!
막붕비, 그는 마도 마검을 둘러메고 성큼 의사청으로 올라섰다.
순간, 그를 발견한 한 위사가 급히 안에 대고 알리려 했다.
하나 막붕비는 손을 들어 그것을 재지시켰다.
"아버님 좀 놀라게 해 드려야겠다! 안에 계시지?"
그는 위사의 옆을 지나며 물었다.
그 말에 위사는 허리를 굽히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하온데...... 신비각의 금검존 영반께서 함께 계십니다!"
"금검존?"
막붕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무슨 일로 아버님과 독대(獨對) 하고 있지?)
그는 검미를 모으며 의사청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위사는 감탄의 눈으로 중얼거렸다.
(허허! 완전히 의젓한 장부가 되어 돌아오셨는데...... 역시
사내아이는 세상에 내놓고 키워야만 한다!)
그가 본 막붕비의 변모는 실로 훌륭한 것이었다.
의사청 안----
드넓은 지붕을 떠받치기 위해 아름드리 기둥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그 안쪽, 수백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
막 기둥 사이를 지나려던 막붕비, 그는 흠칫하며 멈추어섰다.
"철접이란 말이지? 삼 년 전에 본부에 난입하여 붕비를 납치했던
동영의 계집자객이?"
낮으나 위엄 서린 중년인의 음성이 막붕비의 귀에 들린 것이었다.
(누님의 이름이 왜 아버님의 입에 거론되는 것일까?)
막붕비는 고개를 갸웃하며 전면을 주시했다.
광장의 끝,
화려한 태사의에 한 명의 인물이 좌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당한 풍채에 네모 반듯한 얼굴을 지닌 중년인, 언뜻
만수지왕(萬獸之王) 사자를 연상케 하는 자포중년인이었다.
-승상 막대공!
그렇다! 그 중년인은 바로 승상부의 주인 승상 막대공이었다.
당금 중원천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일대야심가.
그는 삼 년 전 막붕비가 승상부를 떠날 때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였다. 그의 검던 머리카락 사이에는 희끗희끗한 백발이 섞여 있었다.
하나, 그것이 막대공의 풍채를 손상시키기는 커녕 한층 경륜과
위엄을 더하게 만들었다.
막대공의 앞, 한 명의 자포검수가 공손하게 시립하고 있었다.
황금의 보검을 짊어지고 있는 훤칠한 체격의 검수.
-금검존(金劍尊) 뇌극형(雷極形)!
바로 그였다.
신비각(神秘閣) 사대영반 중 일 인.
그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때, 금검존이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철접의...... 짓이 확실합니다! 삼 년 전에...... 제거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왜...... 철접의 짓이라 단언하는가?"
막대공은 굵은 눈썹을 꿈틀하며 물었다.
"그 계집은...... 속하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동생
용영차랑이 저로 인해 죽은 원한이 있었지요!"
"흠...... 그렇군!"
막대공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 년 전----
철접의 친동생 용영차랑은 자금성에 침투했다가 금검존의 어검술에
복수를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었다.
결국, 그 때문에 용영차량은 할복하고 말았다.
문득, 금검존은 눈을 번뜩이며 음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쨌든 철접이 속하를 지명한 이상...... 이번 현안은 속하의
손에서 끝을 내도록 해 주십시오!"
"......!"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듣고 있던 막붕비, 그는 검미를 모으며
침음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누님이 또 자금성에 스며들어
무슨 일을 저지르신 것일까?)
한데, 바로 그때였다.
"흥! 너는 어디서 온 바퀴벌레냐?"
돌연 막붕비의 등 뒤에서 싸늘한 일갈이 들려왔다.
"......!"
막붕비는 흠칫했다.
누군가 바로 뒤까지 접근해 왔는데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슥!
그는 유령음부경상의 절정신법 유령잔흔(幽靈殘痕)의 경공으로 홱
돌아섰다.
하나,
"호홋! 재롱은 피울 줄 아는 바퀴벌레로군!"
등 뒤의 여인은 유령같이 막붕비를 따라붙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피---- 잉!
한줄기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리며 막붕비의 배심으로 폭사되었다.
(이 계집이......!)
막붕비는 검미를 불끈했다.
이어,
"계집! 나를...... 원망하지 마라!"
