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즐거움 2,3
2. 협주곡
사랑을 나누고 난 뒤, 우리는 심장의 박동이 제자리를 찾기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 느닷없이 너의 연주를 듣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넌 음악을 좋아하지 않잖아."
네가 말했다.
"그래도, 음악가는 좋아하는 걸."
너는 더 이상 빼지 않고, 피던 담배를 비벼 끈 뒤 일어났다. 네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것이 열 두서너 번 정도 될까? 어떤 때는 청바지 차림으로 또 어떤 때는 뻣뻣한 연미복 차림으로 무대 위에서 연주를 했다. 발가벗고 연주를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기억을 더듬다 무대 뒤에 서 있던 나를 감동시킨 영상을 하나 떠올렸다. 미친 듯이 흘러내린 너의 뒷머리가 빳빳하게 풀을 먹인 목깃에 가서 부서지는 폭포처럼 멈추었다. 발가벗고 연주를 하던 그날 너의 머리는 한량없는 자유를 구가하며 목덜미 아래쪽, 어깨로 내려 퍼져 있는 주근깨가 시작하는 곳까지 흘러내렸다. 너는 여느 때처럼, 절도 있는 소박함으로 피아노를 쳤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작품 앞에서 늘 겸손한 너의 음악에 나는 또 한번 매료되었다. 엄청난 노력의 결과임에 틀림이 없는 그 절제력이 너의 벗은 몸 위에, 꽉 짜인 사지 근육과 긴장된 장딴지 위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너의 몸에서는 평화로움도 스며 나왔다. 곧은 상반신에서 유연한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온몸이 매끈하게 반들거렸다. 음악이 흘렀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정말이지, 나는 음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런 내가 어떻게 그 곡이 슈만의 협주곡이란 걸 알았을까? 아마 어느 날 네게서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침대를 빠져 나와 네게로 갔다. 너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너의 등을 어루만졌다. 보지 않았어도 너는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나는 무릎을 꿇고 네 옆구리에 기대앉아, 너의 허벅지를 애무하다가, 다리 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발을 페달에서 뗐을 뿐, 너는 거의 저항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네가 받아들이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연주는 멈추지 마."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몸에 내 입술을 갖다 대자, 네 허벅지의 털이 더 높이 곤두섰다. 융단을 밟고 있던 너의 발가락이 경련을 일으키고, 너의 배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음악이 더 모호해지더니, 노골적으로 멈칫거렸다. 너의 둔부에 내 손톱을 박았다. 너는 헐떡거리면서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잠시 숨돌릴 여유를 준 다음 나는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너의 성기에 새겨 넣는 리듬에 맞춰 너의 연주가 점점 격렬해졌다. 건반을 치는 네 손가락과 악물은 턱을 보고 싶었다.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오고,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정말이지, 나는 음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슈만의 악보에 그 무례한 신음소리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3.안 경
올빼미, 개구리, 살무사, 야릇한 동물들. 악마적인 느낌의 둥근 안경테 속에 박힌 눈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음흉해 보인다. 망을 보는 듯 불안하게 튀어나온 눈. 나는 넓고 두꺼운 안경테만 선택했다. 얼굴을 잡아먹는구나, 이왕이면 좀 밝은 색으로 하지 그랬니 하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검은 색 테를 쓰다가 푸른색, 초록색, 또 자주색으로 바꾸어 보았다. 불구를 오히려 아름다움의 방편으로 만들고 장애자라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별별 우스꽝스런 짓을 다 해보았다. 눈에 띄지 않게 삽입된 테도 끼어보고, 햇빛에 반사되는 테도 끼어보았다. 안경 뒤에 안전하게 숨어 있던 근시의 내 눈이 크게 벌어진다. 어쨌든 희뿌연 안개를 뚫고 남들처럼 세상을 본다. 안경 너머로 세상을 보려고 애쓰다 보면 자연히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 올빼미, 개구리, 살무사, 이 동물들의 눈을 조심해야 한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나는 안경부터 먼저 챙긴다. 안경이 없으면 장님들처럼 흰 지팡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읽던 책이 손에서 떨어지면, 더듬지 않고 스위치를 찾아 불을 끄고 안경을 벗는다
그러면 사랑을 나눌 때는?
