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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 - 6


6. 막내이모의 이혼

 이모들의 이야기는 분명 충격적이 이야기였다. 게다가, 자극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서 내가 자위행위를 할 때, 이모들의 이야기는 내 상상력의 단골소재였을 뿐만 아니라, 엄마를 다시금 떠올리며 상상을 하게끔 만든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모들의 이야기는 그냥 내 상상력에만 영향을 미쳤을 뿐, 엄마와 나의 관계는 그 해 여름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엄마와 나는 여전히 서로를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생활했고, 꼭 해야 될 말 외에는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는가? [이보(二步) 전진을 위한 일보(一步) 후퇴]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와 첫 관계를 가진 이후 보낸 6개월이 꼭 그랬다. 겉으로는 엄격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엄마에 관련된 상상을 거부하던 난 이모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을 기점으로 하여 엄마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엄마와 관계를 가질 때 보았던 몸을 짧은 시간만 올렸고, 다음에는 좀 더 오래 떠올렸고, 그 다음에는 관계를 가지던 전체를 떠올렸으며, 나중에는 내 멋대로 엄마와의 관계를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상상 속의 나는 엄마와 이모들을 모아 놓고 한꺼번에 맛보는가 하면, 엄마와 내가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는가 하면, 엄마와 아이도 낳으며 부부처럼 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상상은 엄마와 관계를 가지기 이전에도 종종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은 내 마음상태였다. 그 전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어떤 자기합리화 정도의 수준인 반면, 그 해 여름의 내 마음상태는 ‘그래도 된다.’라는 확신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즉, 엄마를 더 이상 엄마로 보지 않는 상태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엄마의 생각을 물어본 것은 아니고, 엄마의 마음 변화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 그 해 여름에 일어났다.

  당시 막내 이모는 우리 집에서 지냈는데, 시댁으로부터 심각하게 이혼을 강요 받는 상황이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막내이모는 이모부의 친구와 스와핑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 관계를 그만 시부모에게 정통으로 들켜버렸던 것이다. 즉,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남편 친구와 오랜만에 자신의 안방에서 관계를 가졌는데, 하필이면 그때 막내이모의 시부모가 그 집을 방문하였고, 공교롭게도 막내이모가 현관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현장을 그대로 들켜버렸다. 덕분에 막내이모는 시아버지에게 따귀를 맞는 수모를 당했고, 이후 시댁식구 전체로부터 이혼을 강요 받았다. 물론, 이모부는 완강하게 그런 그들에게 맞서면서 이혼불가를 외쳤지만, 그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공허한 소리였고, 결국 막내이모는 가출하는 형식을 빌어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 한동안 막내이모는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면서 식사까지 거부했고, 그런 탓에 불과 열흘 만에 눈에 띠도록 살이 빠져버렸다. 엄마는 물론이고 이모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으나, 도저히 막내이모를 달랠 방도는 없었다. 그저 전전긍긍하는 걱정과 푸념의 소리만 들릴 뿐, 귀신처럼 안방에 들어앉아 있는 막내이모에게는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간 나는 초췌한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 있는 막내이모를 보았다.
   “어…… 이모.”
   “응. 현석이구나. 이리 앉아.”
  막내이모는 힘없는 미소로 나를 반겼는데, 왠지 이모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막내이모는 전날 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전날의 모습이 귀신 같았다면, 그래도 그날은 사람 같아 보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막내이모는 그렇게 거짓말처럼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떨치고 일어났고, 3일 정도의 요양을 한 뒤에는 엄마를 따라 서점을 나갔다. 그리하여 우중충하던 집안의 분위기는 보름 만에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 막내이모의 재기(?)로 인해 좋아진 점이 또 하나 있다면, 엄마의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아침식사 준비는 여전히 엄마가 했지만, 저녁과 빨래, 청소, 장보기 등은 막내 이모가 도맡아 했고,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엄마는 이모와 수시로 동반외출을 했는데, 외출장소는 주로 극장, 레스토랑, 호프집, 노래방이었다. 그 중에서 극장을 다녀올 때면 둘의 대화는 거의 밤새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독서실에서 밤을 세우기로 했던 난 심하게 코를 골며 자는 녀석 때문에 밤 1시쯤에 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물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열쇠로 조용히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고, 최대한 조용히 내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엄마와 막내이모는 잠을 자지 않고 있었는데, 방에서 들리는 TV소리와 말소리로 보아 술을 마시곤 있는 듯 했다. 괜히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왔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굳이 나의 존재를 알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잘 모르겠어. 동혁씨 말을 따라야 할지 어떨지.”
