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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 8

하숙 8


이틀을 학원을 못 나갔다. 오늘도 못 갈 것 같다. 오늘 오전에 주인 아줌마를 입원실로 옮겼다.
여섯 명이 쓰는 중환자실이지만 응급실 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느낌이다. 그녀도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방금 병원에 온지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입원실에서 필요한 생활도구도 챙기도
하숙생들 식사도 차려 줄 겸 집으로 갔다. 나를 비롯해서 하숙생들 모두가 그녀가 없던 관계로
집에서는 라면이나 중국음식으로 아침 저녁 끼니를 때웠었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하숙생들이 간간히 찾아 왔었다. 고마운 녀석들이다. 분명 생활에 불편이
많았을 텐데 내색하지 않았었다. 세상이 생각만큼 매정하지는 않은가 보다. 아줌마도 매정하시지
않을 것 같다. 나을것이다. 지금 아줌마 곁에는 나혼자 있다.

아줌마는 정신을 차리셨다. 혈압을 많이 낮추어 놓았기 때문에 힘이 없는 모습이지만 말씀도
간혹 하셨다. 아줌마 침대 옆에 앉아 반쯤 잠이 든 몽롱한 상태였는데 아줌마가 잠에서 깨셨다.

"나영이는?"
"예? 아, 집에 갔어요."
"자네가 대신 있는게야?"
"네."

침을 흘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아줌마의 모습이 아직 많이 안되어 보이지만 분명 어제, 그제
보다는 나아 보였다.

"자네한테 미안하고 고맙네."
"별말씀을요."

아줌마는 나와 짧은 대화를 하고 난 뒤 다시 잠이 드셨다. 심심하다. 중환자실이라 그런지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알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아줌마는 여전히 잠이 들어 있었고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링겔을 바꿔 놓고 갔다. 이 방에는 여섯 명의 환자가 있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두사람
뿐이다. 저녁 밥이 들어 왔다. 세 명분의 밥이다. 명단을 부르며 배식기를 돌렸다.
아줌마는 호명되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

"꼬로록."

생각해 보니 점심도 먹지 않았다. 움직인 것도 없는데 배가 참 고프다. 잠이 드신
아줌마를 보았다. 병원에 와서 아직 한끼도 드시지 못했다. 야, 마이 배. 분위기 파악
좀 하며 왠만하면 소리는 자제해라.

"꼬로록."

새끼 진짜 말 안듣네.

그녀가 생각보다 늦다. 어머님이 잠이 드신 틈을 타 입원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병원
복도를 걸어 보았다.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어둡다. 어쩌다
느끼는 학원생활의 어둔 느낌은 쨉도 안된다. 학원 생각이 난다.

그 종석이라는 형에게 전화나 해 볼까? 마침 학원을 파할 시간이다. 전화기를 찾으며
복도를 계속 걸었다. 전화기 앞에 낯익은 여인이 수화기를 붙잡고 짜증 섞인 말을 하고
있다. 앗, 그녀다. 전화기 옆 간이 의자에는 큼직한 가방이 놓여 있다. 그녀가 들고 온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자기 옆에 와 있는지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방이 놓여진 의자
옆에 앉았다.

우와, 돈 참 빨리 떨어진다. 거의 일분에 천원 꼴로 떨어지는 것 같다. 그녀가 전화하고
있는 전화기의 잔여금액 표시를 말하는 것이다. 자기 언니에게 하는 것 같다. 같은게
아니라 맞다.

"딴 얘기는 하지말고 언제 올거냐니까?"
"..."
"얼마나 아픈지 직접 보면 알잖아."
"..."
"진짜 모레는 올거야?"
"..."
"알았어. 만약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기면 언니 다시는 안볼 줄 알아."

그녀의 말투가 상당히 겁나다. 쌈하면 잘 할 것도 같다. 뭐가 답답한지 했던 얘기 하고
또 한다. 외국 나가기가 그렇게 쉬운가. 그녀 언니가 여기 오기가 어려운지 자꾸 어머님
병세를 되묻는 것 같다. 기어이 카드의 잔여금이 제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어머, 동엽씨."

그녀가 가방을 들여다 나를 보았다.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여기 언제부터 있었던 거에요?"
"방금 왔어요. 저도 전화나 할까 해서."
"그래요. 저 전화하는거 들었어요?"