그는 폭갈과 함께 등쪽을 향해 맹렬하게 마검 지옥혈을 쪼개냈다.
순간,
우르릉----!
의사청 전체가 무섭게 뒤흔들리며 지옥검강이 폭풍같이 일어났다.
그러자,
"어멋!"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언뜻 하나의 왜영이 지옥검강풍에 휘말려
퉁겨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의 손속이 맵다고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꽈릉----!
막붕비는 재차 폭갈을 내지르며 그 왜영을 향해 질풍같이 육박하며
일 권을 후려쳐냈다.
-풍뢰신권(風雷神拳)!
바로 풍뢰자가 남긴 무서운 권법이었다.
일순, 굉렬한 우뢰성이 일며 강맹한 권풍이 그 가냘픈 왜영을
휩쓸어갔다.
"앗!"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막붕비의 풍뢰신권이 닥쳐들자 그 왜영은
다급한 규성을 토했다.
바로 그때,
"놈! 감히 어느 분께 주먹질이냐?"
돌연 막붕비의 뒤편에서 사나운 폭갈이 들려왔다.
막대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금검존 뇌극형, 그가 변고를
알아차리고 폭갈을 내지른 것이었다.
동시에,
쩌---- 엉!
막붕비의 등 뒤로 금검존의 황금신검이 벼락같이 폭사되었다.
위기에 처한 소녀를 도우기 위해 금검존이 어검술로 황금신검을
던져낸 것이었다.
순간,
"가랏! 지옥혈(地獄血)!"
푸학----!
막붕비는 등 뒤로 마검 지옥혈을 어검술로 마주 날려보내며 동시에
풍뢰신권을 처음의 기세로 밀어냈다.
차차---- 창!
콰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요란한 쇳소리가 의사청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우웃!)
우두둑!
막붕비의 두 발이 의사청 바닥의 청석판에 한 자 깊이로 박혀
들었다.
그는 소녀를 풍뢰신권으로 가격한 순간 무서운 반탄지력이 소녀의 몸
주위에서 일어나 자칫하면 쓰러질 뻔했다.
그때,
터---- 엉!
어검술로 허공에서 충돌한 마검 지옥혈과 황금신검이 요란한
쇳소리를 울리며 의사청 천정의 대들보에 꽂혔다.
"웬놈인데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난입했느냐?"
후드둑......
금검존은 폭갈을 내지르며 막붕비의 뒤로 내려섰다.
그런 그의 두 눈에는 은은한 경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막붕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어검비기를 봉쇄한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 이때,
"......!"
막붕비는 금검존을 돌아보지 않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전면을
주시했다.
그의 삼 장 앞, 한 명의 자포소녀가 울상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나이는 십 오 세 정도, 인형같이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용모의
소녀였다.
그녀는 자그마한 몸에 어울리지 않은 헐렁한 자색 전포를 걸치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자색 전포, 그것에는 선명한 황금의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다.
막붕비는 그것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뭐지? 저 전포는 분명 신비각 자의천위들의 복장이긴
한데...... 감히 황금봉황(黃金鳳凰)을 수놓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봉황의 문양은 바로 대명황실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것을 일개 자의천위가 전포에 새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힝! 아파라!"
소녀는 막붕비의 풍뢰신권이 스친 작은 어깨를 주무르며 울상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몸 주위로 흐릿한 회색의 강기가 흐르고 있었다.
막붕비의 풍뢰신권을 무력화시킨 반탄지력의 정체는 바로 그
회색강기의 노을이었다.
소녀의 모습을 유심히 주시하던 막붕비, 그는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요 꼬마계집을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는 소녀의 모습이 왠지 눈에 익은 듯했다.
그때,
"이놈!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막붕비의 뒤에 서 있던 금검존이 재차 사납게 폭갈하며 눈을
부릅떴다.
"......!"
막붕비는 빙글 돌아서려 했다.
하나, 그보다 빨리 금검존의 뒤에서 문득 호탕한 대소가 들렸다.
"핫하! 뇌영반! 자네는 본좌의 아들녀석을 처음 보는가?"
막대공, 그가 어느 새 금검존의 뒤에 이르러 뒷짐을 지고 있었다.
* * *
"예..... 엣? 아드님이시라고요?"