  라는 이모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까지 했다. 막내이모가 말한 동혁이라는 남자는 막내이모의 정부(情夫)로 이번 이혼파동의 남자주인공이었다. 난 오히려 숨까지 죽이며 안방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동혁씨 말대로 홀가분하게 외국으로 나가서 사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되면, 종철이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혼을 하게 되면, 어느 한 쪽은 그런 상처를 감내해야 돼.”
   “알아…… 아는데도 이상하게 쉽게 수긍할 수가 없어.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고……”
  그 말에 대한 엄마의 대꾸는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안방에서는 TV소리만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금새 애국가로 바뀌었다. 그러자 막내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TV꺼야 되겠다.”
   “그래…… 근데, 리모컨이......”
   “그 쪽에 있는 게 리모컨 아냐?”
   “어디? 아…… 그래.”
  그 소리를 끝으로 이내 TV소리가 사라졌고, 뒤이어 막내이모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언니. 나도 종철이랑 해버릴까?”
   “뭘?”
   “언니가 그랬잖아. 현석이랑 그거 한 뒤로는 더 이상 아들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나도 종철이랑 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꺼 아냐.”
  그 말에 난 숨이 턱 막히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 충격과 상관없이 방안에서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가지지 못할 바에야 망쳐놓겠다는 거니?”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그렇게 들려.”
   “후~~~ 답답한 문제다.”
   “……”
   “근데,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뭐를?”
   “현석이랑 말이야.”
   “뭘 어떻게 해. 이대로 지내는 거지.”
   “그건 너무 비참하지 않아? 아들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마음에도 없는 엄마 노릇을 한다는 건 너무 비참할 것 같은데……”
   “아들은 아들이지. 내가 배 아파 낳았는데.”
   “마음에서는 거의 다 지워져 버렸다면서?”
   “듣고 싶은 말이 뭐니?”
   “그냥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그만 둬.”
   “왜 쓸데없는 소리야? 이대로 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는 것 보다 차라리 부딪혀서 정리를 하는 게 더 낳지 않아? 가식적으로 부모자식 노릇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가식적? ”
   “그래. 가식적.”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한번 부딪혀 보는 거야. 어때?”
   “싫어.”
   “왜 싫어? 현석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며?
   “늘 그런 건 아냐.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처량한지 아니? 아들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는 게……”
  엄마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다고 변할 것도 없잖아. 후회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해? 이미 마음이 변했는데. 나 같으면 차라리 현석이를 잡을 거야.”
   “현석이를 잡는 다고?”
   “그래.”
   “그 애가 무슨 물건이니 잡고 말고 하게……”
   “언니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님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뭘?”
   “현석이도 언니에게 관심이 있어. 아니, 관심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애도 언니에게 딴 마음 가지고 있어. 대답해봐. 정말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
   “언니도 참 웃기다. 예전에는 근친상간이 무슨 죄냐, 가족끼리 결혼을 하면 왜 안 되느냐 그러면서 잘도 말하더니 갑자기 왜 그래?”
   “풋~~~ 그땐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랬나 몰라.”
   “생각이 바뀐 거야?”
   “글세. 생각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해야겠지.”
   “마음?”
   “응.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비유를 하자면 사형선고 받기 전과 받은 후의 마음의 차이랄까. 죽음이 나와 상관이 없을 때에는 ‘죽음’에 대하여 고상한 단어와 논리를 사용해서 그것을 말할 수 있지만, 막상 현실이 되었을 때는 그렇지 못해. 고상한 단어와 논리를 입에 담기에는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법이거든”
   “뭐야. 그런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거지. 내 마음이 크게 변했으니까.”