그럼, 소리가 좀 컸지 아마.

"조금요."
"언니하고 통화했었어요."
"대충 그렇게 생각했어요."
"엄마는요?"
"주무세요."
"무슨 일 없었죠? 의사가 무슨 말 하던가요?"
"없어요."

그녀가 가방이 있던 자리에 앉았다. 그래 지금 입원실로 가봤자 별 할 일도 없다.
그녀의 모습이 날 조금 덜 심심하게 했다.

"전화 안 하세요?"
"그냥 안 할래요."
"저녁 안 먹었죠?"
"네."
"미안하네요."

그녀가 가방을 열더니 도시락을 꺼내 놓았다.

"저 줄려고 싸온 거에요?"
"그럼 누굴 줘요?"

알면서 물어 본 거야. 여기서는 먹기가 불편하다. 지나는 사람들도 많다. 어디 괜찮은
곳이 없을래나? 결국 찾은 곳이 병원 비상계단이었다. 간혹 담배 필때 찾아 왔던 곳이다.

"나영씨는 밥 먹었어요?"
"밥이 좀 많아 보이지 않나요? 동엽씨랑 같이 먹으려고 안 먹고 그냥 왔어요."
그녀를 흘깃 쳐다 보았다. 쪼금 감격했다. 그치만 이 정도 나혼자 다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도 싶었다. 계단에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사이에 두고 저녁 식사를 했다. 밥상을
마주하고 식사해 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밥그릇이 따로따로 였다. 지금은 하나다. 헤헤.
그녀와 난 이제 같은 밥그릇의 밥을 같이 먹은 사이가 됐다. 젓가락이 부딪칠 때도 있었다.
그 재밌네.

"애들이 뭐라 그러지 않던가요?"
"밥을 보며 감격하던데요."
"걔들도 어머님 걱정 많이 하죠?"
"네."
"좋아지실 거에요. 아까는 말씀도 제법 하셨어요."
"고마워요."

고맙단 말 심심찮게 듣는다. 그 말할때마다 그녀가 내 마음을 조금씩 떼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까. 자꾸 그렇게 말하면 날 책임져야 할텐데...

병원에서 밤을 그녀와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날 쫓아 냈다. 매정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매정한 것이랴. 그래 내일 오전에 내 다시 오리라. 허허, 울 엄마도
아닌데 병원에 오고 싶다. 내 맘에 분명 뭔가 있다.

"그럼 내일 오전에 올게요."
"그래요."

그녀가 내가 온다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내일 봅시다. 아줌마의 잠든 모습과 날
마중하는 그녀를 뒤로 한채 하숙집으로 돌아 왔다.






20편

학원을 오랫동안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되기 보다는 편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한 게
없으니까 할 일도 없었다. 하숙집에 오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일찍 일어났다. 일찍 잤으니까. 해가 갓 쪄놓은 호빵처럼 하얗다. 어스름이 지는 무렵에
일어 났다.

내 딴에는 착한 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숙생들 아침에 밥 먹여 보낼려고 내딴에는
정성들여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냉장고에 있는 햄도 구워 대접했다. 그런데,

"이게 밥이에요? 발로 지었어요?"
"귀향하고 싶다. 차라리 나에게 라면을 달라."

아무리 물을 많이 탄 관계로 밥이 죽같이 되었지만 성의를 봐서라도 맛있다 그래주면 어디
덧나냐?

"형! 형도 하숙생이에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내 저놈들 기억해 놓았다가 나중에 내 잘나게 되면 다 복수하리라. 오늘따라 현철이가
고맙다. 그 녀석이 의외로 투덜거리지 않고 밥을 맛있게 먹었다. 하기야 저 녀석은 차려
주는 밥은 꼭 먹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내 다시 생각하마.

"으이씨. 아침부터 죽을 먹었더니만 속이 뒤집어 지네. 군대에서 이런 밥 주었다간
전쟁났다 진짜."

녀석이 밥그릇 비우고 숟가락을 놓으며 한 말이다. 내 가슴에 비수를 꼿았다. 저 새끼가
제일 나쁜 놈이다. 왜 아침 일찍 일어나 이런 짓을 했을까.