금검존은 아연실색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막붕비, 그는 비로소 몸을 돌려 금검존을 힐끗 본 뒤 막대공의 앞에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다.
"소자...... 지금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허허...... 이놈! 어른이 다 되어 돌아왔구나!"
막대공은 껄껄 웃으며 막붕비를 일으켜 세웠다.
위엄이 가득하던 그의 사자안(獅子眼)이 이 순간 기쁨과 반가움으로
가득 넘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아들 막붕비를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막붕비, 그는 삼 년 전 승상부를 떠났을 대 연약해 보이는 샌님
소년에 불과했다.
하나, 지금은 헌앙한 기개를 지닌 당당한 청년으로 변모하여
막대공의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체격 또한 육 척이 넘는 막대공에 지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게
변모해 있었다.
금검존 뇌극형,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막붕비를 주시했다.
(저...... 저 청년이 그 샌님 같던 금릉일잠룡이란 말인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방금 막붕비가 보여준 훌륭한
무공 실력이었다.
삼 년 전, 닭 잡을 힘도 없던 나약한 소년 막붕비가 당당하게 자신의
어검술을 봉쇄할 정도의 초고수가 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흥, 이봐요! 바퀴벌레, 당신 이 장미(薔薇)를 아프게 하고 사과도
하지 않을 셈인가요?"
예의 자포소녀가 앙칼진 음성으로 말했다.
"......!"
막붕비는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섰다.
자포소녀, 그녀가 허리춤에 작은 손을 얹고 막붕비를 째려보고
있었다.
"장미! 아...... 아가씨가 바로 그 꼬마 공주님?"
막붕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포소녀를 주시했다.
그제서야 그는 소녀가 누군지 기억해 낸 것이었다.
순간,
"뭐예요? 숙녀보고 꼬마라니......! 정말 예의없는 바퀴로군!"
슥!
자포소녀는 막붕비의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고개를 반짝 쳐들고
막붕비를 째려보았다.
그 모습은 실로 앙증맞고 귀여웠다.
"하하! 우리 공주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군!"
막대공은 껄껄 웃으며 소녀와 아들 막붕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장미공주(薔薇公主)!
그것이 소녀의 이름이었다.
본명은 주약금(朱若琴), 영락제의 다섯째 공주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 장미모양의 반점이 있어 장미공주라
불리웠다.
귀엽고 재기 발랄하여 황제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소녀였다.
그 때문에, 지독한 말괄량이가 되긴 했으나 어쨌든 황실 최고의
귀염둥이임에는 틀림없었다.
막붕비가 장미공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가 일곱 살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약금은 때 쓰기 잘하고 사탕을 좋아하던
코흘리개였을 뿐이었다.
한데, 지금은 제법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해 있는 것이었다.
"하하! 공주마마! 몰라 뵙고 불경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막붕비는 웃으며 짐짓 정중하게 주약금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흥! 말로만 사과하면 무엇해요?"
주약금은 토라진 표정으로 앵두 같은 입술을 샐쭉했다.
(어이쿠! 이거 걸려도 단단히 걸렸군!)
막붕비는 그 모습에 우거지상을 지었다.
이어, 그는 재차 정중한 음성으로 주약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 공주아가씨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주약금의 흑진주 같은 눈이 반짝 빛났다.
"여기에...... 뽀뽀해 줘!"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발그레한 뺨을 막붕비의 앞에
내밀었다.
(끙......!)
막붕비의 얼굴이 곤혹함으로 이지러졌다.
하나, 주약금의 비위를 더 건드렸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약금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
막붕비의 입술이 닿자 주약금의 볼이 금방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하나, 그녀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짐짓 코웃음치며 크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 말했다.
"흥! 좋아요! 오늘은 이 정도로 용서해 주지요. 다음부터 조심해요,
바퀴!"
이어,
휙!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홱 밖으로 날아나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그럼...... 속하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슥!
금검존도 막대공과 막붕비에게 포권해 보인 후 황망히 주약금의 뒤를
따라 날아나갔다.
"......!"
막대공은 멀어지는 주약금의 모습을 주시하며 문득 중얼거렸다.
"막내공주 아기도 어느 덧 처녀티를 내는구나!"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막붕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온데 장미공주가 어째서 자의천위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물음에 막대공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몰랐느냐? 공주는 신비사천존의 첫째인 고독모모의 의발전인이다!"