   “언니도 참…… 복잡하게 산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 풋~~~”
  그러면서 엄마가 가볍게 웃자, 막내이모 역시 실소하듯 가볍게 웃었다. 그 후로 엄마와 막내이모의 대화 소재는 둘째 이모로 옮겨갔는데, 크게 흥미를 끌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간간이 둘째 이모의 그룹섹스에 대하여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에 살짝 등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나는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가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 심장은 밤 새도록 요동쳤고, 머리 속은 온갖 상상들과 희망들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다음 날, 나는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기는 했지만, 엄마와 막내이모의 묘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솔직히, 아침에 들어와서 깜빡 잠이 들었다는 나의 핑계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설픈 변명이었다.

  어째건, 그 후로 엄마에게 어떤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는데, 뭐랄까 내가 꼭 칼자루를 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무엇을 시도하건 엄마는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더니,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엄마가 더 좋아할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즉, 당시의 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없었더라면, 엄마와 난 지금쯤이면 막내이모의 예언대로 아마 얼굴도 안보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표시하지 않는 간절함은 환상만 만들어 낼 뿐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현실과 괴리되어 결국엔 현실을 외면해버리니 말이다.

  여하튼, 자신감을 가진 내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산책을 가장한 데이트였는데, 그때가 엄마의 속마음을 안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모가 서동혁이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외출을 한 것을 기회로 삼아 난 엄마에게 산책을 권했다.
   “산책?”
  엄마의 반응은 의아함 그 자체였다.
   “에어컨 바람 보다는 그게 낳지 않을까? 소화도 시킬 겸……”
   “……”
   “싫으면 나 혼자 가고……”
   “아냐. 같이 나가자.”
   “그럼 준비하고 나와.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먼저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엄마와 관계를 가진 이후 가장 많이 훼손된 것은 친밀감이었다. 그것은 내가 엄마를 여자로 인식을 하면서 더욱 더 크게 훼손당했고, 나중에는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서로가 어색함을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서로가 무척이나 사무적으로 변했고, 7개월이 넘은 그 시점엔 사실상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 뭐랄까. 가족이라는 것을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을 뿐, “느낌”으로는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고나 할까. 따라서,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있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상황 중의 하나였다. 비록, 내가 엄마의 마음을 알았다고 하여도 말이다.
   “오래 기다렸지?”
  엄마는 스웨터만 살짝 걸치고 금방 나왔다.
   “아니…… 그런데, 덮지 않겠어?”
   “얇은 거야.”
   “그래. 흠…… 이쪽에는 사람이 많으니까, 저 뒤로 가자.”
   “그 쪽은 가로등이 고장 나서 어두운데……”
   “달떴는데 뭐…… 오늘이 보름이잖아.”
   “그럼 그렇게 하자……”
  산책로에 대한 의견조율은 그렇게 쉽게 합의가 되었고, 엄마와 나는 천천히 정해진 코스를 따라 걸었다. 우리가 택한 산책로는 아파트 뒤편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 조성이 된 산책로로 원래는 약수터로 가는 길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 길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를 했지만, 약수터의 물이 수질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낮 시간에만 겨우 아이들의 놀이터 정도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막내이모는 이혼을 하기로 한 거야?”
  무작정 아무런 말도 안 할 수가 없어서 난 막내이모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알고 있었니?”
   “이모가 온지 한 달도 넘었는데, 당연한 거 아냐.”
   “……”
   “이모들에게 주워 듣지 않더라도, 그 정도면 눈치로라도 알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
  엄마의 질문에 난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너…… 혹시...... 다 알고 있니……?”
   “응”
   “……”
   “우연히 들었어. 하지만, 이모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는데, 난 본능적으로 그때가 적기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이른 것 같기는 하지만, 때는 항상 찾아오지 않는 법. 난 밀어붙이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일주일 전의 일을 생각하는 거지?”
   “……!!”
   “맞아. 그때 엄마와 막내이모의 이야기를 다 들었어. 그뿐만이 아니라, 올 3월에 이모들이 우리 집에서 나누었던 대화들도 들었고 말이야.”
   “역시…… 그랬구나.”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어.”
   “이모들이 싫지?”
   “아니, 그렇지 않아. 세상의 잣대로 따지자면 내가 더 나쁜 걸 뭐. 그런데, 나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해. 지금은 오히려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핏~~”
   “왜 웃어?”