하숙생들은 모두 학교로 떠났다. 그녀가 없었던 관계로 하숙집 마루에 먼지가 많이 내려
앉아 있다. 어제 그녀가 집에 다녀 갔지만 이런 것에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을것이다.
내가 쓸고 닦고 한 번 해 볼까?

마루를 쓸면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주인 아줌마가 아프신 와중에 웃음이 나와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짓을 할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집에서는 내 방 이불도 잘 개지
않았는데 말이다. 마루를 쓸고 난 다음 걸레질을 말 시작했을 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거기 양두숙씨 댁 아닌가요?"
"여기 하숙집인데요."
"그래요 하숙집. 거기 나영이 있으면 좀 부탁합니다."

아, 주인 아줌마 성함이 양 두숙이었구나. 그녀의 언니인 듯 하다.

"지금 병원에 있는데요."
"그래요? 입원실 전화 번호 알 수 있을까요?"

에... 기억이 안난다. 기억에 안 나는게 아니고 모르겠다. 어제 입원실로 옮겼었는데
내 어찌 알리.

"잘 모르겠는데요. 하실 말씀 있으면 제가 전해 드릴게요."
"저 나영이 언닌데요. 오늘 출발한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아, 예.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숙생인가요?"
"네."
"혹시 병원에 가 보았나요?"
"네."
"병세가 어떻던가요?"
"아직 안 좋지만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꼭 좀 전해 주세요. 그리고 오전 중으로 나영이 만나게 되면 제게 전화 좀
해 주라고 전해 주세요."
"네."

그녀의 언니가 오늘 올려나 보다. 언니가 오면 나영씨가 좀 편해 지겠구나. 잘 되었네.
오늘 중으로 도착하기는 힘들겠지? 먼 곳이니까. 그녀 언니의 말을 전해 주기 위해서
오전 중으로 병원을 가보아야 겠군. 마루를 반쯤 닦았을까. 전화가 또 왔다.

"여보세요."
"저 나영이에요."
"아 에. 어머님이 괜찮으신가 보네요. 전화까지 다하고."
"아직 그렇죠 뭐."
"아침 드셨어요?"
"병원 매점 가서 대충 먹고 오는 길이에요. 뭐 하세요?"
"마루 닦아요."
"동엽씨가 왜 마루를 닦아요?"
"제가 좀 깔끔한 편이잖아요."
"동엽씰 아주 모르는 사람에게나 그렇게 말하세요. 오디오 장식장에다 팬티 말아 넣어
두는 사람이."
"저 깔끔해요."
"나중에 오실거죠?"
"그럼요."
"그럼 병원에서 뵙죠."
"뭐 부탁할 일 없어요? 뭐 좀 사가지고 갈까요?"
"아니에요. 그냥 몸만 오세요."
"참, 언니한테서 전화 왔었어요."
"울 언니요?"
"예. 오늘 출발 한데요."
"정말요?"
"네."
"훗, 몇년만에 보는거야."
"보고 싶었어요?"
"그럼요. 친형제인데 안보고 싶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병원에서 봅시다."
"네. 꼭 오세요."

그녀가 어제 자기 언니에게 전화할 때와는 다르게 매우 반가운 어투다. 별일 없이 그녀가
전화를 했다. 말 하는 것으로 봐서 꼭 나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허허, 주인
아줌마가 아프셔서 그녀와 나,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해 주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주인 아줌마가 가벼운 병이었다면 그녀에 나를 가깝게 해 주려고 아팠다고
할 수도 있을텐데.

마루를 다 닦았다. 깨끗하다. 아침에 밥도 하고 마루도 닦고, 나중에 안되면 가정부로
나서도 될 듯 싶다. 외출 준비 하 듯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하숙집을 나왔다.

주인 아줌마의 병세와 상관 없이 병원 가는 길이 가볍다. 아줌마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와
나란히 있는 날 보시면 기분 좋은 소릴 해 주실 것도 같다. 햇살은 오늘도 맑고 따스하다.
조금 있으면 덥겠지.

엘레베이터가 막 출발한 관계로 기다리기가 싫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복도 분위기가
어제와 다를 게 없다. 입원실로 들어 섰다. 그녀가 반갑게 웃어 줄 것 같다. 그런데,

주인 아줌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는 분명 양 두숙이라고 적혀 있고, 어제
그녀가 들고 온 가방도 놓여 있지만 주인 아줌마의 모습이 없다. 그녀도 보이지 않는다.