"고독모모의 제자입니까?"
-고독모모(孤獨母母).
신비각 제일고수, 아니 황실제일고수(皇室第一高手).
태조(太祖) 홍무제를 도와 대명제국의 건립을 배후에서 도왔다는
전설적인 여고수였다.
실질적인 신비각의 각주는 바로 그녀였다.
승상 막대공도 고독모모에게는 늘 최상의 경의로 대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동방의 고려국(高麗國)에서 왔다고 한다.
고려국에는 그 옛날 황제(皇帝)와 구주(九州)의 패권을 놓고
충돌했던 전신 치우천왕의 후예들이 있다고 전한다.
그 치우신문(蚩尤神門)의 마지막 후예가 바로 고독모모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독천강이라는 무서운 호신지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 전 막붕비의 풍뢰신권을 반진시킨 주약금의 회색강기가 바로 그
고독천강이었다.
주약금의 화후는 고작 삼성(三成) 수준인데도 하마터면 고독천강의
위력은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막대공은 대견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장미아가씨는 고독모모 뿐 아니라 다른 삼영반에게도 무공을 배우는
중이다. 오 년 내 그 아이는 천하무적(天下無敵)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본래, 황실에는 무림과 또 다른 무공이 있었다. 그것은 보안이
철저하여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결코 사대천왕 등의
그것에도 지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그 중 신비각 사대영반의 무공은 각기 일문(一門)을 이루고
있었다.
-고독모모(孤獨母母).
-나한천존(羅漢天尊).
-적의법왕(赤衣法王).
-금검존(金劍尊).
그들이 바로 신비각의 사대영반이었다. 그들이 과연 얼마만큼 강한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대영반의 막내이며 가장 약한 금검존만 해도 환우십강에 못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한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열삼위의 적의법왕은 금검존보다 적어도
배는 강하다고 한다. 비록 확인할 수 없지만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의사청의 내실에 막대공과 마주앉은 막붕비, 문득 그는 눈썹을
모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자금성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막대공은 잠시 침음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간밤에 자금성의 보고(寶庫)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라구요?"
"놈은...... 자의천위들의 경계망을 비웃으며 한 가지 물건을 훔쳐
갔고 서신까지 남겼다!"
막대공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황실보고(皇室寶庫).
그곳은 천하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숫자 미상의
자의천위들이 항상 그곳을 철통같이 수비하고 있었다. 또한, 보고
안에는 삼엄한 기관함정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한데...... 지난 밤, 그 모든 것을 비웃으며 황실보고에 난입하여 한
가지 물건을 훔쳐갔다.
전국옥새(戰國玉璽)----!
바로 그것이었다.
화씨진벽으로 깎은 진시황제의 옥새.
물론 그것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는 한낱 골동품에 불과했다. 하나,
전국옥새에는 천하대권을 상징하는 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도둑은 바로 그 전국옥새를 훔쳐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는 한 술 더 떠서 그곳에 한 장의 서신까지 남겼다.
<전국옥새를 찾고 싶으면 금검존(金劍尊) 뇌극형을 이틀 후
삼경(三更), 낭야왕부로 보내라.>
서신의 내용은 그러했다.
그 도둑이 왜 하필 금검존을 낭야왕부의 폐허로 보내라고 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하나, 당사자인 금검존과 막대공은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막붕비, 그는 막대공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눈을 번뜩였다.
(철접...... 이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철접, 그녀가 늘 동생 용영차랑의 복수를
꿈꾸고 있었음을......
이때,
"......!"
막대공은 말없이 아들을 주시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아들이 철접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감지했다.
하나, 묻지는 않았다.
문득, 막붕비는 생각에서 깨어나며 침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래서 뇌영반을 낭야왕부로 보내실 작정입니까?"
막대공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 또한 뇌영반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
애비로서는 뇌영반을 도울 수도 없다!"
막붕비는 고개를 흔들며 강경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뇌영반이 낭야왕부로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합니다! 철접은...... 삼 년 전보다 오히려 열 배는 더
무서워졌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뇌영반을 도울 수 없다! 뇌영반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는 아마도 신비각을 떠날 것이다. 뇌영반이 걱정
되거든...... 네 스스로 도와라!"