상대방을 제대로 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갑작스레 둘러쳐진 후광이 감미로운 뉘앙스들을 앗아가 버린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한 것이 시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는 소외의 상처일 뿐이다. 내가 보고 싶은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 허덕일 때, 상대방은 승리의 축포를 터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잠자리에서 나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는 나의 연인들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남녀가 침대 위에 엉겨 뒹구는 것은 단지 감미로운 한 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만일까? 나는 내 스스로 자진해서 안경을 벗는다. 서로 마음이 조금 맞아들이고 있다고 느낄 때면, 나는 나의 파트너가 이 거추장스런 도구를 위엄 있게 제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몸이 단다. 이미 벗은 몸을 한 겹 더 벗겨서 완전히 무장을 해제하고 가진다는 생각에 그는 틀림없이 감동할 것이다. 나는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진취적 행동을 한 사람이 없었다.
어젯밤의 그이 말고는 어느 누구도.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그. 하지만 그는 모른다. 사랑을 고백하려고 하면 무슨 마술에 걸렸는지 말이 목구멍 저 안 쪽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그는 안달이 날 정도의 섬세한 동작으로 안경을 벗겨 침대 옆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행복이 속눈썹을 타고 스며드는 것 같았다. 부시도록 황홀해진 눈은 입이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미친 듯이 몸을 섞었다. 오늘 아침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그만 조심스럽지 못하게 발뒤꿈치로 안경을 밟아 버렸다. 네 바늘을 꿰맸다. 나는 조마조마해 하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흰 유리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그가 화를 벌컥 내며, 찢어진 발이 재수 없는 왼쪽 발이라고 내게 지적해 주었다.
사랑을 나누고 난 뒤, 우리는 심장의 박동이 제자리를 찾기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 느닷없이 너의 연주를 듣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넌 음악을 좋아하지 않잖아."
네가 말했다.
"그래도, 음악가는 좋아하는 걸."
너는 더 이상 빼지 않고, 피던 담배를 비벼 끈 뒤 일어났다. 네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것이 열 두서너 번 정도 될까? 어떤 때는 청바지 차림으로 또 어떤 때는 뻣뻣한 연미복 차림으로 무대 위에서 연주를 했다. 발가벗고 연주를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기억을 더듬다 무대 뒤에 서 있던 나를 감동시킨 영상을 하나 떠올렸다. 미친 듯이 흘러내린 너의 뒷머리가 빳빳하게 풀을 먹인 목깃에 가서 부서지는 폭포처럼 멈추었다. 발가벗고 연주를 하던 그날 너의 머리는 한량없는 자유를 구가하며 목덜미 아래쪽, 어깨로 내려 퍼져 있는 주근깨가 시작하는 곳까지 흘러내렸다. 너는 여느 때처럼, 절도 있는 소박함으로 피아노를 쳤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작품 앞에서 늘 겸손한 너의 음악에 나는 또 한번 매료되었다. 엄청난 노력의 결과임에 틀림이 없는 그 절제력이 너의 벗은 몸 위에, 꽉 짜인 사지 근육과 긴장된 장딴지 위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너의 몸에서는 평화로움도 스며 나왔다. 곧은 상반신에서 유연한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온몸이 매끈하게 반들거렸다. 음악이 흘렀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정말이지, 나는 음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런 내가 어떻게 그 곡이 슈만의 협주곡이란 걸 알았을까? 아마 어느 날 네게서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침대를 빠져 나와 네게로 갔다. 너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너의 등을 어루만졌다. 보지 않았어도 너는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나는 무릎을 꿇고 네 옆구리에 기대앉아, 너의 허벅지를 애무하다가, 다리 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발을 페달에서 뗐을 뿐, 너는 거의 저항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네가 받아들이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연주는 멈추지 마."