21편


주인 아주머니가 병세가 좋아지셔서 나영씨와 어디 산책이라도 가셨을까? 입원실 침대
앞에 잠시 앉았다. 주위가 어둡다. 입원실 사람들에게 아줌마의 행방을 물어 보았다.
한 시간 정도 전에 의사들이 아줌마에게로 달려 왔었다고 한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한 때와 비슷한 시각이다. 아줌마는 어디로 급히 옮겨지셨고, 그녀는 아주 어두운 표정
으로 따라 갔었다 한다. 불안함이 음습했다.

입원실을 나와 간호사에게 물어 보았다. 잘 모른다고 했지만 급하게 실려 갔으면 복도
끝 꺽이는 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매캐한 약냄새, 꺽이는 곳에서 보이는 수술실이라는
푯말이 겁이 난다. 복도는 끊겨 있었다. 복도를 막고 있는 한짝의 문. 열기가 겁난다.

문을 열었다. 다시 살아난 복도의 한쪽에서 넋이 빠진 모양으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로는 모자라 콧물까지 흘린 채로 멍하니 앉아 있다.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나영씨."

그녀는 내가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앉아 있다.

"나영씨."

한번 더 불러 보았다.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의 모습이 아주 낯설다.

"무슨 일이에요?"

넋이 나갔던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찌그러지더니 소리나지 않는 울음을 지었다.

"엄... 엄마가 죽었어요."

무슨 소리 하는거야?

"네?"

되물을려고 할 찰나에 그녀가 앉아 있던 맞은 편 수술실의 문이 열였다. 거기서 하얀
붕대에 묶여진 시신하나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 그녀의 소리 나지 않던 울음이 선명한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양두숙씨 보호자 분께서는 영안실로 가셔서 사후처리를 하십시오."

금방 나온 시신은 하숙집 주인아줌마였다. 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했던 때가 한 시간 좀 더 지났을 뿐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아줌마의
모습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이불이나 좀 덮어 주지. 아줌마의 모습은 관에 들어
가기 바로 전의 묶인 모습으로 이동 침대위에 놓여져 있었다.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잘
모르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는 일어 서다가 땅바닥에 덜썩 주저 앉아 버렸다.

"담요 같은 걸로 덮어 줄 수 없어요?"

침대를 끄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복도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는 그
사람이 별말없이 침대가 나왔던 방으로 다시 들어가 하얀 담요 하나를 가져와 아주머니를
덮어 주었다.

"보호자는 따라 오셔야 되는데요."

그녀는 엄마를 보지 못한 채 땅바닥에 앉아 흐느끼고 있다. 그녀의 슬픔을 짐작할 수가 없다.

"나영씨."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녀를 일으켜 복도 의자에 앉혔다. 침대 곁에 있는 사람은
그저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다.

"어디로 가는 거에요?"
"일단 영안실로 가야돼요."
"어떻게 된 거에요?"
"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그녀를 복도의자에 앉혀 놓고 침대를 끄는 사람에게 몇 마디 물어 보았다.

"나영씨. 보호자가 따라 가야 한대요."

그녀는 지금 현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상태다. 그녀에게 더 물어 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어찌 할 지
몰라하는 모습으로 지금 상황을 외면하려 들고 있다.

"나영씨 여기 있을 거에요?"

그녀는 대답없이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시간 없어요. 한 분이라도 따라 오세요."

침대 곁에 있던 사람이 답답했던지 재촉했다.

"제가 따라 갈게요."

그녀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며 일어 섰다. 그녀가 날 올려다 보았다.

"제가 일단 이 분을 따라 갔다 올테니 입원실로 가 있어요."

주인 아줌마의 침대가 움직였다. 그 사람을 따라 착잡한 심정으로 발걸음 때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가 나를 따라 걷고 있다. 잠시 서서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아 울음 소리를 참으며 남은 한 손으로 내 허리 옷자락을
잡았다. 주인 아줌마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아무말 없이 걸었다. 그녀가 이제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 오고 있다. 일반인들이
다니지 않는 복도를 따라 영안실로 왔다.

"남자분만 오세요."