막대공은 의미심장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막붕비는 내심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아버님! 네가 걱정하는 것은 뇌영반이 아니라
철접누님입니다!)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뇌영반을 죽이면...... 누님은 정말 황실의 적이 되어 천하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문득 그의 얼굴에는 모종의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내 손으로 누님이 뇌영반을 죽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만
누님을 구할 수 있다!)
이때,
"......!"
막대공은 말없이 아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화제를 바꾸어 맑은 음성으로 말했다.
"자! 이제 네 어머니에게 가 보아라! 그 사람 너 기다리느라 눈이
빠지겠다!"
"예! 아버님!"
막붕비는 막대공에게 절한 후 몸을 일으켜 의사청을 나섰다.
"......!"
막대공, 그는 아들의 건장한 그림자가 의사청에서 사라지는 것을
대견한 눈으로 주시했다.
(허허...... 녀석! 이젠 정말 다 컸구나! 나도 곧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지 않았는가?)
그는 소리없이 웃음을 머금었다.
문득, 그의 뇌리에 손자들에게 수염을 뜯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실로 흐뭇한 생각이었다.
실상, 막붕비에게는 이미 혼담까지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막대공은 미소를 지으며 내심 모종의 결정을 내렸다.
(저 녀석의 방랑벽이 또 도지기 전에...... 장가나 보내
버려야겠다!)
이어, 그는 천천히 의사청 밖으로 걸어나갔다.
어느 덧 해는 서산에 기울어 황금빛 노을이 타는 듯 붉은 빛을
누리에 뿌리고 있었다.
* * *
삼경(三更).
낭야왕부, 인적 끊긴 폐허의 흐릿한 달빛이 흐르고 있었다. 사위는
죽음 같은 적막 속에 빠져 있었다.
어둠은 깊은 침체의 늪에 잠겨 있고 간간이 보이는 달빛은 음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득,
스읏!
깊은 적막을 깨고 하나의 인영이 허공을 가르며 낭야왕부의 폐허로
날아들었다.
아! 놀랍게도 그 인영은 한 번의 도약으로 무려 오십여 장씩 나가며
낭야왕부의 중심부로 전진했다.
일신에 걸친 옷은 자색장포, 등 뒤에 황금의 보검을 짊어진 날카로운
인상의 검수였다.
금검존 뇌극형! 바로 그였다.
이윽고,
스슥......
"......!"
금검존은 소리없이 낭야왕부의 의사청의 폐허 위에 내려섰다. 이어,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강퍅한 음성으로 외쳤다.
"철접! 본좌가 왔다! 어디 있느냐?"
그의 일갈은 조용한 낭야왕부 일대를 뒤흔들었다.
하나, 어디에서도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금검존은 검미를 꿈틀하며 냉막한 어조로 재차 일갈했다.
"흥! 본좌를 불러내고도 감히 나타날 용기가 없는 것이냐, 철접?"
한데, 그때였다.
"흑...... 흐흑......!"
돌연 어디선가 애절한 여인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
금검존은 흠칫했다.
폐부를 찢는 듯한 애절한 여인의 울음소리에 절로 간담이 섬뜩해진
것이었다.
깊은 밤, 황량한 폐허의 어디에선가 들리는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
그것은 아무리 철석간담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오싹 한기가 드는 것이
당연했다.
금검존은 입술을 씰룩이며 다시 일갈을 터뜨렸다.
"철접! 본좌와 귀신 놀음을 하자는 얘긴가?"
하나,
"흑...... 흑......!"
대답 대신 예의 애절한 울음소리만 밤의 적막을 깨며 들려올
뿐이었다.
금검존은 무섭게 눈썹을 꿈틀했다.
(흥! 오냐! 네년이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 주마!)
이어, 슥!
그는 울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그는 낭야왕부의
후원이었던 곳에 이르렀다.
황폐한 정원, 한쪽에는 오래된 하나의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우물 옆, 새로 만들어진 하나의 무덤이 있었다.
무덤 옆에는 반듯하게 다듬어진 돌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 앞, 한 명의 소복여인이 엎드려 애절하게 울고 있었다.
<망제(亡弟) 용영차랑지묘(龍影次郞之墓).>
비석에는 그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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