   “왠지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 같아서.”
   “그렇지 않아. 솔직한 내 생각이야. 그 동안 이런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몰라. 엄마가 싫어할까봐 하지 못한 거지.”
   “……”
  하지만, 엄마의 대꾸는 없었다. 그래서, 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몇 발짝 더 걸어간 엄마도 곧 걸음을 멈추고서 나를 돌아다 보았는데,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꺼내었다.
   “엄마. 이제 우리 솔직해 지자. 난 그 날밤의 이야기들이 엄마의 진심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
   “좋아 대답하지 않아도 돼. 단지, 내 진심도 엄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해. 아니, 어쩌면 엄마 보다 더 간절할지 몰라. 그래서, 엄마라는 말 조차도 쓰기 싫고, 그냥 민경진이란 이름을 가진 한 여자로만 느끼고 싶어.”
   “……”
   “설명이 더 필요해? 그럼 더 간단하게 말할게. 지금 난 엄마란 존재보다는 민경진이라는 여자를 가지고 싶어. 그래서, 같이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싶어.”
   “……”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무시하는 듯, 몸을 돌리더니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난 순간적으로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느껴야만 했는데, 그건 황당함이란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거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걷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묘한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의미가 없는 듯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승낙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딱히 뭘 승낙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당시의 나는 엄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주겠다는 의미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그날 당장 엄마의 모든 것을 가졌다거나, 급격하게 무슨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엄마와 난 그냥 조용히 언덕을 함께 올라서, 보름달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웃들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즉, 건수(?)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건수(?)가 발생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나서였다.
  그 사이에 이모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이혼녀가 되었고, 서동혁이란 남자도 비슷한 시기에 이혼을 하고서 우리 집에 초대되어 정식으로 이모들에게 인사를 했다. 서동혁은 속된 말로 표준적인 남자로서, 외모-어투-예의범절 등에 있어서 잘난 곳도 모난 곳도 없는 어떻게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남자였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이모들에게 큰 점수를 얻은 듯 했다.
  나중에 자리를 파하고 조용해졌을 때,
   “엄마 생각은 어때?”
  하고 내가 엄마에게 물으니,
   “괜찮아 보인다. 문제 있어 보이지도 않고……”
  라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막내이모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스와핑을 그만두고 합법적인 부부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옳고, 좋은 현상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서먹하나마 엄마와의 대화가 점점 늘어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막내이모와 서동혁이란 남자와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한 데가 있었다. 막내이모부의 7촌 당숙(재종당숙)중에 김상철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서동혁이란 남자의 누나와 결혼을 했었다고 한다. 비록, 김종철이란 남자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결혼생활은 1년도 못했지만, 어째거나 집안과 집안을 따진다면 사돈관계에 있었고, 자식도 있었으니 외척관계라면 외척관계였다. 물론, 요즘은 7촌까지 따지는 사람도 드물고, 왕래도 거의 없어서 남이나 다를 바 없는데다 여자가 재가를 하게 될 경우 ‘사돈’이었다는 기억마저도 지워버리는 추세이긴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바로 그 아닌 사람들이 바로 막내이모의 시댁과 서동혁이란 남자의 집안 및 나의 외조부모 및 외숙부였다.
  따라서, 배우자 맞교환이나 다름이 없는 ‘재혼’을 시도해야 할 그들로서는 가족들을 설득을 하느니 차라리 가족들과의 절연을 택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즉, 결단코 남자 하나만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오래 못 갈 것 같은데……”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야. 생긴 게 가족을 완전히 버릴 정도로 모질지 못해 보이거든……”
   “외모를 보고는 알 수 없어.”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별로야.”
  그 말에 엄마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머뭇거렸는데, 그 사이 막내이모가 들어옴으로 인해 엄마의 대답은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언니. 내가 설거지 한다니까. 왜 하고 그래.”
   “괜찮아. 아무나 하면 어떠니…… 그래 그 남자는 갔니?”
   “응.”
   “무슨 일로 다시 온 거래?”
   “언니들의 평가가 궁금했나 봐.”