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몸에 내 입술을 갖다 대자, 네 허벅지의 털이 더 높이 곤두섰다. 융단을 밟고 있던 너의 발가락이 경련을 일으키고, 너의 배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음악이 더 모호해지더니, 노골적으로 멈칫거렸다. 너의 둔부에 내 손톱을 박았다. 너는 헐떡거리면서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잠시 숨돌릴 여유를 준 다음 나는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너의 성기에 새겨 넣는 리듬에 맞춰 너의 연주가 점점 격렬해졌다. 건반을 치는 네 손가락과 악물은 턱을 보고 싶었다. 갑작스레 정적이 찾아오고,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정말이지, 나는 음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슈만의 악보에 그 무례한 신음소리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3.안 경
올빼미, 개구리, 살무사, 야릇한 동물들. 악마적인 느낌의 둥근 안경테 속에 박힌 눈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음흉해 보인다. 망을 보는 듯 불안하게 튀어나온 눈. 나는 넓고 두꺼운 안경테만 선택했다. 얼굴을 잡아먹는구나, 이왕이면 좀 밝은 색으로 하지 그랬니 하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검은 색 테를 쓰다가 푸른색, 초록색, 또 자주색으로 바꾸어 보았다. 불구를 오히려 아름다움의 방편으로 만들고 장애자라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별별 우스꽝스런 짓을 다 해보았다. 눈에 띄지 않게 삽입된 테도 끼어보고, 햇빛에 반사되는 테도 끼어보았다. 안경 뒤에 안전하게 숨어 있던 근시의 내 눈이 크게 벌어진다. 어쨌든 희뿌연 안개를 뚫고 남들처럼 세상을 본다. 안경 너머로 세상을 보려고 애쓰다 보면 자연히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 올빼미, 개구리, 살무사, 이 동물들의 눈을 조심해야 한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나는 안경부터 먼저 챙긴다. 안경이 없으면 장님들처럼 흰 지팡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읽던 책이 손에서 떨어지면, 더듬지 않고 스위치를 찾아 불을 끄고 안경을 벗는다
그러면 사랑을 나눌 때는?
상대방을 제대로 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갑작스레 둘러쳐진 후광이 감미로운 뉘앙스들을 앗아가 버린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한 것이 시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는 소외의 상처일 뿐이다. 내가 보고 싶은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 허덕일 때, 상대방은 승리의 축포를 터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잠자리에서 나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는 나의 연인들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남녀가 침대 위에 엉겨 뒹구는 것은 단지 감미로운 한 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만일까? 나는 내 스스로 자진해서 안경을 벗는다. 서로 마음이 조금 맞아들이고 있다고 느낄 때면, 나는 나의 파트너가 이 거추장스런 도구를 위엄 있게 제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몸이 단다. 이미 벗은 몸을 한 겹 더 벗겨서 완전히 무장을 해제하고 가진다는 생각에 그는 틀림없이 감동할 것이다. 나는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진취적 행동을 한 사람이 없었다.
어젯밤의 그이 말고는 어느 누구도.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그. 하지만 그는 모른다. 사랑을 고백하려고 하면 무슨 마술에 걸렸는지 말이 목구멍 저 안 쪽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그는 안달이 날 정도의 섬세한 동작으로 안경을 벗겨 침대 옆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행복이 속눈썹을 타고 스며드는 것 같았다. 부시도록 황홀해진 눈은 입이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미친 듯이 몸을 섞었다. 오늘 아침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그만 조심스럽지 못하게 발뒤꿈치로 안경을 밟아 버렸다. 네 바늘을 꿰맸다. 나는 조마조마해 하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흰 유리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그가 화를 벌컥 내며, 찢어진 발이 재수 없는 왼쪽 발이라고 내게 지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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