영안실에 도착하자 그 침대 끌던 사람이 말했다. 영안실 앞쪽 편에는 몇 군데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었다. 장례식은 어떻게 치룰까? 막막한 생각이 든다. 날 따라온 그녀의 모습을
보니 더 막막하다. 그녀를 영안실 한 쪽편에 앉혀 두고 그 사람을 따라 갔다. 영안실 뒤쪽
철제로 된 문을 따라 들어 갔다.

"좀 잡아 주세요."

주인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냉동실에 갇히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번호표를
받았다. 아줌마가 갇힌 냉동실 번호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들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장례 준비할 때 까지 임시적으로 이 곳에서 시신을 보관하는 것이라 한다.
어제는 제법 주인 아줌마의 말씀을 들었었다. 그랬던 주인 아줌마의 모습이 내 한손에 들려
있는 번호표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것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

분주히 뛰어 다녔다. 그녀는 훌쩍 거리다가 내가 다가가면 멍한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묻는 모양새로 바라 보곤 했다. 장례를 어디서 할 지 영안실 관계자가 물었다. 하숙집에서
장례를 치루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가족이 아니었기에 그 일을 그녀에게 물어야 했다.

"나영씨. 어머님 장례를 어디서 치룰지 묻는데요?"
"집에서 치루어야지요."

그녀는 별 생각없이 대답을 했다. 여전히 멍한 모습이다.

"하숙생들도 있고, 집에서 치루기가 힘들텐데요. 날씨가 더워서 어머님한테도 안 좋을 거에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눈이 붉고 머리가 헝컬어진 그녀의 모습이 안스럽다. 그녀가
울먹 거린다.

"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이 안 떠올라요."
"일단 여기서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하고, 곧 나영씨 언니가 올테니까 다음 일은 언니가
오시면 상의를 해 보세요. 다른데 연락 할 때는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 동엽씨가 좀 해주시겠어요?"

허,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장례는 일단 영안실에서 하는 것으로
해야 겠다. 그녀 자신이 해야 할 일인데, 내가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럼, 장례는 여기서 모시는 것으로 할게요."

그녀를 두고 이리 저리 또 분주히 뛰어 다녀야 했다. 배가 고프다.

노을이 물들어 갈 무렵 영안실 한 켠에 주인 아줌마의 장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하지만 장례식에 필요한 주인 아줌마의 사진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다. 단지 향만 피워둔
채 이곳이 주인 아줌마의 장례장이다라는 표지만 붙었을 뿐이다. 영안실에서 음식은 주문만
하면 대신 해 준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이제 한계가 온 듯 싶다. 참 똑똑해 보이던
그녀가 오늘은 아주 바보가 되어 아직 눈물을 흘리며 장례장 한 쪽에 앉아 멍한 모습으로 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냐?"

주인 아줌마의 부고도 알리고 도움도 청할 겸 하숙집에 전화를 했었다.

"나 현철인데 댁은 누군데 대뜸 반말이요?"
"나 옆방 형이야."
"아, 형이세요. 무슨 일이에요?"
"집에 누구, 누구 있냐?"
"나 말고 한 명 밖에 없어요. 형은 또 누나하고 있죠?"
"슬픈 소식이다."
"뭔데요?"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는데, 주인 아줌마가 돌아 가셨다."
"무슨 그런 걸로 장난을 쳐요. 아줌마가 왜 돌아가셔요. 곧 나을 것 같아 보이시던데."
"내가 지금 장난하는 목소리 같냐?"
"진짜에요?"
"그래 임마."
"진짜? 세상에! 누나 불쌍해서 어떡해요?"
"글쎄. 하여간 하숙생들에게 알리고 될 수 있으면 애들 모아서 여기로 좀 와라."
"알았어요. 근데 어디에요?"
"병원 영안실로 와라. 오면 찾을 수 있을거야."
"네."
"그리고 참. 나영씨 언니가 올텐데, 오면 많이 놀라실 거야. 그래도 사실을 알아야 하니까
남아 있을 애 정하고 오면 바로 여기로 연락하라고 해라."
"알았어요."

그녀 곁으로 왔다. 영안실 실내에는 벌써 조명등이 켜졌다. 창 밖이 붉다. 혼자가 되버린
그녀가 지금 내곁에서 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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