   “전화로 하면 될 것을……”
   “내 얼굴도 보려고 그런 거지. 언니는 참……”
  막내이모는 여전히 들뜬 모습이었는데, 왠지 그 모습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엄마와의 대화가 도중에 끊긴 점도 조금은 기분이 상했지만, 무엇보다도 이모부를 너무 빨리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실질적인 남편이 그 남자였다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막내이모. 그렇게 좋아?”
  끝내 참지 못한 내가 한마디 했다.
   “꼭 처녀가 시집가는 것 같다.”
   “뭐……?”
   “처음 결혼하는 여자 같다고……”
   “풋~ 그래 보였니?”
   “그래.”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모부랑 10년을 같이 살았고, 종철이도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 우울해 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닌데…… 근데, 너 은근히 시비 거는 것 같다.”
   “그런 거 아냐.”
   “네 일이나 신경 써.”
  막내이모는 내 말에 다소 기분이 상한 듯 그렇게 말을 했는데, 순간 뭔가 생각이 난 듯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그날 사건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말이 이모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혹시 내가 둘 사이를 방해해서 그런 거야?”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막내이모가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그 말은 진짜 황당했다. 분위기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말인데다가 앞뒤의 연결성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볼 수가 없는 진짜 뜬금없는 말이었다. 덕분에 엄마도 당황한 듯 움찔했다.
   “뭐야. 맞나 보네……”
  그러면서 막내이모는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엄마가
   “너 무슨 말이야!”
   “정색할 필요 없어 눈치 챘으니까.”
   “너 점점……”
  하지만, 막내이모는 멈추지 않았다.
   “나 신경 쓰지마. 둘 사이에 끼어들 생각 없으니까. 근데, 어디까지 진도 나간 거야?”
   “그만 두지 못하니!”
   “언니는 뭘 그리 정색을 해?”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렇지.”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해? 내가 바보인 줄 알아? 근래 들어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뭐가 심상치 않아?!”
   “언니 왜 그래? 나한테까지 숨겨서 뭐 하려고? 말했잖아. 난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야.”
   “너 정말 그만 두지 못하니!!!”
  평정심을 잃은 듯 엄마가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에 막내이모와 나는 움찔했고, 이어 우리가 미처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엄마는 주방을 빠져나가 안방 문을 쾅 하니 소리 나게 닫았다. 정말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 성격의 변덕스러움은 내 짧은 생에서도 종종 목격을 했었지만, 상황 자체의 변덕스러움을 경험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해?”
  난 이모를 책망하는 말을 했는데, 황당하게도 이모는 대수롭지 않은 듯 빙긋 웃으며 하던 일을 계속하며 대답했다.
   “내가 뭘?”
   “몰라서 물어?”
   “너야 말로 왜 그래?”
   “……?”
   “남자라면 좀 솔직해야지. 그래 가지고 어디 자기 여자를 지키겠니?”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나까지 화나게 만들려고 그래?”
   “그럼 가서 네 엄마나 달래.”
   “내가 왜? 이모가 화나게 했으니 이모가 해.”
   “네 여자잖아.”
   “이모 정말……!”
  울컥하니 속에서 뭔가 솟구치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해서 내 목소리는 다소 떨렸다. 그러자, 막내이모는 일손을 멈추고서는 몸을 돌려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넌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니?”
   “……!!”
  낭패였다. 그제서야 난 이모가 엄마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내 지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착각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혹시 운명의 예정된 수준이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어째든, 이모의 말에 난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이모는 그런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말을 이어갔다.
   “난 너와 네 엄마 편이야. 그러니까 나를 속일 생각은 마. 원한다면, 모르는 척 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이미 일은 다 벌려 놓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재빨리 감정을 정리한 난 다소 반항적으로 되물었다. 왜냐면 피할 수 없는 일은 부딪혀야 하는 법이니까. 물론, 부적절한 반항이었지만 말이다.
   “이모가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없어. 단지, 너와 네 엄마가 불행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럼 모르는 척 해줘.”
   “네가 나의 일을 모르는 척 하는 것처럼?”
   “……”
   “이미 말했듯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고……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 둬.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상대방을 이롭게 할 때나 옳은 거야.”
   “그럼 엄마와 나를 위해서 아는 척 했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는 막내이모는 다시 몸을 돌려 일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너와 네 엄마의 관계를 알게 된 줄 아니? 네 엄마의 잠꼬대 때문이야. 밤마다 ‘사랑해.’ ‘미안해.’라는 말을 하며, 기뻐하다가 이내 슬퍼하는 네 엄마의 잠꼬대로 인해서 알게 되었어. 물론, 처음에는 이해도 안되었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어. 내 코가 석자니까. 그러다 몇 일이 지나자 네 엄마의 잠꼬대 내용이 궁금해지더라. 거의 매일 비슷한 내용의 잠꼬대를 하며 네 이름도 간간히 나왔으니까.”
   “엄마가 잠꼬대로 다 말했다는 거야?”
   “아니, 자세한 것은 네 엄마에게 들었어.”
   “……”
   “어째든, 넌 이거 하나는 알아 둬. 내색은 않지만, 지금 네 엄마 아주 힘들어 해. 난 윤리나 도덕을 따져 너와 네 엄마를 비난할 생각 없어. 그러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게다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이 남을 비난할 정도로 깨끗하지 못해.”
   “나 역시 이모 비난할 생각 없어.”
   “그래 피장파장이지.”
   “어째건, 상관하지 말았으면 해.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뭘 알아서 한다는 거니?”
   “뭐든......”
   “너 그거 아니? 남자만 여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여자도 남자가 필요하다는 것 말이야.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난 네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를 찾으라고 권유 했었어. 승려나 수녀도 아닌데, 평생을 수절하며 산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
   “성욕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
  뭔가 대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뱉은 내 말은 다소 엉뚱했다.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야.”
   “난 가족을 버리라는 말은 안 했어.”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를 찾으라고 했다며? 그게 곧 아버지와 이혼하라는 말 아냐?”
   “맞아. 하지만, 그건 가족을 버리라는 말하고는 달라.”
   “억지 부리지마. 부부가 가족이 아니면, 그럼 도대체 가족이 뭐야?”
   “그러는 넌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니?”
   “......”
  난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매번 가장 익숙한 단어가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막내이모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람들의 집단...... 멋진 말로는 운명공동체, 사회학적인 말로는 생활공동체. 기타 등등 가족에 대한 말은 참 많아.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없어.”
   “왜 확실한 게 없어? 개별적으로 보면 확실해. 부모자식은 확실하게 가족이고, 부부도 이혼을 하기 전까지는 가족이야.”
   “그래서, 지금 너와 네 엄마가 가족이니?”
   “뭐......?”
   “너와 네 엄마가 가족이냐고 물었어.”
   “그럼 가족이지.”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또......? 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건 내가 해야 하는 말 같은데. 성욕 때문에 가족을 버리니 어쩌니 하고 따진 건 너야. 마치 가족이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양 말이지. 그러니까, 네가 그 대단한 가족에 대하여 설명을 해야 해.”
  난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막내이모는 더욱 신이 나서 하던 일까지 멈추고서 말을 계속해서 이었다.
   “너와 네 엄마가 혈연관계에 있다는 건 맞아. 그런 물리적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아. 하지만, 기본적 사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냐. 이대로라면 아마 너와 네 엄마는 앞으로 서로 얼굴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 질 거야. 네게 여자가 생기고, 결혼을 하면 더욱 더…… 그러고도 과연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럼 태도를 확실하게 해. 네 엄마를 가지던가, 버리던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와 네 엄마 사이에는 더 이상 부모자식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아. 그건 제 3자인 내 눈에도 쉽게 보여.”
   “정말 쉽게 말하네...... 좋아 이모 충고 고맙게 받아들일게. 그런데, 이모는 정말 엄마와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보여.”
   “……?”
   “단지 내 선택일 뿐이야. 너와 네 엄마가 내 도덕관념에 맞지 않는 이상 나로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잖아. 인연을 끊거나, 받아들이거나……”
  막내이모의 그 말에 난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특정한 어떤 사건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곧바로 선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말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였다. ‘도둑질이 나쁘다.’와 ‘도둑놈이 나쁘다.’가 별개의 가치판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시의 나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난 ‘도둑질을 한 도둑놈은 나쁘다.’라는 어떤 일관성을 유지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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